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6.1.5. 경주 남산 산책
“그만두고 싶을 때마다, 스님은 어떻게 다시 일어섰을까요?”

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목디스크 치료를 한 후 행자들과 경주 남산을 산책하기로 했습니다.

스님은 새벽 수행과 명상을 마친 후 5시 30분에 서울 정토회관을 출발하여 두북 수련원으로 향했습니다.

이동하는 중에 휴게소에 들러 우동을 한 그릇 먹은 후 아침 9시에 경주 남산 아래에 위치한 통일전에 도착했습니다. 통일전을 출발하여 옥룡암, 탑곡, 할매부처라고 불리는 불곡마애여래좌상까지 둘레길을 걸으려고 길을 나섰지만, 찬 바람이 매우 강하게 불었습니다.

“아이고, 너무 추워서 안 되겠어요. 햇볕이 나고 오후에 산책을 합시다.”

생각보다 바람이 강해 체감온도가 훨씬 낮았습니다. 점심을 먹고 나서 오후에 산책을 하기로 하고 두북 수련원으로 향했습니다.

오전 10시에 두북 수련원에 도착한 후 목디스크로 인한 어깨와 팔 통증을 완화하기 위한 치료를 받았습니다. 치료를 마치고 점심 식사를 한 후 오후 2시에 경주 남산으로 다시 산책을 나섰습니다.

산책은 삼릉 숲 아래에서 시작했습니다. 수행팀 행자들은 스님의 건강을 염려하며 스님께 여쭈었습니다.

“스님, 어깨와 팔에 통증은 좀 괜찮아 지셨어요?”

“진통제를 계속 먹으니까 통증은 조금 덜해졌는데 여전히 아파요. 그래도 걸을 때는 조금 덜 아픕니다. 법문하려고 앉아 있을 때 가장 아픈 것 같아요.”

걸을 때는 조금 통증이 덜하시다는 이야기에 안심하며 함께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경애왕릉을 거쳐 소나무숲이 울창한 삼릉을 지나 망월사에 도착했습니다.

경주 남산은 완연한 겨울의 한복판에 들어서 있었습니다. 가을에 눈부시게 타올랐던 단풍은 대부분 땅에 떨어지고, 가지에 남아 있는 잎마저 바짝 말라 얼어붙어 있었습니다.

“포석정까지 가봅시다.”

태진지를 거쳐 지마왕릉을 지나 포석정에 도착했습니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서늘한 겨울 냄새가 폐 깊숙이 스며들었습니다.


“산으로 올라가 봅시다. 조금만 올라가면 넓은 저수지가 있어요. 아마 얼음이 얼었을 겁니다.”

스님의 안내에 따라 포석정에서 금오정까지 이어지는 산길을 따라 걸어 올라가니 등산로 입구에 넓은 저수지가 나타났습니다.

스님은 얼음이 충분히 얼었는지 지팡이로 두드려 본 후 얼음 위로 가볍게 올라갔습니다.

“괜찮습니다. 들어와 보세요. 얼음이 깨져 물에 빠지더라도 죽을 정도는 아니예요. 물이 깊지는 않습니다.”

얼음 밑으로 물고기가 지나가는 것이 보였습니다. 스님이 얼음 위를 내달리다 걸음을 멈추는 순간, 신발이 그대로 미끄러져 앞으로 주욱 나아갔습니다.

스님은 어릴 적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제가 어릴 때는 썰매를 직접 만들어서 타고 놀았어요. 나무와 철사만 있으면 썰매를 만들 수가 있어요.

얼음이 풀리기 시작할 무렵이면, 얼음의 겉은 단단해 보여도 속은 이미 약해져 있습니다. 누군가 얼음 위에서 힘을 줘서 ‘쩍’ 하고 금이 가는 순간, 그 한 점에서 시작된 균열이 사방으로 번져 나가며 얼음판 위에 하얀 선들이 모자이크처럼 퍼져 보입니다. 그땐 친구들과 겁도 없이 누구 한 사람 먼저 빠질 때까지 계속 힘을 줬는데, 지금 생각하면 한순간에 물로 빠질 수도 있는 아찔한 장난이었습니다.”

얼음 위에서 어릴 적 추억을 떠올리며 이야기를 나눈 후 다시 산을 내려왔습니다.

“산은 너무 춥네요. 우리도 다른 사람들처럼 따뜻한 카페에 앉아서 차 한잔 하고 갑시다.”

포석정을 나와 카페에 들러 차 한 잔을 마시며, 다음 2차 천일결사에서 어떤 일을 해 나갈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뒤 다시 두북 수련원으로 돌아왔습니다.

두북 수련원에 도착하자 산 너머로 해가 저물었습니다.

저녁 식사를 함께 하면서 스님은 수행팀 행자들과 마주 앉아 담소를 나누었습니다. 행자들은 스님의 빡빡한 일정이 차질 없이 이어질 수 있도록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많은 역할을 맡아 온 이들입니다. 이날만큼은 스님이 먼저 귀를 기울여, 그동안 함께 지내며 겪었던 어려움과 마음속 이야기를 차분히 듣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저녁 8시가 되어 대화를 마무리한 후 스님은 원고 교정과 여러 업무들을 보고 나서 하루 일과를 마쳤습니다.

오늘은 법문이 없었기 때문에 작년 8월 북미서부 순회강연 중 라스베가스에서 열린 즉문즉설에서 스님과 질문자가 나눈 대화 내용을 소개하며 글을 마칩니다.

그만두고 싶을 때마다, 스님은 어떻게 다시 일어섰을까요?

“저는 작년에 부산에서 미국으로 이민을 왔습니다. 남편과 결혼하고, 2년 넘게 기다려서 비자를 받아 미국에 왔습니다. 미국에 와보니 제가 영어를 되게 못하더라고요. 영어가 안 되니까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어요. 이걸 어떻게 극복할까 고민을 하다가, 군대를 가기로 결정했습니다. 제가 원래 한국에서 간호사로 일했기 때문에 미국에서 간호 장교를 목표로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20년 정도 복무하고, 연금도 받고 싶고, 혜택도 많이 받고 싶은 욕심이 생겼습니다. 한국에서도 일을 할 때 어느 순간에 번 아웃이 오곤 했습니다. 스님께서도 꽤 오랫동안 그 자리를 지키고 계신데 번 아웃이 왔던 적은 없으셨나요? 그걸 어떻게 극복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지금 56년째 이 일을 하고 있어요. (웃음) 그런데 남편이 군대 가는 것에 동의를 해요?

“처음에는 조금 걱정을 했는데, 제가 ‘나는 이것 아니면 안 될 것 같다’라고 얘기를 했습니다.”

“인생에서 이것 아니면 안 되는 일은 없습니다. 이것이 안 되면 저것을 하면 되고, 저것이 안 되면 또 다른 길을 가면 됩니다. 그게 인생입니다. 그런데 군에 가게 되면 부대 배치에 따라 이동이 잦아질 수 있고, 그러면 남편도 직업을 계속 바꿔야 하는 상황이 생길 수 있습니다. 군대는 명령 체계 안에서 움직여야 하니 그런 현실적인 문제가 따를 수 있습니다. 그런 부분까지 충분히 고민해 보고 결정한 것인가요?”

“네. 남편도 그 부분에 대해서 동의한 상태에서 계획을 하고 있습니다.”

“남편이 자영업을 합니까?”

“아니오. 그건 아닌데, 집에서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자녀는 가질 생각이에요?”

“아니오. 저희는 결혼 전부터 자녀를 갖지 말자고 합의한 후 시작했습니다.”

“질문자의 입장은 이해했습니다. 그렇다면 질문의 요지가 뭐예요?”

“번 아웃을 극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여쭙고 싶습니다.”

“그것은 번 아웃이 생길 때 이야기하세요. (웃음) 왜냐하면 번 아웃이 안 생길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미리 그 얘기를 할 필요는 없어요.”

“스님은 번 아웃이 온 적이 없으신가요?”

“중간에 한두 번쯤은 그런 적이 있었죠. 그만두고 싶다는 마음이 가장 크게 일었던 때는 1980년이었습니다.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이 일어난 그해 10월, 신군부가 그 일을 덮기 위해 한국의 스님들을 수백 명 붙잡아 ‘여자가 있다’, ‘재산이 있다’는 등의 혐의를 씌워 삼청교육대로 보낸 사건이 있었습니다. 일종의 종교 탄압이었습니다.

저는 당시 불교계가 사회의 민주화 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것까지는 이해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부당한 탄압을 당하고도 침묵하는 모습을 보며 큰 실망을 느꼈습니다. 신군부에 의해 법난을 당하고 있음에도, 불교계 내부에서는 오히려 경쟁자가 정리되었다는 식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명백한 불교 탄압 앞에서조차 ‘신군부가 정리를 해주었다’는 논리를 세우는 내부의 모습은 제게 큰 충격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불교계를 떠나고 싶다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저는 원래 물리학이나 천문학을 공부하고 싶었습니다. 고등학생 시절 스승을 만나 다소 억지로 출가한 경우였지요. 서른을 앞둔 나이가 되자, 이제는 새로운 공부를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미국으로 건너갔습니다. 미국에 와서야 한국에 있을 때는 제대로 알지 못했던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의 진실을 마주하게 되었고, 그 일을 계기로 저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때가 제 삶에서 딱 한 번, 모든 것을 내려놓고 그만두고 싶다고 진지하게 생각했던 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10년을 불교활동을 한 뒤에 그만두려 하니, 솔직히 아쉬움이 많았습니다. ‘내가 뭘 잘못했을까? 지금까지 내가 공부해 온 불교가 정말 불교가 맞을까?’ 하는 의문도 들었지요. 그래서 부처님의 일생을 처음부터 다시 공부하기로 했습니다. 그 과정을 통해, 제가 그동안 한국 불교에서 배워 온 것들의 상당 부분이 부처님의 가르침이라기보다 인도의 문화 속에서 형성된 불교 문화에 가깝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붓다라는 깨달은 이는 정말로 혁명적인 사람이었다는 점을 비로소 자각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젊은 시절, 한국 불교를 개혁하겠다고 젊은이들을 이끌며 ‘불교계의 무엇이 잘못됐다’고 강하게 문제를 제기해 왔습니다. 그런데 ‘아, 이것은 불교가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자, 불교 개혁 자체에 대한 관심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들은 그들대로 절을 지키고 문화재를 보존하는 일만으로도 이미 큰 역할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종교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점포를 차려놓고 운영하는 사업과 비슷하지 않습니까. 누군가 저에게 ‘정토회는 잘 됩니까?’ 하고 물으면, 저는 되묻습니다. ‘무엇이 잘된다는 말입니까?’ 그러면 대부분은 신도가 많으냐고 묻습니다. 그건 결국 가게에 손님이 많고, 그래서 수입이 많으냐고 묻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얼마나 많은 고뇌하는 사람들이 도움을 받고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고, 세속적인 기준으로 장사가 잘되는지를 평가하는 관점인 셈이지요. 그렇게 ‘그들도 하나의 사업체다’라고 관점을 바꾸어 보니, 그동안 제가 불교계를 향해 쏟아냈던 시비와 비판이 말끔히 사라졌습니다. 그래서 ‘혼자라도 바른 불교 활동을 해보자’는 마음으로 정토회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제게 찾아온 번아웃은 오히려 전화위복이었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저는 그 안에서 계속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싸우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번아웃이 찾아온다고 해서 꼭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번아웃이 오면 오는 대로, 그것을 계기로 또 다른 길이 열릴 수 있습니다. 그러니 너무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네, 감사합니다.”

전체댓글 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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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덕환

번아웃을. 미리걱정하지마라 왔을때. 생각하라는 말씀 고맙습니다.

2026-01-09 06:25:59

굴뚝연기

스님 젊은시절,미국에서 5ㆍ18보시고,재발심의계기가 되셨단거ᆢ오래전 강연장서 들은후 가슴깊이 기억하고있어요ᆢ불교가 사회와 괴리될수없음을 다시한번 더 결심다짐하시며ㆍ세상속으로 더욱 세상과함께 하시기로 단단히 다짐하신 사건이 아니었나짐작해요ᆢ
목치료든ᆢ병원 어느과를 가시든,심장병있으시다 꼭 말씀하시고ㆍ드시는 약도 꼭 말씀하시고요ᆢ심장약과 다른약과의 작용때문에요

2026-01-09 01:25:08

우연수

스님 존경합니다 사랑합니다 아프지마시고 부디 건강하게 오래오래 활동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오늘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말씀 잘 보고갑니다 ^^항상 감사합니다

2026-01-09 00:4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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