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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사이클론이 할퀴고 간 감폴라(Gampola) 지역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피해 주민들에게 구호품을 나누어 주기로 한 날입니다.

이른 아침부터 숙소 안이 분주했습니다. 숙소에 간단한 조리가 가능한 주방이 있어서 JTS 활동가들이 전날 시장에서 사 온 채소로 정성껏 아침상을 차렸습니다. 스님은 새벽 수행을 마친 후 오전 6시 10분에 활동가들과 함께 아침 식사를 했습니다.


아침을 든든하게 먹고 스님은 숙소 밖으로 나가 동네를 천천히 걸으며 하루를 열었습니다.

오전 7시 30분, 오늘의 첫 번째 목적지를 향해 길을 나섰습니다. 차는 감폴라 일대의 산길을 따라 달렸습니다. 차창 밖으로는 스리랑카의 아침 풍경이 조용히 흘러갔습니다.


이동하는 중 경치가 좋은 곳에 잠시 차를 세우고 먼 산과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풍경을 사진 한 장에 담았습니다


9시 50분에 감폴라에 도착해 사이클론으로 무너진 도로부터 가보았습니다. 스님은 내려서 짧게 현장을 살피며 말했습니다.

“산사태로 무너진 것이군요. 축대를 쌓아 올려서 도로를 포장해야겠네요. 이런 공사는 정부가 해야 할 일이지, 민간단체가 할 일은 아니에요. 많은 차량이 다니는 도로니까 조금 기다리면 정부에서 공사를 할 겁니다. 국도 같은 주도를 공사하기에도 바빠서 그런 것 같으니까 조금 기다려 봅시다.”
짧게 현장을 확인하고 다시 길을 나섰습니다.

오전 10시에는 감폴라의 스리 수메다 학교(Sri Sumedha College Gelioya)를 찾았습니다. 이곳은 스리랑카JTS 활동가인 나말 님의 부탁으로 방문하게 된 곳입니다.

절과 학교가 함께 운영되고 있었고, 교장이자 주지를 함께 맡고 있는 스님이 먼저 교내를 안내해 준 후 컴퓨터실과 교육 기자재 지원 등을 요청했습니다.

학교를 둘러본 스님이 말했습니다.

“학교를 아주 깔끔하게 잘 운영하고 계시네요. 절에서 이런 학교를 운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번에는 홍수 피해 지역을 살펴보러 왔기 때문에 우선은 피해 지역을 먼저 지원하겠습니다. ”
스리랑카를 방문한 취지는 분명했지만, 스님은 현지에서 만난 사람들의 요구도 존중하고 경청했습니다.

이어 절에서 주지 스님이 차를 대접해 주었습니다. 차를 마시며 학교 운영에 관한 이야기가 오갔습니다.


정부 지원 없이 학생들에게 소정의 수업료를 받아 교사 월급을 충당하며, 유치원부터 초등 과정까지 운영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규모는 크지 않았지만, 학교는 정갈하게 정돈되어 있었고, 공립학교보다 더 깨끗하고 잘 가르친다는 평판이 있다는 말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주지 스님에게 보시금을 전달한 후 절을 나왔습니다.


오전 10시 50분이 되어 스님과 JTS 일행은 우다알루데니아 학교(Uda Aludeniya Maha Vidyalaya)로 향했습니다.

이곳은 사이클론의 상흔이 더 또렷하게 남아 있었습니다.

학교 뒤편 언덕에서는 산사태가 나 있었고, 10미터 가까이 되는 축대가 무너져 내려 학교 건물을 위협하고 있었습니다.


현장을 둘러본 스님이 곧바로 상황을 파악하고 말했습니다.

"이건 주민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일반인이 할 수 있는 공사가 아니고, 전문 건설업자가 맡아야 하는 정부 프로젝트입니다."
무너진 축대는 학부모들이 품을 들여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축대만이 아니었습니다. 학교 안으로 들어서자, 교실 부족 문제가 훨씬 더 절실하게 다가왔습니다. 학생 710명이 1학년부터 13학년까지 공부하고 있었는데, 교실이 크게 부족했습니다. 강당 한 공간에서 네 학급이 동시에 수업을 듣고 있었고, 어떤 반은 야외에서 수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한 공간에 여러 수업 소리가 겹쳐 울리는 모습을 본 스님은 잠시 걸음을 멈추고 한참 살폈습니다. 스님은 먼저 급한 문제부터 풀어가자고 했습니다.

"지금 당장 정식 건물을 짓기에는 시간이 걸립니다. 우선 아이들이 쓸 수 있도록 임시 교실부터 마련하면 좋겠네요. 파이프와 지붕 재료를 제공할 테니, 학부모들이 직접 임시 교실 두 개를 만들 수 있는지 먼저 의논해 보세요. 학부모 회의를 열고, 필요한 재료 목록과 함께 프로젝트를 제출하면 검토하겠습니다."
스님은 무너진 사면도 다시 살폈습니다. 흙이 흘러내리는 경사를 계단식으로 잘라 축대를 쌓아 올리면, 이 부분은 학부모들의 노동으로도 어느 정도 손볼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다만 이 역시 학교와 학부모들이 실제로 나설 수 있는지 먼저 확인하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스님은 직접 종이에 그림을 그려가며 무너진 사면을 복구할 방법을 제안했습니다.


본 건물 증축은 다른 차원의 문제였습니다. 학교 부지의 형편을 살핀 끝에, 새 교실을 짓는다면 2층으로 4칸 정도를 짓는 방안이 현실적이라는 판단이 나왔습니다. 그러나 이 공사는 학부모들의 자원봉사만으로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스님은 조건을 분명히 제시했습니다.

“본 건물을 짓는다면 그건 학부모들이 직접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건설업자가 해야 합니다. 보통 전체 건설비의 70퍼센트 정도는 재료비이고, 30퍼센트는 기술자와 노동자 인건비입니다. 재료비는 우리가 부담할 수 있어도 인건비는 학교 측이 자체 모금하거나 교육청 지원을 받아야 합니다. 우선은 임시 교실을 마련한 후 무너진 축대부터 보수하고, 그다음 단계로 본 건물을 논의합시다.”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현장을 답사하는 내내 스님은 무엇이 급한지, 누가 할 수 있는지, 어디까지 주민 참여로 가능한지, 어디부터가 정부와 전문 기술자의 영역인지를 꼼꼼히 살폈습니다.

오전 11시 30분, 툭툭으로 갈아타고 또 다른 피해 현장으로 이동했습니다.


좁은 골목길 안쪽, 담벼락이 무너져 내리면서 길이 끊겨 있었습니다.

집 뒤편에서 흘러내린 흙과 콘크리트 덩어리가 길을 막고 있었고, 이 길을 이용하는 가구만 80가구에 달했습니다. 사람은 간신히 다닐 수 있었지만, 툭툭은 지나갈 수 없었고, 아픈 사람이 생겨도 멀리 돌아가야 하는 형편이었습니다.


정상적으로 공사를 하려면 큰 공사가 되므로 주민들은 임시로라도 툭툭이 다닐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스님은 현장을 찬찬히 살핀 뒤 주민들이 할 수 있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짚었습니다.


“샌드백을 밑에서부터 조금씩 안쪽으로 기울여 쌓아 길 높이까지 올릴 수 있습니다. 그렇게 고른 다음 위에 콘크리트로 포장하면 비가 와도 버팁니다. 마을 주민들끼리 의논해서 함께 하겠다고 하면 JTS에서 시멘트를 지원해 드리겠습니다.”
본격적인 도로 정비는 정부가 해야 할 일이었지만, 정부 손길이 닿기까지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 사이를 주민 스스로 버틸 수 있도록 재료를 지원하는 것, 그것이 JTS가 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스님은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을 현장에서 다시 한번 선명하게 나눴습니다.

낮 12시, 스님과 JTS 일행은 구호품 배분 장소인 절에 도착해 점심을 먹었습니다. 스리랑카JTS 현지인 활동가들이 각자 집에서 반찬을 만들어 와 점심상을 차려 주었습니다.


잠시 숨을 고른 뒤 오후 12시 30분부터 본격적인 배분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물품을 정리하고 동선을 점검하며 사람들을 맞을 채비를 했습니다.




오후 1시 40분이 되어 감폴라 지역 학생을 포함한 총 1,000가구를 대상으로 구호품 배분을 시작했습니다. 배분에 앞서 스님은 주민들 앞에 서서 직접 인사말을 했습니다.


“저는 한국에서 온 법륜이라고 합니다. 지난번에 사이클론 디트와(Ditwah)로 인해 많은 피해를 입으셨지요? 저도 한국에서 스리랑카, 태국, 인도네시아에 100년 만의 큰비가 내려 많은 피해를 입었다는 소식을 듣고 무척 안타까웠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아픈 마음을 조금이라도 함께 나누고자 저희가 작은 선물을 준비했습니다. 지금은 피해를 입어 어렵지만, 해가 져도 자고 일어나면 다시 해가 뜨듯이 시간이 지나면 우리도 다시 일상을 회복해 나갈 수 있습니다. 잠시 어려울 수 있지만, 모두 힘을 합해 이 어려움을 극복해 갑시다.

이렇게 구호품을 지원할 수 있도록 준비해 준 담마난다 스님을 비롯해 스리랑카JTS 활동가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이 절을 배분 장소로 사용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신 주지 스님께도 감사드립니다. 작은 선물이지만 여러분이 어려움을 이겨 내는 데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어서 담마난다 스님이 주민들을 격려하는 인사말을 한 후, 이윽고 기다리던 주민들이 차례로 앞으로 나섰습니다. 먼저 스님이 아이들에게 책가방을 나눠주었습니다. 아이들의 책가방 속에는 학용품이 가득 들어 있었습니다.




새 책가방을 맨 아이들은 신이 나서 입가에 미소가 떠나질 않았습니다.


이어서 JTS 활동가가 어른들에게 쌀을 건네주었습니다. 한 가구에 쌀 10kg 두 포대씩이었습니다. 쌀을 받아 든 주민들은 무더운 날씨에도 환하게 웃었습니다.






주민들은 질서 있게 줄을 서서 구호품을 받아 갔고, JTS 활동가들은 현장을 분주히 오가며 배분을 도왔습니다. 일손이 부족해 배분을 받으러 온 사람들 중 일부가 물품 나르는 일을 도왔습니다.


구호품을 받아 든 주민들은 저마다 다른 모습으로 절을 빠져나왔습니다. 머리에 포대를 인 채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는 할머니도 있었고, 양손에 짐을 나눠 든 채 조심스럽게 걸어가는 아주머니도 있었습니다. 어깨에 포대를 둘러멘 젊은이는 힘찬 걸음으로 앞서 나갔습니다. 무거운 짐을 들고도 주민들의 표정에는 오히려 생기가 돌았습니다.






한 시간 만에 배분을 마쳤습니다. 스님은 오늘 하루 배분을 위해 봉사해 준 활동가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 후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다시 차를 타고 숙소로 향했습니다. 오후 3시 20분에 숙소에 도착했습니다.

오후에는 정비하는 시간을 가진 후 저녁 8시에 스리랑카JTS 활동가들과 함께 다시 한자리에 모여 식사를 했습니다. 한국인 활동가들은 한국에서 가져온 라면을 끓였습니다. 스리랑카 활동가에게 먹고 싶은 음식을 사 오라고 하자 KFC 도시락을 사 왔습니다. 식사를 시작하며 스님은 먼저 고마운 마음을 전했습니다.

"오늘 하루 종일 고생했습니다. 지난 3일 동안에도 정말 수고했습니다. 한 군데에서만 구호품 배분을 준비하기도 어려운데 세 군데나 준비하고, 그것도 북쪽 자프나(Jaffna)와 가까운 타밀 지역까지 다니느라 정말 애썼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감사드립니다.“

식사를 마치고 스님은 오늘은 일찍 쉬고 내일 깊이 이야기를 하자고 제안했습니다.


“앞으로 해야 할 일은 단순한 지원이라기보다 복구입니다. 지원은 주기만 하면 되지만, 복구는 주민들과 몇 달에 걸쳐 함께 사업을 해야 하니 일이 많습니다. 오늘은 피곤하니 쉬고, 내일 아침 일찍 다시 모여 이야기합시다. 앞으로 어떤 원칙으로 활동할지, 오늘 둘러본 곳 가운데 무엇을 어떻게 더 지원할지 함께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스님은 활동가들에게 단주를 하나씩 나누어주고 숙소로 돌아가 하루 일과를 마쳤습니다.

내일은 스리랑카JTS 활동가들과 앞으로 복구 원칙과 지원 방향에 대해 논의한 후 콜롬보로 가서 앗사지 스님과 아누르 목사님을 만납니다. 저녁에는 한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콜롬보 공항으로 가서 상하이로 가는 비행기에 탑승할 예정입니다.
오늘은 법문이 없었기 때문에 지난달 25일 정토사회문화회관에서 열린 수행법회에서 스님과 질문자가 나눈 대화 내용을 소개하며 글을 마칩니다.
“저는 2년 전 업무 때문에 미국에 왔고, 최근 시험관 시술을 받고 있습니다. 시술 후 동결 배아가 남게 되면 폐기할지, 연구나 교육에 기증할지, 아니면 다른 난임 부부에게 기증할지를 선택해야 한다고 합니다. 한국에서는 시술 후 남은 동결 배아를 대부분 폐기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미국에서는 폐기 외에도 다른 선택지가 있다는 사실이 낯설고, 직접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 어렵게 느껴집니다. 처음에는 굳이 폐기하기보다는 기증하는 쪽을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배아가 아기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니 연구에 사용하는 것도 마음에 걸립니다. 그렇다고 다른 부부에게 기증하자니, 저의 유전자를 가진 아이가 누군가의 뱃속에서 자란다고 생각하면 이상한 감정이 듭니다.
남편은 병원에서 시술비는 비싸게 받으면서 배아는 무상으로 기증받는 의료 구조가 못마땅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시술 후 남은 배아에 대한 결정은 제 선택에 따르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한 달이 넘도록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불교적 관점에서는 이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는 것이 바람직한지, 어떤 기준으로 선택하면 제 마음이 가벼워질 수 있을지 여쭙고 싶습니다.”
"불교적 관점에서는 어떻게 해도 괜찮습니다. 질문자가 지금 불교적 관점에 서 있지 않기 때문에 이래도 문제이고 저래도 문제인 것입니다. 불교적 관점에서 보면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헷갈리지 않습니다. 시비분별로 보기 때문에 이것을 선택하면 저것이 문제가 되고, 저것을 선택하면 이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첫째, 배란된 난자는 수정되지 않으면 상당수가 자연스럽게 소멸합니다. 그러니 배아를 그대로 두어 자연스럽게 소멸되도록 해도 됩니다. 그것이 무엇이 걱정입니까? 예를 들어 똥은 자연에 그냥 두면 땅속으로 스며드는데, 그것을 굳이 받아서 양동이에 담아 두었기 때문에 '밭에 거름으로 써야 하나, 남에게 줘야 하나, 버려야 하나?' 하고 고민이 생기는 것과 같습니다. 가지고 있으니, 고민이 생기는 것입니다. 본래는 자연스럽게 소멸해도 아무 문제가 없는 일입니다. '폐기'라는 말조차 필요 없습니다. 그냥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것입니다.
둘째, 어차피 소멸할 것이라면 다른 사람에게 기증해 도움이 되도록 할 수도 있습니다. 아이를 간절히 원하지만 갖지 못하는 부부가 있다면, 동결 배아를 기증해 그 아이가 태어나게 할 수도 있습니다. 직접 키우지 않더라도 다른 곳에서 자란다고 해서 무엇이 문제이겠습니까?
셋째, 아직 완전한 생명으로 성립되지 않았다고 본다면 배아를 연구용으로 기증하는 선택도 가능합니다. 사람이 사망한 뒤 시신을 연구용이나 의대 교육용으로 기증하기도 하지 않습니까? 어차피 화장을 하든 매장을 하든 죽은 몸은 자연으로 돌아가 소멸하는 것인데, 연구를 위해 사용하도록 하는 것도 하나의 선택입니다. 배아를 기증하는 것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부처님께서도 돌아가신 뒤 장례를 어떻게 치르는 것이 좋겠느냐는 제자들의 질문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너희가 신경 쓸 필요가 없다. 재가 신자들이 그들의 풍속대로 할 것이다.'
지역에 따라 토장을 할 수도 있고, 화장을 할 수도 있으며, 수장이나 풍장을 할 수도 있습니다. 어떤 방식으로 장례를 치르느냐는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배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냥 폐기하는 대신 필요한 곳에 쓰이도록 하는 것은 선택의 문제이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닙니다. 지금 여기서 결론을 내리겠습니까, 아니면 집에 가서 결정하겠습니까?"
"네, 명쾌해졌습니다. 그냥 폐기하기보다는 기증하겠습니다. 제가 배아에 조금 집착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집착이 있다면 차라리 폐기하는 편이 나을 수 있습니다. 질문자와 같은 성향이라면, 배아가 한 생명체로 태어나 다른 가정에서 자라고 있다는 사실을 평생 마음 한편에 담고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디를 가든 나와 비슷한 사람이 보일 때마다 '혹시 저 사람이 내 배아로 태어난 것은 아닐까?' 하고 상상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 심리적 집착이 남아 있다면 폐기하는 것이 오히려 더 편할 수 있습니다.“

"똥에 비유해 주신 말씀이 크게 와닿았습니다. 병원에서 배아의 등급을 나누어 설명해 주다 보니 저도 모르게 더 '사람'처럼 여기게 된 것 같습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이식하더라도 반드시 성공하는 것은 아니고, 그렇다면 결국 자연적으로 소멸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많이 집착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길을 가다가 아이들을 볼 때마다 집착하게 될 것 같아서 다른 난임 부부에게 기증하는 것까지는 선택하기 어렵고, 연구용으로 기증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자연 상태에서는 난자가 한 달에 하나씩 배란됩니다. 그렇다면 1년에 열두 개가 배란되는 셈입니다. 20년, 30년을 계산해 보면 그동안 자연스럽게 소멸한 난자도 상당히 많을 것입니다. 그런데 왜 지금 이 몇 개에 대해서만 특별히 고민합니까?" (웃음)
"어렵게 수정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모아 두었기 때문에 고민이 생기는 것입니다."
“네, 알겠습니다. 마음이 가벼워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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