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캄보디아 바탐방에서 고등학교 부지를 답사하고 여학생 기숙사 추가 건립에 대해 논의했습니다.

새벽 기도를 마치고 오전 6시에 아침 식사를 했습니다. 시하눅 라자 불교대학 학생들이 정성스럽게 식사를 준비해 주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오전 7시에 바탐방 고등학교 건립을 추진하고 있는 부지로 출발했습니다. JTS는 원칙적으로 고등학교를 지원하지는 않지만, 소비치아 스님이 여러 차례 요청하여 현장을 직접 확인하기로 했습니다.

7시 40분에 부지에 도착하자 이 지역의 군수, 마을 대표, 학부모, 교사, 학생, 마을 사람들이 모두 나와 있었습니다. 학생들은 캄보디아 국기와 한국 국기를 흔들며 스님 일행을 환영해 주었습니다.

카카오 중등학교(Kakaoh Secondary School)에 모여 마을 주민들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교육청 부국장의 인사말을 시작으로 소비치아 스님이 한국 방문단을 소개했고, 마을 대표가 고등학교 설립의 필요성을 설명했습니다.

“우리 군에는 현재 고등학교가 두 곳뿐이라 많이 부족한 상황입니다. 이 지역에는 중학교가 세 곳 있지만, 고등학교는 한 곳도 없습니다. 가장 가까운 읍내까지는 10km가 넘는데, 자취를 하기에는 비용 부담이 크고 통학을 하기에는 교통편이 많지 않습니다. 자전거로 다니기에는 교통사고의 위험이 높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많은 학생들이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있고, 특히 여학생들은 거의 고등학교에 가지 못하는 현실입니다.

그래서 이 지역 중학교 부지에 고등학교를 설립하고자 합니다. 그러나 교육청에서는 예산이 없어 학교를 신설할 수 없다고 합니다. 마을 주민들이 모금을 통해 일부 비용을 부담할 의향이 있으니, 고등학교 설립이 가능하도록 지원해 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소비치아 스님이 법륜스님에게 한 말씀을 요청했습니다.

“저는 한국에서 왔습니다. 한국도 캄보디아와 마찬가지로 절에 돈이 들어오면 스님들이 주로 절을 짓습니다. 그런데 부처님의 가르침인 경전에 보면, 어려운 사람을 돕는 것이 절 짓는 것보다 더 큰 불사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절을 짓는 대신, 그 돈을 모아 배고픈 사람에게 밥을 먹이고, 병든 사람을 치료하며, 초등학교도 다니지 못하는 아이들이 공부할 수 있도록 돕는, 세 가지 일에 집중해 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만약 이 지역에 초등학교조차 없었다면 JTS 사업의 대상이 됩니다.

또 홍수나 지진처럼 큰 피해가 발생했을 때도 긴급 지원을 합니다. 아주 외진 지역이나 분쟁 지역, 혹은 장애 아동을 위한 학교가 전혀 없는 경우 등 국가 시스템이 닿지 않는 곳에서도 학교를 짓고 있습니다. 아마 그래서 소비치아 스님이 저희에게 지원 요청을 하신 것 같은데, 죄송하지만 고등학교는 저희 사업 대상이 아닙니다. 그런데 왜 교육부에서는 이곳에 고등학교를 지어 주지 않나요?”

“정부 예산이 부족합니다.”

“JTS에서는 20년 전 캄보디아 북동부 라타나끼리(Ratanakiri) 주에 초등학교를 10개 가까이 지은 경험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캄보디아 정부가 일정 수준의 경제력을 갖추었기 때문에 고등학교 정도는 정부에서 짓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JTS와 함께 협력해서 짓는 방식은 고려해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정부와 교육부에서 예산을 책정하기 어렵다면, 지방 정부와 마을에서 일부를 부담하고, 나머지를 JTS에서 지원하는 방식도 가능합니다. JTS가 필리핀에서 장애인학교를 지을 때는 지방정부가 전체 예산의 30%를 부담하고, JTS가 자재비를 지원해서 함께 지은 적도 있습니다.”

스님의 말씀에 이어 정부, 마을, JTS가 각각 일정 부분을 분담하는 방향으로 논의를 한 후 대화를 마쳤습니다.

대화를 마치고 밖으로 나와 다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부지를 보고 돌아오는 길에 소비치아 스님이 돕고 있는 또 다른 초등학교를 잠시 방문했습니다. 20년 전 여행을 온 미국인 부부가 처음 이곳에 학교를 세웠는데 당시 통역을 맡았던 소비치아 스님이 지금까지 자원봉사로 학교 확장에 힘쓰고 있었습니다.

10시 40분에 다시 시하눅 라자 불교대학으로 돌아와서 소비치아 스님과 여학생 기숙사 건립과 고등학교 설립에 대해 논의했습니다.

기숙사는 한 동으로는 부족하니 두 동을 짓는 방향으로 계획을 세우고, 소비치아스님이 각각 예산을 세워 제출하기로 했습니다. 고등학교는 정부와 주민이 일정 부분을 분담할 경우, JTS가 나머지를 지원하는 방식으로 추진해 보기로 했습니다. 스님이 한국에 돌아가면 JTS 이사회에서 최종 결정을 하기로 하고 회의를 마쳤습니다.

11시 30분에는 점심 식사를 했습니다. 이번에도 불교대학 학생들이 정성껏 식사를 준비했습니다.

식사 준비를 해 준 학생 중 한 명은 곧 INEB 여성 활동가 견학 프로그램으로 정토회를 방문할 예정이라고 했습니다. 스님은 영어로 말하는 그 학생에게 영문으로 번역한 스님의 저서를 선물했습니다. 또 다른 학생도 정토회를 견학할 예정인데 선천적인 피부 질환이 있어서 한국에 오면 피부과 진료를 받아 볼 수 있게 도와주기로 했습니다.

식사를 마친 뒤, 스님은 소비치아 스님에게 기숙사 부지 마련에 보태라며 보시금을 전했습니다. 기숙사 부지는 학교 측에서 구입하고, 건물은 JTS에서 짓기로 했는데 아직 부지 대금을 전액 지불하지 못하고 계약금만 낸 상태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스님은 이곳의 스님들이 모두 바쁠 테니 예정보다 일찍 출발하겠다고 했습니다. 소비치아 스님이 배웅하겠다고 나섰지만, 스님은 여러 차례 만류했습니다. 스님이 웃으며 영어로 말했습니다.

“I don’t like you. Don’t come!”
(저는 당신을 안 좋아해요. 오지 마세요.)

“The more you don’t like me, the more I want to come.”
(스님이 저를 싫어하실수록, 저는 더욱 가고 싶습니다.)

함께 있던 사람들이 모두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결국 소비치아 스님은 오늘이 휴일이라 괜찮다며 씨엠립 공항까지 동행했습니다. 출발 직전, INEB 견학 프로그램으로 정토회를 방문했던 스님들이 찾아와 인사를 했습니다. 스님은 영문으로 번역한 스님의 저서를 선물하고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오후 12시 30분에 바탐방을 출발해 차로 4시간을 달려 오후 4시 30분에 씨엠립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소비치아 스님을 비롯한 여러 스님들과 작별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학생들에게 이렇게 전해 주세요. 기숙사를 깨끗하고 유용하게 잘 사용하고 있어서, 기숙사를 더 짓기로 했다고요. 앞으로도 공부 열심히 하고 생활도 잘하라고 꼭 전해주세요.”

“네, 학생들이 그 말을 들으면 기뻐할 것입니다.”

짧은 일정이었지만 바탐방에 머무는 동안 불교대학의 스님들과 학생들이 극진히 대접을 해주었습니다.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공항으로 들어가 출국 수속을 밟았습니다. 스님 일행은 비행기를 타고 저녁 7시 25분에 씨엠립 공항을 출발하여 8시 55분에 방콕 수완나품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공항에는 정토회 회원 황소연 님 부부가 마중을 나와 숙소까지 운전을 해주었습니다. 밤 10시가 되어 숙소에 도착한 후 하루 일정을 마무리했습니다. 내일은 태국에 소수 민족이 사는 난 지역을 답사할 예정입니다.

오늘은 법문이 없었기 때문에 지난 11일 독일 뒤셀도르프에서 열린 즉문즉설 강연에서 스님과 질문자가 나눈 대화 내용을 소개하며 글을 마칩니다.

속이 좁아 자꾸 삐치는 남편, 평생 이렇게 살아야 하나요?

“한 집에서 같은 부모 밑에서 자란 형제들도 성격이 다 다릅니다. 하물며 다른 집에서 다른 부모를 두고 자란 사람 사이는 많이 다르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결혼할 때도 마찬가지로 상대는 나와 많이 다르다는 관점에 서 있어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나와 관계 맺지 않은 타인에 대해서는 나와 다를 것이라고 어느 정도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그래서 상대의 행동을 문제 삼지 않을 수 있는 거예요.

그러나 수많은 사람 중에 어떻게 그 사람을 만나 연애나 결혼을 하게 되었는지를 살펴보면, 대화를 나누는 중에 고향이나 취미, 믿음, 사상이 나와 같다는 걸 발견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등산, 농구, 그림, 음악 같은 취미를 비롯하여 뭐든지 한 가지라도 나와 같은 점이 발견되면 그때부터 약간 친밀해지는 거예요. 그렇게 해서 친구도 되고 연애도 하고 결혼도 하게 되는 겁니다.

그런데 인간의 정신 작용은 같은 것이 반복되면 효율성을 위해서 자동화시키는 성질이 있습니다. 한 번, 두 번, 세 번, 이렇게 반복을 하면 나중에는 의도하지 않아도 저절로 그렇게 되도록 자동화됩니다. 그래서 숙련공이라는 말이 나오게 된 거예요. 같은 일을 반복하여 익숙해지면 나중에는 무의식적으로 저절로 되는 거죠. 성질이나 습관도 반복 행동을 통해 자동화된 하나의 상태를 일컫는 말입니다. 우리가 어떤 행위를 하고 나서 ‘왜 그랬냐?’ 하고 물으면 ‘나도 모르게 그랬다.’ 하는 말을 종종 합니다. 즉 의식이 자각을 못한 상태에서 자동으로 행해진 것입니다. 그래서 ‘무의식적으로 그랬다’, ‘습관적으로 그랬다.’ 하는 말을 하기도 합니다. 습관적, 무의식적인 행동은 에너지를 절약하는 효율적인 방식이에요. 같은 것을 되풀이하다 보니 뇌가 자동화시켜 버린 겁니다. 자동화가 되면 에너지를 절약하는 좋은 점이 있지만, 나쁘게 말하면 습관화가 되는 것입니다.

상대를 만났을 때 같은 것이 많이 발견되면 ‘우리 둘은 모든 것이 같아!’ 하고 뇌가 착각해서 자동화된 반응이 일어납니다. 무엇이든 같다고 생각하니까 긴장을 안 하게 되고 친밀감이 들고 관계가 편해집니다. 그런데 같다는 전제를 갖고 막상 결혼해서 같이 살아보면 어떨까요? 모든 게 또 다릅니다. 하나하나 다른 게 자꾸 자꾸 발견되는 거예요. 처음 만날 때는 다르다는 게 전제됐기 때문에 같은 것이 발견됐을 때 호의가 일어납니다. 그런데 우리의 뇌가 같다는 전제를 해버린 뒤에는 다른 것이 발견되면 부정적인 생각이 일어나는 거예요. 막상 부부가 결혼해서 살아보면 음식의 간도 다르고 좋아하는 음식의 종류도 다릅니다. 화장실을 앉아서 사용하면 좋겠는데 서서 사용해서 짜증이 나기도 하고, 옷을 벗으면 제자리에 두지 않고 아무 데나 던져 놓기도 하죠. 세세하게 보면 모든 게 다 다릅니다. 성격뿐 아니라 생활 습관에서 전반적으로 다른 게 나타납니다. 그러면 그때부터 마음에서 부정적인 생각이 자꾸 일어납니다. ‘이 사람하고 못 살겠다!’ 이런 마음이 조금씩 커져서 10년 정도 살고 나면 외면하는 일이 생깁니다. ‘저 사람은 본래 저래!’ 이런 식으로 말이죠. 마음이 냉랭해지는 거예요. 그러나 아이도 있고 경제적으로 같이 묶여 있다 보니 그냥 동거인으로 살아갑니다. 성적인 욕망이 필요할 때나 서로 보고, 그냥 대충 살아가는 거예요. 이것이 우리 인생입니다.

그래서 가장 중요하게 알아야 할 것은 ‘다른 것이 정상이다.’하는 사실입니다. 모든 것이 다 다르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같은 점도 있지만 서로 다른 것이 기본 바탕이라는 거예요. 그런데 나라까지 다르다면 굉장히 다른 점이 많은 거예요. 그래서 첫째, 다른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뇌는 항상 자기를 기준으로 해서 나와 다른 것을 틀렸다고 봅니다. 이거는 여기 있고 저거는 저기 있으면 각자 위치에 있는 것인데, 이것을 기준으로 보면 저것은 오른쪽에 있는 것이고, 저것을 기준으로 보면 이것은 왼쪽에 있는 게 됩니다. 이것은 나를 기준으로 삼는 거예요.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나를 기준으로 삼기 때문에 내가 앞에 갈 때는 뒤에 오는 사람을 향해 ‘왜 저렇게 굼지럭대지? 빨리빨리 안 오고!’ 하는 생각이 들고, 내가 뒤에 갈 때는 ‘저 사람은 뭘 저리 서둘러서 가나? 같이 안 가고!’ 하는 식으로 사고가 일어나는 거예요.

지금 질문자는 자기를 기준으로 해서 상대를 보니까 상대가 이해가 안 되는 거예요. 그런데 남편 입장에서는 질문자가 이해가 안 되는 거죠. 내가 볼 때는 네가 오른쪽인데, 상대 기준으로 보면 내가 왼쪽에 있는 거예요. 앞에 가는 사람을 기준으로 하면 뒤에 오는 사람이 느린데, 뒤에 오는 사람을 기준으로 할 때는 앞에 가는 사람이 빨리 가는 거예요. 사고가 이렇게 작동하기 때문에 우리가 같이 살다 보면 필연적으로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같이 산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서로가 다르다는 사실을 알고 같이 맞춰가는 거예요. 서로 조절을 해야 합니다. 방 안의 온도를 예로 들어보면, 나는 더워서 에어컨을 23도에 맞추고 싶은데 상대는 춥다고 27도에 맞춘다고 합시다. 그러면 ‘너는 뭘 먹었길래 몸에 열이 그렇게 많이 나냐?’ 또는 ‘너는 몸이 아프냐? 왜 그렇게 추위를 타냐?’ 이렇게 대화를 시작합니다. 먼저 자기를 기준으로 해서 대화를 나누는 거죠. 이렇게 세세한 것부터 자기 입장을 이야기하고 서로 조정을 해야 합니다. 같이 산다는 것은 서로 맞추는 과정이고,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입니다.

에어컨 온도를 23도로 맞추느냐, 27도로 맞추느냐로 이견이 생겼을 때는 어떻게 조정해야 할까요? 첫째, 제일 쉬운 방법은 상대한테 맞추는 거예요. 23도에 온도를 맞추고 나는 외투를 꺼내 입는다거나, 27도에 온도를 맞추고 나는 옷을 좀 가볍게 입는 거예요. 이렇게 상대에게 맞추면 제일 쉬워요. 왜냐하면 나만 바꾸면 되기 때문입니다.

둘째, 나한테 맞추는 겁니다. 그런데 나한테 맞추는 게 제일 어려운 방법입니다. 나한테 맞추려면 상대가 변해야 하는데 사람은 다 자신이 중심이기 때문에 변하지 않아요. 나한테 맞추려면 내가 힘이 있어야 합니다. 즉 상대를 강제해야 합니다. 대통령은 장관들을 자기한테 맞출 수가 있습니다. 주인은 하인을 자기한테 맞출 수 있습니다. 거기에는 강제할 힘이 있기 때문이에요. 강제할 힘이란 게 뭘까요? 무력이나 재력을 갖고 강제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것처럼 남자가 인물도 좋고 돈도 많고 지위도 높으면 아내한테 강제할 수 있습니다. 이럴 때는 남자가 갑이 될 수 있습니다. 아내는 혜택이나 이익 때문에 남편에게 맞추게 됩니다. 그런데 내가 그런 힘이 없는데 상대를 나한테 맞추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에요. 그래서 일반적으로 제일 쉬운 건 내가 상대에게 맞추는 겁니다. 이것을 수행이라고 합니다. ‘그래, 알았다!’ 하는 게 제일 쉬워요.

셋째, 타협을 하는 거예요. 중간인 25도로 하자고 해서 너는 옷 하나 벗고, 나는 옷 하나 입는 것으로 타협하는 겁니다.

이 세 가지가 다 안 된다면, 즉 내가 강제할 힘도 없고, 내가 상대한테 맞출 수행력도 안 되고, 타협도 못 끌어낸다면, 넷째, 각 방을 쓰는 방법이 있어요. 상대는 방 온도를 23도로 해 놓고, 나는 27도로 해 놓고 각자 따로 일상생활을 하고, 대화할 때나 볼 일이 있을 때만 잠시 같이 생활하는 겁니다. 그러려면 돈이 많이 드는 것을 고려해야 합니다. 방 하나만 사용하면 되는데 각자 온도가 안 맞으니까 방을 2개 써야 해서 그만큼 재정 지출이 늘어나는 것을 감수해야 합니다. 이런 여러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처럼 질문자도 남편과의 관계에서 선택을 해야 합니다. 제일 쉬운 길은 남편한테 맞추는 거예요. 남편이 어떤 일에 잘 삐치고, 어떤 일에 화를 잘 내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남편 목소리가 커지고, 정신없이 화를 내는 상황이 되면, 누가 옳든 그르든 대화를 멈추고 남편을 안아 준다든가 하는 방법을 고안해 낼 수가 있겠죠. 지혜를 발휘해야 합니다. 그런 상황에서는 대화를 시도해 봐도 남편의 뚜껑이 이미 열려버려서 갈등밖에 안 되니까요. 그럴 때는 탁 덮는 게 지혜로운 대처입니다. 왜냐하면 어떤 문제든 남편이 화를 버럭 내는 순간에는 문제의 옳고 그름을 남편이 화로 덮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물론 질문자는 억울하죠. 그러나 거기서 더 나가면 후유증이 많으니,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다음에 얘기하자.’ 하고 덮어야 합니다. 그러고 나서 남편이 정신이 좀 맑아지면, 다시 대화를 시작해서 ‘너 아까 어떻게 했어? 너 이렇게 해서 되겠어?’ 하고 말해야 남편이 스스로를 돌아보고 수긍할 수밖에 없습니다. 화가 가라앉은 뒤에 단호하게 따지는 것이 오히려 더 효과적인 대처가 되는 것이지요. 이게 바로 지혜입니다.

전쟁을 할 때도 적이 강하면 방어를 먼저 해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내가 상대보다 3배 이상 군사력이 강해야 적의 성을 공격해서 방어를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공격이 성공하려면 방어보다 3배 정도 파워가 있어야 가능한 거예요. 그렇지 않다면 적을 유인해 내거나 꾀를 써야 합니다. 그런데 질문자는 지금 꾀가 없이 자기 식대로만 하려고 하니, 남편이 속이 좁고 잘 삐친다면서 남편 탓만 하게 되는 거예요.”

“제가 직접적으로 남편한테 말한 적은 없고 그냥 저 혼자 생각한 겁니다.”

“혼자 생각하는 것이더라도 남편이 속이 좁고 잘 삐친다고 하는 것은 남편한테 문제가 있다는 거잖아요. 그렇게 생각하기보다는 남편을 연구해서 그가 언제 삐치고, 화내고, 토라지고, 꽁하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음식의 조리법에도 볶아야 하는 것, 생으로 내는 것, 삶아야 하는 것이 있는 것처럼 남편의 성격을 잘 알아서 그때그때 조정을 해야 합니다. ‘왜 나만 맞춰야 됩니까?’ 이런 얘기를 하면 안 돼요. 맞추는 게 나한테 이익이니까 맞추는 겁니다. 가게를 운영하는 사람이 손님에게 상냥하게 대하는 것은 비굴해서가 아니잖아요. 내 가게의 물건을 팔려고 하는 거죠. 이런 게 지혜입니다. 그런데 그렇게까지 신경 쓰면서 살기 싫다면 이혼하면 됩니다. 그건 개인의 자유니까요.

저도 지금 여러분과 대화하면서 계속 맞추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시나요? 과학에 대해 질문하면 과학을 얘기하고, 인생에 대해 질문하면 인생을 얘기하고, 화를 내는 문제에 대해 질문하면 화를 다스리는 법에 대해 얘기하고, 이렇게 질문자의 관심사에 맞춰서 대화를 나누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질문자가 못 보는 것을 제가 얘기했을 때 질문자가 깨달으면 다행이고, 못 깨달으면 그만인 거예요. 제가 만약 얘기하다가 화를 버럭 내면서 ‘그것도 못 알아들어!’ 하면 대화가 되겠어요? 상대에게 맞추고 안 맞추고는 자기 선택입니다. 여자한테만 맞추라고 하지 않습니다. 남자든 여자든 아이든 어른이든 그건 관계가 없는 거예요. ‘왜 가게 주인만 손님한테 비위를 맞춰야 합니까?’ 이런 질문은 할 필요가 없습니다. 내가 물건을 팔기 위해서 손님의 비위를 맞추는 것이니까요. 그것처럼 내가 못나서가 아니라 가정의 화목을 위해서 남편의 성격이나 습관을 연구하여 적절하게 조정해야 합니다. 일단 남편의 목소리가 한번 올라가기 시작하면, 결국 화를 내거나 한 달간 말을 안 하게 되는 상황이 예상이 되니까 입구에서 딱 막아야죠. 남편의 목소리가 올라갈 때 화장실에 다녀온다거나 부엌에 가야 한다고 하면서 대화를 멈춰야 합니다. 이것이 지혜입니다.

남편에 대해 연구를 해서 대응해야 합니다. 10년이나 같이 살았는데 아직도 남편에 대해 잘 모른다는 건 질문자가 게으르거나 무지하거나 둘 중의 하나 아닐까요? 어떤 사람은 칭찬해 주면 좋아하고, 어떤 사람은 직설적으로 지적해 주는 것을 좋아하고, 어떤 사람은 기다려 주는 것을 좋아합니다. 사람마다 다 다르기 때문에 같이 살아보면서 조절해 가는 거예요. 미리 다 알아서 맞출 수는 없습니다. 상대와 안 맞추려면 결혼을 안 해야 하는 거예요.”

“남편이 뭘 좋아하는지 뭘 싫어하는지를 아는데 막상 그 상황이 되면 저도 화가 같이 올라오니까 그 순간에는 조절이 안 되더라고요.”

“우리말에 화가 나면 눈에 뵈는 게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눈에 뵈는 게 없다는 건 어리석다는 의미예요. 욕심에 눈이 어둡다는 말이 있듯이 욕심이 나면 어리석어지는 거예요. 질문자가 어리석어서 그런 것입니다. 보통 누가 칼이나 총으로 위협을 하면 두려워하고 도망가야 하잖아요. 그런데 화가 나면 오히려 더 가까이 가서 배를 꺼내 놓고 찌르라고 대듭니다. 이게 미친 증상이거든요. 모든 사람이 순간적으로 미친 증상이 나올 때가 있습니다. 화가 나면 두려움이 없어져서 나를 죽이라고 덤비잖아요. 이처럼 화가 나면 눈에 뵈는 게 없기 때문에 지혜가 그 순간에 없어지는 거예요. 이렇게 하면 손해라는 생각이 없어지는 겁니다. ‘손해가 나면 나는 거고, 까짓 거 죽으면 죽는 거지!’ 하면서 손익도 따지지 않고, 살고 죽는 것도 따지지 않는 이런 상태가 바로 화가 난 상태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첫째, 욕심을 내지 마라. 둘째, 성냄을 버려라. 셋째, 어리석음을 버려라.’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세 가지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어리석다는 뜻입니다. 화가 나면 어리석어지고, 성질이 나면 어리석어지고, 원래 몰라서 어리석은 것을 ‘탐진치’라고 합니다. 여러분들은 평소 화를 많이 내고 사니까 그냥 일상이라고 생각하지만, 화를 낸다는 건 일종의 미친 증상이기 때문에 엄청난 손해를 가져오는 행동입니다. 그래서 어떤 문제를 풀 때는 상대를 미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미워하면 화가 나잖아요. 평화적으로 문제를 풀자는 것도 다 지혜롭게 문제를 풀자는 의미입니다. 화가 나면 폭력적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습니다. 어떤 길이든 질문자가 선택해야 합니다. 지금까지도 화를 내어 가면서도 10년을 잘 살았으니까 앞으로도 잘 살긴 하겠죠. 계속 화내면서 사세요.” (웃음)

“감사합니다. 잘 알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