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6.1.16. 필리핀 민다나오 답사 5일째
“왜 살아야 하나요? 아직 답을 찾지 못했습니다”

안녕하세요. 오늘은 필리핀 민다나오를 답사하러 온 지 5일째 되는 날입니다. 스님은 하루 종일 새로 지을 학교 부지들을 둘러보고, 마지막 평가 회의를 마친 후 인도네시아 반다아체로 이동했습니다.

새벽 4시에 기상하여 4시 30분부터 JTS센터 기숙사에서 활동가들과 함께 예불과 천일결사 기도를 하며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기도를 마친 후 6시 30분에 상공양으로 아침 식사를 했습니다. JTS 민다나오 센터에서 정성껏 준비한 음식을 먹으며 담소를 나누었습니다.

"스님, 앞으로 며칠간 또 제대로 못 드실 거니까 오늘 두 배로 많이 드세요."

"왜 제대로 못 먹어요. 잘 먹고 다녔는데요. “

"어제도 반찬 없이 꼬들꼬들한 맨밥만 드셨잖아요."

"밥이 꼬들꼬들하니까 꼭꼭 씹어먹게 되어서 밥이 고소하고 맛있던데요."

”그럼 앞으로 밥을 꼬들꼬들하게 해 드려도 돼요? “

”아니요.“(웃음)

아침 식사를 마친 후 7시부터 대중공사를 했습니다. 스님은 이번 답사 전체를 정리하며 올해 필리핀JTS의 사업 방향에 대해 활동가들에게 공유했습니다.

"이번에 전체를 답사한 결과, 새로 학교를 지어달라고 요청받은 곳이 18개 학교입니다. 그중 리모델링을 해주기로 한 곳이 2개 학교이고, 답사를 해보니 아직 준비가 덜 된 곳이 2개 학교였습니다. 준비가 덜 된 곳도 군청이나 교육청에서 강력히 새로 지어달라고 다시 요청할 경우 수용해 준다면, 작년에 시작해서 아직 짓지 못한 4곳까지 합하면 올해 지어야 할 학교가 총 22개입니다. 지금 방식으로는 도저히 다 지을 수가 없어서 방식을 좀 특별하게 바꾸어 해보려고 제가 직접 답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

스님은 22개 학교 중 리모델링이 필요한 곳 2개를 포함하여, 땅이나 예산 확보가 아직 안 된 곳을 제외하면 최대 22개, 최소 15개를 지어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번 답사에서 교육청과 의논하여 학교 짓는 방식을 바꾸기로 했습니다. 학교를 짓는 주체는 교육청이 하기로 했습니다. 교육청에서 책임지고 학교를 짓도록 방침을 바꿨어요. JTS는 22개 학교 건설에 필요한 자재를 지원하고 그걸 회계 처리하는 것만 하기에도 감당을 하기가 벅찹니다. 어쩌다가 한 번씩 공사 현장을 가볼 수는 있겠지만, 학교를 짓는 책임은 교육청이 맡아서 하도록 방식을 변경했습니다."

대중공사를 마치고 오지에서 고생하고 있는 필리핀JTS 활동가들을 격려하고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오전 9시에 JTS센터를 출발하여 첫 번째 답사 장소인 깔라수얀 원주민 학교로 향했습니다.

9시 40분에 깔라수얀(Kalasuyan) 원주민 학교에 도착했습니다. 현재 건축이 진행 중인 학교입니다. 스님은 공사 현장을 둘러보며 진행 상황을 점검했습니다.

교실 4칸이 지어지고 있었고, 백색 도장 작업이 한창이었습니다. 스님은 화장실 배치를 꼼꼼히 확인했습니다.

“여성은 볼일 보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화장실 숫자를 많이 배정해야 됩니다. 그래야 성평등 지수에 맞아요.”

스님은 화장실 배치를 조정하도록 지시한 후, 교육청 담당관인 롤렌 님에게 공사 속도에 대해 당부했습니다.

“아이들이 지금 교실이 없어서 밖에서 수업하고 있잖아요. 그러니 공사를 좀 빨리빨리 진행해 주세요.”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건축 현장을 확인한 후 9시 50분에 다음 장소로 이동했습니다.

11시 20분에 깔룩마난(Kalugmanan) 초등학교에 도착했습니다. 학생 560명, 교사 19명 규모의 큰 학교로, 학생의 90%가 원주민 부족입니다.

JTS 사무국장인 향훈 법사님이 학교 현황을 설명했습니다.

"1950년에 설립됐고, 5개 리에 거주하는 1,500 가구를 아우르는 학교입니다. 14개 교실과 5개 임시 교실이 있는데, 1년마다 평균 20명씩 학생이 증가하고 있어요. 교실 3칸을 더 지어달라고 요청하고 있습니다."

교장 선생님과 학교 관계자들을 만나 인사를 나눈 후 스님이 JTS의 원칙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JTS가 학교를 짓는 원칙은, 첫째, 학교가 없는 원주민 마을에 학교를 짓는 것입니다. 둘째, 장애아동을 위한 특수학교를 각 군마다 한 개씩 짓는 것입니다. 그래서 원래는 지원 대상에 해당이 안 되는 곳인데, 군수가 간곡히 요청을 해서 지금 의논을 해봐야 됩니다."

스님은 직접 부지를 둘러보며 건물 위치를 검토했습니다. 건물과 건물 사이 공터에 지으려 했으나, 건물 배치가 땅을 비효율적으로 사용하게 되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박지나 JTS 대표님이 의견을 냈습니다.

"지금 땅을 이렇게 잘라버리면 앞으로 이 땅도 제대로 못 쓰고, 저 땅도 제대로 못 쓰고... 한쪽으로 붙여서 건물을 지으면 어떨까요?"

스님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맞습니다. 앞뒤가 다 쓸모가 없어지니까 건물을 울타리 쪽으로 붙여서 짓는 게 낫겠습니다."

교장 선생님에게 확인했습니다.

"이렇게 학교 경계 쪽으로 붙여서 지으면 건물이 일직선 라인에 안 맞게 되는데 괜찮아요? “

"괜찮습니다. 가운데를 운동장처럼 쓸 수 있어서 좋습니다."

"잘됐네요 박대표 님의 아이디어 덕분에 해결이 되었어요."

스님은 나무를 베지 말고 숲으로 유지하자고 당부하며 새로 지을 교실의 위치를 최종 확정했습니다.

비가 많이 내려 교실로 들어가 대화를 이어갔습니다. 스님이 이 학교에 교실을 증축하는 것은 JTS 원칙에 맞지 않는다고 하자, 에드윈 님이 원주민 교육 과정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원주민 교육에서는 전통 춤, 노래, 부족 게임, 전통 이야기 같은 것들을 접목하고 있습니다. 특히 달의 변화에 따라 부족들이 하는 활동이 많이 다른데, 그런 것들에 대한 교육안도 지금 계속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이 학교에서 원주민 교육안을 만들고 실제로 시험해 보면서 전체 학교로 보급하고 있어서 이 학교에 교실 증축이 꼭 필요합니다."

스님이 제안했습니다.

"그렇다면 앞으로 이 학교가 중심이 되어 원주민 학교별로 학생들이 전통 춤이나 전통 노래와 같은 전통문화 경연대회를 열고 수상식도 하면 좋겠습니다. 웅변대회 같은 것도 하고요. 이렇게 전통문화를 살리는 방안을 연구해 나간다면 교실 증축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

에드윈 님이 스님의 제안에 적극 공감하며 대답했습니다.

"고맙습니다. 8월 9일이 원주민의 날입니다. 그리고 10월에는 매주마다 부족별로 문화 주간을 정해놓고 있습니다. 2026년에 대회라고 할 건 없지만 보여줄 수 있는 자리를 많이 계획하고 있습니다. “

“오케이, 아주 잘하고 있어요.”

다 함께 기념사진을 찍은 후 12시에 깔룩마난 초등학교를 출발하여 다음 목적지로 향했습니다.

오후 1시에 살라간 타 퀴숨빙(Salagaan Ta Quisumbing) 원주민 학교에 도착했습니다. 해발 840m에 위치한 이 마을은 협동조합 건물을 임시 학교로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학생 144명, 교사 5명 규모로, 2025년 6월에 임시 학교가 시작되어 아직 1년이 안 된 학교입니다. 950 가구의 자녀들이 이 학교를 이용하고 있다고 합니다. 선생님들이 교실 7칸을 지어 달라고 요청을 했습니다.

스님이 질문했습니다.

"여기 주 도로가 바로 가까이에 있는데, 왜 여기에 아직까지 학교가 없었어요?"

학부모 회장님이 대답했습니다.

"강력하게 요청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제가 회장이 되면서 시작했어요. 4km 떨어진 루간이라는 곳에서 농장을 하고 있었는데, 애들이 학교 다니기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고 영상을 찍어서 교육청에 보여주면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여기서 제일 가까운 학교가 어디예요?“

"인팔로따오인데, 8km 떨어져 있습니다. 홍수 나고 길이 없어지고 비가 오면 애들이 학교 다니기가 너무 힘들었어요. 항상 온몸이 젖은 채 학교를 갔습니다."

스님은 직접 학교 부지를 둘러보았습니다. 2헥타르 규모의 땅이었습니다. 옥수수밭과 대나무 숲 사이로 걸으며 경사와 방향을 확인했습니다.

"이 땅이 지금 이렇게 경사가 있어서, 이쪽은 좀 평평한 편이고 저쪽은 약간 경사가 있잖아요. 그러니 이런 방향으로 짓는 게 낫지 않을까요? 그래야 공사하기가 쉽거든요."

"전깃줄이 지나가서 저쪽은 좀 위험합니다."

줄자를 들고 직접 거리를 재며 교실 배치를 확정했습니다.

"7x7로 7개 교실 지으면 여기까지 건물이 들어서게 됩니다. 땅이 어디까지예요?"

"저 아카시아 나무까지입니다."

"오케이, 그러면 문제없어요. 7x7, 7개 교실로 결정하겠습니다."

경사 때문에 3칸은 같은 레벨, 4칸은 다른 레벨로 올려야 학교를 지을 수 있다는 의견이 나왔지만, 스님은 현장을 살펴본 후 별 차이가 없을 것 같다며 일자로 짓는 것으로 방향을 잡았습니다. 그러나 두 가지 선택지를 갖고 공사하는 사람들의 의견을 수렴해서 최종 결정을 하기로 했습니다.

스님은 엔지니어를 불러서 직접 도면을 그려가며 어떻게 학교를 지을지 자세하게 설명했습니다.

답사를 마치고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오후 2시 30분부터 평가 회의를 시작했습니다. 필리핀JTS 활동가들을 비롯하여 교육청 관계자, 원주민 교육 담당관 에드윈, 대외 협력 담당관 롤렌 등이 함께했습니다.

“자, 식사는 나중에 하고 회의부터 하겠습니다. 18개를 새로 봤고, 두 개는 작년부터 짓고 있는 걸 봤습니다. 총 20개를 봤어요.”

스님은 학교별로 하나씩 점검해 나갔습니다. 이번 답사 결과 새로 짓기로 확정한 학교는 11개였습니다. 준비가 부족하여 미확정인 학교는 7개였습니다.

미정인 7개 학교는 특수 학교 2개, 땅 문제가 있는 학교 3개, 군청의 예산 편성이 아직 안 된 학교 2개입니다. 그중에 특수 학교 2개는 선생님을 먼저 파견한 후 학급이 형성되면 건축을 시작하는 순서로 진행하자고 제안했습니다. 그래서 준비가 되면 9월 이후 또는 내년에 공사를 시작하게 될 것 같습니다. 땅 위치가 안 좋거나 경사가 심한 곳 3개는 다른 부지를 물색해 주면 좋겠다고 제안했습니다. 군청에서 예산을 미확정한 2개는 6월에 예산 편성 후 결정하기로 했습니다. 스님이 회의를 마무리하며 말했습니다.

"정리하면 11개는 확정이고, 7개는 미확정입니다. 그러면 올해 지을 곳은 지난해 시작하고 못 지은 4곳을 포함해서 15곳입니다. 미확정인 7개도 준비가 되는 대로 건축을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시스템이 잘 작동하면 내년에는 규모를 더 키울 수 있을 겁니다. 잘하면 내년에는 30개 학교도 지을 수 있겠어요."

롤렌 담당관과 에드윈 담당관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습니다.

"다음 주 월요일에 교육감과 엔지니어들이 다 같이 모여서 회의할 예정입니다. 누가 어느 지역을 담당할지 정하고 진행하겠습니다."

스님은 이번 답사에서 수고한 기사를 포함한 모든 관계자들에게 새해 선물을 전달하며 격려했습니다.

“이번 답사는 제가 갑자기 부탁하여 하게 된 답사였어요. 여러분 모두 이렇게 시간을 내줘서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제 남은 일은 여러분 몫입니다. 특히 노재국 대표님, 향훈 법사님 수고가 크실 거예요. 결정은 쉽지만 이것을 집행하려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잖아요. 수고해 주세요. “

“걱정 마세요. 잘 해내겠습니다.”

일행 모두가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오후 4시에 평가 회의를 마치고 카가얀데오르 공항으로 향했습니다.

스님과 박지나 JTS 대표는 인도네시아 반다아체로 이동하여 구호 물품 배분 활동을 이어가기 위해 밤 9시 45분에 비행기를 타고 카가얀데오르 공항을 출발했습니다.

밤 11시 25분에 중간 경유지인 마닐라 공항에 도착하자, 노재국 대표님의 아드님이 공항에 마중을 나와 일행을 제2터미널에서 제3터미널로 태워주었습니다.

내일은 새벽 1시 10분에 마닐라 공항을 출발하여 중간 경유지인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공항에 5시 15분에 도착한 후 다시 비행기를 타고 인도네시아로 출발하여 오전 8시 10분에 반다아체에 도착합니다. 이후 하루 종일 홍수 피해 지역을 찾아가 구호물품 배분하는 활동을 이어갈 예정입니다.

오늘은 법문이 없었기 때문에 작년 9월 유럽 순회강연 중 파리에서 열린 즉문즉설 강연에서 스님과 질문자가 나눈 대화 내용을 소개하며 글을 마칩니다.

왜 살아야 하나요? 아직 답을 찾지 못했습니다

“저는 요즘 삶의 의미에 대해 많은 의문을 품고 있습니다. 스스로 많은 질문을 던져왔지만, 아직 답을 찾지 못했습니다.”

“삶에는 따로 의미가 없습니다. 질문자는 삶의 의미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찾았는데, 지금 없다는 걸 깨닫고 있는 거예요. 제가 말씀드리는 건, 삶의 의미는 본래부터 없었다는 겁니다. 의미란 스스로 만들어 낸 것이에요. 토끼나 다람쥐가 무슨 의미를 두고 살아가고 있을까요?”

“그래서 제가 왜 아침에 일어나야 하는지, 왜 이렇게 살고 있는지, 그런 질문을 하게 된 거거든요. 저는 아주 어릴 때부터 존재 자체에 대한 의문이 많았습니다. 왜 살아야 하나요?”

“그런 생각을 자꾸 하면 자살로 이어집니다. 그건 병이에요. 본래 없는 것을 있다고 착각하고 찾으니까 ‘없네? 그럼 살 필요가 없지 않나?’ 이런 생각이 들게 되는 겁니다.”

“삶에 의미가 없다면, 왜 우리가 살아야 하는 걸까요? 왜 지금 이렇게 존재하는지 알고 싶습니다.”

“산다는 건 의미를 갖고 사는 게 아니라 그냥 사는 거예요. 풀도 그냥 자라고, 다람쥐나 토끼도 그냥 살아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사람은 정신작용이 있기 때문에 스스로 어떤 의미를 부여하면 조금 더 보람 있게 산다고 느끼는 것이죠.”

“저는 그런 의미를 부여하는 차원이 아니라, 어떤 방향성을 알고 싶습니다. 왜 이 일을 했는지, 왜 이 사람과 함께했는지, 삶이 어디를 향하는지 말이에요.”

“하느님의 사명을 받고 산다, 부처님의 사명을 받고 산다, 나라를 위해 산다, 이런 것들은 자신이 스스로 부여한 의미일 뿐이지 본래 삶에 주어진 건 아니에요. 의미를 두고 살고 싶으면 그렇게 살면 되고, 굳이 필요 없다면 그냥 살면 됩니다.

저의 스승님은 어릴 때부터 제게 ‘너는 부처님의 법을 전할 사명을 안고 태어났다.’ 하는 삶의 의미를 부여해 주셨어요. 저는 원래 과학자가 꿈이었는데 스승님이 ‘너는 불교를 전하는 일을 해야 한다.’라고 하셔서 반강제로 승려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승려로서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모습을 사람들이 보면 ‘법륜스님은 불교를 전하는 큰 사명을 갖고 태어났다.’ 이렇게 생각할 수 있잖아요. 그러나 제가 생각할 때 사명이라는 건 본래 없었습니다. 그냥 제가 그렇게 의미를 부여하고 살뿐이에요.”

“그러면 제 삶의 의미를 알기 위해서는 제 삶의 의미를 깨달아야 하는 건가요?”

“삶의 의미가 본래 없다니까요.”

“저는 어릴 적부터 질문을 많이 했습니다. 왜 하늘에 별이 많을까, 왜 하늘은 파랗고 눈부실까, 풀은 왜 자랄까?, 이런 질문을 늘 해왔습니다.”

“그런 탐구는 좋아요.”

“하지만 과학적으로 답을 얻을 수도 있고, 못 얻을 수도 있잖아요.”

“사실 탐구의 답은 1퍼센트도 얻기 어렵습니다. 우리가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게 훨씬 많기 때문이에요. 오늘날 인류가 많은 걸 알게 되었다고 해도, 그건 진실의 극히 일부일 뿐입니다. 그래서 앞으로도 계속 찾아나가야 합니다.”

“그렇다면 생이 여러 번 있어서 삶을 여러 번 살아야겠군요.”

“아니에요. 그건 후손들이 이어서 찾아나갈 겁니다. 예를 들어 독초를 발견하는 과정도 그렇습니다. 수많은 풀 가운데 독초가 어떤 건지 알기까지는 많은 희생이 필요했어요.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은 인류가 수만 년 동안 겪으며 쌓아온 경험의 결과입니다. 우리는 배워서 쉽게 알지만, 처음 발견할 때는 작은 것 하나에도 큰 희생이 따랐습니다.”

“그럼 왜 그 풀은 독을 품고 있었을까요?”

“본래 독이나 약이라는 게 따로 있는 게 아닙니다. 먹어서 해로우면 독초라 부르고, 이로우면 약초라 부를 뿐이에요. 모든 독초는 조금만 먹으면 약초가 되고, 모든 약초도 많이 먹으면 독이 되는 법이에요. ‘약이다’, ‘독이다’ 하고 정해진 것은 본래 없었어요.”

“그럼 어떻게 하면 자유로운 마음을 가질 수 있을까요?”

“인생에는 본래 의미가 없으니 내가 좋을 대로 살면 된다고 생각하면 자유롭게 살 수 있습니다. 자유에는 이 물을 마실 자유도 있고, 마시지 않을 자유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페스트와 콜레라 중에서 선택할 자유도 있나요?”

“마실 때는 마실 자유를 누리고, 마시지 않을 때는 마시지 않을 자유를 누리면 됩니다. 저는 지금 모든 게 자유로워요. 제 자유를 누가 제한할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떠나고 싶지만 아이들 때문에 집에 있는 걸 ‘억압’이라 보면 괴롭습니다. 그러나 ‘아이를 돌보는 자유를 선택했다.’라고 보면 이미 자유를 누리는 거예요.”

“저는 아직 스님 말씀이 전적으로 동의가 되진 않습니다.”

“네, 하지만 그걸 깨달으면 자유로워집니다.”

“왜냐하면 제가 아이를 낳은 건 아이들의 선택이 아니라 제 선택이잖아요. 그래서 성인이 될 때까지는 책임져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선택에는 책임이 따릅니다. 내가 선택했으니 내가 책임지는 거예요. 저는 선택을 안 했기 때문에 자유롭게 다니잖아요.”

“저도 스님처럼 살아야 했나 봅니다.” (웃음)

“인생에는 본래 의미가 없습니다. 의미는 만들면 있는 거고, 안 만들면 없는 겁니다. 자연계는 대부분 아무 의미 없이도 잘 살아가잖아요. 그런데 자꾸 의미를 찾으려 하면 결국 ‘그럼 살 의미가 없네. 죽어야 하나?’ 이런 생각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이것은 자살로 가는 정신작용입니다. ‘왜 사는가?’ 하는 의문이 아니라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의문을 가져야 합니다. 사는 건 이유가 있기 전에 이미 살아 있는 거니까요. 그러나 ‘어떻게 사는 게 좋을까?’ 하고 의문을 가지면 괴롭게 살지, 덜 괴롭게 살지에 대해서는 내가 선택할 수 있습니다.”

“저는 제 괴로움을 끌어안고 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삶에 의미가 없다는 건 이해했습니다. 매일 자문하지 않고 그냥 주어진 삶을 사는 것이 정답일까요?”

“인생에 정답은 없습니다. 자문한다는 건 어떻게 살지 궁리한다는 걸 말합니다. 결국 매번 ‘어떤 선택을 할 거냐’의 문제이지요. 선택은 자유지만 그 선택에는 책임이 따릅니다. 아침에 일어나기 싫으면 안 일어나도 됩니다. 다만 그 결과로 아이를 돌보지 못하고 직장에 나가지 못하면, 아이들은 불만을 갖게 되고 직장에서는 잘리게 될 겁니다. 그 결과를 내가 받아들여야 합니다. 어떤 선택을 해도 괜찮습니다.”

“제가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방식은 ‘타인을 어떻게 잘 이해할 수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그게 제 삶의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타인을 이해하면 내가 덜 괴롭습니다. 그러니 내가 덜 괴롭기 위해 타인을 이해하는 것이지, 남을 위한 건 아니에요.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은 다 자기 자신을 위한 겁니다.”

“감사합니다. 잘 알았습니다.”

전체댓글 14

0/200

길상화

감사합니다

2026-01-19 09:04:34

최영관

고맙습니다...

2026-01-19 08:41:48

견오행

늘 함께 합니다.고맙습니다.()()()

2026-01-19 08:3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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