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검색
원하시는 검색어를 입력해 주세요
안녕하세요. 스님은 오전에 영어 불교대학 즉문즉설과 정토불교대학 입학식에서 법문을 하고 오후에는 공동체 나들이를 함께했습니다.

스님은 오전 8시부터 시작하는 영어 불교대학 정토담마스쿨의 근본불교 즉문즉설 시간에 온라인으로 참석했습니다. 정토담마스쿨 재학생들의 소감 나누기를 듣고 난 후, 재학생들은 스님께 삼배의 예로 법을 청했습니다. 스님은 한국의 봄소식을 전하며, 수행적 관점을 바로 잡고 직접 실천하고 경험하는 것에 대한 중요성도 이야기했습니다. 오늘 즉문즉설 시간에 사전 신청을 한 외국인 재학생이 9명이었습니다. 그중 한 편을 소개합니다.
"We’ve been staying focused on our careers and not having children, and we get along well, so my life is quiet and comfortable. We weren’t necessarily against having children; we just prioritized establishing our careers and financial security.
Also, when I reflected on our motives for potentially wanting a child, they felt insufficient, because they were rooted in selfish fears, like the fear of feeling empty or being alone later in life, didn’t seem like a good reason to have a child.
Being child-free was our choice, and as you say, I believe we should willingly accept the consequences of our choices. I don’t resent my choices. However, when I become old and helpless and have to be admitted to a nursing home without anyone to check on me, I wish to end my life through euthanasia. My husband feels similarly.
I don't see the point of living when physical discomfort outweighs joy and I become a burden on society. Also, stories of elderly people being abused by caregivers scares me.
In your view, is euthanasia considered avoiding the consequences of our life choices, like taking the easy way out instead of taking responsibility? What are your perspectives on euthanasia in general?
Also, what does it mean to accept the consequences of the choice to be child-free? How would you advise a couple like us to prepare for our final years?"
(저희 부부는 둘 다 안정된 직업을 갖고 있고 자녀는 없이 17년째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각자의 경력을 안정시키는 것을 더 우선순위로 두었고, 노후에 외로워지거나 힘들어질 것이라는 이기적인 이유로 아이를 갖는 것은 맞지 않다고 생각해서 자녀를 계획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노년이 되었을 때 도움받아야 하고 움직이기 힘들어졌을 때, 스님께서 말씀하시는 결과에 대해서 기쁘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궁금합니다. 저희는 나중에 요양원에 가서 지내기보다 안락사를 통해서 마지막을 정리하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기보다 짐이 되는 상황, 요양보호사들이 노인을 학대하는 일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안락사에 대해서 스님은 어떻게 보시는지요? 저희같이 자녀가 없는 부부가 자기 인생에 대해, 자녀가 없는 선택에 대해 책임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이고, 어떻게 노후를 준비하는 것이 지혜로울지 여쭤봅니다.)

“옛날에 사회보장제도가 없었을 때는 자녀를 두는 게 하나의 노후 보장 시스템이었습니다. 젊을 때 자녀들에게 많은 지원을 하고 또 내가 나이 들어 늙었을 때 자녀들에게 도움받는 이런 시스템으로 지금까지 진행됐습니다. 그런데 현대사회에 들어와서는 아이를 한 명이나 두 명, 이렇게 적게 낳게 되면서 설령 자녀가 있다고 하더라도 부모를 돌보기가 어렵게 되었습니다. 또 옛날에는 노인들이 한 60대 정도에서 죽었기 때문에, 자녀가 부모를 돌보는 것이 그렇게 큰 부담이 아니었는데 지금은 80살에서 100살까지 살기 때문에 자녀가 부모를 돌보는 것이 현실적으로 매우 어려워졌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젊었을 때 세금을 많이 내고 늙었을 때 보장받는 ‘사회보장 시스템’으로 우리의 노후를 준비하고 있는 겁니다. 이것은 자녀가 있는지 없는지에 크게 상관이 없습니다. 다만 나이가 들어서 집에 있든지, 요양원에 있을 때 자녀가 있으면 찾아오는 사람이 있으니까 정신적인 외로움을 덜어주는 데는 도움이 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요즈음 새로 생긴 사회 현상은 젊은이들은 집이 없고 노인들은 집은 있는데 집을 돌볼 힘이 없으니 20~30대 젊은이와 80대의 노인이 함께 거주하면 젊은이는 방을 얻을 수 있고 노인은 집을 돌볼 수 있게 됩니다. 이렇게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시스템으로도 바뀌어 가고 있습니다. 꼭 요양원에 가는 길만 있는 게 아니라 서로의 필요에 맞게 여러 가지 방법으로 협력하면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스님들이나 신부님들은 다 자녀가 없지 않습니까? 그럼, 그들은 모두 안락사해야 합니까? 그들의 조건에 맞게 제자를 둔다는지 하는 방식으로 시스템이 갖춰지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너무 염려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지고 그에 따르는 과보는 받아야 합니다. 요양원에서 지낼 때, 다른 사람에게 자녀가 찾아와서 부모를 돌보는 걸 보고 부러워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질문자는 자녀 갖는 것을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투자한 것이 없고 베푼 것이 없으니 부러워한다는 것은 맞지 않습니다. 나이 팔십이 되어 친구 집을 방문했을 때, 친구의 아들딸이 손자들을 데리고 방문하는 걸 보고 부러워하면 안 된다는 겁니다. 그때 내가 선택한 것에 책임을 지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수행자로서의 관점을 갖는 겁니다. 수행이라는 것은 바깥을 보고, 어떤 조건을 보는 게 아니라 늘 자신의 마음 작용을 살피는 겁니다. 그래서 혼자 있어도 좋고 둘이 있어도 좋고, 늙어도 좋고 젊어도 좋습니다. 괴로움이 일어나지 않도록 항상 자신을 관리한다면 아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볼 때 꼭 좋은 점만 보고 부러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녀가 훌륭하게 되어 부모를 돌보는 것을 보고 부러워하는데, 자녀 때문에 부모가 매우 고생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래서 바깥을 보고 부러워하는 마음이 없어야 합니다. 질문자가 이런 질문을 하는 걸 보니 나이가 들면 자녀 가진 사람을 부러워할 가능성이 높아요. 그러니까 지금부터 자기 자신을 잘 살펴야 합니다.”
외국인 불교대학 재학생들은 공부하는 과정에서, 일상생활에서 궁금한 점을 스님과 대화하며 수행적 관점을 잡아 나갔습니다.
온라인 영어 불교대학 즉문즉설 시간이 끝나고 바로 이어서 오전 10시에는 정토불교대학 입학식이 열렸습니다. 스님은 두북수련원 방송실에서 온라인으로 입학식에 참여했습니다.

2026년 3월 정토불교대학은 오프라인 반 443명, 온라인 반 1,487명이 입학해 총 1,930명 입학했습니다. 입학생들의 소감 발표와 정토회 대표 양윤덕 님의 환영사 이후에 입학생들은 스님께 청법 삼배로 법을 청했습니다. 스님은 수행으로서의 불교에 관해서 설명하고 입학생들이 가져야 할 마음가짐, 학사과정의 특징, 특히 나누기의 중요성에 대해서 강조하였습니다.
“보통 불교라고 말할 때 3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종교로서의 불교’, 철학이나 사상을 말하는 ‘철학으로서의 불교’, 그다음으로 ‘수행으로서의 불교’가 있습니다.
종교로서의 불교는 믿음을 기본으로 합니다. 믿으면 복을 받고, 그래서 결혼도 잘하고 취직도 잘되고 대학 시험에도 붙고 죽어서 극락에 간다고 말합니다. 현생에서는 복을 받고, 내생에서는 좋은 곳에 간다고 하는 종교적 영역입니다. 이런 종교적인 영역은 다른 종교와 비슷합니다.
두 번째는 철학으로서의 불교입니다. 철학으로서의 불교가 다른 종교에 비해 강한 편입니다. 어떤 분들은 불교는 종교가 아니고 철학이라고 얘기하기도 합니다. 이치가 명료하며 세상의 많은 원리들에 대해서 설명해 줍니다. 연기법, 중도, 공사상이 있는데 불교를 믿지 않아도 대부분 들어봤을 겁니다. 불교를 공부한다고 할 때는 철학으로서의 불교를 말합니다. 불교를 믿는다는 것은 종교이고, 불교를 이해한다는 것은 철학입니다.
수행으로서의 불교는 무엇일까요? 목표가 돈을 많이 버는 것도 아니고, 시험에 합격하는 것도 아니고, 지위가 높아지는 것도 아니고, 명예를 얻는 것도 아니고, 복을 비는 것이 아닙니다. 또 죽어서 좋은 곳에 가는 것도 아니고 내생을 찾는 것도 아닙니다. 수행으로서의 불교는 내가 ‘지금 괴롭지 않은 것’이 목표입니다. 여러분들은 슬프다든지, 화가 난다든지, 근심 걱정이 있다든지, 누구를 미워한다든지 하는, 괴로움을 갖고 있습니다. 불안하지 않고 괴로움이 없고 슬픔이 없고 근심 걱정이 없고, 미움이나 화, 짜증이 없는 상태, 이것을 니르바나라고 합니다. 이런 상태를 괴로움이 없는 자유로운 삶이라고 합니다. 수행으로서의 불교는 이런 상태에 이르는 것이 목적입니다. 여러분들이 하느님을 믿거나 부처님을 믿는 것은 개인의 자유이고, 어떤 이념이나 철학, 사상을 가지든 그것도 개인의 자유입니다. 정치적으로 우파든 좌파든, 유신론이든 무신론이든, 종교가 있든 없든, 그런 것들은 전부 개인의 선택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누구나 다 괴로움 없이 살고 싶어 합니다. 스트레스 없이 살고 싶고 두려움이나 불안 없이 살고 싶다면 수행을 하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정토불교대학에서는 모든 불교를 다 다루지 않습니다. 수행으로서의 불교를 중심에 두고 다룹니다. 수행으로서의 불교를 해나가기 위해서는 약간의 이치를 알아야 합니다. 이 부분이 철학으로서의 불교와 가깝습니다. 즉, 수행으로서의 불교가 중심이고, 올바른 이치를 이해하는 철학으로서의 불교도 조금 다룹니다. 바른길에 대해서는 믿으라고 하지 않아도, 저절로 믿음이 생깁니다. 그래서, 믿음의 요소도 조금 있습니다. 여기에서 부처님은, 우리를 바른길로 인도하는 위대한 스승이나 안내자, 아니면 내 삶의 롤모델이지, 내가 복을 빌면 복을 주는 사람, 이런 종교적 믿음의 대상은 아닙니다.
오늘 입학하시는 분들은 많은 분들이 종교가 없을 것입니다. 종교가 있든 없든 관계가 없고, 종교가 있더라도 어떤 종교를 믿어도 상관이 없습니다. 믿음은 개인의 자유입니다. 사상도 개인의 자유입니다. 그러나, 내가 괴로움 없이 살고 싶다면 수행을 해야 합니다. 수행을 하려면 이치를 먼저 파악하고 실천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믿는 것도 아는 것도 중심이 아니고, 행하는 것, 경험하는 것이 중심입니다. 경험이 중심이지만, 아는 것도 조금 필요하고 기본적인 신뢰, 믿음도 필요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사전 학습인 ‘법문듣기’입니다. 두 번째는 ‘나누기’이고, 그다음은 직접 연습하고 경험해 보는 겁니다. 수업 중에는 법문을 듣지 않습니다. 주로 참가한 사람들과 나누기합니다. 듣고 나누고, 또 경험하고 나눕니다. 나누기할 때 어렵게 생각할 필요 없습니다. 나는 어땠는지만 이야기하면 됩니다. 듣고 좋았다면 왜 좋았는지 말하면 됩니다. 나빴다면 왜 나빴는지, 답답했다면 왜 답답했는지 가볍게 이야기하면 됩니다. 먼저 자기 마음의 상태를 이야기하고 이유를 설명하면 돼요. 의도적으로 지어내서 생각으로 말하면 어려워집니다. ‘뭘 나누지, 뭘 말하지.’ 이런 생각이 들어요. 그냥 가볍게 말하면 됩니다. ‘오늘 스님의 법문을 들으니까 답답했습니다. 왜냐하면 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아서입니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됩니다. 자기 상태를 솔직하게 말하면 그만입니다.
정토불교대학을 포함해서 정토회에서 진행하는 교육을 할 때 사람들이 가장 어려워하고 힘들어하는 것이 바로 나누기입니다. 법문 듣는 건 좋은데 나누기하는 게 싫어서 도망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나누기 시간에 참여하지 않으면 출석이 안 됩니다. 듣는 게 핵심이 아니라, 나누기가 핵심입니다. 처음에는 어렵지만 조금만 연습하면 괜찮습니다. 외국인들은 불교대학 입학을 한 달쯤 전에 먼저 시작했거든요. 조금 전에 이제까지 공부한 내용을 가지고 즉문즉설을 했는데 제일 좋은 게 나누기라고 했습니다. 나누기가 스승이라고까지 말하면서 스님 법문보다도 나누기가 더 좋다고 이야기합니다.
사실 부부가 함께 살아도 마음 나누기는 거의 안 합니다. 각자 자기 생각대로 살아요. 그러니 스트레스가 자꾸 쌓이는 겁니다. 남편이 뭐라고 하면 불평만 하지, 내 마음 상태를 알리지 않아요. 나누기는 내 마음의 상태를 알리는 거예요. 상대에게 잘못했다고 지적하는 게 아니고 내 상태가 어떠한지 알리는 거예요. 이런 나누기를 자꾸 연습해야 합니다. 한국 사람들은 솔직한 자기 마음을 알아차리지도 못하고 드러내지도 못해요. 어릴 때부터 의무감으로 살아왔기 때문에 솔직한 마음을 이야기하지 못하고 늘 마음을 억누르고 살아요. 참고 사는 거죠. 그래서 스트레스나 화와 짜증이 많아요. ‘지금 당신 말을 들으니 짜증이 나려고 그래요. 당신 말을 들으니, 화가 납니다.’ 이렇게 참지 말고, 그냥 가볍게 말하는 겁니다. 당신 잘못을 지적하는 게 아니고 내 상태가 이렇다고 자기 상태를 가볍게 드러내면 됩니다. 물론 처음에는 잘 안돼요. 약간 부끄럽기도 하고 뭘 이런 이야기를 다 하나 싶기도 합니다. 그러나 가볍게 내놓는 연습을 해 나가면 여러분들의 억압된 심리가 점점 풀어지면서 점점 가벼워지게 됩니다.
약간의 부작용도 있습니다. 마음을 내어놓는 게 연습이 되면 남편이나 아내가 뭐라 그럴 때, 부모가 뭐라고 할 때도 자기 상태에 대해 말합니다. 예전이라면 참고 말을 안 하고 견뎠는데 지금은 부모님이나 아내, 남편에게서 그런 소리를 듣고 화가 난다면 화가 난다고 말합니다. 그러면 ‘엄마가 절에 다니더니 나쁜 거 배워 왔다’라고 문제를 제기하기도 합니다. 전에는 남편이 말하면 가만히 있더니 이제는 또박또박 자기 이야기를 한다면서 ‘수행한다더니 더 나빠졌다’라고 비판까지 받습니다. 그래도 괜찮아요.
무엇보다 ‘나를 가장 사랑하는 것’이 수행입니다. 남을 사랑하는 게 수행이 아니고 나를 괴롭히지 않는 게 수행입니다. 참는 건 나를 괴롭히는 거예요. 그렇다고 막 화를 내면서 남에게 이야기하면 갈등이 생깁니다. 가볍게 그냥 자기 상태를 알아차리고 드러내어서 해보는 겁니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내 상태가 어떤지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자기 상태가 어떤지 모르는 사람이 많아요. 그래서 ‘내가 지금 불편하구나, 내가 지금 화가 나려고 하는구나, 내가 지금 약간 긴장되는구나!’ 이렇게 자기 상태를 먼저 알아차려야 합니다. 그다음, 다른 사람에게 말해봅니다. 처음엔 긴장이 됩니다. 이럴 때도 ‘제가 약간 긴장됩니다.’라고 이야기하면서 말하면 됩니다.
그다음에는 실제로 경험해 보는 겁니다. 일주일간 수행 과제를 연습해 보고 모여서 나누기합니다. 또 하나는 사회적 실천을 함께 하는 거예요. 기후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함께 쓰레기를 줍거나 소비 절약을 해 봅니다. 또는 어려운 사람을 위해서 봉사 활동을 합니다. 이 좋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는 길거리 홍보 활동을 모둠원들과 함께해 보기도 합니다.
처음엔 다들 쭈뼛쭈뼛합니다. 어려운 사람을 돕자고 이야기하는 것이 마치 내가 구걸하는 것 같이 느껴집니다. ‘행복하고 싶으면 행복학교에 다니세요’라고 말하는 건, 마치 전도하는 것 같아서 부끄러워집니다. 혹시 아는 사람 만나면 어쩌지, 눈치 보게 되고요. 사실 이런 게 모두 자기 자신을 움켜쥐고 있는 겁니다. 이런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해요. 그러려면 직접 실천해 봐야 합니다. 해 보면서 또 마음 나누기를 합니다.
이렇게 먼저 법문 듣고 연습합니다. 그러고 나서 모둠끼리 나가서 쓰레기도 줍고 캠페인도 벌이고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는 이런 사회 실천을 합니다. 이런 각각의 경우에 다 마음 나누기합니다. 이 네 가지가 불교대학의 주 내용입니다. 이러한 활동을 통해서 우리가 도달하고자 하는 학습 목표가 있습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처음에는 나누기가 제일 부담스럽습니다. 나를 내어놓는 게 잘 안돼요. 이걸 가볍게 내어놓는 연습을 해 보는 겁니다. 자기 상태를 알리면 돼요. 답답하면 답답합니다. 긴장되면 긴장됩니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되기 때문에, 따라서 어려운 게 아니에요. 싫으면 싫다고 하고 이야기해도 됩니다. 왜 싫은지 자기 나름의 이유를 붙여 말하면 됩니다. ‘답답합니다. 왜냐하면 잘 이해가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혹은 ‘싫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평소에 좋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해 보는 거예요.
마음을 나누지 않고, 자기 생각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생각이란 건 주로 남의 이야기입니다. 자기 이야기가 아니에요. 마음은 자기 이야기이고, 생각은 주로 남의 이야기입니다. 어디서 듣거나 책에서 본 이야기를 하거나 어떤 주장을 늘어놓기도 합니다. 말이 길어지면 이미 생각을 나누고 있는 겁니다. 가능하면 생각을 말하지 말고, 마음의 상태를 알아차리고 나누기를 합니다. 처음에는 마음과 생각이 구분 안 될 수도 있습니다. 그건 자꾸 해 보면서 이게 마음이구나, 이건 내가 지금 생각을 말했구나 하고 시행착오를 해가면서 정리가 됩니다. 불교대학은 이렇게 진행됩니다.”
입학식을 포함하여 2026년 3월 정토불교대학의 5개월의 학사과정이 시작되었습니다.

스님은 법문을 마치고, 잠깐 미팅이 있었습니다.
점심 식사 이후 스님과 공동체 대중들은 봄나들이를 나갔습니다. 서울, 문경에서 두북으로 모인 공동체 대중들은 오전에는 봄기운을 느끼며 나물 캐기, 당근심기 등의 울력을 진행했습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비가 내렸는데 오늘은 날씨가 맑아 울력과 나들이를 진행하기에 좋은 날씨였습니다.
스님은 낮 12시 20분에 두북수련원에서 출발하여 경주 남산의 염불사 주차장에 도착했습니다. 12시 50분 공동체 대중들이 염불사 주차장에 도착하자 스님은 오늘 나들이 일정에 대해서 공동체 대중들에게 설명했습니다.

“현재 출발하는 곳에서 계속 골짜기를 따라 올라가면 칠불암이 나옵니다. 여기는 염불사지입니다. 오늘 코스는 염불사지에서 출발해서 조금 걸으면 남산사지이고 또 조금만 가면 서출지, 통일전, 전광왕릉, 헌강왕릉, 화랑교육원, 보리사로 이어집니다. 다음에는 옥룡암에 들어갔다가 오고, 할매부처도 들어갔다 나와야 합니다. 그곳에서 내려와서 반월성입구에 인용사지를 지나, 월정교와 천관사지를 지납니다. 그 후 야생동물들을 위한 길 위의 다리를 지나 김호 장군 고택, 남간사지, 창림사지, 포석정, 지마왕릉, 삼불사를 지나게 됩니다. 그다음에 망월사, 삼릉, 그리고 경애왕릉이 있고 그다음에 석불두 그리고 저녁 공양 장소에 도착합니다. 둘레길로 13km, 들어갔다가 나오면 16km 정도가 될 것입니다.”
스님은 머릿속에 있는 지도를 보여주듯 오늘의 이동 코스를 줄줄이 일러주었습니다.

13시에 염불사지 석탑 사이에서 기념 촬영을 하며 산책을 시작했습니다.
“오늘은 이만 오천 보 정도 걷겠습니다.”
스님이 공동체 성원들과 걸어가는 길에는 벚꽃을 비롯한 여러 봄 꽃들이 피어 있었습니다.

연못인 서출지를 지나 통일전을 향했습니다.
스님이 앞에서 벚나무 가지를 약간 흔들어 공동체 대중들에게 꽃비를 내려줬습니다. 대중들은 떨어지는 벚꽃잎을 보며 아이들 같이 좋아했습니다.


화랑교육원과 수목원을 지나 보리사 앞에 도착했습니다.
“남산에서 제일 아름다운 불상입니다. 저는 심장이 좋지 않아서 올라가지 않고 여기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스님과 몇몇 환자분들을 제외한 공동체 성원들은 보리사로 올라갔고 이승용 님의 설명을 들으며 불상을 참배했습니다. 스님은 천천히 다음 장소로 걸어 이동했습니다.

마을의 논에는 써레질을 하고 물을 대서 모내기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대중들이 옥룡암 주차장에 오자 스님은 다시 대중들만 부처바위를 참배하게끔 안내하고 주차장에서 대중들을 기다렸습니다. 대중들이 내려오자, 스님이 새로 발견한 제2의 부처바위에 가는 길로 대중들을 안내했습니다.
“가서 보면 잘 안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보일 거예요”

스님은 그네 의자가 있는 곳에서 기다리고, 대중들은 새로운 부처바위를 참배하기 위해 다녀왔습니다. 부처바위에 도착하니 마모가 되어서 선명하게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안내도에 있는 그림을 바탕으로 하나씩 찾아보니 부처님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다시 대중들이 내려오자 할매부처(불곡마애여래좌상)가 있는 곳으로 대중들을 안내했습니다. 이곳에서도 스님은 밑에서 대중을 기다리고 대중들만 올라가서 할매부처를 보고 왔습니다.

할매부처를 참배하고 대중들이 내려오자, 오후 3시 30분 정도가 되었습니다. 스님은 말했습니다.
“이제 절반 정도 왔습니다.”
스님은 대중들과 같이 일정교에 도착했습니다. 과거 다리였던 곳이 현재는 무너져 돌더미만 남아 있었습니다.


이어서 인용사의 터로 추정되는 인왕동 사지를 둘러보고, 월정교를 지났습니다.

월정교는 통일신라 시대에 남천 위에 조성되어 경주 월성과 남산을 연결하던 핵심 교량으로, 2018년에 복원이 된 웅장한 목조 다리입니다.

월정교를 지나니 오후 4시가 되었습니다. 스님이 공동체 대중들을 위해 귤과 찰보리빵을 준비해 주었습니다. 대중들은 옹기종기 모여 앉아서 간식을 먹으며 휴식을 취했습니다.

오후 4시 20분에 다시 길을 나섰습니다. 1시간 30분가량 더 걸어야 했습니다. 처음에는 많았던 대중들이 점차 뒤처지기 시작했습니다.
“완주를 못 하는 대중들은 오늘 저녁 먹을 자격이 없어요(웃음)”

천관사지를 지나 야생동물들을 위한 도로 위 다리를 지나 삼릉 가는 길로 이동했습니다. 낮 동안 해가 뜨거웠는데 오후 5시가 다 되어가니 바람이 시원해졌습니다.

남간사지에서 깃발과 깃대를 달았던 지지대인 당간지주를 지나며 잠시 단체 사진을 찍었습니다.
“사진 속에 있는 사람만 저녁을 먹을 수 있어요(웃음)”
다시 길을 따라 걷다 보니 멀리 창림사지 3층 석탑이 있었습니다. 스님이 대중들에게 창림사지 3층 석탑까지 올라갈 것인지를 오후 1시부터 계속 걸어온 대중들은 힘들었는지 대답이 시원찮았습니다. 하지만 한 행자님이 가고 싶어 하자 스님은 창림사지 3층 석탑으로 기꺼이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무변심 법사님은 오늘 처음으로 창림사지 3층 석탑을 가까이서 참배한다고 했습니다.
“법사 자격이 없네요. (웃음)”
“스님 그럼 오늘부터 법사 자격을 갖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웃음)”


스님은 처음 창림사지 3층 석탑을 참배하는 대중들을 위해 탑에 관해서 설명해 줬습니다.
“이 탑은 목탑형 석탑이에요. 저기 2층에 문을 형상하는 문고리가 있잖아요.”

오후 5시 40분경 드디어 삼불사 주차장에 도착했습니다. 원 목표 지점까지는 조금 더 가야 합니다. 그전에 저녁 식사 예약 시간이 되어서 여기서 마치기로 했습니다. 긴 산책이었습니다.

대중들은 저녁 공양을 하러 이동했고, 스님은 두북수련원으로 와서 다음 일정을 위해서 준비하였습니다.

저녁예불이 끝나자마자 바로 공동체 성원들과 즉문즉설 시간이 이어졌습니다.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개인적인 수행 문제, 부서나 사업을 하면서 고민되었던 부분에 대해 공동체 성원들은 허심탄회하게 스님께 질문하고 대화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저녁 9시가 지나고 즉문즉설 시간이 마무리되었습니다. 태국에서 영어 연수를 마치고 돌아온 행자 한 명이 인사를 하기 위해 스님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스님은 잠시 법당 뒤편으로 자리를 이동하여 행자의 삼배를 받았습니다.
스님은 오전 영어 불대 온라인 즉문즉설로 시작해서 저녁 9시까지 공동체 성원들과 즉문즉설 시간을 가지며 하루 일과를 마무리했습니다.
내일은 오전에 병원 진료를 다녀오고, 오후에는 두북수련원에서 서울로 이동하여, 저녁에는 길벗 초청 법회에서 법문할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9
전체 댓글 보기스님의하루 최신글
다음 글이 없습니다.
이전글“남편에 대한 출렁이는 마음을 어떻게 하면 평평하게 할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