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5.9.14. 유럽 순회강연(7) 이스탄불(Istanbul)
“사소한 일에도 사과를 요구하는 딸, 문제는 아이일까요 저일까요?”

안녕하세요. 오늘은 법륜 스님의 유럽 순회강연 중 일곱 번째 강연이 튀르키예에서 가장 큰 도시인 이스탄불(Istanbul)에서 열리는 날입니다.

어젯밤 7시 25분에 밀라노를 출발한 비행기는 아테네를 경유하여 현지 시각으로 새벽 2시 20분에 이스탄불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스님은 비행기 안에서 쪽잠을 잤습니다.

공항을 나오자 한인회 회장 김정호 님이 마중을 나와 스님을 반갑게 환영해 주었습니다. 한인회 회장 님이 운전을 해주어서 새벽 4시에 숙소에 도착하여 짐을 풀고 휴식을 취했습니다.

충분히 휴식을 하고 피로를 푼 후 오전 10시부터 정토회 전법행자대회에 온라인으로 참석했습니다. 모든 전법회원들이 온라인 공간에 모여서 정토회 전체 사업을 공유하고 제안하는 자리입니다. 2차 만일결사를 시작하고 나서 여섯 번째로 열리는 전법행자대회입니다.

한국에 있는 전법회원들은 오전 9시부터 하루 종일 사업보고와 사업계획을 공유받고 열띤 토론을 마친 후 오후 4시가 되었습니다. 스님이 화상회의 방에 입장하자 전법회원들은 하루 종일 토론하면서 들었던 의문과 궁금한 점에 대해 스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한 시간 동안 질의응답 시간을 가진 후 삼배의 예로 스님에게 회향 법문을 청했습니다. 스님은 혼란이 커지고 있는 세계 곳곳의 상황을 전하며 전법회원들이 어떤 마음가짐으로 활동을 해나가야 하는지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최근 며칠 사이 여러 나라에서 돌발 사태가 잇따라 일어나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우리 국민 300명 이상이 체포되어 구금되는 일이 있었습니다. 네팔에서는 MZ세대 젊은이들의 불만이 폭발해 폭동이 일어났고, 수십 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분노한 젊은이들의 방화가 계속되면서 사실상 무정부 상태가 되었습니다. 제가 영국에 도착하던 날은 지하철 파업으로 공항에서 강연장까지 오는 데 세 시간이 걸렸습니다. 프랑스에 도착했을 때도 시위대가 불을 지르고 철도 파업이 벌어져 기차를 못 탈 뻔하기도 했습니다.

세계 곳곳에서 이어지는 혼란, 평화는 왜 더 멀어질까요?

지금 이스탄불에 와 있는데, 여기서는 대법원이 야당 해산 명령을 내려 정세가 몹시 불안합니다. 오늘 강의가 무산될 수도 있었는데 다행히 교민 강의는 예정대로 진행될 것 같습니다. 얼마 전 인도네시아에서는 폭동과 시위가 일어나 현지 강연과 교민 강연이 모두 취소되기도 했습니다. 이렇듯 세계는 지금 매우 불안정한 상태에 놓여 있습니다.

큰 흐름으로 보면 미·중 간의 패권 경쟁은 점점 더 치열해지고 있습니다. 중국·러시아·북한의 협력 관계가 강화되는 모습도 뚜렷합니다. 이스라엘은 주변국인 시리아, 이란은 물론 이번에는 카타르까지 폭격하며 국제사회의 규칙을 무시하고 폭군처럼 행동하고 있습니다. 가자 지구에서는 끔찍한 학살이 벌어지고 있지만, 국제사회는 사실상 방치하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극우 활동에 반대하던 한 젊은이가 암살 사건을 일으켰습니다. 또 뉴욕 시장 선거에 출마한 30대 젊은 후보가 ‘집값 동결’, ‘지하철 무료’ 같은 좌파적 포퓰리즘 공약을 내세워 무려 46퍼센트의 지지를 얻고 있습니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이 나서서 공화당, 민주당, 무소속을 가리지 않고 반대 진영을 규합해 막으려 하고 있습니다. 유럽에서는 외부 이민에 반대하는 극우 정당들이 각 나라에서 지지율 1위를 차지하며 세력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네팔 사례에서 보듯이 빈부 격차가 심화되면서 세계 곳곳에서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불만이 쌓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세상이 몰라줘도 좋은 인연을 지어야 하는 이유

이 모든 것은 우리가 평화를 위해 노력한다고 해서 곧장 평화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렇다고 ‘해봐야 소용없다.’ 하고 손 놓을 일은 아닙니다. 오히려 이런 혼란의 시대일수록 더욱 인권을 존중하고, 평화를 지켜내며, 어려운 사람을 돕고, 빈부 격차를 줄이고, 기후 위기를 막는 데 힘써야 합니다. 물론 우리가 최선을 다하더라도 세상의 거대한 흐름에 묻혀 성과가 드러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쓸데없는 짓을 한다.’는 비난을 들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시야를 50년, 100년 앞으로 넓혀 본다면, 결국 세상은 우리가 걸어가려는 이 길로 나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공멸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노력은 지금 당장은 빛나지 않더라도 먼 훗날 빛을 발할지도 모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도 그렇습니다. 오늘날 불법은 전 세계로 퍼져 있지만, 부처님 당시부터 불교가 인도 전 사회를 석권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때 부처님은 수많은 스승 가운데 한 사람이었고, 불교보다 훨씬 더 큰 수행 집단과 종교 집단들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진실을 추구하는 가르침은 광풍이 한차례 지나간 뒤에야 빛을 발할 수 있었습니다. 광풍이 몰아칠 때는 오히려 그 광풍에 편승한 포퓰리즘적 주장들이 더 빠르게 성장해 마치 성공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대지에 깊이 뿌리내린 나무처럼 믿음을 굳건히 하고, 가야 할 방향을 분명히 하며 흔들리지 않아야 합니다. 즉문즉설, 불교대학, 행복학교 등을 통해 많은 사람이 혜택을 입고 감사하지만, 그 뒤에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봉사하는 이들의 노력이 있습니다.

사람 마음이라는 게 좋은 일은 조금만 해도 이름을 크게 내고 싶고, 나쁜 일은 많이 하고도 감추고 싶어 합니다. 그러다 보니 균형이 깨지게 됩니다. 우리는 멀리 내다보며 좋은 일을 꾸준히 이어가야 합니다. 세상이 알아주든 말든, 인연을 지으면 반드시 과보가 있기 때문입니다. 좋은 인연을 지어 미래의 복을 쌓고, 나쁜 인연을 짓지 않아 재앙을 피하는 길로 한 발 한 발 꾸준히 나아가야 합니다.

만약 좀 지쳤다면, 방향이 분명치 않거나 목표가 능력보다 지나치게 높거나, 혹은 지혜가 부족해 일을 제대로 운영하지 못한 탓일 수 있습니다. 예컨대 30분이면 끝날 회의를 준비 부족으로 인해 1시간씩 하게 된다면 비효율적이 되고, 재미도 없고, 피로만 쌓이게 됩니다. 이런 부분은 고쳐야 하겠죠. 오늘 전법행자대회에서도 많은 건의가 나왔는데, 그런 제안들을 수용해서 더 효율적으로 정토회를 운영해야 합니다. 또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과한 욕심은 내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3년 일하고 끝낼 사람들이 아니라 오래도록 함께 걸어가야 할 사람들입니다. 일을 추진하는 회원들의 건강과 신심을 지켜주려면, 그들이 지속적으로 힘을 낼 수 있도록 수행과 교육, 연수가 계속 진행되어야 합니다. 외부에 얼마나 전법을 많이 하느냐도 중요하지만, 그 일을 해내는 사람들을 얼마나 잘 보살피느냐도 매우 중요합니다.

그런 관점에서 오늘 여러분이 제안한 건의들을 상임 천일준비위원회에서 잘 수용해 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개선할 것은 개선하고, 보충할 것은 보충하고, 고칠 것은 고쳐 나가는 밑거름으로 삼았으면 좋겠습니다.”

스님의 법문을 되새기며 사홍서원을 한 후 전법행자대회를 모두 마쳤습니다.

생방송을 마치고 숙소에서 점심식사를 했습니다. 점심식사를 한 후 오후 3시에 강연장을 향해 출발했습니다. 숙소에서 강연장까지 거리는 15km밖에 안 되지만 교통 체증이 심해 한 시간 반이 걸렸습니다.

오늘 강연이 열리는 곳은 이스탄불 사리예르 지역의 보스포루스 해안가에 위치한 튀르키예 한인회관입니다. 이스탄불과 튀르키예 전역에 거주하는 한인들이 모여 교류하고, 한국 문화를 전파하며, 다양한 행사를 열 수 있도록 마련된 회관입니다. 오늘은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이 이곳에서 열렸습니다.


스님이 강연장에 들어서자 봉사자들이 반갑게 스님을 환영해 주었습니다.

강연장에 도착해 전 한인회장 김영훈 님과 함께 차담을 나누었습니다. 김영훈 님은 이스탄불에서 강연이 열릴 수 있도록 도와주고, 스님이 이스탄불에 머무는 동안 운전 봉사도 맡아주었습니다.

오후 5시가 되자, 35명의 한국 교민이 모인 가운데 스님을 소개하는 영상이 상영되었습니다. 강연이 취소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돌았던 탓인지, 사전에 강연을 신청한 분들 중 많은 이들이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영상이 끝나자 큰 박수가 터져 나왔고, 스님은 박수를 받으며 무대로 걸어 나왔습니다.

스님은 환하게 웃는 얼굴로 인사말을 했습니다.

“11년 만에 이스탄불에서 강연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2014년에 강연을 할 때는 수도원에서 강연을 했는데, 오늘은 한인회관에서 하니까 훨씬 좋습니다. 오실 때 길이 많이 막히지 않았어요? 저는 성 소피아 성당 근처에 있는 숙소에 묵었는데, 여기까지 오는데 한 시간 반쯤 걸렸습니다.”

이어서 사전에 질문을 신청한 네 명과 스님이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이어서 즉석에서도 두 명의 질문을 더 받았습니다. 두 시간 동안 여섯 명이 다양한 인생 고민에 대해 스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그중 한 명은 남편에게는 사과를 요구하면서 딸의 사과 요구에 대해서는 이상하게 여기는 자신의 태도가 올바른지 스님에게 조언을 구했습니다.

사소한 일에도 사과를 요구하는 딸, 문제는 아이일까요 저일까요?

“제 성격은 뒤끝이 긴 것 같습니다. 남편이 서운한 행동을 하면, 반드시 사과하고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고 말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제가 그런 얘기를 꺼내면 남편은 잘 기억을 못 합니다. ‘지금 안 그러면 됐지, 그게 왜 문제야?’라고 말합니다. 그런 남편을 보며 저는 남편이 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딸이 둘 있는데 첫째가 조금 잘 삐집니다. 제 눈에는 아주 사소한 일인데도 사과를 요구해요. 그런데 남편에게 요구하는 사과는 일반적으로 사과할 만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딸이 요구하는 사과는 아이가 예민해서 그런 것 같다고 여깁니다. 그래서 혹시 아이가 학교에서도 사소한 일마다 사과를 요구하면 친구를 잃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제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걸까요? 남편에게는 사과를 요구하면서, 딸에게는 ‘이 정도로 사과를 요구하는 건 이상하다.’라고 해도 되는 걸까요?”

“그 딸을 누가 낳았어요?”

“제가 낳았습니다.”

“누가 키웠어요?”

“제가 키웠습니다.”

“내가 낳고 키운 딸이 누구를 닮았을까요?”

“저를 조금 닮았고, 남편과 시댁 쪽도 반반 닮은 것 같습니다.”

“잘하면 내 덕이고, 못하면 남편 탓이라는 거네요. 내가 낳고 키웠으면 사실 다 나를 닮은 거예요. 그런데 우리는 흔히 ‘애가 크더니 누구를 닮았다.’라고 하는데 사실 웃긴 얘기예요. 질문자가 남편에게 ‘당신이 사과해야 하지 않아?’라고 마음을 내면, 아이는 말을 하지 않아도 그 마음을 고스란히 닮아갑니다. 부모와 자식 사이에는 마음이 그대로 전이되기 때문이에요. 엄마와 아이는 서로 말하지 않아도 무의식 속에서 연결이 일어납니다. 아이는 부모가 하는 말과 행동만 닮는 게 아니라 마음속에 품은 정서까지 닮습니다. 그러니 질문자를 본받아 그런 모습을 보이는 거예요. 하늘에서 떨어진 게 아니고, 다른 곳에서 배운 것도 아닙니다.

내가 남편에게 ‘사과해야 하지 않나’라고 생각하듯, 아이도 엄마에게 ‘엄마가 사과해야 하지 않나’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아이가 사과를 요구할 때 질문자도 ‘이게 무슨 사과해야 할 일이야?’라고 생각하듯 남편도 똑같이 생각하는 겁니다. 지금 질문자는 그 중간에 서 있는 겁니다. 남편 입장에서 보면 아내가 문제이고, 아이 입장에서 보면 엄마가 문제지만, 질문자는 양쪽 사이에 있어요. 그럼에도 ‘남편이 문제다.’, ‘아이가 문제다.’ 이렇게만 본다면 자기중심적인 겁니다.

아이에게 하는 나의 반응을 보며 남편을 이해하고, 남편에게 하는 나의 반응을 보며 아이를 이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아이를 통해 남편을 이해하고, 남편을 통해 아이를 이해하는 거예요. 이렇게 하면 남편에 대해 ‘내가 좀 예민했구나’ 하고 반성하여 따지지 않을 수 있고, 아이에 대해 서운할 수 있다는 점을 이해하여 ‘엄마가 잘못했네, 미처 생각을 못 했구나.’ 하고 사과할 수 있습니다. 자연스럽게 양쪽 사이에서 저절로 공부가 될 겁니다.”

“그런데 저는 좀 억울합니다. 남편한테는 내가 사과하라고 요구하지 말아야 하고, 딸한테는 또 내가 사과를 해야 한다고 하면, 나만 참고 살아야 하잖아요.”

“나를 중심에 놓고 보면 그런 생각이 들 수 있겠죠. ‘남편이 사과를 안 하면 나도 아이한테 사과를 안 해야지.’, ‘내가 아이에게 사과하면 남편도 나한테 사과해야지.’ 이런 식으로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데 잘 생각해 보면 양쪽 입장을 통해서 내가 배우는 게 있어요. 억울할 게 아니라 오히려 질문자가 혜택을 받는 겁니다.

남편은 자기 입장밖에 모르고, 아이도 자기 입장밖에 모릅니다. 그런데 질문자는 두 사람을 보며 가해자 입장과 피해자 입장을 모두 이해할 수 있잖아요. 남편은 굳이 말하면 가해자 입장인데, 대부분의 가해자는 ‘뭐가 문제야?’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어릴 때 엄마한테 야단맞아 상처가 남은 사람이 있습니다. 나이 들어서 엄마에게 ‘옛날에 왜 그렇게 모질게 굴었어?’하고 묻지만, 엄마는 ‘내가 언제 그랬니? 다 너 잘 되라고 한 거지.’ 이렇게 말하죠. ‘내가 어린 너한테 크게 잘못했구나.’라고 인정하는 부모는 열에 한 명, 백에 한 명도 없을 겁니다. 반면 피해자는 사과를 끝까지 원합니다.

이런 차이는 뇌의 작용과 관련이 있습니다. 유튜브에서 법륜스님 강연을 클릭하면, 옆에 비슷한 영상들이 줄줄이 이어집니다. 몇 개만 보면 화면이 온통 법륜스님 영상으로 도배가 되어 마치 세상에 법륜스님밖에 없는 것처럼 보일 정도예요. 요즘 일부 보수층에서 투표가 부정선거라고 주장하는 것도 같은 원리입니다. 평소에는 믿지 않던 사람도 관련 영상을 몇 개만 보면 머릿속이 그 생각으로 가득 차 버립니다. 그것처럼 인간의 뇌도 같은 자극이 반복되면 자동화하는 습성이 있어요. 이것을 습관 혹은 성질이라고 합니다. 똑같은 것을 반복하면 뇌는 에너지를 적게 쓰고 효율적으로 처리하려고 자동화합니다.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했다.’라고 하거나 ‘나도 모르게 했다.’라고 하는 말이 바로 이 자동화 시스템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이렇게 자동화가 진행되면 무의적으로 움직이면서도 강한 자기 확신을 갖게 됩니다. 처음에는 잘 안 믿다가도, 같은 말을 반복해서 들으면 결국 실제라고 착각하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남편과 갈등이 생기면 ‘남편이 잘못했어, 나는 억울해.’하는 생각이 먼저 떠오릅니다. 그러면 뇌가 유튜브 알고리즘처럼 작동해 3일 전 일, 10년 전 일, 심지어 연애 시절 일까지 줄줄이 끌어옵니다. 전혀 떠오르지 않던 기억까지 새록새록 되살아나면서 결국 ‘남편이 잘못했고 내가 옳다.’하는 확신이 굳어집니다.

하지만 가해자 입장은 다릅니다. 조금 미안한 마음은 있지만 대부분 금세 잊어버려요. 예를 들어 아침에 부부싸움을 했다면, 아내는 집안일을 하면서 계속 곱씹지만, 남편의 머릿속은 회사 일과 다른 사람들과의 만남 속에 금세 다른 생각으로 채워집니다. 마치 유튜브에서 다른 영상을 보느라 처음 봤던 영상이 밀려나는 것과 같아요. 아내는 하루 종일 같은 영상만 반복해서 본 것이고, 남편은 다른 영상을 본 것입니다. 그래서 남편이 퇴근해 오면 아내는 ‘이제 나한테 사과하겠지.’ 하고 기대하지만, 남편은 전혀 그럴 생각이 없습니다. 그러면 아내는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며 문제를 제기하고, 남편은 ‘아침에 다 끝난 얘기 아니냐’며 짜증을 냅니다. 결국 아내는 ‘나를 그렇게 아프게 해 놓고 아무 책임도 안 진다.’하는 생각에 도달하게 됩니다. 이렇게 갈등이 점점 증폭됩니다. 이것이 흔히 일어나는 갈등의 구조입니다.

아이와 엄마 사이에도 이런 일이 벌어집니다. 엄마는 별생각 없이 ‘언니니까 좀 참아라.’, ‘동생이 덤비니까 야단맞는 거지.’하고 상황에 따라 말합니다. 그런데 나중에 상담해 보면, 동생은 ‘엄마는 늘 언니 편만 들었다.’라고 하고, 언니는 ‘엄마는 늘 동생 편이었다.’라고 기억합니다. 부모는 대수롭지 않게 던진 말이었는데, 아이는 그 말을 상처로 간직한 거예요. 나중에 엄마에게 사과를 요구하지만 엄마는 ‘그게 뭐 대수냐, 다 너 잘되라고 한 말이지.’하고 넘어가 버립니다. 엄마는 잊었는데 아이에게는 피해 의식으로 남아 있는 것이지요.

지금 질문자도 남편에게 피해를 입은 일을 말하지만, 남편은 ‘별일 아닌데 왜 그래?’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깁니다. 그러면 질문자는 억울해서 또 얘기하게 되고, 갈등은 계속 이어지죠. 질문자는 지금 가해자 입장과 피해자 입장을 동시에 겪고 있어요. 가해자가 꼭 나빠서가 아니라, 관계 속에서 자연스럽게 가해자가 되기도 하고 피해자가 되기도 하는 거예요. 여기에 2차 피해, 3차 피해라는 것도 있어요. 가해 의식이 별로 없는 사람이 억울해서 해명하려고 한 말이, 피해자에게는 또 다른 상처가 되는 겁니다. 요즘은 이런 경우가 아주 심각합니다. 가해자는 단순히 억울해서 한마디 했을 뿐인데, 그것이 변명처럼 들리면서 2차, 3차 피해로 이어집니다. 그래서 성추행 같은 사건은 아예 해명조차 못 해요. 입을 열면 그대로 2차, 3차 피해가 되기 때문이에요.

한일 관계도 마찬가지예요. 아베 총리가 ‘도대체 언제까지 사과해야 하느냐. 앞으로는 더 이상 사과하지 않겠다.’라고 말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 태도에 한국 사람들은 상처를 받습니다. 진솔한 사과를 요구하면, 일본 측은 ‘예전에 사과를 했는데 왜 자꾸 얘기하느냐’ 이런 식으로 나옵니다. 그러니 갈등이 해소되지 않는 거예요. 하지만 일본만 탓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사고체계 자체가 그렇게 작동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마음공부를 해야 합니다. 마음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원리를 알면 이런 갈등에서 벗어날 수가 있는데, 원리를 모르면 끝없이 자기주장만 하게 됩니다.”

“그러면 저는 어떻게 해야 될까요?”

“남편에 대해서는 ‘남편에게는 이 일이 별일 아니었구나. 내가 좀 민감했구나.’ 이렇게 생각하면 됩니다. 아이에 대해서는 ‘어른이 보기엔 별일 아닐지라도 아이에게는 큰일이 될 수 있구나.’ 이렇게 생각해야 합니다. 아이에게 자세히 물어보고 아이가 상처를 입었다면 ‘엄마가 좀 무심했다. 네 마음을 몰라주고 말하다 보니 네가 상처를 입었구나. 미안하다.’ 이렇게 얘기해야 합니다. 엄마가 잘하고 잘못하고를 떠나 아이는 피해를 입은 거예요”

“그럼 남편한테도 사과를 요청하지 말아야 하나요?”

“사과를 요청할 수는 있습니다. 다만 한일 관계처럼 역사적 문제라면 그만두기 어렵겠지만, 부부 사이에서는 굳이 계속 따질 필요는 없습니다. 문제 제기는 해볼 수 있어요. 남편이 잘못했다고 말하면 다행이고, ‘다 지나간 일이잖아, 지난번에 얘기했잖아.’ 이렇게 나온다면 ‘저 사람 머릿속에는 이미 지나가버린 일이구나.’ 하고 이해하면 됩니다. 두 번, 세 번 반복해서 꺼낼 필요는 없습니다.”

“감사합니다. 잘 알았습니다.”

계속해서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 남편이 일찍 돌아가시고, 아이들을 키워 해외로 유학까지 보내고 나니 혼자 남은 기분입니다.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야 할까요?

  • 신심이 가득한 무슬림 남편이 종교에 흥미를 잃은 아이들에게 종교를 강요합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 아이들을 위해 최고의 선택을 하고 싶은데, 자꾸 우유부단해지고 선택을 미루게 됩니다. 지혜로운 선택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세요.

  • 딸이 사춘기입니다.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릴 때 어떻게 해야 하나요?

  • 해외 주재원으로 이스탄불에 와있습니다. 회사에서 남들보다 더 잘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어떻게 해소할 수 있을까요?

가족, 신앙, 자녀 교육, 그리고 일터에서의 압박감까지 다양한 삶의 주제들이 솔직하게 오갔습니다. 스님은 이에 하나하나 답변하며 청중과 소통했습니다. 저녁 6시 30분이 되어 큰 박수와 함께 강연을 마쳤습니다.

강연을 마치고 참가자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강연을 준비한 봉사자들과도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모두 수고 많으셨습니다.”

봉사자들은 고마움과 뿌듯함을 나누며 자리를 정리했습니다. 이어서 묘덕법사님과 함께 마음 나누기 시간을 가졌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마련된 즉문즉설이었습니다. 자원봉사자들이 한마음으로 강연을 준비해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터키 1.5세입니다. 11년 전 법륜스님 강연에 참석하지 못해 아쉬웠는데, 이번에 이렇게 함께할 수 있어 너무 뜻깊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다음에도 꼭 봉사하고 싶습니다.”

“11년 전 강연에서 질문을 했다가 크게 얻어맞은 경험이 있습니다. 그때 감사한 마음이 너무 커서 이번에도 꼭 참가하고 싶었습니다.”

“법륜스님을 이스탄불에서 직접 뵙게 되어 정말 반가웠습니다. 앞으로 이스탄불에도 정토회를 만들고 싶다는 소망이 생겼습니다.”

스님은 튀르키예 전 한인회장을 역임한 김영훈 님이 스님에게 식사 초대를 해서 함께 식당으로 이동했습니다. 식사를 하며 많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밤 9시 30분에 숙소에 도착하여 하루 일과를 마무리했습니다.

내일은 오전에 이스탄불 시내에 있는 톱카프 궁전 박물관을 둘러본 후 점심에는 주 이스탄불 대사관의 총영사님과 식사를 하고, 오후에는 동남아 답사를 하기 위해 이스탄불 공항을 출발하여 방콕 공항으로 이동할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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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오행

늘 함께 합니다.고맙습니다.()()()

2025-09-17 08:20:19

김종근

감사합니다

2025-09-17 08:04:22

무명인

댓글이 왜 이 모양이 되었을까요 ㅠ 늘 댓글 보고 감동을 받았는데

2025-09-17 07:5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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