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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인도네시아 홍수 피해 긴급구호 물품을 배분하기로 한 1일째 날입니다.
스님은 필리핀 민다나오 답사를 마치고 새벽 1시 10분에 마닐라 공항을 출발하여 인도네시아로 향했습니다. 중간 경유지인 쿠알라룸푸르 공항에 새벽 5시 15분에 도착했습니다.

공항 내 음식점에서 국수로 아침식사를 한 후 탑승구로 향했습니다. 오전 7시 45분에 쿠알라룸푸르 공항을 출발한 비행기는 1시간 25분을 이동하여 현지 시각으로 오전 8시 10분에 인도네시아 반다아체 공항에 착륙했습니다.


공항을 나오자 이번 인도네시아 긴급구호 활동을 물심양면으로 도와주고 있는 아미르 님이 마중을 나와 반갑게 환영을 해주었습니다.

곧바로 홍수 피해 지역인 아체주 푸상안(Peusangan) 지역으로 이동했습니다. 8시 50분에 반다아체 공항을 출발하여 차로 4시간 쉼 없이 달렸습니다.
“점심 식사를 하시겠습니까?”
“아니요. 식사할 시간이 없어요. 빨리 구호품을 나누어 주러 갑시다.”
차로 이동하는 동안 아미르 님이 사 온 인도네시아 빵으로 점심식사를 대신했습니다.

아체주 푸상안 지역에 가까워질 때까지는 창밖 풍경이 평온했습니다.

그러나 푸상안 지역에 들어서자 길가에 진흙이 가득 쌓인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마을 전체가 진흙으로 덮여 지붕만 드러난 곳도 보였습니다.


오후 1시가 되어 푸상안 지역 안에 첫 번째 피해 마을인 크룽부카(Krueng Beukah) 마을에 도착했습니다. 전체 95 가구 중 82 가구가 홍수 피해를 입은 마을입니다.

JTS의 현지 협력 단체인 FDP(Forum Dakwah Perbatasan)의 활동가들과 마을 주민들이 스님과 박지나 JTS 대표님을 반갑게 환영해 주었습니다.

“앗살라무 알라이쿰!”
(당신에게 평화가 깃들기를 바랍니다.)
인사를 나눈 후 스님은 먼저 구호품의 준비 상태를 확인했습니다. 손수레, 삽, 괭이, 스퀴즈, 장갑 5개 물품을 가구마다 한 세트씩 나눠주기 위한 준비가 한창이었습니다.

이번 1차 긴급구호에서는 집 안에 가득 쌓인 흙을 퍼낼 수 있는 청소도구를 우선적으로 지원하기로 했습니다. 며칠 전 답사 때 주방도구도 함께 지원하려고 노력했지만 아체주 전체가 홍수 피해가 심각해 주방용품을 대량으로 구할 수가 없었습니다. 다행히 청소도구와 가스스토브는 인근 대도시인 메단에서 대량으로 확보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현장에 도착해서 보니 손수레가 완성품이 아니었습니다. 먼 거리를 운반해야 하므로 이곳 현지에서 조립을 해야 했습니다. FDP 활동가들과 마을 주민들은 박스째로 도착한 손수레 부품을 꺼내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조립하고 있었습니다.

스님이 도착했을 때는 고작 손수레 8개가 만들어져 있었고, 이 마을에 모두 나눠주기 위해서는 74개를 더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스님, 박지나 JTS 대표, FDP 대표가 모두 모여서 긴급히 대책 회의를 했습니다. 먼저 박 대표님이 제안했습니다.

“손수레를 박스채로 나눠주고, 개인이 집에서 조립하도록 하면 안 될까요?”
스님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습니다.
“손수레는 개인이 조립을 못 합니다. 볼트와 너트를 꽉 조여야 하고, 타이어에 바람을 넣으려면 공구가 필요해요. 공구를 개인마다 다 줄 수는 없잖아요.”

FDP 대표도 말했습니다.
“저희가 최대한 빨리 조립을 해보겠습니다.”
결국 박 대표님이 다시 제안을 했습니다.
“어쩔 수 없네요. 그러면 마을 주민들 중에 남자들은 전부 손수레 조립에 붙여 주세요. 저희도 다 붙어서 속도를 내어 봅시다.”

스님도 현재 상황을 받아들이고 마을 주민들과 함께 손수레를 조립하기 시작했습니다. 볼트와 너트를 조이는 게 관건이었습니다. 너트 크기에 맞는 스패너를 하나씩 들고 돌리고 조이는 일을 반복했습니다.


낮 기온이 31도까지 올라가는 무덥고 습한 날씨였습니다. 천막 속은 거의 한증막 같았습니다. 손수레를 하나씩 완성할 때마다 스님은 이마에 맺힌 땀을 계속 닦아내야 했습니다.
“정말 덥네요.”

공구 중에 소켓 렌치가 보여서 그걸 너트에 끼워서 돌리니 비교적 쉽게 힘을 실을 수가 있었습니다. 스님이 작업을 하면서 제안했습니다.
“이게 힘을 제일 잘 받네요. 이 공구와 드라이버를 여러 명에게 나눠주면 작업 속도가 더 빨라질 것 같습니다. 각 마을마다 필요한 공구를 10개씩 지원해 줍시다.”


전동 공구가 한두 개 있어 작업이 다소 수월해지기는 했지만, 현장 전체를 감당하기에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소켓 렌치를 번갈아 사용하며 두 사람씩 짝을 지어 볼트와 너트를 조여 나가자 속도가 조금씩 빨라졌습니다. 누구보다 빠르게 나사를 조이는 스님을 보고, 마을 주민이 엄지를 치켜들었습니다.
“Good man!”

손수레 타이어에 바람을 넣기 위해서는 공기 주입 장비가 필요했습니다. 다행히 전동 컴프레서가 있어서 비교적 빨리 바람을 넣을 수가 있었습니다. 바람이 차오르며 형태를 갖춰 가는 바퀴를 보며 주민들의 얼굴에도 조금씩 웃음이 번졌습니다.

처음에는 주민들이 각자가 손수레 하나를 처음부터 끝까지 조립하고 있었습니다. 박지나 대표님은 작업의 효율성을 위해 FDP 활동가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공장이 돌아가듯이 역할 분장을 합시다. 여기서는 타이어에 바람 넣는 일만 전담하고, 저기서는 손수레의 다리를 조립하는 일만 전담하고, 차례대로 공정이 끝나면 완성품이 나오도록 시스템을 바꾸어 봐요.”

주민들 역할을 분장하여 연결다리를 조립하고, 타이어에 바람을 넣고, 전체 나사를 끼워 놓고, 마지막으로 공구로 볼트와 너트를 꽉 조이면 손수레가 하나씩 완성되어 나갔습니다.




작업 속도가 점점 빨라졌습니다. 스님이 웃으며 말했습니다.
“자, 하나 더 완성이요! 공장이 잘 돌아갑니다. 다른 마을에도 이런 방식으로 조립을 하라고 전달을 해주세요.”

스님이 땀을 뻘뻘 흘리며 일하는 모습을 보고 주민들은 책상과 의자를 가져와서 그늘 아래에 앉아서 일하도록 해주었습니다.


여성들과 아이들도 작업 현장을 지켜보며 스님에게 다가와 어색한 한국말로 응원을 했습니다.
“안뇨하세요. 캄사합니다아. 땡큐, JTS! 코맙슴니다, KOREA!”

스님이 웃으며 말했습니다.
“한국말을 제법 잘하네요.”
그 사이에 가스스토브를 가득 실은 트럭이 도착했습니다. FDP 활동가들이 기쁜 마음으로 가스스토브를 배분 장소로 옮겼습니다.


조립이 끝난 손수레가 하나둘 늘어날수록, 현장에는 생기가 감돌았습니다. 홍수 피해로 많은 것을 잃은 주민들이었지만, 밝게 웃으며 손수레를 만들었습니다. 단순한 구호물품 배분을 넘어, 삶을 다시 이어 가려는 주민들의 의지가 느껴졌습니다.

2시간 30분 동안 쉼 없이 작업한 끝에 이 마을에 나눠주기로 한 82개의 손수레를 모두 제작했습니다. 구호물품 전달을 하기 위해 사용한 도구를 모두 정리하고 물건을 주민들이 받아가기 좋도록 옮겼습니다.


스님은 주민들과 함께 쉴 새 없이 작업을 하다가 한숨을 돌렸습니다. FDP 대표 아자르 님이 다가와 가슴에 손을 얹고 인사를 했습니다.

“스님, 이 먼 곳까지 오셔서 우리나라 사람들을 도와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주민들에게 정말 꼭 필요한 것을 지원해 주셨습니다.”
스님은 합장으로 그 마음에 답했습니다. 스님이 물었습니다.
“FDP가 무슨 뜻이에요?”

“인도네시아어인데요. Forum Dakwah Perbatasan(경계선 선교 포럼)의 줄임말입니다. 종교나 정치적 성향 같은 경계와 관계없이 도움이 필요한 인도네시아 지역에 구호와 지원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JTS와 비슷하네요.”(웃음)
그러는 사이 준비가 끝났습니다. 모두 함께 박수를 치며 기뻐했습니다.

구호품을 나눠주기 전에 스님이 주민들을 위해 한 말씀을 했습니다.

“홍수가 갑자기 크게 나서 많이 놀라셨죠? 저도 한국에서 뉴스를 보고 그 소식을 알게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사망하고, 다쳤다는 슬픈 소식도 들었습니다. 그래서 박지나 JTS 대표님이 먼저 이곳을 답사한 후 일부 지원을 하고, 많은 피해가 있다고 저에게 보고를 했습니다. 그 후 저도 이곳에 와서 피해 상황이 어떠한지 둘러보았습니다.
집에 가보니까 흙이 방 안에 가득 쌓여있고, 집 안은 온통 진흙 투성이었습니다. 흙을 집 안에서 전부 퍼내려면 삽이 필요합니다. 퍼낸 흙을 집 밖으로 옮기려면 손수레가 필요합니다. 어떤 흙은 단단하게 굳어 있어서 괭이가 필요해 보였습니다. 이렇게 가장 급한 물품들부터 준비했습니다.

그러나 이번 지원에 끝나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여러분들이 모스크에 모여서 단체로 밥을 먹는 모습을 봤습니다. 라마단 기간에는 집에서 밥을 먹어야 합니다. 그래서 집집마다 가스스토브가 필요해 보였습니다. 그릇과 주방도구들도 준비해서 이번에 같이 나눠드리고 싶었는데 물자가 부족한 이곳에서 갑자기 많은 양을 준비할 수가 없었습니다. 오늘은 집 안에서 흙을 치울 수 있는 도구들을 우선 준비했습니다.
피해를 입은 논도 둘러보았습니다. 논마다 흙이 1미터 이상 쌓여 있었습니다. 앞으로 농사를 어떻게 지을 것인지가 큰 문제입니다. JTS에서는 FDP와 계속 의논하면서 여러분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일을 하겠습니다. FDP와 같은 좋은 단체가 있어서 우리가 이런 활동을 할 수 있었습니다.

저도 이런 일을 함께 할 수 있어서 기쁩니다. 부족한 물품들이지만 한 세트씩 가져가셔서 유용하게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의 삶에 여러분들이 믿는 알라신의 은총이 있기를 바랍니다. 앗살라무 알라이쿰!”
“와알라이쿰 살람!”

스님의 말을 듣고 주민들의 눈시울이 촉촉해졌습니다.
함께 조립하여 만든 82개의 손수레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Thank you, JTS!”


스님은 주민들, FDP 활동가들에게 악수를 건네며 다시 한번 힘을 실어 주었습니다.
“자, 이제 배분을 시작하겠습니다. 줄을 서서 손수레를 하나씩 끌고 오세요. 구호품을 나눠드리겠습니다.”
드디어 구호품 배분을 시작했습니다. FDP 활동가들은 미리 지원이 필요한 가구마다 구호물품교환 쿠폰을 나누어주었습니다.


쿠폰을 확인한 후 주민들이 한 명씩 손수레를 밀고 오면, 가장 먼저 스님이 가스스토브를 손수레에 실어 주었습니다.
“떼리마 까시(Terima kasih)”
(감사합니다.)


이어서 FDP 활동가들이 스퀴즈, 삽, 괭이, 장갑을 차례대로 나눠주었습니다. 괭이의 손잡이는 마을에 나무가 많아서 주민들이 직접 제작하여 끼워 넣기로 했습니다. 묵직한 괭이가 수레에 실릴 때마다 ‘쿵’ 하고 경쾌한 소리가 났습니다.


딸과 함께 손수레를 끄는 아버지와, 엄마와 나란히 수레를 미는 아들, 손녀와 함께 천천히 손수레를 움직이는 할머니의 모습이 이어졌습니다. 삶의 터전을 잃은 주민들의 얼굴에는, 그날만큼은 오랜만에 웃음이 피어 있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집으로 돌아가서 산더미처럼 쌓인 흙을 한 삽씩 퍼내기 시작했습니다.


배분을 마치고 스님은 FDP 활동가들과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수고했어요. 이제 다음 마을로 갑시다.”

다음 마을로 떠나려는데, 할머니 한 분이 수레를 끌고 다가오더니 스님에게 인사를 하고 여러 번 엄지를 치켜세우며 인사를 했습니다.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주민들은 눈빛으로, 손짓으로 고마움을 전했습니다.

오후 3시 50분에 크룽부카(Krueng Beukah) 마을에서 구호품 배분을 마치고 다음 마을로 이동했습니다.

차창 밖으로 강이 보였습니다. 스님이 강을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비가 갑자기 많이 오니까 상류에 산사태가 나서 이 강이 범람을 해 마을을 덮친 겁니다. 숲 속이 흙으로 덮여 있으니까 아무런 일이 없었던 것처럼 보이지만, 전부 흙으로 1m 이상 덮인 상황이에요.”
다리를 건너자 수마가 할퀴고 간 흔적이 그대로 드러났습니다. 강변에는 뿌리째 뽑힌 나무들이 강물에 떠밀려 와 서로 뒤엉켜 있었습니다.


차로 20분을 달려 오후 4시에 쿠부(Kubu) 마을에 도착했습니다. 모스크에 마을 주민들이 모두 모여서 손수레를 조립하고 있었습니다. 이 마을은 235 가구가 사는 큰 규모의 마을이었습니다. 그래서 제작해야 할 손수레도 더 많았습니다.


스님은 준비 상황을 한 바퀴 둘러본 후 FDP 대표에게 이야기했습니다.

“여기는 전동 공구가 없나 보네요. 전부 스패너와 렌치로 조립을 하고 있네요. 볼트와 너트를 꽉 조여야 나중에 문제가 없습니다. 남자들은 전부 손수레 제작에 결합해 달라고 요청해 주세요.”
구경만 하고 있던 남자들도 하나둘 손수레 제작에 결합하기 시작했습니다.


스님은 남자들을 불러 모아서 손수레를 효율적으로 조립하는 방법을 알려주었습니다. 스패너와 렌치를 들고 볼트와 너트를 조이는 동안 땀이 계속 났습니다.


마을 주민들이 전부 합심을 해서 손수레 제작에 힘을 보탰지만 오늘 해가 지기 전에 완성하기는 어려울 것 같았습니다. 스님이 FDP 대표에게 물었습니다.

“해가 져도 계속 작업을 할 수가 있어요?”
“네, 전기불을 켜고 밤에도 작업을 하겠습니다.”
“좋아요. 그럼 이 마을은 내일 오전에 구호품 전달식을 합시다.”


구호품 전달식은 내일로 연기한 후 내일 일정에 대해 박지나 대표, FDP 대표와 회의를 했습니다.

회의를 하는 동안 아이들이 달려와서 한국말로 계속 인사를 했습니다.
“안뇨하세요. 캄사합니다. 사랑해요.”

저녁에 숙소에서 FDP 활동가들과 대책 회의를 하기로 하고 오후 5시에 마을을 나왔습니다.

차로 30분을 달려 가장 가까운 도시인 비레웬(Bireuën)에 위치한 식당에 도착했습니다. 운전과 통역을 해주고 있는 FDP 활동가들과 저녁 식사를 하며 잠시 휴식을 취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숙소로 이동한 후 저녁 8시부터 FDP 활동가들과 내일 일정을 비롯하여 나머지 마을에 대한 구호품 배분 계획에 대해 의논을 했습니다.

밤 9시가 넘어서 회의를 마무리한 후 오늘 일정을 마쳤습니다.

내일은 오전에 쿠부(Kubu) 마을에서 구호품 배분을 하고, 오후에는 판테 바로 쿰방(Pante Baro Kumbang) 마을에서 구호품 배분을 한 후 사왕(Sawang) 마을에서 마지막으로 구호품을 배분할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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