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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치료와 외부 일정으로 하루를 보냈습니다.

스님은 새벽 수행과 명상으로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오전에는 치료와 휴식을 하였습니다.

오후에는 (재)여해와 함께 정담회가 수유리 ‘더숲아카데미’에서 열렸습니다. 낮 12시 30분부터 시작되는 정담회는 (재)여해와 함께 고문, 이사, 감사 정담회였습니다.

여해 강원용 목사님은 기독교 사회운동의 선구자이시자 경동교회 창립자입니다. 스님은 20대 중반에 크리스천아카데미에서 진행하는 농민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강원용 목사님을 처음 만났고, 이후 강원용 목사님과 한반도 평화를 위해 함께 활동했습니다. 정토회 창립 10주년 행사 때는 강원용 목사님을 모셔서 기념 특강을 듣기도 했습니다.

오늘 정담회는 스님이 고문으로 참석한 정담회였습니다. 정담회 참석자들과 함께 식사하며 여러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20여 년간 멈춰있던 수유리 크리스천아카데미가 더숲아카데미로 새롭게 단장하게 되었고, 새출발을 기념하며 재단법인 여해와 함께 임원진들이 만나는 정담회였습니다.


새롭게 단장한 더숲아카데미 곳곳을 탁무권 대표의 안내로 함께 둘러보았습니다.


더숲아카데미 곳곳에 있는 강원용 목사님의 기록들을 보며 50년 전 스님이 크리스천아카데미에 처음 참여했던 기억도 떠올리고 함께 나누는 시간이었습니다.

정담회에 함께한 분들과 함께 여해 강원용 목사님의 뜻을 이어받아 새로운 내일의 문을 여는 뜻깊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스님은 시내에서 또 다른 미팅이 있어서 정담회 이후 더숲아카데미의 일부분만 둘러보고 먼저 나왔습니다.

외부 미팅 후에는 이홍구 전 국무총리 장례식장에 들러 조문을 했습니다. 장례식장에서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님, 이부영 전 국회의원님을 만나 한반도 평화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스님이 정토회관으로 돌아오자 인도JTS 사무국장인 보광 법사님이 내일 인도로 출국을 앞두고 스님께 인사를 드리러 왔습니다. 정토회관 1층에서 보광 법사님은 스님께 삼배로 인사를 드렸습니다. 스님은 인도JTS 사업에 대한 몇 가지 조언을 해 주었습니다.
스님은 저녁 식사 후에 업무를 보고 하루 일과를 마무리했습니다. 내일은 아침에 조찬 모임이 있고, 저녁에는 정부세종청사 대강당에서 즉문즉설 강연이 있을 예정입니다.
오늘은 법문이 없었으므로, 지난 4월 있었던 즉문즉설의 대화 내용을 소개하며 글을 마무리합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사람들에게 사랑이나 인정을 많이 받고 싶었는데, 그게 잘 안되어서 고민입니다. 늘 사람들로부터 제가 기대하지 않았던 반응이 돌아와서 아주 힘들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이게 결국 모두 제 탓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 나름대로 자신을 바꾸어 보려고 열심히 노력했지만, 시간이 지나면 다시 원래대로 돌아오는 현실이 너무 힘들었습니다. 이런 괴로움을 없애는 방법이 궁금합니다
“질문자는 반대로 다른 사람들을 인정하거나 사랑합니까?”
“많이 노력하는 편입니다.”
“만약 오늘 이 자리에 오신 청중에게 제가 ‘오늘 저 좀 잘 봐주세요.’라고 한다면, 청중이 저를 좋게 봐주실까요? 아니면 저마다 자기 취향대로 평가할까요?”
“모두 자기 취향대로 평가할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질문자는 각자 다 자기 취향대로 평가하는 사람들에게 ‘그러지 말고, 저 좀 좋게 봐주세요.’ 하고 독재자 같은 마음을 부리는 것 아닌가요?”
“네, 맞습니다.”
“결국 질문자는 타인에게 사랑과 인정을 받고 싶지만, 그런 반응이 오지 않아 괴롭다는 얘기지요?”
“네. 저도 그걸 깨닫고 그러지 않으려고 노력하는데, 제 마음이 계속 그렇게 가더라고요.”
“그렇다면 계속 괴로워할 수밖에 없죠.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질문자의 얘기는 앞서 질문하신 분의 얘기와 같아요. 질문자가 맛있어 보이는 음식을 앞에 발견했는데, 부처님께서는 거기에 독이 들었다고 말씀하세요. 그러면 그걸 먹어야 합니까, 아니면 먹지 말아야 합니까?”
“먹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지요. 그런데 길이 하나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안 먹고 사는 길이 있고, 죽어도 괜찮다면 먹고 죽는 길도 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은 ‘먹으면 안 될 것 같은데, 그래도 먹고 싶어요’, ‘조금만 먹으면 안 될까요? 그래도 죽나요?’ 이렇게 말해요. 저는 이런 분들께 ‘그걸 먹으면 죽습니다.’라는 사실만 말씀드릴 뿐이에요. 그렇게 미련이 생긴다면, 먹고 죽는 결과를 받아들이면 된다고 말씀드리는 거예요. ‘그 음식에는 독이 있으니, 먹으면 안 됩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부처님의 원래 가르침이 아닙니다. 부처님은 그저 ‘그 음식에 독이 들었다.’라는 사실만 알려 주신 분입니다. 선택은 각자의 몫이에요. 제가 즉문즉설에서 드리는 말씀도 ‘거기에는 독이 들어 있습니다.’라는 사실뿐입니다. 그래도 질문자들이 ‘저도 그건 아는데, 너무 먹고 싶습니다. 무슨 방법이 없을까요?’라고 물으면 제가 달리 드릴 말씀이 없어요. 저는 그저 ‘그걸 먹으면 죽습니다. 죽기 싫으면 먹지 않으면 됩니다.’라고 말씀드릴 뿐이고, 선택은 질문자의 몫으로 남는 거예요.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지금 질문자는 뜨거운 불덩이를 손에 쥐고 ‘뜨겁다’고 하면서도 놓지 않는 상태와 같습니다. 제가 놓으라고 말씀드려도, ‘놓는 방법이 없을까요?’ 하고 되묻는 것과 같아요. 뜨거우면 ‘앗, 뜨거워!’하면서 그냥 내려놓으면 됩니다. 그런데 뜨겁다고 하면서도 계속 쥐고 있다는 것은 질문자가 아직 견딜 만하다는 걸 말해 줍니다. 결국 핵심은 ‘갖고 싶다’는 마음이지요. 갖고는 싶지만, 손 데지 않는 방법에 관해 묻고 있는 거예요. 보통 종교에서는 ‘그런 방법이 있다.’라고 말합니다. 하느님이나 부처님 같은 절대 신에게 간절히 기도하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그런데 저는 그런 방법은 없다고 말씀드려요. ‘쥐면 손을 데는 결과가 따르고, 놓으면 괜찮아집니다.’ 이런 사실만 말씀드릴 뿐이에요. 선택은 질문자의 몫이고, 그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 문제는 방법의 문제가 아니라 욕심의 문제입니다. 돈을 빌리고 싶지만 되갚고 싶지는 않은 마음과 같다고 말할 수 있어요. ‘부처님, 돈이 필요해서 빌리고 싶은데, 갚지 않아도 되는 방법 좀 알려 주세요.’라고 묻는 것과 같습니다.
만약 나쁜 일을 하면 지옥에 간다는 진리가 있다면, 나쁜 일을 하고도 지옥에 가지 않으려는 것은 이치에 어긋난 행동입니다. 부처님은 이런 이치나 사실만을 말씀하셨을 뿐 허황한 얘기를 하신 분이 아닙니다. ‘부처님, 공부하지 않고도 일류대학에 가는 비법 좀 알려 주세요.’라는 소원을 들어주신다면, 그것은 곧 부처님이 불법 입시를 알선하는 사람이 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부처님의 가르침에 비추어 보면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믿는 어떤 신이나, 특별한 능력을 갖춘 부처님에 대한 믿음은 결국 이런 욕망에서 비롯된 신앙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소원을 이루어 주는 힘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이렇게 여러 가지 비유를 들며 말씀드린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 욕심을 내려놓아야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가수가 신곡을 발표하며 대중의 사랑을 바란다 해도 대중이 무조건 좋아해 주지는 않아요. 어느 정치인이 선거에서 당선되고 싶다고 해서 사람들이 모두 그를 찍어주는 것은 아닙니다. 결국 사람들은 각자의 취향에 따라 반응해요. 좋으면 열광하고, 싫으면 무관심하거나 혐오할 것입니다. 그것은 그들의 바람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 대중 개개인의 기준에 따라 결정될 뿐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오신 청중 한분 한분도 모두 각자 그런 결정권을 가지고 있는 겁니다. 제가 ‘오늘 저 좀 잘 봐주십시오.’라고 한다고 해서 좋게 봐주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잘 보일 만한 일을 해야 잘 봐주는 것이죠.”
“네. 동의가 되는 것 같습니다.”
“세상은 내 바람대로 나를 봐주지 않습니다. 각자 저마다 결정할 뿐이에요. 그래서 인생은 다른 사람의 평가에 연연하지 않고, 자기 나름대로 살아가면 됩니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든 그것은 그들의 인생이고, 나는 내 인생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스님, 너무 훌륭하십니다. 너무 좋아해요!’ 하며 저를 보고 열광하는 분들은 제가 그들의 기호에 맞아서 그럴 뿐입니다. 좋은 감정에 빠져서 나오는 반응이고, 어떻게 보면 어리석음에 빠진 상태라고도 말할 수 있어요. 상대가 나를 좋게 봐준다고 해서 내가 실제로 더 훌륭한 존재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반대로 사람들이 저를 비난한다고 해도 제가 꼭 나쁜 일을 해서 그런 것도 아닙니다. 그들의 기준에서 제가 나빠 보이기도 하고 좋아 보이기도 할 뿐입니다. 예를 들어 제가 굶주리는 북한 주민들에 인도적 지원을 할 때도 어떤 분들은 ‘스님, 좋은 일 하시네요.’ 하면서 좋게 봐주는 사람도 있지만, ‘그 스님 미쳤네! 북한이 그렇게 좋으면 북한에 가세요.’ 하고 부정적으로 보는 분들도 많습니다. 이렇게 같은 일을 두고도 평가는 사람마다 다릅니다. 각자 자기 좋은 대로 반응할 뿐이에요. 그래서 질문자도 남의 평가에 그렇게 신경 쓰며 살 필요가 없습니다. 질문자는 ‘질문자의 인생을 살아가면 된다.’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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