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6.3.13. 스리랑카 5일째, JTS 활동가들과 평가회의
“도울 때는 스스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안녕하세요. 오늘은 스리랑카 방문 마지막 날입니다. JTS 활동가들과 회의를 마치고 5일간의 구호활동 여정을 마무리하고 귀국길에 올랐습니다.

스님은 새벽 수행을 마친 후 6시 10분에 스리랑카JTS 활동가들과 함께 아침 식사를 함께 하며 하루를 열었습니다. 숙소 인근에 사는 활동가가 이른 아침부터 직접 가정식 도시락을 싸다주었습니다.


스리랑카에서 보내는 마지막 아침, 정성이 담긴 밥상을 함께 나누며 활기차게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식사를 마친 후 곧바로 자리를 정리하고, 오전 7시부터는 이번 구호활동에 적극적으로 함께해 준 스리랑카JTS 멤버들과 회의를 가졌습니다.

회의는 담마난다 스님의 선창에 맞춰 남방불교식으로 삼귀의를 함께 올리는 것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붓당 사라낭 갓차미(Buddhaṃ saraṇaṃ gacchāmi)
담망 사라낭 갓차미(Dhammaṃ saraṇaṃ gacchāmi)
상강 사라낭 갓차미(Saṅghaṃ saraṇaṃ gacchāmi)

잠시 명상을 하고, 스님이 오늘 의논하고 싶은 주제 세 가지를 이야기했습니다.

"오늘은 크게 세 가지 주제로 이야기를 나눠보겠습니다. 첫째는 불교적 관점, 즉 어떤 시각으로 인생을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둘째는 우리가 진행해 온 사업을 돌아보며, 앞으로 어떤 부분을 보완해 나가야 할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특히 홍수 피해를 복구하고 재건하는 과정에서 이 사업을 어떤 관점으로 추진해야 할지 함께 짚어보겠습니다. 셋째는 앞으로 스리랑카JTS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함께 생각해보는 것입니다."

첫 번째로 불교적 관점에서 인생을 살아갈 때 어떤 시각을 가져야 하는가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모두 불교를 신앙으로 갖고 있는 활동가들이기 때문에 스님은 부처님의 핵심 가르침이 무엇인지 자세히 설명했습니다.

“첫째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이냐 하는 문제입니다. 사람은 보통 두 가지가 결합되어 있다고 말합니다. 하나는 자연 생태계를 따르는 육신의 삶이고, 다른 하나는 정신적인 삶입니다. 몸이 살아 있다는 점에서는 개나 다람쥐나 벌레나 사람이나 다 똑같습니다. 이런 생명을 가진 존재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한번 봅시다. 작은 벌레도 누가 도와줘서 사는 게 아니라 제 삶을 스스로 살아갑니다. 산속의 다람쥐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처럼 생명이라는 것은, 그것이 사람이든 벌레든,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힘을 본래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스스로 살아가지 못하는 경우도 가끔 있습니다. 성인이 되기 전까지 어린아이들은 부모나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또 다치거나 병이 났을 때도 남의 도움이 필요하지요. 자연에서는 이런 경우 대부분 그냥 죽게 됩니다. 그래서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자립'이 생명의 근원이자 핵심입니다.

도울 때는 스스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어린아이는 어른이 될 때까지 일시적으로만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아이를 도울 때는 어떤 관점에서 도와야 할까요? 바로 자립하도록, 즉 스스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어른은 스스로 사는 사람이고, 아이는 도움이 필요한 존재입니다. 아이를 도울 때는 나중에 스스로 살아갈 수 있게끔 도와야지, 계속 도움을 받게 해서 나중에 혼자 못 살고 의지하게 만든다면 그건 잘못 돕는 것입니다. 자립에 보탬이 되는 도움을 줘야 합니다. 만약 우리의 도움이 오히려 자립에 방해가 된다면 돕는 보람이 없습니다. 누군가를 도울 때는 '돕는 것' 자체가 목표가 아니라, 그 도움이 스스로 살아가는 데 보탬이 되느냐 아니냐를 가장 중요하게 보아야 합니다.

비유를 들어 설명해 보겠습니다. 다리를 다쳐서 걷기 불편할 때 지팡이는 큰 도움이 됩니다. 다리가 낫는 동안은 지팡이를 짚고 다니지요. 그런데 다리가 다 나았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고맙다고 계속 지팡이를 짚고 다녀야 할까요, 아니면 버려야 할까요?”

“지팡이를 버려야 합니다.”

“아무리 도움이 됐더라도 다리가 나으면 지팡이는 버려야 합니다. 부처님께서도 강을 건널 때는 뗏목을 타지만 건넌 뒤에는 뗏목을 버려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고맙다고 뗏목을 메고 가지는 않는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남을 돕는다는 것은 지팡이 역할을 잠시 해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지팡이 역할을 계속 해버리면, 그 사람은 다리가 낫는 게 아니라 오히려 다리 장애인이 되어 버립니다. 그래서 돕는 일은 꼭 필요한 것만 최소한으로 해야지, 무조건 돕는 게 좋은 것이 아닙니다.

어린아이는 스스로 살지 못해 어른의 도움이 필요한 존재이고, 어른은 혼자 살 수 있을 뿐 아니라 오히려 아이를 도울 수 있는 존재입니다. 어린아이는 도움을 받으면서 기쁨을 얻고, 어른은 아이를 키우면서 보람을 느낍니다. 기쁨의 종류가 서로 다른 것이지요.

부처님의 가르침은 어린아이를 어른으로 키우는 것과 같습니다. 스스로 살지 못해 '도와주세요' 하는 사람을 육체적으로는 어린아이라 하고, 정신적으로는 중생이라 합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이런 중생이 어른과 같은 '부처'가 되도록 돕는 것입니다.

담마(Dhamma)란 중생이 부처가 되도록 돕는 가르침입니다. 괴로워하는 중생을 괴로움이 없는 부처로 이끄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입니다. 완전한 부처가 되기 전까지 그 길을 걸어가는 사람을 '보디사트바'라고 합니다. 내 고민이 없고 누구에게 도움받을 일도 없으면서, 어려운 이가 있을 때 도와줄 수 있는 사람, 그가 바로 보디사트바입니다. 중생을 보디사트바로, 나아가 부처가 되도록 이끄는 것, 그것이 부처님 가르침의 핵심입니다.

어떤 도움은 주어야 하고, 어떤 도움은 멈춰야 할까요?

작은 벌레나 다람쥐도 혼자 잘 살아가는데, 그들보다 훨씬 뛰어난 사람은 왜 자꾸 '도와주세요' 하고 비는 것일까요? 어리석기 때문입니다. 어리석은 생각 때문에 벌레나 다람쥐보다 훨씬 큰 존재이면서도 스스로 살아가지 못하고 늘 도움을 청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를 '중생'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어리석음을 깨치고 지혜를 얻으면 스스로 살아갈 수 있을 뿐 아니라 남도 도울 수 있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처님의 가르침은 단순히 돕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그 사람이 자립하도록 돕고, 더 나아가 남을 도울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바로 부처님의 가르침입니다. 그래서 보디사트바가 남을 돕는다고 할 때 핵심은 '돕는 행위' 자체가 아닙니다. 처음에는 도움을 받더라도 결국에는 도움 없이도 살아갈 수 있어야 하고,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사람도 남을 도울 수 있게 만드는 것, 이것이 수행자가 남을 돕는 방식입니다. 바로 이 점이 JTS가 일반적인 자선단체와 근본적으로 다른 이유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물질적으로 돕는 것보다 어리석음을 깨우쳐 스스로 살아가도록 돕는 데 더 집중하셨습니다. 우리가 자립하지 못하는 이유를 부처님은 어리석음이라고 하셨는데, 이것은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탐·진·치, 즉 욕심, 성냄, 어리석음입니다. 이 세 가지 때문에 우리는 자신의 에너지를 스스로를 괴롭히는 데 쓰게 되고, 그래서 자립하지 못하고 늘 남에게 도움을 청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 세 가지를 제거하면 남에게 도움을 청할 필요 없이 스스로 살아갈 수 있고, 오히려 남을 도울 수도 있게 됩니다. 그래서 탐·진·치 삼독을 없애야 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결국 중생의 어리석음을 깨우치도록 돕는 것이 보디사트바의 주된 일이며, 중생이 자립하여 괴로움 없이 살아가도록 돕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런데 동물도 다치면 깨우쳐 줄 수는 없지만 치료는 해줄 수 있지 않습니까?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린아이처럼 당장 깨우치게 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고, 홍수로 살던 집이 떠내려가는 것처럼 위급한 상황에 처한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때에는 먼저 도와주는 것이 우선입니다. 그래서 남을 도울 때는 올바른 관점과 원칙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무엇을 도와야 하고 무엇은 도와서는 안 되는지가 분명해집니다. 예를 들어, 집이 없는 사람이 비를 그대로 맞고 있다면 작은 집이라도 지어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집이 있는데 더 크게 짓고 싶어 하는 사람을 도와주는 것은 수행자가 해야할 일이 아닙니다.

어제 본 두 학교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하나는 절에 있는 학교였고, 다른 하나는 공립학교였습니다. 절에 있는 학교는 깨끗하게 잘 운영되고 있었습니다. 그 스님은 더 좋게 만들고 싶어 하셨습니다. 같은 불자라고 해서 우리가 도와야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것은 JTS가 도와야 할 일이 아닙니다. 그 스님이 하실 일입니다. 그 일이 필요없다는 뜻이 아니라, 그것은 그 스님이 해야 할 일이지 JTS가 나설 일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작은 집을 더 크게 짓는 것이 그 사람의 일이지 우리가 도와야 할 일이 아닌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반면 공립학교에 가보니 교실이 부족했습니다. 강당에 네 개 반이 모여 수업을 하고, 일부 아이들은 밖에서 임시 교실에서 수업을 받고 있었습니다. 두 곳 중 어디를 도와야 하느냐를 생각해 보면 답은 분명합니다. 공립학교입니다. 더 나아가 미얀마처럼 지진이나 태풍으로 학교가 완전히 무너져 천막을 치고 공부하는 곳이 있다면, 그런 곳을 어제 본 공립학교보다 먼저 도와야 할 것입니다. 또 집이 떠내려가 길가에 천막을 치고 사는 사람이 있다면, 학교도 중요하지만 그 사람에게 집을 지어주는 것이 더 급한 일입니다. 도움에도 우선순위가 있다는 말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가 도울 때는 첫째, 가장 어려운 곳을 도와야 하고, 둘째, 자립하도록 도와야 합니다. 조금 더 좋게 만드는 것은 그 사람의 일이지 우리가 도와야 할 일이 아닙니다. 우리 불자들이 해야 할 일은 무지를 깨우쳐 스스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그래서 담마를 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러나 담마를 들을 형편이 되지 않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먼저 물질적으로 돕고, 그다음에 담마를 전해야 합니다. 물질적으로 돕는 것도 이런 제한된 범위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지, 무조건 잘살게 해주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JTS가 무엇이든 다 도와주거나 무조건 잘살게 해준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혼자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상황이거나, 조금만 도와주면 스스로 해낼 수 있는 경우라야 도움이 의미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립이 되도록 돕는 것입니다. 대신 해주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주인이 되어 스스로 설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물이 부족해 농수로를 만들어 달라고 할 때는 ‘당신이 주인인데, 당신은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 하고 먼저 물어보아야 합니다. 무엇을 도와주면 이 사람의 자립에 보탬이 되겠다는 판단이 설 때, 그때 도와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가는 곳마다 "당신은 무엇을 하겠습니까?", "당신 생각은 어떻습니까?" 하고 묻는 것입니다. JTS에서는 고쳐달라고 요청해도 무조건 고쳐주지 않습니다. 그 사람이 ‘제가 이것을 고치려 하는데, 이것만 있으면 할 수 있습니다’ 하고 스스로 하겠다는 의지를 낼 때, 그때 부족한 것을 도와주는 것입니다.

도움을 받던 사람에서 남을 돕는 사람으로

부처님의 가르침이 정신적인 어리석음으로 자립하지 못하는 사람을 깨우쳐 스스로 설 수 있도록 돕는 것이라면, JTS가 하는 일은 물질적인 곤궁함으로 자립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작은 도움을 건네 스스로 일어설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방향은 다르지 않습니다. 물질적 지원도 담마를 전하는 것과 같은 길 위에 있습니다.

인도 보드가야에 '수자타아카데미'라는 학교가 있습니다. 불가촉천민이 사는 가난한 마을인데, 30년 전에는 학교도 없고 아이들이 모두 구걸을 하고 있었습니다. 왜 학교에 가지 않고 구걸을 하느냐고 물었더니 갈 학교가 없어서라는 거예요. 학교가 필요하냐고 했더니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물었습니다.

‘이 아이가 누구 아이입니까? 내 아이입니까, 당신의 아이입니까?’
‘제 아이입니다.’
‘그러면 부모로서 뭘 할 수 있겠습니까?’
‘가난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다시 말했습니다.

‘저는 외국에서 온 결혼도 안 한 스님입니다. 당신이 낳은 아이는 당신이 책임져야지, 왜 스님한테 해달라고 합니까?’
‘가난해서 어쩔 수 없습니다.’
‘그래도 부모로서 뭔가는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벽돌 나르고 시멘트 섞는 일은 할 수 있겠어요?’
‘그건 할 수 있습니다.’
‘땅은 있어요?’
‘갖고 있는 땅이 있습니다.’
‘그러면 아이들이 다닐 학교를 짓기 위해 땅을 조금이라도 내놓으세요.’

그래서 열 명이 못 쓰는 땅을 조금씩 내놓았습니다. JTS가 벽돌과 시멘트 등 자재를 제공할 테니 마을 주민들이 직접 학교를 지으라고 했습니다. 기술이 없다고 하기에 기술자를 구해주었습니다. 며칠 일하더니 집에 먹을 것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하루에 쌀 1kg씩 제공했습니다. 이렇게 학교가 시작되었습니다.

초등학교까지는 무상 교육을 해주었습니다. 그런데 초등학교를 졸업한 아이들이 중학교도 만들어 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물었습니다.

‘그러면 너희는 뭘 할 수 있느냐. 유치원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겠느냐?’
‘가르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오전에 유치원 아이들을 가르치면, 오후에 중학교 과정을 배울 수 있게 해주겠다.’
‘좋습니다.’

이렇게 그냥 도와주는 게 아니라 자기도 뭔가를 해야 JTS는 도움을 줍니다. 중학생은 유치원생을 가르치고, 고등학생은 초등학생을 가르치고, 대학생은 중학생을 가르치는 방식으로 학교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무조건 도와주는 게 아니라 스스로 뭔가를 할 수 있도록 이끄는 것입니다.

우리 마을은 우리가 좋게 만듭시다

지금 스리랑카가 경제적으로 조금 어려운 건 사실입니다. 그러나 제가 볼 때는 남의 도움을 받아야 할 수준은 아닙니다. 그러기에 조금 더 배운 사람, 여유 있는 사람이 어려운 사람을 돕는 운동을 해야 합니다. 즉, 여러분이 '우리나라는 우리가 좋게 만들고, 우리 마을은 우리가 좋게 만든다'는 관점을 가져야 합니다. 그런 생각을 가졌을 때 비로소 JTS 멤버가 될 수 있습니다.

마을 주민들이 '우리가 어떤 일을 하려고 하는데 이것이 부족합니다'라고 하면, 여러분은 '우리가 이런 걸 제공할 테니 여러분과 함께 한번 해봅시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냥 돕는 게 아닙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해 정신적으로 자립하도록 돕는 것처럼, 물질적으로도 자립할 수 있도록 어떻게 도울 것인가 하는 관점에서 일을 해나가야 합니다.

물질적으로 남의 도움이 크게 필요하지 않은 사람들은 정토담마스쿨을 통해 정신적으로 깨우쳐야 하고, 깨우친 사람이 자신의 것을 가난한 이웃과 조금씩 나누는 일을 해야 합니다. 아니면 여러분처럼 봉사를 하면 됩니다.

한국의 정토회 회원들을 보면, 처음부터 '남을 돕겠습니다' 하며 찾아오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대부분 '나 좀 도와주세요' 하며 찾아옵니다. 부부 갈등이 있거나, 아이가 말을 안 듣거나, 너무 괴롭다며 찾아옵니다. 그래서 먼저 부처님의 가르침을 공부합니다. '이게 다 탐·진·치 삼독 때문이구나' 하고 알게 됩니다. 남편 때문도, 아이 때문도, 부인 때문도 아니고 자기가 어리석기 때문이라는 것을 스스로 깨닫게 됩니다. 그렇게 스스로 깨달아 마음이 편안해지니 고마움이 생깁니다. 부처님이 고맙고 법문이 고맙다는 마음이 생깁니다. 그러면 조금씩 기부를 합니다. 어제 마을 사람들이 고맙다며 음식을 만들어 가져왔듯이, 힘들었는데 나아졌다는 고마움으로 보시를 합니다. 그리고 '뭐 도울 일이 없나요?' 하며 봉사도 합니다. 이렇게 처음에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고, 그다음에 기부와 봉사로 이어집니다.

보통 절에서는 큰 기업이나 정부에 '도와주세요'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정토회는 누구에게도 도와달라고 요청하지 않습니다. 개인도 자립해야 하지만 단체도 자립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정토회에 모인 사람들이 보시하고 봉사하면 돈도 모이고 일하는 사람도 생기니, 이것이 활동의 밑받침이 됩니다.

여러분도 스리랑카 안에서 중간 이상의 생활 수준과 교육 수준을 갖추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남을 돕는 일을 해야 합니다. 우리 마을을, 우리나라를 우리 손으로 좋게 만들자는 운동을 함께 펼쳐 나가야 합니다. 지금 여러분이 하고 있는 이 활동이 바로 그 시작입니다. 그냥 남을 돕는 게 아니라 부처님의 법을 전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하는 것입니다.

지난 5일 동안 쌀을 메고 나르며 힘드셨을 겁니다. 그러나 이 기쁨은 부모가 자식을 키울 때 힘들어도 보람이 있는 것과 같습니다. 바로 그런 기쁨입니다. 바로 이런 보람이, 나만을 위한 삶에서 벗어나 이웃과 함께 살아가는 길로 우리를 이끕니다.”

스리랑카JTS 활동가들은 스님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오롯이 집중했습니다.

이어서 잠시 휴식을 한 후 주제를 바꿔 다시 회의를 시작했습니다. 두 번째로 이번 구호활동에서 개선이 필요한 몇 가지 사항을 제안했습니다.

스님은 쌀 배분은 한 곳에서 대규모로 진행하면 받는 사람이 오래 기다려야 하고 먼 곳까지 무거운 쌀을 가져가야 하니 여러 곳으로 나눠 진행할 것, 가방은 학부모가 아닌 학교 교실에서 학생에게 직접 전달할 것, 가방의 크기도 연령대에 맞게 구분해 준비할 것을 당부했습니다. 또한 쿠폰은 정해진 시간에 본인이 직접 와야만 수령할 수 있도록 원칙을 엄격히 지킬 것, 장애인 등 노약자는 사전에 조사해 별도로 대응할 것도 강조했습니다. 아는 사람의 부탁을 거절하기 어려운 상황에 대해서는, 담당 구역을 서로 교차해 책임을 맡는 방식으로 개인적 난처함을 피하라는 현실적인 조언도 덧붙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스님이 긴급 구호의 성격을 분명히 했습니다.

“쌀을 주는 것은 긴급 상황이 발생했을 때 하는 겁니다. 지금은 홍수가 난 지 벌써 3개월이 지났잖아요. 이제는 복구를 지원해주는 방향으로 가야 합니다. 피해가 큰 극빈층에게 따로 지원할 경우에도 개별 조사를 거쳐 대상을 명확히 해야지, 학부모 전체에게 나눠주는 방식은 적절한 방식이 아닙니다.”

피드백을 마치며 스님이 웃으며 말했습니다.

"잘한 게 80%이고, 부족한 20%를 말씀드렸습니다. 이런 부분을 개선했으면 좋겠다는 겁니다. 잘못했다는 뜻이 아니에요." (웃음)

스리랑카JTS 활동가들도 웃음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세 번째로 홍수 피해 복구 사업을 앞으로 어떤 관점에서 어떻게 추진할 것인지, 그리고 스리랑카JTS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 무엇인지에 대해 의논했습니다.

스님은 현장 답사를 바탕으로 우선순위 첫 번째로 마두가스갈라 마을을 꼽았습니다. 주민들이 요청한 다리·농수로·길 세 가지에 대해 각각 구체적인 시공 방식을 제안하며, 비용을 줄이고 동네 주민들이 직접 시공할 수 있는 방법을 중심으로 논의했습니다. 자푸나 지역 학교 세 곳에 대해서도 전기·화장실·문짝 등 자재 지원, 마을 전체를 위한 정수 필터 시설 설치, 철망을 이용한 울타리 정비 등 학교별 필요 사항을 짚었습니다. 산사태 피해를 입은 학교에 대해서는 임시 교실 두 개를 먼저 짓고, 장기적으로는 건설회사를 통해 정식 교실 네 칸을 신축하되 JTS가 70%, 학부모와 교육청, 지역 유지들이 30%를 분담하는 방식을 제안했습니다. 스님이 강조한 기준은 명확했습니다.

“돈이 적게 들고, 일이 쉬우며, 동네 사람들이 직접 만들 수 있어야 합니다. 공사가 커지면 마을 사람들이 외부 기술자를 돈 주고 불러야 하잖아요.”

학교에 동물 침입을 막는 울타리 문제도 거론했습니다. 시멘트 기둥은 비용이 많이 들고, 나무 기둥은 3~4년이면 썩어버리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스님은 독특한 해법을 제안했습니다.


"처음에는 나무 기둥으로 울타리를 만들고, 꽂아두면 살아나는 나무가 있잖아요. 그런 나무를 우기 때 기둥 사이사이에 심어놓으면 3~4년 뒤에 나무 기둥이 썩어도 자란 나무가 기둥 역할을 합니다. 자연 울타리가 되니 보기도 좋고, 돈도 적게 들어요."

회의 말미에 스님은 지금까지 해왔던 구호 물품을 지급하는 일과 앞으로 해야 할 복구 사업의 결정적인 차이를 짚었습니다.

"쌀 주는 건 며칠 준비해서 주는 것으로 끝이지만, 복구 사업은 앞으로 3개월 혹은 6개월 간 공사 현장에 자주 나가서 감독하고 확인해야 합니다. 완전히 수준이 다른 일이에요."

스리랑카JTS 활동가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습니다.

"지금까지 한 건 단순히 주는 거였고, 이건 우리가 관리해야 하는 일이네요. 전혀 다른 일이네요."

스님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습니다.

"이게 원래 하고자 했던 본격적인 일입니다. JTS가 아니라 여러분들이 해야 할 일이에요. 앞으로 스리랑카를 좋게 만드는 일입니다."

앞으로의 운영 원칙에 대해서도 방향을 제시했습니다. 자기 지역이 아닌 먼 곳에서 사업을 벌이는 것은 지속하기 어렵다며, 각 지역에 활동가를 한 명씩 두고 그 활동가를 중심으로 사업을 운영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3개월씩 이어지는 공사를 매주 먼 곳까지 오가며 진행할 수는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스님은 회의를 정리하며 말했습니다.

"이번에 해보면서 어떤 문제가 있는지를 파악하고, 어떻게 개선하면 좋을지를 찾아가면서 조금씩 더 확대해 봅시다."

스리랑카JTS 활동가들이 화답했습니다.

“네, 추후 제안할 것들을 확인하면서 나중에 스리랑카 전체로 확장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회의를 마치려고 하자, 활동가 한 분이 스님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했습니다.

“스님, 지난 3년 동안 우리 스리랑카 사람들을 많이 도와주셔서 고맙습니다.”

“앞으로 담마난다 스님을 스승으로 모시고 주체적으로 잘 해보세요.”

“예, 담마난다 스님과 한국인 활동가분들과 저희들이 잘 의논하고 협력해서 앞으로 더 잘해보겠습니다.”

회의를 마무리하고 마당으로 나가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모두 수고했다고 격려를 한 후 버스에 올라탔습니다.

오전 9시 50분, 숙소를 출발해 콜롬보로 향했습니다.

오후 1시 30분에 담마난다 스님의 사원에 잠시 들러 작별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스님은 지난 5일간 구호 활동에 물심양면으로 힘써 주신 것에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담마난다 스님, 이번에 함께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앞으로 스리랑카 JTS를 잘 만들어나가 보겠습니다.”

담마난다 스님은 새로운 건물을 짓고 있었습니다. 스님은 담마난다 스님에게 불사에 보태쓰시라고 보시금을 전한 후 다시 길을 나섰습니다.

숙소를 출발한 지 약 5시간 만인 오후 2시 40분, 콜롬보에 위치한 스리 이시파타나라마 사원(Sri Isipathanaarama Temple)에 도착했습니다. 이곳은 지난해 7월 평화재단 초청으로 열린 '종교 간 연대와 평화' 대화 모임에 참석했던 앗사지 스님이 운영하는 절입니다. 올해 7월에는 법륜스님과 한국 종교인들이 함께 스리랑카를 방문할 예정이어서, 이번 길에 인사차 들렀습니다.

스님이 차에서 내리자 지난해 한국을 방문했던 아누라 목사님이 가장 먼저 달려나와 반갑게 맞이했습니다.

두 분은 포옹으로 재회의 기쁨을 나눈 뒤 절 안으로 들어가 앗사지 스님과도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세 분은 서로 안부를 주고 받은 후 자연스럽게 JTS 활동에 대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먼저 스님이 이번 스리랑카 방문에서 홍수 피해 지역 주민들에게 구호품을 나눠주었고, 현장을 직접 둘러본 뒤 농수로·다리·길 복구 사업도 진행하기로 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서 올해 7월로 예정된 한국 종교인들의 스리랑카 방문 계획에 대해 의논했습니다. 스님이 먼저 방문의 배경을 설명했습니다.


“지난해 한국에 오셔서 스리랑카 종교인들이 함께 평화를 위해 활동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 한국 종교인들이 많이 감동했습니다. 그래서 직접 스리랑카를 방문해 현장을 보자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현재 5박 6일 일정으로 스리랑카를 방문할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그리고 세부 일정에 대해 의논했습니다. 스님은 종교 간 평화 활동 이야기를 나누는 세미나와 각 종교 시설 방문, 캔디·시기리야·아누다라푸라 등 역사 유적지 탐방을 함께 엮는 방향을 제안했습니다. 다만 80세가 넘는 참가자가 두 분 있어 무리한 일정은 피하기로 했습니다. 방문단은 가톨릭·성공회·개신교·불교·원불교·천도교 등 종교인들과 실무자까지 총 9명 규모로 구성하고, 차량과 숙소는 한국 측이 부담하고, 세미나와 이동 중 식사는 스리랑카 측이 맡는 것으로 정리했습니다. 앗사지 스님과 아누라 목사님은 일정 초안이 나오면 적극적인 협조를 약속했습니다.

이야기를 마친 후 스님은 자리에서 일어나 앗사지 스님, 아누라 목사님과 차례로 작별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7월의 재회를 기약하며 오후 4시, 절을 나와 공항으로 향했습니다.

차로 한 시간을 이동해 공항 근처 식당에서 늦은 점심 겸 저녁 식사를 마친 후 6시에 콜롬보 반다라나이케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스리랑카 JTS 사무국장이자 이번 구호 활동기간 동안 통역을 맡아 준 나말 님이 공항까지 배웅을 해주었습니다. 스님은 지난 5일간 빠듯한 일정 속에 차로 가기 힘든 곳까지 운전을 잘 해준 운전기사 님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함께 기념사진을 찍은 후 출국 수속을 밟았습니다.

탑승구 앞에서 잠시 업무를 보다가 저녁 8시 20분, 콜롬보 반다라나이케 공항을 출발해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비행기는 6시간 45분을 날아 내일 새벽 중간 경유지인 상하이 푸동 공항에 도착할 예정입니다. 5일간의 강행군이 고스란히 피로로 쌓였는지, 스님은 자리에 앉자마자 깊은 잠에 들었습니다.

현지 시각으로 새벽 5시 35분에 상하이에 도착해 8시간 환승 대기를 거친 후, 오후에 다시 2시간을 비행하면 인천공항에서 스리랑카 구호활동 여정의 마침표를 찍게 됩니다.


2026 3월 정토불교대학

전체댓글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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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영

감사합니다 스님🙏
내가 세상의 희망 임을 알겠습니다.

2026-03-16 07:28:02

정태식

“보통 절에서는 큰 기업이나 정부에 '도와주세요'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정토회는 누구에게도 도와달라고 요청하지 않습니다. 개인도 자립해야 하지만 단체도 자립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정토회에 모인 사람들이 보시하고 봉사하면 돈도 모이고 일하는 사람도 생기니, 이것이 활동의 밑받침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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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로움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사람이 되어 이웃과 세상에~

2026-03-16 07:10:08

차덕환

일의 우선순위를 살펴가며 행동하겠습니다.

2026-03-16 07: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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