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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정토회 제2-1차 천일결사를 마무리하는 회향 수련 첫째 날입니다. 입재 법문을 시작으로 3년에 대한 평가, 스님의 정리말씀 그리고 1,080배 정진을 했습니다.

스님은 새벽 수행과 명상을 마친 후 회향 수련을 하기 위해 정토사회문화회관으로 향했습니다. 회향 수련은 전국의 으뜸절과 실천장소에서 동시에 진행되었습니다. 서울 정토사회문화회관과 정토회관에서는 서울제주, 강원경기동부, 인천경기서부, 청년특별지부, 행복운동특별본부, 공동체 지부에서 총 570명의 대중이 참석했습니다. 아침 일찍부터 1박 2일 수련에 참석하기 위해 정토회원들이 침낭을 들고 회관으로 하나둘 모여들었습니다.


오전 10시, 3층 설법전에 300여 명의 대중이 자리한 가운데 삼귀의와 반야심경을 봉독 하며 회향 수련을 시작했습니다.

이어서 참가자 소개 시간을 가졌습니다. 정토사회문화회관뿐만 아니라 전국 으뜸절에서 많은 대중이 온라인 생방송을 시청하며 함께 수련을 했습니다.
“오늘 회향 수련에는 국내외에서 총 1,286명이 함께 하고 있습니다. 서로 손을 흔들어 반갑게 인사 나누겠습니다. 반갑습니다.”

사회자가 큰 목소리로 말하자 모두가 손을 흔들며 서로를 환영했습니다.

이어서 대중이 삼배의 예로 법문을 청했습니다. 스님은 정토회가 걸어온 길을 돌아보며 삶의 매 순간이 곧 수행임을 이야기했습니다.

“우리는 3년 전, 천일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일 정진하자는 원을 세우고 천일결사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어느덧 그 천일이 다 되어가고 있습니다. 다음 주면 천일결사 회향식이 열립니다. 그래서 이번 1박 2일 수련은, 지난 3년의 정진을 마무리하는 의미로 마련된 자리입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이미 지난 30년간 1차 만일결사를 했고, 그 결사를 3년 전 회향한 뒤, 곧바로 2차 만일결사를 시작해 지금 3년이 지났습니다. 그러니 총 33년이 된 셈입니다. 하지만 사실 그보다 더 오래전, 1차 만일결사를 시작하기 전에도 약 10년간의 준비 과정이 있었습니다.

제가 경주에서 처음 활동을 시작했고, 이후 대학생들을 지도하게 되면서 서울로 오게 되었습니다. 당시에는 불교도 새로운 시대에 맞는 운동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 청년불교학교를 열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절을 빌려서 공부만 하다가, 점차 공부만으로는 부족하다 싶어 직접 대중과 함께 살며 법을 전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상주하는 행자 교육생을 모집하여 대학생들과 함께 생활하며 정진과 활동을 병행했습니다. 그러던 중, 일부로부터 ‘당신들 운동권 학생 아니냐?’는 오해를 받아 절에서 쫓겨나는 일도 겪었습니다. 그래서 조그마한 사무실이라도 얻어야겠다고 결의했고, 처음으로 얻은 곳이 15평짜리 건물 꼭대기 방이었습니다. 이후 홍제동에 법당을 마련했고, 그곳에서 1차 만일결사를 발원하고 준비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1983년에 서울로 왔으니, 1993년 만일결사를 시작하기까지 약 10년의 준비가 있었던 셈입니다.
이렇게 정토회는 처음부터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청년들과 함께 몸으로 때우며, 작은 실천을 하나하나 이어가며 지금까지 온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문경 정토수련원을 마련했습니다. 그렇기에 지금 정토회가 어떤 건물을 소유하고 있고, 회원 수가 얼마나 되는지를 가지고 평가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그런 평가는 세상에서 하는 결과 중심, 물질 중심의 평가 방식과 다를 바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수행은 부처님의 가르침, 즉 왕의 지위를 버리고 출가한 삶을 근간으로 합니다. 수행자는 결과가 아닌 과정을 중심에 둡니다. 현재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는 하루하루의 삶이 곧 수행의 결과입니다. 그러니 정토회의 활동도 눈에 보이는 결과물이 아니라, 그동안 주어진 삶의 매 순간을 진심으로 살아온 과정으로 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수많은 어려움을 겪어왔습니다. 그러나 ‘어려움을 극복해야 좋은 결실이 있다’는 관점은 수행자의 삶과는 다릅니다. 수행자에게는 그 어려운 과정 자체가 수행이며, 그 안에 자유와 깨달음의 길이 있습니다.

이번 1박 2일 수련에서는 천배 정진도 합니다. 이때 절을 다 마쳤다고 느끼는 성취감이 수행이 아닙니다. 절을 하며 땀이 흐르고, 다리가 아프고, 하기 싫은 마음이 일어날 때, 그 마음을 묵묵히 견디고, 포기하고 싶은 마음을 알아차리며 계속 나아가는 것, 그 자체가 수행입니다. 이처럼 불편함 속에서도 불평을 피하지 않고 깨어 있는 삶, 그 삶이 바로 우리가 지향하는 수행자의 삶입니다.
1박 2일 수련이 끝났을 때 무언가 눈에 보이는 성과가 남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이틀 동안 불편함을 감수하며 깨어 있으려는 그 자체가 수행이며, 그런 연습을 통해 삶에서도 장애에 덜 휘둘리는 자유로운 삶을 향해 나아갈 수 있습니다. 수행이란 과제를 하나 끝내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과제를 풀어가는 그 과정 전체가 수행입니다. 밥을 먹고 소화해서 나오는 결과인 똥이 수행이 아니라 소화 과정이 수행이듯이, 삶의 모든 순간이 수행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보통 그 결과물, 즉 ‘똥’에 해당하는 것들, 명예, 재산, 성과 등에 집착하며 살아갑니다. 그 모양이나 양으로 인생을 평가하며 살아가니, 후회가 많은 삶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인생의 가을에 접어든 분들이 ‘이룬 것이 없다’, ‘성과가 없다’고 말하는 것도, 마치 ‘밥은 잘 먹었는데 왜 똥이 안 모이는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하지만 수행이란, 그 순간순간을 성실하게 살아가는 것이며, 지금 이 삶 자체가 수행의 결과입니다.

살아가다 보면 누구에게나 어려움이 생깁니다. 중요한 것은 그 어려움을 피하려 하지 않고, 그것과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내면의 힘을 기르는 것입니다. 우리는 대개 어려움이 생기면 ‘이번엔 무슨 일이 또 일어날까?’하는 두려움 속에 머물게 됩니다. 그러나 수행이란 도망치려는 본능을 지켜보며, 그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깨어 있는 겁니다. 천배 정진 중에도 ‘조금 쉴 수 있을까?’, ‘샤워하고 올까?’, ‘공양간에 가서 뭐 좀 먹을까?’ 같은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이런 생각이 들어도 괜찮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런 생각이 드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불편한 감정에 빠져 있으면 우리는 본능적으로 도망치려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우리 인간도 동물과 마찬가지로, 자기보다 강한 존재를 만나면 도망치는 본능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런 본능에 휘둘리기만 하면, 우리는 평생 도망치는 삶을 살게 됩니다. 이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그 불편한 마음을 있는 그대로 지켜보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그 감정을 억지로 없애려 하지 않고, 참지도 않고, 그저 알아차리는 것이 수행의 핵심입니다.
절을 많이 하다 보면 누구나 힘들고 불편함을 느낍니다. 이를 참거나 회피하려 하지 말고, 그 순간의 마음을 바라보며 받아들일 때, 어느 순간 그 불편함에서 자유로워지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이런 체험은 일상에서도 더 가볍고 자유로운 삶을 살아가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천배 정진을 마치고 나서 사람들이 ‘어떻게 그 어려운 걸 해내셨어요?’ 하고 묻는다면, 그것은 세속의 눈으로 바라본 질문입니다. 수행자는 그런 질문 자체를 의미 있게 여기지 않습니다. 우리는 어떤 과제를 이겨내는 것이 수행이 아니라, 그 순간 깨어서 살아가는 것이 수행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수행자의 삶입니다.
누군가에게 ‘요리는 어떻게 했고, 딱딱한 건 어떻게 씹었고, 신 건 어떻게 먹었고, 그걸 어떻게 소화했느냐?’ 하고 일일이 묻지 않잖아요. 우리는 음식을 만들고, 먹고, 소화해서, 결과적으로 배설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결과에는 연연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삶도 그렇게 흘러갑니다. 이미 다 살아온 것들의 결과에 우리가 괜히 매달리고 있는 것입니다.

명예나 재산, 지식 같은 것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두 삶을 살아오며 학습하고 축적된 ‘결과물’ 일뿐입니다. 그럼 이런 건 아무 필요가 없느냐? 나에게는 필요 없지만, 세상에는 유용할 수 있습니다. 마치 배설물인 똥이 나에게는 필요 없지만, 땅에 뿌리면 훌륭한 거름이 되듯이 말입니다. 내가 가진 지식을 남을 위해 나누고, 내 재물을 다른 이를 위해 쓰고, 내 명예나 인기를 사회에 이롭게 사용하는 것, 이것이 바로 똥을 거름으로 쓰는 것과 같습니다. 그 결과물은 나에게는 더 이상 의미 없지만, 세상에는 여전히 쓰임이 있는 자원입니다.
이 건물도 마찬가지입니다. 정토회가 소유하고 있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이 건물이 대중에게 어떻게 유용하게 쓰이느냐가 중요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정진해야 비로소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해탈, 열반이라는 경지를 조금이나마 체험할 수 있습니다. 절에 다니고, 불교 공부하고, 정진한다고 말하면서도 늘 결과에 집착하고, 자꾸 피하려 들기 때문에 삶이 불안한 것입니다. 똥의 크기로 인생을 평가하려 하니까요.
그러한 집착과 평가의 기준을 내려놓는 훈련이 바로 수행입니다. ‘1박 2일 정진’으로 모든 걸 극복하긴 어렵겠지만, 불편함을 감수해 보는 데 의미가 있습니다. 지난 3년의 수행을 되돌아보고,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며, 같은 공간에서 같은 고생을 하다 보면 진짜 친구가 됩니다. 스님인 제가 여기 앉아 법문 하고, 여러분이 거기 앉아 듣기만 해서는 10년이 지나도 친구가 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함께 농사를 짓거나, 구호활동을 하거나, 물에 떠내려갈 뻔한 상황에서 서로를 구해주면 친구가 됩니다. 낭떠러지에서 떨어진 사람을 끌어올렸다면, 그 순간 나이도, 종교도, 직분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오직 ‘사람’으로서 서로를 신뢰하게 되는 것이지요.

공동 정진은 도반 사이의 우애를 쌓는 일입니다. ‘그때 만배 하다가 퍼져서 난리 났었지’ 같은 이야기가 그 자체로 추억이 되고, 관계가 깊어집니다. 공동체 법사님들이 아주 친해 보이는 이유는 수행을 더 많이 해서가 아니라, 고생을 함께 했기 때문입니다. 혼자서 고생한 것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함께 겪어야 공감이 되고, 신뢰가 생기게 됩니다.
아이를 어른으로 키우는 교육에서도 이런 원리가 작동합니다. 요즘 같으면 아동 학대라 할 수도 있겠지만, 예전 방식대로라면 초등학교 6학년 아이에게 3학년 아이들을 맡기고 등산을 보내면 됩니다. 지도만 주고 ‘이 길을 따라 다녀와라’ 하면, 그 책임을 감당하는 과정에서 6학년 아이는 단번에 어른이 됩니다. 처음에는 귀찮고 힘들겠지요. 어린아이들이 울고, 안 따라가려 하면 업고 데리고 다녀야 하니까요. 그러나 그런 과정을 거치며 ‘내가 없으면 안 되겠구나.’라는 책임감이 생깁니다. 그래서 아이를 낳아 키우면 어른이 되는 겁니다. 17살이든, 25살이든, 40살이든 나이는 상관없습니다. 중요한 건 책임지고 돌보는 경험을 했느냐는 것입니다.
보살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부터 보살이라서 중생을 보살피는 게 아니라, 중생을 돌보다 보면 보살이 되는 겁니다. 나이가 마흔, 쉰이 되어도 수행하지 않고, 돌볼 존재도 없이 혼자 살아가는 사람은 여전히 어린아이 같은 삶을 삽니다. 왜냐하면 어른의 역할을 해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를 위해 자기 목숨을 바쳐 가며 지켜야 했던 경험이 없으니, 진정한 어른이 되지 못한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어려움은 결코 나쁜 것이 아닙니다. 일반적인 관점에서는 ‘극복’이라 부르고, 수행의 관점에서는 ‘여일 하게 받아들이는 것’이라 부릅니다. 바로 거기서 진정한 자유가 열립니다. 이번 수련에 지회장이라 안 올 수도 없고, 팀장이라 눈치 보여서 억지로 오셨다 해도, 이왕 왔으니 마음을 내보세요. 10년을 하자는 것도 아니고, 1박 2일은 거꾸로 매달아도 지나갑니다. 불편하다고 움츠리면 더 힘들고, 추울 때도 ‘아, 춥다’ 하며 괴로워하지 말고, ‘시원하네’ 하고 받아들이면 됩니다. 이런 불편함과 어려움을 겪는 과정이 훗날 우리의 삶 전체에 큰 도움이 됩니다. 그렇게 함께 정진해 봅시다.”
스님의 말씀을 가슴에 새기며 사홍서원으로 입재식을 마쳤습니다.

본격적으로 1080배 정진을 시작했습니다. 먼저 첫 번째 타임에는 300배 정진을 했습니다.
“넓고 깊은 원력 세워 보살도를 닦고 닦아...”
유수스님과 무변심 법사님의 염불 소리에 맞춰서 다 함께 절을 했습니다.

지난 3년 동안 도반들과 함께 정진하며 기쁜 순간도, 어려운 순간도 있었지만 그 모든 시간이 큰 힘이 되었습니다. 한 배 한 배 절을 하며 초발심을 되새기고, 2차 천일결사를 준비하는 다짐을 하였습니다.

300배를 마치고 점심 식사를 했습니다. 삼삼오오 모여서 각자 집에서 싸 온 도시락을 꺼내 먹었습니다.
점심 식사를 하고 나서 오후 1시 30분에 다시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오늘은 정진을 하는 중간중간에 수행, 전법, 사회실천 등 세 가지를 주제로 지난 천일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기로 했습니다. 첫 번째 순서로 ‘수행’을 주제로 하여 지난 성과와 과제를 돌아보는 영상을 함께 보았습니다.

이어서 도반들의 감동적인 수행 사례담을 들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지난 3년 동안 누구보다 부지런히 수행해 왔기에 귀감이 될 만한 세 분이 앞으로 나와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내 자식에게만은 이 업식을 물려주지 말자. 오늘이 내가 정진하는 마지막 날이라 생각하며 쓰러져도 다시 일어섰습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그토록 미워하던 마음도 나를 미워하던 마음도 사라졌습니다. 어린 나를 만나 ‘너는 나쁜 아이가 아니라 아픈 아이였을 뿐’이라며 내가 나를 안아주었습니다. 그렇게 낙숫물이 바위를 뚫듯, 내 삶은 조금씩 행복으로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수행정진을 하지 않았다면 미워하고 원망하며 괴로웠을 텐데, 스승님의 가르침 덕분에 여기까지 왔습니다. 큰일처럼 보이던 모든 일이 ‘별일 아니다’라는 말씀을 듣는 순간, 제 마음에 '고맙습니다'가 피어올랐습니다. 나를 괴롭히는 인연은 없고, 모든 것이 내 문제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나는 내가 좋습니다. 나는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나의 기도입니다. 수행은 언제나 나를 돕고, 그렇게 제 삶은 조금씩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습니다...”

“내가 당한 상처와 분노가 너무 억울했지만, 수행을 통해 ‘나 자신은 내가 지키겠다’고 처음으로 결심했습니다. 아버지에 대한 분노가 사라지자, 세상 어떤 갈등도 하루 이틀을 넘기지 않고 녹아내리기 시작했습니다. 내 문제가 하나씩 해결될수록 스님의 가르침이 모두 진리라는 확신이 깊어졌습니다. 이제는 어떤 사람을 보아도 ‘그럴 수도 있겠다’며 이해가 먼저 올라옵니다. 스님처럼 바른 길을 한 발 한 발 걷겠다고 다시 다짐합니다.”
역경을 수행을 통해 극복해 낸 감동적인 이야기에 모두가 눈시울을 붉히며 큰 박수를 보냈습니다.

이어서 다시 300배를 시작했습니다. 도반들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듣고 나서 그런지 절을 할 때마다 더 힘이 났습니다.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이마와 등에서는 땀이 흘러내렸습니다.

300배를 마치고 잠시 휴식 시간을 가졌습니다.
오후 3시 20분부터는 두 번째 순서로 ‘전법’을 주제로 하여 지난 천일 동안의 성과와 과제를 돌아보는 영상을 함께 보았습니다. 영상을 통해 회원 양성 및 전법회원의 현황, 그리고 앞으로 남은 과제가 무엇인지 짚어 볼 수 있었습니다.

이어서 도반들의 생생한 전법 활동 경험을 들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의무감으로 하던 홍보가, 이제는 ‘누구나 행복해졌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변했습니다. 일상에서 만나는 모든 이들에게 ‘행복학교 한번 검색해 보세요’ 하고 웃으며 건네다 보니, 전법이 더 이상 부담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법을 만나 행복했듯, 그들도 행복해지길 바라는 마음 하나로 가볍게 전하게 됩니다. 이렇게 모두가 행복을 나눈다면, 세상은 분명 더 좋은 방향으로 바뀌리라는 희망이 생겼습니다...”

“저도 처음엔 온라인 수업을 가볍게 생각했지만, 정토회의 취지와 봉사를 이해하면서 학생들의 마음이 내 마음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나는 당신의 이야기를 잘 듣고 있습니다’라는 마음으로 화면 앞에서 고개를 끄덕이고 웃어주며 함께했습니다. 70분의 수업이 나도 좋고 남도 좋은 시간임을 알게 되니, 이 소임이 힘들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부족하고 서툴러도 함께 수행의 맛을 알아가며, 정토회에서 쓰이고 있다는 것이 그저 감사할 뿐입니다...”

“정토회에서 수행을 시작하며 천일기도와 3,000배 정진을 하다 보니, 평생 못 끊을 것 같았던 음주 습관이 거의 사라지는 기적을 경험했습니다. 여자분들과 한 공간에 있는 것도 불편했던 제가, 이제는 오히려 더 편안하게 대화를 나눌 만큼 마음의 문이 열렸습니다. ‘내가 이렇게 변하다니’ 하는 감사함이 올라오고, 이 길을 친구들과도 함께 걷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인생의 전성기를 맞은 지금, 이 빛나는 변화를 더 넓게 나누고 싶습니다...”

세 분의 발표를 통해 내가 행복해진 경험이 바로 전법의 가장 큰 동력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대중은 큰 박수로 서로의 활동을 격려했습니다.

다음은 스님이 앞서 발표한 수행과 전법 활동에 대해 정리말씀을 했습니다.

“이번 시간은 지난 3년 동안 수행이 얼마나 되었는지를 돌아보는 시간입니다. 그러나 수행은 물리적인 수치로 평가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수행은 마음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즉문즉설을 듣고 자신이 변했다고 말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강연이 끝난 후 책에 사인을 해드릴 때, 많은 분들이 ‘고맙습니다. 이혼하려다 마음을 돌렸어요’, ‘스님의 법문을 듣고 제 삶이 달라졌습니다’라고 말씀합니다. 마치 오랜만에 아는 사람을 만난 듯 반가워하며 인사하시는 분들도 많습니다. 그래서 ‘저는 스님을 자주 봐요’라고 하면, 저는 ‘저도 TV 안에서 여러분을 자주 봅니다’라고 농담을 하곤 합니다. 수치로 환산할 수는 없지만, 이제는 즉문즉설을 한두 번쯤 보지 않은 사람이 드물 정도가 된 것 같습니다.

수행은 곧 자기 변화입니다. 자기 변화는 꾸준한 실천에서 나옵니다. 백일 정진을 하면 자신을 알 수 있고, 천일 정진을 하면 자기 변화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정진의 분위기를 더욱 북돋울 필요가 있습니다. 법당에서 함께 정진을 하면 하지 않던 사람도 자극을 받아 참여하게 되지만, 온라인 정진은 편리한 반면 꾸준히 이어가기 어렵다는 단점도 있습니다. 하다가 중단되는 경우가 많지요. 이런 한계를 보완하려면 오프라인에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함께 정진을 이어갈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정토회에 대한 평가는 단순히 회원 수 같은 수치로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외부에서 ‘정토회 회원이 몇 명이냐’고 물으면, 저는 대답하기가 곤란할 때가 있습니다. 활동량을 보면 십만 명쯤 되는 줄 아는 사람이 많고, 활동가는 만 명쯤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분도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냥 빙긋이 웃으며 ‘비밀이에요’라고 답합니다. 이는 정토회 회원들의 열성을 보여주는 한편, 현재 활동 중인 회원들에게 과부하가 걸리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주기도 합니다. 앞으로는 회원 수와 봉사자 수를 조금 더 늘려 개개인의 업무를 나누어 부담을 줄여주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정토회가 지속 가능한 발전을 할 것입니다.

최근에는 임원을 맡았던 분들 중 병가를 신청하는 경우도 늘고 있습니다. 이는 일부 활동가에게 업무 과중 현상이 생기고 있다는 뜻입니다. 즉문즉설 강연은 여전히 많은 분들이 좋아하고 필요로 하지만, 저 개인에게는 점점 부담이 커지고 있습니다. 시간이 흐르며 사람들의 요구는 늘어나지만, 저의 건강은 예전 같지 않아 조화를 이루기가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하지 않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다 감당할 수도 없기에, 앞으로 어떻게 효과적으로 대응하고, 어떤 방식으로 조화를 이루어 나갈지가 전법의 주요 과제가 되었습니다.
대부분의 NGO 단체들은 기업의 후원이나 정부의 지원에 의존합니다. 그로 인해 정권이 바뀌면 지원금이 끊기기도 하고, 기업의 영향을 받기도 합니다. 그러나 정토회는 회원 여러분의 꾸준한 후원과 마음에서 우러나는 보시 덕분에 정치나 정세의 영향을 받지 않고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경제가 어려워도 정토회는 큰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오히려 실업자가 늘어나면 자원봉사자가 더 많아지는 경향도 있습니다. 후원도 대부분 소액이라 외부 상황의 영향을 덜 받습니다. 이처럼 정토회가 경제 상황과 관계없이 안정적으로 운영될 수 있는 것은 회원 여러분의 적극적인 정진과 전법, 그리고 보시 덕분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정토회의 활동은 아직 사회 전체가 필요로 하는 요구에 비해 충분한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정토회의 전법회원 정도면, 사회에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에게 전화 상담 정도는 해줄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씀하십니다. 자살률이 높고, 마음의 고통을 겪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정토회에서 이런 이들을 위한 상담 시설을 운영하면 좋겠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이는 정부도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정토회라면 자원봉사 방식으로 시도해 볼 수 있지 않겠느냐는 제안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습니다. 정토회는 현재 불교대학을 운영할 인력조차 부족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토회 회원 수가 늘어나고 활동이 확대되면, 우리에게는 자연스럽게 이러한 사회적 요구가 따르게 될 것입니다. 정부나 지자체가 새로운 사업을 추진하려면 반드시 예산이 필요합니다. 경제가 성장할 때는 여유 자금이 있어 새로운 일을 도모할 수 있지만, 지금처럼 성장이 정체 국면에 접어든 상황에서는 미국처럼 부유한 나라도 여력이 없습니다. 우리나라도 이미 조세 수입만으로 국가 재정을 운영하지 못하고 국가가 빚을 내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로 인해 새로운 사업은 하기 어렵고, 기존 사업에만 예산을 투입하는 형편입니다. 이런 부분을 보완하기 위해서는 민간단체가 자발적으로 움직여야 합니다.

정토회는 지금까지는 자본이 많은 단체들이 돈으로 펼치는 활동에 비해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머지않아 ‘돈으로는 할 수 없는 세상’이 올 것입니다. 자본은 많지만 그 사용처가 이미 정해져 있어 자유롭게 새로운 일을 시도할 수 없는 세상이요. 그럴 때 오히려 정토회가 빛을 발하게 될 것입니다. 실제로 지금도 ‘정토회라서 가능한 일’이라는 말이 사회 곳곳에서 나오고 있으며, 점차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정토회 회원들의 수행을 겸한 활동 방식은 개인의 행복을 추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사회의 정의를 실현하는 데도 큰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경제성장과 민주화의 부작용으로 기후위기와 사회 갈등이 심화되고 있는 이 시대에, 우리는 정토회의 방식으로 이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야 합니다. 투쟁이나 저항, 즉 ‘나쁜 것을 무너뜨려야만 올바른 것이 선다.’는 파사현정(破邪顯正)의 방식이 아니라, 맑은 물을 계속 부어 탁한 물을 엷게 만들듯, 우리가 빛이 되어 어둠을 걷어내야 합니다. 우리가 스스로 잘함으로써 세상 사람들의 본보기가 되고, 바른 것을 세워 삿된 것이 물러나도록 해야 합니다. 지금 대한민국과 세계는 바로 이런 정토회의 방식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입니다.

자기 요구를 중심에 두고 투쟁하며 얻어내는 방식은 결국 또 다른 갈등을 낳습니다. 우리는 자기 자신을 돌아보며 각성하고, 동시에 사회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과감한 실천도 해야 합니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는 힘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분노하지 않고도 행동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지금까지의 사회운동이 분노를 기반으로 한 투쟁이었다면, 정토회는 자비를 바탕으로 한 실천을 통해 세상을 바꿔야 합니다. 이러한 방식은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시민운동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이 좋은 법을 전해야 하고, 변화된 사람들이 흩어지지 않고 함께 모여야 합니다. 함께 모여야 비로소 힘이 생기고, 그 힘으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정토회의 2차 만일결사는 ‘수행, 전법, 사회 실천’을 핵심 방향으로 삼고 있는 것입니다.”

스님의 말씀을 가슴에 새기며 다시 정진을 이어갔습니다.

오후 4시 40분에 정진을 시작하여 90분간 400배 정진을 했습니다. 1,080배를 향해 나아가는 마지막 정진 시간입니다.

해가 저물고 저녁 6시가 되어 1080배 정진을 모두 마쳤습니다. 10분간 명상을 하며 마음을 고요히 한 후 저녁 식사 시간을 가졌습니다. 스님은 왼쪽 어깨와 팔에 통증이 심해서 대중에게 양해를 구하고, 정형외과에 급히 다녀왔습니다.

각자 집에서 싸 온 도시락으로 식사를 한 후 저녁 7시 30분에 다시 한 자리에 모여 예불을 했습니다.

예불을 마친 후에는 세 번째 순서로 ‘사회실천’을 주제로 지난 천일의 성과와 과제를 정리한 영상을 함께 보았습니다. 영상을 통해 실천활동 및 사회활동 부서의 활동 현황, 그리고 앞으로 남은 과제를 짚어 볼 수 있었습니다.

이어서 누구보다 사회 실천을 앞장서서 해온 분들의 사례담을 들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부서진 학교를 다시 세우듯, 전쟁과 재난 속에서 절망에 빠진 사람들이 다시 일어설 수 있기를 바란다는 법륜스님의 말씀은 JTS 활동의 모든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지원을 받은 사람들의 얼굴에서 절망이 희망으로 바뀌는 순간들을 보며, 도움을 주는 우리 또한 함께 성장함을 깊이 느꼈습니다. 단순한 물질 지원을 넘어, 도움을 받는 사람과 주는 사람이 함께 나아가는 것, 이것이 JTS가 세상에 전하고 싶은 가장 큰 가치입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도, 이 변화가 계속 이어질 것이라는 희망을 품습니다...”

“참여자로만 보던 심포지엄과 포럼을 이제는 담당자로 준비하게 되었을 때, ‘아, 정말 영광이다’라는 마음이 깊이 올라왔습니다. 하루에도 여러 행사들이 이어질 정도로 벅찬 일정이지만, 그만큼 평화를 향한 걸음이 쉼 없이 이어지고 있음을 체감합니다. 평화재단에서의 봉사는 저를 키우는 시간이었고, 한반도 평화와 세계 평화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게 해 주었습니다. ‘평화를 위한 그 길을 앞으로도 계속 걷겠다’는 다짐이 자연스레 생겼습니다...”

“전문 기술도 없는 우리가 건물을 제대로 관리할 수 있겠냐는 의심으로 시작했지만, 도반들과 함께 15층부터 지하 5층까지 구석구석을 반복해 살피다 보니 모두가 전문가처럼 성장했습니다. 여러 전문가들이 이 모습을 보고 ‘흠잡을 데 없이 잘 관리한다’는 말을 들을 때면 가슴 깊은 곳에서 뿌듯함이 올라옵니다. 서로 다른 색깔의 도반들이 힘을 모아 어려운 일을 마칠 때마다, 불법이 멀리 있지 않고 바로 우리 사이에 있음을 느낍니다. 회관 관리팀인 ‘보리수’가 좋습니다. 내가 ‘보리수’여서 좋습니다...”
많은 사회실천 활동이 있었지만 그중에서 JTS, 평화재단, 정토사회문화회관 관리를 위해 수고한 봉사자들의 보람과 기쁨이 무엇인지 느껴볼 수 있었습니다.

감동적인 사례담을 뒤로하고 다시 스님을 모시고 정리말씀을 청해 들었습니다. 스님은 정토회가 기후 위기 시대에 새로운 삶의 모델을 만들고, 정토회다운 문화를 창조해 나가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정진을 잘 마쳤습니다. 특히 실천 활동에 참여하신 분들의 소감 발표는 우리 모두에게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그중에서도 정토사회문화회관 관리를 맡고 있는 거사님의 발표는 깊은 울림을 전해주셨습니다. 정토회는 많은 이들이 불가능하다고 여길 만한 일들을 가능하게 만들어왔습니다. 그 가운데에서도 가장 어려운 일 중 하나가 바로 정토사회문화회관 관리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이 자리를 빌려 전국 각지에서 실천 활동 장소를 관리하고 계신 모든 봉사자들, 그리고 특히 정토사회문화회관을 책임지고 운영하고 계신 봉사자들께 진심으로 박수를 보내며 감사드립니다.

그동안 정토회의 사회활동은 대부분 공동체 대중이 중심이 되어 수행해 왔습니다. 공동체 대중은 전일 활동이 가능하고, 해외 파견도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정토회의 규모가 계속 확대되면서, 그에 맞춰 공동체 인력도 함께 확대되어야 합니다. 과거 우리가 했던 사업 규모에 비춰보면 지금은 공동체 인원이 최소 500명은 되어야 안정적으로 운영이 가능합니다. 그러나 현재 공동체 규모는 100명 남짓에 불과하고, 최근에는 새로 들어오는 사람도 적습니다.
그러니 여러분께 제안드립니다. 50대 중반쯤 되어 명예퇴직을 하거나 정년퇴직을 하신다면, 그 시점에 정토회에 들어오셔서 활동해 보시길 바랍니다. 국내에서도 자원봉사 인력이 필요하지만, 영어가 가능하거나 사회 활동 경험이 있는 분들은 해외 활동에 나서는 것도 매우 중요합니다. 현재 필리핀과 인도에도 대중부 출신 활동가가 회계를 포함해 다양한 역할을 맡고 있으며, 부탄에도 거사님들이 두세 달씩 자원봉사를 다녀오고 계십니다. 앞으로 정토회의 해외 활동을 확장하려면, 대중 여러분의 해외 진출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하나는 재난 대응 문제입니다. 한국에서는 아직 재난의 심각성이 피부에 와닿지 않지만, 전 세계적으로는 재난의 빈도와 규모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습니다. 최근 인도네시아, 베트남, 태국, 스리랑카 등 남부 아시아 지역에서는 허리케인이나 사이클론이 아닌, 단순한 폭우만으로도 큰 피해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JTS 차원에서 긴급 재난 지원을 위한 독립 조직 체계가 필요합니다. 기존의 필리핀 학교 건립 등 고정 사업과는 별도로, 중앙 차원의 긴급재난대응팀이 필요하며, 세계 각 지역의 교민사회에 뿌리내린 대중부가 중심이 되어 지역 재난을 구호하는 활동을 하도록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와 함께 지방 대도시의 오프라인 공간도 확충되어야 합니다. 단순한 수행 장소를 넘어 다문화 센터, 사회 실천 공간, 행복센터 등 다양한 기능이 함께 이루어질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나간다면, 이에 맞춰 책임 봉사자들의 역할도 더욱 중요해질 것입니다.
또 하나 아직 자리를 제대로 잡지 못한 것이 농업과 수행의 결합, 즉 선농일치(禪農一致)입니다. 수행은 본질적으로 소비적인 활동인데, 이를 생산과 연결해 수행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해 보려는 시도를 코로나 팬데믹 기간에 제가 시골로 내려가서 해봤지만, 제대로 뿌리를 내리지 못한 채 중단된 상태입니다. 이 부분은 앞으로 기후 위기 시대에 매우 중요한 대안이 될 수 있습니다. 현재의 정토회 모델은 동남아보다는 오히려 유럽 국가들이 배워갈 만한 수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두북 수련원과 같은 시골에서 농촌을 기반으로 하여 수행과 농업을 결합시키는 새로운 모델을 좀 더 발전시켜야 세계적 확산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지금은 하루에 몇 시간씩 와서 ‘시간 채우기’ 식으로 봉사하는 수준인데, 농업에 관심 있는 분들은 두북 수련원에서 일정 기간 훈련을 받은 후, 책임 있는 역할을 맡는 방식으로 참여해 주셨으면 합니다. 젊은 공동체 인력이 부족한 현실에서, 지금은 중장년층 여러분이 중심이 되어야 할 때입니다.

기후 위기 시대에 우리 삶의 방식이 어떻게 바뀌어야 할지를 실험하고 개척하는 일은, 정토회의 중요한 사명입니다. 앞으로는 단순한 ‘주 몇 시간 봉사’가 아니라, 책임 있는 봉사, 정기적인 봉사가 보강되어야 합니다. 용성조사님의 유훈에 ‘아들이나 손자 중 한 명은 출가시켜라’ 하는 말씀이 있죠. 그런데 지금은 아들도 손자도 없는 시대니까, 결국 본인이 출가하는 게 가장 확실한 방법입니다. (웃음)

이처럼 우리는 새로운 사회, 새로운 지원 체계, 새로운 문화에 대해 꾸준히 연구하고 실험해 나가야 합니다. 과거에는 선진국의 모델을 따라가면 되었지만, 지금은 선진국조차도 기후 위기와 고령화 속에서 길을 잃은 상태입니다. 이제는 우리가 새로운 길을 스스로 개척해 나가야 합니다. 앞으로는 우리가 먼저 실험하고 모델을 제시해 세계가 벤치마킹할 수 있도록 만드는 역할을 정토회와 대한민국이 함께 해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토회는 규모는 작지만 언제나 앞서가는 단체입니다. 단순히 사람들의 마음을 치유하는 것을 넘어, 사회의 다양한 영역에 새로운 가능성과 모델을 제시하는 역할을 해나가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문화도 우리 스스로 만들어야 합니다. 다른 영역들은 어느 정도 기반이 마련되었지만, 문화 영역은 아직 정토회에서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한 분야입니다. 이는 제가 문화에 소질이 부족한 탓이기도 합니다. 앞으로는 남의 문화를 빌려오지 않고, 정토회다운 문화를 새롭게 창조해 나가 보면 좋겠습니다.
지난 3년 동안 모두 수고 많으셨습니다. 내일부터는 토론을 통해 앞으로의 3년을 어떻게 만들어갈지 함께 대화하고,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큰 박수와 함께 회향 수련 1일째 프로그램을 모두 마쳤습니다.

1,080배를 다 마친 대중은 오늘 회향 수련을 하면서 느낀 소감을 작성한 후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직접 한 공간에 모이지 않아도 1,200여 명의 대중이 온라인으로 연결되어 지난 만일을 함께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내일은 회향 수련 2일째 날로, 천일결사 기도를 시작으로 오전에는 조별 토론과 즉문즉설 시간을 갖고, 오후에는 회향 수련을 마무리하는 회향식을 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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