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6.2.27. 사단법인 총회, 금요 즉문즉설
“트라우마로 부부관계를 8년째 거부했습니다. 남편의 분노를 어떻게 풀어줘야 할까요?”

안녕하세요. 오늘은 3개 사단법인 단체의 총회와 금요 즉문즉설 강의가 정토사회문화회관에서 열리는 날입니다.

스님은 새벽 수행과 명상을 마친 후 오전 8시부터 JTS, 에코붓다, 좋은벗들, 3개 사단법인 단체의 총회에 온라인으로 참석했습니다. 총회 임원들이 모두 화상회의 방에 입장하자 삼귀의와 수행문을 함께 읽고 총회를 시작했습니다.

먼저 JTS 총회를 했습니다. 이사장인 스님이 인사말을 했습니다.

“JTS는 지난 1년 동안 세계 곳곳에서 많은 활동을 했습니다. 박지나 대표님과 김기진 대표님을 비롯하여 인도, 필리핀, 부탄 등 전 세계에서 많은 활동가들이 수고를 해주셨습니다. 현장에서 수고하는 활동가들을 격려하면서 지난 1년 동안의 사업 내용을 보고 받고 평가를 해보겠습니다.”

이어서 2025년 사업보고와 결산, 2026년 사업계획과 예산을 발표한 후 이에 대해 승인 절차를 진행했습니다. 만장일치로 사업계획을 승인했습니다.

다음은 좋은벗들 총회를 한 후, 마지막으로 에코붓다 총회를 했습니다. 총회 회원들은 2025년 사업보고와 결산을 승인하고, 2026년 사업계획과 예산을 승인했습니다.

사단법인 총회를 마친 후 스님은 손님과 미팅을 하기 위해 평화재단으로 향했습니다. 오전 10시 30분이 되자 이부영 전 국회의원님이 스님을 찾아왔습니다.

의원님은 광복 100주년을 앞두고 '광복 100년 국민동행'이라는 모임에 스님을 초대했습니다.

"이 모임은 이념과 세대를 넘어 포용, 공존, 절제의 가치를 바탕으로 대한민국의 미래를 함께 논의하는 시민 참여형 공론의 장입니다. 특정 집단의 이익이 아닌, 기후·생태 위기 대응, 청년 세대 교육, 한반도 평화 등 사회적 과제를 대화와 합의로 풀어가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3월 3일에 제안서를 발표하고, 준비 과정을 거쳐 8월 15일 광복절에 정식 발족할 계획입니다. 종교인과 각계 인사들의 참여를 이끌어 내고 있으며, 정치적 극단주의와 대립을 넘어 향후 20년을 내다보는 장기적 운동으로 만들어 가고자 합니다."

스님은 진정한 통합의 모임이 되려면 어떤 점을 보완해야 하는지 여러 가지 조언을 해주었습니다. 취지에는 동의하지만, 3월 3일 제안서를 발표하는 행사에는 지방에 강의 일정이 이미 잡혀 있어서 참석이 어렵다고 양해를 구했습니다.

함께 기념사진을 찍은 후 먼 길을 와주신 의원님을 배웅하고 지하 식당으로 이동하여 점심식사를 했습니다.

오후 1시부터는 정토회 실무자들과 세계 명상의 날 포럼 프로그램 준비를 위한 회의를 했습니다.

프로그램 구성, 시간 배분, 발표자 조정, 홍보, 접대 등 전반적인 행사 운영 계획을 점검했습니다. 스님은 '세계 명상의 날 포럼'이라는 취지에 맞게 불교에 치우치지 않도록 다른 종교의 참가자를 보완할 것을 당부했습니다. 또, 남방불교 전통을 고려해 오전 행사를 11시 30분까지 마무리하기로 했습니다. 이에 맞춰 시작 시간도 10시에서 9시 30분으로 앞당기기로 했습니다.

이어서 오후 2시에는 JTS 활동가들과 회의를 했습니다. 한 시간 동안 인도네시아 아체주와 스리랑카의 긴급구호 배분 계획과 기존 사업 현황을 점검했습니다.

스님은 회의를 시작하며 JTS 사업 규모가 갈수록 커지고 있는 만큼, 원칙에 맞게 운영하면서도 사업을 어떻게 확대할 것인지 함께 고민하자고 했습니다.

먼저 급한 현안부터 논의했습니다. 인도네시아 아체주 긴급구호 물품 배분은 원래 3월 초에 출발할 예정이었으나, 구호물품이 도착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려 3월 말로 연기했습니다. 스리랑카에는 3월에 총 1,500가구 이상에게 구호품을 배분하고, 복구 사업 요청이 있는 지역도 함께 답사하기로 했습니다.

이어서 파키스탄·미얀마·캄보디아·태국 등 기존 사업도 점검했습니다. 스님은 회의를 마무리하며 두 가지 원칙을 강조했습니다.

"첫째, 사업 규모가 커지더라도 반드시 원칙에 따라 운영해야 합니다. '우리가 보기에 불쌍하니까 도와줘야 한다'는 식으로 접근해서는 안 됩니다. 그분들은 주어진 조건 속에서 나름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자립을 목표로 지속가능한 지원을 해야 하므로, 지원하는 쪽도 동정심에 이끌려 원칙을 흐리는 일이 없도록 경계해야 합니다. 충분히 관찰하고, 먼저 소규모로 시험한 뒤, 성과가 확인되면 그때 확대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아야 합니다.

둘째, 새로운 사업 요청이 들어오면 반드시 구체적인 프로젝트 계획서를 받아야 합니다. 처음부터 크게 추진하지 말고, 한 개든 두 개든 먼저 시험적으로 운영한 뒤 결과를 보고 단계적으로 확대해야 합니다. 원칙이 잘 지켜지고 성과도 확인되면, 이후에는 얼마든지 확대해도 괜찮습니다."

회의를 마친 뒤 곧바로 오후 3시부터는 비서실의 기존 구성원과 새 구성원이 함께 회의를 했습니다. 한 시간 동안 조직 편제와 역할 분담, 예산 조정, 주요 사업 일정 등을 함께 논의했습니다.

오늘은 급한 업무만 우선 논의하고, 나머지 사안은 추후 별도로 논의하기로 하고 회의를 마쳤습니다.

오후 5시에는 SBS 예능국 PD 류지환 님이 스님을 찾아왔습니다. '정글밥' 프로그램을 제작해 시청자들의 큰 호응을 얻은 분입니다. 올해 새로 준비 중인 프로그램에 스님이 꼭 출연해 주셨으면 한다고 청했습니다.

스님은 출연을 정중히 사양하고, PD님과 한 시간 동안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대화를 마친 뒤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해가 저물고 저녁 7시 30분에는 지하 대강당에서 금요 즉문즉설 강연을 이어나갔습니다. 작년 12월 이후 오랜만에 많은 시민들이 즉문즉설을 듣기 위해 정토사회문화회관을 찾았습니다. 시민들은 현장 접수를 하거나 질문 신청을 한 후 가벼운 발걸음으로 지하 대강당으로 이동했습니다.

유튜브에 4,400여 명이 접속하고 현장에 300여 명이 자리한 가운데 강연이 시작되었습니다. 먼저 정토회 청년 활동가 김동한 님이 무대에 올라 '축제'와 '당신을 위하여'를 열정적으로 불러 분위기를 한껏 띄워 주었습니다.

이어서 삼귀의와 수행문을 낭독하고 나서 스님이 무대 위에 자리했습니다. 스님은 오랜만에 정토사회문화회관을 찾은 시민들에게 인사말을 했습니다.

“제가 12월, 1월, 2월에는 주로 해외 답사를 다녀서 여러분과 만나서 대화한 지가 몇 달 지난 것 같습니다. 오늘은 서울 정토사회문화회관에서 여러분과 직접 만나서 즉문즉설을 하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질문을 신청하신 분들이 좀 많으시네요.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한 시간 반 동안 여섯 명이 손을 들고 스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첫 번째 질문자가 손을 번쩍 들고 스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부부관계를 8년째 거부해서 쌓인 갈등 속에서 남편과의 관계를 어떻게 회복해야 할지 막막하다고 고민을 털어놓았습니다.

성추행 트라우마로 부부관계를 8년째 거부했습니다. 남편의 분노를 어떻게 풀어줘야 할까요?

“저는 어릴 적에 성추행을 당한 트라우마가 있습니다. 지금의 남편과는 10년을 연애하고 결혼했지만 연애 초반을 제외하고 지금까지 약 8년 넘게 부부관계를 거의 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트라우마 치료를 위해 정신과에 다니며 상담치료를 받았습니다. 제가 성에 대해 잘못된 인식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지만 너무 늦게 알게 된 거 같습니다. 부부관계를 거부할 때마다 남편은 심한 수치심과 모멸감을 느끼고 그 상처 때문인지 결혼 전에는 양다리를 걸친 적도 있습니다. 남편은 ‘내가 10년 동안 당한 만큼 너도 당해봐라, 결혼은 유지하되 바람을 피우겠다’며 분노를 쏟아내고 있습니다. 그런 와중에 제가 임신을 하게 되었습니다. 남편의 깊은 원망과 화를 어떻게 받아내며 참회해야 할지, 아이를 위해서라도 저희 부부가 이 위기를 넘겨 함께 나아가야 할 길은 무엇인지, 스님의 가르침을 청합니다.”

“시험관 시술을 했어요?”

“아니에요.”

“질문자는 지금도 남편이 가까이 오면 거부 반응이 일어납니까?”

“아니요. 이제 저는 괜찮은데요. 남편이 그동안 제가 거부한 것에 대해 화가 쌓여 있어서 지금은 남편이 거부하고 있습니다.”

“남편이 지금도 다른 사람을 만나나요?”

“아니요. 만나지는 않는데요. 다른 사람을 만날 거라고 화를 내며 말하기도 합니다.”

“질문자가 어릴 때 겪은 성추행으로 트라우마가 생겨서 성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이 생겼고, 그로 인해 남편을 힘들게 했어요. 트라우마를 하나의 병으로 이해하고 그것에 대해 전문적인 지식이 있는 사람은 질문자를 충분히 이해하고 치료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질문자의 남편은 트라우마에 대한 지식이 있거나 병에 대한 이해심이 깊은 사람은 아닌 것 같아요. 그러니 당연히 부부관계를 거부하는 아내에게 화가 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세월이 어느 정도 흘러서 질문자와 남편이 입장이 바뀌게 된 겁니다. 지금은 거꾸로 남편이 거부하고 질문자가 집착하고 있는 거죠. 이렇게 되면 질문자에게 또 다른 트라우마가 생길 수 있어요. 그러니 남편이 좀 거부하더라도 질문자는 임신도 했고 트라우마도 치료가 되었으니 그것으로 만족하는 게 좋습니다. 그러다 남편이 원하면 부부관계를 맺고, 원하지 않으면 굳이 남편을 귀찮게 하지 않도록 하는 게 좋습니다. 남편이 ‘너는 관심이 없니?’ 하고 묻는다면, ‘관심은 있지만 당신을 귀찮게 하고 싶지는 않아요.’ 하고 좋게 얘기하고요. 부부관계에 대해서 너무 집착하지 말고, 조금 잊고 지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남편은 부부관계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그게 아니면 이혼할 수밖에 없다’ 하고 말할 때도 있어요. 서로 얘기를 많이 해도 남편의 분노가 안 풀립니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남편의 분노가 풀리지 않는 것은 남편의 문제입니다. 남편이 정신과에 가서 치료를 받아야지, 질문자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질문자가 원인을 제공했다 하더라도, 지금 그 병을 앓고 있는 사람은 남편이라는 겁니다.

비유하자면, 누군가가 나에게 강제로 마약 주사를 놓아서 중독이 되었다고 합시다. 원인을 제공한 사람은 그 사람이지만, 현재 마약에 중독된 사람은 나입니다. 그러니 치료를 받아야 할 사람도 나입니다. 나에게 주사를 놓은 그 사람을 치료한다고 해서 내 중독이 낫는 건 아닙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질문자 때문에 남편이 그런 분노를 갖게 되었다 해도 결국 남편의 화는 남편의 문제입니다. 질문자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질문자가 그 분노에 맞서고 대들어서 같이 싸우게 되면, 남편의 병은 더 증폭될 겁니다. 내가 원인을 제공했으니 그렇게는 하지 않아야 합니다. 남편이 그 병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은 남편의 몫이지, 질문자가 어떻게 할 수는 없습니다. 질문자는 화를 내는 남편에게 ‘여보, 미안해요. 나 때문에 당신이 고생하네요. 미안해요’ 하는 정도로 이해하고 기다려주는 방법밖에는 없습니다. 남편이 정신과에 가서 분노에 대한 심리치료를 받든지, 약물치료를 하든지 해서 스스로 치료하도록 해야 합니다.

물론 남편이 부부관계를 원하는데 내가 거부하면 이혼 사유가 됩니다. 그런데 지금 내가 거부하는 게 아니라면 이혼 사유가 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과거에 내가 거부한 것 때문에 남편이 '너만 보면 화가 나서 관계를 맺을 수가 없다'고 하고, 분노 조절이 안 되어 그 강도가 점점 심해진다면 이혼도 고려해 봐야 하지 않을까요. '이런 사람하고는 도저히 못 살겠다, 이혼해야겠다'고 하는 것도 잘못된 생각이지만, '이혼을 하면 안 된다'고 하는 것도 잘못된 생각이에요. 부부가 서로 성격이 맞지 않아 함께 있으면 관계가 더 나빠져서 서로 불행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오히려 서로 떨어져 지내는 것이 고통을 줄일 수 있다면, 별거든 이혼이든 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

결혼이 인생의 절대적인 목표는 아닙니다. 우리의 목표는 행복하게 사는 것입니다. 결혼이 그 목표에 도움이 되면 하는 것이고, 도움이 안 되면 안 하는 겁니다. 나이가 들면 당연히 결혼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가질 필요도 없습니다. 또한 결혼을 했더라도 뜻이 안 맞으면 무조건 헤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도 잘못입니다. 자녀도 있고 양가 부모님도 계시는데, 헤어지면 여러 인간관계가 복잡해져서 오히려 더 행복해지기가 어렵습니다. 인생은 혼자 사는 게 아니라 여러 사람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혼하면 결혼으로 맺어졌던 가족 관계가 복잡해질 수 있으니, 가능하면 이혼을 안 하는 게 더 좋겠지요.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해결할 수 없을 만큼 성격 차이가 크다든지, 이념이나 믿음의 차이가 있어서 함께 있는 것이 두 사람을 더 불행하게 만든다면, 상대를 미워해서가 아니라 그 사람의 행복과 나의 행복을 위해서 이혼을 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혼을 할 수는 있지만, 이혼을 하는 것이 꼭 좋다는 것을 확신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최대한 서로 맞추는 노력을 해봐야 하는 겁니다. 하지만 상대가 원하면 이혼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물론 질문자가 먼저 이혼하자고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질문자가 원인을 제공했기 때문에 ‘내가 먼저 당신을 아프게 했기 때문에, 이혼이 당신의 인생에 도움이 된다면 당신 뜻대로 하겠다’ 이렇게 말해줄 수 있어야 합니다.

예전에는 아이의 엄마, 아빠는 꼭 부부로 함께 살았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부부가 아니라도 아이의 엄마, 아빠 역할을 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이혼을 해서 따로 살더라도 아이의 엄마로서, 아이의 아빠로서 아이를 위해서 긴밀하게 의논하고 협의할 수 있습니다. 남자와 여자라는 이성적인 관계는 끝났지만, 아이의 부모로서 서로 협력할 수 있다는 겁니다. 이것이 지금 현대 사회입니다.

역사 속에서 아직 그런 경험이 많지 않다 보니, 두 부부가 원수가 되어 헤어져서 아예 안 보든지, 안 그러면 참고 같이 살든지, 둘 중에 하나만 선택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부부로서는 헤어지더라도 아이의 엄마, 아이의 아빠로서는 얼마든지 좋은 친구가 되어서 아이를 위해 서로 협력을 할 수 있습니다. 이런 것이 가능한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기 때문에 이혼에 대해 너무 두려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질문자는 지금 예전 상처에 대한 트라우마가 어느 정도 극복이 된 것 같은가요?”

“네.”

“그렇다면 질문자가 남편에게 솔직하게 얘기를 해보세요.

'예전에는 내가 트라우마 때문에 당신을 거부했지만, 지금은 치유가 되었습니다. 그때 그렇게 해서 미안해요. 당신을 괴롭히려는 의도가 아니라 내가 병이 있어서 그랬던 것이니, 당신이 좀 받아들여 주었으면 좋겠어요. 그때 나 때문에 화가 난 것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내가 어떻게 하면 도움이 될지,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가능하다면 나에게 받은 상처를 병원에 가서 치료받고 극복하면 좋겠어요. 나도 옛날 상처가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 극복할 수 있었는데, 당신도 치료를 받고 편안해지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말해도 남편이 거부하거나 이혼을 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보통 ‘이혼하자’고 말한다고 해서, 정말 이혼할 생각으로 그 말을 하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진짜로 헤어지고 싶어서라기보다, 상대에게 항복을 받아내고 싶은 마음이 더 커서 그렇게 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나한테 잘못했다고 말하고 무릎 꿇고 빌기를 원해서 최후의 수단으로 이혼을 말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애들이 ‘나, 집 나갈래’ 이럴 때도 진짜 집 나갈 생각이 있어서 말한 게 아니라, 엄마가 ‘아이고 그래, 내가 잘못했다’ 이 말을 듣고 싶어서 그러는 겁니다. ‘나, 밥 안 먹을래’라고 하는 것도 ‘그래그래, 엄마가 잘못했다, 밥 먹어라’ 이 말을 들으려고 자기 학대를 내세우는 거예요. ‘나 죽을래’ 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른 방식으로는 안 먹히니까 최후의 수단을 내세우는 겁니다. 부모들이 외로워서 ‘내가 죽어야지, 죽어야지’ 하는 것도 자식이 ‘아니에요. 어머니, 오래 살아야 됩니다’라는 말을 듣고 싶어서 하는 말입니다.

그런 것처럼 남편의 말을 진짜로 믿고 ‘그래, 이혼하자’ 하고 말하면 남편이 더 화를 내서 날뛸지도 모릅니다. 나는 이혼을 원하지 않는다는 관점을 갖되, 당신이 원하고 당신에게 도움이 된다면 그것까지도 고려하겠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남편이 정말 이혼하는 것을 원하면 기꺼이 이혼해 줄 수도 있어야 합니다. 이혼을 안 하려고 너무 매달리지 마세요.”

“사실, 스님이 말씀하신 대로 남편이 진짜 이혼을 원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제가 남편을 위해서 참회 기도를 하고 싶은데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항상 미안함을 많이 느껴서 뭐라도 하고 싶거든요.”

"매일 108배 절을 하면서 이렇게 되뇌어 보세요.

'나 때문에 당신이 마음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죄송합니다. 나 때문에 당신이 화가 많이 났지요. 미안합니다.‘

상대가 화를 낼 때 내가 괴로워하기보다는, '죄송합니다. 나 때문에 당신이 고생합니다' 하는 마음을 가지면 상대가 좋아지는 게 아니라 내가 고통스럽지 않게 됩니다. '죄송합니다. 여보, 화 그만 내세요. 당신 건강에 해롭습니다. 저 때문에 당신이 고생합니다. 미안합니다.' 이렇게 마음을 내면, 어떤 상황에서든 내가 나를 지켜 나갈 수 있게 됩니다."

“감사합니다. 잘 새겨듣겠습니다.”

계속해서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 어린 시절 가정불화 속에서 성장한 영향으로 10년 넘게 대인관계의 불안을 겪고 있습니다. 어떻게 이 업식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 자신을 끊임없이 몰아붙이는 성향이 타인과의 관계에서도 나타나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이 반복되는 습관을 어떻게 내려놓을 수 있을까요?
  • 고등학교 때부터 정신과 치료를 받아왔습니다. 정신적 질환이나 장애가 있는 사람도 부처님처럼 깨달을 수 있나요?
  • 친구나 지인들과 일상적 대화는 잘하지만, 마음속 고민이나 힘든 점을 털어놓을 상대가 없다고 느낍니다. 답답함을 풀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 남편과 이혼을 합의하고 따로 살면서 경제적 부족 없이 지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6개월 전부터 마음에 드는 남자가 새로 생겼는데, 이런 마음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대화를 마치고 나서 스님이 몇 가지를 더 강조했습니다.

“만약 제가 강의가 끝나고 밖으로 나가다가 갑자기 차가 들이닥쳐 교통사고가 났다고 해봅시다. 그래서 다리가 하나 부러졌어요. 사고가 나기 전과 난 뒤를 비교하면 어느 쪽이 더 낫겠습니까. 당연히 사고가 나기 전이 더 낫지요. 그런데 사고가 나기 전에는, 사람들이 ‘사고 나기 전’의 상태가 좋은 상태라는 사실을 잘 모릅니다.

그런데 교통사고가 나서 다리가 하나 부러질 수도 있지만, 두 개가 부러질 수도 있잖아요. 두 개 부러졌을 때와 하나 부러졌을 때를 비교하면 어느 쪽이 낫습니까? 하나 부러졌을 때가 낫지요. 그러면 다리가 하나 부러진 상태는 안 부러진 것보다는 못하지만, 두 개 부러진 것보다는 나은 겁니다. 이렇게 볼 줄 알면 지금 상황이 가장 나쁜 상황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좋은 상황도 아니에요. 사고가 안 난 것과 비교하면 나쁜 상황이지만, 두 개 부러진 것과 비교하면 나은 상황이라는 거예요.

그러면 다리가 두 개 부러져서 휠체어를 타고 다닐 수밖에 없는 경우는 어떨까요? 그렇다 하더라도 죽는 것보다는 낫습니다. 죽는 것보다 나으니까 안 죽었다고 부모가 좋아하고 가족도 좋아하는 겁니다. ‘구사일생으로 살았다’ 이러잖아요. 신문 기사에도 '중상을 입었는데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 이런 내용이 나온 것을 보셨을 겁니다. 그러니 어떤 상황이든 그것보다 더 나쁜 상황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제1의 화살에서 멈추는 법, 더 큰 손실을 만들지 마세요

제가 올해 나이가 74세인데, 20세 청년과 비교하면 제가 훨씬 못하죠. 그래도 나이 80세 먹은 노인보다는 낫잖아요. 그러니 젊을 때보다 못하다 하더라도, 앞으로 더 늙었을 때와 비교하면 지금이 좋은 상태예요. 지금은 제가 늙었다고 하지만, 10년쯤 더 지나면 뭐라고 할까요? 누군가의 나이가 74세라고 하면 '한창 일할 때다' 이러겠죠.

그런데 나이 60세가 되신 분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퇴직하면 자기 인생이 끝난 줄 알아요. 퇴직은 60세가 되면 대부분 하게 되잖아요. 그런데 제 입장에서 보면 60세는 한창이에요. 히말라야도 올랐다 내렸다 할 나이입니다.

눈을 하나 다치면 불편하기는 하지만, 두 개 다 안 보이는 것보다는 낫습니다. 마음이 불안하다고 하지만, 두 다리를 못 쓰는 것보다는 마음이 조금 불안한 쪽이 낫습니다. 두 다리를 못 쓰는 분들은 휠체어를 타고 다니면서도 온갖 일을 하는데, 두 다리를 멀쩡히 쓰면서 마음이 좀 불안한 게 뭐가 그리 걱정입니까. 좀 불안하면 어떻습니까. '불안하네' 하고 가만히 바라보면 되잖아요.

누가 총을 목에 갖다 대고 '죽을래?' 하면서 귀한 보석과 목숨 둘 중에 선택하라고 하면, 어느 쪽을 선택해야 할까요? 여기에 제3의 선택은 없어요. 그럴 때는 아무리 귀한 보석이라도 줄 수밖에 없습니다. 성폭력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면 이건 누가 선택한 겁니까? 내가 현명한 선택을 한 거예요. 보석도 귀하지만 목숨보다는 덜 귀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상처로 남는 이유는 어리석기 때문이에요. 육체의 상처는 폭력에 의해서 형성된 것이고, 마음의 상처는 어리석음으로 인해 형성된 것입니다. 부처님이 말씀하셨듯이, 제1의 화살은 남이 쏜 것이지만, 제2의 화살, 제3의 화살은 스스로 만드는 거예요. 어리석어서 그것을 상처로 삼으니, 결혼 생활이 불행해지고, 아이도 상처를 입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제3, 제4, 제5의 화살을 계속 맞는 거예요.

그러니 첫 번째 손실을 본 것으로 끝내야 합니다. 다리가 부러지면 그것으로 끝내야 해요. 다리 하나는 부러졌지만 다른 것은 다 멀쩡해야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다리 하나 부러지면 열등의식에 휩싸여서 심리적인 상처를 입고, 그것 때문에 아내가 조금만 뭐라고 해도 열등의식 속에 부부가 싸우고, 이런 식으로 계속 자기 손실을 만들어 갑니다. 첫 번째 상처는 남이 준 것이지만, 그 이후 나머지는 다 자기가 만든 거예요. 자기 인생을 자기가 망치는 것입니다. 첫 번째는 부모가, 혹은 길 가던 사람이 그랬는지 몰라도, 그 이후는 다 자기가 자기 인생을 망치는 거예요.

그러니 지금이라도 정신을 차리면 됩니다. 다리가 하나 부러진 상태에서도 정신을 차리면, 지팡이를 짚고 다닐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정신을 못 차려서 다리를 두 개 부러뜨리고, 팔도 부러뜨리고, 그렇게 살아가는 경우가 많죠.

그래서 제가 즉문즉설을 할 때마다 '별일 아니다' 하는 말을 자주 하는 겁니다. 교통사고가 나도 별일 아니라는 뜻이 아니에요. 교통사고가 안 난 것보다는 못하지만, 이미 일어난 일이라는 겁니다. 다리가 두 개 부러진 것보다는 좋은 상황이라는 것을 자각하게 되면, 하나 정도는 버리고 살아갈 수 있어요. 팔 하나 없고 다리 하나 없는 것은 사는 데 아무 지장이 없어요. 성경에도 나오잖아요. 손으로 도둑질, 나쁜 짓을 해서 몸 전체를 버리는 것보다, 이 손 하나를 잘라버리는 게 더 낫다는 거예요.

여러분이 좀 지혜로워야 합니다. 지혜롭다는 것은 특별한 것이 아니에요. 주어진 현실은 무엇과 비교하느냐에 따라 좋고 나쁜 것이 있을 뿐, 그 자체에는 좋고 나쁜 것이 없어요. 그래서 주어진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고 하는 거예요. 한 발 더 나아가서는 그것을 좋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좋고 나쁜 것은 내가 결정하니까, 내가 좋게 생각하면 좋은 거예요. 그런데 여러분은 대부분 다 나쁘게 받아들여서 자기를 나쁘게 만듭니다."

강연을 마치고 무대 아래로 내려오니 밤 9시가 넘었습니다. 봉사자들의 안내에 따라 대강당에 모인 청중들은 모두 집으로 돌아가고, 스님은 수고한 봉사자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 후 정토회관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내일은 정토회 제10차 전법회원 수계식이 정토사회문화회관 설법전에서 열릴 예정입니다.


2026 3월 정토불교대학

전체댓글 6

0/200

구자정

고맙습니다.

2026-03-02 07:11:48

정태식

“주어진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고 하는 거예요.
한 발 더 나아가서는 그것을 좋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좋고 나쁜 것은 내가 결정하니까, 내가 좋게 생각하면 좋은 거예요.
그런데 여러분은 대부분 다 나쁘게 받아들여서 자기를 나쁘게 만듭니다.”
-------------
모든 괴로움과 얽매임은 다 내 마음이 만드는 것입니다.

2026-03-02 07:10:38

차덕환

이만하기 다행임을 알겠습니다.

2026-03-02 06:33:12

전체 댓글 보기

스님의하루 최신글

목록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