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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전에는 종교인 모임과 수행법회, 오후에는 미팅과 청암재단의 시상식, 저녁에는 설법전에서 수행법회가 있었습니다.
오늘은 한 달에 한 번 있는 ‘민족의 화해와 평화를 위한 종교인 모임’이 있는 날입니다. 스님은 정토사회문화회관 지하 식당에서 종교인들을 만나 아침 식사를 함께했습니다.

봄철 식재료가 가득한 한 끼 밥상을 평화재단 실무자와 봉사자가 정성껏 차렸습니다. 식사 후에는 회의실로 이동하여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6월에 있을 스리랑카 방문 프로그램에 대한 세세한 점검과 브리핑이 있었습니다. 프로그램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스리랑카에 대한 인구, 면적부터 시작해서 방문하려는 지역의 종교적, 민족적인 갈등 사항, 스님이 구호 활동을 했던 지역의 상황들에 대해서 자세하게 이야기가 오갔습니다. 스리랑카는 영국 식민지의 역사가 있습니다. 현재 종교적, 민족적 갈등 사항들과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개헌에 대한 종교인들, 정치인들의 이야기도 나눴습니다. 민족의 화해와 평화를 위해 활동하고 있는 종교인들이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것은 여야의 화합과 협치인데, 지금 시기에 개헌하는 것이 화합과 협치를 하는 것에 도움이 되는지, 시기나 활동 내용에 대해서 종교인 분들은 깊이 있게 논의했습니다.

최근 스님의 근황, 종교인분들의 근황을 나누다가 스님은 통영, 경주, 부산 지역으로 즉문즉설을 다녀온 이야기도 나누었습니다. 통영은 2020년 6월 종교인 모임에서 윤이상 선생의 생가와 기념관을 다녀온 곳이라 반갑게 소식을 들었습니다. 나이가 더 들어서 휠체어를 타기 전에 통영에 갔던 것처럼 종교인 모임에서 의미 있는 지역을 한번 가보자고 가벼운 제안이 나왔고, 가면 좋을 만한 장소도 나왔습니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갈 예정이 있는 김홍진 신부님이 다음에 산티아고를 같이 가보자고 제안해 주었습니다.

종교인 모임에서는 다음 모임의 일정을 확인하고 모임을 마쳤습니다. 스님은 종교인 분들을 1층까지 배웅하고 사무실로 돌아와서 간단하게 업무 체크를 하고 오전 10시 수행법회가 있어서 설법전으로 향했습니다.

매주 수요일, 정토회원들이 자신의 수행을 점검하고 스님께 질문하면서 수행적 관점을 바로 잡는 수행법회가 열리는 날입니다. 온라인으로, 전국적으로 참여하고 있으며 3층 설법전에는 170여 명의 대중들이 모였습니다. 오전 10시가 되자 삼귀의와 반야심경을 낭독하고 수행법회를 시작했습니다. ‘주간 정토행자’ 영상을 통해 각 으뜸절과 실천장소에서 진행된 정토행자들의 활동을 보았습니다.

대중들은 청법가와 청법 삼배로 스님께 법문을 청했습니다.

“4월 중순을 지나면서 아침저녁으로는 아직 쌀쌀한 기운이 남아 있지만 한낮에는 기온이 30도 가까이 올라 마치 여름 같은 봄날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벚꽃이 지고 난 요즘에는 철쭉 계열의 여러 꽃이 한창 피어나며 계절의 아름다움을 더하고 있습니다. 산에는 여러 가지 나물이 올라오는 이 좋은 봄날에 자연의 기운을 마음껏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이제 곧 5월이 다가옵니다. 5월에는 다양한 기념일이 이어집니다. 5월 1일은 노동절, 5월 5일은 어린이날, 5월 8일은 어버이날, 그리고 5월 15일은 스승의 날입니다. 올해는 부처님 오신 날이 5월 24일로, 예년에 비해 다소 늦어 5월의 마지막 기념일이 됩니다. 우리는 부처님 오신 날을 기념하여 등불을 밝히고, 어려운 이웃을 돕고, 전통적인 연등놀이와 연등 행렬을 진행합니다. 최근에는 문화 콘텐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우리 전통문화가 젊은 세대와 외국인들에게도 큰 호응을 얻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사찰의 연등 달기나 연등 행렬이 주로 어르신들의 행사로 여겨졌다면, 이제는 오히려 젊은이들과 외국인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즐기는 문화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부처님 오신 날의 연등 행렬은 더 이상 불교 신자들만의 행사가 아니라, 시민 모두가 함께 나누고 즐길 수 있는 열린 문화 행사로 자리매김해 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이런 좋은 봄날에 우리는 부지런히 수행 정진해야 합니다. 정토회 회원은 일주일에 한 번 수행법회에서 법문을 듣고 나누기하며 자신의 상태를 점검하고 수행 정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최근 수행법회의 나누기하는 방식이 정형화되면서 깊이 있는 대화와 새로운 배움이 부족하다는 평가가 있었습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주제를 정해 법문하는 방안도 검토했지만, 신규 회원들에게는 어렵다는 의견이 제기되었습니다. 신규 회원들도 부담 없이 참여할 수 있도록 운영하다 보니, 기존 회원들 사이에서는 내용이 반복된다는 느낌과 함께 흥미가 떨어진다는 반응도 나타났습니다. 이러한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법회를 주관하는 법사님들께서 다양한 연구를 거쳐 5월부터는 각자 수행 과제를 정하고 이를 바탕으로 더욱 깊이 있는 나누기를 하는 방식으로 수행법회를 변경하여 시행할 예정입니다.

이에 오늘은 자기 수행 과제를 정하는 방법에 대해 안내해 드리고자 합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모든 행위의 바탕은 ‘까르마’입니다. 까르마는 마치 컴퓨터에 설치된 애플리케이션과 같아서, 어떤 프로그램이 깔려 있느냐에 따라 외부에서 들어오는 정보에 대한 반응이 달라집니다. 우리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 맡고, 혀로 맛보고, 몸으로 감촉을 느끼고, 머리로 생각합니다. 이때 외부 자극이 자신의 까르마를 자극하면 그에 따른 반응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같은 대상을 보고도 어떤 사람은 기분이 나빠지고, 어떤 사람은 기분이 좋아집니다. 같은 행동을 보더라도 누군가는 그것을 긍정적으로 보고, 다른 누군가는 부정적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흔히 ‘상대가 그런 행동을 했기 때문에 내가 이렇게 느낀다’라고 생각하며, 자신의 주관을 객관적인 사실처럼 여깁니다. 불교에서는 이를 ‘상을 짓는다’라고 표현합니다. 다른 말로는 ‘착각’이라고 합니다.
다만 내가 그렇게 느끼는 것일 뿐입니다. 각자의 까르마가 다르므로, 동일한 상황에서도 서로 다르게 느끼고, 다르게 판단하며,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마음이 일어납니다. 이러한 반응의 바탕이 되는 것이 바로 ‘까르마’입니다. 즉, 상황이나 대상에 따라 우리의 마음이 달라지기도 하지만, 같은 상황이라도 누가 보느냐에 따라 호불호는 달라집니다. 동일한 상황에서 느끼는 반응이 서로 다른 것은 각자의 까르마가 다르기 때문이며, 같은 사람이라도 상황이 바뀌면 느낌이 달라지는 것은 상황의 변화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어떤 대상을 보고 느끼고 판단할 때 그것이 상황에 의해 일어나기도 하고 동시에 자신의 까르마에 의해 영향받기도 한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모든 감정이 상황 때문에 생긴다고 착각합니다. 실제로는 나의 까르마에 의해 일어나는 것임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지금 일어나는 감정과 판단, 생각은 나의 감정이고 나의 판단이고 나의 생각일 뿐입니다. 예를 들어, 내가 어떤 사람을 보고 호감이 생겼다면 그것은 그 사람이 객관적으로 좋은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내가 보기에 좋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즉, 나에게 호감으로 다가오는 것입니다. 반대로 비호감이 든다면 그 사람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다만 내가 그렇게 느낄 뿐입니다. 음식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음식은 맛있다’라고 하기보다 ‘이 음식은 내 입맛에 맞는다’ 혹은‘이 음식은 내 입맛에 맞지 않는다’하고 봐야 합니다.
‘법륜스님이 이렇게 말하더라.’가 아니라 ‘내 귀에는 이렇게 들렸다’ 이렇게 말하는 게 더 정확한 표현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음식 맛있더라. 그 사람 좋은 사람이더라. 법륜스님이 이런 말 했어.’ 우리는 거의 다 이렇게 생각하고 말합니다. 즉, 자기가 느낀 것을 객관화시킵니다. 그래서 내가 맛있다고 한 것은 음식이 맛있는 것이고, 내가 맛없다고 하는 것은 음식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사실이라기보다는 우리가 이런 착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근데 사실은 어떤가? 음식 자체는 그냥 음식인데 이것이 내 입맛에 맞고, 이것은 내 입맛에 안 맞고, 사람은 그냥 사람인데, 내가 보기에 이 사람은 좋아 보이고, 내가 보기에 저 사람은 안 좋아 보인다. 이게 보다 더 사실에 가깝습니다. 이렇게 사실을 봐야 내가 타인을 탓하지 않게 되고 상황을 탓하지 않게 됩니다. 그 상황에서, 내가 그 사람에게 어떻게 할까 하는 것은 상대의 문제가 아니라 나의 문제입니다.

그래서 나의 까르마, 업식에 자극이 갔을 때, 특히 부정적인 반응이 많이 일어납니다. 이런 문제가 자꾸 반복적일 때, 업식에 대한 앱을 바꿔야 합니다. 일부 고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근데 첫 번째가 고치기 전에 '내가 그렇게 느낀다' 라는 관점을 먼저 가져야 합니다. 그런 줄 알고 이 업식에는 이렇게 느껴지는 줄 알면 생긴 대로 사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럴 때는 과보를 받아야합니다.
둘째 그 과보가 너무 나한테 고통이고 피해가 크면 업식을 좀 바꿔야 합니다. 모든 걸 다 바꿔야 하는 게 아닙니다. 그럼, 수행이라는 건 뭐냐? 바꾸는 것만 수행이 아니라 받아들이는 것도 수행입니다. 돈을 빌릴 거냐 말 거냐 이게 아니라 돈을 빌렸으면 이자 쳐서 갚는 과보를 기꺼이 받는 거고, 그것이 싫으면 내가 어렵더라도 돈을 빌리지 말아야 합니다. 인연을 짓지 말아야 한다. 인연을 지었으면 과보를 받아야 합니다. 이런 이치, 이런 원리가 여러분들이 읽는 수행문에 분명히 들어가 있습니다. 우리가 수행문을 자꾸 읽는 건 이 관점을 놓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수행문을 아무 생각 없이 읽습니다. 뜻도 모르고 읽은 사람처럼 그냥 읽고만 있습니다.' 모든 것은 내가 느끼는 나의 문제다.' 이렇게 분명히 써놨는데도 아침에 수행문을 읽는 것은 그냥 읽고, 일상에서 일어나는 반응에는 '네가 문제다.' 이렇게 늘 하고 있습니다. (청중 웃음) 그래서 법문을 듣고 ‘오늘 스님 법문 좋았다, 오늘 그 사람 즉문즉설 내용 듣고 감동했다.’ 이렇게 나누기 하는 것도 좋지만 내가 이번 일주일 동안 생활하면서 나는 무엇을 과제로 잡고 정진했는지, 그런 과정에서 어떤 성과가 있었는지 이것을 중심에 두고 수행법회 나누기를 해보자는 것이 수행법회 개편의 목표입니다.
일상에서 나는 직장, 인간 관계, 건강에서 다 고만고만한데 이것이 특별히 더 나한테 문제다라는 것을 수행 과제로 삼습니다. 모든 상황에 내가 느끼는 것이고 내가 생각하는 것이다, 이런 관점을 가져야 합니다.
남편을 수행 과제로 삼으면, 남편과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불편함도 내가 느끼는 내 까르마이고, 그 불편함을 느낄 때마다 '내가 느끼는 거다.' 그 사람은 그냥 그 사람일 뿐이다. 저 말 저 행동에 내 업식이 부정적으로 반응한다는 관점이 명확해야 합니다. 첫째, 이것을 자각하기. 그래서 ‘내가 그렇게 느끼는 거지, 그 사람은 그럴 뿐이다. 나와 다른 것을 인정하고 존중한다.’ 이런 얘기가 되겠죠. 더 나아가서는 ‘내 까르마가 그렇게 반응할 뿐이지, 그 사람의 업식에서는 그렇게 반응할 수밖에 없겠다, 그렇게 말하고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겠구나’하고 이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상대를 이해하게 되면 짜증도 덜 나고 화가 좀 덜 납니다.
이렇게 과제를 정하면 남편의 행위는 다만 행위일 뿐이다, 내가 그것을 부정적으로 보는 것이구나, 내 기준에서는 깔끔해야 한다고 보니 남편이 문제로 보이는 것이구나, 남편은 그냥 그렇게 말하고, 그냥 그렇게 행동할 뿐이구나 이렇게 이해하게 됩니다.
종교적으로 기도한다면 ‘우리 남편은 부처입니다.’ 이렇게 기도하면 됩니다. 이 말은 우리 남편의 행위나 말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부처님을 문제가 없다고 보듯이 우리 남편이 부처님처럼 훌륭한 사람이라는 것이 아니라, 남편을, 있는 그대로 본다는 것입니다. 붓다라는 것은 사실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내가 화를 내도 이건 내 문제구나, 저 사람이 문제가 있는 게 아니구나, 그 사람으로서는 그럴 수 있습니다.
내가 그 사람의 행위에 분별심이 일어나지 않는 원칙, 분별심이 일어난 다음에는 이 분별심은 상대의 문제가 아니라 나의 문제라는 것을 자각할 수 있는 기준을 정합니다. ‘남편은 부처님입니다.’라는 기도문 또는 수행문을 정하고 이것을 명심하며 일상에서 생활합니다. 수행 과제를 명심하고 있으면, 남편의 행위를 봐도 첫째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그렇구나!' 하게 됩니다. 두 번째 수행 과제를 내가 깜빡 놓치면 짜증이 납니다. 짜증이 나는 나를 봅니다. '어 내가 놓쳤구나' 하고 알아차립니다. 그러면 짜증이 사라집니다. 나도 모르게 화를 내버려서 상대가 ‘당신 왜 그래요?’ 말하면, 내가 놓친 것을 자각하게 되고, 자각하면 ‘아 여보 미안해. 내 성질이 그랬어.’ 이렇게 말하며 사과하게 됩니다.

이렇게 수행이 되도록 저희가 계속 해 보는 거예요. 100일 동안 해 보고 한 50%로 개선됐다. 그러면, 다음 100일간 더 해 보고, 그러면 70%로 개선됐다. 이렇게 변화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다 보면 이제 남편은 편하게 보이는데 매일 게임하는 애가 딱 보기 싫구나 하면 다음에는 애를 수행 과제로 삼아서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나의 수행 과제를 정해서 수행법회 때 나누기를 좀 해 보자 하는 것이 이번 수행법회의 개편안입니다. 의미가 전달됐습니까?
수행 과제를 정하고 대상을 정하고, 거기에 나의 문제 그 사람과 그 일과의 관계에서 내가 부정적으로 반응하는 이것을 수행 과제로 정하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하나의 문장, 기도문 혹은 명심문을 만들어 봅니다. '화 안 내겠습니다.' 이러면 수행문이 아니에요. 이것은 각오와 결심입니다. 화를 안 내겠다고 해 놓고, 내가 자꾸 화를 내면 결국 나는 안 된다는 생각에 자기를 자학하게 됩니다. 자기 수행문을 만들려면 '화나지 않습니다.' '화날 일이 없습니다.' 이렇게 정해야 합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자꾸 화가 납니다. 각오, 결심의 문제가 아니라, 알아차림의 문제입니다. '어! 놓쳤구나! 알아차려야지, 놓쳤구나! 알아차려야지' 이렇게만 하면 되는데 이것은 나를 자학하는 것이 아닙니다. 처음부터 잘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연습이 필요합니다. 수행 과제를 정하고 연습한 결과를 법회 나누기할 때 간단하게 나누기하고, 이렇게 해 보자는 것입니다. 이번 100일 기도 개인 약속 중에 ‘나의 수행 과제를 정해서 실천하기’가 들어 있지요? 변화된 수행 법회를 통해서 조금 더 자기 수행 과제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한번 해 보겠습니다.”

스님은 새롭게 시행될 수행법회 나누기에 대해서 자세하게 법문해 주었습니다. 이후 사전 신청자 1명과 현장 질문자 1명과 대화를 나누는 즉문즉설이 있었습니다.

수행법회 법문을 마치고, 스님은 2층 쉼터로 갔습니다. 올해 100세인 정토회원 박정심 보살님과 70대인 따님, 자재 법사님, 선광 법사님이 쉼터에서 스님을 만나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박정심 보살님은 황반변성으로 형체만 겨우 보이는 정도의 시력이라고 했습니다. 스님 목소리가 들리자, 박정심 보살님이 노구를 일으키며 스님 손을 꼭 잡았습니다.

“스님, 진짜 반갑습니다. 제가 행복한 사람입니다. 여기 왔다가 법륜스님도 뵙고. 정말 행복해요.”
오래전에 같이 활동했던 보살님들의 이름과 나이가 나왔습니다. 정토회 초기 법당을 내 집처럼 마련하고 운영해 왔던 연화회 보살님들의 소식들을 나누었습니다. 스님과 연화회 회원들은 2018년도에 경주로 나들이를 간 적이 있습니다. 그때 이후에는 코로나로 만나지 못했고, 그 사이에 건강이 좋지 않아서 운명하신 분도 있고, 요양원에 가셔서 요양 중인 보살님도 있다는 소식을 나누었습니다.
“우리가 90세 넘으면, 스님이 만들어 주신 집에서 모여서 오순도순 살 줄 알았어요. 그런데 이제는 죽어도 그런 꿈도 못 꿔요. 스님이 우리들 모여 살자고 초창기 때 그러셨어요. 나이가 들어서 한분 두분 돌아가셔도 모른척 하시는 것 같아요.”
자재 법사님의 말씀에 박정심 보살님이 나지막이 답했습니다.
“나는 눈만 밝으면 지금 뭐든지 할 것 같아.”
“10년 전에 이미 유수스님한테 보살님들과 같이 살 집 지으라고 했지요.”
“스님이 유수스님한테 다른 지시를 더 많이 주는데, 우리는 안전에도 없겠지요. 40년도 넘었는데 언제 만드실래요? 우리 죽으면 만드실래요?”
“저래 놓고 만들어 놓으면 안 오시려고요?”
자재법사님과 스님의 대화에, 옆에 있던 법사님들은 빙긋이 미소를 지었습니다. 박정심 보살님은 눈이 잘 보이지 않은 상태에서 스님 목소리를 들으며 연신 나지막이 말했습니다.
“아유 반갑습니다. 제가 너무너무 행복한 사람이에요.”
“우리 정토회 회원 중 백 세는 처음입니다. 정토불교대학 제일 고령자가 부산의 80대에 졸업하셨는데, 이제는 보살님이 100세 기록을 세우시네요. 10월에 날짜 한번 잡아 보세요. 옛날에는 버스 대절해서 여행도 갔었는데, 그러기에는 너무 힘드시니 여기 모여서 잔치 한번 합시다. 따님 집에 내려갔다가 건강히 잘 지내시고, 10월에 여기로 잔치하러 오세요. 제가 모실게요. ”
“안 죽으면 오는 것이고요. 아이고…. 그때까지 살면 어떻게 해요?”

스님은 박정심 보살님과 따님에게 책을 선물하고, 같이 기념 촬영을 했습니다. 10월에 꼭 다시 만나자고 인사하고 스님은 지하 식당 1층으로 점심 식사를 하러 갔습니다.

스님은 점심 식사 후에 사무실로 와서 업무 점검을 하고 회의를 했습니다.

오후 3시 30분, 스님은 포스코청암상 시상식에 참석하기 위해서 회관을 출발했습니다.

강남구에 있는 포스코센터에서 제20차 포스코청암상 시상식이 열렸습니다.

스님은 2011년 제5회 포스코청암상 시상식에서 아시아 소외 지역의 빈민 구제와 어린이 교육, 기아·질병·문맹 퇴치에 헌신하여 인류애를 실천한 공로를 인정받아 봉사 부분 상을 받았습니다. 이번 시상식은 역대 수상자로 초청받아서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행사장에 도착하고 등록을 마치자, 포스코청암상 역대 수상자들과 올해 수상자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 있었습니다. 스님은 천천히 둘러보며, 행사에 참여한 다양한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스님을 먼저 알아보고 인사하러 오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오후 4시 30분부터 시상식이 열렸습니다. 스님은 수상자들을 소개하는 영상을 관심 있게 보고, 수상자들이 상을 받을 때, 수상 소감을 발표할 때 축하의 박수를 보냈습니다. 시상식이 끝나자, 행사장은 만찬이 시작되는 시간이었지만, 스님은 저녁 법회 일정이 있어서 주변 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먼저 행사장을 나왔습니다.
정토사회문화회관에 도착하자, 스님은 지하 식당으로 가서 간단하게 저녁 식사를 했습니다.

저녁 7시 30분이 되자 설법전에서 저녁 수행법회가 시작되었습니다. 대중들 100여 명이 삼귀의와 반야심경을 봉독하고, 스님께 청법가와 삼배로 법을 청했습니다. 스님은 앞으로 개편될 수행법회의 나누기 방식에 대해서 자세하게 법문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온라인으로 2명의 질문자와 대화를 나눴습니다. 그중에서 1명의 대화를 소개합니다.
"제 질문은 마음 연습에 관한 질문입니다. 내 생각만이 옳은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것을 상대방에게 강요하지 않고, 어떤 상도 짓지 말고, 그대로 받아들이는 연습을 꾸준히 하고 있지만, 여전히 가끔 걸리는 부분이 있습니다. 이럴 때는 어떻게 마음을 가져야 하는지 여쭙고자 합니다.
자녀 교육에 대한 것으로 아이에게 언제 휴대전화를 사주어야 하는가에 대한 입장이 아내와 다릅니다. 저는 휴대전화를 최대한 늦게 사주는 것이 좋다는 입장인 반면, 제 아내는 다른 아이들이 대부분 휴대전화를 가지고 있고 연락하기 편하니 지금 휴대전화가 필요하다는 입장입니다. 아이들의 미래와 연관된 부분에서는 제 생각이 옳지 않을 수 있다는 것과 마찬가지로 아내의 생각 또한 옳지 않을 수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자녀 교육과 관련해서 엄마가 책임을 지고 전적으로 진행시키며, 남편은 관여하지 않고 다만 경제적으로 부족함이 없도록 지원만 하라고 배웠던 것 같습니다. 아내를 설득하려고 시도했지만, 실패했습니다. 이렇게 자녀 교육에 대한 부분에서 불편한 마음이 올라올 때 어떻게 내려놓으면 되는지요?”

“자기 생각이 틀릴 수 있다고 해놓고, 아내 생각도 반드시 옳다고 할 수 없다는 말이 나오는 걸 보니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자녀 교육은 전적으로 아내가 책임진다는 것도 맞지 않습니다. 자녀 교육에 대해서는 아이의 보호자인 두 사람이 함께 의논할 일입니다. 아이 주변의 친구들은 모두 휴대전화를 가지고 있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지 의논하면, 그래도 사주는 것이 낫겠다는 의견도 있고, 너무 이른 시기부터 게임에 빠지고 전자파에 노출되면 건강에 좋지 않으니 늦추는 것이 낫겠다는 의견도 나올 수 있습니다. 이렇게 견해가 서로 다를 수 있습니다. 아내가 옳고 나는 옳지 않다거나, 나는 옳고 아내가 옳지 않다는 식으로 옳고 그른 것이 아니라 다만 다른 것입니다.
견해나 의견이 다를 때 이런 상황을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상대편의 의견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래요, 당신 생각대로 하십시오'하는 것이 가장 쉽고 힘들이지 않는 방법입니다. 내가 상대의 의견에 맞출 때는 나만 결정하면 되니까요. 그러나 우리는 가장 어려운 방법을 주로 선택합니다. 내 생각을 고집하는 거예요. 그러면 상대방이 반대하고, 의견 차이가 나서 갈등으로 번지게 됩니다. 반드시 상대방의 의견에 따라야 한다는 말은 아닙니다. 다만 양보하는 것이 가장 쉽다는 이야기입니다.
또 다른 방법은 의논해서 결정하는 것입니다. 대화로 합의점을 도출하는 것이지요. 한 명은 아이가 1학년일 때 휴대전화를 사주자고 주장하는 반면, 다른 한 명은 3학년일 때 사주자고 주장하는 상황일 때, 서로 합의해서 아이가 2학년일 때 휴대전화를 사주자고 결론 낼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내가 상대방을 설득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가장 어려운 방법입니다. 내가 하는 것은 내가 결정할 수 있지만, 이것은 상대방이 결정해야 합니다. 설득해도 상대방이 싫다고 하면 별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아무리 설득해도 제 말을 듣지 않습니다'하는 관점은 옳지 않습니다. 이 말은 내가 옳다는 것이 이미 전제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합의가 잘 안되면 '그래, 당신 뜻대로 하세요'라고 하는 것이 가장 쉬운 길입니다. '꼭 아내 뜻대로 해야 합니까?'라고 반문할 필요가 없습니다. 아내 뜻대로 하지 않아도 되지만, 지금 질문자는 아내를 설득할 만한 논리도, 힘으로 밀어붙일 만한 능력도 없습니다. (청중 웃음) 아내가 알아서 다 하겠거니 이렇게 생각하지 말고, 질문자도 '어떻게 하면 좋을까?' 연구하며 서로 의논해야 합니다.
자녀 교육은 부부가 의논해서 하되, 가능하면 아내의 의견을 더 많이 반영하면 됩니다. '나는 자녀 교육에 대해 뭐라고 할 수 없다' 이런 질문자의 생각은 다소 극단적인 면이 있습니다. 의견은 내되, 아내가 받아주면 다행이고 받아주지 않으면 아내 생각대로 하면 됩니다. 아내의 결정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아내의 의견을 받아들이는 것이 부부가 아이들 앞에서 싸워서 나쁜 영향을 주는 것보다 결과적으로 훨씬 낫습니다.
핸드폰 사용 문제도 그렇습니다. 요즘은 초등학생도 연락뿐만 아니라 공부에 필요한 검색을 위해 핸드폰이 필요합니다. 무조건 안 된다고 고집할 일은 아니지만 하루 종일 사용하도록 두는 것도 안 됩니다. 비상 연락 시에만 사용한다거나 게임 시간은 제한한다거나 하는 조건을 붙여야 합니다. 하지만 사전에 이런 약속을 하더라도 아이들은 약속을 완벽히 지키기는 어렵습니다. 그래도 기준을 세워두고 약속을 어길 때마다 주의를 주며 적절히 제어해 가며 스스로 조절할 줄 아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핸드폰 사용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정보를 빠르게 검색하고 기기를 다루는 능력을 키울 수 있습니다. 아이들은 학습이 놀이처럼 재미있어야 습득이 빠릅니다. 유튜브나 쇼츠 중독 문제 때문에 호주 초등학생들의 정신건강을 위해 핸드폰 사용 금지 결정을 내린 사례도 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휴대폰 사용에서 잘 조절할 수 있도록 기준을 세우고 사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따라서 핸드폰 사용을 무조건 부정적으로 보지 말고 아내와 상의하세요. 우려되는 게 있다면 '여보, 내가 알기엔 이런 문제가 있는데 어떻게 생각해?'라고 물어보고, 아내가 받아들이면 다행입니다. 만약 아내가 '그래도 아이들이 원하고, 필요하다고 생각하니 그냥 사주겠습니다'라고 하면, 한 번 더 말해보고 안 되면 받아들이세요.
질문자가 말한 것처럼 교육은 아내 중심으로 해야 한다고 했으니까, 포기는 하지 말고 그냥 계속 이야기하면 됩니다. 단지 내 의견을 관철하려고 하지 마세요. 문제는 제기하되 받아주면 다행이고, 안 받아주면 그만입니다. 그러면 싸울 일이 없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자녀 교육은 부모 중에 한 명이 한다는 것이 아니라, 엄마가 중심이 되고 나는 옆에서 문제 제기 하면서 같이 할 수 있습니다. 다만, 그것을 가지고 절대 싸워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싸울 만한 가치는 없습니다. 부부끼리 자녀 교육 문제로 싸우는 것이 아이에게 더 나쁜 영향을 준다는 관점을 가지고 해 나가시면 됩니다.”
“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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