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6.3.10 스리랑카 극빈자 구호 2일째, 테랑칸다, 만쿨람 1000가구 배분
“집에만 있고 취직도 안 하는 남자 친구, 헤어져야 할까요?”

안녕하세요. 오늘은 홍수 피해 지역 후속 지원과 극빈자 구호 활동을 위해 스리랑카를 방문한 지 2일째 되는 날입니다.

스님은 새벽 수행과 명상을 마친 후 오전 5시 30분에 숙소 식당에서 누룽지로 아침 식사를 했습니다.

오늘은 스리랑카 북부 자프나 근교에 위치한 만쿨람(Mankulam)과 테랑칸다(Therankanda) 일대의 학교와 마을을 돌아보고, 오후에는 1,000가구에 구호 물품을 배분하는 일정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나말 님이 콜롬보(Colombo)에 시험을 치르러 가게 되어 오늘은 한국어를 잘하는 켈롬 님이 안내와 통역을 맡아 주기로 했습니다. 켈롬 님과 인사를 나누고 오전 6시에 길을 나섰습니다.

출발하자마자 주유소부터 들렀지만, 두 곳에서 연거푸 기름을 구하지 못했습니다. 기름값이 폭등해 사람들이 너도나도 기름을 구하고 있었습니다. 세 번째 주유소에서야 겨우 주유를 마치고 출발할 수 있었습니다.

차창 밖으로는 추수철을 맞은 노란 들판이 길게 펼쳐지고, 들판 너머로 해가 떠올랐습니다.

차로 3시간 30분을 달려 오전 9시 30분에 만쿨람의 바니빌란쿨람 학교(Vannivilankulam School)에 도착했습니다.

1학년부터 11학년까지 200명이 다니는 정부 학교였습니다. 이 지역은 내전 당시 남부에서 올라온 타밀 이주민들이 정착한 곳입니다. 1984년 스리랑카 내전 때 피난을 왔던 이들 가운데 한 사람이 지금 교장으로 일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학교 안으로 들어서니 오래된 건물 곳곳에 세월의 흔적이 남아 있었습니다. 교실 창틀은 군데군데 훼손되어 있었고, 창 대신 덧댄 철망도 뜯긴 채 방치되어 있었습니다. 천장 선풍기는 대부분 없었고, 천장에 달린 것 가운데에도 제대로 작동하는 것이 세 개 정도뿐이었습니다.

학교는 지난 25년 동안 외부 단체의 도움을 받은 적이 거의 없었고, 정부에 여러 차례 요청했지만 예산이 없다는 답만 돌아왔다고 했습니다.

스님은 먼저 화장실부터 자세히 살폈습니다. 변기를 들여다보고, 물이 나오는지 확인하고, 수도꼭지 하나하나를 짚어 보았습니다. 그리고 당장 무엇이 가장 시급한지를 짚었습니다.

“제일 급한 게 화장실인 것 같아요. 학생이 200명이면 여학생만 100명인데, 대부분 화장실이 망가져 있고, 저 두 칸만 갖고 사용하니 어떻겠어요? 볼일을 아무 데서나 보니까 화장실에 대한 문제의식이 별로 없는 것 같아요. 그래서 학교에서부터 화장실을 깨끗하게 사용하도록 가르쳐야 하고, 그러려면 먼저 화장실이 깨끗하게 고쳐져야 합니다.”

학교 측은 창문과 철망, 전기선 복구를 요청했습니다. 함께 학교를 돌아보며 훼손된 전기선 정비, 창문 수리, 화장실 보수 같은 항목을 하나씩 짚어 보았습니다. 스님은 낡은 것과 당장 위험한 것을 구분해서 봐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이 정도면 열악하긴 해도 괜찮은 편이에요. 미얀마에 있는 난민캠프에 가면 교실이 없어서 전부 천막을 쳐놓고 수업하는 곳도 많거든요. 그렇지만 아이들에게 위험할 수 있는 전기선을 정비하는 문제와 화장실은 고쳐야겠네요. 어떻게 지원할지 전체를 다 둘러보고 나서 판단해 봅시다.”

첫 번째 학교 점검을 마치고 다시 길을 나섰습니다.

오전 10시 15분에는 두 번째로 바부니쿨람의 M. 암팔푸람 타밀 비드얄라얌 학교(M. Ampalpuram Tamil Vidyalayam, Vavunikulam)에 도착했습니다.

이 학교는 1학년부터 5학년까지 47명이 다니는 작은 학교였습니다. 교실은 다섯 개였고, 화장실은 교사용과 학생용을 합해 두 칸뿐이었습니다.

학교 측은 지하수에 석회가 많아 정수기 설치가 필요하다고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현장을 살펴본 결과, 필터를 계속 교체해야 하는 문제여서 정수기만 설치한다고 근본적인 해결이 되기는 어려워 보였습니다.

오히려 화장실 환경이 훨씬 열악해, 화장실을 수리하거나 신축할 필요가 있어 보였습니다. 현재 있는 화장실의 문도 고장이 나 아이들이 서로 문을 잡아주며 화장실에 가고 있었습니다. 교사 기숙사가 없는 점도 운영상의 어려움으로 보였습니다.

학교를 다 둘러본 후 인근 정수 시설을 보러 이동했습니다.

오전 10시 40분, 물을 공급하는 마을 정수 시설에 도착했습니다. 이 시설은 2021년에 설치되었고, 15일마다 필터를 교체한다고 했습니다.

약 2톤 규모의 물탱크 두 개를 갖추고 있었고, 주민들은 20리터에 100루피를 내고 물을 사 갔습니다. 현장에서는 약 350가구가 이 시설을 이용하고 있고, 하루 생산량은 500리터에서 700리터 정도라고 설명했지만, 정확한 수치는 더 확인이 필요해 보였습니다. 정수기가 없는 이웃 마을 주민들까지 이곳을 이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식수 문제가 한 마을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정수 시설을 둘러본 뒤 스님은 물 문제의 심각성을 짚었습니다.

“스리랑카는 물 때문에 환자가 많이 발생하고 있어서 사실은 마을마다 정수기가 필요합니다.”

오전 10시 50분, 다시 길을 떠나 오전 11시 5분에 테랑칸다의 GTMS 학교(GTMS School)에 도착했습니다.

교문 앞에는 아이들이 한 줄로 서서 꽃을 건네고 손뼉을 치며 스님과 JTS 일행을 맞았습니다.

운동장에는 의자가 동그랗게 놓여 있었습니다. 자리에 앉자, 코코넛 주스를 가져다주었습니다.

학교에는 1학년부터 11학년까지 220명의 학생과 20명의 교사가 있었고, 학생 대부분은 전쟁 이주민의 자녀들이라고 했습니다.

학교 안을 돌아보며 여러 요청 사항을 들었습니다. 급식을 하고 있는 식당에는 문이 없어 원숭이와 개가 들어와 아이들 밥을 빼앗아 간다고 했습니다. 운동장 주변으로는 멧돼지와 코끼리 같은 야생동물이 들어와 울타리가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또 비가 오면 학교 뒤편과 교문 쪽으로 물이 넘쳐 들어와 마당이 물바다가 된다고 했습니다.

스님은 교문 앞으로 가서 빗물이 흘러드는 방향과 수로의 높낮이를 직접 살폈습니다. 학교 측에서는 교문 앞 전체를 콘크리트 수로로 만들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스님은 더 적은 비용으로도 실질적인 효과를 낼 수 있는 방법을 제안했습니다.

“이 수로 전체를 시멘트로 하는 건 정부에서 할 일이지, JTS가 할 일은 아니에요.”

교문 양옆 수로를 따라 시멘트벽을 세우고, 입구 바닥을 조금 파낸 뒤 메쉬 철망으로 덮으면 빗물이 곧장 학교 안으로 흘러드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스님은 꼭 필요한 구간만 보강하고, 나머지는 물길을 터주면 된다고 설명했습니다.

"여기를 한 1피트 정도 땅을 파서 그 위에 철망을 덮는 겁니다. 철망을 이렇게 덮어 놓으면 물이 학교로 들어오지 않고 수로로 흘러가게 됩니다.“

그리고 주민들이 함께 손을 보탤 수 있는지를 확인했습니다.

"자재를 지원해 주면, 주민들이 작업을 할 수 있겠나요?“

교장은 곧바로 할 수 있다고 답했습니다. JTS는 일방적으로 지원하지 않고, 주민들이 함께 참여하는 방식을 원칙으로 삼고 있습니다.

이 학교는 담마난다 스님이 9년 전부터 인연을 맺어 온 곳으로, 지역 주민들에게 공구를 빌려주는 조합 사업도 함께 이어 오고 있었습니다. 학교 옆에 있는 공구 창고도 둘러보았습니다. 창고에는 갖가지 공구가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또한 1학년부터 5학년까지는 무료 급식을 하는데, 한 사람이 80여 명의 아이들이 먹는 점심을 혼자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스님은 급식 담당자에게 인사를 건네며 안타까운 마음을 전했습니다.

“한 명이 80인분의 밥을 하려면 무척 힘들겠어요. 고마워요.”

낮 12시가 되어 학교 점검을 모두 마치고 점심식사 장소로 이동했습니다.

식당에 들러 점심식사를 한 후 1시 50분에 구호 물품 배분을 위해 학교로 향했습니다. 아이들이 학교 수업을 마친 뒤에 배분을 시작해야 했기 때문에, 물품 배분은 오후 2시에 맞추어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교문 앞에 도착하자 아이들이 다가와 꽃목걸이를 걸어 주고, 악대가 연주를 시작했습니다.

악대의 연주 소리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스님과 일행은 운동장으로 나갔습니다.

운동장으로 들어서 향을 피우는 의식을 올리고, 건물 앞에 마련된 무대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스님과 JTS 일행이 자리에 앉자, 학생들이 정성껏 준비한 전통 공연을 선보였습니다.

마을 주민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스님께 인사 말씀을 청했지만, 스님은 담마난다 스님이 인사하시도록 자리를 양보했습니다.

담마난다 스님의 인사 말씀이 끝나고, 무대에서 시범 배분을 진행했습니다. 스님과 담마난다 스님, JTS 대표 박지나 님, JTS 사무국장 박영숙 님, 스리랑카 JTS 사업 책임자 김윤미 님도 함께했습니다.

이어서 창고 앞으로 자리를 옮겨 본격적인 배분이 시작되었습니다. 테랑칸다와 만쿨람 일대 22개 학교의 저소득층 가구 1,000세대가 대상이었습니다. 아이들에게는 가방과 학용품을, 각 가정에는 쌀 10kg 두 포대씩 20kg을 전달했습니다. 공책, 연필, 스케치북, 물병 같은 학용품은 미리 가방 안에 넣어 두었습니다. 스리랑카 JTS 현지 봉사자들은 이틀 전부터 현장에 나와 물품을 하나하나 준비해 두었습니다.

2,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이다 보니 현장은 생각보다 훨씬 혼잡했습니다. 그러나 JTS 활동가들과 마을에서 자발적으로 나선 봉사자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배분을 차질 없이 이끌었습니다.

두 손으로 가방을 받아 든 아이들은 눈을 반짝이며 기뻐했습니다.

묵직한 쌀 포대를 머리에 이거나 품에 꼭 안고 돌아서는 부모들의 얼굴에도 환한 웃음이 번졌습니다.

두 시간 동안 비 오듯 땀을 흘리며 배분을 했습니다. 오후 4시가 되어서야 배분을 마치고 스님은 활동가들과 함께 환하게 웃으며 기념사진을 촬영했습니다.

오늘까지 봉사를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현지인 활동가들에게는 스님이 단주를 선물했습니다.

“다들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오후 4시 10분에 마을을 나와 다시 길을 나섰습니다. 이동하는 동안 차창 밖으로 해가 저물었습니다.

차로 2시간 20분을 달려 오후 6시 30분에 아누라다푸라(Anuradhapura)에 있는 하르샤(Harsha) 박사님의 사무실에 도착했습니다. 하르샤 님은 INEB(참여불교국제연대)의 대표이자 세바랑카 재단(Sevalanka Foundation) 이사장을 맡고 있습니다. 스리랑카 안에서 불교, 힌두교, 무슬림, 기독교 사이의 종교 간 평화 연대 활동을 이끌며 오랜 시간 스님과 교류를 이어온 분입니다.

원래 예정에 없던 일정이었지만, 스님이 하르샤 박사님에게 스리랑카를 방문했다는 소식을 전했고, 일정이 맞아 오늘 돌아가는 길에 만나게 되었습니다. 스님이 도착하자 하르샤 박사님이 직접 밖으로 나와 반갑게 포옹했습니다.

자리에 앉아 간단히 안부를 나눈 뒤, 스님은 이번 스리랑카 방문의 경위를 설명했습니다. 원래 스리랑카 방문 계획은 없었지만, 다른 해외 일정이 변경되면서 이번에 방문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이번 방문의 목적은 스리랑카에서 진행 중인 홍수 피해 복구 지원 현장과 북부 타밀 이주민 지역의 상황을 직접 살펴보는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그리고 지난달 인도에서 함께 참가했던 비베카난다(VIF) 국제재단 심포지엄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하르샤 박사님은 올해 12월에 세계 평화를 위한 종교 간의 대화가 뭄바이에서 열릴 예정이라는 소식을 알려주었습니다.

“올해 12월 뭄바이에서 불교, 힌두교, 도교, 유교, 일본 신도 등 아시아의 다섯 종교가 한자리에 모여 세계 평화를 주제로 대화하는 자리가 추진되고 있습니다. 저도 연락을 받았는데, 스님께서도 함께하시면 좋겠습니다.”

대화는 자연스럽게 종교 간 협력 이야기로 이어졌습니다. 스님은 한국에서 여러 종교인이 오랫동안 함께 평화 활동을 이어 온 경험을 이야기했습니다.

“우리는 한국에서 여섯 개의 종교인이 벌써 이십 년 가까이 매달 만나고 있어요. 지난해 스리랑카 종교 지도자들이 한국을 방문해 자신들의 종교 연대와 평화 활동을 소개했을 때 한국의 종교인들도 큰 관심을 보였어요. 그래서 올해 7월에 한국의 종교 지도자들과 함께 스리랑카를 방문할 예정입니다. 그때 또 봅시다.”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스님은 필요하면 앞으로 방콕에서 다시 만나 더 깊이 이야기해 보자고 제안했습니다. 저녁 7시 30분, 하르샤 님과 대화를 마치고 숙소로 출발했습니다.

차로 1시간 30분을 이동하여 밤 9시에 숙소에 도착한 후 긴 하루 일정을 마무리했습니다.

오늘은 법문이 없었기 때문에 지난 6일에 진행된 금요 즉문즉설 생방송에서 스님과 질문자가 나눈 대화 내용을 소개하며 글을 마칩니다.

집에만 있고 취직도 안 하는 남자 친구, 헤어져야 할까요?

“남자 친구와의 관계에서 권태기가 온 것 같습니다. 지금 사귀는 남자 친구는 집에만 있고, 취직할 생각도 없어 보이고, 책임감도 없어 보입니다. 저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권태기가 왔다, 취직도 안 한다, 집에만 있다, 책임감도 없다. 그러면 제가 '사귀지 마세요'라고 할까요, 아니면 '계속 사귀세요'라고 할까요?”

"좋을 대로 하라고 하실 것 같습니다." (웃음)

"질문자가 말한 내용 속에도 남자 친구의 좋은 점은 있습니다. 첫째, 집에만 있다는 것도 좋은 점입니다. 돌아다니며 다른 여자를 만나지 않는다는 것만 해도 괜찮습니다. 요즘은 연애를 하면서도 다른 여자를 만나 골치 아픈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또 집에만 있으니, 수입이 없더라도 돌아다니며 돈을 쓰지는 않습니다. 그러니 한 가지 단점만 보지 말고, 그 안에 있는 좋은 점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선택의 문제입니다. 좋으니까 갖고, 싫으니까 버린다는 문제가 아닙니다. 사람은 누구나 이런 점도 있고 저런 점도 있습니다. 세상에 있는 여러 꽃을 두고 어떤 꽃은 예쁘고 어떤 꽃은 못났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꽃은 다 꽃일 뿐입니다. 내가 장미를 좋아하든 해바라기를 좋아하든, 그것은 내 자유입니다. 절대적으로 좋은 사람, 절대적으로 나쁜 사람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 사람 가운데 어떤 사람을 선택하느냐는 자기 문제입니다.

이런 남자가 괜찮으면 사귀어 보면 됩니다. 사귀어 봤는데 괜찮지 않으면, 결혼한 것도 아니니 '안녕히 계십시오' 하고 헤어지면 됩니다. 그런데 저에게 이렇게 묻는다는 것은 아직 남자 친구에게 쓸 만한 점이 있다는 뜻입니다. 완전히 손해만 보고 이익이 하나도 없다면 저에게 물을 필요도 없이 이미 헤어졌을 것입니다. 반대로 이익만 있고 손해가 거의 없다면, 그것도 굳이 물을 필요가 없습니다. 저에게 묻는다는 것은 이익도 있고 손해도 있어서 지금 반반쯤 되어 망설이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누가 '그런 사람하고 왜 사귀느냐'라고 물으면 '주변에 남자도 없는데 그 사람이라도 있어야 하지 않겠어요?' 이렇게 대답할 가능성이 높아요.

저는 남의 인생에 간섭하지 않습니다. 계속 사귈지 헤어질지를 묻는다면, 저는 '당신 좋을 대로 하세요'라고 말합니다. 남편이 바람을 피웠다면 남편과 안 살면 그만이지, 저에게 물을 게 무엇이 있겠습니까? 그런데 '남편이 바람을 피웠는데 이혼해야 합니까?' 하고 묻는 것은, 바람은 피웠지만 돈을 잘 번다든지 다른 좋은 점이 있어서 이혼할지 말지 고민이 된다는 뜻입니다. 제가 '그냥 사세요'라고 하면 '바람피운 남자하고 어떻게 삽니까?'라고 합니다. 그래서 '그러면 이혼하세요'라고 하면 '아이들은 어떻게 합니까?'라고 합니다. 그래서 '그럼 같이 사세요'라고 답하게 됩니다. 약간 우스갯소리 같지만, 이렇게 세 번, 네 번 문답을 하다 보면 알게 됩니다. 이것이 남자의 문제입니까, 내 문제입니까?”

“내 문제입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내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그것이 핵심입니다. 그런데 자꾸 '저 사람이 바람을 피웠다'라는 데만 초점을 맞추면 선택이 어려워 괴롭습니다.

자동차에 비유해 보겠습니다. 차에 흠집이 났습니다. 처음 샀을 때보다 볼품이 없어졌고, 기분도 나쁩니다. 그런데 그 차가 벤츠라면, 흠집이 났다고 버리고 소형차로 바꾸는 것이 과연 나은 선택일까요?

남편이 바람을 피웠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혼한 뒤 혼자 살겠다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그런데 다른 남자와 다시 살겠다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중년의 나이에 흠집 하나 없는 새 차 같은 사람을 만나기는 쉽지 않습니다. 결국 중고차 가운데 괜찮은 것을 골라야 하는데, 문제는 중고 시장에 나온 차들도 저마다 자기 차는 멀쩡하다고 생각한다는 점입니다. 그러는 사이 내가 내놓은 차, 즉 내 남편을 누군가가 덜컥 가져가 버리면 그때 가서 후회하게 됩니다. 처음 샀을 때의 새 차에만 마음이 집착되어 있으니 지금 내 차의 진짜 가치를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주식도 마찬가지입니다. 10,000원에 산 주식이 8,000원이 되면 '2,000원 손해 봤다'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못 팝니다. 그런데 5,000원까지 더 떨어질 것 같다면, 8,000원에 파는 게 낫겠습니까, 안 파는 게 낫겠습니까? 8,000원에 파는 것은 2,000원 손해 본 것이 아니라 3,000원 손해를 덜 본 것이 됩니다. 손해를 덜 본 것도 이익입니다. 이것을 손절매라고 합니다. 손절매를 못 하는 사람은 주식 투자를 하면 안 됩니다.

남편이 바람을 피웠다면 처음보다 못해진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지금 상태에서 봐야 한다는 점입니다. 처음의 10,000원에 대한 집착을 버려야 합니다. 지금 8,000원의 가치가 괜찮은지 아닌지를 봐야 합니다. 결국 선입견과 고정관념이 집착을 만들어 내는 겁니다. 항상 변화하는 현실, 지금 여기 이 상태에 깨어 있어야 합니다.”

“감사합니다. 잘 알았습니다.”


2026 3월 정토불교대학

전체댓글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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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미향

JTS 활동가와 법륜스님께 수고 많으십니다. 똘망똘망한 아이들과 동네분들의 환한 미소! 감동입니다. 10kg, 20kg 쌀인데 이 분들이 들고 있는 쌀은 마치 솜을 들고 있는 것 같아 신기하기도 합니다. 고맙고 또 고맙습니다. 모두들 건강하시길 기도드립니다.🫶

2026-03-13 07:33:03

김대영

감사합니다 스님🙏

2026-03-13 07:29:49

차덕환

현재를 잘보겠습니다.

2026-03-13 07:2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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