스님의하루

2026.5.25. 공동체 법사단 수련 1일 차
“스님도 무섭거나 화가 날 때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오늘부터 3일 동안 공동체 법사 수련이 두북수련원에서 진행됩니다. 스님은 해마다 부처님 오신 날 행사를 마치고 나서 정토회 운영과 관련하여 전반적인 내용에 대해 공동체 법사단과 의논하는 시간을 갖고 있습니다.

스님은 새벽 수행과 명상으로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오전 10시에는 두북수련원 법당에서 상주대중, 법사님들과 함께 발우공양을 하였습니다. 발우공양 후 대중공사가 시작되어 일정과 생활에 관련된 여러 공지 사항이 전달되었고, 이어 대중들은 스님께 한 말씀을 청했습니다.

스님은 오늘 발우공양을 하면서 대중이 함께 살펴야 하는 부분에 대해 말씀해 주었습니다.

“오늘부터 공동체 법사단 수련이 있습니다. 오늘 법당에 깔린 방석대로 앉아서 발우공양을 해보니, 남자들은 무릎이 방석 밖으로 나옵니다. 방석이 너무 바짝 붙어 있으니, 무릎이 서로 닿습니다. 그러면 서로 몸을 움츠리게 되고 긴장하게 됩니다. 방석 간격이 좁으니, 발우와 발우 사이도 좁아져서, 찬 쟁반을 놓을 때 공간이 협소해 불편합니다.

발우공양을 하는 공간이 넉넉할 때는 방석과 방석 사이에 한 뼘 정도 간격을 띄워서 좌석 배치를 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같은 경우는 법당 뒷방향으로 공간이 남는데도 방석을 바로 붙여서 좌석 배치를 하였습니다. 식당방에서 발우공양을 할 때는 공간이 좁아서 방석을 붙여 배정했지만, 오늘같이 공간이 넓은 경우에는 찬 쟁반을 놓을 것까지 고려해서 방석과 방석 사이를 띄어 배치해 주시기 바랍니다. 좁은 식당방에서 계속 발우공양을 하다 보니 방석을 붙이는 것이 정석인 줄 알지만, 원래는 방석과 방석 사이를 띄우는 것이 정석입니다.”

스님은 발우공양 방석 배치에 대해 말씀하신 후, 함께 발우공양을 한 크레이그 씨를 보며 물었습니다.

“크레이그 씨는 공동체 생활이 할 만한가요? 어때요?”

국제지부 소속이자 영어 불교대학을 졸업한 신문 기자인 크레이그 님은, 재택근무로 기자 생활을 유지하며 두북공동체에서 ‘한 달 농부’ 프로그램에 참여해 공동체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한국말이 서툰 크레이그 님을 대신해 농사팀장이 근황을 전했습니다. 크레이그 님이 기자 업무를 하지 않는 주말에는 온전히 농사팀에 결합하여 일수행을 하고 있으며, 특히 힘쓰는 일에서 큰 몫을 해주고 있다고 알려주었습니다. 스님은 이야기를 듣고 크레이그 씨에게 격려를 건넸습니다.

“당신 일을 하는 데 불편함이 없도록 조율하면서 하세요.”

발우공양을 마친 후 오전 11시 30분부터 공동체 법사단 수련을 시작했습니다. 수련실에 21명이 모였고, 온라인으로도 6명이 동시 참석하여 총 27명의 공동체 법사단이 한자리에 함께했습니다.

스님이 수련실에 입장하여 자리에 앉자, 청법가와 청법 삼배로 스님께 법을 청했습니다.

스님의 입재 법문이 이어졌습니다.

공동체 법사단 수련을 시작하며

“공동체 법사단에서는 매년 부처님 오신 날 봉축 행사가 끝나면, 짧게는 3일에서 길게는 일주일 정도 시간을 내어 함께 수련을 해왔습니다. 이 기간에는 초파일 행사가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전반적으로 점검도 하고, 지난 1년간의 현안을 다루기도 합니다. 또 정토회가 앞으로 장기적으로 가야 할 미래 비전에 대해서도 깊이 이야기를 나눕니다. 그뿐만 아니라 정토회가 앞으로도 오랫동안 건강하게 유지되려면 수행적 관점을 중심에 두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이런 관점을 우리가 어떻게 바로잡아 나갈지 함께 대화를 나누어 왔습니다. 작년에는 백일법문을 하느라 수련을 못 하고 넘어갔기 때문에, 이번에 2년 만에 공동체 법사 수련을 하게 되었습니다.

2차 만일결사와 지속 가능한 정토회

원래 계획은 제가 1차 만일결사까지만 이끌고, 2차 만일결사부터는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하지 않겠나 하고 전부터 생각해 왔습니다. 그런데 막상 2차 만일에 다다르고 보니, 당장 그렇게 하기에는 형편이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2차 만일의 1차 천일결사까지는 예전처럼 그냥 해왔습니다.

대신 이번 2차 천일부터는 결사행자 구조를 조금 정리했습니다. 실질적으로 의사결정에 크게 효율적이지 않는 65세 이상은 가능하면 논의 구조에서 빠지도록 했습니다. 회의 구조를 단출하게 만들어서 논의가 너무 방만하게 늘어지지 않도록 해보려는 취지입니다. 그래서 올해부터는 저도 회의에 참석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제가 참석하지 않으면 의사결정이 다소 느려지거나 결정에 미흡한 점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차피 제가 죽고 없어지면 누군가는 결정을 내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조금 부족하더라도 우리가 지금부터 스스로 연습하고 적응해 나가야, 정토회가 앞으로 안정적이고 지속 가능하게 흘러갈 수 있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지금 이런 변화를 시험적으로 시행해 보고 있습니다.

사회활동 및 국제 파트의 정리와 새로운 과제

이번 2차 천일 동안에는 가능하면 정토회 내부 일이나 국내 사업들은 상당 부분 정리를 해나갈 계획입니다. 현재 사회활동 파트와 국제 파트의 업무가 남아 있는데, 어쩌면 이 두 분야는 지금 시점에서 오히려 본격적으로 펼쳐야 할 상황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 두 부분을 앞으로 어떻게 풀어갈지, 언제까지 지속할지는 조금 더 논의와 검토가 필요해 보입니다. 그 외의 나머지 부분은 빠르게 정리해서, 적어도 이번 2차 천일 기간 안에는 깔끔하게 정돈하는 것이 맞지 않나 생각합니다.

이번 수련 기간에 공동체 법사단에서 다루어야 할 구체적이고 급한 현안이 있다면 점검하고, 없다면 다행입니다. 아울러 정토회의 장기적인 비전이나 활동 계획도 중요하지만, 앞으로 인력을 어떻게 양성하고 배치할 것인가 하는 문제와, 대중에게 전할 새로운 콘텐츠를 어떻게 개발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매우 중요하게 다가와 있습니다.

지금은 사회가 급속도로 변화하고 있고, 특히 인공지능(AI)이 등장하면서 업무의 효율성도 예전과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지금까지는 정토회가 우리 사회의 다른 NGO나 종교 단체보다 비교적 앞서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우리가 가진 장점들이 널리 알려져서 대부분 벤치마킹이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제는 특별히 우리만의 독창적인 장점이라 할 만한 것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오랜 세월 쌓아온 노하우는 여전히 남아 있지만, 그 외에는 아주 특별한 강점이 보이지 않는 것이 현실입니다.

고령화 위기와 새로운 콘텐츠 개발

현재 종교계나 시민단체가 겪고 있는 가장 큰 위기는 '고령화'와 인구 감소에 따른 '참가자 감소'입니다. 정토회가 당장 심각한 위기에 처한 것은 아니지만, 활동이 다소 정체 국면에 들어서 있고 고령화 문제 역시 정토회가 당면한 과제임은 틀림없습니다. 그러니 이번 수련에서 아이디어 차원에서라도 이런 문제를 어떻게 풀어갈지 머리를 맞대어 보아야 합니다. 지금의 정토회는 이미 우리가 일구어 놓은 분야를 유지하고 관리하는 데는 어느 정도 역량이 됩니다. 조금 벅차기는 해도 관리는 해냅니다. 그러나 다가올 미래를 대비해서 계속 한 발 앞서가며 새로운 콘텐츠를 개발하는 측면에서는 지금 답보 상태에 머물러 있지 않나 싶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현상을 유지하고 관리하는 데 집중할 것인가, 아니면 비록 어렵더라도 새롭게 거듭나는 변화를 추구하며 미래에 대응해 나갈 것인가. 이 역시 너무 이상만 앞세울 것이 아니라, 우리의 현재 역량이라는 현실을 냉정하게 감안해서 계획을 짜야 합니다.

농사 체험, 수행 및 문화 프로그램의 결합

제가 지난 4월 홍릉에 가보았더니, 전통 방식으로 주민들이 직접 못줄을 대고 모를 심는 500평 정도의 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도 봄에 하루를 '권농일'로 정해서 대중이 다 함께 모이고, 아이들도 와서 농사 연습을 해보는 프로그램을 만들면 어떨까 합니다. 못줄을 대고 모를 심으며 옛날 정반왕이 농경제에 나가 농사를 장려했던 것처럼 해보는 것입니다.

우리가 여기서 농사를 짓는 목적은 수확량을 늘리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친환경적인 삶을 직접 체험하는 데 있습니다. 그런데 현재 우리는 그저 농사 자체를 지어내느라 너무 급급한 상태에 놓여 있습니다. 이것을 어떻게 수행과 결부시키고, 또 대중의 교육 프로그램이나 문화 프로그램과 결합할 것인가 하는 부분을 조금 더 깊이 연구해 보았으면 합니다.

아이들을 위한 초파일 프로그램과 감성적 문화 대중화

지금 우리 정토회 초파일 행사에 어린이들이 꽤 많이 찾아옵니다. 제가 보기에는 얼추 50명이 넘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 초파일 하루만큼은 아이들을 위한 특별한 프로그램을 마련해 주면 좋겠습니다. 예컨대 아이들에게 작은 선물을 하나씩 나누어 준다거나, 세 살 이하 아기들은 엄마와 함께, 유치원생, 초등학생, 중학생 등 연령대별로 모아서 스님과 기념사진을 찍거나 마정수기(摩頂授記)를 해주는 것입니다. 지금 아이들은 법륜스님이 누군지, 영문도 모르고 따라왔겠지만, 나중에 이 아이들이 스무 살, 서른 살이 되고 설령 스님이 죽고 난 뒤라도 '내가 어릴 때 법륜스님에게 마정수기도 받고 사진도 찍었지.' 하는 기억을 떠올리며 불법에 귀의하고 이바지할 수 있는 소중한 계기가 됩니다. 이런 세심한 기획을 좀 해보라고 당부했는데, 담당자가 자꾸 바뀌다 보니 실천이 잘 안되었습니다. 앞으로는 준비팀에서 아이들에게 줄 선물을 미리 챙겨두었다가, 가족들과 함께 오는 아이들에게 따로 선물을 건네는 정성이 필요합니다.

이번에 우리가 문화 행사를 고민하면서, 어떻게 하면 불교의 가르침을 정서적이고 감성적으로 대중에게 전달할 수 있을까 하는 과제가 생겼습니다. 우리가 지난 30년 동안 해야 한다고 말만 하면서 정작 제대로 실행하지 못했던 분야인데, 이제는 이것을 조금 더 본격적으로 실행해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차제에 우리가 행하는 천도재나 예불, 반야심경, 염불 같은 의식도 과감하게 현대적인 작곡과 결합하여 새롭게 전환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솔직히 지금의 천도재 같은 의식은 대중에게 깊은 감동을 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전통 의식은 본래 엄숙하고 장엄해야 하는데, 지금 우리의 의식은 엄숙하고 장엄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현대적으로 큰 감동을 주는 것도 아닌 다소 애매한 상태에 머물러 있습니다. 이런 부분을 조금 더 과감하게 개선을 시도해 보면 좋겠습니다.

정토회의 역량을 모은 대중문화 기획과 불사

이번에 인도에서 방송 촬영한 <스님과 손님> 프로그램에 대해서 길벗 작가님들과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작가님들은 '정토회 길벗에는 훌륭한 작가들이 많고, 재능 있는 배우들도 많습니다. 또 뛰어난 PD와 감독들도 많은데, 이분들이 대본을 쓰고 연출을 맡고 우리가 출연한다면, 지금 방송국에서 만든 것보다 훨씬 더 감동적이고 훌륭한 작품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요?' 좋은 제안이었습니다.

이처럼 우리의 풍부한 인적 역량을 모아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출판 분야도 외부 출판사에 일을 맡겨보면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는 것처럼, 문화 예술 분야에서도 정토회만의 역량을 가지고 우리만이 할 수 있는 것을 만들어가야 합니다. 단순히 법문을 듣고 책을 펴내는 것을 넘어, 영상이나 드라마, 음악 등 다양한 문화 콘텐츠로 기획해 가야 합니다.

얼마 전 임현정 피아니스트와 대화를 나누다가, 스님이 즉문즉설을 하면 그 내용을 바탕으로 피아노 음악으로 마음을 표현하는 '즉설과 즉연의 만남'을 한번 시도해 보자고 의견을 모았습니다. 단순한 음악 공연을 넘어 교양과 예능이 가미된 새로운 형태의 문화 콘텐츠를 선보인다면 대중이 참 좋아할 것입니다.

물론 아직은 이런 시도들이 딱 맞아떨어지게 어우러지지는 않았습니다. 이것을 앞으로 어떻게 더 부드럽고 창조적으로 결합해 낼 것인가가 우리가 해결해야 할 과제입니다. 이것이 정토회 활동의 중심은 아니지만, 중요한 한 축이 될 수 있습니다.

불사를 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동안 우리가 정토회 건물을 지을 때는 문화 행사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지었습니다. 앞으로 새로운 건물을 지을 때는 문화 행사도 가능하게 다목적 용도로 설계 단계부터 고려하거나, 기존 건물을 일부 개조하는 방안도 연구해 나가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정토회 불사는 유수 스님 혼자서 도맡아 하고 있습니다. 당장 건물을 올리는 것만으로도 숨이 가쁜 사람에게 이런저런 요구까지 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무리입니다. 그러니 단순한 건축이나 불사는 재능이 있는 외부 전문가에게 맡기는 쪽으로 가고, 우리는 새로운 콘텐츠를 기획하고 창조하는 일에 에너지를 더 쏟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 부분은 구체적으로 사업을 논의하면서 더 이야기 나누어 봅시다.”

스님의 입재 법문이 끝났습니다. 스님은 서둘러 원고 교정을 보고 급한 업무 처리를 마친 후, 다시 회의에 참여하여 법사님들과 심도 있게 정토회 현안을 논의했습니다.

내일은 온종일 비가 내린다는 일기예보가 있었습니다. 비가 오면 농사 울력을 할 수 없으므로, 일정을 조정하여 오늘 늦은 오후에 농사 울력을 하기로 했습니다. 법사님들도 울력 준비를 해서 산 위 밭으로 모이기로 했습니다.

스님은 오후 5시경, 수련원을 출발해서 모내기가 끝난 논으로 가보았습니다. 줄을 맞춰서 모가 잘 심겨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모내기가 끝난 다른 논과 비교해 보니 줄이 다소 맞지 않은 부분도 보였습니다.

스님은 울력복으로 갈아입고 도구를 챙겨 산 위 밭으로 향했습니다. 지난 4월 말 도라지밭과 더덕밭의 잡초를 맨 이후 오랜만에 찾은 산 위 밭이었습니다. 그사이 풀들이 부쩍 자라 있었습니다.

“칡넝쿨을 먼저 베어 주세요. 칡넝쿨이 엉켜 있으면 예초기 날에 자꾸 걸립니다.”

도라지밭으로 넘겨 들어오는 칡넝쿨을 스님이 낫으로 끊어주었습니다. 법사님들이 예초기를 원활하게 돌릴 수 있도록 넝쿨을 먼저 제거해 준 것입니다. 그사이 법사님들은 도라지밭의 잡초를 매고 예초기 작업을 이어갔습니다.

스님은 아랫단에 있는 더덕밭으로 향했습니다. 더덕밭은 햇볕이 잘 들어서 쑥이 무성하게 자라 있었습니다. 스님은 낫으로 쑥을 채취하기 시작했습니다. 4월보다 쑥이 자라 억센 부분이 있었기에, 스님은 쑥의 부드러운 끝부분만 잡고 낫으로 톡톡 끊어내었습니다. 연둣빛 쑥이 콘티 상자에 금세 가득 찼습니다.

스님은 산기슭의 잘라낸 칡넝쿨들을 모아 밭 바깥으로 깔끔하게 던져 정리했습니다.

예초기를 돌리던 법사님이 예초기 작업을 중단했습니다. 칡넝쿨이 예초기 줄에 걸려서 작동하지 않자, 스님은 낫으로 예초기에 걸린 칡넝쿨을 잘라주었습니다.

울력을 시작한 지 1시간 반이 지나 잠시 휴식 시간을 가졌습니다. 울력 참으로 챙겨온 간식을 먹으며 스님과 법사님들 사이에 이야기꽃이 피었습니다. 손으로 모내기하던 시절의 이야기부터 침 치료와 건강관리에 관한 이야기까지, 대화를 나누다 보니 30분의 휴식 시간이 금방 지나갔습니다.

해가 떨어지자, 모기들이 부쩍 달려들기 시작했습니다. 가져온 간식을 정리하고 마무리 울력을 시작했습니다.

스님은 도라지밭의 남은 잡초를 매고 칡넝쿨을 마저 정리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채취한 쑥을 다듬는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내일 쑥모찌 먹을 사람은 얼른 와서 쑥 같이 다듬으세요.”

잡초 매기 작업이 끝난 법사님들이 스님의 말씀에 우르르 쑥이 담긴 콘티 상자 주변으로 모여들었습니다. 여러 명이 손을 보태니 그 많던 쑥 다듬기가 금방 끝이 났습니다. 사용한 도구들을 챙겨 밭을 내려오니 저녁 7시 30분경이 되었습니다.

스님은 울력복을 갈아입고 저녁 식사를 한 후 오늘 하루의 일과를 마무리했습니다. 내일은 공동체 법사 수련 2일 차 일정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오늘은 대중들을 위한 법문이 없었으므로, 지난 4월 신라문화원에서 진행된 즉문즉설 대화 내용을 소개하며 글을 마칩니다.

스님도 무섭거나 화가 날 때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스님도 무섭거나 화가 날 때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혹시 있다면 그럴 때는 어떻게 하시나요?”

“저도 무서운 게 있죠. 그럴 때는 ‘아, 내가 지금 무서워하고 있구나’ 하고 알아차립니다. 저도 화가 날 때가 있는데, 그럴 때는 ‘아, 내가 지금 화가 나는구나!’ 하고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나도 모르게 화를 확 내버릴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내가 화를 냈구나’ 하고 알아차리고, 곧바로 사과를 합니다. ‘제가 성질이 급해서 미안합니다’ 이렇게 하면 살아가는 데 큰 지장이 없습니다.

그런데 한 걸음 앞서, ‘아, 내가 지금 화가 나고 있구나’ 하고 알아차리면 화를 내지 않을 수 있습니다. 만약 이미 화를 내버렸다면 사과하면 됩니다. 더 나아가 수행이 깊어지면, 모든 것은 서로 다르다는 사실을 늘 놓치지 않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화 자체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정리해 보면, 화가 일어나기 전에 알아차리는 길이 있고, 화가 일어났을 때 알아차리는 길이 있고, 알아차림을 놓쳐 화를 냈다면 재빨리 사과하는 길이 있습니다. 수행은 한 가지 길만 있는 것이 아니에요.

여기에 맛있는 음식이 있는데, 먹으려는 순간 ‘거기 독약이 들었다’라는 말을 들었다고 합시다. 그러면 어떻게 하겠어요? 보통은 안 먹겠죠. 그런데 길이 하나뿐일까요? 정말 먹고 싶다면, 먹고 그 결과를 감수하는 길도 있습니다. 그 결과를 ‘과보(果報)를 받는다’라고 합니다. 그러니 과보를 받고 싶지 않다면 먹고 싶은 마음이 있어도 참아야 하고, 그래도 먹고 싶다면 먹고 그 결과를 감수하면 됩니다.

돈을 빌렸는데 채권자가 돈을 갚으라고 찾아왔다면, 원칙적으로 갚아야 합니다. 그러나 돈이 없거나 주기 싫다면 욕을 얻어먹을 각오를 해야 합니다. 돈도 갚기 싫고 욕도 먹기 싫다면 그것은 잘못된 태도입니다. 상대방이 욕을 한다면 ‘미안합니다. 욕을 해서 풀리시면 더 하셔도 됩니다’ 하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독약이 들었으니 먹지 마라’가 아닙니다. 부처님은 윤리나 도덕을 말씀하시는 분이 아니에요. ‘독약이 들었다’라는 사실을 밝혀줄 뿐입니다. 무엇을 선택하고 행할지는 내가 결정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먹고 싶은데 어떻게 안 먹어요?’ 하고 물으면, ‘그럼 드세요.’라고 답합니다. 남편이 술을 많이 마셔서 결혼 생활이 힘들다고 하면 ‘그러면 이혼하세요’라고 합니다. ‘그럼, 아이들은 어떻게 하고요?’라고 하면 ‘그럼 같이 사세요’라고 말합니다. ‘술을 마신다니까요?’ 하면 다시 ‘그러면 이혼하세요’라고 말합니다. 이런 대화를 몇 번 반복하다 보면, 남편 문제나 아이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결국 내 문제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처음 결혼할 때는 남편이 술을 안 마셨는데 지금은 변했다면, 그것이 바로 제행무상(諸行無常)입니다. 세상 모든 것은 변한다는 당연한 이치입니다. 새 차를 샀는데 흠집이 났다면 어떻게 하겠어요? 버리고 새 차를 사려니 돈이 부족하고, 결국 중고차를 사야 할 상황이에요. 그런데 급한 마음에 차를 팔고 나가 보면, 오히려 지금보다 못한 차를 살 가능성이 큽니다. 그래서 기분이 나쁘더라도 그냥 흠집 난 차를 타는 편이 나을 수도 있습니다.

남편 문제도 이와 비슷합니다. 바람을 피웠다면 화가 나서 당장 헤어지고 싶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20년을 함께 살다가 헤어지고 나서 다른 사람을 만나 보면, 오히려 남편만 한 사람도 없어서 후회하는 거예요. 이럴 때는 감정대로 결정하면 안 됩니다. 이미 상황은 변했습니다. 이 변한 상황에서 내가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가 중요합니다. 술 마시는 남편이나 바람피운 남편을 윤리나 도덕의 문제로만 볼 것이 아니라, 이 상황에서 나에게 무엇이 이로운지를 냉정하게 따져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지혜예요. 우리는 감정에 휘둘려 결정을 내리고, 나중에 후회하며 ‘구관이 명관이다’라고 말하곤 합니다.

그래서 핵심은 ‘먹지 마라’가 아닙니다. ‘독약이 들었다’라는 사실을 명확히 아는 데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먹을지 말지는 오롯이 내가 결정하는 것입니다.”

“네, 고맙습니다.”

전체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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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숙

수행은 한길만 있는것이 아니다라는 말씀 세겨봅니다
감사합니다

2026-05-28 07:19:31

오정숙

스님 명쾌하신 말씀 고맙습니다.

2026-05-28 07:17:43

최상훈

고맙습니다.

2026-05-28 06:5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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