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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민족의 화해와 평화를 위한 종교인 모임과 정토회 회원들이 자신의 수행을 점검하는 수행법회가 열리는 날입니다.

스님은 새벽 수행과 명상을 마친 후 종교인 모임을 하기 위해 정토사회문화회관으로 향했습니다. 스님이 도착하자 신부님, 주교님, 교령님, 교무님도 차례로 지하 1층 식당에 도착했습니다.
평화재단 실무자들이 정성껏 준비한 아침 밥상으로 식사를 한 후 평화재단 회의실로 자리를 옮겨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차를 마시는 동안 스님이 지난 1월 말에 인도네시아 홍수 피해 긴급구호 활동을 다녀온 모습을 영상으로 함께 보았습니다.

영상을 보고 나서 스님이 설명을 덧붙였습니다.

“이번 피해는 폭우가 가장 큰 원인이지만, 단순히 비만 많이 온 것이 문제는 아니었습니다. 강의 상류에는 해발 3,000m에 이르는 산이 있는데, 그 산의 나무를 베어내고 대규모 플랜테이션 농업을 개발했습니다. 바나나를 비롯한 여러 작물을 심기 위해 산을 통째로 개간한 겁니다. 그런 상태에서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지니, 산비탈이 견디지 못하고 한꺼번에 쓸려 내려왔습니다.
원래 자연림은 나무 뿌리가 깊고 촘촘하게 얽혀 있어서 흙을 단단히 붙잡아 줍니다. 그런데 플랜테이션 농법은 기존 나무를 싹 베어버리고 새로 심습니다. 인공적으로 물을 주며 키운 나무들은 뿌리가 얕을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토양을 붙들 힘이 약해졌고, 폭우가 겹치자 토사가 엄청난 양으로 하류까지 밀려 내려온 겁니다. 무분별한 개발이 겹치면서 피해가 훨씬 더 커진 것입니다.”

이어서 스님은 지난 인도 방문 일정에서 인도의 국가 전략을 연구하는 한 싱크탱크 관계자들을 만난 이야기를 공유해 주었습니다.
“제가 이번에 인도의 국가 전략을 연구하는 싱크탱크 관계자들을 만나고 왔습니다. 그분들이 이런 이야기를 하더군요. 인도는 영국의 영향권 안에 있던 시절부터도 ‘영국 이후에 인도가 어디로 갈 것인가’를 고민하며 지난 100년을 준비해 왔다는 겁니다. 그리고 이제는 어느덧 영국을 넘어, 국력 면에서도 인도가 영국보다 더 앞선 상태에 이르렀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제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당신네 나라는 앞으로도 계속 미국만 쳐다보고 있을 것인가? 미국도 영국처럼 언젠가는 지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미국이 쇠퇴한 뒤에 한국은 어디로 갈 것인가. 당신네 나라 사람들 중에도 그런 생각을 하고 준비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이어서 그분들은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이 심화되는 시대에, 그 외 중견국들이 어떤 진로를 택할 것인가 하는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고 했습니다.

세계 질서가 이렇게 빠르게 변하고 있기 때문에, 대한민국의 진로도 무조건 미국 일변도로 가거나, 그렇다고 중국과 양다리를 걸치는 방식만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인도뿐 아니라 독일, 브라질 같은 중견국들과의 연대를 넓혀가며 세계평화를 유지하고 국가의 진로를 잡아나가는 방식으로 외교의 폭을 키워야 합니다.
그러려면 그런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정치인, 학자, 종교 지도자들이 있어야 합니다. 사실 정부나 정치권이 이런 구상을 해주면 가장 좋겠지만, 현실 정치를 보면 매일의 정치 투쟁에 바빠 장기적인 국가진로에 대한 구상을 펼치기 어렵습니다. 저는 오래전부터 국정원 같은 곳에서라도 국가의 큰 설계를 해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런데 그곳도 정권이 바뀌면 줄 서기에 바쁩니다. 오히려 더 정치 눈치를 본다고들 합니다. 우리나라는 어디든 정치의 영향을 받지 않는 곳을 찾기 어렵습니다.”

이에 박남수 교령님은 북한이 한국을 적국으로 규정하고 민간 교류를 전면 중단한 상황에서, 최근 시민사회단체 설문조사 결과 우리도 '남측·북측' 프레임에서 벗어나 주권 국가로서 주체적인 입장을 취해야 한다는 인식이 크게 확산되고 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러자 스님이 다시 말을 이었습니다.

“이제 더 이상 남북 문제만 가지고 풀려고 하는 것은 좀 비현실적이 되었습니다. 다만 현실적으로 보면, 독일의 통일이 유럽 통합이라는 큰 차원에서 이루어졌듯이, 우리도 국제 정세의 변화 속에서 동아시아 또는 아시아 지역의 연대라는 큰 틀을 구상해야 합니다. 그 안에서 남한과 북한이 함께 참여하고 가까워지면서 자연스럽게 통일로 나아가는 방향으로 가야 할 것입니다.”
이어서 다가오는 3.1절 107주년 기념식과 제2회 세계 명상의 날 포럼 프로그램을 공유하고, 종교인 분들의 의견을 수렴했습니다. 종교인 분들이 제안한 내용을 프로그램에 모두 반영하기로 하고, 본격적으로 대화를 이어갔습니다.

스님은 북한의 현재 상황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북한은 아직 대화할 준비가 충분히 갖춰지지 않은 상태로 보입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나야 북한도 본격적으로 움직일 여지가 생길 텐데, 전쟁을 통해 적지 않은 경험을 쌓기는 했어도 그에 상응하는 대가가 제때 충분히 지급되고 있는지는 불투명해 보입니다. 그렇다고 관계가 틀어진 것은 아니고, 미묘한 상태에 있는 것 같습니다. 현재 북한은 국가 차원의 재정은 유지되고 있어 건설 경기는 활발하지만, 주민들의 생활은 굉장히 어려운 것 같습니다."
봄이 되면 북미 대화도 시작되고 남북 관계도 개선되기를 기원하면서 대화를 마쳤습니다.
“삼일절에 모두 함께 봅시다.”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종교인 모임을 마무리했습니다.

스님은 종교인 분들을 배웅한 후 수행법회를 하기 위해 3층 설법전으로 향했습니다.
설법전에는 100여 명의 대중이 모여 있었습니다. 오전 10시가 되자 삼귀의와 반야심경 독송으로 수행법회가 시작되었습니다. 정토회 회원들은 화상회의 방에 접속해 온라인으로 법회에 참석했습니다.
먼저 지난 주말에 진행된 정토회 선거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새로운 대표, 지부장, 지회장, 모둠장이 선출되었습니다.

큰 박수로 축하의 마음을 전한 후 대중들이 삼배의 예로 스님에게 법문을 청하자 스님이 인사말을 했습니다. 스님은 2차 천일결사 입재식을 앞두고 정토회 회원들이 개인 치유에만 머물지 말고 큰 원을 세워 보살의 길로 나아갈 것을 당부했습니다.

“추운 겨울이 지나가고 이제 따뜻한 봄날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움츠렸던 만물들이 생기를 되찾고 있습니다. 대지 위에는 아직 얼음과 잔설이 남아 있지만, 땅속에서는 이미 새싹들이 솟아오르고 있습니다. 매화는 이미 꽃을 피웠고, 복수초도 노란 꽃을 피우고 있습니다.

설 명절이 끝나고 새해의 새로운 기운으로 활동을 할 시기가 되었습니다. 정토회도 지난 학기 불교대학과 경전대학 수업을 마무리하고, 지금은 신입생 모집으로 바쁜 모습입니다. 또한 지난 3년간의 1차 천일결사를 마치고, 오는 3월 15일에는 2차 천일결사를 시작하게 됩니다. 3년 동안 수고하셨던 임원단이 임기를 마치고 회향 기간을 거친 후, 3월 15일 입재부터는 새로운 임원단이 중심이 되어 앞으로 3년간 정토회를 이끌어가게 됩니다. 오늘 선거 결과가 발표되어 새로운 대표, 지부장, 지회장, 모둠장이 선출되었습니다. 행정적으로 뒷받침해 줄 사무처장과 각 국장, 팀장, 담당자들의 임명도 거의 마무리된 것 같습니다. 새로 소임을 맡으신 분들께 먼저 축하의 말씀을 드립니다. 그리고 앞으로 3년간 수고해 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이제 새 출발을 위한 준비는 갖추어졌습니다. 회향 기간 동안 여러분 마음이 조금 흐트러졌다면, 다시 한 번 마음을 가다듬고 정초기도의 힘으로 새로운 한 해를 힘차게 출발해 주시기 바랍니다.

정토행자들은 모두 수행자이기 때문에 현실에 안주하여 ‘오늘 무엇을 먹을지, 무엇을 입을지, 어디에서 잘 것인지’ 같은 원초적인 생각에만 빠져서 자신의 에너지를 소모하는 삶을 넘어서야 합니다. 개인의 발전과 행복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발전, 나아가 인류의 희망을 위해 작은 힘이나마 모아 간다면, 우리는 새로운 길을 열 수 있을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우리가 나아갈 바른 길을 이미 제시해 주셨습니다. 정토회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중심에 놓고, 현대 사회의 장점들을 결합하여 현실에 맞는 실천을 시도해 왔습니다. 설립 초기부터 이런 기반을 만들어 온 법사단이 늙고 병들어 죽고 나면 그 정신이 사라질지, 아니면 그것을 발판 삼아 다음 세대가 더욱 꽃피울지는 여기 모인 대중들의 원(願)에 달려 있습니다.
그런데 아직 정토회 안에는 이런 큰 원을 가진 사람들이 많지 않습니다. 마음이 불편하거나 몸이 아플 때 잠시 달콤한 처방을 얻기 위해 찾아왔다가, 나아지면 떠나고, 다시 힘들어지면 돌아오는 외래 환자 같은 사람들이 대다수예요. (웃음)

물론 환자는 보호받아야 합니다. 지친 사람들이 와서 치유 받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치유에만 머문다면 큰일을 이루기 어렵습니다. 세상은 정신적·육체적으로 건강한 이들이 이끌어 나갈 때 발전될 수 있습니다. 누구든 정토회에 와서 지친 몸, 병든 마음을 치료 받고 원기를 회복했다면, 거기서 만족하지 말고 더 큰 원을 세워 보살의 길로 나아가야 합니다.
2차 천일결사를 준비하며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십시오. 과연 어떤 삶을 살아야 후회 없고 보람 있을까요? 매일 맛있는 음식을 먹고, 좋은 차를 타고, 즐겁게 놀러 다니기만 하면 행복해질까요? 세계적인 유명 인사들조차 제프리 엡스타인 같은 사람과 어울리며 숨은 욕망을 좇다가 망신을 당하지 않았습니까? 미래 사회는 노동하지 않는 세상이 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도전도 없고 노동도 없이 안주하는 삶이 사람을 어떻게 만들겠습니까? 숲속에서 포효하는 사자가 아니라, 우리에 갇혀 사육사가 던져주는 먹이만 받아먹는 사자가 과연 진정한 사자라 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이번 봄에 2차 천일결사를 시작하며, 여러분 모두가 크게 발심했으면 좋겠습니다. 허황된 욕심을 내라는 말이 아닙니다. 고칠 것이 있으면 ‘이번에는 반드시 고치겠다’ 하고 분명히 결단을 내려야지, 자잘한 것에 매달려 전전긍긍해서야 되겠습니까? 다 같은 중생이니 어울려 사는 것은 좋습니다. 그러나 작은 실수 하나에 연연하고 분별을 내는 수준에 머문다면, 우리가 새로운 문명을 꿈꾸기는 어렵습니다.

마음을 한번 크게 내어 ‘먹는 것은 세 끼 밥이면 족하다’, ‘입는 것은 소박해도 괜찮다’ 하고 정해 버리면, 입고 먹고 자는 일에 거리낌이 없어집니다. 잠시 알아차림을 놓쳐 과거의 업식에 집착하더라도, 즉시 알아차리고 참회한 뒤 다시 나아가면 됩니다. 같은 잘못을 끝없이 반복한다면 어리석은 짐승과 다를 것이 없어요. 정진을 하더라도 큰 뜻을 내야 합니다.
성냥을 켤 때를 생각해 보십시오. 살살 백 번을 문질러도 불은 붙지 않습니다. 한 번 ‘탁’ 하고 제대로 그어야 불이 붙습니다. 300번을 그어도 불이 붙지 않았다면, 한 번을 더 해서 불이 붙는 게 아닙니다. 처음부터 제대로 그어야 하는데, 그게 되지 않았기 때문에 불이 붙지 않는 것입니다.
업식과 카르마로부터 자유로워지려면 마음을 분명히 내야 합니다. 망설이면 업식이라는 마왕이 끊임없이 속삭이며 결국 제자리로 되돌려 놓습니다. 그렇게 한다면 백 년을 수행해 봐야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이어서 사전에 신청한 분들의 질문을 받았습니다. 온라인에서 두 명이 질문한 후, 이어서 현장에서 한 명이 손을 들고 질문했습니다. 그중 한 명은 아이가 괜찮아 보여서 안심했는데 갑자기 극단적 행동을 했다며 이 불안함을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지 스님에게 조언을 구했습니다.

“저는 지난해 약 300일간 정토사회문화회관에서 봉사를 했습니다. 제 아이는 5년 전부터 자해와 거식증 증세를 보여 치료를 받아왔습니다. 한동안 특별한 이상 없이 괜찮았기 때문에 저도 마음을 놓고 신경을 덜 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약 3주 전, 아이가 밤에 정신과 약을 한꺼번에 먹어서 병원에 실려 갔습니다. 다행히 치료를 받아 저도 아이도 지금은 진정이 된 상태이고, 이렇게 질문까지 드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런 일이 있고 난 뒤에도 집에서는 평소처럼 밝고 괜찮은 모습을 보이려고 하지만, 마음속 불안함이 계속 남아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아이가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불안하지 않습니다. '죽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니까 불안한 거예요. 정신 질환을 앓고 있기 때문에, 어느 순간 갑자기 약을 먹든 몸을 던지든 해서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런 가운데 '죽을 때 죽더라도, 살아 있을 때는 건강하게 살다가 죽는 게 좋지 않을까?' 하는 관점을 가지면 됩니다.
사람은 태어나기 전 뱃속에서 죽을 수도 있고, 태어난 뒤에도 한두 살에 죽을 수도 있고, 열 살에, 스무 살에 죽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병을 앓는 사람은 일반적인 수명까지 살 확률이 매우 낮습니다. 무조건 일찍 죽는 것은 아니지만, 보통 사람들처럼 70~80대까지 생존하지 못하고 중간에 사망할 확률이 높습니다. 그래도 '언제 죽을지 정해진 것은 아니니까, 살아 있는 동안은 우리 행복하게 살자' 이렇게 생각하면 됩니다.
아이가 길거리에 나가면 교통사고가 날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것을 걱정하면 아이를 길거리에 내보낼 수도, 승용차나 버스에 태울 수도 없어요. 전부 다 확률은 조금씩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과 저를 비교하면 교통사고가 날 확률이 누가 더 높을까요? 비행기 추락 사고에 휘말릴 확률이 누가 더 높을까요? 낭떠러지에서 떨어지거나 다리가 부러질 확률이 누가 더 높을까요? 제가 더 높습니다. 저는 늘 차를 타고 이동하고, 해외도 많이 가고, 위험한 곳에도 자주 다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나이가 들수록 사고 날 확률이 점점 더 높아집니다. 지난번에 감나무에 올라가 작업을 하는데, '70세 넘은 영감이 나무 위에 올라가는 건 위험하니, 다른 건 몰라도 나무에는 오르지 마십시오' 하고 주변에서 말렸습니다. 그러나 사고 날 가능성을 생각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확률은 높지만, 올라간다고 즉시 떨어져 죽는 것은 아니에요. 다만 조심해야 합니다.

아이가 정신 질환을 앓고 있다면 이렇게 약을 갑자기 다 먹고 죽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그것을 매일 옆에서 걱정하고 있으면 질문자는 평생 그 걱정에 매달려 전전긍긍하게 되고, 귀찮다고 시설에 맡기거나 방치하면 그에 대한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됩니다. 이럴 때 중도(中道)란 아이를 보살피되 불의의 일이 발생할 가능성을 미리 알고 있는 것입니다. 약을 먹었다 해도 그것은 가능성이 언제나 있는 일이었기 때문에 놀랄 필요가 없습니다. 약을 먹으면 병원에 이송해 처치하면 됩니다. 만약 그러다 죽었다면 장례를 치러주면 됩니다. 이런 관점을 가지면 불안하지 않고 살 수 있어요. 아이 때문에 봉사하러 나오지 못할 이유도 없고, 아이 때문에 이렇게 질문할 이유도 없다는 겁니다.
보통 사람보다 약간 위험도가 높다면 그만큼 관심을 약간 더 가지면 되지, 그것이 불안의 요인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그런 아이를 마치 위험도가 낮은 보통 사람처럼, 아무 일도 없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질문자가 불안하고 전전긍긍하게 되는 겁니다. 만약 내 자동차가 엔진도 브레이크도 타이어도 문제가 있는데, 돈이 없어서 수리를 못 한 채 몰고 다닌다면 불안하지 않겠어요? '가다가 도로 한복판에서 고장 나 멈춰버리면 어떡하나' 하고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차는 몰지 않거나, 몰기로 했다면 각오를 해야 합니다.
그것처럼 지금부터는 이러한 현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부모가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 하는 생각은 부모라는 집착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생깁니다. 그러나 아이에게 정신 질환이 있기 때문에 그로 인해 생길 수 있는 일들을 감안하고 보살펴야 합니다. 장애가 있으면 장애를 감안하고 보살펴야지, 장애 있는 아이에게 건강한 아이들처럼 왜 행동을 빠르게 못 하느냐, 왜 공부를 못 하느냐고 다그쳐서는 안 되는 것과 같습니다.”
“저도 그런 관점으로 아이를 보려고 하고 있지만, 막상 사건이 발생하니 그 관점을 유지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런 어려움은, 질문자가 머리로는 그렇게 생각했을지 몰라도 '아무 일도 없었으면 좋겠다' 하는 마음이 속에 남아 있기 때문에 생기는 겁니다. 저도 국내, 해외 이곳저곳을 다니면서 '아무 사고도 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하는 마음이 없겠어요? 겉으로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것처럼 보여도 속으로는 당연히 그런 마음이 있습니다. 그래도 사고가 일단 나면 처음에는 당황할 수 있지만, 곧바로 '확률이 늘 있는 일이다' 하고 받아들입니다.
제가 요즘 몸 상태가 좋지 않은데, 이렇게 바쁘게 돌아다니면서 병이 안 나고 배기겠어요? 요행히 지금까지 안 난 겁니다. 병이 났다고 후회할 게 아니라, 그동안 안 아팠던 것에 감사해야 하는 거예요. 진작 여러 번 아팠을 법한데 어떻게든 운 좋게 넘어오다가, 그래도 귀국해서 아프니 다행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덜 괴롭습니다.
몸은 아프고 싶다고 아파지거나, 아프지 않고 싶다고 안 아파지는 게 아닙니다. 그러나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는 내가 선택할 수 있습니다. 질문자도 일어난 일에 놀라거나 '아이를 내팽개치고 절에만 다녔더니 이런 일이 생겼구나' 하고 자기 행위를 후회하기보다는, '아이고, 약을 그만큼 먹었는데도 안 죽어서 다행이다, 그래도 내가 절에 다니면서 기도했더니 목숨은 건졌구나' 이렇게 받아들이는 것이 필요합니다.
현대 의학의 힘을 빌려도 해결할 수 없는 일이라면, '늘 있을 수 있는 일이다' 하는 관점을 갖고 하는 데까지 하는 것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습니다. 제가 산에 마련한 과수원에는 매년 겨울 날씨가 추워지면 죽는 나무가 생깁니다. 그런데 나무 몇 그루 죽는다고 울거나 과수원을 접거나 하지 않습니다. 죽은 나무는 뽑아내고 내년에 또 심고, 산 나무는 잘 키우면 됩니다. 나무가 죽으면 또 뽑고 다시 심으면 됩니다. 이런 관점을 가지면 마음이 편안하고, 사고날까봐 전전긍긍하면 늘 불안하게 살게 됩니다. 같은 조건에서 살면서도 어떤 선택을 할지는 본인에게 달려 있습니다.”
“잘 알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아이가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 생각하며, 저는 제 할 일을 하며 살겠습니다.”

계속해서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대화를 마무리하고 다음 주에 예정된 다양한 정토회 행사 소식을 영상으로 본 후 사홍서원으로 수행법회를 마쳤습니다.

스님은 점심식사 후 건강이 좋지 않아 사무실에서 업무를 보았습니다. 오후 1시부터는 평화재단 회의실에서 세미나가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조민 전 통일연구원 부원장님을 모시고 '문명의 대전환,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를 주제로 진행되는 자리였습니다. 스님은 원래 참석할 예정이었으나, 건강이 좋지 않다고 양해를 구하고 사무실에서 온라인으로 시청했습니다.

오후 4시부터는 평화재단 기획위원회 회의에 참석했습니다. 향후 북미 정상회담의 가능성과 이후 한반도 정세를 다각도로 전망해 보고 그 속에서 평화재단의 역할에 대해 두 시간 동안 논의를 했습니다.

해가 저물고 저녁 7시 30분에는 저녁반 수행법회 생방송을 했습니다. 3층 설법전에는 60여 명의 대중이 자리하고, 정토회 회원들은 온라인 화상회의 방에 접속했습니다.

정토회 선거 결과와 주간 정토행자의 소식을 영상으로 함께 본 후 대중이 삼배의 예로 스님에게 법문을 청했습니다. 스님은 AI의 발전과 국제 질서의 재편으로 인류가 거대한 전환점에 서 있는 지금, 현실을 냉정하게 직시하면서 2차 천일결사에는 개인의 수행과 사회를 위한 대승적 실천을 함께 해나가자고 이야기했습니다.

“지금 세계는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제행무상(諸行無常)’처럼, 어느 시대든 세상이 변하지 않은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변화는 늘 있어 왔습니다. 다만 그 속도가 다를 뿐입니다. 어떤 때는 완만하게, 어떤 때는 급격하게 변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오늘의 시대는 그 변화의 속도가 매우 빠른 시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본래 자연의 일부로서 자신의 힘에 의지해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인지 능력이 발달하면서 동물의 힘을 빌려 부족한 신체적 한계를 보완하기 시작했습니다. 코끼리나 말, 소 같은 동물을 이용해 동력을 얻었던 것입니다. 이후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인간은 생명체의 힘이 아닌, 기계 장치를 통해 동력을 얻기 시작했습니다. 증기기관과 전기기관의 발명은 생산 능력을 획기적으로 확장시켰고, 전기의 활용과 함께 수많은 기계가 등장했습니다. 그 결과 인간의 육체적 힘은 기계의 힘에 비해 매우 미약한 수준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기계의 힘 덕분에 우리는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은 물품을 생산해 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21세기에 들어 인공지능이 급속히 발전하면서 이제는 단순히 인간의 육체적 노동을 대신하는 차원을 넘어, 정신적 작용까지 보완하고 대체하는 단계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기계를 사용함으로써 생산 효율이 몇 배로 증가했다면, 앞으로는 인공지능을 활용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사이의 효율성 격차가 훨씬 더 크게 벌어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더 나아가 인공지능이 일정한 임계점을 넘게 되면, 사람이 프로그램을 설계하고 정보를 주입해 작동시키는 단계를 넘어 스스로 정보를 수집하고 학습하며 프로그램을 고도화하는 수준에 이를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될 경우 인공지능이 인간의 통제를 벗어날 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제기됩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인류 역사상 또 한 번의 거대한 전환점에 서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한편 오늘날 국제 정세는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이 심화되면서 크게 요동치고 있습니다. 1·2차 세계대전 이후 인류는 두 차례의 전쟁이 남긴 참혹한 경험을 바탕으로 협력에 기반한 비교적 합리적인 세계 질서를 유지해 왔습니다. 그 중심에는 미국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들어 미국은 자국이 주도해 형성한 국제 질서가 더 이상 자신들에게 유리하지 않다고 판단하면서, 그 질서를 재편하거나 흔들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세계는 다시 큰 혼란에 빠진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이것을 과거 질서의 붕괴로만 보면 ‘혼란’이지만, 새로운 질서로 나아가는 전환 과정으로 보면 하나의 역사적 변화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세계 질서는 언제나 고정되어 있지 않았고, 시대에 따라 재편되어 왔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지금 이런 격변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동안 ‘세상은 원래 이런 것이다’, ‘인간관계는 이렇게 맺는 것이다’, ‘국제 질서는 이런 방향으로 흘러간다’와 같은 일정한 사고의 틀 속에서 세상을 이해해 왔습니다. 그런데 지금 벌어지는 현상들은 기존의 틀로는 예측하기도, 이해하기도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세상이 혼란스럽다기보다, 오히려 우리의 정신이 혼란을 느끼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갖고 있던, 세계를 이해하는 틀을 좀 바꾸어야 합니다. 인식의 틀을 고집하면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불안이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사물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려는 태도를 갖는다면, ‘아, 이렇게 변화하고 있구나’ 하고 받아들일 수 있게 됩니다.

이러한 시대적 전환기 속에서 우리는 여러 질문을 마주하게 됩니다. 개인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우리의 공동체는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가, 그리고 급변하는 국제 질서 속에서 대한민국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가 하는 물음입니다. 더 나아가 인류 문명 전체가 어떤 길을 모색해야 할지도 중요한 과제입니다.
과거에는 비교적 분명한 길이 있었습니다. 조상이 걸어온 방식을 따르고, 이미 형성된 질서 안에서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면 되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과거의 경험과 공식만으로는 대응하기 어려운 새로운 시대가 펼쳐지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를 우리는 불안해하기보다, 오히려 이런 격변의 시기일수록 냉정하게 현실을 직시하고 변화를 예의 주시하며 그 흐름을 면밀히 관찰해야 합니다.
정토회 회원은 세상이 어떻게 변하든 자신의 인생은 스스로 책임지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또한 외부 환경에 휘둘리기보다 자기중심을 잡고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곧 수행입니다. 수행자는 어떤 상황에서도 자기 마음을 돌이키고, 자신을 스스로 다스릴 수 있어야 합니다.
또한 우리는 대승 수행자입니다. 나 하나의 안위에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자신의 삶을 안정시키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 에너지를 이웃과 사회를 위해 사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에게 닥친 여러 문제를 지혜롭게 함께 해결해 나가려는 공동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정토회에서는 이미 30년 전부터 이런 문제의식을 느끼고 고민해 왔습니다. 개인은 미약할지라도 힘을 모으면 큰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믿음으로 ‘모자이크 붓다’를 목표로 함께 걸어왔습니다.
이제 정토회는 1차 만일결사를 회향하고 2차 만일결사에 들어섰으며, 그 가운데 1차 천일을 마치고 이제 2주 후면 다시 2차 천일에 입재하게 됩니다. 앞으로 2차 천일 동안에도 우리에게 주어진 여러 과제를 공동의 힘으로 함께 풀어갔으면 좋겠습니다.”

이어서 한 시간 동안 세 명이 스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그중 한 명은 우울증이 있는 딸과 돈 문제로 갈등이 이어지며 큰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며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스님에게 조언을 구했습니다.

“딸이 일곱 살 무렵 소아 우울증을 겪었습니다. 그때는 아이가 힘들어하니 모든 것을 아이 위주로 맞춰주게 되었습니다. 그 방식이 성인이 된 지금까지도 이어져 왔습니다. 재작년 겨울에는 우울증이 재발했습니다. 딸은 애니메이션을 전공했고 일본 문화를 좋아합니다. 학원비에 월세, 용돈까지 감당해야 하는 상황에서, 제 카드로 일본 애니메이션 속 인물처럼 옷을 사 입고 공연이나 카페를 다니며 지출이 점점 늘어났습니다. 결국 저는 카드를 정지시켰습니다. 저는 10년 전 남편의 외도로 이혼했고, 그 이후로는 제 자신 하나 감당하기도 벅찬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러다 정토회를 만나 꾸준히 수행하면서 잃어버린 저 자신을 조금씩 되찾았습니다. 그러고 나서야 비로소 아이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이번 일은 단순한 돈 문제가 아니라, 오래 묵혀두었던 상처를 다시 꺼내는 일처럼 느껴집니다. 돈을 계속 요구하는 딸과 한 달 가까이 실랑이를 벌이다 보니 스트레스가 쌓여 몸 여기저기에도 탈이 납니다. 저는 어떤 마음으로 딸을 대해야 할까요?”

“요즘 한류 열풍이 세계적으로 불고 있지요. BTS가 광화문에서 공연한다고 하니 전 세계 젊은이들이 한국으로 몰려온다고 합니다. 질문자는 이 현상이 어떻게 보입니까?”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동남아 어느 나라의 부모 입장에서 한번 생각해 봅시다. 딸이 한류에 빠져 집안 형편이 빠듯한데도 빚을 내서 한국에 가겠다고 하고, 한국 음식과 옷을 사달라고 한다면 어떻겠습니까? 우리는 그 사람들의 어려움은 생각하지 않고, 그저 한류가 퍼져서 좋다고만 생각하잖아요.
우리나라 무기가 품질이 좋아 잘 팔린다고 방위산업 주가가 오르고, 대통령까지 나서 자랑을 합니다. 그러나 그 무기가 어디선가는 사람을 해치는 데 쓰일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사람은 대개 자기 입장에서만 생각합니다.
질문자도 자기 생각으로 아이를 키워온 면이 있으니 지금 이런 상황이 된 겁니다. 이제는 어떻게 살 것인지 관점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형편이 되면 도와주면 됩니다. 돈을 쌓아두었다가 무엇 하겠습니까? 화장품을 사겠다면 사주고, 일본에 가겠다면 보내주고, 애니메이션과 관련해 무엇을 하겠다면 지원해 주면 되죠. 하나뿐인 딸 아닙니까?”
“그런데 해달라는 대로 다 해줄 형편이 안 됩니다.”

“형편이 안 되면 안 해주면 됩니다. 없는 돈을 어떻게 줍니까? 사실은 걱정할 일이 아니에요. 있으면 주고, 없으면 못 주는 일일 뿐입니다. 그런데 돈이 있는데도 안 주려 하니까 고민이 생기는 거죠. 안 주자니 아이가 울고불고하다가 혹시 잘못될까 걱정이고, 주자니 버릇이 될까 걱정이지요.
정말 돈이 없다면 걱정할 이유가 없습니다. 내 수중에 돈 한 푼 없는데 거지 수백 명이 몰려와 도와달라 한들 줄 수가 없지 않습니까? 걱정은 돈이 있는데 안 줄 때 생깁니다. 그러니 걱정이 없으려면 그냥 다 털어주든지, 없다고 분명히 말하든지, 둘 중 하나를 택하면 됩니다.
세속적으로 보면 ‘아이 문제로 걱정이 크겠다’ 싶겠지만, 크게 보면 걱정할 일이 아닙니다. 있으면 주고, 없으면 못 주는 거죠. 또 있어도 주기 싫으면 안 줘도 됩니다. 딸은 이미 성인이잖아요. 혹시 나가서 죽기라도 하면 어떡하느냐고요? 죽으면 장례 치러주면 됩니다. 성인이면 자기 생명은 자기가 책임져야 합니다. 미성년자일 때는 부모가 보호할 의무가 있지만, 다 키워 성인이 되면 각자 살아가는 거예요. 이렇게 탁 놓아버리면 걱정할 일이 없어요. ‘어떻게 살든 네 일이다.’, ‘있으면 도와주고, 없으면 못 준다.’ 이렇게 정리하면 됩니다. 움켜쥐고 있으니 괴로운 겁니다.”
“딸이 매일 전화해 ‘엄마, 오늘 오천 원만.’, ‘오늘 만 원만.’ 하며 한 달째 조르니 너무 힘듭니다.”

“전화 오면 받아서 ‘돈 없다.’라고 하면 됩니다. 한번 생각해 보세요. 열 번씩 전화해 사정하는 딸이 더 힘들겠어요, 아니면 ‘없다’라고 한마디 하는 엄마가 더 힘들겠어요? 내 입장이 훨씬 쉬운데 뭐가 힘들어요?
한 달이 아니라 1년이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엄마 돈!’ 하면 ‘없다.’ 하면 됩니다. 다만 ‘죽겠다’라고 할 때는, ‘그래, 죽어라’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기면 스스로를 탓하게 되기 때문이에요. 그러니 죽겠다고 하면 ‘죽지 마라.’ 이렇게 말하면 됩니다. 그 결과는 성인이 된 딸의 책임이지, 부모의 책임은 아닙니다.
어린아이 다루듯 연연하면 끝이 없습니다. 부모가 어떻게 자식에게 그러냐고요? 그렇다면 그렇게 사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다르게 살고 싶다면 제가 말한 원칙대로 대응하면 됩니다. 미워하지도 말고, 야단치지도 마세요. 사람이 회사에서 일해 돈을 벌든, 부모에게 사정해서 돈을 받든, 때리거나 빼앗거나 훔치거나 사기 치는 범죄만 아니라면 괜찮습니다. 넓게 보면 모두 돈을 얻는 방식입니다. 자식이 보기에는 회사에 나가 일하는 것보다 엄마 주머니에 있는 돈을 얻는 게 더 쉬워 보일 수도 있습니다.
부모에게 재산이 있으면 형제 사이에도 다툼이 생깁니다. 그 돈을 가질 권리가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에요. 때리거나 빼앗거나 훔치거나 사기 치는 일이 아니라면, 이것도 일종의 경쟁일 뿐입니다. 엄마에게서 얻든, 아빠에게서 얻든, 다른 누구에게서 얻든, 범죄만 아니라면 그 사람의 돈 버는 방식인 거예요.

그 일로 화낼 필요도 없습니다. 안 주는 것은 나의 선택입니다. ‘엄마가 힘들다’라고 하소연할 필요도 없습니다. 오히려 ‘너 힘들겠다’라고 말해 줄 수도 있어야 합니다. ‘매일 전화해서 없는 돈 달라고 하느라 힘들지 않니?’ 하고 농담도 섞어가며 말하면 좋습니다. 이렇게 원칙적인 태도를 취하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집니다. 미워해라는 것도 아니고, 모녀 관계를 끊자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자연의 이치로 돌아가자는 것입니다.”
“동생도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대학에 가야 해서 비용이 많이 듭니다. 딸이 혼자 계속 많은 것을 요구하니 부담이 큽니다. 저 혼자 벌어 두 아이를 키우다 보니 대출금만 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더 이상 안 된다고 딱 끊었는데 마음이 괴롭습니다.”
“마음이 괴로우면 주면 되죠. 그러나 돈이 없으면 안 주면 됩니다. 동생 등록금 때문이라고 설명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 말이 무슨 설득력이 있겠어요. 그 말을 이해할 사람이었다면 애초에 계속 요구하지도 않았을 겁니다.
옛말에 ‘도둑이 씨앗을 아느냐’라는 말이 있습니다. 도둑이 훔치러 와서 그것이 내년 봄에 심을 씨앗이라는 걸 알고 남겨두겠습니까? 농부에게는 생명 같은 씨앗이지만, 도둑은 그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그렇듯이 질문자에게는 그 돈에 계획이 있지만, 당장 돈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설명해도 설득력이 없어요. 그냥 ‘돈 없다. 그건 내가 써야 한다.’ 이렇게 말하면 됩니다.

죽겠다고 협박하는 것도, 그렇게 하면 돈을 얻을 수 있을 거라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죽을 테면 죽어라’ 이렇게 말해서는 안 됩니다.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할 수는 없으니 ‘죽지 마라. 그래도 돈은 없다.’ 이렇게 원칙대로 이야기하면 됩니다. 아이가 어릴 때 길 가다 장난감을 사달라며 떼쓰면 ‘아이고, 알았다’ 하고 사주며 키웠기 때문에 지금도 그 방식이 이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옛날부터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 말이 나온 거예요. 그때 ‘울어라, 나는 간다’ 하고 지나갔다면 여기까지 오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이제 와 바꾸려니 어렵지만, 지금이라도 원칙을 세우면 됩니다. 수행자는 ‘아이로 인해 내 인생이 힘들다’ 이런 말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내가 어떻게 자유롭게 살 것인가, 이것이 내 문제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장기적으로 봐야 할 문제이니 제 마음을 먼저 편안히 하겠습니다. 그리고 조금 더 담담하게 ‘돈 없다’라고 말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계속해서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대화를 마치고 나니 밤 9시가 넘었습니다. 사홍서원으로 법회를 마친 후 대중은 모둠별로 동그랗게 둘러앉아 마음 나누기를 했습니다.

내일은 아침 일찍 평화재단에서 북한 전문가들과 조찬 모임을 하고, 이어서 외교 안보 전문가들과 미팅을 한 후, 오후에는 평화재단 정기 이사회와 JTS 정기 이사회에 참석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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