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5.11.20. 동작구청 강연, 동국대 강연, 『푸른배달말집』 책잔치
“잔소리하지 말자면서 또 했습니다, 이 악순환을 어떻게 끊죠?”

안녕하세요. 오늘은 오전에 동작구청에서 강연을 한 후 오후에는 동국대학교에서 즉문즉설 강연을 하고, 저녁에는 『푸른배달말집』 책잔치에 참석했습니다.

스님은 새벽 수행과 명상을 마친 후 평화재단으로 향했습니다. 아침 7시부터 북한 전문가들과 조찬 모임을 하며 하루 일과를 시작했습니다.

북한의 물가와 환율, 장마당 거래 상황, 북미 관계 개선에 대한 전망을 모색한 후 모임을 마쳤습니다.

곧바로 동작구청에서 강연을 하기 위해 오전 9시 10분에 서울 정토사회문화회관을 출발했습니다. 동작구청에서는 ‘법륜스님과 함께하는 동작구민대학’이라는 이름으로 구청 직원들과 구민들을 위해 강연해 달라고 오래전부터 요청을 했는데, 오늘 시간을 내어 강연해 주기로 했습니다.

스님이 동작구청에 도착하자 360여 명의 구민들이 큰 박수와 환호로 환영해 주었습니다.

먼저 동작구청장이 환영 인사를 한 후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곧바로 스님이 무대에 올라 구민들과의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1시간 30분 동안 여섯 명이 손을 들고 스님에게 고민을 이야기했습니다.

그중 한 명은 아이들에게 잔소리를 줄이고 싶은데, 습관처럼 반복되는 잔소리를 어떻게 고칠 수 있을지 조언을 구했습니다.

잔소리하지 말자면서 또 했습니다. 이 악순환을 어떻게 끊죠?

“저는 결혼 후 첫 아이를 10년 만에 낳았고, 둘째 아이는 12년 만에 낳았습니다. 현재는 첫째 딸아이가 초등학교 3학년, 둘째 아들이 초등학교 1학년입니다. 저에게는 참 귀한 아이들인데, 제가 자주는 아니지만 아이들에게 잔소리를 합니다. 잔소리할 때 제 모습을 보니, 아이들에게 화를 내며 제 감정을 쏟아붓고 있었습니다. 좀 더 살펴보니, 그 모습이 주기적으로 반복되고 있었습니다. 의식적으로는 ‘이렇게 하지 말아야지.’ 하고 생각하는데, 무의식에서는 주기적으로 같은 패턴을 반복하고 있었어요. 마치 자동 재생되는 듯한 제 모습을 보면서 스스로 놀랐습니다. 육아하면서 아이들에게 잔소리를 완전히 안 할 수는 없겠죠. 잘못한 부분에 대해서 핵심만 짚어서 말해야 하는데, 저도 모르게 과거의 일까지 다 끄집어내며 잔소리하게 됩니다. 아예 잔소리를 안 할 수는 없겠지만, 지금보다는 횟수를 줄이고, 핵심만 짚어서 잘할 수 있는 방법이 궁금합니다.”

“그런 방법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지금 본인의 말 속에는 ‘엄마가 잔소리를 안 할 수는 없다.’라는 생각이 전제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질문자는 잔소리가 문제라고 하면서, 동시에 잔소리를 안 할 수는 없다고 말하고 있어요. 이 말은 고치겠다는 뜻일까요? 안 고치겠다는 뜻일까요? 제가 방법이 없다고 말하는 이유는 질문자가 ‘안 고치겠다.’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고치겠다고 마음을 굳게 먹어도 고치기가 어려운데, 고칠 생각이 없다면 더 어려워요. 알코올 중독자가 ‘술을 줄이는 방법이 없을까요?’ 하고 묻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 방법은 없어요. 한번 술을 입에 대면 계속 대기 마련입니다.”

“잔소리를 안 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시면 고쳐보겠습니다.”

“교육 효과가 떨어지거나 전혀 없는데도, 내 감정 때문에 하는 말이 잔소리입니다. 넘어진 아이에게 ‘조심해라!’, ‘일어나라!’ 하고 말하는 것은 잔소리가 아니에요. 술을 마시고 들어오는 남편에게 ‘술 마시지 마라!’ 하고 말하는 것이 잔소리입니다. 남편에게 잔소리하는 분에게 물었습니다. ‘술 먹지 말라고 남편에게 말하면 남편이 고쳐질 것 같습니까?’ 그랬더니 그분 대답이 ‘아니오.’였어요. 고쳐질 것 같지 않은데도 본인 감정 때문에 계속 말하는 거예요. 그것이 잔소리입니다. 아무 효과가 없다는 말이에요. 효과가 없는 줄을 알고도 계속 그 행동을 반복한다면, 그것은 자신의 문제이지 남편이나 다른 가족의 문제는 아닌 겁니다. 즉, 자기 습관의 문제예요.

그렇다면 나의 이런 습관은 언제 생겼을까요? 어쩌면 질문자도 엄마에게서 따라 배운 것일지도 모릅니다. 어릴 때 엄마의 잔소리를 듣기 싫었지만 그걸 따라 배우게 된 거예요. 이런 것을 집안 내력이라고 합니다. 어릴 때는 아이들이 아빠가 술 마시는 것을 아주 싫어했는데, 커서 나이가 들면 아빠처럼 술을 마시고 있습니다. 이런 것이 집안 내력이에요. 질문자는 엄마에게 물려받은 것 같아요? 아니면 엄마는 잔소리를 전혀 안 했는데 본인만 그러는 것 같아요?”

“엄마로부터 대물림되어 온 것이 확실합니다.” (웃음)

“그럴 때는 두 가지 길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첫째, ‘내가 엄마로부터 잔소리를 물려받았지만, 엄마도 나를 낳고 잘 살았고, 나도 아이를 낳고 잘 살고 있다.’, ‘그 정도 잔소리는 듣고 살아도 별문제 없다. 우리 아이들도 크면 잘 살 거다.’ 이렇게 잔소리를 하는 것에 대해서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갖지 않고 편안하게 사는 길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완벽한 엄마는 없기 때문이에요. 엄마는 자식에게 주는 사람입니다. 좋은 영향도 주지만 나쁜 영향도 주기 마련이에요. 그런데 나쁜 것은 절대 안 주고, 좋은 것만 주겠다고 하면 어떨까요? 그건 목표가 너무 높아서 지키기가 힘들어요. 잔소리하는 습관을 고치면 좋지만, 습관이 안 고쳐져도 ‘그래도 우리 아이들은 잘 살 것이다.’ 하고 사는 방법도 있습니다.

둘째, 반대로 ‘어머니의 잔소리가 어린 나에게는 큰 상처였고, 그것을 나는 절대로 아이들에게 물려주지 않겠다.’라고 생각한다면 확고한 결심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질문자는 엄마가 잔소리를 할 수도 있는 것이고, 다만 잔소리를 조금 적게 하면 좋겠다는 정도로 생각하기 때문에 제가 방법이 없다고 말한 것입니다. 정말 결심이 섰다면 그럴 때는 밥을 못 챙겨 주거나 옷을 못 사 주는 한이 있더라도 절대 잔소리는 하지 않겠다고 단단히 마음을 먹어야 합니다. 특히 아이에게 내 감정을 쏟아붓는 행동은 절대 하지 않아야 합니다.

마음을 먹었는데도 그런 행동을 반복한다면, 그럴 때는 스스로에게 벌칙을 주는 거예요. ‘잔소리를 할 때마다 천 배 참회의 절을 한다.’ 이런 식으로요. 처음 몇 번은 천 배를 해도 잘 안 고쳐지지만, 이게 한 열 번쯤 반복하면 변화가 생깁니다. 천 배 하려면 족히 세 시간은 걸리거든요. 처음 천 배를 하면 잘 걷지도 못해요. 그런데 이게 한 열 번쯤 되풀이되면, 의식에서 잔소리가 올라오다가도, ‘아, 또 천 배 절해야 해.’ 하는 마음이 같이 올라옵니다. 그러면 잔소리가 올라오다가도 입 밖으로 안 나가고 멈추게 됩니다.

아이들을 자꾸 야단치면 처음에는 겁을 내서 말을 듣지만, 시간이 흐르면 그게 아이들에게 일상이 되어 버립니다. 만성이 되는 거예요. 그러면 그다음부터는 아무 효과가 없어져요. 아이들이 ‘그냥 한번 혼나지 뭐...’ 이렇게 생각해 버리기 때문이에요. 여러분도 직장에서 상사가 계속 같은 말을 하면 그게 잔소리처럼 들릴 때가 있습니다. 남편이나 아내 사이에서도 마찬가지예요. 계속 반복되는 말은 어느 순간 ‘잔소리 좀 듣지 뭐...’ 하고 넘기게 돼요. 이렇게 상대가 잔소리로 받아들이고 나면, 그 말은 더 이상 효과가 없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는 그런 말이 상처가 돼요. 효과가 없다는 것보다 상처가 된다는 점이 더 큰 문제입니다.

그래서 잔소리는 안 하는 것이 좋습니다. 하지만 안 하려고 해도 잘 안 돼요. 그럴 때는 스스로에게 벌칙을 주어야 합니다. 벌칙이 어느 정도 세게 작용해야 무의식에서 자각하게 됩니다. 그 생각만 해도 소름이 돋을 정도여야 해요. 고치려면 그 정도는 필요합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렇게까지 해서 고쳐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어요. 그럴 때는 ‘그냥 생긴 대로 사는 것도 괜찮다.’ 하고 받아들이는 것도 방법입니다. 나도 그렇게 살고, 내 어머니도 그렇게 살았고, 그 윗세대도 그렇게 살아 왔어요. 이런 것이 집안의 내력입니다.

지역마다 기질이 다르듯, 이런 성향도 유전처럼 이어집니다. 생물학적 유전처럼, 우리의 의식도 배워서 전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습관은 고치기가 어려워요. 얼마나 고치기 어려우면 옛날 사람들은 이것을 ‘운명’이라고 했겠습니까? 태어날 때 이미 정해진 성격이라고까지 말했어요. 그래서 ‘천성은 못 고친다.’ 하는 말도 있고, ‘천성이 바뀌면 죽을 날이 다 되었다.’라는 말도 있습니다. 그만큼 바꾸기가 어렵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부처님은 이것을 깊이 살피셔서, 성격이라는 것은 타고난 것이 아니라 형성된 습관이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어요. 습관은 고칠 수 있지만, 다만 고치기가 매우 어려울 뿐입니다. 그래서 수행의 가장 중요한 덕목이 '꾸준함'입니다. 낙숫물이 바위를 뚫듯이 꾸준히 해야 합니다. 습관이 만들어질 때도 반복이 필요하듯, 습관을 바꿀 때도 반복이 필요해요. 각성을 꾸준히 해야 바뀝니다. 한두 번 열심히 한다고 바로 바뀌지 않습니다. 하지만 방금 질문자가 말하는 것을 들어 보니 ‘그렇게까지 해서 고칠 게 뭐가 있나?’ 하는 마음이 조금 있는 듯해요.

예수님과 부처님은 우리와 이런 점에서 다릅니다. 예수님은 목수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40일간 광야에서 금식하며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났습니다. 어느 날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구나.’ 하는 자각이 왔어요. 부처님은 6년 고행을 통해 중생에서 부처로 거듭나셨습니다. 우리도 그처럼 거듭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쉽지 않아요. 대체로 생긴 대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결국 두 가지 길이 있어요. 첫째, 습관을 바꾸겠다면 단호한 태도와 꾸준함이 필요합니다. 둘째, 습관을 바꾸지 않겠다면 생긴 대로 살아도 괜찮습니다. 다만 생긴 대로 살려면 반드시 사과할 줄 알아야 해요. 화를 버럭 냈다면 바로 ‘죄송합니다. 제 성질이 더러워서 그래요.’라고 말해야 합니다. 화를 내놓고 ‘내가 언제 화냈나! 너는 안 내나?’라고 하면 관계가 악화돼요. 하지만 금방 ‘미안합니다.’라고 말하면 같이 살 만해요. 아이에게도 ‘엄마가 또 잔소리했네, 미안하다’. 이렇게 말하면 됩니다. 생긴 대로 살고, 그로 인한 과보를 받으면 됩니다. 그 과보의 결과가 손실이 너무 크다면 단호한 태도와 지속적인 노력이 있어야 습관이 바뀝니다. 우리는 타고난 운명이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모두 형성된 것입니다. 형성된 것이기 때문에 바꿀 수 있습니다. 다만 바꾸기가 조금 어려운 것뿐이에요.”

“감사합니다. 잘 알았습니다.”

계속해서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 외국인 아르바이트생의 반복되는 실수와 태도에 속상해요. 제가 사람을 잘 다루지 못하는 걸까요?

  • 육아 휴직 후 퇴사하고 새로운 일을 시작하려는데, 두려움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요?

  • 얼굴이 자주 빨개지는 증상 때문에 대인 관계가 어려워요.

  • 술을 매일 마시는 남편에게 건강을 위해 한약을 지어 줬는데, 약도 마시고 술도 계속 마셔서 고민이에요.

  • 사람들에게 실망한 후 관계를 끊고 지내다 보니 외로움과 불안감이 생기는데,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할까요?

모든 질문에 답변을 한 후 마지막으로 스님이 마무리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크게 보면 인생살이는 별 거 아니에요. 별 거 아닌 일상 속에서 해야 할 일을 적절하게 하면 됩니다. 건강하다는 것은 아프지 않은 상태를 말하듯이, 행복은 즐거운 것이 아니라 괴롭지 않은 상태입니다. 이런 관점을 가지면 누구나 행복하게 살 수 있어요. 여러분 모두 행복하게 사시기 바랍니다.”

큰 박수와 함께 강연을 마쳤습니다.

동작구청을 나온 스님은 다시 정토사회문화회관으로 돌아와 점심 식사를 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오후 1시 50분에는 동국대학교로 향했습니다.

동국대학교에 도착하여 정각원 원장을 맡고 있는 제정 스님과 잠시 차담을 나눈 후 오후 3시가 되어 강연이 열리는 본관 남산홀로 향했습니다.

지난달에 동국대 윤재웅 총장이 정토사회문화회관을 방문하여 스님에게 동국대학교 학생들과 교직원들을 위해 법문을 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마침 오늘이 동국인 정기 법회가 열리는 날이어서 스님도 특별히 시간을 내었습니다.

강연장에는 200여 명의 교직원과 불교 동아리 학생들이 자리했습니다. 스님이 중앙 계단으로 내려오자 큰 박수로 환영해 주었습니다.

삼귀의와 반야심경을 봉독한 후 정각원 원장 제정 스님이 스님의 활동 이력을 자세히 소개했습니다. 이어서 스님이 무대에 올라 청중과의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스님이 간단하게 즉문즉설의 취지에 대해 소개하자 누구든지 손을 들고 스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대부분 불교 동아리 활동을 하고 있는 학생들이 질문했습니다.

1시간 30분 동안 여덟 명이 스님에게 고민을 말하고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중 한 명은 자기 절제를 어떻게 철저히 이어 갈 수 있을지 스님에게 고민을 털어놓았습니다.

자기 절제, 끝까지 지키는 방법이 있을까요?

“저는 자기 절제와 관련해 두 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자기 절제를 철저히 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여쭙고 싶고, 두 번째는 자기 절제 의지가 약해지지 않고 꾸준히 이어 갈 수 있는 방법을 불교적 시각에서 듣고 싶습니다.”

“두 가지 모두 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절제하겠다.’는 생각을 안 하는 것입니다. 질문자는 절제를 하겠다고 마음먹기 때문에 오히려 절제에 실패하고, 고뇌가 생기는 거예요. 그러니 ‘절제하겠다.’는 생각을 놓아 버리세요. 그러면 고뇌는 사라집니다. 대신 과보는 따를 거예요. 그럼 그 과보를 기꺼이 받으면 돼요. 먹고 싶으면 먹어서 살이 찌면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선택한 것’을 결국 스스로 후회한다는 데 있습니다. 그래서 절제가 필요하다는 거죠. 선택을 했으면 그 과보를 기꺼이 받고, 그 과보가 싫거든 '손해가 되니 안 하겠다.' 생각하고 인연을 짓지 말라는 겁니다.

보통 수행에서는 '과보를 피하기 위해 인연을 짓지 라.' 이렇게 가르칩니다. 그래서 대다수의 사람들은 ‘왜 하고 싶은 것을 못하게 하느냐?’, ‘불교는 늘 참으라는 소리만 한다.’ 하고 오해하고 저항합니다. 그래서 저는 ‘하고 싶으면 하고 감옥에 가라!’ ‘먹고 싶으면 먹고 죽어라!’ 이렇게 말합니다. 이것도 하나의 수행이에요. 안 하는 것만 수행이 아니라, 하고 난 뒤 그 과보를 기꺼이 받는 것도 수행입니다.

수행의 핵심은 괴로움이 없는 상태입니다. 본인의 선택으로 돈을 빌리고 싶으면 빌리면 됩니다. 그러나 이자를 쳐서 갚아야지요. 그렇게 돈을 갚아 보니 너무 힘들다면, 다음에는 빌리고 싶더라도 빌리지 않으면 됩니다. '빌리고 싶다.'는 것 자체를 가지고 나쁘다고 하면 안 돼요.

부처님의 가르침은 원래 이런 것입니다. 여기 맛있는 음식이 있다고 합시다. 먹고 싶은 마음이 있는데, 부처님이 ‘거기에 독이 들었다.’ 하면 질문자는 어떻게 하겠습니까?”

“안 먹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배가 고픈데 어떡해요? 먹고 싶은데 이걸 어떻게 안 먹어요? 조금만 먹어 보면 안 될까요?’ 하고 묻습니다. 부처님은 ‘그래도 먹지 마라!’ 하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그래, 그럼 먹고 죽어라!’라고 합니다. 그것은 자기 선택이니까요. 먹으면 좋을 줄 알았는데 결과가 나쁘면 후회가 생기죠. 그것이 무지입니다. 하지만 ‘먹으면 죽는다.’는 사실을 알고도 먹는다면, 그 결과가 죽음일지라도 그것은 자신의 선택입니다.

불교가 자꾸 윤리에 가까워지는 이유는, ‘독이 들었다.’는 진실보다 ‘먹지 마라!’를 강조하기 때문이에요. 부처님은 ‘독이 들었다.’는 사실만 말하셨습니다. 먹고 말고에 대해 이래라 저래라 하지 않으셨어요. 스스로 판단하여 자기가 알아서 하라는 거예요. 그것이 원래 불법입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남에 따라 불교가 윤리처럼 변하니 저항이 따르는 것입니다. ‘먹고 싶으면 먹으면 되지, 왜 못 먹게 해요?’ 이런 식이 되는 거예요. 보통 사람은 대부분 음식에 독이 들었다는 말을 들으면, 아무리 냄새가 좋아도 버려 버립니다. 그런데 자꾸 ‘먹고 싶은데 어떻게 안 먹어요?’ 하고 묻는 경우가 있어요. 여러분의 질문이 대부분 그런 식입니다. 그래서 제가 ‘그래, 먹고 죽어라!’라고 말하는 겁니다.

수행에는 ‘절제’란 것이 없습니다. 절제는 ‘먹고 싶지만 독이 들었다니 참고 안 먹는 것’ 또는 ‘조금만 먹으면 안 될까?’ 하는 태도입니다. 하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독이 들었다는 사실을 알면 그냥 안 먹습니다. ‘어떻게 안 먹느냐?’는 말을 할 필요가 없는 거예요. 예를 들어, 빨갛고 예뻐서 손에 쥐었더니 이게 불덩어리인 거예요. 불덩어리를 손에 쥔 채 뜨겁다고 소리를 지르며 ‘뜨거운데 이거 어떻게 해요?’ 하고 묻습니다. 내려놓으라고 하니 ‘어떻게 내려놓나요?’ 합니다. 어떻게 내려놓아야 하겠습니까?”

“저라면 던져버릴 것 같습니다.”

“뜨거운 불덩어리를 어떻게 놓느냐고 묻는 것은 그것을 갖고 싶다는 욕망의 다른 표현입니다. 일상적으로 우리는 뜨거우면 그냥 놓아버립니다. 어떻게 놓았느냐고 물어보면 뭐라고 대답할까요? 그냥 놨다고 대답할 것입니다. 뜨거우니까 ‘뜨거워!’ 하고 그냥 놓는 거예요. 이것을 유식하게 말하면 ‘방하착(放下著)’이라고 합니다. 그냥 놓아버리는 것이지, 놓는 방법을 논하는 것은 선(禪)이 아닙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불덩어리가 뜨겁다고 하면서 ‘어떻게 놔요?’ 하고 묻기에, 제가 오른손이 뜨거우면 왼손에 놓으라고 말해 주면 그것을 ‘좋은 방법’이라고 반깁니다. 잠깐이라도 불덩어리를 더 갖고 있을 수 있으니까요. 그러나 곧 왼손도 뜨거워집니다. 또 ‘어떡해야 해요?’ 하는 말에 그다음에는 발 위에 얹으라고 말해 줍니다. 이렇게 한 다섯 단계쯤 거쳐서 땅에 내려놓게 되면 이것은 좋은 방법일까요?”

“좋은 방법이 아닌 것 같습니다.”

“절제는 엄격하게는 수행이 아닙니다. 절제는 윤리의 개념입니다. 참는 거예요. 일어나기 싫은데 어떻게 일어날까요? 내가 일어나기로 했으면 그냥 벌떡 일어나는 거예요. ‘일어나야 하는데...’ 하고 결심을 백 번 해 봐야 누워 있는 상태는 그대로입니다. 결심을 할 게 아니라 벨이 울리면 벌떡 일어나야 합니다. 그냥 ‘싹’ 일어나는 거예요. 그래서 수행에서는 ‘일단 해 본다.’ 하는 말을 합니다. 어려움은 생각 속에 있는 것이지 행위에 있지 않습니다. 질문자는 무엇을 절제하고 싶은가요?”

“제가 고집이 좀 세서요.”

“내가 옳다고 생각하니 고집하게 되는 겁니다. 상대와 내가 서로 생각이 다른 줄 알면 고집할 이유가 없습니다. ‘넌 그렇게 생각하니? 난 이렇게 생각한다.’ ‘넌 그렇게 믿니? 난 이렇게 믿는다.’ ‘넌 그걸 좋아하니? 난 이걸 좋아한다.’ 이렇게 내 의견을 말하면 돼요. 내 의견을 포기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너는 틀렸고 내가 옳다고 주장하는 것이 고집입니다. 진실은 서로 다를 뿐입니다. 그래서 진실을 알면 고집할 일이 없습니다. 고집할 일이 없다는 말은 내가 의견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서로 다름을 인정한다는 뜻입니다.

‘짜장면 먹으러 갈래?’ ‘아니, 난 짬뽕 먹고 싶어.’ 이렇게 의견이 다르다고 합시다. 만약 연인 사이라면 오늘은 짜장면을 먹고, 내일은 짬뽕을 먹자고 조율할 수 있습니다. 합의가 안 된다면, 그게 문제일까요? 아닙니다. 같은 중국집에서 너는 짜장면을 먹고, 나는 짬뽕을 먹으면 됩니다. 그런데 한 사람은 비빔밥이 먹고 싶고, 다른 사람은 짬뽕이 먹고 싶으면 어떻게 하면 될까요? 그럴 때는 밥은 따로 먹고 카페에서 커피를 같이 마시면 됩니다. 꼭 합의에 이르는 것만이 해결책이 아니에요.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조율하는 것도, 혹은 타협하지 않는 것도 방법입니다. 우리는 뭔가 조율을 해야 된다는 것에 집착하기 때문에, 조율이 안 되면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조율이 안 돼도 문제가 없는 거예요. 따로따로 하는 것도 하나의 조율 방식이에요. 이것은 두 사람이 의견을 맞추지 못한 것이 아닙니다.

절제하려고 하지 말고, 참으려고 하지 마세요. 화가 일어나 버린 것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기 위해 참는 것은 윤리의 개념이에요. 수행은 화가 일어날 때 ‘아, 화가 일어나는구나.’ 하고 다만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화가 난다는 것은 ‘내가 옳다.’는 집착에서 일어나는, 속된 말로 ‘미친 증상’입니다. 화가 미친 증상임을 아는 것이 깨달음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알아도, 막상 순간적으로 화가 일어날 때 알아차리지 못하면 바깥으로 드러내게 됩니다. 화가 미친 증상이라는 깨달음, 즉 지혜가 열리는 것만으로는 안 되고, 이 순간에 내가 화가 일어나는 것을 알아차려야 하는 것입니다.

화가 미친 증상임을 모르는 것을 ‘근본 무지’라고 합니다. 화가 일어나는 순간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은 ‘찰나 무지’입니다. 근본 무지를 깨우쳐도 찰나 무지는 습관적으로 일어납니다. 그래서 알아차림이 있어야 합니다. 이미 화는 미친 증상이라고 하는 깨달음이 전제되어 있기 때문에, 화가 일어나는 순간 알아차리면 그것이 사라집니다. 그런데 ‘알아차렸는데도 화가 올라온다.’고 하는 사람들은 근본 무지가 아직 깨우쳐지지 않은 것입니다. 자기가 화가 난 것을 정당화하고 있기 때문에 화가 나는 것을 알아차려도 화가 계속 올라오는 거예요.

참는 것이 핵심이 아니라, ‘알아차림’이 핵심입니다. 알아차림을 놓쳐도 괜찮습니다. 참는 것을 중심에 두면, ‘아, 또 못 참았네.’, ‘또 화를 냈네.’ 하고 후회를 하고 괴로움에 빠집니다. 그러나 화를 알아차리지 못해 밖으로 화를 표출했더라도 그저 알아차림을 놓친 것이지, 뭘 잘못한 것은 아니에요. ‘아, 놓쳤구나. 다음에는 놓치지 말아야지.’ 하고 알아차리면, 후회와 괴로움이 없습니다. 화가 일어날 때 알아차리면 화를 밖으로 드러내지 않고, 이미 화를 내버렸으면 그 뒤에라도 알아차리고 ‘죄송합니다.’ 하고 참회하면 됩니다.

그러니 ‘어떻게 참을까?’보다 ‘어떻게 그 상태를 있는 그대로 알아차릴까?’라는 관점을 가져야 합니다. 왜냐하면 참으면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입니다. 화를 내지 않으면 타인에게는 이롭지만, 자신에게는 큰 괴로움입니다. 윤리적 관점에서는 내가 편하기 위해 남을 괴롭히는 것은 나쁜 행위이고, 남을 위해 나를 괴롭히는 것은 희생이라고 하면서 선한 행위라고 하지요. 그러나 수행적 관점에서는 둘 다 똑같이 괴로움을 유지하는 방식입니다. 그래서 윤리적 선(善)을 수행이라고 보지 않는 것입니다. 괴로움, 즉 고(苦)의 상태에 있기 때문입니다. 참는 방법을 찾을 게 아니라 ‘아, 내가 이렇구나.’, ‘내가 지금 이런 상태구나.’ 하고 알아차리는 방향으로 가야 합니다. 그래야 자기 비하가 없어집니다.”

“감사합니다.”

계속해서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 늘 뭔가를 이루려고 달려오다 보니 가만히 멈춰 있을 때 오히려 불안해집니다. 이런 마음은 어떻게 다스려야 할까요?

  • 화가 났을 때 어느 정도의 일에는 대응을 하는 게 맞고, 어느 정도 일에는 그냥 참고 넘어갈 수도 있는 건지, 기준이 모호한 것 같습니다.

  • 워킹맘으로 육아를 하다가 가끔 숙제나 준비물 챙기는 것을 놓쳐서 학교에서 연락을 받기도 합니다. 그럴 때면 자신을 질책하기도 하면서 마음이 안 좋은데 이럴 때 어떻게 해야죠?

  • 어릴 적부터 남들보다는 힘들게 살고 있습니다. 남들과 비교하며 저의 처지를 원망하는 게 고민입니다. 이러한 생각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 너무 외롭습니다. 아무리 많은 사람들을 만나도 집에 돌아오고 혼자 있을 때는 계속 허전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외로움을 다스릴 방법이 있을까요?

  • 상대방의 무례한 언행에 상처받지 않고 내 안의 화를 다스리는 법은 무엇인가요?

  • 도문 스님의 '탑 앞의 소나무' 이야기를 삶의 지침으로 삼고 싶습니다. 그런데 자꾸 조건 탓, 부모 탓, 환경 탓을 하게 됩니다. 탓하는 마음을 어떻게 다스리면 좋을까요?

대화를 나누다 보니 벌써 마쳐야 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스님이 닫는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오늘 총장님 말씀을 들어 보니 이번에 동국대학교에서 오계 수계를 받은 학생들이 3000여 명이 된다고 하시더군요. 다른 대학도 아니고 동국대에서 공부할 때, 불법의 인연을 한번 맺어 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앞으로 세상이 변하고 여러분이 더 나이를 먹으면 ‘학교 다닐 때 불교에 조금 더 관심을 가졌으면 좋았을 텐데...’ 하고 후회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학교에서 이런 좋은 기회를 제공하고 있으니 잘 활용해 보시기 바랍니다.”

큰 박수와 함께 강연을 마쳤습니다.

스님은 청중이 기립하여 박수를 치는 가운데 강연장을 빠져나왔습니다.

곧바로 동국대 이사장실로 이동하여 이사장을 맡고 있는 돈관 스님과 차담을 나누었습니다. 윤재웅 총장과 대학교 관계자들도 함께 자리했습니다.

스님은 얼마 전 정토사회문화회관에서 열린 청년페스타 행사의 결과를 공유해 주었습니다. 그러자 돈관 스님은 향후에는 동국대학교로 자리를 옮겨 더 많은 청년들이 참여하는 청년페스타 행사를 만들어 보면 좋을 것 같다고 화답했습니다. 그리고 청년 전법을 위해 더 자주 교류하고 협력할 필요성에 대해 서로 공감한 후 차담을 마쳤습니다.

해가 저물고 스님은 다시 정토사회문화회관으로 돌아왔습니다.

1층 입구에는 최한실 선생이 『푸른배달말집』 책잔치에 온 시민들을 반갑게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스님은 최한실 선생과 인사를 나눈 후 함께 저녁 식사를 했습니다.

책잔치를 시작하기 전에 오늘 사회를 맡은 김제동 님과 우리말 살리기 운동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후 저녁 7시 30분이 되어 함께 지하 대강당으로 향했습니다.

지하 대강당에는 우리말 살리기에 관심이 있는 시민 200여 명이 자리했습니다. 김라결 님의 여는 공연에 이어서 스님이 무대에 올라 참석한 시민들을 환영하며 인사말을 해주었습니다.

“먼저 이 자리에 참석하신 모든 분들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오늘 이 자리에 오신 공덕으로 복 많이 받으시길 바랍니다. (웃음)

요즘 우리 한국 문화가 전 세계적으로 정말 많은 영향력을 끼치고 있습니다. 한국에 사는 우리가 미처 모르고 있을 뿐이지, 실제 해외에 나가서 보면 상황이 전혀 다릅니다. 이런 문화적인 영향의 첫 번째 일등 공신은 드라마 같습니다. 외국의 시골 마을에 가도 한국 드라마를 많이 봅니다. 그리고 조금 젊은 층에게는 K-POP이 영향을 주고 있고요. 하지만 저는 노래보다는 드라마가 더 큰 영향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드라마 속에 나오는 음식이나 옷 등을 보고 따라 하면서 유행을 만드는 것 같거든요. 그래서 한국 음식점들도 덩달아 잘 되고 있습니다. 부탄의 산골짜기에 있는 마을에 먼지가 뽀얗게 앉은 손바닥만 한 구멍 가게에도 저조차도 잘 모르는 온갖 한국 술과 라면이 있을 정도입니다. 이처럼 한국 문화가 세계적으로 퍼져 나가고 있습니다.

전 세계가 배우는 한국어, 그런데 우리가 진짜 우리말을 잊고 있습니다

제가 외국에서 사람들을 만나 보면, 아주 나이가 많으신 노인들은 제가 못 알아듣는 현지어로 말하고, 서양식 교육을 받아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들은 ‘땡큐!’라고 하는데, 그들을 제외한 대다수의 아이들과 아주머니들은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라고 한국말을 합니다. 입국 심사대를 통과할 때나 식당에 앉아 있으면 다가와서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합니다. 그만큼 우리말이 많이 전파된 것 같습니다. 지금 한국어를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의 수가 영어 다음으로 전 세계에서 2위 또는 3위쯤 될 정도로 많이 늘었다고 합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아래쪽 바닷가에 있는 미 해군 기지에서는 미국 군인들에게 언어 교육을 하는데, 예전에는 그곳에서 한국말을 배우는 미국 군인이 많지 않았는데 지금은 워낙 많아서 감당을 못한다고 해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이렇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외국의 젊은이들은 한국에 한번 와 보는 것이 꿈이고, 또 한국에서 한번 살아 보는 것이 소원인 상황으로 지금 바뀌어 나가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서, 이번에 ‘케이팝 데몬 헌터스’라는 애니메이션 영화가 유행하면서 호랑이나 갓 같은 것들도 알려지고 있잖아요. 지금까지는 우리가 다른 나라의 노래인 팝송을 따라 배우고 바이올린이나 기타 같은 악기를 배웠지만, 이제는 외국인이 거꾸로 우리 것을 배우려는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너무 위축되어 다른 나라를 따라 가기보다 조금 자부심을 가지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노래도 요즘엔 영어와 한국어를 섞어서 부르잖아요. 그래서 지금 외국에 가 보면 아이들이 노래를 부르는데 ‘괜찮아! 괜찮아!’라고 한국말이 들립니다. 이게 영어인가 무슨 말인가 의아했는데, 노래 가사에 한국말이 들어 있었나 봅니다. 우리말로 노래를 부르더라고요. 이런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가운데, 제가 약간 우려하는 것은 외국인들에게서 가장 많이 듣게 되는 ‘감사합니다.’와 ‘안녕하세요.’라는 말 속에 들어 있는 ‘감사’와 ‘안녕’이 순우리말이 아니라 일본식 말이라는 것입니다. 이 말은 쓰기는 한문으로 쓰고, 단어 자체는 일본식 말이고, 읽기는 한국식으로 읽는, 3국의 합작으로 만들어진 말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에 외국인들이 한국말인 줄 알고 썼다가 나중에 보니 일본말이었다고 밝혀지면 좀 이상하잖아요. 예를 들어, 내가 갓이 좋아서 매일 쓰며 한국 것이라고 자랑을 했는데 알고 보니 중국 것이었다거나, 멋진 옷을 입고 한국 옷이라고 자랑했는데 중국 사람이 보더니 ‘이게 어떻게 한국 옷이냐? 중국 옷이지!’라고 한다면 우리 체면이 좀 말이 아니겠죠? 우리도 어떤 말이 프랑스말인 줄 알고 이야기했는데, 실제로는 독일말일 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우리 문화가 전 세계로 확대되고 전 세계 사람들이 우리말을 배워 나가고 있는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우리말을 좀 더 잘 사용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첫째는 우리 자신을 위해서이고, 그다음은 한국 문화의 세계화를 위해서도 필요합니다. ‘말’이라는 것이 사용하기 편해야 하므로 모든 말을 다 바꿀 수는 없겠지요. 하지만 우리말이 읽고 쓰기가 더 편한 데도 옛날처럼 우리말은 낮고 한문은 높다, 또는 외국말이 우리말보다 더 귀하게 보인다는 이유로 인해 우리가 외국말을 쓰고 있다면 이것은 올바른 자세가 아닌 것 같습니다. 우리가 선진국에 비해 약간 위축되었을 때는 외국의 말이나 문화가 멋있게 보였을지 몰라도 이제 우리 문화, 우리말, 우리글은 세계적으로 굉장히 자랑스러운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특히 우리글은 사용하기 편하고 읽기에도 편하다는 것을 알았으면 합니다. 영어 같은 언어는 그때그때 발음이 다 다르지만, 우리말은 그렇지 않아서 한글을 써보면 훨씬 더 편하다고 합니다.

이런 시대에 최한실 선생님이 우리말 사전을 만드셨습니다. 우리말 사전이 필요하게 된 상황이 지금에서야 일어난 일은 아닙니다. 사실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들었을 때 제일 먼저 불교 경전이 우리말로 번역되었습니다. 유생들의 반대로 인해 제대로 사용되지 않다가 조선말에 와서 주시경 선생을 비롯한 많은 분들에 의해 우리말이 다시 다듬어졌었습니다. 해방된 후에 새로운 우리말 교육이 이루어졌어야 했는데, 그런 기회를 놓쳤던 것 같습니다. 조선 시대 500년 동안에는 중국의 글자를 빌려 쓰다 보니 문자, 즉 한문을 아는 사람은 전체 인구의 10퍼센트 정도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한문은 상류층 지식인 일부를 제외하고 백성들이 사용하는 우리말 전체에는 큰 영향을 주지 못했지요. 그런데 일제 강점기에는 소위 보통 교육을 위한 소학교를 만들어서 전 국민을 대상으로 일본말을 가르치기 시작했어요. 그러다가 해방이 되면서 말은 우리말로 바꿨는데,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감사’, ‘안녕’ 같은 단어는 우리 식으로 읽기만 하고 그냥 일본 단어를 쓰게 된 것입니다.

해방 이후 1950년대 후반부에 국민학교 의무 교육 제도가 시행되면서 거의 모든 아이들이 학교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집에서 쓰던 우리말들이 학교에 와서 배운 새로운 단어로 바뀌게 된 것입니다. 발음은 우리 식으로 하지만 단어를 모두 바꿔서 쓰게 되는 과정을 거치며 지금은 그때 잘못 바뀐 말들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 보편화되었습니다. 지금 초등학교를 안 나온 사람이 거의 없지 않습니까? 만약 초등학교를 나오지 않은 분이 계셔서 그분과 이야기를 한다면 그분은 모두 순우리말을 사용할 것입니다. 하지만 초등학교 과정을 거치면서 우리의 언어가 모두 일본식 단어로 바뀌게 되었고, 저부터도 그것에 익숙해졌습니다. 외국에서 유학 생활을 오래 했던 사람은 조사 빼고 모두 영어 단어를 쓰듯이 우리도 일본식 단어들을 사용하는 데 익숙해져 버린 것입니다.

이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우리말의 맥을 이어 오신 최한실 선생님이 우리말을 다시 살려서 쓰자는 운동의 일환으로 십여 년간 우리말을 다듬어 사전으로 출판하셨습니다. 최한실 선생님이 저에게 ‘스님과 정토회만이라도 우리말을 써 주면 굉장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을 텐데요.’라고 하셨어요. 하지만 저는 우리말 살리기 운동을 하는 사람이 아니고, 마음 공부를 하는 사람이라서 여러분이 언어적으로 어떤 표현을 쓰든 그것을 강제할 수는 없습니다. (웃음)

아무튼 오늘 이 자리가 마련이 되어 저도 기쁘게 생각합니다. 최한실 선생님의 취지에 찬동(贊同)하여 김제동 님이 오늘 사회를 봐 주시기로 했습니다. 두 분의 대화를 잘 들어 주시길 바랍니다. 한 번 말을 들으면 그것을 해석할 필요가 없이 그냥 다가오는 것이 우리말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오신 분들만이라도 우리말을 좀 더 널리 쓰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이어서 최한실 선생과 김제동 님이 무대에 올라 본격적으로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최한실 선생은 아름다운 우리말에 대한 이야기, 왜 우리말을 되살려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고, 김제동 님은 재치 있는 사회로 이야기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두 분의 대화는 우리말을 어떻게 되살릴 것인가를 중심으로 흥미롭게 전개되었습니다. 김제동 님이 오늘날 널리 쓰이는 일본식 조어를 굳이 바꿔야 하느냐는 사회적 시각을 꺼내자, 최한실 선생은 그것은 언어 주체성을 잃게 하는 위험한 관점이라며 한국어가 식민지 시기부터 행정·학문·일상 영역 전반에 걸쳐 일본식 말투에 잠식돼 왔음을 지적했습니다. 그리고 세종대왕과 학자들이 처음으로 우리말을 글자로 붙잡아 두었던 역사적 의미를 상기시키며, 해방 이후에도 외래식 용어의 관성이 지속된 사실을 강조했습니다.

“우리말을 되살려야 하는 까닭은 아주 분명합니다. 나라를 잃고 종살이를 할 때 일본 사람들이 쓰던 행정 말과 학문 말이 우리 삶 전체에 박혀 버렸는데, 해방이 온 뒤에도 그 말이 하나도 바뀌지 않았습니다. 윗사람들, 나라를 다스린다고 앉아 있던 이들이 쓰던 왜(倭)말이 그대로 내려오면서 아람들(백성들)이 쓰던 말은 점점 밀려났습니다. 중학교 의무 교육이 생긴 뒤로는 여느 아람들의 입말이 학교에서 배운 왜말로 바뀌어 버렸고, 신문·방송·책도 온통 그 말로 쓰이면서 우리 겨레 말은 거의 자취를 잃었습니다.

우리말을 되살려야 하는 까닭

세종 임금이 한자살이 속에서도 우리말을 글자로 붙잡아 용비어천가처럼 남겨 놓은 뜻이 얼마나 큰지 모릅니다. 그 뜻이 이어졌다면 오늘날 우리말 살이가 이렇게 뒤틀릴 까닭이 없지요. 우리 아이들이 배우는 말, 나라 살림을 짓는 말, 별이(법·제도)를 만드는 말이 아람의 말이어야 나라가 바로 섭니다.

앞날을 내다보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학문이든 글이든 끝내는 누구라도 알아들을 수 있는 쉬운 우리말로 되어야 우리 겨레의 삶과 엮입니다. 우리말이 죽으면 겨레의 숨도 함께 약해집니다. 그래서 이름 하나, 말 한마디부터라도 우리가 스스로 바꾸지 않으면 아무도 대신해 줄 수 없습니다. 남들이 다 왜말 쓴다고 해서 우리도 따라갈 까닭은 없습니다. 아람 한 사람 한 사람이 임자가 되는 길은 결국 우리말을 되살리는 데서 시작됩니다.”

김제동 님은 최한실 선생이 제안한 가름보, 걸보, 말꽃 같은 새말이 오히려 더 생동감 있고 마음에 와닿는다고 하며 대화에 활기를 불어넣었습니다.

“예를 들면 판사를 '가름보'라고 하면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습니다. 뭐가 맞는지 갈라 주는 분이니까 '가름보님'이라고 부르면 괜히 겁먹을 일도 없고, 그냥 '그렇구나.' 하고 일어날 것 같습니다. 검사는 '걸보'라고 하니까 ‘우리 아들 이번에 걸보 됐어.’ 이러면 뭔가 더 정겹고, 싸우는 것도 덜하지 않겠나 싶습니다. 문학을 '말꽃'이라고 하는 것도 정말 예쁩니다. 말로 피어난 꽃이라고 생각하니 훨씬 마음에 와닿고요. 사실 이런 말이 퍼지면, 지금처럼 어려운 말 앞에서 기죽을 일도 줄어들 것 같습니다. 못 알아듣는 외래말이 높아 보이게 만든 게 문제였으니까요. 가름보, 걸보, 말꽃 같은 말은 들리는 순간 바로 그림이 그려지고, 살아 있는 느낌이 납니다. 저는 이런 새말이 아주 힙하다고 생각합니다.”

익숙한 외래식 표현을 고쳐 쓰는 과정에서 청중 모두가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외국식 언어에 길들여졌는지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최한실 선생은 이름 짓기와 일상 표현 같은 작은 실천이 결국 백성 한 사람 한 사람이 말의 주인이 되는 길이라고 강조하며, 우리말 살리기는 미래 세대를 위한 방향이기도 하는 이야기로 대화를 마무리했습니다.

이어서 무대 아래에서 최한실 선생이 펴낸 『푸른배달말집』의 책 사인회를 진행했습니다. 최한실 선생은 한 분 한 분의 이름을 직접 책에 써주며 다시 한번 우리말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져줄 것을 당부했습니다.

스님은 열정적으로 대담을 나누어 준 최한실 선생과 김제동 님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 후 지하 대강당을 나와 곧바로 두북수련원으로 향했습니다.

밤 9시 30분에 서울을 출발하여 고속도로 위를 3시간 30분 동안 달렸습니다. 새벽 1시에 두북수련원에 도착한 후 하루 일과를 마무리했습니다.

내일은 두북수련원에서 3일 동안의 김장을 시작하는 날입니다. 새벽에는 김치 속 채썰기 작업을 하고, 오전에는 밭에서 배추 1000포기를 수확하고, 오후에는 배추를 자르고 소금에 절인 후 석박지용 무 자르는 일까지 한 후, 저녁에는 금요 즉문즉설 생방송을 할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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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원향

생생한 현장 글로 읽으니 더 감동입니다. 거듭나기 위해 넘어져도 일어나는 연습할 수 있어 고마운 마음입니다. 말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는 말씀도 새깁니다. 모두 고맙습니다. ((()))

2025-11-23 06:29:42

오정숙

스님 명쾌하신 말씀 고맙습니다.

2025-11-23 06: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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