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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부탄 방문객 일정 5일 차입니다. 스님은 부탄 방문객들과 하루 종일 함께 했습니다. 오전에는 문화, 자연 체험할 수 있는 제주도의 손꼽히는 관광지인 제주돌문화공원을 탐방하고, 오후에는 생산, 가공, 관광을 연계한 사례로 제주 귤 농장을 방문하였습니다.

스님과 부탄 방문객은 새벽 4시에 차량에 짐을 싣고 4시 30분에 두북수련원에서 대구공항으로 향했습니다. 5시 20분쯤에 대구공항에 도착하고, 오전 6시 35분 비행기에 탑승하기 위해 새벽 일찍부터 움직였습니다. 비행기에 탑승하고 1시간 비행한 후 제주공항에 오전 7시 40분경쯤 도착했습니다.

공항 안에 있는 식당에서 미역국으로 식사를 했습니다. 부탄 방문객 중 한 명은 가슴 쪽에 통증이 있어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 제주도에 있는 병원에 가서 검진을 받아보기로 했습니다. 따뜻한 미역국으로 배를 채우고 화장실에 들렸다가 8시 45분에 15인승 승합차에 올랐습니다.

오늘은 4월 3일, 제주 4.3의 역사적 의미를 돌아보고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는 국가 기념일입니다. 의미 있는 날이라서 제주 4.3 평화공원을 둘러볼 수 있을까 해서 평화공원으로 향했습니다. 오전 10시에 제주 4.3 희생자 추념식이 제주 4.3평화공원에서 열리므로, 많은 차가 제주 4.3평화공원으로 향하고 있어 도로 정체가 많이 되었습니다. 의미 있는 날에 제주 4.3평화공원에 가보면 좋겠지만, 부탄 방문객 일정도 약속을 잡아 두었기에, 도로에서 마냥 기다릴 수 없었습니다. 아쉽지만, 방문객을 태운 승합차는 제주도의 동쪽에 있는 제주돌문화공원으로 방향을 돌렸습니다.

거리에는 관상용 귤나무가 군데군데 있고, 벚꽃과 개나리도 활짝 피었습니다.

제주돌문화공원은 제주 돌 문화의 진수를 볼 수 있는 돌을 주제로 한 공원 중 국내 최대 규모의 공원입니다. 백운철 님이 평생 수집한 돌 1만여 점을 제주도에 무상으로 기증했고, 제주특별자치도와 함께 20여 년간 조성한 생태 예술 공원입니다. 설문대할망 신화와 제주 전통 돌 문화를 주제로 한 100만 평 규모의 민관 합작 문화시설입니다.
제주돌문화공원에 도착해서 매표를 하려고 알아보니, 오늘은 제주 4.3 기념일이라서 무료입장이라고 하였습니다. 오늘은 제주도에서 버스비도 무료라고 했습니다. 4.3 기념일이 제주도민들에게는 얼마나 큰 의미 있는 날인지를 한 번 더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스님은 제주돌문화공원 안내도의 앞에 서자 많은 관광객이 스님을 알아보고 인사를 했습니다. 스님은 관광객들에게 인사를 한 후 앞장서서 부탄 방문객들과 본격적으로 제주돌문화공원을 둘러보았습니다.

제주돌문화공원에서 가장 유명한 곳인 하늘 연못입니다. 설문대할망이 빠져 죽은 죽 솥을 상징화한 곳인 하늘 연못 앞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제주돌박물관으로 향했습니다.


제주도에서 많이 볼 수 있는 화산석에 대한 설명, 다양한 돌 모양의 갤러리 등을 볼 수 있었습니다.


돌 박물관 건물을 나와서는 근처 카페로 가서 차 한 잔씩을 마시며, 잠시 휴식을 취했습니다. 그 사이, 아침에 병원으로 검진받으러 갔던 부탄 방문객과 동행한 실무자가 함께 합류하였습니다. 검진 결과 큰 문제는 없었고, 약을 처방 받아 왔습니다. 다행히 아침보다는 안색이 편안해 보였습니다.


휴식 시간이 끝나자, 스님은 앞장서서 길을 안내했습니다. 코스를 따라가서 보니, 돌로 만들어진 다양한 생활 도구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제주도에서 사용했던 돌절구, 돌 맷돌, 연자방아 등 다양한 생활 도구들이었습니다.

스님은 제주도 대문이라고 하는 구멍이 뚫린 돌기둥인 정주석과 정주석에 걸치는 나무인 정낭에 대해서 부탄 방문객에게 설명했습니다. 정낭의 위치에 따라 집주인이 멀리 있는지 아닌지를 파악할 수 있는 메시지가 있는 대문 걸이 법에 관해 설명하자, 부탄 방문객들은 메시지가 있다는 것에 매우 신기해했습니다.

산책하듯 코스를 돌아보니, 큰 돌하르방이 나왔습니다. 돌하르방을 배경으로 기념 촬영을 하고, 제주돌문화공원의 탐방을 마무리했습니다. 스님은 부탄 방문객들에게 설명하면서, 부탄의 자연석 돌을 활용해서 제주돌문화공원처럼 관광 교육 시설을 만들면 좋겠다는 의견과 이곳을 탐방하게 된 이유도 말해주었습니다.
제주돌문화공원의 탐방을 마치고 근처 5분 거리에 있는 국숫집에서 점심을 먹었습니다. 식사 장소에는 제주도 출신이자 부탄으로 코이카 파견 봉사 활동을 한 적이 있었던 고은경 님이 와 있었습니다. 부탄 방문객들과 고은경 님은 서로 인사를 나누고 점심을 함께했습니다. 고은경 님은 지구촌 평화에 이바지하고자 하는 NGO 활동 중인데, 앞으로 상호 교류할 수 있는 부분들에 대해서 서로 협력 하기로 하고 다음에 또 만나기를 약속하였습니다.

식사 후 일행은 바다를 보러 제주도 지역의 명승인 섭지코지로 갔습니다. 부탄은 내륙 국가라 바다가 없습니다. 젊은이 두 명은 바다를 처음 본다고 했습니다. 바람이 많이 불었지만, 탁 트인 바다를 보니 가슴이 펑 뚫렸습니다. 섭지코지 코스대로 걸어가 보면 좋겠지만, 일부분만 구경하고 기념 촬영 후에 바로 차량에 올랐습니다.

다음 일정은 서귀포시 남원읍에 있는 감귤 농장을 방문하였습니다. 3대에 걸쳐서 감귤 농사를 하는 농장이었습니다. 하우스 농장과 노지 농장을 둘러보고 간단히 영상 시청을 한 후에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습니다. 감귤 하우스 농장에 들어가니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많은 감귤 나무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청색 귤이지만, 여름이 되면 노랗게 익어서 출하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하우스 농장의 탐방을 마치고 노지 농장으로 이동하였습니다. 하우스 감귤과 노지 감귤 생산의 차이점 들에 대해서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부탄의 젬강 주지사님이 감귤 농사에 특별히 많은 관심을 보였습니다. 스님은 부탄에서 봤던 오렌지 나무는 키가 엄청 크고, 사람이 딸 수 없을 정도로 오렌지가 높은 곳에 열려 있다고 했습니다. 감귤 농장은 사람이 수확할 수 있는 적절한 키 높이를 유지하고 있었고, 당도도 높았습니다. 젬강 주지사님은 농장 주인의 설명을 경청하고, 설명하는 것들을, 비디오를 찍어서 함께 일하고 있는 직원들과도 소통하며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었습니다.

탱자씨를 활용해서 뿌리를 튼튼하게 만들고, 접붙이기해서 다양한 품종을 개발한다는 부분도 부탄 방문객들에게는 큰 공부가 되었습니다.

다음 일정이 있어서 농장 주인 가족들에게 인사를 하고 나왔습니다. 다음 목적지는 유기농 농장입니다. 가는 길에 날씨가 흐리고 비가 한두 방울씩 떨어졌습니다. 내비게이션에 목적지 주소를 잘못 넣어서 농장으로 가지 않고, 선별장으로 도착했다가 10분 정도 다시 이동하여 유기농 농장으로 이동했습니다. 농장 주인이 방문객들을 반갑게 맞이해주었습니다.

처음으로 간 곳은 유기농 하우스 금귤(낑깡)밭이었습니다. 유기농으로 키우다 보니, 나무가 있는 곳곳에 풀들이 많았습니다. 농장 주인은 마음껏 금귤을 따서 맛보라고 하였습니다. 요즘은 금귤을 잘 볼 수 없었는데, 유기농으로 키운 금귤은 금방 따서 바로 먹을 수 있었고 금귤을 맛본 한 활동가는 자신이 먹었던 금귤 중에 최고의 맛이었다고 했습니다. 스님과 방문객들은 잘 익은 금귤들을 따서 맛보았습니다.


하우스 작물을 구경한 이후에는 노지로 나갔습니다. 노지에 열리는 한라봉, 로즈메리 등을 구경했습니다. 저 멀리 바다가 보였습니다. 농장 주인은 하우스와 노지를 합쳐서 약 3만 평의 유기농 농장을 운영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풀들이 자라고 자연 퇴비가 되도록 운영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유기농 농장의 방문을 기꺼이 허락해 주고, 설명해 준 농장 주인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다음 일정을 위해서 차량에 탑승했습니다.
날씨가 많이 흐리고, 어두워지려고 했습니다. 제주도까지 왔는데, 바다를 좀 더 보면 좋을 것 같아서 주상절리 쪽으로 이동했습니다. 주상절리에 5시 40분쯤에 도착했습니다. 이미 입장 마감 시간이 지났습니다. 구경할 수 있는 마지막 마감 시간이 5시 50분이었습니다.


관리소 사무실에 양해를 구하고, 5분의 시간 만에 주상절리가 보이는 바다를 구경하고 왔습니다. 주상절리는 뜨거운 화석암이 빠르게 식으면서 다각형 기둥 모양으로 만들어진 틈(절리)입니다. 빠르게 뛰어가서 바다를 보고, 사진을 촬영하고, 얼른 나왔습니다. 부탄 방문객 중에는 바다를 처음 본다는 이도 있었습니다. 숨을 헉헉거리며, 빠르게 바다를 보고 나오니, 빗방울이 좀 더 굵어졌습니다.
비가 더 굵게 내리기 전에 숙소에 도착하는 것이 필요했습니다. 스님과 부탄 방문객들은 차량에 탑승해서 숙소로 이동했습니다. 숙소에 도착해서 방 배정을 받고 나니 빗줄기가 강해졌습니다. 짐을 풀고 휴식을 한 후에 저녁 식사를 같이했습니다. 스님은 저녁 식사를 하고 하루 업무를 마무리했습니다.
내일은 새벽에 제주공항에서 서울로 이동하고, 이후에는 부탄 방문객들과 마무리 소감 나누기 시간을 가진 후, 미팅을 하고 두북수련원으로 이동할 예정입니다.
오늘은 별도 법문이 없었으므로, 지난 즉문즉설의 내용을 소개하며 글을 마칩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강아지를 무서워하고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식구들도 이것을 잘 알고 있어서 강아지가 있는 집에 가면 저를 강아지로부터 막아주곤 합니다. 아이들은 어렸을 때부터 강아지를 키우고 싶어 했지만, 그때는 아이들을 키워야 하니까 강아지를 제대로 돌봐주지 못할 것 같아서 남편도 저도 강아지 키우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아이들도 다 컸고, 남편은 집에 왔을 때 반겨줄 사람도 없다며, 내년에 강아지 두 마리를 데려와 키우겠다, 말리지 말라고 합니다. 아이들은 식구들이 모두 강아지를 키우고 싶어 하는데, 엄마만 싫다고 못 키우게 하는 것은 민주적이지 못하고, 키우다 보면 저도 좋아하게 될 거라며 저에게 생각을 조금만 바꿔 달라고 조릅니다.
강아지가 오면 제가 무서운 강아지를 어떻게 마주하고 지내야 하는지, 그리고 식구들이 바빠서 돌보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면 저라도 돌봐줄 수 있어야 할 텐데 자신이 없습니다. 또한 식구들도 저도 모두 직장과 학교에 다녀야 하는데, 빈집에 강아지만 있을 것을 생각하니 강아지도 불쌍하고, 지저분해져서 어질러질 집안도 걱정되고, 벌써 걱정되고 마음이 불안합니다.
기르기 시작하면 한 생명을 끝까지 돌보고 책임져야 하는 일이기에 너무 걱정이 되고 자신이 없어서 저는 계속 절대 안 된다고 할 것입니다. 그래도 혹시, 제가 지금 하고 있는 걱정과 부담을 조금 내려놓고 이 상황을 마음 편하게 생각하고 받아들일 방법이 있을까 하여 스님께 여쭙고 싶습니다.”
“내가 싫어하는 정도가 아니라 무서워하는 정도니까 절대 안 된다고 하세요. ‘내 죽는 꼴 보려면 해라’ 이렇게 세게 나오세요. 더 이상 얘기할 필요가 없어요. ‘절대 안 된다, 하늘이 두 쪽 나도 이것만은 안 된다.’ 이렇게 딱 막으세요.”
“여태까지 그렇게 막아왔어요.”
“앞으로도 그렇게 막으세요. 지금까지도 막았는데, 앞으로 왜 못 막겠어요”
“그런데 제가 혹시 동물들에게 마음이 넓지 못하고 사랑이 없어서 그런 건 아닐까 싶어서요.”
“그런 건 사랑이 없어서가 아니에요. 사과 알레르기 있는 사람이 사과를 사랑 안 해서 그런 거 아니에요. 질문자는 어릴 때 강아지한테 물렸든 어떤 이유로든 강아지한테 트라우마가 있고, 거부반응이 있습니다. ”
“네. 물린 적이 있습니다.”
“자식들이나 남편이 강아지를 좋아하는 것은 즐거움을 얻기 위해서고, 질문자는 강아지에게 트라우마로 인한 두려움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걸 똑같이 놓고 민주적이라고 하는 말은 안 맞아요. 백 명이 다 좋아해도 한 명이 강아지에 대해서 트라우마가 있다면 우리는 그 한 명을 고려해야 하는 게 민주주의예요. 그러니까 질문자가 ‘그런 두려움이 있기 때문에 강아지 키우는 것은 안 된다. 그건 내가 어쩔 수 없다. 내가 선택한 것도 아니고, 어릴 때 물려서 그런지, 무엇 때문에 그런지 나도 모르지만, 거기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어서 안 되니까 너희가 양해해달라.’고 하세요. 그리고 남편이 집에 오면 반기는 사람이 없어서 강아지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하면, ‘내가 강아지가 돼서 반겨줄게요.’ 하고 질문자가 남편이 오면 ‘어서 오세요~’ 하고 쫓아가서 막 손잡고 강아지처럼 해줘야죠.”
“예. 그래서 제가 그 얘기를 들은 다음 날 남편이 퇴근할 때 문 앞에서 남편을 반기고 ‘수고하셨다, 어서 오시라, 옷도 받아주겠다’라고 했는데 남편이 눈이 동그래지면서 ‘갑자기 왜 이러느냐, 지금 정상인 거냐?’ 이렇게 농담이었겠지만 어색하게 웃더라고요.”
“하도 안 그러다 갑자기 그러니까 어색하지요.”
“평소에 저희가 그런 게 부족하긴 합니다.”
“그게 시간이 조금 지나면 좋아집니다. 그때는 웃으면서, ‘아이고 강아지 사 온다고 해서 내가 강아지가 되기로 했습니다. 나는 강아지 사 오는 것보다 내가 강아지 되는 게 낫다고 생각해서 오늘부터 강아지가 될게요.’ 이렇게 얘기하세요. 질문자도 웃으면서 그렇게 얘기하면 됩니다.”
"제가 스님께서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계속 가족들한테 그렇게 얘기를 했습니다. 그런데 남편도 아이들도 강아지를 싫어하던 사람도 좋아하게 된 사람이 많다. 엄마가 안 해봐서 그렇지, 강아지를 좀 자세히 잘 보고, 같이 있고 하면 엄마도 좋아하게 될 수 있을 거라고 합니다."
“그럴 수도 있어요.”
“엄마가 안 하려고 하는 게 아니냐. 엄마가 좀 하려고 노력이라도 해보라고 얘기를 적극적으로 합니다.”
“그렇게까지 얘기하면 이제 타협해야 하겠죠 한집에 사니까요. 그러면 강아지를 사 오지 말고 조그마한 강아지를 한 달만 빌려서 데려와 한번 살아보는 거예요. 그러면 ‘강아지 먹이 챙겨주는 일은 아들이 책임진다, 딸이 책임진다, 남편이 책임진다. 나한테 절대 부탁 안 한다는 약속 하겠냐’라고 질문자의 조건을 다 얘기하세요.
‘너희들이 그렇게까지 원한다면 강아지를 딱 한 달 데리고 살아보고 다시 의논하자. 대신 결정권은 나한테 있다. 내가 양보해서 데려오니까 한 달 후에 내가 싫다면 안 키우기’로 약속하세요. 한 달간 있어 보니 강아지와 함께 있어도 괜찮다고 질문자가 바뀌든지, 질문자가 도저히 안 바뀌어서 자식이나 남편이 포기하든지 하겠지요. 질문자가 우려하는 두려움이 없어지지 않으면, 일지를 쓰세요. ‘나는 언제 놀랐고, 언제 너희가 책임을 안 졌고, 이것이 장기화하면 나한테 위험이 돌아올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이 일은 못 하겠다.’ 이렇게 하면 됩니다.
대신, 강아지를 완전히 데려오면 안 돼요. 강아지도 생명인데, 키우다가 못 키우겠다고 갖다 버리면 안 되잖아요. 그러니까 딱 한 달간 계약서를 쓰고, 빌려 와서 실험 삼아 키워보세요.
제가 볼 때는 질문자의 상황이라면 질문자에게 권리가 있어 보입니다. 트라우마가 있기 때문에 키울 수 없다는 권리요. 그건 다수가 아니라도 양해받는 것이 민주주의예요. 다수로 하는 그런 민주주의는 옳지 않습니다. 신체 장애가 있는데, 그걸 다수로 결정하면 안 되잖아요. 불편한 사람에 전체가 맞추어야 합니다.
만약 우리가 계단을 설치하는데, 계단을 놓을 거냐, 신체 불편한 사람을 위해서 휠체어가 다닐 수 있게 경사면으로 할거냐로 논의할 때 다수로 정하면 안 됩니다. 신체가 불편한 사람이 백 명 중에 한 명 있더라도 그 한 명을 위해서 결정해야 하는 겁니다. 그것은 아이들이 잘못 생각하는 거예요. 질문자는 그냥 싫은 게 아니라 트라우마가 있기 때문에 두려움이 일어나는 거니까 그럴 때는 자기를 보호할 권리가 있습니다.
그래서 거부하는 것이 제일 낫고, 질문자가 생각할 때 가족의 화목을 위해서 본인도 뭔가 노력하는 것을 보여줄 필요가 있으면 그 노력하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 ‘한 달간 계약서를 딱 쓰고 어떻게 서로 업무를 나눠서 하기로 한다.’ 이렇게 해야 합니다. 안 그러면 질문자는 그 강아지 때문에 나중에 인생이 피곤해지고, 괴로워집니다. 그래서 남편하고도 사이가 벌어지고, 아이들하고 사이가 나빠지니까 그것이 가족의 화목을 가져오는 게 아니라 화근이 될 소지가 있다. 이 말이에요. 그런 건 미리 막는 것이 제일 낫고, 안 그러면 사전에 충분한 타협을 하는 게 좋습니다.”
“네. 말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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