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5.9.17. 미얀마 답사 2일째, 난민 캠프 방문, 구호 물품 전달
“불교적 관점에서 난민과 이주자 문제를 어떻게 봐야 할까요?”

안녕하세요. 미얀마 만달레이에서 이틀째 아침이 밝았습니다. 오늘은 어제에 이어서 미얀마 지진 피해 지역 답사를 이어 갔습니다.

스님은 새벽 수행과 아침 식사를 마치고 오전 7시 30분부터 온라인으로 수행법회 생방송을 진행했습니다.

정토회 회원들이 화상 회의 방에 모두 입장하자 삼귀의와 반야심경을 봉독한 후 주간 정토행자 소식을 영상으로 함께 보았습니다.

영상이 끝나고 대중이 삼배의 예로 스님에게 법문을 청했습니다. 먼저 스님이 미얀마에 온 이유와 앞으로의 동남아 지역 답사 계획에 대해 간략히 설명했습니다.

내전과 지진 속에 남겨진 사람들

“저는 지금 유럽 순회강연을 마치고, 올해 초에 큰 지진이 난 미얀마 만달레이(Mandalay) 지역에 와 있습니다. 현재 미얀마는 두 가지 큰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첫째는 정부와 반정부군 사이의 군사적 충돌로 인해 내전이 일어나 난민이 발생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많은 사람이 국경을 넘어 태국으로 피난을 가거나, 국내에서도 고향을 떠나 다른 지역으로 이주해 가는 형편입니다. 둘째는 지난번 지진으로 집이 대부분 무너져 버렸다는 점입니다. 복구가 어려운 상황에서 내전까지 겹쳐 난민이 추가로 발생한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저는 국제기구에서 관장하는 것이 아니라 인근 절에서 돌보고 있는 난민 캠프를 둘러보려고 합니다. 이곳은 8개 마을이 모여 형성된 곳으로, 인구는 약 4,400명쯤 되고, 가구 수는 대략 1,700여 가구에 이릅니다. 현장을 둘러본 뒤 지원 대책을 세울 계획입니다.

내일은 캄보디아로 이동해 JTS가 지난번에 농촌 출신 여학생 64명이 머물 수 있는 기숙사를 지어준 대학교를 방문합니다. 농촌 출신 여학생들이 대학교에 다니기 위해 도시로 오지만, 기숙사가 없어 작은 방 하나를 빌려 여러 명이 함께 생활하다 보니 위험에 노출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작년에 여학생 기숙사를 지어주었는데, 추가로 기숙사를 더 지어 달라는 요청이 있어 답사를 할 계획입니다.

내일모레는 태국 북부 지역으로 이동합니다. 미얀마 난민이 넘어오는 국경 지대와 지난번 큰 홍수로 피해를 입은 지역을 둘러보고 무엇을 도울 수 있는지 논의하려 합니다. 태국은 불교 국가이기 때문에 난민이 되어 넘어오면 남자아이들의 경우 머리를 깎여서 ‘사미’로 보호해 주면 국적이 없어도 추방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자아이들의 경우 제대로 보호해 줄 수가 없는 문제가 있습니다. 남자아이들처럼 보호하려면 ‘넌’이라고 하는 여성 출가자가 되어야 하는데 태국에서는 비구니를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일반 보육원에 맡길 경우 추방당할 위험이 있습니다. 그래서 여자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숙소와 학교를 어떻게 마련할지 방법을 찾아보려고 합니다.

원래 계획은 시리아를 방문해 전후 복구를 돕기로 했는데, 이곳 동남아 지역의 사정이 더 급해 일정을 변경해서 지금 동남아 지역을 답사하고 있습니다.”

이어서 사전에 질문을 신청한 사람들과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한 시간 동안 네 명이 질문했습니다. 그중 한 명은 최근 미국에서 발생한 비자 문제, 영국 내 난민 수용 시설을 둘러싼 갈등 사례를 언급하며, 전 세계적으로 심화되는 이민자와 현지 주민 사이의 갈등에 대해 스님에게 조언을 구했습니다.

불교적 관점에서 난민과 이주자 문제를 어떻게 봐야 할까요?

“최근 미국에서 우리 국민이 비자 문제로 억류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영국에서도 난민 신청자들이 머무는 숙박 시설을 둘러싸고 반대 시위가 일어나, 호텔이 폐쇄되거나 폭력 사태까지 이어졌습니다. 지금 전 세계적으로 현지 주민과 이민자 사이의 갈등이 심화되고 있습니다. 국경은 사람이 만든 것이지만, 그렇다고 무시할 수도 없는 현실입니다. 그렇다면 불교적 관점에서는 난민이나 해외 이주자를 받아들이는 것이 바람직할까요? 아니면 국경을 철저히 막는 것이 더 나을까요? 특히 난민의 경우, 여자나 어린이에게는 호의적이지만, 젊은 남성 난민은 경제적 이유로 밀입국한 잠재적 범죄자로 보거나, 왜 자기 땅을 벗어났냐며 비판하는 시선이 많습니다. 물론 젊은 남성은 가족을 대표해 해외에 나온 경우도 있을 겁니다. 이런 사람들의 불안과 분노에 어떻게 대응하는 것이 좋을까요?”

“지금 전 세계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을 보면 가장 큰 문제는 빈부 격차입니다. 나라 간 빈부 격차가 심화되고, 각 나라 안에서도 빈부 격차가 극심해지면서 난민에 대한 저항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첫째, 국가 간 격차가 커지면서 가난한 나라 사람들은 더 이상 자국에서 살기 어려워지고, 결국 생존을 위해 부유한 국가로 이동할 수밖에 없습니다. 둘째, 부유한 국가 내에서도 빈부 격차가 심해지다 보니 이미 살기 팍팍한 가난한 사람들은 난민의 유입으로 일자리를 빼앗기거나 인건비가 떨어지는 손실을 겪게 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난민에 대한 저항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결국 난민 문제는 빈부 격차가 심화되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며 앞으로도 더욱 심해질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근본적으로 난민 문제를 줄이려면, 가난한 나라에 충분한 개발 지원을 해서 그 나라 사람들이 자국에서 먹고 살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동시에 부유한 나라 안의 빈부 격차를 줄이면 난민에 대한 저항도 완화될 수 있겠죠. 그러나 현실은 양쪽 모두 극심한 양극화 상태에 놓여 있습니다. 이 때문에 난민 이동은 계속 늘어나고, 나라별로 난민을 향한 저항이 커지고 있는 것입니다.

불교적 관점에서 보면, 위험에 처한 난민은 조건 없이 보살펴야 합니다. 이것은 UN이 내세우는 기본 정신이기도 합니다. 경제적 어려움으로 굶어 죽을 위기에 놓인 난민 역시 보호해야 할 대상입니다. 그러나 정치적 탄압으로 발생하는 난민 보호에 대해서는 국제적 협약이 마련되어 있지만, 경제적 빈곤으로 인한 난민 문제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합니다. 합법적인 절차를 거치지 않은 불법 체류자는 본국으로 돌려보내야 한다는 주장도 있는 것이 사실이에요. 중국의 탈북민 강제 송환 문제가 대표적인 사례이죠.

못 살아서 어쩔 수 없이 떠나는 경우가 아니라, 더 잘 살기 위해 이동하는 난민은 합법적인 절차를 거쳐야 합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정치 난민, 자연재해 피해자 등, 정치적 혼란이나 경제적 빈곤으로 발생한 난민이 모두 뒤섞여서 불법 이민자로 분류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적어도 불법 이민자는 막아야 하지 않느냐’ 하는 주장과 ‘본국에서 살기 어려워 떠난 것이니 난민을 받아들여야 한다.’하는 주장이 서로 상충하고 있습니다. 사실 고향을 떠난다는 것은 살 만한데도 선택하는 일이 아니라 살기 어렵기 때문에 떠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래서 난민을 수용해야 한다는 의견이 생기는 겁니다. 반대로 합법 절차를 거치지 않고 불법 체류하는 사람은 단속해야 한다는 의견도 동시에 있는 거예요.

불교적 관점에서 보면, 누구나 자기가 살고 싶은 곳에서 살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과도한 불법 체류를 일정 부분 규제하지 않으면 사회 질서가 무너지기 쉽고, 그로 인해 많은 저항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최근 미국 조지아주에서 한국 기술자들이 대거 체포·구금된 사건은 단순한 불법 이민 문제와는 성격이 다릅니다. 여행 비자로는 일을 할 수 없게 되어 있지만, 현실적으로 급히 공장을 지어야 하는 상황에서 합법적인 비자 발급 절차가 너무 까다로웠습니다. 그래서 단기 비자로 기술자들을 보내 한두 달간 기술적 지도를 하고 돌아오는 방식을 택했던 것이죠. 엄밀히 말하면 비자의 목적에 맞지 않는 행위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불법 체류를 목적으로 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미국 이민국은 불법으로 보고 체포했는데, 일부 기술자는 비자를 정상적으로 가지고 있었음에도 함께 구금되었습니다. 더구나 쇠사슬을 채운 채 범법자처럼 취급한 것은 지나친 조치였고, 인권 침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한국 기업 입장에서는 미국 정부가 공장을 지어달라고 요청하면서 정작 비자는 내주지 않았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선택한 방법이었습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한국은 미국과 동맹관계에 있는 우방입니다. 얼마 전 한국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해 한미 간 협력을 약속하고 왔잖아요. 그렇다면 최소한 사전 통보가 있어야 했습니다. ‘그동안은 필요에 따라 다소의 불법적 행위를 묵인했지만, 이제는 이민 정책을 강화하겠다. 따라서 1개월 안에 모두 출국하라. 그러면 합법적 비자를 제공하겠다.’ 이런 정도의 통보가 미리 있었다면 납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런 예고 없이 들이닥쳐 기술자들을 쇠사슬로 묶어 구금 시설에 넣은 것은 동맹국 간에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적대 국가에 하는 수준의 조치였습니다. 특히 일부는 합법적 비자를 가지고 있었음에도 잡아갔으니, 한국 국민들이 미국과의 동맹관계에 회의감을 가지는 것이 당연합니다. 미국 사정이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서로가 친구라면 신의와 우애를 보여야 하는데 이번 사태에서는 전혀 그러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같은 시기에 김정은 위원장이 중국 베이징 전승절 행사에 참석해 시진핑 주석, 푸틴 대통령과 각각 정상회담을 하고, 국제무대에서 대등한 대접을 받는 장면이 공개되면서 우리 국민들은 자존심이 더욱 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현상은 당분간 계속될 것입니다. 미국뿐 아니라 유럽 등 다른 나라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민자에 대한 증오와 거부 반응이 점점 더 커질 것이고,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세력들은 대중의 지지를 얻기 위해 이 상황을 이용할 겁니다. 해외에 거주하는 분들은 이런 모습이 불안하게 느껴지겠지만, 하나의 세계적인 현상으로 이해하고 좀 더 유의하면서 생활하면 되겠습니다.”

“스님 말씀을 듣고 나니, ‘경제적 불평등이 모든 문제의 근원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편으로는 당장 어려운 나라를 지원하거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운 지금 상황에서 한 명의 시민으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하는 의문도 생겼습니다.”

“한 명의 시민으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이민자나 난민을 냉대하지 않고 따뜻하게 보살피는 것입니다. 주변에 난민이나 이주자가 있다면 웃어주거나, 일을 할 때 따뜻하게 대해주면 됩니다. 또한 시민단체를 통해 다문화 가정이나 이주자 보호 활동에 참여하는 것도 좋겠습니다. 이주민들이 모이기 편리하도록 장소를 제공해 주는 방법도 있겠고요.

반대로 이주자에 대해 반발하는 사람들도 우리 주변에는 있습니다. 바람직하지는 않지만, 적대감을 가지는 사람들이 있을 수도 있어요. 일부 정치인이나 유튜버가 조회수를 올리기 위해 과장된 정보로 선동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현실을 이해하지 못하면 분노만 생기기 때문에 현실을 잘 파악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잘 알았습니다.”

계속해서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 한 달 동안 보이스 피싱, 교통사고, 독감, 계단에서 굴러떨어지는 일을 한꺼번에 겪었습니다. 이 상황을 수행적으로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 저는 곧 출산을 앞둔 임산부입니다. 아이를 사랑으로 키울 수 있을지 걱정이 됩니다.
  • 남편과 이혼을 하고 혼자서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제가 비즈니스를 하는 곳에서 사람들이 여자 혼자 남자 고객을 만나는 것에 대해 뒷말을 많이 해서 당황스럽습니다.

대화를 마치고 스님이 닫는 인사를 했습니다.

“이곳의 전력과 오디오 상태가 좋지 않았지만, 수행법회를 무사히 마칠 수 있어 다행입니다. 저는 이제 난민촌 답사를 위해 떠나겠습니다.”

생방송을 마치고 오전 9시에 사가잉 민군 난민 캠프를 향해 출발했습니다. 본래 강을 건너면 금방 도착할 거리였지만, 그 지역이 군사지역이라 먼 길을 돌아가야 했습니다. 한 시간 반을 차로 달려 10시 30분에 난민 캠프에 도착했습니다. 캠프 안에는 지진과 분쟁으로 고향을 떠나온 난민들이 터를 잡고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사는 집과 화장실, 물탱크 등을 차례로 둘러보았습니다.

아이들은 대나무로 만든 임시 교실에 옹기종기 모여 공부하고 있었습니다.

먼저 INEB(국제참여불교네트워크)에서 준비해 온 학용품을 아이들에게 전달했습니다.

현장을 둘러본 뒤 난민 캠프 가까이에 있는 티피타카 니카야 사원(Tipitaka Nikaya Monastery)에서 점심을 먹은 후 난민 캠프를 운영하는 스님들과 함께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먼저 스님이 현장을 직접 보고 느낀 점을 나누었습니다.

“어제저녁에 이곳 난민 캠프의 상황에 대한 설명을 잘 들었습니다. 오늘 직접 와서 둘러보니 여러 가지 부족한 점이 많긴 하지만, 그래도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는 괜찮았습니다. 방글라데시 콕스바자르에 가면 로힝야 난민들이 백만 명 넘게 살고 있습니다. 거기는 UNHCR을 비롯하여 유엔 기구가 직접 관리를 하고 있어서 주민들이 자유롭게 다닐 수가 없어요. 울타리가 쳐져 있고, 외부와 차단된 채 많은 통제를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는 그래도 사람들이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다는 점이 다릅니다. 그러나 사람이 살아가려면 물을 마실 수 있어야 하고, 밥을 먹어야 하고, 옷도 입어야 합니다. 그리고 비를 피할 수 있는 천막이라도 있어야 하고, 아프면 약도 먹을 수 있어야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마지막 유언으로 ‘고통받는 사람을 돕는 것은 바로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는 것과 같은 공덕이 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여러분은 매일매일 그런 공덕을 짓고 있는 겁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르면, 이렇게 어려운 사람을 돕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불사입니다. 그래서 저희 정토회에서도 사람들이 기부한 돈을 절 짓는 데 쓰지 않고, 이렇게 어려운 사람을 돕는 데 쓰고 있습니다.”

이어서 난민 캠프에서 가장 시급한 품목이 무엇인지 집중적으로 논의를 했습니다. 우선 JTS에서 식수, 식량, 생필품, 약품, 학용품 지원을 하기로 하고 대화를 마쳤습니다.

스님은 난민 캠프를 운영하는 스님들에게 영문으로 번역한 스님 저서를 선물한 뒤 사원을 나왔습니다.

다음으로 방문한 곳은 쉐 얀 린 민 캬웅 사원(Shwe Yan Lin Min Kyaung Monastery)입니다.

이곳에는 학생 486명과 사미 68명이 함께 공부하고 있는 학교입니다. 학교는 지진으로 부서지고, 대나무로 임시 교실을 지어 수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사원은 전반적으로 잘 정돈되어 있었고, 교육 환경도 비교적 안정적이었습니다. 그래서 교실 10개를 새로 신축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30분 동안 학교를 둘러보고 자리를 옮겼습니다.

오후 3시부터는 난민들에게 JTS 구호 물품을 전달했습니다. 난민촌 내에 있는 137가구에 쌀, 식용유, 병아리콩, 치킨파우더, 마마누들, 녹차 등 기본 식량을 배분했습니다.

키티사라 스님이 사전에 잘 준비해 준 덕분에 물 흐르듯 원활하게 물품을 전달할 수 있었습니다. 가벼운 것부터 무거운 것 순으로 물품을 나누고, 자원봉사자들이 옮기는 것을 도왔습니다.

물품 전달을 마치고 할머니들이 찾아와 정말 고맙다고 인사를 했습니다.

오후 4시에는 만달레이에서 규모가 큰 학교 중 하나가 있는 파웅 다우 우 사원(Phaung Daw Oo Monastic School)을 방문했습니다. 이곳은 전쟁 피해 아동들을 포함해 약 1,500명의 학생들이 기숙하고, 7,000여 명의 학생이 공부하고 있는 교육기관으로, 승려와 일반 학생들이 함께 생활하며 배우는 공간입니다.

이 학교에는 미얀마 내 여러 민족 출신의 아이들이 함께 공부하고 있었습니다. 일부는 지진 피해 이후 유입된 경우도 있다고 했습니다. 아이들은 대체로 무료로 수업을 받고 있었으며, 음식도 일부는 기부로, 일부는 자급자족 형태로 해결하고 있었습니다.

운영 책임자인 스님과 차담을 하며 교사 급여나 교과서 구입비 등 운영에 필요한 재정 상황을 물어보았습니다. 사원은 정부의 지원 없이 독립적으로 학교를 운영하고 있었고, 교사들의 월급도 대부분 자체적으로 해결하고 있었습니다. 주로 해외의 국제기구로부터 기부금을 받아 운영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사찰에서 운영하는 일요 담마스쿨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전쟁 전에는 5,000여 곳의 사찰에서 일요 담마스쿨을 운영했지만, 현재는 250곳만 열고 있다고 합니다. 특히 담마스쿨의 교과서 인쇄비 부담이 크다고 말했습니다. 연간 약 3,000권이 필요한 상황이지만, 재정적 어려움으로 인해 전부를 인쇄하기 힘들다고 했습니다.

차담을 마치고 스님은 총무 스님에게 영어로 번역한 스님의 책을 선물하고 사원을 나왔습니다.

오후 5시 40분에는 키티사라 스님이 운영하는 명상 센터(Bodhi Aye Nyein Meditation Center)를 방문했습니다. 이곳은 2020년에 완공된 명상 센터로, 연중 정기적인 명상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었습니다.

과거에는 한 세션에 50명이 참여할 정도로 활발했지만, 현재는 내전과 지진으로 인해 평균 20명으로 다소 줄어든 상태였습니다. 그래도 키티사라 스님은 꾸준히 명상 지도를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명상 센터를 나오자 노을이 지고 있었습니다.

명상 센터를 둘러보고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저녁 7시 20분부터는 이틀간 다섯 곳의 교육시설과 난민촌을 방문한 일정을 마무리하며, 전체 평가 및 추후 지원 방향을 논의했습니다.

논의 결과 지원이 필요한 곳으로는 쉬 샷 쨔 넌너리와 사가잉 민군 난민 캠프가 선정되었습니다. 쉬 샷 쨔 넌너리는 시설이 매우 열악해서 시설 개선이 시급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사가잉 민군 난민 캠프는 아이들과 주민들이 비교적 자유롭게 생활하고 있었으나, 식량, 위생용품, 약품, 학용품 등 기본적인 생활필수품이 부족한 상황이었습니다. 이에 따라 쌀과 기름을 포함한 식량을 연 4회 분기별로 제공하고, 생활용품과 약품은 필수 품목 위주로 지원하기로 했습니다. 학생들에게는 학기 초마다 연 2회 학용품을 제공하고, 운동 기구는 추후 논의를 거쳐 결정하기로 했습니다.

그 외에 담마 군 이 민트 민트 킨 넌너리는 기존 건물을 보수하는 방향으로 제안해 보고, 쉐 얀 린 민 캬웅 사원의 학교는 어느 정도 자부담을 할 수 있는지 여부와 견적서를 기준으로 지원 여부를 검토하기로 했습니다. 파웅 다우 우 사원의 학교는 이미 다양한 단체의 도움을 받고 있었기에, 별도 지원은 하지 않고 방문 기념으로 운동 기구를 지원하기로 했습니다.

스님은 미얀마 방문 일정을 준비해 준 키티사라 스님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이번 방문 준비를 아주 잘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우리가 이 일을 하는 건 키티사라 스님에 대한 신뢰가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회의한 내용은 JTS 이사회에서 논의하여 최종 결정을 하겠습니다. 그 후에 이 일에 대해 공식적인 협약을 맺겠습니다. 너무 무리하지 말고, 할 수 있는 만큼만 하세요. 키티사라 스님이 할 수 있는 만큼 JTS에서도 지원하겠습니다.”

스님은 키티사라 스님을 격려하며 영문으로 번역한 스님의 책을 선물했습니다.

밤 9시가 되어 회의를 마쳤습니다. 스님은 원고 교정을 한 후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내일은 미얀마를 떠나 캄보디아로 이동해, 바탐방에 있는 사하눅 라자 불교대학을 방문하여 여학생 기숙사 추가 건설 문제에 대해 논의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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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빛

지구촌 어렵게 근근히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스님의 답사를 통해서 알게되니 더이상 불평하지 않고 지금에 만족하며 고마운마음으로 살아야겠습니다. 스님께서 무탈하게 다녀오시길 기도하며 jts활동에 적극동참하겠습니다.()

2025-09-20 07:58:10

정태식

“아무런 예고 없이 들이닥쳐 기술자들을 쇠사슬로 묶어 구금 시설에 넣은 것은 동맹국 간에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적대 국가에 하는 수준의 조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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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대전이 끝나고 우리나라가 해방이 된 후 민간에서 떠돌던 말이 생각났습니다.
‘소련에 속지 말고, 미국을 믿지 마라. 일본이 일어선다.’

2025-09-20 07:21:51

차차덕환

스님의 난민구호 활동하는 모습을 보고 감동을 받아 더 보람되게 살아야되겠다는 다짐을 합니다.

2025-09-20 07: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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