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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35차 성지 순례 다섯째 날입니다. 오늘은 수자타아카데미의 32번째 개교 기념식이 있는 날입니다.

스님은 이른 새벽 수행과 명상을 마친 후, 인도 시각 6시 30분에 온라인으로 수행법회를 시작했습니다.

스님은 성지 순례 진행 상황을 사진으로 전한 후 기후 위기와 국제 정세 혼란 속에서 부처님의 지혜로 중심을 잡고 정진을 해나가자고 법문을 했습니다. 이어서 사전에 질문을 신청한 분들이 차례대로 스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그중 한 명은 가족묘에 있던 도둑묘를 정당하게 이장한 후 가족에게 불행이 겹치자 '묘를 건드리면 화가 온다'는 속설 때문에 계속 불안하다며 어떻게 해야 할지 스님에게 조언을 구했습니다.
“저는 마음이 좀 편안해질 때면 오히려 ‘아, 이때다.’ 싶게 불안이 올라옵니다. 5년 전에 저희 집안 산에 도둑 묘를 쓴 분들의 묘가 있어 공무원의 중재를 거쳐 절차대로 이장을 잘 마쳤습니다. 그런데 올해 들어 연달아 일이 생겼습니다. 시아버님이 갑자기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억대 사기를 당해 도박 중독처럼 돈을 계속 잃으셨습니다. 남편은 중요한 시험에서 떨어졌고, 저희 일을 봐주시던 부모님 같은 분마저 암으로 갑자기 돌아가셨습니다. 이런 일들이 겹치다 보니, ‘묘를 이장하면 그 집안에 불행이 닥친다.’는 속설이 떠올라 불안이 더 커졌습니다. 우리 산에 있던 도둑 묘를 옮긴 건 정당한 일이었지만, ‘묘를 건드리면 안 된다.’라는 말이 계속 마음에 걸립니다. 부적도 받아봤지만 별 효과는 없었습니다. 합리적으로 보면 양쪽 조상 모두에게 나쁠 일이 아닌데도, 이런 속설이 저를 괴롭힙니다. 평소에도 샤머니즘이나 작은 속설에 마음이 걸리면 쉽게 빠져나오지 못하는 편인데, 제가 어떤 관점으로 수행해야 할까요?”

“전 세계를 놓고 보면, 매일 같이 교통사고로 사람이 죽습니다. 한 달에 한 번쯤은 대형 버스가 추락하거나 열차가 충돌하고, 비행기가 떨어지는 큰 사고도 일어납니다. 1년을 쭉 놓고 보면 일주일에 한 번꼴로 큰 사고가 나는 셈이지요. 개인적인 사고는 아마 분 단위로 일어날 겁니다. 사기 사건은 더 잦아서 초 단위로 발생한다고 봐도 무리가 없을 것입니다. 어머니가 사기를 당하셨다는 일도, 올 한 해 전 세계적으로 따져 보면 수십만 건은 될 겁니다. 시간을 나누면 거의 초 단위로 일어나는 사건이라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분 단위, 초 단위로 벌어지는 모든 사건이 다 묘를 이장해서 생겼거나, 부적을 안 사서 생겼거나, 누군가 부정한 일을 해서 생긴 걸까요? 사건 하나만 딱 떼어 놓고 보면 ‘안 생길 수도 있었는데 생겼다’고 느껴지니까 자꾸 그런 원인을 찾게 됩니다. 그래서 ‘묘를 이장해서 그렇다.’, ‘가지 말라는 데를 가서 그렇다.’, ‘다른 사람을 만나서 부정을 탔다.’ 이렇게 말할 수는 있겠지요. 하지만 전 세계의 모든 사건과 사고를 한데 모아 놓고 보면, 과연 그렇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옛날에는 모르고 묘 위에 집을 지으면 귀신이 나온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요즘 도시 주변 산들을 보세요. 평지를 제외하면 산기슭에 묘 하나 없는 곳이 거의 없습니다. 그걸 다 밀고 아파트를 지었습니다. 그렇게 따지면 지금의 아파트들은 수백만 기의 묘를 허물고 그 위에 세워진 셈입니다. 그렇다면 아파트마다 귀신이 나와서 사람이 못 살아야 할 텐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지요. 이건 묘를 옮겨서 생긴 문제가 아니라, 내 마음속의 심리적 불안에서 비롯된 일입니다.
묘를 옮길 때 마음속에 ‘묘를 옮기면 안 좋다는데…’ 하는 불안이 있던 사람은, 이후 나쁜 일이 생기면 곧바로 ‘이게 그 벌인가?’ 하고 사건과 속설을 연결합니다. ‘가지 말라는 데를 가서 벌 받은 건 아닐까?’, ‘몰래 다른 이성을 만난 게 화근이었을까?’ 이렇게 불안이 먼저 원인이 되어, 사실은 아무 관계 없는 일들 사이에 인과관계를 만들어 냅니다. 이것이 바로 소위 말하는 ‘징크스’입니다. 심리적으로 불안한 사람일수록 이런 징크스에 특히 민감합니다.
이렇게 한번 생각해 봅시다. 설령 누군가가 죽은 사람의 시신을 우리 산에 묻었다고 해서, 그게 그렇게 큰일입니까? 원래 땅이라는 것은 내 것도 아니고 네 것도 아닙니다. 산 사람끼리는 집도 짓고 농사도 지어야 하니까 경계를 나눌 수 있겠지만, 이미 죽은 시신을 땅에 묻는 데 내 산이면 어떻고 남의 산이면 어떻습니까? 자연의 이치로 보면 아무 의미가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내 산이니까 파내 가라.’ 하며 싸웁니다. 이게 오히려 자연의 질서에는 어긋나는 일입니다.
옛사람들은 살아 있을 때는 옳다 그르다 따지며 싸우다가도, 사람이 죽으면 더 이상 시시비비를 가리지 않았습니다. 죽었는데 무슨 옳고 그름이 있겠습니까. 그래서 초상이 나면 다 화해를 했습니다. 평소에는 말도 안 하던 사람들도 문상하러 가서 말을 트고, 그렇게 관계를 풀었습니다. 죽은 사람 앞에서는 과거를 묻지 않는 것, 이것을 ‘원결을 놓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죽은 이의 묘를 두고 옮기느니 마느니 하며 싸우다 보니, 옛사람들은 ‘이건 하늘이 노할 일이다.’ 싶어 묘에는 손을 대지 않는 문화를 만들었습니다. 이것이 점점 강조되면서 ‘묘에 손대면 벌을 받는다.’는 속설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좋은 뜻으로 묘를 손대더라도 날짜를 가려 정성을 들이고, 가능하면 윤달에 하라는 문화가 생긴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질문자는 행정 절차에 따라 정당하게 이장을 했습니다. 그것은 살아 있는 사람들의 법과 질서에 따른 이야기입니다. 죽은 사람의 관점에서는 그런 법의 적용이 사실상 의미가 없습니다.
하지만 이미 이장을 하지 않았습니까? 그렇다면 차라리 ‘죽은 시신까지 네 거 내 거 따졌더니 이런 손해를 좀 보는구나.’ 하고 지금 벌어진 일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편이 낫습니다. 이렇게 편안하게 받아들이는 쪽으로 속설을 적용하면 오히려 도움이 됩니다. 길 가다 넘어졌을 때 ‘이장해서 넘어졌다.’ 하고 괴로워하지 말고, ‘죽은 시신까지 따졌더니 넘어졌네. 이걸로 액땜했다.’ 하고 이미 일어난 일을 좋게 해석하라는 말입니다. 돈을 못 받을 때 ‘전생에 내가 진 빚을 이생에 갚았구나.’ 하고 생각하는 것도, 벌어진 일을 받아들이기 위해 전생 이야기를 빌려오는 것입니다. 하지만 내가 남의 돈을 떼먹고 ‘네가 전생에 내 돈을 떼먹어서 나도 떼먹는 거야.’라고 말한다면, 이건 말이 안 되겠지요. 전생이나 속설은 남을 해치라고 있는 게 아니라, 이미 벌어진 일을 덜 괴롭게 받아들이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질문자는 지금 이것을 거꾸로 적용하고 있습니다.
벌을 받아서 이런 일이 생긴 게 아닙니다. 이장과 상관없이 사람은 죽을 수도 있고, 사기를 당할 수도 있고, 시험에 떨어질 수도 있습니다. 지금 질문자는 심리적 불안 때문에 무연고 묘 이장과 최근의 안 좋은 일들을 연결해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두 사건은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라고 단칼에 말해버리기도 쉽지 않습니다. 심리적으로는 이미 두 사건이 연결되어 있다고 느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차라리 좋은 쪽으로 해석하는 편이 낫습니다. ‘시신을 옮겼더니 이런 손해가 좀 있었구나. 앞으로는 너무 이해관계를 따지지 말고 살아야겠다.’ 이렇게 말입니다. 사실만 놓고 보면 두 일 사이에는 특별한 인과관계가 없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만 속설에 마음이 걸린다면, 나쁜 쪽이 아니라 좋은 쪽으로 해석하시기를 권하고 싶습니다.”
“예, 잘 알았습니다. 그런데 저희 신랑이 조만간 또 큰 시험을 치르는데요. 혹시 거기서 떨어지더라도, 지금 말씀해 주신 이런 관점을 그대로 유지해도 될까요?”
“시험에 떨어지는 건 실력이 부족해서 떨어지는 거 아닐까요? (웃음) 경쟁이 치열해서 안 됐을 수도 있고, 공부가 부족했을 수도 있겠지요. 그래서 시험에 떨어지는 겁니다. 다시 하고 싶으면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서 또 도전하면 됩니다. 아무리 해도 안 되겠다 싶으면 ‘아, 나와는 인연이 없나 보다.’ 하고 그만두면 되지요. 굳이 이장하고 연관시킬 필요는 없습니다. 이장을 안 해도 시험에 떨어질 수 있고, 이장을 했어도 붙을 수 있습니다. 두 일 사이에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네, 잘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계속해서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수행법회 생방송을 마치고 나니 오전 7시 30분이 되었습니다. 대중은 모둠별로 화상회의 방에 모여서 마음 나누기를 이어 나갔고, 스님은 아침 공양을 했습니다.
오전 8시 30분, 고(故) 설성봉 님의 추도재가 열렸습니다. 고인은 인도 JTS 초창기 시절 무장 괴한의 침입에 맞서 목숨을 잃었습니다. 대중은 고인의 탑 앞에 모여 추모의 마음을 담아 예를 올렸습니다.


오전 9시 20분부터 마을 주민들이 학교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주민들은 JTS 스태프들의 안내에 따라 질서 정연하게 입장했습니다.

단정하고 예쁘게 차려입은 마을 사람들은 아이들과 함께 소풍을 오듯 즐거운 얼굴로 행사에 참여했습니다.


기념식은 매년 쁘락보디홀 강당에서 열렸는데, 올해는 운동장에서 진행되었습니다. 운동장 전체에 카펫을 깔아 마을 주민과 학생 모두 편하게 참여할 수 있도록 준비했습니다.
곧 운동장은 둥게스와리 마을 주민들과 내빈들로 가득 찼습니다.

인도 비하르주 입법의회 의장 프렘 쿠마르(Dr. Prem Kumar) 님, 비하르주 입법 의원 사르브지트 파스완(Sarvjeet Paswan) 님, 며칠 전부터 스님을 호위했던 가야 소속 경찰과 군인들, 보드가야 미얀마절·캄보디아절 주지 스님들, 그리고 수자타아카데미 초창기를 함께했던 인연들까지 자리했습니다. 스님은 기념식이 시작되기 전까지 내빈들과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오전 10시, 수자타아카데미 개교 32주년 기념식이 시작되었습니다. 학생들은 단정한 복장으로 '빤쯔실'(삼귀의·오계)과 교가를 합창하며 기념식의 문을 활짝 열었습니다.




이어서 내빈들의 축사가 있었습니다. 이사장 쁘리야팔 스님, 프렘 쿠마르 의장, 사르브지트 파스완 의원이 수자타아카데미 32주년을 축하했습니다.



기념식은 학생들의 춤과 태권도 시범, 전통 무용, 마을 주민들의 노래와 악기 연주로 이어졌습니다.






그중 가장 큰 호응을 받은 무대는 여학생들의 태권도 시범이었습니다. 당당한 동작에 관중의 박수와 환호가 쏟아졌습니다.




둥게스와리 마을 아이들 대부분이 수자타아카데미에 다니고 있어, 마을 주민 대부분이 학부모입니다. 학생들뿐만 아니라 마을 주민들도 공연을 선보였습니다.




준비한 공연이 모두 끝나자 스님이 무대에 올라 참석한 모든 분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함께해 주신 내빈 여러분, 500여 명의 한국 순례자들과 마을 지도자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둥게스와리는 2,600년 전 부처님께서 6년간 수행하신 땅입니다. 과거에는 시신을 버리던 부정한 장소로 여겨졌지만, 부처님께서 이곳에서 수행하시며 성스러운 수행지로 바뀌었고, 지금은 전 세계 사람들이 찾는 순례지가 되었습니다. 부처님은 부정한 땅도 성스러운 곳으로 바꾸셨습니다. 우리 또한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라 어려운 곳을 살기 좋은 곳으로 바꾸는 일을 해야 합니다.

수자타아카데미가 생기기 전 이 지역은 가난하고 배우지 못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학교가 설립된 이후, 이곳에는 학교에 다니지 않는 아이가 없을 정도로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JTS는 아이들이 종교나 성별에 상관없이 제때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원칙을 가지고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를 운영해 왔습니다. 그 결과, 이 지역에서 문맹 퇴치가 이루어졌고 교육받지 못한 아이는 없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의 다음 과제는 아픈 사람이 치료받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하는 것입니다. 가난하더라도 최소한 집이 없어 고통받는 사람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모든 아이가 교육받고, 모든 아픈 사람이 치료받으며, 누구나 자기 집 하나는 가질 수 있는,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삶이 가능한 마을을 만들어 가야 합니다.

이 일은 JTS 혼자서 할 수 없습니다. 비하르주와 가야시, 마을 주민들, 지역 유지 분들, 그리고 청년들이 함께할 때 가능합니다. 부처님께서 6년 수행하신 둥게스와리를, 우리는 교육과 치료, 주거가 보장된 마을로 만들어야 합니다. 지금까지 여러분과 함께 걸어온 것처럼, 앞으로도 힘을 모아 함께 나아갑시다.
오늘 우리 아이들이 무대 위에서 춤추고 노래하는 모습을 보니, 어디에 내놔도 자랑스럽지 않습니까?”
“네!”

“어떤 아이든 좋은 교육을 받으면 훌륭한 사람으로 자랄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마음을 모은다면 둥게스와리도 살기 좋은 마을로 바꿀 수 있습니다. 이 희망을 품고, 우리 함께 나아갑시다. 다시 한 번 이 자리에 함께해 주신 프렘 쿠마르 의장을 비롯한 모든 분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기념식의 마지막 무대는 '메모리얼 댄스'였습니다. 1993년 한 수행자의 발원에서 시작된 인연이 학교 설립으로, 그리고 수자타아카데미의 현재와 미래로 이어지는 과정을 춤으로 표현한 무대였습니다. 아이들은 "I will be Hope of the World(내가 세상의 희망입니다)"라는 문구 아래에서 자신감 있게 춤을 추었습니다. 순례단은 손으로 물결을 그리며 마지막 무대를 함께했습니다.



스님과 모든 내빈들이 무대 위로 올라가 아이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은 후 32주년 기념식을 마쳤습니다.

스님은 손님들과 함께 점심 식사를 했습니다. 수자타아카데미에서 정성껏 식사를 준비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학교에서 준비한 도시락을 받아 들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순례단은 점심 식사 후 망고 가든에서 열린 인도 문화 프로그램에 참여했습니다. 인도 전통 의상인 사리 입기, 이마에 장식을 붙이는 빈디, 천연 염료로 손에 문양을 그리는 메헨디 등을 체험했습니다.



스님은 손님들을 배웅한 후 JTS활동가 숙소에서 업무를 보았습니다. 순례단은 학교 전체를 청소한 뒤 저녁 공양을 했습니다.
저녁 7시, 쁘락보디홀에서 예불을 올렸습니다. 법회에 앞서 수자타아카데미의 BTS가 순례단을 위해 공연을 해주었습니다.


수자타아카데미 아이들의 멋진 댄스 공연이 끝난 뒤, 스님의 법문이 이어졌습니다. 스님은 아이들의 공연을 보며 형성된 것은 반드시 변화한다는 부처님의 가르침이 이 학교에서 현실로 증명되고 있다고 하면서 법문을 시작했습니다.

“아이들이 참 재능이 있지요?”
“네!”

“똑같은 사람인데 구걸을 하고 있으면 품위가 없어 보입니다. 그런데 조금만 교육을 받으면 이렇게 재능이 드러납니다. 이것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우리가 현실에서 증명해 보이는 것과 같습니다. 예전에는 아이들이 천민으로 태어나고, 가난하고, 배울 기회조차 없었기 때문에 재능이 없는 사람, 못난 사람이 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전생에 죄가 많아 신분이 낮게 태어났다.’, ‘전생에 복을 짓지 못해 가난하게 태어났다.’ 하는 운명론을 쉽게 받아들였습니다.
하지만 부처님께서는 ‘카르마는 정해진 것이 아니라 형성된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 하면 ‘모든 형성된 것은 반드시 변화한다.’는 뜻이고, 한문으로는 ‘제행무상’이라 합니다. 우리의 고통도 본래부터 있었던 것이 아니라 형성된 것이고, 삶의 습관 역시 타고난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 것입니다. 우리가 그 원인을 알고, 그 원인을 소멸시키면 형성된 것은 바뀌고 삶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괴로울 수밖에 없는 운명이 정해진 인생이란 없습니다. 누구나 스스로 행복한 삶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이 사실을 우리는 이곳 수자타아카데미에서 30년 동안 직접 증명해 왔습니다. 구걸하던 아이들이 어엿한 젊은이로 자라 사회 곳곳에서 자기 역할을 맡아 살아가고 있습니다. 다만 아직까지는 사회의 제도적·시스템적 한계 때문에 이 아이들이 재능을 온전히 발휘하지 못하는 현실도 있습니다. 사회적인 역할을 하려면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부족하고, 사회 시스템 자체가 함께 바뀌어야 합니다. 예컨대 여성이 아무리 재능이 있어도 사회적으로 활동할 수 없도록 제도가 만들어져 있다면 그 재능을 펼칠 수 없습니다. 제도상 문이 열려 있어도, 그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교육이 주어지지 않으면 결과는 같습니다. 그래서 개인에게는 교육의 기회가 필요하고, 사회적으로는 누구에게나 활동할 수 있는 기회의 문이 열려 있어야 합니다.
처음 수자타아카데미를 세웠을 때는 천민 마을 아이들이 주로 학교에 다녔습니다. 당시 천민 가운데에도 마을마다 중학교를 졸업한 아이가 한두 명씩 있었기에, 그 아이들을 교사로 뽑았습니다. 이곳에는 학부모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습니다. 아이들이 사탕을 받으러 학교에 가는 건 좋았지만, 학교를 짓는 데 찬성한 사람은 거의 없었지요.

반면 양민 마을에서는 이미 학교에 다니던 아이들이 있었는데, 가까운 곳에 학교가 생기고 먹을 것도 준다고 하니 한꺼번에 몰려왔습니다. 그런데 교사를 천민 출신으로 뽑자, ‘천민이 우리 아이를 가르칠 수는 없다.’며 마을 사람들이 몰려와 항의를 한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직접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정부 학교도 있는데 왜 수자타아카데미로 보내려 합니까?’ 하고 물었더니, 이곳이 공부를 더 잘 가르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럼 학교를 한국식으로 운영할까요, 인도식으로 운영할까요?’ 하고 다시 물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한국식으로 운영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한국식으로 운영하면 남녀 차별도 없고, 카스트 차별도 없습니다. 교사를 뽑을 때는 아이를 가르칠 수 있는 능력만 봅니다. 천민인지, 남자인지, 여자인지는 따지지 않습니다. 한국식으로 하려면 그렇게 해야 합니다.’
이렇게 설명하자 항의하던 사람들도 차츰 진정이 되었습니다. 인도식으로 운영하면 교사가 일주일에 한 번만 학교에 나오는 경우도 많습니다. 시골에서는 교사가 월급을 받으면서도 학교에 잘 나오지 않는 일이 흔합니다. 제가 예전에 이 마을에 살 때는 교사가 한 달에 한 번 오는 경우도 보았습니다. 그래서 시골 공립학교의 출석률은 15퍼센트도 안 됩니다. 반면 수자타아카데미의 출석률은 95퍼센트가 넘습니다.

한편 쁘리앙카 선생님을 모실 때는 천민 마을에서 반대가 나왔습니다. ‘천민을 위해 지은 학교에 왜 브라만 같은 높은 계급 사람을 채용하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유치원을 제대로 운영하려면 더 전문적인 교육이 필요합니다. 천민 출신 교사들은 겨우 중학교나 고등학교를 졸업한 정도였고, 쁘리앙카 선생님은 석사까지 마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천민 가운데 이런 자격을 갖춘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을 채용하겠다.’고 답했습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계급이나 성별이 아니라, ‘가르칠 자격이 있느냐’는 점이라는 기준을 분명히 세워 주민들을 설득할 수 있었습니다.
학교를 운영하며 강도가 침입해 활동가가 숨지는 일도 있었고, 마을 간의 내부 갈등도 매우 심했습니다. 지참금을 줄이기 위해 조혼을 시키는 관습 때문에, 초등학생이 이미 1차 결혼을 한 상태로 학교에 다니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쁘리앙카 선생님이 오기 전까지는 교사가 모두 남자였습니다. 이런 외진 곳에 여자가 살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에 대한 체벌도 흔했고, 그 과정에서 성추행 소문까지 돌았습니다. 선생님이 상카시아와 유피 주에서 왔다는 점도 갈등을 키웠습니다. 그래서 제가 직접 한 사람 한 사람의 증언을 모아 사실을 확인했고, 소문이 과장되었다는 점을 밝혀 상황을 수습했습니다.
이런 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며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이제는 여자아이들도 남자아이들과 똑같이 태권도를 가르쳐 달라고 합니다. 예전에는 춤을 출 때도 무대에 남자아이들만 올랐지만, 지금은 여자아이들도 바지를 입고 무대에 올라 자유롭게 춤을 춥니다. 지난 30년 동안 정말 많이 달라졌습니다.
사실 이곳은 계급 차별보다 성차별이 훨씬 더 심한 사회입니다. 차별이 나쁘다고 말로 가르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학교 안에서 차별 없이 함께 공부하는 경험입니다. 그렇게 자라면 서로 다른 배경의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친구가 되고, 졸업한 뒤 사회에서 차별을 마주하더라도 그 영향이 상당 부분 완화됩니다. 아이들은 6년에서 8년 동안 평등한 환경에서 교육을 받으며, 사회에 대한 인식 자체를 조금씩 바꿔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개인에게 기회를 주는 것입니다. 물론 개인이 아무리 재능이 있어도 사회가 기회를 주지 않으면 어렵습니다. 먼저 씨앗이 좋아야 합니다. 개인이 자기 변화를 일으켜야 합니다. 동시에 땅도 좋아야 합니다. 땅이 좋아야 씨앗이 제대로 자랍니다. 땅이 아무리 좋아도 씨앗이 없으면 농사를 지을 수 없고, 씨앗이 아무리 좋아도 땅이 없으면 농사를 지을 수 없듯이, 인과 연이 만나야 변화가 일어납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인을 만드는 일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연으로 바뀌기 위해서는 이 아이들이 자라 스스로 권리를 주장하며 사회 변화를 이끌어가야 합니다.
이 마을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우리에게는 특별해 보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마을 사람들은 오랫동안 ‘가난하고 천한 것은 전생의 업보 때문’이라는 생각 속에 살아왔습니다. 우리 역시 과거에는 봉건적인 사고방식 속에 살았던 것처럼 말이지요. 그래서 이곳에서의 교육은 인간의 운명이 정해져 있지 않다는 사실을 몸으로 보여주는 일입니다.
우리가 하는 일은 단순히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이 아닙니다. 단순히 ‘부처님 법이 이렇다.’고 전하는 시대는 이미 지났습니다. 그것은 2600년 전에 하던 이야기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부처님의 법이 오늘의 현실 속에서 어떻게 구현되고 실현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이어서 궁금한 점에 대해 질문을 받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순례단 중에 누구든지 손을 들고 질문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습니다. 한 시간 동안 다섯 명이 스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그중 한 명은 부처님께서 깨달음 이후 제자들에게 혼자 떠나라고 말씀하신 의미가 무엇인지 궁금해 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보드가야에서 깨달음을 얻으신 뒤 사르나트에서 처음으로 법을 설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첫 번째 제자들이 생겨났고, 부처님을 포함해 모두 61명으로 이루어진 승가가 세워졌습니다. 첫 번째 설법을 마친 뒤 부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제 전법의 길을 떠나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혼자서 가라.’라고 덧붙이셨습니다. 또한 부처님께서는 ‘나도 혼자서 가겠다.’ 하시며 다시 이곳 보드가야로 오셨습니다. 그런데 왜 하필 ‘혼자서 가라.’라고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부처님께서 ‘혼자서 가라.’고 하신 말씀은, 말 그대로 혼자 다니라는 뜻은 아닙니다. 중생인 우리는 무엇이든 누군가에게 기대고 의지하며 살아가려 합니다. 그러나 붓다라는 존재는 이미 완성된 존재이기 때문에, 더 이상 의지할 대상이 없습니다. 다시 말해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된 존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아라한이 되었다’는 말은, 이제 누구에게도 기대지 않고 스스로 존립할 수 있는 상태에 이르렀다는 뜻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나는 신과 인간의 모든 굴레로부터 벗어났다. 그리고 너희 또한 해탈을 얻었다.’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이 말씀과 함께 제자들을 아라한이라 선언하신 것이지요. 이는 그들이 아직 수행이 부족한 존재가 아니라, 이미 깨달음을 얻은 존재라는 의미입니다. 다시 말해 붓다와 다르지 않은 경지에 이르렀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애초에 둘이서 가거나 무리를 지어 갈 필요가 없었던 것입니다.
물론 가야 할 방향이 같다면 한동안 함께 갈 수는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혼자 가기에는 겁이 나서 둘이 손잡고 간다’는 식의 모습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혼자서 가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런 표현은 불교 경전 『숫타니파타』에도 자주 등장합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말도 바로 그런 맥락입니다.
흥미롭게도 성경에서는 정반대의 표현이 나옵니다. 거기서는 ‘반드시 둘이 같이 가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선교사들을 보면, 선교를 위해 늘 둘이 함께 다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 역시 성경의 가르침을 충실히 따른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의 말씀을 ‘둘이 가면 안 된다.’는 뜻으로 이해할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혼자 가더라도 아무런 두려움이 없기 때문에 혼자서 가도 된다.’는 의미로 보아야 합니다. 이것은 완성된 존재가 지닌 자유와 독립성을 드러내는 가르침이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계속해서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남편의 자살 이후, 시누이가 아이들에게 상처가 되는 말을 해 아이들이 죄책감과 혼란을 겪고 있습니다. 이 상황을 어떻게 설명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좋을까요?
용성조사처럼 훌륭한 인물이 왜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지 않았는지, 역사적·사회적 이유가 궁금합니다.
성지 순례 이동 과정에서 차량 상태와 환경이 불편해 수행과 집중에 어려움이 있습니다. 이런 불편을 수행자의 관점에서는 어떻게 받아들이는 것이 좋을까요?
JTS가 전 세계에서 진행해 온 학교·교육 사업의 전체 규모와 현황이 궁금합니다.
인도의 ‘가야’와 한국의 ‘가야’ 사이에 어떤 역사적·문화적 인연이 있다고 볼 수 있을까요?

대화를 마치고 나니 밤 9시가 훌쩍 지났습니다. 사홍서원을 끝으로 법회를 마치고, 스님은 성지 순례에 참여한 국제지부 외국인 정토회원들과 만나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중에는 수자타아카데미 학생들에게 온라인으로 영어 수업 봉사를 하고 있는 아루나 님도 있었습니다. 스님이 아루나 님에게 물었습니다.

"가르치고 있는 학생들과 인사 나눌 시간이 있었습니까?"
"아니요, 시간이 주어지진 않았지만 만나는 아이들마다 붙잡고 '나한테 영어 수업 받은 적 있니?' 하고 물었어요. (웃음)"
스님은 웃으며 말했습니다.

"좀 더 일찍 알았더라면 시간을 마련했을 텐데 아쉽네요. 늦은 시간이지만 여러분을 뵙고, 염주를 선물로 드리고 싶었습니다."
스님은 외국인 정토회원들에게 염주를 하나씩 목에 걸어 주었습니다. 대화를 마치고 나니 밤 10시가 넘었습니다.

스님과 순례단은 지난 닷새간 부처님의 발자취를 따라 처음 설법하신 사르나트, 깨달음을 얻으신 보드가야를 순례했습니다. 내일은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으신 후 빔비사라 왕을 만나러 가셨던 길을 따라 라즈기르로 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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