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6.5.15. 워싱턴 D.C. 미팅 4일 차
“평생 컴퓨터 앞에서만 일해왔는데, 새로운 일을 할 수 있을까요?”

안녕하세요. 오늘은 미국 워싱턴 D.C. 미팅 4일 차로, 새벽에 온라인 즉문즉설에 참여한 것을 시작으로 온종일 4개의 미팅이 연이어 있었습니다.

스님은 새벽 5시 워싱턴 미주정토회관 법당에서 예불을 드리고 새벽 정진과 명상으로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현지 시각 오전 6시 30분, 온라인 즉문즉설을 진행하기 위해 스님은 가사와 장삼을 수하고 컴퓨터 앞에 앉았습니다.

“안녕하세요. 제가 지금 미국 워싱턴 D.C.에 와 있습니다. 오늘 즉문즉설은 방송 장비가 제대로 갖춰진 방송실에서 하는 게 아니다 보니 조명과 음향에 다소 부족함이 있습니다. 저도 노트북으로 생방송을 하니까 얼굴에 그림자가 많이 생기네요. 양해를 바랍니다.

제가 미국에 온 것은 한반도 평화를 위해 북미 관계가 좀 개선되었으면 좋겠다, 이것을 해결할 방법이 없을까 해서입니다. 물론 한미 간에 많은 현안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한반도 평화를 위해서는 북미 관계 개선이 가장 중요한 과제로 보입니다. 북한에 사는 2,500만 명 주민들이 고통에서 벗어나려면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을 허용하고, 대북 제재 중 생필품과 관련된 것들은 해제해야 합니다.

현재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개발을 막기 위해 경제 제재를 가하고는 있지만, 북한이 러시아와 군사동맹을 맺으면서 제재 효과가 유명무실해졌습니다. 결국 경제 제재가 북한 주민들의 생활만 곤궁하게 만들고 있는 셈입니다. 이런 부분들을 종합적으로 검토해서 변화된 정세에 맞게끔 북미 관계를 다시 설정해야 합니다. 미국 의회나 정부, 싱크탱크 관계자들을 만나 이런 내용의 대화를 나누고자 워싱턴 D.C.를 방문했습니다. 그리고 이번 주말에는 워싱턴 미주회관에 7년 만에 명상홀을 새로 지어 개원식을 합니다.

이곳도 5월이라 봄 날씨가 아주 좋습니다. 다만 여기도 날씨 변화가 심해서 30도까지 오르는 날이 있는가 하면, 어제는 최고기온이 15도 밑으로 떨어지고 찬 바람이 불어 겨울 같기도 했습니다. 저도 어제 길에서 찬 바람을 많이 맞았더니 감기 기운이 있네요. 날씨 변화가 심하니 모두 건강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이제 여러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스님은 여는 인사말을 마친 후 4명의 질문자와 대화를 나눴습니다. 즉문즉설 시간이 끝난 후 바로 다음 약속 장소로 이동해야 해서 현장 질문자의 질문은 더 받지 못했습니다.

스님은 외출 준비를 하고 오전 8시 20분, 워싱턴 미주정토회관을 출발했습니다. 스님은 이동하는 중에도 곧 방송 예정인 영상을 점검했습니다.

오전 8시 50분, 워싱턴 타임스(The Washington Times) 건물에 도착했습니다. 이곳에서 워싱턴 타임스 사장이자 워싱턴 타임스 홀딩스 회장인 젠킨스 박사(Dr. Michael Jenkins) 일행을 만났습니다. 작년에 만났던 카토(CATO) 연구소의 더그 밴도우(Doug Bandow) 수석 연구원도 자리를 함께했습니다. 밴도우 연구원은 미국의 대표적인 외교·안보 전문가입니다.

스님은 이 미팅에서 지난 3일간 가졌던 워싱턴 D.C. 미팅 일정의 분위기를 전하고, 현재의 북미 관계를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지에 대해 다양한 의견을 교환했습니다. 1시간 30분 동안의 미팅을 마치고 다 함께 기념 촬영을 한 후, 스님은 미팅 참석자들에게 영어책 『행복(Happiness)』과 『Why am I anxious?』를 선물하며 다음 만남을 기약하고 이동했습니다. 젠킨스 박사 일행은 건물 밖까지 나와 스님을 배웅했고, 스님이 주차장에서 차를 타고 건물 앞을 지날 때까지 지켜보며 마지막 인사를 건넸습니다.

오전 11시 30분부터는 조지메이슨 대학교(George Mason University) 안보 정책 연구소장인 엘렌 라입슨(Ellen Laipson) 교수와의 미팅을 위해 알링턴 캠퍼스(Arlington Campus)로 이동했습니다.

라입슨 교수는 미 정부 내 정보 및 외교 부처에서 약 25년 동안 근무한 경험을 바탕으로 민간 싱크탱크에서도 활발히 활동해 온 전문가입니다. 한반도 문제와 관련해 한국의 지정학적 위치와 안보 상황에도 깊은 관심이 있으며, 조지메이슨 대학교 한국 캠퍼스(인천글로벌캠퍼스)와 협력하여 안보 세미나를 열거나 한국 내 안보 전문가들과도 긴밀히 소통하고 있습니다.

스님과 라입슨 교수는 현재 북한 상황과 북미 대화를 모색하기 위한 여러 방법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을 뿐만 아니라, 오는 9월 조지메이슨 대학교 알링턴 캠퍼스에서 북한 문제를 주제로 공개 강연회를 개최하는 건에 대해서도 논의했습니다.

라입슨 교수는 학교 강당과 강의실 등 여러 장소를 스님에게 안내하며 1층의 주요 시설들을 함께 둘러보았습니다. 올 하반기 9월에 공개 강연회를 공동 개최하는 방안에 대해 긍정적으로 검토해 보기로 했습니다.

이어서 지난 5일 동안 워싱턴 D.C. 일정의 통역을 담당해 준 제이슨 씨와 근처 한인 식당으로 이동해 간단히 점심 식사를 했습니다. 스님은 식사 시간마저 쪼개어 긴급한 원고 교정을 마친 뒤에야 수저를 들었습니다. 식사를 마친 후에는 지난 5일간 통역을 맡아준 제이슨 씨에게 깊은 감사의 인사를 전했습니다.

점심 후에도 작년 10월에 취임한 주미국 강경화 대사를 만나기 위해 매사추세츠 애비뉴(Massachusetts Avenue)에 위치한 주미 한국대사관으로 향했습니다. 중간에 고속도로 진출로를 놓치는 바람에 겨우 약속 시간에 맞춰 도착하니, 현관에서 문인식 총영사와 민주평통 북미주 이재수 부의장, 민주평통 박준형 회장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안으로 들어서자, 강경화 대사가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 스님을 따뜻하게 맞아주었습니다.

스님은 강경화 대사님에게 이번 워싱턴 D.C. 방문 일정과 방문 목적을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대사님과 트럼프 2기 정부가 들어선 이후의 국제 정세 변화와 한반도 평화를 위한 북미 관계 개선 및 평화 정착을 위해 필요한 사항들에 대해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대화를 마친 후, 스님은 강경화 대사님을 비롯해 배석한 분들에게 스님의 신간 『탁! 깨달음의 대화』를 선물했습니다. 강경화 대사님은 엘리베이터 앞까지 나와 스님을 배웅하며 인사를 나눴습니다.

스님은 마지막으로 해나 김(Hannah Kim) 님를 만나기 위해 의회 근처의 한 카페로 향했습니다. 전직 찰스 랭글(Charles Rangel) 연방 하원의원의 수석 보좌관이자 백악관 부차관보를 역임한 해나 김 님는, 2008년 'Remember 727'이라는 단체를 설립해 한국전쟁 참전용사들을 기리고 추모하는 활동들에 힘써온 인물입니다. 그녀의 노력 덕분에 2009년 미국 의회에서 7월 27일을 '한국전쟁 참전용사 인정의 날'로 지정하는 연방 법안이 통과되기도 했습니다. 해나 님은 바쁜 일정 중에도 스님이 워싱턴 D.C.에 오셨다는 소식을 듣고 스님을 꼭 뵙고 싶다며 찾아왔습니다. 스님은 짧은 대화 속에서도 해나 님으로부터 신선한 아이디어를 얻기도 했습니다. 스님은 그녀에게 영어 책 『Why am I anxious?』를 선물하였습니다.

워싱턴 미주정토회관으로 돌아오니 어느덧 저녁 7시 20분이 되어 있었습니다.

마침, 오늘이 '스승의 날'이라 회관에 머물던 정토행자들이 소박하게 케이크와 꽃다발을 준비했고, '스승의 은혜' 노래를 부르며 스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스님은 감사의 뜻으로 받은 꽃다발을 풀어, 그곳에 모인 정토행자들에게 한 송이씩 다시 나누어 주었습니다. 다 함께 기념촬영을 한 후, 스님은 케이크의 촛불을 끄며 조촐한 스승의 날 행사를 마무리하고 저녁 식사를 했습니다. 식사 자리에서도 정겨운 대화가 이어졌습니다. 스님은 저녁 식사를 마친 후 하루 일과를 마쳤습니다.

내일은 워싱턴 미주회관 명상홀 개원식을 준비하고, 오후에는 국제지부 정토회원들과 함께 온라인 즉문즉설 시간을 가질 예정입니다.

오늘은 미국 시각으로 새벽에 진행되었던 온라인 즉문즉설 대화 내용 중 한 편을 소개하며 글을 마무리합니다.

평생 컴퓨터 앞에서만 일해왔는데, 새로운 일을 할 수 있을까요?

“저의 고민은 기존에 해왔던 일과는 별개로, 어떻게 다시 새로운 일을 찾아 시작해야 하느냐는 것입니다. 저는 40대 후반 남성으로 IT 업계에 종사하다가 반년째 실직 상태입니다. 업계 특성상 AI 도입으로 환경이 급변해서 저 또한 설 자리가 줄어들었고, 앞으로 더 심해질 것이라 예상합니다. 그래서 새로운 일을 찾아야 한다고 느끼고 있지만, 평생 컴퓨터 앞에서만 일해왔기 때문에 다른 일을 찾는 게 어렵게 느껴집니다. 큰 병은 없지만 관절에 문제가 있어서 육체노동을 하면 일주일 정도 소염제를 먹어야 하는 상황입니다. 현재 수입은 없고 마이너스 통장으로 생활비를 쓰고 있습니다.

프리랜서 생활이 길어 퇴직금은 없는 상태입니다. 그동안 명상을 하면서 마음을 다스려 왔고, 평온을 유지해 왔습니다. 하지만 요즘에는 현실적인 해결책이 보이지 않아 불안이 올라옵니다. 이런 상황에서 앞으로 어떻게 일을 찾아 나가야 할지 스님의 조언을 듣고 싶습니다.”

“사람은 자기가 해오던 일을 하는 것이 제일 쉽겠죠. 농민은 농사짓는 게 제일 쉽겠고, 용접하는 사람은 용접하는 것이 제일 쉬울 거예요. 또 음악하는 사람은 음악이 제일 쉽고요. 사람은 자기가 오랫동안 해온 일이 적절한 보상만 따른다면 아마도 그것이 가장 쉽다고 말할 수 있을 거예요.

하지만 보상이 너무 적어서 생활비가 안 나온다면, 그건 일 때문에 어려운 게 아니라 일의 대가가 너무 적어서 어렵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회가 빠르게 변할 때는 자기가 지금까지 배워온 전문 기술을 유용하게 쓸 기회가 없어져 버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사회가 빠르게 변하면 변할수록 이런 일이 더 많이 발생하곤 합니다.

한 200~300년 전에 내가 태어났으면 농사를 짓고 살았을 것입니다. 그때는 어릴 때부터 어른이 될 때까지 농사지을 확률이 높습니다. 이럴 때 우리는 가난하든 부자든 간에 안정된 사회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어떤 시스템이 할아버지 세대, 아버지 세대, 그리고 손자 세대까지 똑같이 유지된다면 사회가 안정되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사회가 급변한다는 것은 무엇을 말할까요? 아버지 때는 농사를 짓고 살았는데 갑자기 산업 사회가 되면서 아들은 도시에 가서 용접을 하고 운전을 하며 생활하는 경우입니다. 그럴 때 젊은 아들은 처음부터 운전이나 용접을 배우니까 별문제가 없고, 아버지도 끝까지 농사를 지으면 큰 문제가 없습니다. 하지만 아버지 세대 중에 농업 영역이 축소되면서 도시로 나와 용접이나 노동을 해야 할 상황이 된다면, 평생 해왔던 농업 기술은 쓸모가 없어지고 새로운 것을 배워서 대응해야 합니다. 또 새로운 것을 배우는 데는 자기가 지금까지 가진 지식과 경험이 그리 유리하게 작용하지 않습니다. 농사를 짓는다면 아들 세대보다 월등하게 유리하지만, 용접 기술을 배운다면 오히려 나이나 여러 측면에서 아들보다 숙련도가 떨어지게 됩니다. 그러면 생활비는 아들보다 더 많이 있어야 살아갈 수 있는데, 실질 소득은 아들보다 적게 받게 됩니다. 아들은 혼자 그 수입으로 살아가니까 저임금으로도 살 수 있지만, 부모는 배우자와 자식들을 거느리고 살아야 하니까 그 소득으로는 생활이 어렵습니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부모 세대는 도시 빈민이 되는 거예요.

여러분들은 지금 아들 세대나 손자 세대이다 보니 이런 어려움을 못 겪어봤겠지만, 나이가 70대인 저는 이런 과정을 직접 보며 자랐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전통적인 직업인 농업을 잃고 도시로 와서 빈민이 되어 어렵게 살아가는 과정을 겪었어요. 그런데 산업 사회에서는 지식과 기술이 있어야 노동 효율이 높습니다. 그래서 학교에서 지식과 기술을 가르치지요.

농업은 부모를 따라 배우며 적절한 나이가 되면 기술을 익혀 바로 일을 할 수 있지만, 산업사회는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심지어 요즘은 대학원이나 외국 유학까지 다녀와야 전문성을 갖춰 대응할 수 있어요. 교육 기간이 굉장히 길어졌죠. 그러나 지식과 기술을 가지고 직장에 들어가면서 삶이 안정적으로 이루어져 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또 디지털 사회가 되고 인공지능이 발달하면서 이것마저 바뀌었습니다. 수십 년 동안 학교 교육을 통해 배운 지식과 기술, 그동안 직장에 다니며 유용하게 썼던 기술이 아무런 쓸모없어져 버린 것입니다. 내가 해오던 직업이 없어지고, 새로운 직업을 찾기에는 지금 또 다른 기술, 지식을 익혀야 하는데, 그마저도 미래가 뚜렷하지 않은 상황에 이르렀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질문자가 지금 좀 혼란스러운 거예요. 원래 내가 가진 기술을 사용할 수 있었으면 생활이 안정적이었을 텐데, 갑자기 그게 인공지능으로 대체되면서 직업을 잃어버린 셈이 되었으니까요. 그렇다고 세상이 망하거나 하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면 저는 지도를 잘 보고 지형과 지리에 밝은 편입니다. 이것은 저에게 큰 재능이었습니다. 그러나 내비게이션이 나오면서 이런 재능이 쓸모없어졌어요. 영어를 잘하는 것이 다른 사람들과 비교했을 때 하나의 재능이었는데, 이제는 인공지능에 의한 자동 통번역이 이루어져서 영어를 잘하는 것이 특별한 재능이라고 하기가 어려워졌습니다. 또 자율주행 자동차가 나오면서 운전하는 것도 앞으로는 직업이 되기 어려운 세상이 왔다는 거예요.

그러면 나는 쓸모없는 인간이냐? 그렇지가 않습니다. 다만, 이 변화의 시기에는 지금까지 내가 가졌던 기술과 지식을 버리고, 세상에 필요한 다른 것을 할 수밖에 없다는 뜻입니다. 예전에 ‘내가 농사를 지었으면 잘 지었을 텐데….’, ‘용접했으면 잘했을 텐데….’ 이런 생각에 머물러 있으면 이제 이 사회에서 살아가기가 굉장히 어려워집니다. 시대의 변화 속에서 ‘내 일을 인공지능이 뺏어갔다’라고 하지 말고, ‘인공지능을 이용해서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이렇게 생각해야 합니다.

육체노동을 하다가 동력 에너지가 나왔을 때, 그것이 가축의 힘을 뺏어간 게 아니라 동력을 이용한 새로운 일거리가 생긴 것처럼, 컴퓨터가 나오면서 우리의 일거리를 뺏어간 게 아니라 그걸 이용한 다른 일거리가 생긴 것처럼, 우리는 자꾸 역할을 바꿔 갈 수밖에 없습니다. 내비게이션이 없을 때는 지리를 잘 아는 것만으로도 큰 장점이었지만, 이제는 장점이 아니라는 것이죠. 대신 내비게이션을 이용해서 어떤 일을 할 수 있을지를 찾거나, 자율주행 자동차를 가지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합니다. ‘내가 운전을 잘했는데 운전하는 일이 없어졌다.’ 하고 자꾸 아쉬워하지 말고, 관점을 바꾸어야 합니다. 소득도 자꾸 예전 기준으로 생각해서 ‘절반밖에 안 된다.’, ‘70%밖에 안 된다.’ 하지 말고, 현실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하면서 그 소득으로 살아가야 하지 않겠나 싶습니다.

기술의 발달로 지금까지 있었던 많은 직업군이 없어지는 대신, 새로운 요구 또한 굉장히 늘어나고 있어요. 사회에서 꼭 필요한데 사람이 없어서 못 하는 일도 많습니다. 그래서 외국에서 노동자를 데려와서 일하게 하기도 합니다. 시골에 가보면 그런 일들이 산적해 있습니다.

그러니 질문자는 상황을 너무 막막하게만 생각하지 말고, 내가 가진 기존의 기술만 고집하지도 말고, 이 변화된 사회에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겠느냐? 어떤 필요한 일들이 있느냐?’ 하는 관점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예전 월급과 너무 비교하지 말고,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 또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나가는 게 필요해 보입니다. 관점을 그렇게 전환해 보시기 바랍니다.”

“네, 알겠습니다. 스님, 고맙습니다.”

전체댓글 6

0/200

하니

고맙습니다

2026-05-18 07:04:27

정태식

“제가 미국에 온 것은 한반도 평화를 위해 북미 관계가 좀 개선되었으면 좋겠다, 이것을 해결할 방법이 없을까 해서입니다.
북한에 사는 2,500만 명 주민들이 고통에서 벗어나려면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을 허용하고, 대북 제재 중 생필품과 관련된 것들은 해제해야 합니다.”
-
스님께서는 2500만 북한 주민까지 걱정하시니 나의 문제는 내가 해결하겠습니다.

2026-05-18 06:55:06

구자정

고맙습니다.

2026-05-18 06:44:53

전체 댓글 보기

스님의하루 최신글

목록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