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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정토경전대학 입학식이 있는 날입니다. 스님은 입학식 법문을 하고, 농수로 답사를 한 후 한국으로 이동하기 위해 공항으로 출발했습니다.

스님은 새벽 정진을 마치고 인도네시아 현지 시각으로 오전 7시에 정토경전대학 입학식에 온라인으로 참석했습니다. 2006년 3월 정토경전대학 1기를 시작하여 올해로 오프라인 반과 온라인 반이 개설되었습니다. 총 39개 반 159개 조 총 1,073명이 입학하여 5개월간의 학사 일정이 시작되었습니다.
정토회 대표 양윤덕 님의 축하 인사말 이후, 스님께 삼배의 예로 법문을 청했습니다.

“종교, 국적, 이념과 상관없이 한 사람으로서 생존에 필요한 것을 지원해야 한다는 것을 인도적 지원이라고 합니다. 사랑하든 그렇지 않든 굶어 죽거나 병들어 죽을 때 그들의 신앙, 국적, 계급, 성별, 이념 이런 것과 관계없이 그들이 마실 물, 먹을 음식, 치료받을 약이 필요하다면 아무런 조건 없이 지원해야 합니다. 그런 관점에서 JTS는 인도네시아 홍수 피해 지역에 지원했습니다. 여기 수재민들도 받은 물건의 값어치보다 자기들의 아픔을 알아준다는 점에서 매우 기뻐했습니다.

이것처럼 부처님의 가르침도 괴로워하는 중생이 있다면 그 괴로움의 종류와 관계없이, 그들의 신앙, 국적, 계급, 이념과 관계없이 그들의 마음의 병인 괴로움이라는 병을 고치는데 아무 조건도 차별도 없이 전해져야 합니다. 그런데 만약 그들 중에 법을 듣기를 싫다고 한다면 어쩔 수가 없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인도적 지원을 하는데 본인이 무슬림이라 불교에서 주는 건 먹지 않겠다고 한다면, 그것은 우리가 어쩔 수가 없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하는 것은 그들의 자유지만 우리는 차별 없이 구호 물품을 제공해야 합니다.
상대의 종교가 무엇이든, 국적이 어떻든 나이나 성별과 관계없이 이 가르침을 들으면 누구나 다 괴로움이 점점 사라지고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됩니다. 그들의 종교나 국적, 믿음을 바꾸려는 것도 아니고 그들이 괴로움에 처해있기 때문에, 오직 거기에서 벗어나게 해주자는 관점입니다.

그래서 오늘 정토경전대학에 입학하신 여러분들은 종교가 있든 없든, 종교가 기독교인이든 불교도이든 다 똑같습니다. 불교도도 배고프면 음식을 먹어야 하고 아프면 치료받아야 하고, 기독교인도 배고프면 먹고 아프면 치료받아야 하듯이 우리가 괴롭다면 누구나 다 그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이 가르침을 듣고 그 괴로움에서 거기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궁극적인 목표가 괴로움이 없는 상태에 이른다는 것입니다. 죽어서 천당, 극락 간다는 거나, 믿으면 복을 받는다는 것은 각자 자신의 종교에 따라서 믿으면 됩니다. 또 그런 것을 믿지 않는다고 해도 그것은 여러분의 자유입니다. 그러나 이 가르침은 지금 내가 괴로워하고 어떤 속박을 받고 있을 때 이 법을 알면 그 괴로움과 속박에서 벗어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즉 괴로움이 없고 자유로운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을 팔리어로 ‘닛빠나’, 산스크리트어로는 ‘니르바나’, 이것의 발음을 중국식 한자로 옮겨 우리식으로 읽으면 ‘열반’입니다.
수행해서 궁극적으로 도달하고자 하는 것은 극락이나 천당에 가거나, 복을 받는 것이 아니라 열반을 증득하는 것입니다. ‘열반’은 괴로움이 없는 상태에 이르는 것입니다. 몸이 병들어서 육신이 좀 아프지만 치료받으면 되니깐 마음은 괴롭지 않다, 돈을 잃어버려도 아쉽지만 괴롭지 않다, 같이 사는 사람이 헤어지거나 죽어도 아쉽지만, 이런 경우에도 괴롭지 않은 경지에 이르는 것입니다. 괴롭지 않으니 어떤 상황에 부닥치든 내 중심을 잡고 나는 다시 내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 이것이 목표입니다. 그러니까 기독교인도, 무슬림도, 종교가 없는 사람도 이 법을 공부하면 이런 목표에 이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수행은 종교를 초월해 있다고도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경전이라는 것은 부처님의 말씀을 기록해 놓은 책, ‘수트라’라고도 합니다. 부처님의 말씀 중에, 처음에 ‘부처님께서 괴로워하는 사람과 대화해서 그 사람이 그 괴로움에서 벗어났다.’ 또 ‘부처님은 저 사람의 괴로움을 듣고 대화해서 그 사람이 괴로움에서 벗어났다’ 이런 기록을 모아둔 것이 첫 경전입니다. 지금 제가 즉문즉설 한 것도 모아봐도 만 가지가 넘으니깐 부처님의 이런 이야기도 만 가지도 넘겠죠. 수행자는 이것을 읽고 들어서 괴로움이 없는 경지에 이르러야 하는데, 점점 시간이 흘러가면서 그 천 가지, 만 가지를 기억하는 데만 급급했습니다. 그 천 가지, 만 가지 이야기를 다 기억한다고 하더라도 그 사람에게는 그것이 하나의 지식으로만 남아 있습니다.
지식은 뭘 아는 것이고, 종교는 뭘 믿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는 것은 수행입니다. 수행은 내가 실천하고 경험해서 괴로움이 없는 경지에 이르는 것입니다. 지식이 아무리 많아도 수행을 하지 않으면 괴로움이 없는 경지에 이르지 못합니다. 믿음이 아무리 깊어도 수행을 안 하면 괴로움이 없는 경지에 이르지 못합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그 믿음이 성취되지 않을 때 괴로워하고, 지식을 많이 가진 사람은 그 지식이 자기 삶에 유용하지 않을 때 무용지물이구나 하면서 괴로워합니다. 불교를 많이 알아서 대학에서 강의를 할 수 있어도 그 사람이 수행하지 않으면 그 사람은 우리와 똑같이 괴로워하면서 사는 사람이 됩니다.
우리가 수행하는 목적은 수행을 통해 괴로움이 없는 경지에 이르기 위함입니다. 어떤 상황에 부닥치든 화나거나 미워하거나 원망하거나 불안하거나 초조한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현실에서 설령 순간적으로 욕심이 나고, 화가 나고, 순간적으로 슬프고 원망이 되더라도 짧으면 1초, 짧으면 10분, 길면 1시간 하루 이걸 넘기지 말아야 합니다. 그 경계에 집착해서 내 습관대로 카르마대로 그런 번뇌가 일어났다 하더라도 금방 내가 사로잡혔구나. 알아차리고 괴로움이 없는 경제로 나아가야 합니다. 괴로움이 없는 경지에 이르러야 합니다. 그래서 자기를 괴롭히지 않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어떤 순간에 괴로움이 발생할 때 그냥 괴로워만 하거나 이 괴로움을 덜어달라고 빌 게 아니라 왜 이 괴로움이 발생하느냐를 살펴야 합니다. 그러면 연기된 현상, 또는 무상과 무아의 사실을 알지 못하고 순간적으로 착각해서 그것에 집착하게 되면 괴로움이 발생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 집착을 내려놓으면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 현실은 순간순간 자꾸 상을 짓고 집착하게 되죠. 그래서 8가지의 바른 관점을 가져야 합니다. 말할 때, 행동할 때, 일상에서 늘 바른 관점을 갖고 있어야 이런 괴로움이 발생하지 않게 됩니다.
이런 걸 우리가 불교대학에서 배우고 실천했습니다. 아이가 학교에 가지 않고 남편이 늦게 들어오는 게 문제라면 그냥 상대를 원망할 것이 아니라 왜 나는 아이가 학교에 가지 않는다는 것에 괴로움이 발생하는지, 왜 남편이 늦게 들어온다는 것에 괴로움이 발생하는지를 살펴서 내가 괴로움 없는 경지에 이르고, 괴로움이 없는 상태, 즉 화가 나지 않는 상태에서 아이와 대화해서 학교 가든지 안 가든지 결정합니다. 남편과 대화해서 남편이 일찍 들어오게 하든지 남편이 늦게 들어올 만한 이유가 있으면 그것을 이해하는 방향으로 문제를 해결해 나갑니다.
경전대학에서는 모든 경전을 다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경전 중에 대승불교 경전, 대승불교 경전 가운데서도 선불교와 굉장히 밀접하게 연결된 경전을 공부합니다. 그게 금강경과 반야심경입니다. 이 경전들은 불교 신자가 아니라도 공부할 만합니다. 이러한 경전들은 공부해야 하는 지식이라기보다는, 마음을 어떻게 가지면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 그런 관점을 가르쳐줍니다.

그래서 경전대학에서 우리가 제일 먼저 배우는 것은, 대승불교가 어떻게 일어났느냐 하는 불교의 역사와 대승불교의 가장 초기 경전인 금강경입니다. 여기서 ‘상을 지은 것을 깨고 다시 중도로 돌아와서 자유로운 관점에서 바라보는’ 공(空)사상이 나오게 됩니다. 그러나 금강경에는 아직 공이라는 용어는 등장하지 않습니다. 여기서는 무유정법(無有定法)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계승한 반야심경을 배우게 됩니다. 반야심경에 비로소 공이 등장합니다. 대승불교의 핵심 사상이 바로 공사상입니다. 이렇게 금강경과 반야심경을 공부한 다음, 선불교가 어떻게 일어나는지 역사적 관점에서 그 변화를 공부합니다. 그리고 선불교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경전인 육조단경의 내용을 공부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경전대학은 불교의 전체 역사를 공부하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그래서 경전 대학까지 졸업하면 ‘태국은 테라밧다구나, 중국이나 한국에는 대승불교를 믿고 있구나 대승불교 가운데도 또 선불교가 있구나. 티베트의 불교는 밀교를 말하는구나’ 하고 이 세상의 불교가 전체적으로 어떻게 분포해 있는지 알 수 있게 됩니다. 또 현대에 와서 각 종파와 나라에서 새로운 불교를 일으키는 집단에 대해서도 배웁니다. 특히 서양에 불교가 전파되기 시작하는 모습도 공부합니다. 그들에게 종교로서의 불교는 큰 의미가 없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수행으로서의 불교입니다. 이런 관점으로 지금부터 공부하게 됩니다.
내가 서 있는 이 자리에서 가장 멀리 가는 방법은 뭘까요? 앞으로 계속 걸어서 끝까지 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설명이 소승불교입니다. 한편 ‘앞으로 가서 마지막 끝까지 도달한 곳이 바로 출발점이다. 그래서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 뒤로 딱 돌아서기만 하면 지구 끝까지 왔다.’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이게 바로 대승적 사고방식입니다. 그러니까 ‘앞으로 가서 끝에 도달했다.’ 해도 맞고, 멀리 갈 것 없이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 돌아서면 그곳이 바로 끝이라는 말도 맞는 겁니다. 이것이 공사상입니다.
합리적 사고방식으로는 이해하기 조금 어렵지만 직관으로, 파격적으로 생각하면 아주 쉽습니다. 멀리 갈 것 없이 뒤돌아서면 됩니다. 앞으로 계속 걸어 나가는 건 지구가 편평하다는 전제 위에서 있습니다. 뒤로 돌아서면 된다는 생각은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합리적으로 생각해야 하지만 또한 합리적 사고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적용 범위가 둥글 때는 때때로 뒤돌아설 수 있는 관점도 가져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파격입니다. 신비한 게 아니라 그저 사실입니다. 돌아서면 지구 끝에 왔다는 건 신비한 일이 아닙니다. 이것이 바로 공사상이고, 선불교에서 말하는 직지인심 견성성불(直指人心 見性成佛)의 뜻입니다. 경전대학에서는 이런 내용을 공부합니다. 조금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이것을 공부해야만 진정한 자유인이 될 수 있습니다.
수업 중간에 빠지거나 건너뛰게 되면 알아듣기 힘들어요. 불교대학에서는 중간에 좀 빠지더라도 뒤 수업을 들으면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즉문즉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경전대학 수업은 연결되어 있어서 중간에 빠지면 갈수록 공부가 점점 어려워집니다. 계속 듣다 보면 앞에서 못 알아듣던 것이 뒷부분에 또 반복적으로 나옵니다. 또다시 못 알아들어도 뒤에 또 나옵니다. 그러니 출석을 꾸준히 하면 결국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70퍼센트 이상 들으면 졸업이니까 좀 빼먹어도 된다고 생각하면 안 되고 100퍼센트 듣겠다는 마음으로 학사과정에 임해주시길 바랍니다.

한국인을 포함한 아시아 사람들의 마음 깊은 속에는 파격이 있습니다. 서양 사람들의 합리적 사고를 뛰어넘는 파격이 지금 세상에 필요합니다. 과학이 합리적인 것에 바탕을 둔다면 지금은 그 합리성을 뛰어넘는 파격이 있어야 새로운 과학을 만들어 나갈 수 있습니다.
불교는 파격적인 과학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불교 공부는 학력과 관계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공부한 사람의 정신 수준은 세상의 어떤 학문을 공부한 사람보다 더 높습니다. 이렇게 공부해서 여러분들의 인생이 좀 밝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작은 일에 연연하지 않고, 좀 큰 관점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희망을 갖고 살아가길 바랍니다. 더 나아가서 세상 사람에게도 희망을 주는 사람, 즉 내가 세상에 희망인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다시 한번 여러분들의 경전대학 입학을 축하하며 빠지지 않고 공부하라는 당부의 말씀을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경전대 입학 법문이 끝나자 스님은 8시에 아침 식사를 간단하게 하고 짐을 챙겨서 숙소를 체크아웃했습니다. 오전 9시에 농수로 피해 상황을 점검하기 위해 수해 현장으로 출발했습니다. 어제 FDP 활동가 중 한 명의 도움을 받아 수로 상태를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처음 간 곳은 블랑 메 마을이었습니다. 수해민들이 텐트로 임시 가옥을 만들어서 살고 있었습니다. 주변의 농수로도 둘러보았습니다. 강변에 있던 취수장이 흔적도 없이 실려 내려가 버렸습니다
“큰 댐을 짓고 취수장을 정비하는 것은 정부가 해야 할 일입니다. 취수장에서 농경지로 들어가는 수로와 수로에서 개인 논으로 들어가는 작은 수로들의 피해가 어느 정도 인지 살펴봅시다.”
“스님, 건너편으로 가려면 둘러 가야 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다른 곳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그래도 될까요?”
“네. 가봅시다.”


스님은 다른 수로를 둘러보기 위해서 이동했습니다. 록 응아 마을에 있는 두 번째 수로에 도착했습니다. 차를 타고 수로를 따라 마을로 연결되는 곳까지 가 보기로 했습니다.


수로에 도착했습니다. 댐이 망가져서 취수되지 않으니, 수로가 바짝 말라 있었습니다.

현지 활동가가 설명해 주었습니다.
“지금은 아니지만, 물이 있을 때는 이곳에서 각 마을로 물이 나뉘어 들어갔습니다.”
“물이 없는데 농사는 어떻게 하나요?”
“비 올 때만 짓습니다. 원래 1년에 벼농사를 3번 짓는데, 수로가 없으면 우기에만 1번 농사를 지을 수밖에 없습니다.”
“댐과 취수장을 설치하는 일은 모두 정부가 할 일이네요. 큰 공사라서 우리가 해 볼 수 있는 규모가 아닌 것 같네요.”

스님과 활동가들이 근처 농수로를 점검하고 나니 오전 10시가 되어서 공항으로 출발했습니다.


오후 2시에 공항 근처 식당에 도착했습니다. 아미르 님이 스님께 감사의 마음을 담아 옥 단주와 향나무 단주를 선물했습니다. 스님은 감사를 전했습니다.


점심 식사를 마치니 오후 2시 40분쯤 되었는데, 밖에 비가 억수같이 내렸습니다. 비가 조금 잦아들면 출발하려고 했는데, 비가 잦아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비행기 시간이 있어서 폭우를 뚫고 공항으로 출발했습니다.

오후 3시 15분에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아미르 님과 인사를 하고 스님은 비행기에 탑승하기 위해서 공항으로 들어갔습니다. 환승 시간이 부족한 상황인데, 비행기 출발이 40분 지연되었습니다.

오후 4시 25분에서야 인도네시아 반다아체에서 출발하여 1시간 40분을 비행하고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 도착했습니다. 현지 시각 오후 9시에 쿠알라룸푸르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예정했던 시간보다 40분이 늦게 도착했습니다.

연결시간이 1시 30분이었는데 40분이 늦어진 데다 터미널이 달라서 시간이 매우 빠듯한 상황이었습니다. 마음을 졸이며 비행기에서 다른 승객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제일 먼저 내려서 다음 비행기에 탑승하기 위해서 뛰기 시작했습니다.
내리자마자 터미널1에서 한참 떨어진 터미널2로 최대한 뛰어서 이동했지만, 기차를 타려고 지하로 내려가고, 다시 5층으로 오르고 하면서 긴 시간이 걸렸습니다. 겨우 30분 전에 도착했지만 체크인 카운터가 닫혀서 탑승하지 못했습니다. 아무리 사정을 해도 안 된다고 했습니다.


스님은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부탄에서 온 손님들과 일정이 있기 때문에 급하게 다음 비행기를 알아보았습니다. 다시 그 터미널로 기차를 타고 이동해서 다른 비행기를 알아보았는데 출발 2시간 전이라 판매 카운터가 문을 닫아 표를 살 방법이 없었습니다.
또다시 터미널1로 와서 다음 날 새벽 비행기표를 알아보는데 중국을 거쳐서 가는 비행기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항공권이 딱 한 장 남아 있어서 스님 혼자 먼저 출발하기로 했습니다. 나머지 활동가들은 다음 비행기를 구해서 한국으로 이동하기로 했습니다.

스님은 현지 시각 밤 12시 40분에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출발해서 난징을 거쳐서, 인천 공항으로 도착하는 비행기 편으로 이동하기로 해서 비행기에 탑승했습니다. 인천 공항에는 30일 오전 11시 15분에 도착할 예정입니다.

내일은 부탄 정부 관계자분들이 한국 방문 프로그램을 위해서 인천 공항에 새벽 6시 30분에 도착합니다. 스님은 부탄 정부 관계자들과 함께 일정을 보낼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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