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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정토사회문화회관 지하 대강당에서 JTS 설립 32주년 기념 세미나가 열리는 날입니다.

스님은 새벽 수행과 명상을 마친 후 평화재단으로 향했습니다. 사무실에서 업무를 보다가 오전 10시부터 외교 안보 전문가들과 미팅을 했습니다.

한반도 평화를 위한 해법으로 북미 관계를 어떻게 풀어 나갈지, 그리고 경주에서 열리는 APEC 정상 회담 기간 중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깜짝 만남이 성사될 수 있을지, 이후 한국 정부가 외교적으로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등 심도 깊은 논의가 이어졌습니다. 특히 내년에는 함께 미국 워싱턴 D.C.를 방문하여 미국 싱크탱크 관계자들과 직접 대화하는 자리를 마련하기로 하고 미팅을 마쳤습니다.
점심 식사를 한 후 오후 1시에는 JTS 32주년 기념 세미나에 참석했습니다. JTS에서는 그동안 인도와 필리핀에 있는 JTS 사업장에 파견되어 활동했던 많은 봉사자들을 세미나에 초대했습니다. 봉사자들은 2층 쉼터에서 반갑게 인사를 나눈 후 함께 세미나가 열리는 지하 대강당으로 이동했습니다.


오후 1시 정각, 사회자가 세미나의 개회를 알리며 행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올해로 창립 32주년을 맞은 JTS는 이를 기념하여 ‘국제 개발 협력의 새로운 패러다임, 교육을 통한 지속 가능한 발전’이라는 주제로 세미나를 열었습니다.

이번 자리는 JTS가 걸어온 지난 32년의 발자취를 되돌아보고, 앞으로 국제 개발 협력 사업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함께 모색하기 위해 마련되었습니다. 행사의 첫 순서로 지난 32년 간 JTS가 활동해 온 역사를 영상에 담아 함께 시청했습니다.

이어서 김기진 한국JTS 공동 대표가 인사말을 한 후 박영숙 JTS 사무국장이 참석한 내빈들을 소개했습니다. 국제 개발 협력 민간 협의회(KCOC), 유엔 난민 기구, 더프라미스, 해피 올빙즈, 부스러기 사랑 나눔회, 콤패션, 월드쉐어, 불교 환경 연대, 한국 불교 문화 사업단, 남북 평화 재단, 동서 문화 개발 교류회, 휴먼 아시아 등 여러 단체에서 바쁘신 가운데 많은 분들이 참석해 주었습니다.


내빈 소개를 마치고 큰 박수와 함께 본격적으로 세미나를 시작했습니다. 먼저 1부는 JTS 32년 역사의 성과를 함께 돌아보는 시간입니다. JTS 이사장인 법륜스님이 기조 발제를 했습니다. JTS의 설립 이념과 정신, 활동에 대해 발제해 주었습니다.

“그동안 언론이나 다른 단체에서 JTS가 실험 삼아 해 온 여러 활동들을 공유해 달라는 요청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항상 ‘우리는 아직 실험 중이고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른다. 또 뭔가 뚜렷하게 공개할 만한 것이 없다.’라고 말해 왔습니다. 그런데 정토회가 30주년을 맞으면서 그동안에 실험해 온 JTS의 구호 활동이나 에코붓다의 환경 활동 등을 다른 시민 단체나 사회에 공유해야 한다는 의견이 내부에서 커졌습니다. 우리의 경험을 사회와 나누어서 유용한 것은 다른 단체들이 벤치마킹할 수 있도록 해서 더 좋은 방향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원래는 정토회 설립 30주년에 JTS 30년 활동을 공개하려고 했었습니다만, 그때는 준비를 못 해서 기념식만 하고 말았어요. 그 후 다른 건 몰라도 JTS 사업은 사회와 꼭 공유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아서 32주년이 되는 올해 기념 세미나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 자리는 JTS의 30년 활동을 우리 사회와 공유하는 자리로 마련했다고 보시면 됩니다.

제가 좀 옛날 사람이라서 활동가들이 사진전을 열자고 할 때, ‘어려운 사람들에게 도와주려고 모은 돈을 사진 붙이는 데 쓰면 어떻게 하느냐?’라고 하면서 반대를 했습니다. 사진전을 하려면 임시로 벽을 세워야 한다고 했을 때도 그냥 있는 벽에 붙이라고 했고, 30년 사를 책으로 출간하겠다고 했을 때는 ‘책을 낸다고 기아 문제가 해결이 되느냐?’라고 말하면서 반대를 했습니다. 그래서 30주년 기념식을 제대로 열지 못했는데, 이번에는 JTS 활동가들이 제 말을 안 들었습니다. 활동가들이 마음대로 일을 벌여서 오늘 기념 세미나와 사진전이 열렸습니다. 제가 말렸는데도 진행하는 것을 보고 ‘이제 내가 뒷방으로 물러나야 하나?’ 이런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런 행사를 통해 JTS 활동이 세상에 알려지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제가 걱정하는 것은 JTS가 원래부터 지향하던 검소함이나 소박함 같은 가치가 자칫 성과 중심적으로 흘러가지 않을까 하는 점입니다. 저는 JTS의 성공을 큰 건물로 평가한다거나, 기부금을 얼마나 모았는지로 평가한다거나, 학교를 얼마나 많이 지었느냐로 평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에 알리면 안 된다는 뜻이 아니고, 유료로 홍보를 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입니다. 그래서 JTS 활동을 알릴 때 유료 홍보는 못 하게 하고 있습니다. 구호 현장에 갈 때 기자나 다른 외부 인사가 동행을 하더라도 그들의 이동 경비와 체류 비용을 JTS 기금으로 사용하면 안 됩니다. 그들이 자발적으로 와서 취재해 가는 것은 괜찮지만, JTS 활동을 홍보하는 데 JTS 기금을 쓰는 것은 안 된다는 거예요. 많은 사람들이 JTS의 활동을 세상에 알려서 도움이 되도록 해야 한다고 제안을 했습니다. ‘꼭 스님만 옳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하는 얘기도 해주셨고요. 그럴 때마다 저는 ‘그러면 당신이 현장에 와서 세상에 널리 알리시오.’라고 얘기하고는 말았습니다.

저희가 JTS 활동을 시작한 계기는 부처님의 말씀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열반하시던 날을 기록한 경전을 보면 ‘부처님이 계시지 않으면 우리는 이제 부처님께 올리는 공양의 공덕을 더 이상 짓지 못하지 않습니까?’ 이런 질문이 나옵니다. 왜 이런 걱정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아난다가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그러자 부처님께 올리는 공양의 공덕과 똑같은 것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첫째, 배고픈 사람에게 밥을 주어 배부르게 하는 것입니다. 둘째, 아픈 사람에게 약을 주어 낫게 하는 것입니다. 셋째, 가난한 사람을 돕고 외로운 사람을 위로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이와 비슷하게 ‘가장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내게 한 것이니라.’ 하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현대의 불자들은 돌이나 쇠로 만든 불상 앞에 공양물을 바치면서도 길가의 배고픈 사람은 외면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돈이 생기면 큰 절을 짓거나 큰 불상을 만드는 게 복 짓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경전에는 그렇게 쓰여 있지 않아요.
저도 인도에 처음 갔을 때, 가난한 여인이 아기가 배고프다고 분유를 사 달라는데 못 사줬어요. 잘못된 저의 이 행위를 반성하는 의미에서 인도JTS 사업을 시작하게 된 겁니다. 타인을 돕는다라기 보다 내가 직접 굶어 보니 음식이 귀한 걸 알게 되어서 다른 사람과 나누는 것입니다. 굶는 이는 굶지 않는 이가 도와야 하고, 글을 모르는 이는 배운 이가 가르쳐야 하는 것입니다. 아픈 사람은 건강한 사람이 돌봐야 하고, 어린이는 어른이 돌봐야 하고, 노인은 젊은이가 돌봐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부처님이나 예수님을 떠나서 사람이라면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먹는 것 조금 줄이고, 입는 것 조금 줄이고, 쓰는 것 조금 줄이면, 그 돈으로 가난한 나라 사람들 10명을 배불리 먹일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성경에 나오는 ‘오병이어의 기적’을 단순히 기적으로만 보지 않습니다. 대한민국에서 한 끼 먹는 걸 아껴서 가난한 곳에 보내면 그곳에서는 10명이 먹을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비싼 음식 한 끼 사 먹는 걸 아껴서 보내면 그곳에서는 100명의 음식이 됩니다. 저는 이것이야말로 오병이어의 기적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JTS는 돈으로 무엇을 해보겠다고 생각하지 않고 우리가 할 수 있는 만큼 한다는 관점을 갖고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제가 인도에서 학교를 시작할 때는 돈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곳엔 학교에 가지 않고 구걸하는 아이들이 수백 명이나 있었어요. 그래서 나무 밑에서 아이들을 모아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그다음에는 움막을 쳐서 교실로 사용했고, 그다음에는 돈이 생기는 대로 벽돌 건물을 지었어요. 주민들에게도 뭔가 참여하라고 얘기했습니다. 너희 아이들을 가르치는데 부모로서 뭐라도 좀 역할을 하라고요. 자기들은 아무것도 없지만 못 쓰는 땅은 좀 있다고 했어요. 그래서 학교 터는 주민들의 기부를 받았고, 건물을 지을 때도 주민들이 와서 함께 지었습니다. 벽에는 누가 얼마를 기부했는지가 아니라 누가 와서 며칠씩 일했는지를 적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그때그때 할 수 있는 만큼만 건물을 지었고, 할 수 있는 만큼만 일해 왔습니다.

일이 어렵다고 느껴지는 이유는 일이 어려운 게 아니라 욕심을 부려서 그런 겁니다. 돈은 없는데 큰 건물을 짓겠다고 하니 어렵지, 돈이 없어서 아이들을 가르치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나무 밑에서 해도 되고, 움막치고 해도 됩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아요. 그러나 자꾸 크고 많이 하려고 하고, 그걸로 자랑하려고 하니까 자꾸 어렵게 느껴지는 겁니다. 그래서 저는 늘 일을 하면서 ‘이 일은 그들을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명심하면서 합니다. 나에게 10만 원이 있는데 그걸로 나 혼자 맛있는 것을 사 먹는 것보다 배고픈 사람들 10명이 함께 밥 먹게 하면 훨씬 기분이 좋습니다. 혼자 맛있는 거 먹어 봐야 살찌는 것밖에 더 되겠어요? 저는 이런 관점을 갖고 지난 30년 동안 활동을 해왔을 뿐입니다.
저는 누구에게 칭찬을 받거나 하늘에서 복을 내려줄 것이라고 기대하고 이런 활동을 하는 게 아니라 ‘이렇게 사는 게 내 삶에 더 의미가 있다.’ 하는 관점을 갖고 일합니다. 그래서 절대로 희생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내가 더 잘 살기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 이 일을 하는 겁니다. 그저 ‘하는 만큼 해 보자!’ 하는 마음으로 합니다.
그래서 남에게 도와 달라는 말도 하지 않습니다. 나에게 좋은 일을 하는 것인데 내가 하면 되지, 남에게 도와 달라고 하면 구걸이 됩니다. 그래서 내 모습을 다른 사람이 보고 ‘좋은 일 하셨네요. 저도 좀 동참하겠습니다.’ 이렇게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JTS에서는 회원 교육 차원에서 거리 모금 캠페인을 가끔 하고 있지만, 저는 우리가 먼저 모범을 보이고 사람들이 그걸 보고 감동해서 보시하는 관계를 지향합니다. 그러면 보시하는 사람에게도 복이 되고, 우리의 활동도 복된 일이 될 수가 있습니다.

이렇게 다른 사람을 위해서 희생한다는 마음이 없어야 합니다. 나에겐 내 삶이 가장 소중한데 내가 남을 위해서 희생하게 되면 내 인생이 얼마나 불쌍해집니까? 나눔은 희생이 아닙니다. 자신을 잘 가꾸는 일이죠.
남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은 자신이 쓸모가 있다는 것입니다. 빗자루도 쓸모가 있으면 잘 보관해 두지만, 쓸모가 없어지면 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내가 세상에 쓸모가 있다는 것은 내가 유용하다는 뜻입니다. 자원봉사는 자기를 사랑하는 방법이고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는 삶의 방식 중 하나입니다. 그래서 정토회는 자원봉사자들에 의해서만 운영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비효율적이죠. 그러나 욕심 내지 않고 할 수 있는 만큼만 합니다.
그리고 보시 받은 돈은 가능하면 필요한 사람에게 가도록 한다는 원칙을 갖고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모금액의 90퍼센트가 어려운 사람들에게 그대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학교를 지을 때도 ‘선생님을 어디서 구하느냐?’라고 다들 걱정하길래 제가 ‘걱정할 거 하나도 없다.’라고 했습니다. 동네 사람들을 불러서 ‘초등학교 졸업한 사람 손들어 보세요.’ 했더니 청년 두 명이 손을 들었어요. 그래서 그들에게 선생님을 시키고 학교를 시작했어요. 길을 가다가 대학생을 만났는데 학교가 생겼다는 소식을 듣고 감동을 했다면서 봉사를 하겠다고 나섰습니다. 다른 주에 있는 청년들도 몇 명이 와서 봉사하면서 학교가 점점 모양새를 갖추었어요. ‘그 학교에 가면 점심을 준다.’ 하는 소문을 듣고 더 많은 아이들이 오기 시작했어요. 점심을 주는 바람에 수십 명의 학생이 몰려와서 6학년이 5명, 5학년이 7명, 이런 식으로 늘어났습니다. 원래 1학년과 2학년 밖에 없었는데도 벌써 1회 졸업생이 6명 정도가 되었어요. 그중 남자 셋은 중학교에 가고, 여자 셋은 못 갔어요. 여자 셋이 저를 찾아와서 자기들도 중학교에 가고 싶다며 중학교를 새로 만들어 달라고 했습니다. 처음에는 저도 안 된다고 했어요. ‘지금 초등학교도 제대로 못 만들어서 헐떡거리는데 무슨 중학교냐? 나도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중학교 공부를 했으니, 너희들도 그냥 집에서 공부해라!’ 이렇게 말하고 집으로 돌려보냈습니다.
그다음 해에 또 여학생 네 명이 졸업했는데 이번에는 일곱 명이 울면서 찾아왔어요. 그래서 제가 ‘너희들 어린아이들을 가르치고 돌볼 수 있니?’ 하고 물었습니다. 돌볼 수 있다고 하길래 ‘오전에는 유치원 선생님을 하고, 오후에는 중학교 과정을 공부하면 어떠냐?’ 하고 제안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중학생은 유치원 선생님을 하고, 고등학생은 초등학교 저학년을 가르치고, 대학생은 초등학교 고학년과 중학생을 가르치게 되었어요. 이렇게 학생이 학생을 가르치는 시스템으로 학교를 운영했습니다.
이런 식으로 처음 시작을 해서, 아프가니스탄도 상황이 어려워져서 돕게 되고, 북한도 어렵다고 해서 돕게 되면서 활동이 확대되었습니다. 필리핀 민다나오에서는 지난 20년 동안 80여 개 학교를 지었습니다.

실제로 현장에서 일을 한 사람들은 수많은 자원봉사자들인데, 이름은 다 법륜스님으로 나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조금 미안할 때도 있지만, 제 역할이 얼굴 역할이니까 그냥 기꺼이 하고 있습니다. 인도 수자타 아카데미가 여기까지 오는 동안 1년 이상 자원봉사 활동을 한 사람들이 150명이 넘습니다. 필리핀 민다나오에서 자원봉사 활동을 한 사람들도 수십 명이 되고요. 마치 군대 다녀오듯이 1년씩, 2년씩, 3년씩 봉사하는 방식으로 많은 젊은이들이 다녀갔어요. 그것이 축적되어서 이런 일이 이루어졌어요.
첫째, JTS는 무리해서 일을 벌이지 않습니다. 둘째, 주민들을 잘 살게 해주는 게 아니라 인간답게 생존하는 데까지만 돕습니다. 배고픈 사람은 먹어야 하고, 아픈 사람은 치료받아야 하고, 아이들은 제때 배워야 합니다. 여기서 제때 배워야 한다는 건 초등학교는 졸업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중학교는 잘 안 지어 줍니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서 요즘 필리핀에서는 중학교도 몇 개를 짓고, 고등학교도 지은 적이 있어요. 캄보디아는 대학교 기숙사까지 지어준 적이 있지만, JTS의 원칙에 딱 맞는 것은 아니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회 전체가 변하면서 현재 JTS의 사업이 구호에서 개발로 넘어가고 있는 중입니다. 부탄에서는 ‘지속 가능한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마을 개발을 시작했습니다. 집을 지어 주고, 내부 수리도 해주고, 도로도 닦아 주고, 농수로도 놓고, 밭에 울타리를 치는 일도 하고, 상수도 설치하는 일도 하는데 대신 조건은 다 자기가 직접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재료는 JTS에서 다 제공해 주되 일은 스스로 해야 합니다. ‘도와주세요!’라고 하면 ‘No.’라고 대답합니다. 그러나 ‘제가 하겠습니다.’ 하고 말하면 ‘OK’라고 대답합니다. 스스로 많은 일을 하면 그만큼 많은 재료를 지원해 주고, 스스로 일을 적게 하면 재료도 적게 지원하고, 아예 일을 안 하면 지원도 안 해줍니다. 저는 수행자이기 때문에 인간의 삶을 물질적으로 평가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결국은 자기가 스스로 해야 성취감이 생깁니다. 그래야 자기가 주인이 됩니다.
이런 관점에서 일을 하다 보니까 현지 주민들로부터 때로는 욕을 얻어먹어요. ‘도와주려면 제대로 도와주지, 뭐 하는 거냐?’ 이런 말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NGO도 이렇게 하는 경우가 별로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는 ‘그래? 하기 싫으면 말아라.’ 이렇게 말하죠. 저는 스님이라서 유리한 게 있어요. 동네 주민들에게 이렇게 말할 수가 있거든요.

‘저는 기업가가 아니고 출가 수행자입니다. 당신이 집을 짓는데 시멘트가 없다니까 도와주겠다는 거예요. 당신이 결혼해서 살 집은 당신이 지어야지 왜 스님한테 도와 달라고 해요? 오히려 당신이 스님의 집을 지어 주어야죠.’
그러면 옆에 있는 활동가들이 가슴이 조마조마하다고 해요. 스님이 저렇게 말을 함부로 하니까 처음에는 약간 오해도 생기지만 나중에는 대부분 ‘맞다. 우리 일은 우리가 해야지!’ 하고 이해를 하게 됩니다.
만약 부탄 정부가 하는 일이라면 주민들이 다 정부에 해 달라고 하는데, 스님이 하니까 사람들이 ‘형제도 안 도와주는데 스님이 우리를 도와주지 않느냐. 그러니 우리도 나서서 일을 해야 한다.’ 이렇게 말한대요. 이런 바람이 불어서 마을마다 열심히 공동 울력에 나오고 있습니다. 부탄 정부도 처음에는 고개를 가로저으면서 ‘스님, 그런 식으로 하면 주민들이 참여하지 않습니다.’ 이러더니 나중에는 ‘정말로 되네요.’ 하면서 놀라워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승려라는 제 입지가 일하는 데 유리해졌어요. (웃음)

가능하면 동네에서 나오는 건축 재료를 쓰고, 동네에서 보유하고 있는 기술을 쓰라고 합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스님, JTS가 집을 지어 줄 때는 집 모양이 깨끗해야지, 이렇게 깔끔하지 못하면 남들이 욕합니다.’라고 해요. 그러면 제가 ‘기술자 데려다가 집 지어 주면 고장이 났을 때 누가 고칩니까? 동네 기술로 지어야 고장 나면 동네 사람이 고치고, 동네에서 생산되는 재료로 집을 지어야 고장이 나면 바로 대체가 가능하지!’ 하고 대답합니다.
플라스틱이나 철골로 지으면 고장이 날 때마다 재료를 새로 사 줘야 하잖아요. 환경적인 면에서도 좋지 않습니다. 마을 주민들의 자립 능력에도 지장이 생기고요. 자재를 운반하려면 연료비도 많이 듭니다. 그래서 가능하면 그들이 사는 대로 두고, 그저 ‘조금만 도와준다’ 하는 정도로 생각합니다. 부족해 보여도 조금 기다리면 큰 문제가 없습니다.
그래서 JTS는 KOICA(한국 국제협력단)의 돈을 받지 않습니다. KOICA의 지원금을 받으면 1년 안에 사업을 다 해야 해요. 그런데 주민들이 일을 안 해 버리면 1년 안에 집을 지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KOICA에서 문책이 들어옵니다. 연말이 되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노동자를 데려다가 급히 집을 지어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돈을 반환해야 하니까요. 그런 일을 몇 번 겪어 보니까 이런 방식은 JTS의 원칙에 어긋난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외부의 지원금을 받지 않고 후원자들이 낸 돈으로만 사업을 합니다. 마을 주민들이 일을 하지 않으면 ‘3년 걸려도 괜찮습니다. 일을 할 때까지 기다리겠습니다.’ 이런 입장을 갖고 있습니다. JTS가 돈이 많아서 지원금을 받지 않는 게 아닙니다. 외부에서 지원금을 받으면 JTS의 원칙을 지키기가 그만큼 어렵기 때문입니다.

JTS 활동가들은 모두 수행자입니다. 수행자들이 모여서 물질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을 조금 도와줄 뿐입니다. 그래서 너무 욕심 내서 모든 걸 다 도와주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나도 초등학교는 다녔으니까 초등학교도 못 다닌 사람은 돕자!’, ‘나도 옷을 입고 있으니까 옷이 없어서 헐벗은 사람은 돕자!’, ‘내가 건강하니까 몸이 아픈 사람은 돕자!’, ‘나는 집이 있으니까 집이 없는 사람은 돕자!’ 이런 정도로 가볍게 생각하고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일을 하다 보면 자꾸 욕심을 내게 되죠. 그래서 효율을 굉장히 중요시하게 됩니다. 일이 잘 안 되면 그냥 기술자와 노동자를 데려다가 빨리 지어 버리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많은 분들이 효과적으로 일을 안 한다고 저한테 불만을 토로했습니다. 그런데 다 자기 생긴 대로 살아야 되지 않겠어요? 우리는 수행자이기 때문에 효율만 따져서는 안 됩니다.
앞으로 세월이 흐르면 효과적인 방식이 점점 도입될 수밖에 없을 겁니다. 하지만 너무 크게 일을 확대하려는 욕심을 내지 말고, 누구나 다 참여할 수 있고, 작은 돈도 효과적으로 쓰는 방식으로 JTS가 앞으로도 활동해 나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렇게 할 때 비록 작은 규모지만 우리 사회에 좀 유의미한 단체가 되지 않겠나 이렇게 생각합니다. 나머지는 이어지는 발표를 들으면서 좋은 의견을 많이 내어 주시기 바랍니다.”

스님의 기조 발제를 통해 JTS의 설립 이념과 정신을 되새겨 볼 수 있었습니다.

이어서 JTS가 현장에서 이룬 구체적인 사업 성과들을 살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인도, 필리핀, 북한, 긴급 구호 등 네 가지 주제로 JTS 활동가들이 발표를 했습니다.
먼저 장도연 인도JTS 사무국장이 인도 수자타 아카데미가 걸어온 길을 이야기하며 '문맹 퇴치를 통한 자립하는 삶'에 대해 발표했습니다.

“불가촉천민이 대부분인 이 마을에서 글을 읽는다는 것은 자신의 존재를 되찾는 일입니다. 이제 아이들이 이름을 쓸 줄 알고, 여학생들이 공부를 계속하겠다고 말합니다. 문맹 퇴치는 단지 글을 가르치는 일이 아니라 인간의 존엄을 회복하는 과정이었습니다. 중학생이 되면 스스로 교사가 되어 유치원생을 가르치고, 졸업생은 다시 마을로 돌아와 후배를 가르칩니다. 배우는 사람이 가르치는 사람이 되고, 그 아이들이 또 새로운 교사가 되는 순환 구조가 만들어졌습니다. 이제 한국인 활동가가 아닌 인도인 활동가들이 학교를 운영하고 병원을 관리하며, 긴급 구호 현장에도 자원봉사자로 나섭니다. 도움을 받던 아이들이 이제는 누군가를 돕는 리더가 되었습니다. 버려진 땅에 심은 나무 한 그루가 이제는 스스로 물을 빨아올리고 있습니다.”

이어서 가난한 환경 속에서 수자타 아카데미의 교감 선생님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이야기한 아자이 꾸마르 님의 인터뷰 영상을 함께 보았습니다.

“저는 어린 시절, ‘방갈비가’라는 작은 마을의 나무 아래에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어느 날 법륜스님이 학교 수업에 참관하러 오시자 우리는 모두 기뻐서 ‘오~오~’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스님은 ‘학교에 매일 나오는 아이가 누구냐?’라고 물으셨고, 선생님께서 저를 불러 세우셨습니다. 저는 사람들에게 박수를 받았고, 저희에게 초콜릿과 수건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집에 돌아갔더니 아버지가 너무 기뻐하시면서 다음날 시장에 가서 새 셔츠와 신발을 사다 주셨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더 정성스럽게 학교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수자타 아카데미에서는 신발, 공책, 펜, 음식, 학습 자료를 모두 무료로 제공해 주었습니다. 중학교에 들어가자 스님이 봉사의 의미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스님은 남에게 도움을 주어야 나도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저는 한국인 활동가들을 보면서 봉사의 의미를 배웠습니다. 수자타 아카데미의 교사가 되어 봉사를 하면서 제 삶은 크게 변했습니다. 아버지가 화를 많이 내셨고, 저도 화를 많이 내었지만, 봉사하는 삶을 통해 화가 차츰 줄어들었습니다. 제가 낳은 아들과 딸도 수자타 아카데미를 다니며 성장해 가고 있습니다. 만약 JTS가 없었다면 저의 삶에는 이렇게 많은 변화가 없었을 것입니다. 둥게스와리의 변화는 모두 JTS와 법륜스님 덕분입니다.”
아자이 꾸마르 님의 사례는 교육이 삶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지를 잘 보여 주었습니다.

다음은 필리핀JTS 노옥재 사무국장이 '문맹 퇴치를 통한 지역 공동체 발전과 평화 실현'에 대해 발표했습니다. 분쟁과 빈곤의 땅 민다나오에서 교육이 평화를 만든 과정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민다나오에서 학교 한 채를 세운다는 것은 곧 사람의 삶을 다시 세우는 일이었습니다. 우리가 들어간 마을들에는 할아버지, 아버지 세대 누구도 학교를 다닌 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주민들이 가장 먼저 한 말은 우리 아이들은 제발 우리처럼 살지 않게 학교를 지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오솔길밖에 없는 산길로 자재를 나르고, 비가 오면 길이 끊기고, 때로는 반군과 정부군의 검문소 11개를 지나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주민들은 자기 땅을 내놓고 직접 길을 닦고 나무와 시멘트를 날랐습니다. 총을 들고 서로 겨누던 사람들이 총을 벽에 걸어 두고 함께 학교를 지었습니다. 아이들의 학교를 지키겠다고 반군이 직접 신변 보장을 약속한 적도 있습니다. 학교를 짓고 나니 사람들은 더 이상 서로를 두려워하지 않고, 시장에 나가고, 다른 종교를 가진 이웃과 말을 섞고, 마을 회의를 열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합니다. 우리는 학교를 지은 줄 알았는데, 사실은 그 마을에 처음으로 평화를 세운 것이었습니다.”

필리핀JTS의 활동은 교육이 총보다 강한 힘이라는 사실을 조용히 증명하고 있었습니다.
이어서 지역 주민들의 참여와 변화를 생생하게 이야기한 안와르 몬타왈 님(키다마 마을 리더)과 노마다 사말 님(다물록군 땅꿀란 바랑가이 의원)의 인터뷰 영상을 함께 보았습니다.

“2005년 전까지는 우리 지역에 평화가 없었어요. 무슬림, 루마드, 크리스천 사이에 늘 갈등이 있었죠. 부족끼리 합의가 없다 보니 서로 협력도 전혀 없었습니다. 그러나 학교가 생기면서 부족 간 관계가 서서히 나아졌습니다. 아이들이 한 학교에서 같이 공부하면서 자연스럽게 친구가 되었거든요. 학교가 서로를 이어 주는 다리가 되었던 거죠. JTS의 지원으로 사람들의 기본 욕구가 충족이 되니까 서로에게 화내는 일도 줄었습니다. 교육이 우리에게 가져온 가장 큰 변화는 평화와 질서예요. 어른들도 서로 ‘우리는 교육 받은 사람’이라는 마음가짐이 생겨서 싸움을 피합니다.” - 안와르 몬타왈 님(키다마 마을 리더)

“정부의 존재는 유명무실했고, 우리는 수시로 집에서 대피해야 했습니다. 아버지는 무슬림 지도자였습니다. 정부에 끊임없이 쫓기고 있었기에 안정적으로 거주할 곳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아이들만큼은 JTS가 지어준 학교에서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더 이상 무시 당하지 않으며 다른 분야에 진출할 수 있었습니다. 예전에는 아이들이 총을 들고 다녔지만, 지금은 총 대신 볼펜을 듭니다. JTS가 없었다면 우리는 이런 변화를 경험하지 못했을 겁니다.” - 노마다 사말 님(다물록군 땅꿀란 바랑가이 의원)

다음은 JTS 북한 사업 초기 담당자로 활동했던 구미경 님이 북한 사업의 성과에 대해 발표했습니다. 1990년대 북한 대기근 당시부터 시작된 인도적 지원의 과정을 돌아보며, 식량 뿐 아니라 ‘신뢰’를 쌓아온 세월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1990년대 중반 북한에서는 굶어 죽는 사람들이 수백만 명으로 추정됐고, 아이들이 꽃제비가 되어 국경을 떠돌았습니다.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사람이 굶어 죽는 것은 막아야 한다고 외치며 거리에서 모금 캠페인을 시작했습니다. 라선시 탁아소와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 1만 1천 명에게 영양식을 매달 1인당 3kg씩 지원했더니, 6개월 만에 아이들 체중이 15퍼센트 늘고 출석률이 30퍼센트 올랐습니다. 의료 현장은 마취도 없이 수술할 만큼 열악했기 때문에 산소 발생기와 의약품, 장비를 직접 들여 보냈습니다. 농업 지원을 통해 시범 농장의 생산량이 많게는 9배까지 늘어났고, 늘어난 곡식은 다시 탁아소 아이들에게 돌아갔습니다. 도움을 받던 사람들이 다른 약자를 도와주는 구조가 만들어졌습니다. 2019년 옥수수 1만 톤 보내기 운동을 벌였는데 결과적으로 2만 톤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인도 수자타 아카데미 아이들이 1루피, 2루피씩 모아 보내준 돈도 북녘 아이들의 한 끼가 됐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지켜야 할 인도주의라고 생각합니다.”

짧은 발표였지만 '북한 인도적 지원 활동 30년'의 역사를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남북 갈등 속에서도 꾸준히 이어진 북한 인도주의 지원 활동의 숭고한 정신에 참석한 청중 모두가 큰 박수를 보냈습니다.

다음은 아프가니스탄JTS 소장을 역임하였고 현재는 JTS 이사로 있는 이덕아 님이 ‘잿더미 속에서 싹튼 희망’을 주제로 긴급 구호 사업의 성과에 대해 발표했습니다.

“파키스탄 대홍수 당시 국토의 3분의 1이 잠기고 3천만 명이 피해를 입었습니다. 우리는 가장 소외된 지역부터 찾아가 203채의 집을 짓고, 2,210기의 핸드 펌프를 설치해 사람들이 다시 물을 마시고 삶을 이어 가게 했습니다. 튀르키예와 시리아 대지진 때는 대부분의 단체들이 튀르키예에 집중했지만, 우리는 지원이 닿지 않았던 시리아 북서부로 갔습니다. 그곳에 무너진 학교를 복구해 4천 명의 아이들이 다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학교는 아이들에게 단순한 건물이 아니라 ‘희망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방글라데시 로힝야 난민촌에서는 여성들이 숲에서 땔감을 구하다 범죄에 노출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가스 스토브 20만 개와 비누 630만 개를 보급했습니다. 불안했던 난민촌이 이제는 초록빛으로 변했고, 사람들이 다시 웃게 되었습니다. JTS의 구호는 단순한 물품 전달이 아닙니다. 무너진 삶을 다시 세우는 시작이며, 위기 속에서도 함께 살아갈 힘과 희망을 전하는 일입니다.”

절망 속에서 희망을 길어 올린 뜨거운 현장 이야기였습니다.

1부 프로그램을 마친 후 발표자와 내빈들 모두가 무대에 올라와 기념사진을 촬영했습니다. 참석한 청중은 휴식 시간을 가지며 로비에서 진행되고 있는 JTS 사진전을 관람했습니다.

로비에는 JTS 봉사자들이 직접 정성 들여 만든 컵케이크와 차가 차려져 있었습니다. 다과를 나누고 사진을 보며 그동안 JTS가 펼쳐 온 국내외 구호 활동의 현장을 되새겨 보았습니다. 사진 한 장 한 장마다 담긴 미소와 눈빛에서 함께 만들어 간다는 JTS의 정신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스님은 참석한 내빈들, 발표자들과 차담을 나눈 후 함께 대강당으로 이동했습니다.


2부를 시작하며 JTS인도 초기 활동가로 수자타 아카데미 교가를 만든 봉사자인 이수진 님이 몸풀기 시간을 진행해 주었습니다. 수자타 아카데미 교가를 함께 부르고 ‘아름다운 세상’ 노래에 맞춰 4박자 손동작을 배우는 동안 다시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되었습니다.



2부에서는 ‘문명 전환을 위한 국제 개발 협력 교육 사업의 비전과 전망’을 주제로 네 명의 발표자가 각자의 현장에서 바라본 교육의 역할과 방향을 제시했습니다.
먼저 서울대학교 유성상 교수가 겸손한 인사말로 발표를 시작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오기 전까지만 해도 전할 이야기를 어느 정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법륜스님의 기조 발제와 1부 순서를 들으면서, 제가 어떤 이야기를 어떻게 이어 가야 할지 순간 막막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저는 평생 교육을 연구해 온 학자로서, 땀으로 세상을 바꾸고 마음으로 실천하는 분들 앞에서 제 이야기가 어떻게 닿을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오늘 이 자리에 서야 할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제 말 중 한 구절이라도 마음에 와닿는 부분이 있다면, 그 자체로 감사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유 교수님은 교육을 명사가 아닌 동사로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교육이 지식 전달을 넘어 사회 변화를 이끄는 실천이자 공동체 성장의 공공재라고 설명했습니다.
필리핀JTS 노옥재 사무국장은 교육이 인간의 존엄성과 자립을 회복하는 과정임을 강조하며, 주민 참여형 순환 교육 모델을 통해 공동체의 변화를 이끌어낸 인도JTS와 필리핀JTS의 구체적 사례를 공유했습니다.

유네스코 한국 위원회 이선경 실장은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교육의 중요성을 말하며, 브리지(Bridge) 프로그램을 통한 여성 문해 교육과 직업 기술 훈련이 삶의 변화를 가져왔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사단법인 아디 공선주 이사는 분쟁과 재난 속에서도 교육이 치유와 회복의 힘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며, 로힝야 여성 난민들이 교육을 통해 리더로 성장한 사례를 소개했습니다.

네 분의 발표자는 각기 다른 현장에서의 경험을 통해 교육이 단순한 배움의 과정이 아니라 인간의 존엄을 회복하고, 공동체의 변화를 이끄는 근본적 힘임을 강조했습니다.

이어서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습니다. 먼저 유성상 교수가 발언을 이어 갔습니다. JTS의 지난 32년 간의 활동은 말이 아닌 실천으로 교육의 본질을 구현한 사례로 평가된다고 강조했습니다. 교육의 변화를 ‘이름 붙이지 않은 교육 실천’이라 표현하면서 이제는 JTS가 그동안의 성과를 더 널리 알리고, 더 많은 사람들이 동참할 수 있도록 사업의 이름과 의미를 명확히 드러낼 시점이라고 제안했습니다.

이선경 실장은 유네스코 사업과 JTS 사업을 비교하여 평가했습니다. 유네스코는 사업을 위탁 수행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10년 정도의 사업 주기를 갖고 있지만, JTS는 한 지역에서 20년 이상 사업을 지속해 온 점이 인상적이라고 평가했습니다.

공선주 이사는 로힝야 난민 여성 교육 사업을 7년 간 수행하면서, 국제 개발의 현장에서는 10년이 길다고 느껴지지만 오히려 이제 막 변화가 시작되는 시점이 7년째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초기에는 자신이 전문가라고 생각해 현지 주민들에게 방향을 제시하려 했던 태도가 가장 큰 실수였다고 반성하며, 현장의 진정한 전문성은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있음을 배웠다고 덧붙였습니다.

이어서 이선경 실장이 JTS의 활동에 대해 궁금한 점을 질문했습니다.
“앞서 영상에서 사람들이 화를 가라앉히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JTS에서는 교육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단순한 학습 외에 심리적 접근이나 종교적 요소를 함께 활용하신 부분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이 질문에 대해서는 청중석에 앉아 있던 법륜스님이 답변했습니다.

“저는 마을 주민들이 화를 덜 내게 된 이유가 상호 이해의 폭이 넓어진 결과라고 봅니다. 예전에는 서로 다른 종족, 종교, 마을 사람들에 대해 잘 알지 못했기 때문에 오해가 생기고, 그로 인해 다투거나 화를 내는 일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함께 학교를 짓고, 소통하고, 아이들이 같은 학교에 다니면서 서로를 이해하게 되자 자연스럽게 갈등이 줄어들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특별히 어떤 교육이나 명상 수행의 결과라기보다, 함께하는 경험을 통해 생긴 변화라고 볼 수 있습니다.”
청중석에서도 다양한 질문들이 쏟아졌습니다. 한 분은 JTS가 이룬 기초 교육의 성과를 언급하며, 이러한 교육이 단순한 기초 수준을 넘어 양질의 교육으로 발전하기 위해 필요한 조건과 시기에 대해 질문했습니다.

“인도의 수자타 아카데미나 필리핀 민다나오 지역, 그리고 방글라데시 로힝야 난민촌 등에서는 기초 교육이 어느 정도 이루어지고 긍정적인 성과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교육이 양질의 교육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하며, 또 그 시점은 언제쯤이 될지 궁금합니다.”
이 질문 역시 청중석에 앉아 있던 법륜스님이 답변을 해주었습니다.

“수자타 아카데미는 처음부터 문맹 퇴치를 목표로 출발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30년이 지난 지금, 인도 사회도 많은 변화를 겪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정부 학교가 거의 없었지만, 이제는 수자타 아카데미가 위치한 지역 내에도 네다섯 곳의 정부 학교가 운영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수자타 아카데미는 정부 학교가 없는 지역의 초등학생만 받기로 하고, 정부 학교가 있는 마을의 아이들은 정부 학교에 배정하고 있습니다. 같은 지역에 이중으로 투자가 이루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처음에는 주민들의 반발이 있었지만, 마을별로 학교 배정을 세분화하여 점차 정착해 가고 있습니다. 다만 불가촉천민 계층의 아이들이 정부 학교에 가서 적응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이는 아이가 학교에 가지 못하고 학업을 중단하는 일이 생기면, 그 자체가 문맹 퇴치의 취지에 어긋나기 때문입니다.
현재 수자타 아카데미는 문맹 퇴치의 목표를 거의 달성한 상태입니다. 마을마다 유치원이 운영되면서 유치원 단계에서 이미 대부분의 아이들이 문맹을 벗어나고 있고, 부모 세대도 최소한 초등학교나 중학교 교육을 받은 경우가 많습니다. 이제는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는 일이 자연스러운 문화가 되었기 때문에, 사업을 중지할지 혹은 새로운 방향으로 전환할지 논의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한편 인도 정부가 교사 자격 기준을 강화하면서, 자원봉사 중심으로 운영되던 학교 시스템이 유지되기 어려워졌습니다. 고등학교와 대학교에서도 학생들의 출석을 의무화하면서, 대학생 자원봉사자들이 더 이상 학교에 상주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에 따라 앞으로의 과제는 학교를 사립학교로 전환해서 전문 학교로 개편할지를 결정하는 일입니다. 사립학교로 전환할 경우 전문 교사를 고용해 고급 교육을 제공하되, 천민 아동은 장학금 제도를 통해 다닐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이 검토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가 설립 취지와 맞지 않는다는 내부의 반대 의견도 있어, 현재 논의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필리핀의 상황은 인도와는 다릅니다. 필리핀은 여전히 학교 건설의 수요가 많습니다. 필리핀의 교육 환경은 한국의 1960~70년대와 비슷한 수준으로, 아직은 학교를 계속 세워야 할 시기입니다. 물론 JTS는 학교가 없는 마을이 기존 학교로부터 4km 이상 떨어져 있을 경우 새로운 학교를 세운다는 원칙을 갖고 있습니다. 실제로 현장을 다녀보면 아이들이 6km 이상 걸어서 등교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입니다.
현재는 산악 지역의 원주민 마을로 학교 건설이 확대되고 있으며, 최근에는 장애인 학교 설립 수요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습니다. 각 군마다 최소 한 개의 장애인 학교를 세우자는 움직임이 일어나, 최근 새로 건립된 학교의 절반은 오지 학교가 아닌 장애인 학교입니다. 이에 따라 JTS는 더 이상 단순히 학교를 짓는 역할을 넘어, 교사 역량 강화 프로그램이나 학생 체험 프로그램 등 교육의 질을 높이는 활동에도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특히 장애 아동과 오지 학생들을 수학여행이나 체험 활동에 참여시키는 프로그램을 통해 세상과 연결되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필리핀의 현실은 여전히 교실 부족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현지 지방 정부 관계자들은 예산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소수의 장애인을 위한 학교보다는 다수 학생을 위한 일반 교실 확충에 우선순위를 둘 수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일부 지역에서는 정부 예산만으로는 순서가 돌아오지 않아, JTS의 재정 지원이 있어야만 학교 건축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민다나오 부키드논 주의 경우 교육청 자료에 따르면 약 2천 개 이상의 교실이 부족하지만, 연간 예산으로는 20여 개밖에 짓지 못하는 실정입니다. 그래서 필리핀에서는 아직 ‘교육의 질’을 논하기보다, 기본적인 학습 공간 확보가 더 시급한 상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끝으로 방글라데시 로힝야 난민촌의 경우, 가장 큰 문제는 교육 자체가 허용되지 않는 환경이라는 점입니다. 방글라데시 정부는 난민 교육을 현지어인 벵골어로 가르치는 것을 금지하고, 미얀마어로만 교육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로힝야인들은 미얀마어 교육을 거부하고 있고, 영어로 가르치기에는 영어를 구사할 교사가 부족한 상황입니다. 이에 따라 온라인 교육을 시도하려 했지만, 정부가 난민들에게 인터넷 사용을 금지하면서 그마저도 불가능합니다. 약 100만 명의 난민 중 40%가 청소년으로, 40만 명 이상이 교육 제도 밖에 놓여 있는 심각한 상황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국제기구와 협의가 진행 중이며, 최근에는 유엔 난민기구와의 협력을 통해 일부 교육 시스템이 시범적으로 도입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실질적인 교육이 이루어지기 어려운 조건에 놓여 있습니다. 저는 이 문제가 앞으로 해결해야 할 가장 시급한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주제 발표와 질의응답까지 마친 후 네 분의 발표자들로부터 마무리 발언을 들어 보았습니다.

공선주 이사는 국제 개발 현장에서 흔히 강조되는 ‘효율’이라는 단어를 넘어, 사람이 만드는 가치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국제개발이나 인도적 지원 사업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늘 효율과 책무성을 강조합니다. 하지만 오늘 JTS의 사업 발표를 들으며 효율과 속도로는 만들어낼 수 없는 소중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JTS가 지난 32년간 현장에서 쌓아온 경험들이 단순한 성과가 아니라 하나의 의미 체계로 정리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선경 실장은 협력과 공유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이런 자리를 통해 서로 배우고 나누는 과정에서 새로운 아이디어와 가능성이 열립니다. 오늘 많은 인사이트를 얻었고, 저 역시 제 사업을 더 발전시킬 수 있는 여지를 발견했습니다.”
이어 노옥재 사무국장은 JTS의 활동이 결국 교육 그 자체였음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고 소회를 이야기했습니다.

“JTS의 지난 30년 활동을 이름 붙이자면 교육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단순히 학교를 지은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더 행복하게 살기 위해 배움의 길을 찾고, 그 과정에서 삶이 변하고 마을이 변했습니다. 처음에는 몰랐지만, 우리가 해온 일의 본질은 결국 교육이었습니다. 이제는 JTS의 경험을 사회적 언어로 표현하고, 다른 개발 기관들과 공유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마지막으로 유성상 교수는 JTS의 활동을 ‘교육의 실험’으로 정의하며 깊은 존경을 표했습니다.

“JTS가 인도, 필리핀, 방글라데시에서 각각 다른 문제를 안고 고민하는 모습을 보며 진정한 교육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인도는 문맹 퇴치 이후의 방향을, 필리핀은 왜 우리가 양적 확대를 담당해야 하는지를, 방글라데시는 할 수 없는 조건에서 어떻게 교육을 이룰지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교육은 단순히 생필품을 제공하는 일과는 다릅니다. 교육은 빵이나 약처럼 즉각적인 효과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결과를 확인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그래서 JTS가 32년의 세월 끝에 비로소 그 활동에 ‘교육’이라는 이름을 붙이게 된 것입니다. 교육은 개인이 아닌 공동체를 변화시키는 힘입니다. 나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함께 더불어 사는 법을 배우는 과정이 바로 교육입니다.”
마지막으로 법륜스님이 오늘 세미나를 갈무리하는 닫는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여러분이 발표한 내용을 듣고 나니까, 첫째, ‘JTS 사업은 많은 성과가 있었고, 그 내용도 감동적이다.’ 이렇게 평가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느낄까?’, ‘무슨 특별한 일을 했던 걸까?’ 하고 생각해 보면, 사실 다른 이유가 있어서라기보다는 사업 대상 지역을 잘 선택한 덕분인 것 같습니다.
제일 열악한 곳에 가서 사업을 했기 때문에 변화가 확실히 눈에 보였던 것 같아요. 형편이 좋은 곳에 가서 사업을 했으면 사업을 하기 전과 후를 비교해도 큰 변화를 느끼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워낙 열악하고 위험한 곳에 가서 사람들을 도왔기 때문에 비록 우리는 힘들었지만 남들이 보기에 ‘와, 많이 변했다.’, ‘큰 성과가 있었다.’ 하고 느끼게 되는 것 같습니다.
둘째, ‘JTS가 여러가지 많은 일을 했는데 왜 그중에서 교육을 세미나의 주제로 삼았는가?’ 하는 의문이 들 수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교육 분야에서 보이는 성과가 뚜렷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수자타 아카데미가 설립된 인도 둥게스와리 마을의 문맹률이 처음에는 100%에 가까웠지만 이제는 거의 30%로 낮아졌다고 하듯이 이렇게 성과를 확실히 보여줄 수 있는 분야가 바로 교육입니다. 사실 JTS는 교육보다 다른 분야에 더 많은 투자를 했습니다. 특히 구호 식량을 배분하는 일에 가장 많은 돈을 사용했습니다. 그런데 식량 지원은 투자한 것에 비해 눈에 띄는 성과가 별로 없어요. 구호 식량 덕분에 몇 명이 안 죽고 살았는지 통계를 낼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의료 분야에서는 병원을 지으면 병원 건물이 결과로 보이지만, 약이 얼마나 많은 사람을 낫게 했는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반면 교육은 학생 수가 통계로 잡히고, 마을에서도 아이들이 매일 학교에 다니는 게 눈에 보입니다. 그래서 교육이 지난 30년을 평가하는 주제로 잡히게 된 것 같습니다.

셋째, 방금 발표자 분들 중 한 분이 7년만 활동하고 철수하려 했는데 그럴 수가 없었다고 하셨잖아요. 그 마음이 저도 이해가 됩니다. 왜냐하면 성인을 대상으로 한 지원 사업이었으면 5년만 지원하고 손을 뗄 수 있을텐데, 저희는 유치원생을 대상으로 지원을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그 아이들이 이제 서른 살이 넘는 청년이 되었어요. 이제 비로소 그 청년들을 데리고 마을 개발도 하고, 농촌 공동체도 만들 수 있게 된 겁니다. 예전에는 마을 개발 프로그램을 아무리 하고 싶어도 사람이 없어서 할 수 없었는데, 이제는 청년이 된 아이들을 데리고 어떤 일도 할 수 있게 된 거예요. 한마디로 이제 할 만해진 겁니다.
원래 제 계획은 둥게스와리에 초등학교만 지어 놓고 철수한 후 부처님 성지를 따라서 곳곳에 학교 짓기 사업을 선으로 연결하자는 것이었습니다. 나중에는 면으로 확장해서 궁극적으로는 인도의 문맹을 퇴치하면 좋겠다는 꿈을 꾸었습니다. 그런데 둥게스와리에서 한 발도 못 나가고 30년 동안 붙들려 있습니다. 처음에 이곳 아이들에게 고등 교육을 시킨 이유는 문맹 퇴치를 위한 교사를 확보하기 위한 것이었지 대학 진학 자체에 목적을 두지 않았습니다. 이런 고민이 있는 상황에서 앞으로는 문맹 퇴치 사업을 끝내고 다른 사업으로 전환할지, 아니면 교육 지원을 계속하면서 고등 교육으로 폭을 넓혀갈지, 선택의 기로에 서 있습니다. 다시 말해 JTS는 지금 구호 사업에서 개발 사업으로 전환해야 할 상황에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JTS가 처음 사업을 시작할 때는 구호 사업만 하자고 딱 정해서 출발했어요. 그래서 내부에서는 '우리는 수행자이고 환경 운동을 하는 사람이니까 구호가 아닌 개발 같은 것에는 손을 떼야 한다.’라는 문제 제기도 있습니다. 한편에서는 ‘지속 가능한 개발이란 목표를 새로 세워서 개발로 전환하자.’ 하는 의견도 있어서 부탄에서 그 실험을 해보고 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도 가능하면 가장 살기 열악한 곳에 가서 구호 사업을 시작해 보세요. 전법을 할 때도 성질이 가장 고약한 사람을 교화하는 게 그 변화를 느끼기도 쉽습니다. 착한 사람을 교화하는 것은 아무 표시가 안 나요. 그래서 당장은 어렵겠지만, 가능하면 일하기 어려운 곳, 열악한 곳에서 일해 보는 게 좋습니다. 효과나 평가 면에서 매우 확실한 결과를 얻을 수 있어요. JTS가 사업을 시작한 곳도 바로 그런 곳이에요. 오늘 여러분의 발표를 들으면서 JTS는 가장 일하기 어렵고 열악한 곳에서 사업을 시작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성과가 두드러져 보이는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나눈 비전이 새로운 문명 전환의 씨앗이 되기를 꿈꾸며 큰 박수와 함께 JTS 32주년 기념 세미나를 마쳤습니다.

세미나를 마치고 인도와 필리핀에 파견되어 봉사를 했던 활동가들이 모두 무대 위로 올라와 스님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참석한 봉사자들에게는 JTS 30년 사가 담긴 책을 한 권씩 선물했습니다. 정식 판매를 하기 전에 세미나에 온 분들에게도 소정의 기부로 책을 가져갈 수 있게 했습니다.
스님은 바쁜 가운데 오랜만에 JTS를 찾아와 준 봉사자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 후 지하 대강당을 나왔습니다.

해가 저물고 저녁 6시에 서울을 출발하여 두북수련원으로 향했습니다.

고속도로 위를 3시간 30분 동안 달려 밤 9시 30분에 두북수련원에 도착한 후 하루 일과를 마쳤습니다.
내일은 여성 INEB 5일째 날로 오전에는 정토회의 사회 실천을 주제로 질의응답 시간을 갖고, 오후에는 불국사 순례를 한 후, 저녁에는 스님과의 대화 시간을 가질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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