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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두북수련원의 아침이 밝았습니다. 오늘부터 정토회에서는 새해를 맞이하여 3일 동안 정초기도를 합니다. 한 해를 어떤 마음으로 살아갈지에 대해 매일 스님의 법문을 듣고 300배 정진을 한 후 도반들과 마음 나누기를 할 예정입니다.

스님은 새벽 수행과 명상을 마친 후 오전 10시 정각이 되어 방송실 카메라 앞에 자리했습니다. 대중은 스님에게 삼배를 하며 정초기도 입재 법문을 청했습니다. 스님은 설 명절을 맞아 옛사람들이 정초에 절을 찾아 빌었던 기도의 본래 의미를 이야기하며 법문을 시작했습니다.

“설 명절 연휴, 모두 잘 지내셨습니까? 오늘은 음력으로 새해 일월 초삼일입니다. 옛날부터 새해를 맞이하면 정초 초하루, 이틀은 가족과 주위 어르신들에게 세배를 드리고요. 삼일부터는 가까운 절을 찾았습니다. 그래서 올 한 해를 무사히 잘 보낼 수 있도록 마음의 준비를 하기 위해, 절에서 삼일 또는 일주일간 정진을 했습니다.
시내나 마을 가까이에 있는 절에서는 오늘처럼 사시 기도 시간을 제때 맞춰 기도할 수 있지만, 옛날 같으면 절이 산속에 있었기 때문에 하루 종일 걸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산에 있는 절에 삼일, 또는 오일이나 칠 일간 숙박하면서 기도를 했습니다.

‘기도’라고 하는 것은 마음을 편안하게 가지고, 오롯이 한곳에 집중해서 자기가 원하는 바를 간절히 기원하는 것입니다. 옛날 사람들은 대개 한 해를 큰 사고 없이 무사히 지낼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옛날 사람들이 말하는 '큰 사고'는 대표적으로 세 가지였습니다. 첫째, 자신은 물론 가족이 큰 질병에 걸리는 것입니다. 둘째, 옛날에는 산길로 많이 다녔기 때문에 짐승의 피해도 있었고, 먼 길을 가거나 어떤 일을 하다가 다치거나 넘어지는 사고가 종종 일어났습니다. 셋째, 예기치 못하게 관가에 잡혀가서 곤장을 맞는 곤욕을 치르는 것입니다. 이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그다음으로는 홍수나 화재 같은 자연재해 없이 올해 농사가 잘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었고요. 또 마을에서 사람들 사이에 시비나 분쟁이 생겨 싸움이 일어나고, 이웃 간에 원한이 맺히는 일도 없었으면 했습니다. 이렇게 여러 재앙이 없기를 바라는 것이, 옛사람들이 복을 빈다고 할 때의 주된 내용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기복적 신앙, 이를테면 '돈을 많이 벌었으면 좋겠다', '출세했으면 좋겠다' 하는 것과는 성격이 좀 다릅니다. 큰 의미에서 '자기가 바라는 것을 성취하려 한다'는 점에서는 복을 비는 것에 해당할 수 있지만, 그 복을 비는 내용이 남에게 손해를 끼치고 자신만 이익을 보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무엇보다 '갖가지 재난이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이었던 거예요.
옛날에는 뜻하지 않은 재난이 일어나 많은 사람들이 고통에 처하곤 했습니다. 그래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비는 것이 보통 사람들의 기도 내용이었습니다. 더 나아가 태풍이 불고 홍수가 나고 산불이 나고 병이 드는 일이 생겼을 때 그것을 자기 부주의로 생기는 일로도 알아야 하지만, 동시에 ‘세상에서 일어나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하는 점도 받아들여야 합니다. 즉, 그런 일이 일어났을 때 ‘나는 어떻게 대응할 것이냐?’ 하는 관점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호랑이한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살 길이 열린다’는 옛말이 있듯이, 설사 그런 상황이 벌어졌다 하더라도 여러 조건의 변화에 흔들리기보다 차분하게 ‘내가 어떻게 지혜롭게 대응할 것인가?’ 하고 살펴야 합니다. 당황해서 어리석은 대응으로 화를 자초할 것이 아니라, 지혜롭게 대응해서 그 재난을 극복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런 마음을 갖기 위해서 이렇게 정초에 마음가짐을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
정초에 마음가짐을 새롭게 한다는 것은 우리에게 일어나는 예측하지 못한 불의의 여러 재난을 잘 받아내겠다는 마음 자세를 갖는 것을 뜻합니다. 첫째는 세상일이 순조롭게 잘 흘러가면 좋겠다는 간절한 바람을 갖는 것이고, 둘째는 어떤 일이 일어나든 내가 지혜롭게 대응할 수 있도록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과거의 기도가 소박한 바람을 담아 마음을 가다듬는 것이었다면, 근래에는 기도가 소박한 바람이 아니라 욕심, 즉 부처님이 경계하신 탐심(貪心)·진심(嗔心)·치심(癡心)에 기반하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공부하지 않아도 기도만 하면 좋은 대학에 붙는다거나, 병이 낫는다거나, 주식이나 땅값이 오르고 장사가 잘된다는 식으로 기복적인 흐름으로 변질된 것입니다.
이런 현상 때문에 한편으로는 사람들이 기도에 많이 몰리는 효과도 있었고, ‘기도비를 많이 내면 영험이 있다’ 하는 인식 속에서 경제 성장기에는 교회나 절로 많은 돈이 유입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기도가 이렇게 기복적으로 흐르게 된 결과, 오늘날에는 오히려 많은 사람들이 기도 자체에 대해 회의적이 되어 부정적인 시각을 갖게 되기도 했습니다.
요즘도 경제가 성장하는 중국이나 베트남에 가보면, 여전히 수많은 사람이 기도의 공덕과 영험을 좇아 보시하고 절을 짓거나 불상을 조성하고 탑을 세우며 복을 빕니다. 이런 모습은 부처님의 가르침과는 거리가 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지혜의 가르침’입니다. 인간이 가진 탐진치 삼독을 무조건 부정하기보다, 중생이 어리석어 그런 마음을 낼 수는 있으나 모든 고통은 바로 그 마음으로부터 비롯된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입니다. 그러니 그런 마음이 일어날 때 지혜롭게 대응하여, 그 마음에 속박받지 않는 것이 고통을 벗어나 행복으로 가는 길입니다.
우리의 괴로움은 탐진치 삼독에 그 원인이 있고, 이 마음을 제어할 때 비로소 진정한 행복인 열반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 부처님 가르침의 핵심입니다. 그런데도 오늘날 불교는 기도를 통해 안 되는 일도 되게 하고, 내 성질대로 모든 것을 이루려는 식으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기도의 형태를 경계하고 유의해야 합니다. 이런 기복적 현상은 종교를 불문하고 중생을 어리석게 만들고,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며, 자본주의적 병폐를 낳기도 합니다. 우리는 예로부터 내려오는 기도의 본래 정신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열반과 깨달음을 추구하는 마음가짐으로 기도에 임해야 합니다.
최근에는 ‘기도’라는 말이 부정적인 의미로 많이 쓰이다 보니, 요즘 젊은 세대는 이 용어 자체에 거부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그러나 정토회에서는 기도라는 말을 버리기보다, 용어는 그대로 두고 잘못된 내용은 바른 내용으로 채우고자 합니다. 특히 수행의 관점에서는 ‘기도’ 대신 ‘정진’이라는 말을 쓰기도 합니다. ‘정진’이라는 말에는 자기 마음을 오롯이 깨어 있게 유지한다는 뜻이 더 강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정초기도를 할 때도, 그 뜻에 ‘정진한다’는 마음가짐이 들어 있으니 ‘정진’이라는 용어를 함께 쓰는 것입니다.
올해 정초기도의 정진 주제는 ‘팔정도(八正道)’입니다. 모든 고통의 근본 뿌리는 탐진치, 즉 욕심과 성냄과 어리석음입니다. 마음이 이 독성에 물들면 고통이라는 병을 유발합니다. 이 독성을 제거하기 위해 우리는 계행(戒行)을 청정히 지켜 탐심을 없애고, 선정(禪定)을 닦아 진심을 없애며, 지혜(智慧)를 증득하여 치심을 없애야 합니다. 이것을 계, 정, 혜 ‘삼학(三學)’이라고 합니다.

수행자는 자신의 언행에 특히 유의해야 합니다. 언행에 유의하여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것이 계행입니다. 언행이 천박해지는 이유는 마음에 스트레스와 분노가 많기 때문입니다. 이를 제어하지 못하고 말과 행동으로 즉각 드러내면 분쟁과 갈등이 생깁니다. 분노를 억지로 참기만 하면 결국 터지게 되어 더 격렬한 말이 나옵니다. 그러니 단순히 참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본질을 꿰뚫어 분노를 삭여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선정’입니다.
선정을 닦기 위해서는 첫째, 몸과 마음이 편안해야 합니다. 스트레스가 쌓여 있으면 마음이 편안할 수 없고, 늘 긴장 상태에 놓이게 됩니다. 그러므로 가장 먼저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가다듬는 것이 중요합니다.
둘째, 마음을 한곳에 딱 집중해야 합니다. 현대인들은 매우 산만합니다. 이것저것 동시에 신경을 쓰다 보니 정신이 흩어지기 일쑤입니다. 요즘 젊은이들과 대화를 해봐도 이 말 저 말 섞어가며 요점을 파악하기 어려울 정도로 산만한 경우가 많습니다.
집중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소리에 집중하는 대표적인 방법이 주력입니다. ‘옴마니 반메 훔’ 같은 소리에 집중하는 것은 주력이라 부르고, 염불은 소리에 집중하기도 하지만 관세음보살의 성상(聖像)이나 그분의 대비심에 마음을 집중하는 방법입니다. 다른 집중 방법으로는 참선이나 위파사나 같은 선(禪) 수행이 있습니다. 한국의 참선은 주로 ‘이 뭐꼬’ 하는 화두에 집중하고, 호흡관을 할 때는 자신의 호흡에 오롯이 집중합니다. 이때 주의할 점은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생각을 이어가면 그것은 ‘망상’이 됩니다. 오직 집중을 통해 깨어 있는 상태, 즉 알아차림을 유지해야 합니다.
이처럼 호흡, 화두, 소리, 모양 등 집중하는 대상에 따라 참선, 주력, 염불 등 이름은 달라지지만, 핵심은 같습니다. ‘편안한 가운데 집중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앉아서 하든 서서 하든, 혹은 절을 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절을 할 때도 몸과 마음의 긴장을 풀고 편안하게 집중해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분이 절을 할 때 힘들다는 이유로 이를 악물고, 악을 쓰며 억지로 하곤 합니다. 물론 그것도 인내심을 기르는 수행은 될 수 있지만, 선정을 닦는 수행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절을 할 때도 몸과 마음을 편안히 하고, 명심문에 집중하며 정진하는 것이 좋습니다.

정진의 핵심은 첫째,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것, 둘째, 한곳에 집중하는 것, 셋째, 알아차림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알아차림이란 화두든 호흡이든 염불이든 그 대상에 오롯이 깨어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망상을 피우거나 정신없이 하는 것이 아니라, 뚜렷하게 깨어 있음을 유지해야 합니다.
만약 ‘제가 부족합니다’라는 수행문으로 정진한다면, 몸으로는 절을 하면서 마음은 그 문구에 집중해야 합니다. 그렇게 딱 집중하고 있으면 정진이 끝난 뒤에 ‘하기 싫은데 억지로 했다’ 하거나 ‘절이 잘 됐다’ 하는 식의 온갖 생각이 덜 일어납니다. 그런 생각들은 모두 번뇌일 뿐입니다. 이런저런 생각이 일어나더라도, 삼백 배를 하기로 했으면 그저 조용히 집중해서 다만 절을 할 뿐입니다. 마음이 이리저리 일렁이는 것은 다 번뇌에 속하니, 거기에 끌려가서는 안 됩니다. 그런 마음이 아예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그것들을 마치 바깥의 바람 소리나 새소리처럼 두고, 나는 그저 절에 집중할 뿐이라는 관점을 가져야 합니다.
이렇게 꾸준히 정진해 나가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처음에는 집중을 좀 하다가도 번뇌가 일어나면 금방 거기에 끌려갑니다. 절을 하면서도 ‘만나기만 해봐라’ 하며 분노를 삭이거나, 지난 고통을 떠올리며 우는 등 자꾸 감정에 쏠려갑니다. 명상이나 절을 할 때 그런 마음이 일어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망상인 줄 알고, 현재에 집중하며 뚜렷이 깨어 있는 자세를 유지해야 합니다. 어떤 번뇌가 일어나더라도 꾸준히 정진해나가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정진은 마치 농구 선수가 골대에 공을 넣는 연습을 하듯 정성을 기울이는 것입니다. 연습할 때는 공이 골대에 들어가면 주워서 다시 던지고, 안 들어가도 다시 주워서 던집니다. ‘들어갔으니 좋다’ 하거나 ‘안 들어갔으니 문제다’ 하고 일희일비하지 않습니다. 들어가는 것을 목표로 하되, 결과와 상관없이 30분이든 1시간이든 꾸준히 연습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일주일, 한 달, 석 달을 반복하면 결과적으로 공이 들어가는 횟수가 점점 늘어납니다.
처음 절을 할 때는 다리가 아프다거나, 그만하고 싶다거나, ‘절을 한다고 뭐가 달라지나’, 혹은 ‘이게 기복이 아니냐’ 하는 온갖 번뇌가 일어납니다. 이런 생각이 안 일어났으면 좋겠다고 바랄 것이 아니라, 이것은 마치 밖에서 바람이 불고 새소리가 들리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현상임을 알아야 합니다. 독서할 때 책에 집중하듯이, 어떤 생각이 일어나든 나는 꾸준히 절을 하며 명심문에 집중해야 합니다. 거기에 뚜렷이 깨어 있어야지 끌려 다녀서는 안 됩니다. 정진 후에 다리가 아팠느니 어쨌느니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아픈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우리가 등산할 때 개울을 건너고 가파른 비탈을 오르며 땡볕을 받는 것과 같습니다. 등산하는 과정에서 겪는 일들은 그리 중요한 게 아닙니다. 신발을 벗어야 하면 벗고, 개울을 건너야 할 일이 있으면 건너며 가는 것입니다. 절을 할 때도 이런저런 증상이 나타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목표를 향해 꾸준히 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정진입니다. 이를 악물고 죽기 살기로 참는 것이 아니라, ‘이런 증상이 있구나’ 하고 알면서 그저 꾸준히 나아가는 것입니다.
정진을 하는 이유는 마음이 밝아지고 지혜를 얻기 위해서입니다. 올해 내 앞에 어떤 상황이 닥칠지는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갑자기 직장에서 해고될 수도 있고, 가족과 사별하거나 교통사고가 날 수도 있습니다. 그런 일이 생기지 않기를 바라는 소박한 염원도 있겠지만, 설령 어떤 일이 생기더라도 지혜롭게 대응하고 받아들이는 자세가 더 중요합니다. 미리 이런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다면, 똑같은 일을 겪어도 다른 사람보다 훨씬 고통이 적습니다. 오늘은 정초기도 첫날이니 이런 관점을 분명히 가지고 정진에 임해 봅시다.”

입재 법문이 끝나고 잠시 자리 정돈을 한 후 300배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넓고 깊은 원력 세워 보살도를 닦고 닦아
고통 중생 구하시려 사바세계 몸을 나퉈...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유수스님의 집전으로 우렁찬 염불이 시작되자, 모니터 속 대중들의 모습이 모두 절하는 모습으로 바뀌었습니다.

간절한 염불 소리가 랜선을 타고 전국으로 울려 퍼졌습니다.
한 시간 동안의 기도를 마치고 모둠별로 화상회의 방에 입장해 마음 나누기 시간을 가졌습니다.
정초기도를 마친 후 스님은 오후 내내 휴식을 취했습니다. 장기간의 해외 출장 이후 계속 몸이 좋지 않아 두북수련원에 있는 동안에는 휴식 위주로 생활을 하기로 했습니다.

내일은 정초기도 2일째를 맞이하여 오전에 법문과 정진을 생방송으로 함께한 후 저녁에는 금요 즉문즉설 강연을 생방송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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