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검색
원하시는 검색어를 입력해 주세요
안녕하세요. 오늘은 두북 어르신들과 함께 봄나들이가 있는 날입니다. 아침 8시부터는 어르신들과 봄나들이를 가야 하기 때문에 스님은 새벽 수행과 명상을 한 후 곧바로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새벽 6시부터 집 주변에 있는 엄나무 가지들을 손질했습니다.

엄나무는 적절한 시기에 가지치기해 주지 않으면 가지가 위로만 높게 자라서 봄에 엄나무 순을 수확하기가 어렵고, 수확량도 줄어듭니다. 스님은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높이 웃 자라는 엄나무 가지들을 댕강하게 잘라내었습니다.
이렇게 가지치기해 두면 나무가 더 이상 위로 자라지 않고, 그 자리에서 여러 개의 새로운 가지가 나옵니다. 그러면 다음 해에 나무가 나지막하게 옆으로 퍼지는 모양이 되면서 엄나무 순을 따기도 쉽고 수확량도 늘어나기 때문에 제때 가지치기해 주는 것은 중요합니다.
“앞집 할머니는 엄나무 가지치기를 참 잘해두었어요. 아마 올해 우리 것보다 엄나무 순을 5배는 더 수확할 것 같아요. (웃음)”
스님은 굵은 나뭇가지는 전기톱으로 잘라내고, 작은 가지는 큰 전지가위로 가지들을 정리해 가면서 나무 모양을 만들었습니다.
“이 나뭇가지는 살리면 좋기는 한데, 살리자니 동네 길로 뻗어가서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불편하게 할 수도 있겠어요.”

스님은 동네 어르신들 다니는 길에 방해가 될 만하면 모두 잘라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나무 모양이 뭔가 작아 보였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1시간을 꼬박 엄나무 가지치기를 하고 스님은 두북 어르신들을 모시고 봄나들이 갈 준비를 했습니다.

오전 7시 20분경부터 버스 2대가 각 마을 회관을 순회하며 어르신들을 모셨습니다. 부산·울산 지역의 봉사자들도 일찍이 두북수련원에 도착해서 어르신들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수련원 근처에 있는 어르신들은 7시 40분이 되니 한 분 두 분 걸어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평소에는 농사일하고 집에만 계시느라 항상 작업복 차림으로 동네를 다니던 어르신들이 오늘은 새하얀 머릿카락을 곱게 다듬고, 머릿 기름 살짝 발라서 빗어내고, 깨끗한 외출복 차림에 작은 배낭도 하나씩 챙겨 메어 나름대로 나들이 갈 채비를 하고 오신 모습입니다.

7시 50분경 스님도 수련원에 도착해서 각 차량별로 다니며 동네 어르신들에게 인사를 드렸습니다.
“안녕하세요. 어서 오세요. (웃음)”
어르신들이 저마다 스님 손을 마주잡고 인사를 했습니다.
“스님 매년 이렇게 챙겨주어 고맙습니다.”
12개 마을의 150여 명의 동네 어르신들이 버스 3대에 타고 봄나들이가 시작되었습니다. 첫 번째 목적지는 포항에 있는 보경사입니다. 스님은 어르신들에게 인사를 마치자마자 보경사를 향해 먼저 출발했습니다. 어르신들이 오기 전에 얼른 가서 경내를 살펴보기 위함입니다.

오전 9시 10분경 보경사에 도착해서 스님은 지팡이와 모자만 챙기고 차에서 내려 경내를 둘러보았습니다. 버스가 도착하면 어르신들이 일주문으로 들어온다고 해서 스님은 일주문부터 재바르게 둘러보기 시작했습니다.

스님이 온다는 것을 알고 있던 보경사 안내 팀장이 스님을 맞이하고 경내에 대해 설명해 주었습니다.

스님은 대웅전으로 이동해서 참배를 드리고 어르신들이 모두 들어오실 수 있을지 공간을 확인했습니다. 어르신들이 모두 들어오시기에는 비좁을 것 같았습니다. 다행히 해의 방향과 대웅전 앞마당에 설치된 연등이 그늘을 이루어서 어르신들을 앞마당에 모셔서 법당 참배 일정을 하고 단체 사진을 찍으면 될 것 같았습니다.

대웅전 참배를 마치고 나가려는데 마침 보경사 주지 탄원스님이 대웅전으로 들어와 스님에게 인사를 드렸습니다.
“법륜스님 안녕하세요. 오셨습니까?”
“스님, 안녕하세요. 잘 지내셨습니까. 오늘 동네 어르신들 모시고 봄나들이하는 날인데 보경사를 구경 시켜드리려고 왔습니다.”
“네, 스님 미리 소식을 들었습니다. 잘 오셨습니다. 스님 일찍 오셨는데 차라도 한잔하시지요.”
“아닙니다. 제가 어르신들 경내 둘러보시게 안내하려고 일찍 와서 살펴보고 있었습니다.”
“스님 그러시면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스님은 탄원스님과 함께 보경사 경내를 둘러보기 시작했습니다. 봄을 맞은 보경사는 초록과 싱싱한 연두가 가득한 산으로 둘러싸여 있었습니다. 산을 빼곡하게 채우고 있는 나무들 덕분에 산새가 부드럽고 풍성하여 마치 보경사의 도량이 산의 품에 안겨 있는 것 같았습니다.
“스님 점심 공양은 어떻게 하시나요? 절에서 준비를 조금 할까요?”
“아닙니다. 어르신들은 오늘 하루 맛있는 것 드시고 신나게 놀려고 오신 거예요. (웃음) 여러 가지 음식을 풍성하게 준비해 드려야 해서 경주에 있는 뷔페식당을 이미 예약해 두었습니다.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고 신나게 놀 수 있는 시간을 드리고요. (웃음)”
“역시 법륜스님은 생각하시는 게 남다르시네요. (웃음)”
“제가 폐교된 학교를 수련원으로 만들어서 그곳에서 처음으로 어르신들 봉사를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시골 노인들이 게이트볼 치는 것을 즐긴다고 해서 게이트볼장을 학교에 만들었습니다. 만들어 놓고 보니 면사무소에 게이트볼장이 아주 잘 갖춰져 있어서 어르신들이 모두 거기로 가셨어요. (웃음) 시골 사는 노인들이라 목욕 한번 나가는 것이 어렵겠다고 생각해서 학교 교실에 목욕 시설을 만들었더니 목욕도 버스를 전세해서 온천으로 다니시는 겁니다. (웃음)
그래서 학교에 마련해 놓은 시설이 아무 필요가 없어졌어요. 그만큼 한국 사회가 바뀐 것입니다. 제가 어른들이 뭘 원하는지를 잘 몰랐던 거죠. (웃음) 그 뒤로 일 년에 두 번씩은 어르신들 이야기도 들어드리고, 맛있는 것도 먹고, 바람도 쐬고 하는 나들이 프로그램을 하고 있어요. 벌써 20년이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저도 어느덧 노인이 되어 있네요. (웃음)”

편안하고 아름다운 보경사의 풍경을 둘러보고 있으니, 어르신들이 경내로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스님과 탄원스님은 어르신들을 일주문에서 맞이하고 인사말을 했습니다.

“오늘 이렇게 봄나들이 나오셨는데 여기는 보경사입니다. 신라시대에 처음 지었습니다. 고려시대에 두 번째로 다시 짓는 중창불사를 하고 임진왜란 지나고 절이 많이 손상되어서 숙종 때 삼창을 했습니다. 이 담장부터 저기 지금 크게 불사하고 있는 곳은 요즘 새롭게 짓고 있는 거예요. 우리가 오늘 구경하는 곳은 옛날 것입니다. 잘 지었든 못 지었든 옛날 것 구경할 거예요 (웃음). 보경사 뒤로 보이는 저 산은 내연산입니다. 내연산은 계곡이 좋기로 유명해요. 그런데 이제 우리가 모두 늙어서 산을 타기는 어렵겠어요.(웃음)”

스님은 일주문에서부터 대웅전까지 이어지는 길을 설명하고 오늘 일정에 대한 안내를 이어갔습니다.
“우리는 대웅전에 가서 부처님께 절을 할 것입니다. 살아서는 무병하고 장수는 안 하고 싶죠? (웃음) 100살 다 되어 가는 어르신들에게 물어보면 모두 ‘와 안 죽노?’ 하세요. (웃음) 안 아픈 게 중요해요. 그래서 법당에 가서는 부처님께 살아있을 때 안 아프고, 죽어서는 극락 가도록 기도하고 절을 한 바퀴 빙 둘러보겠습니다.
그리고 올해는 동네마다 단체 사진을 찍으려고 해요. 왜냐하면 매년 제가 나들이를 하는데 안 보이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래서 어르신들 돌아가시기 전에 동네 사람들이랑 사진 한 장 기념으로 찍어드리려고요. (웃음)
점심은 작년에 갔던 식당을 다들 좋아하신다고 들었어요. 그래서 경주에 가서 먹겠습니다. 그러면 보경사 주지 스님 인사를 듣겠습니다.”

탄원스님의 인사말이 이어졌습니다.
“안녕하세요. 두북에 계시는 어르신들. 저는 보경사 주지 탄원입니다. 제가 평상시 존경하는 법륜 큰스님이 오늘 어르신들을 모시고 보경사에 오신다는 소식을 듣고 설레었습니다. 이렇게 스님을 뵐 수 있어서 참으로 영광입니다. 법륜스님을 TV나 강연으로 먼발치에서만 뵙다가 실제로 친견하는 것은 처음이고 대화를 나누는 것도 처음이었습니다.
오늘 큰스님께서 어르신들 도착하기 전에 보경사에 먼저 도착하셔서 경내를 살피며 준비하시는 모습을 보고, 제가 느끼는 바가 많았습니다. 어르신들 보경사 오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내연산은 기운이 좋은 곳입니다. 산책하시면서 땅 많이 밟으시고 건강한 기운 받아 가시기 바랍니다.”
스님이 이어서 말했습니다.
“내연산 기운 받아서 식당에 가면 펄쩍펄쩍 뛰면서 재미나게 노세요. (웃음) 자, 그러면 대웅전으로 가겠습니다.”


스님은 어르신들을 모시고 보경사 대웅전으로 향했습니다. 마침, 사시 예불을 드리고 있어서 스님은 어르신들과 함께 짧은 입정을 했습니다. 입정을 마치고 스님은 어르신들에게 남은 여생을 근심 걱정 없이 편안하게 잘 지내시고 건강하시기를 바라는 축원을 했습니다.


축원을 마치고 경내 투어를 한 후에는 대웅전 앞에서 12개 동네별로 단체 사진을 찍었습니다.
“자, 이제 내려가시면서 화장실에 들렀다가 밥 먹으러 갑시다.”

탄원스님이 스님을 배웅하면서 보시금을 주었습니다.
“스님, 이렇게 좋은 일을 하시는데 저도 조금 보태고 싶습니다.”
“아닙니다. 노인들 관람하도록 허락도 해주고 편안하게 둘러볼 수 있도록 잘 챙겨주어서 덕분에 일정을 잘 마쳤습니다. 내가 절에 보시해야지요.”
스님은 한사코 탄원스님의 보시금을 사양했습니다.
“스님 언제든지 다시 와 주십시오.”
“그래요. 다음에 기회가 되면 또 봅시다.”


스님은 어르신들을 모시고 경주로 향했습니다. 식당에는 식사가 모두 준비되어 있었고 어르신들도 도착하자마자 공양을 시작했습니다.

어르신들의 점심 식사가 끝나자 어느 정도 자리가 잠잠해졌습니다.
“다들 맛있게 식사하셨어요?”
“네”
“네, 그러면 요즘 근심·걱정이 있거나 하고 싶은 말이 있거나 질문하고 싶은 것이 있는 분들은 손 들어서 이야기해 보세요 특별하게 없으면 노래 부르고 놀다가 가겠습니다. 제가 건강한 줄 알았는데, 최근에 몇 년은 계속 아파요. 여기 하나 치료하면 저기가 고장 나고, 그래서 요즘 저를 보면 폐차해야 할 차를 계속 고쳐다 쓰고 고쳐다 쓰고 하는 것 같아요. (웃음) 엊그제 봉암사에 갔는데 노스님 한 분이 저를 보면서 이렇게 말했어요. ‘법륜스님, 사람이 70살 전에는 마음이 몸을 끌고 가고, 70살이 넘으면 마음을 몸에 맞춰야 하는데, 법륜스님은 아직도 마음대로 몸을 끌고 다니며 혹사하고 있어요.’ 하고 야단을 맞았어요. (웃음) 나이가 드니까 너무 무리하면 고장이 나죠? 그러니까 이제는 무슨 일을 하시든 서서히 놀면서 하세요. 아시겠죠? 자, 그러면 이제부터 노래 부르고 놀아봅시다.”


대구 경북지부 회원인 이수진 님을 중심으로 결성한 문화 공연 예술팀의 공연으로 어르신 노래자랑이 신나게 시작되었습니다.

이어서는 마을별로 한 분씩 12개의 공연이 쭉 진행되었습니다. 여느 가수 부럽지 않을 정도로 구수한 자락과 흥이 나는 춤사위가 노래자랑 시간을 한층 무르익게 했습니다.


어르신들은 동네 친구들과 같이 손잡고 나가서 춤도 추고, 평소 불러보지 않았던 노래도 마음껏 따라 부르면서 여흥을 즐겼습니다.


“야야야- 내 나이가 어때서 ♪
사랑하기 딱 좋은 나이인데 ♫ ♬ ? ?
어느 날 우-연히 거울 속에 비쳐진
내 모습을 바라보면서
세월아 비켜라~♫ ♬
내 나이가 어때서 - (중략)”

정토행자들의 공연을 마지막으로 두 시간 가까이 진행되던 노래자랑을 마쳤습니다.

“오늘 신나게 놀 수 있도록 흥을 띄워준 문화 공연팀들 고맙지요? 어르신들이 놀다가 지치셨네요. (웃음) 오늘은 이 정도로 마무리하겠습니다. 항상 건강하게 지내시고 시골에서 농사 일 하신다고 무리하지 마세요. 아시겠죠? 차에 타시면 각 마을 별로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가을에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스님 고맙습니다.”
“오늘 즐겁게 놀고 맛있는 것도 배부르게 먹었습니다. 고맙습니데이.”

스님은 오늘 어르신나들이에 봉사해준 부산울산 정토회원들과 대구경북 문화공연팀에 감사인사를 전하고 두북으로 이동했습니다.

오후 3시 30분경 수련원에 도착해서 스님은 다시 울력복을 갈아입고 아침에 다 끝내지 못한 일들을 정리했습니다. 잡초도 뽑고, 상추 떡잎도 제거하고, 제피나무의 제피도 수확했습니다.

텃밭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되자, 스님은 울력을 마치고 저녁에는 공동체 법사님들과의 저녁 식사를 함께하며 담소를 나눈 후 원고 교정하고 휴식을 했습니다.
내일은 오전에 6기 법사교육 입재식에서 입재 법문을 하고, 저녁에는 부산 ‘행복한 대화’ 강연이 있습니다.

오늘은 법문이 없었으므로, 지난 대구에서 열린 ‘행복한 대화’ 강연의 즉문즉설을 한편 소개하며 마무리합니다.
“저는 대학 신입생입니다. 제 고민은 좋아하는 사람에게 집착하는 거예요. 연애는 서로 좋아해서 시작하게 되잖아요? 그런데도 저는 상대가 나를 계속 좋아하는지, 사랑하는지 자꾸 확인받고 싶어 합니다. 상대가 내게 얼마나 자주 연락하는지, 애정 표현을 어떻게 하는지에 따라 ‘이 사람은 나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구나.’하며 괜히 실망하기도 하고요. 함께 있을 때는 마냥 행복한데, 조금 떨어져 지내게 되면 바로 그런 마음이 올라옵니다. 어떻게 하면 상대에게 덜 집착하고, 덜 괴로울 수 있을까요?”
“얘기를 들어보니 제가 제일 곤란해하는 유형이네요. (웃음) 껌처럼 딱 달라붙고, 엿처럼 늘어지는 스타일. 저는 쌀과자처럼 바삭바삭한 관계를 좋아하는데, 본인은 딱 그 반대 기질이에요. 요즘 젊은 사람들은 그런 기질을 좋아할까요, 안 좋아할까요?
“안 좋아합니다.”
“그렇죠. 그래서 연애할 때 힘든 거예요. 그리고 내가 상대를 먼저 좋아하면 내가 갑이 될까요, 을이 될까요?”
“을이 됩니다.”
“그래요. 계속 그러면 평생 ‘을’로 살아야 해요. 생각만 해도 힘들겠지요? 그런데 그렇게 사는 것도 나쁘진 않아요. 좋을 때 확 좋아하고, 아니다 싶으면 그만두고. 다른 사람도 좋아해 보고. 또 아니다 싶으면 그만두고요. 직업에 비유하자면, 한 직장에 오래 다니는 정규직이 있는가 하면, 일용직도 있고, 요즘은 프리랜서도 있잖아요. 기분 날 때 연락해서 일하고, 아닐 땐 쉬고. 사람을 사귀는 것도 마찬가지예요. 한 사람을 만나 쭉 이어가는 방식이 있는가 하면, 오늘 이 사람, 내일 저 사람 이렇게 사귀는 방식도 있어요. 이게 나쁜 게 아니에요.
질문자 기질을 보면 일주일마다 사귀는 사람을 바꾸면 괜찮아요. 일주일마다 만나는 사람을 바꾼다고 딱 정해 놓으면, 어떤 사람을 2주 동안 만나게 되면 ‘2주나 만났네.’ 하게 되고, 3주를 만나면 ‘3주나 만났네.’ 하게 되는 거예요. 그렇지 않고 ‘한 사람을 영원히 만나야 해.’ 이렇게 생각하면 헤어질 때마다 ‘또 안 됐네. 또 안 됐네.’하고 매번 실패했다고 생각하게 되는 거예요.
제가 30년 전쯤 미국에 간 적이 있어요. 그곳에서 불교협회 회장이라는 분을 만났습니다. 다 큰 아들이 있다고 해서 ‘부인은요?’ 하고 제가 물었어요. 그랬더니 이혼했다고 하는 거예요. ‘얼마나 사셨어요?’하고 물으니까, 10년 살았다고 해요. 그래서 다시 ‘10년밖에 안 사셨어요?’하고 물었더니, 이분이 하시는 말씀이 ‘스님. 제 친구 중에 제가 제일 오래 살았습니다.’라고 대답하는 거예요. (웃음)
저도 30년 전엔 그 말이 선뜻 이해되지 않았어요. 그러나 요즘 같으면 어때요? 이제 우리나라도 그와 비슷한 사회가 됐습니다. 그러니 질문자도 정규직 연애 말고, 본인 기질에 맞게 임시직 연애를 해도 괜찮아요. 흥이 나면 사귀었다가 아니면 훌훌 털고, 다시 흥이 나면 사귀고. 요즘 시대에는 이렇게 연애하며 살아가는 것도 하나의 방식이에요.
그러나 만약 본인이 기질 자체를 바꾸고 싶다면, 한번 정신건강의학과에 가서 검사를 좀 받아보세요. 왜냐하면 지금 질문자의 감정 기복이 좀 심하거든요. 그리고 집착이 너무 강해요. 진단을 받아보면 그냥 성격이 그럴 뿐인지, 아니면 조금 지나쳐서 병이라고 할 만한 정도인지 알 수 있어요. 병이라고 진단되면 약간의 치료가 필요하고, 성격이라고 진단되면 고칠 필요 없이 기질에 맞게 살면 됩니다.
의사가 살펴보고 ‘이 정도는 그냥 성격이라고 생각하고 생긴 대로 사세요.’ 이럴 수도 있습니다. ‘이건 조금 상담 치료나 약물 치료가 필요합니다.’라고 하면 약을 좀 먹으면 됩니다. 그러면 훨씬 효과가 있어요.
그리고 자가 치료가 있습니다. 내가 나를 치료하는 걸 수행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자가 치료의 범위를 넘었다 싶으면 병원에 가서 한번 진단해 봐야 합니다. 왜냐하면 다리를 삐었으면 잘 맞춰서 붕대를 감으면 되지만, 다리가 부러졌을 때는 병원에 가서 엑스레이를 찍어서 확인해서 조정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제가 볼 때는 자신을 고치려면 먼저 병원에서 검진을 받아보아야 합니다. 자신의 심리적 불안을 성격으로 분류할지, 약간 병으로 분류할지 그에 따라서 치료하면 좋겠다 싶습니다.
다만 지금 이대로라면 질문자는 ‘을’로 살아야 합니다. 내가 상대를 좋아하면 을로 사는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을로 살 팔자다.’ 이렇게 받아들이는 것이죠. 질문자는 을로 살고 싶어요? 그렇게 안 살고 싶어요?”
“그렇게 안 살고 싶어요.”
“그래요. 그러면 그것이 좋아도 이제는 조금 자제하는 게 필요합니다. 싫어하라는 게 아니라 좋아도 자제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것이 금기다.’ 이런 뜻이 아닙니다. 이렇게 확 집착해 버리면 나한테 고통이 따르니까 약간 자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 내 성질이 이렇구나.’ 그래서 조금 ‘자제해야 하겠구나!’ 이렇게 생각해야 합니다. 나쁘다가 아니라 자제가 필요하다는 관점을 가지면 좋겠습니다.
첫째는 병원에 가서 뭘 해 봐야 합니까?”
“진단!”
“그래요. 진단을 한번 받아 보세요. 기분 나빠요?”
“괜찮아요.” (모두 웃음)
“괜찮죠? 검진을 해 보라고 했지, 치료받으라는 말은 아니잖아요. 예를 들면, 성격검사 같은 것을 해 보라는 겁니다. 요즘은 MBTI 같은 성격 분류하는 검사도 있잖아요. 성격이 ‘조금 감정적이다’로 분류되면 그 성격을 갖고 살아야 하지요. 그럴 때는 정규직보다는 임시직으로 성향에 맞게끔 살아야 합니다. 사람을 사귈 때도 한 사람을 갖고 끝까지 가겠다고 생각하지 말고, 성격에 맞게끔 사귀면 됩니다. 그건 도덕적으로 나쁜 게 아닙니다. 근데 이게 ‘질병에 약간 가깝다’로 나오면 어때요? 상담 치료나 약물 치료를 조금 받으면 돼요.
아까 말했듯이 내가 이런 성격을 가지면 ‘을’로 살아야 한다는 걸 질문자가 알아야 합니다. 내가 누군가를 좋아하면 내가 을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돈을 좋아하면 돈 앞에서도 을이 될 수밖에 없고, 내가 인기를 좋아하면 인기의 노예가 될 수밖에 없어요. 이렇게 집착하면 내가 을이 됩니다. 그래서 을로 살고 싶으면 그냥 이대로 살면 되고, 을로 살기 싫으면 자기 감정이 어떻게 흐르는지 살펴봐야 합니다. ‘아, 내가 또 집착하는구나!’ 이렇게 자각하면 크게 널뛰기하던 감정의 출렁임을 알아차리게 되고, 알아차리면 출렁임을 작게 할 수 있어요. 그렇게 되면 부작용이 그만큼 적습니다.
또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더 얘기해 보세요.”
“저는 이런 저의 성향이 처음엔 연애 상대한테만 그렇게 하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요. 그냥 엄마한테도 집착을 많이 한다는 걸 알았습니다. 엄마가 어디 가면 어디 가냐고 물어보기도 하고, 집에 같이 있을 때는 계속 붙어 있고 싶습니다. 그래서 요즘도 어떻게 보면 저에게 ‘어미 새’라고 할 수 있거든요.”
“그러니까 치료받아야 한다는 거예요. 첫째는 자기가 괴롭고 둘째는 상대가 힘듭니다. 상대가 느낄 때 사랑으로 안 느껴지고 귀찮게 느껴지는 거죠. 그런 성격을 계속 가지고 있으면, 만약에 남자를 사귀어서 결혼하면 ‘의부증’으로 전환될 위험이 있어요. 남편에게 내내 꼬치꼬치 캐묻는 거예요. 조금만 늦게 와도 ‘어디 갔었니?’, ‘누구 만났니?’, ‘오늘 뭐 했니?’ 이렇게 물으면 처음에는 좋을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상대가 굉장히 속박됨을 느낍니다. 서로 협력하고 자유로워야 하는 결혼이 굉장히 속박받으며 사는 것이 됩니다. 속박하는 건 좋은 게 아니잖아요. 특히 미래 사회의 젊은이들은 어쩌면 더 할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한번 병원에 가서 점검해 보면 좋겠습니다.
질문자의 이런 모습은 육체는 성년이 됐는데, 아직 정신이 성년이 되지 않았다는 걸 반증합니다. 미성년이라는 겁니다. 왜냐하면 의지해서 살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누가 질문자에게 잘해주나요? 아빠가 잘해주나요?”
“엄마입니다.”
“아직도 뭐든 잘 해줘요?”
“네”
“엄마가 너무 잘해줘서 생긴 병인가 봅니다. 과잉보호 때문에 생긴 거예요. 아직 어린애 같은 심리예요. 어린애들은 마음이 이랬다저랬다 합니다. 하지만 이제는 질문자의 마음이 어른이 되어야 합니다. 몸이 어른인데 마음은 어린애니까, 이게 불균형입니다. 병원에서 한번 체크를 해보는 게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네. 고맙습니다.”
전체댓글 5
전체 댓글 보기스님의하루 최신글
다음 글이 없습니다.
이전글“사업을 하다가 망했습니다. 두려운데 어떻게 극복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