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6.2.17. 한국 도착, 불심도문 큰스님 새해 인사
“직장에서 부드럽게 말하는 게 늘 수행일까요, 아니면 회피일까요?”

안녕하세요. 오늘은 인도 방문 일정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와 스승님인 불심도문 큰스님에게 새해 인사를 드렸습니다.

스님은 어제 밤에 인도 델리 공항을 출발하여 오늘 새벽 5시 55분에 인천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짐을 찾아서 공항 밖으로 이동하니 묘덕법사님과 법등법사님이 마중 나와 있었습니다.

"스님, 잘 다녀오셨습니까?"

"네, 나이가 들어가나봐요. 이제는 해외 출장 기간이 길어지면 힘이 좀 드네요."

스님은 인천공항에서 바로 두북 수련원으로 이동했습니다.


오전 10시 40분에 두북 수련원에 도착하여 짐을 정리하고 점심 식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불심도문 큰스님이 계시는 부산 중생사로 이동했습니다. 설날이라 차가 많아 길이 막히기 시작했습니다.

오후 2시 15분에 부산 중생사에 도착했습니다. 중생사 앞에서 유수스님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스님은 유수스님과 함께 불심도문 큰스님께 새해 인사를 드렸습니다.


불심도문 큰스님은 반가운 마음에 자리에 앉자마자 집안 어른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일제강점기에 조선의 큰 부자였던 박형집 거사 집안과 임동수 거사 집안이 힘을 합하여 3만 석의 재산으로 기미년 3·1 독립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을 뒷받침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당시에는 비밀을 보장하기 위해 이름을 바꿔가며 활동했기 때문에 역사 기록에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집안 이야기를 마치시더니 불심도문 큰스님이 스님을 바라보며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법륜스님이 아니었으면 내가 이 세상에 온 보람도 없고, 아무 의미도 없을 것입니다. 법륜스님은 참말로 중요한 분이에요. 그런데 내가 늘 마음에 걸리고 미안한 게 뭐냐 하면, 무거운 책임만 맡길 게 아니라 물질적으로도 좀 도와서 활동하시게 했어야 하는데, 그걸 제대로 못 했다는 겁니다. 도와드리지는 못하고 무거운 짐만 딱 지어놓은 것 같아서… 그게 참 대단히 미안합니다.”

이에 대해 스님이 답했습니다.

"큰스님, 그렇게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임동수 거사님도 돈을 그냥 자손에게 물려주지 않고 독립운동에 쓰셨잖아요. 독립운동을 하시느라 전 재산을 다 써서 자손에게는 제대로 남겨주지 못하셨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였습니다. 마찬가지로 큰스님께서 성지의 땅을 마련해 주시고 사상의 토대를 준비해 두셨기 때문에 저희가 그 일을 이렇게 이어갈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건 됐는데, 성지 가꾸는 경비를 주지 못했잖아요."

"그것은 저희들이 마련할 수 있습니다."

"아이고, 그렇게 말해 주니 참 고맙습니다."

큰스님은 크게 웃으시며 기뻐하셨습니다.

이어서 스님은 불심도문 큰스님께 용성조사와 독립운동에 관한 연구 진행 상황을 보고하고 궁금한 점을 여쭈었습니다. 봉오동·청산리 전투 이후 괴멸된 독립군이 용성조사님이 땅을 마련한 명월촌 일대에서 고려혁명군으로 재건된 정황, 환단고기 출판과 홍범도 장군의 연관성, 대한민국 국호의 유래 등 연구원들이 역사 기록을 추적하며 새롭게 발견한 사실들을 보고하고 큰스님의 기억을 여쭈었습니다.

"저희들이 옛날 여러 기록을 뒤져서 큰스님 말씀을 뒷받침할 증거를 찾고 있습니다. 큰스님 말씀만 가지고는 세상에서 인정을 해주지 않으니까요."

큰스님은 고개를 끄덕이시며 기억나는 부분은 답해 주시고, 확실하지 않은 부분은 솔직하게 잘 모르겠다고 하셨습니다. 독립운동 관련 이야기를 마친 후, 스님은 큰스님께 기쁜 소식을 전했습니다.

"큰스님, 큰스님께서 그렇게 원하시던 천룡사 복원 불사는 허가가 났습니다."

스님은 천룡사 복원 계획을 설명했습니다. 원래 천룡사가 있었던 자리에는 허가가 나지 않았지만, 산을 바라보고 왼쪽에 새로 절을 지어도 좋다는 허가가 났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사찰 건축에 가장 조예가 깊은 스님에게 건축 자문을 구해 진행할 것이라고 보고했습니다.

"그동안 정토회는 일을 할 때 가능한 한 돈을 적게 들이는 데 주안점을 두어 왔습니다. 그런데 천룡사 복원 불사는 용성 조사님의 유훈을 실현하는 일이잖아요. 그래서 가능하면 역사적 고증을 거쳐 고려 말, 조선 초의 양식으로 지으려고 합니다. 큰스님께서도 건강 잘 유지하셔서 낙성식 때 큰 목소리로 법문을 해 주십시오."

이 말을 들은 큰스님은 한참 동안 말을 잇지 못하셨습니다.

“말만 들어도 고맙습니다. 내가 그래도 수명을 연장해 여기까지 버틴 게, 이 소식 한 번 들으려고 그랬나 봅니다. 그리고 또 미안합니다.”

스님은 다시 한번 큰스님을 안심시켰습니다.

"임동수 거사님 집안이 3만 석을 들여 자손에게 물려주지 않고 대한민국을 세우는 데 바치지 않았습니까. 그것처럼 큰스님께서도 불교 중흥을 이룰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 두셨으니, 큰스님은 정말 잘하신 겁니다.“

"깨끗하게 살았어. 다만 우리 법륜스님한테 지원을 넉넉하게 못 해줘서 미안할 뿐이지.“

"용성 조사님도 독립운동하는 데 돈을 다 써버렸지, 불심도문 큰스님한테 돈을 지원해 주지는 않으셨잖아요.“

큰스님은 그 말에 웃으시며 마지막 인사를 건네셨습니다.

"그래, 그 말은 맞습니다. 돈은 다 내가 마련해서 했지. 아이고, 너무 감사합니다. 법륜스님처럼 사는 것이 올바른 거예요.”

스님은 새해 인사를 마치고 부산에 있는 한 병원으로 이동하였습니다. 몇 해 전부터 건강이 좋지 않은 속가 형님이 입원해 계시는 곳인데 설날이니 형님에게 새해 인사를 드리기 위해서였습니다.

설 연휴로 병원 전체가 고요한 가운데 형님을 담당하는 의사 선생님이 스님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스님, 어서 오세요."

"설날인데 집에 가지 않고 병원에 있었어요? 덕분에 형님에게 새해 인사드릴 수 있게 되었네요."

"아닙니다. 집에 갔다가 오는 길에 저도 잠시 병원에 들렀습니다."

스님이 담당 의사 선생님과 안부 인사를 하는 중에 형님이 휠체어를 타고 만남의 장소에 왔습니다. 스님은 형님을 마주하고 앉아 반갑게 인사를 했습니다.

"형님, 오늘 설날이에요. 새해 인사하러 왔습니다. 잘 계셨어요?"

전보다는 상태가 조금 나아진 것 같았지만, 의사소통은 아직 어려운 상태였습니다. 스님은 형님이 드시도록 챙겨 온 과일을 선물하고, 가까이에 계시는 누님 댁으로 이동했습니다.

오후 4시 50분에 누님 댁에 도착했습니다. 스님은 누님과 매부에게 새해 인사를 드렸습니다.

누님이 차려 주신 다과상을 맛있게 먹고 두북 수련원으로 이동하니 오후 6시가 되었습니다.

해가 저물고 저녁에는 원고를 교정하고 일찍 휴식을 취했습니다. 내일은 두북 수련원 방송실에서 정토회 회원들에게 설을 맞이하여 새해 인사를 전하며 수행법회 생방송을 할 예정입니다.

오늘은 법문이 없었기 때문에 지난 11일에 인도 수자타아카데미에서 온라인으로 진행된 수행법회에서 스님과 질문자가 나눈 대화 내용을 소개하며 글을 마칩니다.

직장에서 부드럽게 말하는 게 수행일까요, 아니면 회피일까요?

“수행자는 단체 의견을 어떻게 개진하는지에 대해 질문드립니다. 개인적으로는 비교적 부드럽게 의견을 말해보고, 안 되면 수긍하는 쪽으로 의사결정을 해왔습니다. 올해부터 직장에서 팀장 역할을 하면서 내가 수긍을 하면 우리 팀 전체에 영향을 끼쳐 팀원들의 반발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절대 안 된다, 꼭 해야 한다는 식의 단호한 의사 표현 없이 어떻게 집단 의사를 반영할 수 있는지 질문드립니다.”

“부처님은 다수의 의견이라고 해서 모든 것을 다 수긍하신 것은 아닙니다. 당시 계급제도는 다수가 받아들이던 제도였지만, 부처님은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으셨습니다. 여성 출가도 마찬가지입니다. 다수가 반대했지만, 거기에 구애받지 않고 여성 출가를 허용하셨습니다.

그 과정에서 부처님은 화를 내거나 고집을 부리지도 않으셨습니다. 늘 상대편의 의견을 충분히 듣고 경청하셨습니다. 논쟁하러 온 사람들에게도 ‘충분히 이야기해 보라’고 하시고, 그 이야기를 끝까지 들으신 다음에, 그들의 모순된 주장을 조용하지만 아주 분명하게 짚어 말씀하셨습니다.

질문자가 회사에서 팀장으로서 자기 팀의 이익만 지나치게 대변하면 ‘조직 이기주의’가 될 수 있습니다. 조직 이기주의는 회사 전체의 이익을 훼손시킬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회사의 다수 의견이라고 해서 무조건 수용만 하고 오면, 팀원들의 불만이 생길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 둘을 조화롭게 이루는 것이 ‘중도(中道)’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첫째, 팀장으로서 팀원들의 의견을 수렴해 전체 회의에서 대변하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회의 과정에서 다른 의견이 더 합당하다고 수긍이 되면, 이에 동의한 후 팀원들을 설득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팀 의견은 이렇지만, 다수의 의견이 이렇고 그게 더 타당해서 내가 그것을 수용했습니다. 팀원들의 의견을 관철하지 못한 것은 미안하지만, 회사에 우리만 있는 게 아니고 전체가 같이 있기 때문에 이번에는 우리가 전체의 의견을 수용하는 쪽으로 합시다.’

이렇게 팀원들에게 말해줄 수 있어야 합니다. 국회의원도 비슷합니다. 국회의원이라면 자기 지역구 국민들의 의견을 국회에 가서 반영해야 합니다. 하지만 국회는 여러 지역의 의견을 함께 수용하기 때문에, 내 의견이 소수 의견이 되어 지역구의 뜻을 관철시키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그 결정된 내용을 다시 지역 주민에게 설명하고, 주민들의 이해를 구해야 하는 거예요.

‘여러분 의견은 이렇지만, 국민 전체 의견이 이렇기 때문에 이번에 관철하지 못한 것은 미안합니다. 그러나 우리도 이것을 수용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이렇게 주민들을 설득해야 합니다. 이런 관점을 가지면, 어디 가서 할 말을 못 하고 오거나, 반대로 자기 의견만 고집하는 양극단에 치우치지 않게 됩니다.

수행자는 자기 의견을 솔직하게, 충분히 이야기해야 하고, 전체 의견이 모아지면 그것을 기꺼이 수용해서 받아들여야 합니다. 받아들이는 데에만 치우치면 이야기를 못 하고, 이야기하는 데에만 치우치면 받아들이는 걸 못 합니다. 그러니 둘을 조화롭게 이루는 관점을 가져야 합니다.

개인적인 일이면 개인이 양보하면 되지만, 질문자는 팀장으로서 팀원의 의견을 대변해야 하니까 개인보다는 조금 더 의사를 분명하게 말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잘 알았습니다.”


2026 3월 정토불교대학

전체댓글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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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자정

고맙습니다.

2026-02-20 07:03:58

정태식

“부처님은 화를 내거나 고집을 부리지도 않으셨습니다. 늘 상대편의 의견을 충분히 듣고 경청하셨습니다.
논쟁하러 온 사람들에게도 ‘충분히 이야기해 보라’고 하시고, 그 이야기를 끝까지 들으신 다음에, 그들의 모순된 주장을 조용하지만 아주 분명하게 짚어 말씀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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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방의 억지스러운 이야기를 평온한 마음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우니 수행을 합니다.

2026-02-20 06:55:33

차덕환

중도의 길을. 찾겠습니다.

2026-02-20 06:5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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