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6.2.11. 수행법회, 수자타아카데미 둘러보기, 인도JTS 활동가 회의 및 법회
“남편이 불편해서 거리를 두고 싶습니다”

안녕하세요. 오늘은 수행법회 생방송을 하고, 수자타아카데미와 지바카병원을 둘러본 뒤, 인도JTS 활동가들과 회의 및 법회를 했습니다.

스님은 새벽 수행과 명상으로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현지 시각 오전 6시 30분, 한국 시각 오전 10시에 수행법회 생방송을 진행했습니다. 정토회 회원들이 모두 화상회의 방에 접속하자 스님이 인사말을 했습니다.

“저는 인도성지순례를 마치고 델리와 상카시아에서 법회를 한 뒤, 어제 수자타아카데미에 도착해서 오늘 이렇게 여러분을 뵙고 있습니다. 인도는 아침에는 기온이 10도까지 내려가 쌀쌀하지만, 한낮에는 25도까지 올라 더위를 느낄 만큼 일교차가 큽니다.

며칠 후면 우리의 전통 명절인 설이 다가옵니다. 혹시 마음에 묵은 섭섭함이나 원한 때문에 멀어진 인연이 있다면, 설이 오기 전에 먼저 연락하고 인사를 나누면서 풀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새해에는 기쁜 마음으로 화목하게 새로운 출발을 하시길 바랍니다. 설 이후에는 정초 기도가 있으니 그때는 저도 한국에 돌아가 여러분과 함께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15분 분량의 인도성지순례 영상을 함께 본 후 즉문즉설을 시작했습니다. 사전에 질문을 신청한 분들이 세 명이었습니다. 한 시간 동안 질문에 답하고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중 한 명은 인도 성지순례를 다녀온 뒤, 청소도 안 하고 나약하게 생활하는 아이들과 남편에게 화가 난다며 이 분노를 어떻게 다루면 좋을지 스님에게 조언을 구했습니다.

인도성지순례 다녀왔더니 남편이 더 싫어졌어요

“저는 이번 인도성지순례에 참여하면서 정말 많은 것을 느꼈고 매우 좋은 경험을 했습니다. 그런데 성지순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니 집안은 엉망이고, 아이들도 징징대고, 남편은 여전히 제 마음에 들지 않는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힘들고 어렵게 사는 인도 사람들을 보다가 이런 가족들의 모습을 다시 마주하니 짜증과 화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남편이 고마운 사람이라는 것을 머리로는 알지만, 막상 얼굴을 보니 싫어지고 출가하거나 가출하고 싶다는 생각까지 듭니다. 정토회 수련이나 성지순례에 참여할 때는 새로운 경험과 세계를 만나 너무 좋은데,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면 며칠 동안 괴로운 마음이 올라옵니다. 저는 왜 이럴까요?”

“이것은 관점을 잘못 잡아서 생긴 문제입니다. 평소에는 방 청소를 잘 하지 않는 남편을 보며 ‘게으르다’고 짜증을 냈다면, 인도 성지순례를 다녀온 뒤에는 관점을 이렇게 가져야 합니다.

‘인도처럼 지저분하고 열악한 환경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는데, 우리 집은 그에 비하면 훨씬 깨끗하고 살기 좋다.’

그래서 아이들에게도 ‘그래도 인도에 비하면 우리 집은 깨끗한 편이야’ 하고 말해 주고, 남편에 대해서도 ‘그 정도면 꽤 부지런한 편이야’라고 보아야 합니다. 그런데 질문자는 오히려 남편과 아이들에게 ‘인도 사람들은 그런 어려운 조건에서도 사는데, 너희는 이렇게 좋은 환경에 살면서 왜 고마운 줄 모르고 불평만 하느냐’ 하고 시비분별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질문자가 관점을 잘못 잡아서 생긴 부작용입니다.

관점을 바꿔야 합니다. 아이들에게도 ‘공부도 안 하고 길거리에서 구걸하는 아이들도 살아가는데, 너희는 그에 비하면 열심히 사는 편이야’라고 말해 주어야 합니다. 집이 조금 어질러져 있어도 ‘인도에서는 똥밭 옆에서도 밥을 먹고, 순례자 숙소 화장실도 엉망이었는데, 그에 비하면 우리 집은 정말 깨끗하지’ 이렇게 바라보아야 합니다. 이런 관점을 가지면 아이들은 ‘우리 엄마가 인도성지순례를 갔다오더니 너그러워졌구나’ 하고 느끼게 됩니다. 또 남편도 ‘우리 마누라가 예전에는 깐깐했는데, 성지순례 다녀오더니 훨씬 좋아졌구나’ 이렇게 느끼게 됩니다. 그래야 다음에 또 성지순례를 간다고 해도 가족들이 기꺼이 보내줄 수 있습니다. 심지어 질문자가 정토회 수련이나 성지순례에 가겠다고 하지 않아도, 남편이 먼저 ‘요즘 또 집안 분위기가 험악해지네. 제발 성지순례 좀 다녀오세요. 당신이 다녀와야 우리 일 년이 편안합니다.’ 이렇게 권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성지순례를 다녀와서 오히려 짜증을 내고 불평을 늘어놓으면, 다음에 가려고 할 때 가족들이 못 가게 막게 됩니다. 관점을 거꾸로 적용하다 보니, 가출하고 싶은 마음까지 드는 것입니다. 지금 질문자가 하려는 것은 출가와는 아무 관계 없는, 가출입니다. 출가인지 가출인지 따질 자격조차 없는 상태예요. (웃음)

그러니 이번 인도 성지순례에서 본 것을 적용할 때 ‘인도 사람들은 우리보다 훨씬 못 사는데도 불평 없이 사는데, 너희는 왜 이렇게 불평이 많으냐’ 이렇게 비교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이렇게 적용해야 합니다.

‘인도 같은 곳에서도 사람들이 살아가는데, 그에 비하면 우리 집은 훨씬 나은 거였어. 예전에는 집이 좀 지저분하다고 불평했지만, 인도에 비하면 우리 집은 정말 괜찮아.’

이렇게 너그럽게 바라봐야 나도 편하고, 아이들도 편하고, 앞으로 질문자가 정토회 활동을 하는 데도 가족들의 지지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야 가족들이 오히려 엄마가 ‘또 짜증이 많아지네, 인도 한 번 더 다녀오세요.’ 하고 권하게 됩니다. 지금은 그 적용을 거꾸로 해서 오히려 부작용이 생긴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계속해서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 정토회 내부 선거를 앞두고 책임봉사자로서 어떤 자세로 임해야 할까요?
  • 팀장이 되니 자신이 수긍한 결정이 팀 전체에 영향을 미쳐 팀원들의 반발을 사게 되었습니다. 집단의 뜻을 잘 반영하여 의견을 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다음 주 정초법회 때 다시 만나기로 하고 생방송을 마쳤습니다. 법회를 마치고 오전 9시 30분부터는 수자타아카데미 교실을 방문했습니다.

1학년 교실부터 차근차근 둘러보았습니다. 스님이 교실에 들어서자 학생들이 우렁차게 인사를 했습니다.

"나마스떼!" (안녕하세요!)

“나마스떼. 무슨 공부 하고 있었어요?”

스님은 학생들이 무슨 공부를 하고 있는지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칠판 앞으로 불러 힌디어로 글자를 써 보도록 했습니다.

"싯다르타를 힌디어로 한번 써보세요."

아이들은 긴장한 모습이었지만 저마다 공부한 내용을 잘 써 내려갔습니다.

3학년 교실에서는 아시아에 대해 공부하고 있었습니다. 스님이 한 여학생에게 질문했습니다.

"아시아에 있는 나라 이름을 아는 만큼 이야기해 보세요.“

여학생이 벌떡 일어나 망설임 없이 나라 이름을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49개의 나라를 모두 말하자 같은 반 학생들과 스님 모두 박수를 쳤습니다.

"와, 굉장하네요. 혹시 이 여학생이 빠뜨린 나라가 있다면 이야기해 볼 사람 있나요?“

담임 선생님이 말했습니다.

"없습니다."

"몰디브가 빠진 것 같은데요.“

스님이 이야기하자 학생들이 말했습니다.

"스님, 몰디브도 말했습니다.“

스님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습니다.

"아, 그랬군요. 잘했어요.“

스님은 각 교실을 둘러보며 어느 마을에서 왔는지 물었습니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학교와 가까운 자가디스푸르, 드루가푸르에서 왔다고 했습니다.

"학교에서 공부하면서 더 필요한 것은 없어요?“

"없습니다.“

"밥은 맛이 있어요? 양도 충분한가요?“

"네, 충분합니다.“

"집에 가면 공부할 수 있는 책상이 있나요?“

"아니요.“

"책상이 없으면 공부할 때 어떻게 해요?“

"침대에 앉아서 합니다."

"침대에 앉아서 노트도 침대에 두고 몸을 굽혀서 한다는 거예요? 그러면 공부할 때 불편하지 않아요?“

아이들은 말없이 웃었습니다.

5학년 학생들의 교실까지 둘러본 후 교장실, 교무실, 보건실 등도 살펴보았습니다. 교무실에는 댄스, 태권도 등 예체능 대외활동에서 입상한 메달과 트로피가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이어서 지바카병원으로 가보았습니다. 병원 입구에는 여러 명의 환자가 와 있었습니다. 스님이 환자들에게 물었습니다.

"어디가 아파서 왔어요?“

관절이 아프다는 사람, 가슴이 아프다는 사람, 몸이 떨리고 어지러운 증상이 있는 사람, 팔이 부러져 깁스하러 온 사람 등 다양했습니다.

치료실에서는 지바카병원 담당 스태프인 까미스왈 님이 상처 치료를 하고 있었습니다. 환자는 얼마 전 기찻길에서 사고가 나서 다리가 크게 다쳤지만, 가야에 있는 병원에서 받아주지 않아 지바카병원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까미스왈 님이 몇 달째 상처를 치료하며 위급한 상황은 넘긴 상태였습니다.

약품 관리실도 둘러보았습니다. 처음에는 결핵 환자를 치료하려는 목적으로 세웠던 지바카병원이 이제는 마을 사람들의 크고 작은 병을 치료하고 위급 상황에 대응하는 마을 보건소 역할을 하고 있었습니다. 까미스왈 님 외에도 외래 의사 선생님들이 함께 진료를 보고 있었습니다.

스님은 의사 선생님들과 스태프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고 병원을 나왔습니다.

점심식사를 한 후 스님이 학교 담당자에게 이야기했습니다.

"저학년 아이들과 사진을 한 번도 못 찍어 준 것 같아요. 오늘은 학년별로 아이들과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준비해 주세요."

학생들은 쁘락보디홀에서 점심을 먹고 단체 사진을 찍기 위해 운동장에 모였습니다. 마주 보는 태양이 눈부셨지만, 스님과 함께하는 시간에 아이들은 무척 신이 나 보였습니다. 학년별로 활짝 웃으며 사진을 찍었습니다.

사진을 찍은 후 6학년 교실로 가보았습니다.

"공부 잘 하고 있어요?“

“네!”

"6학년은 오전에 어떤 봉사를 하고 왔어요?"

부엌에서 일하거나, 학교 구석구석을 청소하거나, 공동 운력을 하는 등 저마다 학교 일감을 맡아 하고 와서 공부를 하고 있었습니다.

"집에서 공부할 책상은 있어요?"

"아니요, 없습니다."

"그러면 만약에 싯다르타하우스 기숙사를 열게 되면 집에서 보내주나요?"

"네."

"여학생들도 집에서 보내주나요?"

"네, 스님! 보내줍니다."

여학생이 당연하다는 듯이 당당하게 대답했습니다.

"태권도나 댄스 같은 특별활동을 하고 있는 사람 있습니까?"

태권도 대회에서 입상 경험이 있는 여학생이 손을 들었습니다.

“네, 여러분들은 이제 많이 컸으니, 학교에서는 공부를 열심히 하고 집에 가면 집안일도 도와야 합니다. 알았지요?”

“네!”

스님은 6학년 학생들과도 학교 앞에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다음으로 스님은 영어, 산스크리트어, 태권도, 댄스 등 다양한 분야의 특별활동 선생님들을 만나 감사 인사를 전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학생들이 여러 재능을 펼칠 수 있도록 잘 지도해 주세요.“

선생님들에게 선물을 전달하고 기념사진을 찍은 후 법당으로 갔습니다.

오후 1시 30분부터는 법당에서 7학년 48명과 8학년 학생 43명을 만나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스님은 학생들에게 각각 어떤 분야에서 봉사를 하고 있는지 물어보았습니다.

유치원 운영, 초등학교 수업, 급식 보조, 병원 근무 등 각자 맡은 역할을 하나하나 점검했습니다. 그리고 학생들에게 봉사하는 데 어려움은 없는지, 개선할 점은 없는지 물었습니다.

“꾸츠 네이!” (없습니다)

"여러분이 의견을 줘야지 유치원 운영을 개선할 수 있어요. 전혀 없다는 거예요?"

"네."

"작년에는 여러분들이 적극적으로 유치원에 무엇이 필요하다고 이야기를 했었잖아요. 그러면 그 사항들은 모두 개선됐나요?”

보광 법사님이 대답했습니다.

“네 스님, 작년에 학생들이 말했던 유치원 울타리, 핸드펌프 문제 등 모두 개선한 상태입니다.”

"수자타아카데미를 개교한 지 32년 만에 이렇게 건의 사항이 안 나오는 건 처음이네요." (웃음)

뒤늦게 산 넘어 통학하는 학생들이 신발이 빨리 닳아 지원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스님이 왜 빨리 말하지 않았느냐고 묻자 학생들이 웃었습니다.

7학년은 새 학기부터 8학년이 맡아 하던 유치원 운영을 이어받아야 합니다. 8학년은 졸업하면 당분간 수자타아카데미에서 봉사하기 어렵지만, 학생들은 대부분 다시 오고 싶다고 했습니다. 스님이 마지막으로 학생들에게 당부했습니다.

"7학년은 선배들이 하던 일을 얼른 배우세요. 8학년은 후배들에게 하던 일을 잘 인수인계해 주길 바랍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은 이제 다 컸기 때문에 집에 가면 집안일을 도와야 해요, 알겠지요? 공부만 할 수는 없잖아요. 부모님을 도와야 합니다.“

"네, 스님.“

스님은 학생들에게 준비한 선물을 나누어 주고 학년별로 단체 사진을 찍었습니다.


곧바로 오후 2시 30분부터는 11~14학년 학생들과 자원봉사 학생 6명을 만났습니다. 스님에게 삼배를 올린 후 잠시 명상을 했습니다.

명상을 마치고 스님과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잘 지냈어요?“

"네, 스님."

이 학생들은 수자타아카데미에서 초등, 중등부를 마치고 이제 대학 진학을 앞두고 있거나, 대학에 다니고 있었습니다. 스님은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전공과 맡은 역할을 물었습니다. 고등부 학생들은 유치원, 초등학교 2학년 수업을 하고, 대학생들은 4학년·5학년 수업, 병원, 태권도, 행정 업무, 도서관 등 각자의 자리에서 봉사하고 있었습니다.

"여기에서 봉사하면 공부는 언제 합니까?“

"봉사를 마치고 2시부터 공부하고 있습니다."

스님은 집에 전기가 들어오는지, 공부할 책상이 있는지도 물었습니다. 책상이 없는 학생이 대다수였습니다. 건의 사항을 묻자 한 학생이 의견을 냈습니다.

"스님, 대학 입학 시험 기간에 한시적으로만 기숙사를 운영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시험 기간에만이라도 집중해서 공부할 수 있도록 해주시면 아마 여러 학생들의 시험 결과가 많이 바뀔 것 같습니다."

10학년, 11학년 중 집에서만 지내는 학생들을 위한 프로그램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도 나왔습니다. 학교에 나와서 활동하는 학생과 그렇지 않은 학생의 고등부 졸업시험 결과가 확연히 다르다는 것이었습니다. 스님은 학생들의 건의를 귀담아 들었습니다. 더 이상 건의 사항이 없자 스님이 학생들을 격려했습니다.

"아이들 가르친다고 수고하셨어요. 여러분이 수자타아카데미에서 공부할 수 있었던 것은 누군가가 여러분들을 도와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도 정성을 기울여서 봉사를 해주시기 바랍니다.

잘 알다시피 수자타아카데미는 오직 아이들에게 공부를 가르치기 위해서 만들어졌습니다. 초등학교까지는 어린아이니까 무조건 공부할 수 있게 하고, 중학교부터는 자기도 조금 시간을 내서 어린아이를 도와야 합니다. 여러분들도 어릴 때 도움을 받았기 때문에 이제는 여러분이 어린아이들을 도와야 한다는 마음으로 봉사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동네에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가난하기 때문에 병이 나도 치료를 받기 어렵습니다. 병원에서 봉사하는 사람들은 아픈 사람들을 돕는 데 정성을 기울여 주시기 바랍니다."

스님은 학생들에게 준비한 선물을 나누어주고 함께 사진을 찍었습니다.


오후 3시에는 사무실로 이동하여 수자타아카데미에 상주하는 한국인 활동가들을 비롯하여 상카시아에서 온 활동가들, 부탄에서 온 활동가들과 전체 회의를 했습니다. 원래 소수 인원으로 JTS 사업 방향을 논의하려 했으나 참여자가 늘어 큰 자리가 되었습니다. 스님은 먼저 JTS 인도 사업의 지난 30여 년을 짚었습니다.

문맹 퇴치와 보건, 그리고 남은 과제

"JTS가 이곳에 온 원래의 목적은 문맹 퇴치예요. 초등학교를 세워서 문맹 퇴치를 하려 했는데 초등학교 입학이 50퍼센트가 안 됐어요. 유치원을 만들면서 결과적으로 문맹 퇴치는 유치원에서 하게 된 거예요."

유치원에서 또래 친구를 사귀고 학교 다니는 습관을 배운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초등학교에 진학하면서, 문맹 퇴치는 어느 정도 성공적이었다고 스님은 평가했습니다. 보건 분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스님이 처음 왔을 때 결핵 환자가 300명이었고, 출산 중 사망하는 산모도 있었으며, 유아 사망률도 높았습니다. 코브라에 물려 죽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지금은 결핵 환자가 거의 없어졌고, 산모와 유아 사망도 크게 줄었습니다. 교육에 대한 인식도 달라져서 불가촉천민 가정에서도 부모가 적극적으로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있습니다.

"초기 목표 중에 전혀 손을 못 댔던 게 마을 개발 프로그램이에요."

스님은 초기에 구상했던 세 가지 마을 개발 사업을 설명했습니다. 첫째, 생산자 협동조합을 만들어 농업 생산을 효율화하는 것. 둘째, 소비자 협동조합으로 공동 구매를 통해 도매가격으로 물건을 사도록 하는 것. 셋째, 마을 금고를 만들어 연 120퍼센트에 달하는 고리대금에서 주민들을 보호하는 것. 그러나 배운 사람이 없고, 천민 마을이라 농업 중심 지역이 아니며, 치안이 불안해 셋 다 실행하지 못했습니다. 그동안 할 수 있었던 것은 핸드펌프 설치로 식수 문제를 해결한 것, 극빈자 가정에 지붕을 씌워주고 식량을 지원한 것, 산모와 환자를 돕는 것 정도였습니다.

스님은 부탄에서 진행한 마을 개발 경험을 인도에도 적용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제안했습니다.

“먼저 공공 분야에서는 마을 도로 포장과 하수구 정비가 필요합니다. 우기가 되면 진흙, 가축 배설물, 하수가 뒤범벅이 되는 마을 길을 벽돌로 포장하고, 빗물과 오수가 빠지도록 배수로를 만드는 일입니다. 까나홀 같은 마을은 리어카 하나 다닐 수 없는 좁은 길밖에 없어서, 담장을 50센티미터 정도 안으로 물려 새로 치고, 작은 차량이 들어갈 수 있도록 도로를 넓히는 것도 필요합니다. 개인 주거 부분에서는, 집이 없거나 반쯤 지어진 집에 사는 사람들에게 건축 자재를 지원하되 동네 사람들이 힘을 합해서 짓는 조건을 둡시다. 산티나가르에서 이미 성공적으로 시행한 바 있지만, 이 지역은 공동체 의식이 약해 쉽지 않은 과제입니다.”

집 내부 환경 개선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아이디어를 나누었습니다. JTS 활동가 중 한 명은 중학생 이상 학생들에게 목공 기술을 가르쳐 자기 집에 선반을 만들도록 하자는 제안을 했습니다.

또 스님은 초등학생에게는 앉은뱅이 책상, 상급생에게는 책걸상을 제공하는 것도 고려해 보자고 했습니다. 다만 개인의 자립심을 해치는 지원은 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분명히 했습니다.

"정말 공부를 하고 싶지만 기본적인 여건이 없어서 어려운 아이들을 도와주자는 관점에서 아이디어를 내주면 좋겠습니다.“

학교의 장기적 자립을 위해

스님은 학교의 장기적 자립 문제도 꺼냈습니다. 현재 수자타아카데미에서 봉사하는 스태프들은 어릴 때부터 이곳에서 자란 사람들입니다. 지금은 혼자 살거나 아이들이 크지 않아 자원봉사 시스템이 유지되지만, 이들이 나이 들고 자녀가 크면 지금 구조로는 지속이 어렵습니다.

"30년 동안 봉사한 것을 후회하지 않도록 하려면 남보다 잘 살지는 못해도 늙어서 후회는 하지 않도록 노후 보장은 해주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학교 자립 방안으로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학교를 정부에 기증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JTS가 자체 재정 자립 구조를 만드는 것입니다. 이와 관련해 여러 아이디어가 나왔습니다. JTS 활동가 중 한 명은 원예 사업을 제안했습니다. 관광지라는 이점을 활용해 꽃을 재배하고, 학생들에게 원예 기술을 가르치면서 가야나 보드가야에 판매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스님은 교육용으로는 좋지만 생활할 수 있는 소득이 되려면 주민들이 직접 재배하고 판로를 열어주는 방향이 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또한 카페, 꽃집, 기념품점 등 여러 가지를 조금씩 운영하되 한 가지에만 집중하지 말 것, 그리고 기존 상인들과 경쟁하는 방식이 아니라 필요한데 없는 것을 만드는 방향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남이 호텔 짓는데 나도 호텔 지어서 수익을 보려는 것은 좋은 방식이 아니에요. 필요로 하는데 없는 것을 만들어서 한다든지, 사람들에게 편리성을 제공한다든지, 이런 경우는 해볼만 하다고 생각합니다.”

JTS 활동가 중 한 명은 건축부의 열악한 장비 상황을 보고했습니다. 나무 하나 베는 데 4명이 반나절을 붙어야 하고, 전동 공구가 거의 없으며, 컴프레서도 한 대 없는 실정이었습니다. 스님은 장비 도입의 필요성에 동의하면서도, 기존 노동자들이 기계를 안 쓰려 하고, 젊은이들은 기술보다 공무원을 선호하는 문제를 지적했습니다.

"우리가 문맹 퇴치는 됐는데 엄청난 부작용이 있어요. 동네 많은 젊은이들이 실업자가 됐어요. 학교를 안 다녔으면 무슨 노동이라도 하는데, 그걸 천하게 여기게 된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인도에서 남은 일정을 논의한 후 회의를 마쳤습니다.

오후 4시 30분부터는 실무자들과 부탄 JTS 및 인도JTS 운영 전반에 대해 논의했습니다.

부탄 주거 개선 사업도 자립의 방향으로

먼저 부탄 마을 주거 개선 사업 진행 상황을 점검했습니다. 현재 부탄에서 JTS는 하위 20퍼센트 가난한 가정을 대상으로 화장실 설치, 부엌 개선, 선반 설치 등 내부 리모델링을 해주고 있습니다. 스님은 원칙을 분명히 했습니다. 동네 사람 전부를 모아놓고 보여주는 방식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방식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JTS 활동가는 사업 완료 후 마을 사람들이 좋아하며 자기들도 하겠다고 나서고 있다고 보고했습니다. 스님은 6월까지 사업을 진행하되, 봉사 인원이 많으면 최소 3팀을 동시에 투입하는 게 좋겠다고 제안했습니다.

“JTS 활동가들이 내부 리모델링을 해주는 방식은 6월까지만 하면 좋겠습니다. 그 이후에는 목공 교육을 해서 마을 사람들이 자체적으로 자기 집부터 수리하도록 하고, 나머지 집들은 품앗이로 하면 될 것 같습니다.”

치과 의료 사업에 대해서도 논의했습니다. 원래 이가 없는 노인들에게 틀니를 해주려고 계획했으나, 정부관료들이 더 높은 수준의 치료를 원하면서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못 해주면 욕을 얻어 먹고, 잘해주면 먹고 살 만한 사람도 와서 해달라고 해서 문제입니다."

이어서 인도JTS 스태프들의 주거 환경 개선도 논의했습니다. 보광 법사님은 현재 인도JTS 스태프 대부분의 집이 내부 벽체 미장도 안 되어 있는 상태라고 보고했습니다. 스태프 한 명의 집은 바깥에는 페인트가 되어 있지만 안은 미장이 하나도 안 되어 있고, 다른 스태프의 집은 기본적인 마감조차 안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스님은 돈을 직접 주는 것이 아니라 주거 개선 계획서를 받아서, 동네 일반 수준에서 필요한 범위 안에서 자재를 지원하는 방식으로 하자고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상카시아 담마센터 부지의 건축 계획을 논의하고 오후 5시 30분에 회의를 마쳤습니다.

해가 저물고 저녁 식사를 함께 한 후 7시부터 다시 모두가 한자리에 모여 스님을 모시고 특별 법회를 했습니다.

인도JTS 활동가, 단기 봉사자, 부탄JTS 활동가, 상카시아에서 온 활동가, 인도성지순례를 마치고 남은 사람 등 다양한 사람들이 자리했습니다. 먼저 스님이 현재 JTS 사업이 구호에서 지속 가능한 개발로 전환되고 있다는 점을 언급하며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부탄 사업을 하면서 깨닫는 점이 참 많았습니다. 이곳 인도 둥게스와리는 생활 여건이 매우 열악해서, 그동안 최소한의 지원만 해왔습니다. 여기의 사업은 ‘구호’이고, 부탄은 ‘개발’이라는 점에서 성격이 다릅니다. 최근에 부탄에서 개발 사업을 진행하면서 ‘이곳 둥게스와리 주민들을 위한 개발 지원도 조금은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조건의 열악함만 따지면 이곳을 먼저 지원해야겠지만, 사업의 성격이 서로 다릅니다.

구호에서 개발로, JTS 사업의 새로운 방향

JTS의 원래 목적은 구호이기 때문에, 이곳에서는 구호에만 충실한 것이고, 부탄에서는 개발 분야를 한 번 실험적으로 시도해 보는 것입니다. 원래 JTS는 개발 사업을 하지 않기로 했지만, ‘지속 가능한 개발’이라는 전제 조건을 붙여 시범적으로 추진하는 사업이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그동안은 홍수가 나면 구호 활동만 했는데, 이제는 복구까지 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고민도 생깁니다. 복구는 개발 사업에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부탄 사업의 평가가 어느 정도 제대로 나오면, 다른 지역에서도 낮은 수준이나마 개발 사업을 시도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어서 누구든지 손을 들고 스님에게 궁금한 점을 묻고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두 시간 동안 열 명이 스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그중 한 명은 극심한 더위 속에서 명상하면 힘들다며 인도의 기후 특수성을 고려해 명상 시 선풍기를 켜도록 허용하면 어떤지 제안을 했습니다.

명상할 때 선풍기를 켜면 안 되나요?

“저는 마을개발 파트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명상과 관련해 한 가지 제안을 드리고 싶은데요. 원래 명상을 할 때는 선풍기를 끄고 하는 게 원칙입니다. 그런데 인도는 기후가 워낙 특수해서 3월부터 더워지기 시작해 10월까지 계속 덥습니다. 그래서 그 기간 동안 명상을 할 때마다 알아차림이 잘 안 되고, 오로지 더위만 계속 알아차리게 됩니다. 인도의 기후를 고려해 명상할 때 선풍기를 켜는 것을 허용하면 어떨지 강력하게 제안하고 싶습니다.”

“그게 뭐 그렇게 중요하다고 강력하게 제안해요?”

“제가 더위를 많이 타서 그렇습니다.”

“부처님께서 6년 고행하실 때 선풍기를 틀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까?”

“없습니다.”

“더위를 못 참는 건 자기 문제입니다. 더위를 못 참는다는 것은 더위를 알아차리는 것이 아니라, ‘더위를 싫어하는 마음에 사로잡혀 있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 싫어함을 해결하기 위해 선풍기 바람을 쐬서 해소하겠다는 것은 욕구를 따르는 겁니다. 그건 명상이 아니에요.

선풍기를 틀면 안 된다는 말은 아니지만, 그런 목적으로 선풍기를 튼다면 굳이 명상할 이유가 없다는 거예요. 명상은 욕구를 따르지도 않고, 욕구를 억지로 참지도 않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선풍기나 에어컨을 틀어 놓고 명상하면 앉아 있는 데는 도움이 될 수 있겠지만, 그것은 명상의 본래 목표는 아닙니다. 그래서 썩 좋은 제안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다만 이렇게 제안할 수는 있겠죠. ‘제가 더위를 도저히 견디기 어렵습니다. 실제로 명상을 해보니 더위를 알아차리기보다 더위를 참는 데만 힘을 쓰게 됩니다. 장소를 따로 정해 선풍기를 틀고 명상하도록 허용해 주실 수 있을까요?’ 이런 제안은 해볼 수 있습니다.”

“아, 따로 명상을 하는 건 생각을 못 해 봤습니다. 그러면 그렇게 제안해도 될까요?”

“제안은 해볼 수 있다는 거예요. 다만 허용이 안 되면 그대로 따라야죠. 자기 욕구를 드러내고 제안은 할 수 있다는 말이에요. 그러나 그것 때문에 이곳에 못 있겠다면 한국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러면 여기에 남으려면 새벽 5시에 하는 명상은 꼭 해야 하고, 그런 상황에서도 선풍기 사용은 허락받을 수 없는 건가요? 만약 안 되면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나요?”

“그런 사고를 하는 수준이라면 여기 안 오는 게 낫습니다. 사고가 경직돼 있기 때문이에요. 여기 올 때 ‘이곳 생활에 적응하고 원칙을 지키겠습니다.’ 하고 약속하고 온 것이잖아요. 예를 들어 배가 아프면 ‘배가 아프니 병원에 가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하고 요청할 수 있고, 허락되면 다녀오면 됩니다. 그런데 대부분 처음 오면 다들 한 번씩 아픕니다. 조금 지나면 괜찮아지니까 ‘기다려 보자.’라고 하면 ‘알았습니다.’ 하고 기다려야 합니다. 그게 수행이에요.

자기 욕구를 중심으로 제안은 할 수 있지만 판단은 법사님이 합니다. 체질 문제라면 밖에서 따로 명상하게 할 수도 있고, 단순한 욕구라면 그 욕구를 넘어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거기에 따르는 거예요. 약속해 놓고 와서는 ‘나는 더우니까 선풍기를 틀어야 합니다. 강력히 요청합니다.’ 이런 태도는 올바르지 않습니다.”

계속해서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 교장실과 교사 회의실에 설립자인 스님의 사진이 없어 스태프들이 평소 설립 철학을 되새기기 어렵습니다. 학교 주요 공간에 설립자 사진을 걸어 정신적 구심점을 만들면 어떨까요?
  • 상카시아에서 불사를 하다 보니 카스트 문화 때문에 화장실 청소 등 봉사활동에 포함시키기 어려운 사람들이 생깁니다. 완공 후 숙박 기준도 정해져 있지 않는데, 앞으로 석가족들의 자원봉사 활동을 어떻게 진행해야 할까요?
  • 인도인 스태프들에게 시간당 수당을 계산해 지급하고 있어 자원봉사자와 노동자의 경계가 모호해졌습니다. 봉사 정신을 유지하면서도 현실적인 처우 기준을 어떻게 잡아야 할까요?
  • 인도인 스태프들이 과거에 한국을 방문했던 경험이 큰 자부심과 봉사 원동력이 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몇 년 주기로 인도인 스태프들에게 한국 견학 기회를 부여하면 어떨까요?
  • 한국인 봉사자들은 현지어를 배우고 있지만, 인도인 스태프들은 한국어를 따로 배우지 않아 소통에 한계가 있습니다. 인도 스태프들을 위한 한국어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면 어떨까요?
  • 스님의 책이 힌디어로 번역되었지만 아직 출판이 안 되고 있습니다. 외부 전문가에게 검토를 맡겨도 될까요?
  • 부탄 파로 공항 서점에 스님 책을 비치할 수 있는 가능성을 서점 주인과 이야기해 보았습니다. 서점에 책을 놓고, 티벳 승려들과의 대화 자리도 늘려보면 어떨까요?
  • 한국에서 정토연수원에 머물고 있지만, 인도나 다른 곳에 가서 봉사도 돕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여러 곳을 오가며 돕는 것과 한 곳에 정주하는 것 중에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요?

대화를 마칠 무렵 한 분이 손을 들고 질문했습니다. 남편과 함께 생활하면서 불편함이 컸고, 거리를 두고 싶은 마음이 있는데, 이제 돌아가면 남편을 어떤 마음으로 대하면 좋겠는지 스님에게 조언을 구했습니다.

남편이 불편해서 거리를 두고 싶습니다

“저는 남편과의 관계가 늘 힘들었습니다. 이곳에 오기 전에도 한집에 살면서 많이 불편했고, 잠시 거리를 두고 싶다는 마음이 컸습니다. 이제 한국으로 돌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남편을 어떤 마음으로 대해야 할지 궁금합니다.”

“남편을 그냥 ‘사람’으로 대하면 됩니다. ‘내 남편’이라고 하면 무의식적으로 ‘나와 비슷한 사람’이라는 전제가 붙습니다. 그래서 기대가 생기고, 그 기대와 다르면 실망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냥 ‘사람’이라고 보면 나와 다른 존재라는 사실을 인정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어떤 모임에서 다른 사람이 엉뚱한 질문을 하면 ‘저 사람은 저런 질문을 하는구나.’ 하고 넘어갑니다. 그런데 내 남편이나 내 아내가 그런 질문을 하면 괜히 내가 부끄러워집니다. ‘왜 저런 말을 하지?’ 이런 생각이 든단 말이에요. 나와 상대방을 동일시하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남편이 좀 지저분할 수도 있고 정리를 덜 할 수도 있는데, 자꾸 나를 기준으로 동일한 사람처럼 생각하게 됩니다. 보통 사람을 처음 만나면 사람 대 사람이 만나기 때문에 ‘나와 다를 것’이라는 전제가 있습니다. 그래서 다른 점이 있어도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고향이 같네, 종교가 같네, 취향이 같네 하며 같은 점이 발견되면 ‘우린 같은 사람이야.’ 하고 무의식이 작용하면서 호감이 생깁니다. 그런데 결혼을 하면 ‘같다’라는 전제가 기본이 됩니다. 처음에는 다르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같은 것이 자꾸 보였지만, 이제는 같다고 전제하니까 그다음 날부터는 다른 것이 자꾸 눈에 보입니다. 입맛도 다르네, 옷 벗어 놓는 것도 다르네, 생활 습관도 다르네 하며 계속 다른 것만 눈에 들어오는 거예요. 그렇게 마음의 상처가 쌓이다가 나중에는 ‘꼴도 보기 싫다.’는 말까지 나오게 됩니다.

그래서 집에 돌아가면 ‘남자 하나 있네.’ 이렇게 생각해 보세요. 늦게 들어오면 ‘남자가 늦게 들어오네.’, 짜게 먹으면 ‘저 남자 입맛은 짜네.’ 하고 남처럼 보는 겁니다. 남이라고 생각하라는 것은 ‘나와 다르다’라는 사실을 인정하라는 뜻입니다.

나와 다름을 늘 전제로 삼아야 합니다. 얼굴만 봐도 기분이 확 상할 때가 있는데, 그럴 때 스스로 ‘남이야.’ 하고 말해 보세요. 이 말은 미워하라는 뜻이 아니라, 나와 다르다는 사실을 자각하라는 것입니다.”

대화를 마친 후 마지막으로 스님이 봉사를 하러 온 활동가들이 이곳에서 어떤 마음으로 지내야 하는지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인도에 오든 필리핀에 가든 어디를 가든, 처음 3개월은 그냥 지켜보는 것이 좋습니다. 그런데 사람은 한 달쯤 지나면 의견이 가장 많이 생깁니다. ‘이건 이래야 되는데, 저건 저래야 되는데.’ 하며 분별이 올라옵니다. 그러나 3개월쯤 지나면 ‘그럴 만한 이유가 있구나.’ 하고 알게 됩니다. 처음에는 말도 안 된다고 느끼지만, 오래 살아보면 다 이유가 있습니다.

처음 3개월은 지켜보세요

저도 인도에 처음 왔을 때는 ‘사람들이 왜 이렇게 느리고 게으를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여름 한 철을 보내고 보니 알겠더라고요. 이렇게 더운데 어떻게 빠릿빠릿하게 움직이겠습니까. 더위를 견디는 것만 해도 큰일이에요. 또 남방 불교 문화권에서는 점심을 먹고 두 시간씩 쉽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스님이 왜 저렇게 쉬나?’ 싶지만, 오랜 세월 환경과 문화 속에서 형성된 방식입니다. 그래서 분별심이 올라와도 가만히 지켜봐야 합니다. 석 달쯤 지나면 저절로 사라지는 것도 많고, 자연스럽게 이해가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매일 자신의 의견을 적어보세요. 석 달쯤 지나 다시 읽어보니 ‘쓸데없는 생각이었구나.’ 싶은 것은 지우고, 그래도 남는 의견이 있으면 그때 문제를 제기하면 됩니다. 그곳에 너무 오래 살면 이번에는 반대로 다 포기해 버리는 문제가 생깁니다.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겠지.’ 하면서 새로운 의견을 내지 않게 되면 개선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석 달 안에 문제를 제기하면 아직 적응이 덜 된 상태이고, 1년이 지나면 적응만 하고 개선이 없어집니다. 그래서 한국 사람들이 인도에 오래 살면 인도 사람처럼 돼버립니다. 약속 시간도 늦고 매사에 느릿느릿해지죠. 처음 왔을 때 가졌던 문제의식 가운데 90퍼센트는 분별심이지만, 10퍼센트는 매우 참신한 아이디어이기도 합니다. 다만 그것이 분별심과 뒤섞여 있기 때문에 통째로 버려질 위험이 있는 것이죠.

그래서 매일 노트에 자기 생각을 적어 보세요. 100일쯤 지나 다시 읽어 보면서 지울 것은 지우고, 그래도 남는 것이 있으면 ‘이 부분은 이렇게 개선하면 어떻겠습니까?’ 하고 문제를 제기하면 됩니다. 이런 방식으로 공부해 가는 것이 좋습니다. 그래서 한국에서 해외로 파견을 보낼 때 ‘3개월은 입 다물어라.’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시집갈 때도 ‘봐도 못 본 척하고, 들어도 못 들은 척하고, 할 말이 있어도 하지 마라.’ 이렇게 가르쳤습니다. 그렇게 지내다 보면 시간이 지나 자연스럽게 정착하게 됩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적응만 해도 문제이고, 분별심만 내세워도 문제입니다. 적응을 먼저 하고, 그다음에 개선점을 찾아야 합니다. 변화는 개선점이 있어야 일어납니다. 우리는 처음에는 분별심으로 치우치고, 나중에는 포기와 안주로 치우치기 쉬워요. 그래서 먼저 적응하고, 그다음에 현실에 맞는 개선점을 조금씩 찾아가야 합니다.

또 아이들이나 학교를 돕는다고 해서 너무 잘해주려고만 해서도 안 됩니다. 우리가 없어도 이곳은 잘 살아왔습니다. 그렇다고 게으르게 있어서는 안 됩니다. 꾸준히 돕고, 필요한 것을 하나하나 의논하면서 차근차근 개선해 가면 됩니다. 단번에 바꾸려고 하기보다, 이렇게 꾸준히 개선해 나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9시가 되어 법회를 마쳤습니다.

스님은 피로가 많이 쌓인 상태였지만, 오늘도 빠짐없이 정해진 일정을 모두 마쳤습니다.

내일 오전에는 인도JTS 이사회를 하고, 오후에는 건축부, 마을지도자, 유치원교사, 스태프들을 만날 예정입니다.


2026 3월 정토불교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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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오행

늘 함께 합니다.고맙습니다.()()()

2026-02-14 07:53:18

지명화

고맙습니다

2026-02-14 07:33:53

구자정

고맙습니다.

2026-02-14 07:2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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