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검색
원하시는 검색어를 입력해 주세요
안녕하세요. 오늘은 유럽 순회강연 중 세 번째 강연이 네덜란드의 수도인 암스테르담에서 열리는 날입니다.
스님은 새벽 2시에 기상하여 수행과 명상을 한 후 수행법회 생방송 준비를 했습니다.
파리 현지 시각으로 새벽 3시, 한국 시각으로 오전 10시 정각에 수행법회 생방송을 시작했습니다. 정토회 회원들이 모두 화상회의 방에 입장하자 삼귀의와 반야심경을 봉독하고, 지난 일주일 동안 정토행자들의 활동 모습을 영상으로 보았습니다.
영상이 끝나고 대중이 삼배의 예로 법문을 청하자 스님이 인사말을 했습니다.
“저는 지금 파리에 있습니다. 10차 백일기도 입재식을 마치고 그날 저녁에 한국을 출발하여 영국 런던에 도착했습니다. 런던에서 즉문즉설 강연을 한 후 어제는 파리로 이동하여 불어 통역으로 즉문즉설 강연을 했습니다. 어제저녁에는 한국 교민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한 후 밤 11시가 넘어서 숙소에 들어왔습니다. 현재 이곳의 시각은 새벽 3시입니다. 졸려서 눈이 감기고 있는 그런 상태입니다. (웃음)
어제 영국은 아침 기온이 7도까지 떨어질 정도로 쌀쌀했습니다. 여름이라고 생각해서 가볍게 옷을 챙겨 왔더니 오히려 추위를 느낄 만큼 유럽은 지금 가을이 성큼 다가와 있네요. 파리 역시 매우 선선하고 날씨도 맑아 깊은 가을을 연상케 합니다. 수행법회가 끝나면 곧바로 기차를 타고 암스테르담으로 이동하여 순회강연을 이어갈 예정입니다.
며칠 전 백일기도 입재를 했으니, 여러분도 오늘 아침에 빠짐없이 정진을 하였으리라 생각합니다. 이번 백일기도는 2-1차 천일결사의 마지막 백일기도인 만큼 하루도 빠짐없이 정진을 이어 갈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해 봅시다.”
이어서 사전에 질문을 신청한 분들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한 시간 동안 네 명과 대화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각각의 질문에 대해 답변을 모두 하고 나니 어느덧 한 시간이 지났습니다. 다음 주 이 시간에는 동남아 답사 중에 온라인으로 다시 만나기로 하고 수행법회를 마쳤습니다.
간단하게 아침 식사를 한 후 5시 20분에 숙소를 나와 기차를 타기 위해 파리 북역으로 이동했습니다.
탑승 수속을 마친 후 배웅 나온 회원들과 인사를 나누고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기차는 아침 6시 22분에 파리 북역을 출발해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으로 향했습니다. 3시간 26분을 달려 9시 48분에 암스테르담 스키폴(Schiphol) 기차역에 도착했습니다.
스님이 기차에서 내리자 암스테르담에 거주하는 정토회 회원들이 반갑게 환영을 해주었습니다.
몇 년 전 INEB 정토회 견학 프로그램에 참가했던 묘하이 스님도 도착 시간에 맞춰 기차역까지 마중을 나왔습니다. 묘하이 스님은 스님을 보자마자 땅바닥에 무릎을 꿇고 절을 했습니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김미경 님의 댁으로 함께 이동했습니다. 김미경 님 댁에 도착하자 이번 암스테르담 강연을 준비한 봉사자들이 스님을 찾아와 삼배로 인사를 했습니다.
스님은 묘하이 스님과 점심을 먹으며 세계 명상 협회가 추진하는 국제 명상 행사에 대해 두 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먼저, 오는 12월 21일 동지를 맞아 열릴 세계 명상의 날 행사에 대해 의견을 모았습니다. 이날은 유엔이 지정한 세계 명상의 날로, 영국 그리니치 천문대 기준 낮 12시에 맞춰 전 세계가 동시에 명상에 들어가기로 했습니다. 한국 시간으로는 저녁 9시부터 15분 동안 명상이 진행되며, 줌과 유튜브를 통해 전 세계 참가자들이 온라인으로 함께할 수 있도록 사전 홍보를 하기로 했습니다.
이어서 내년 3월 춘분에 열릴 제2차 명상 심포지엄에 대해서도 논의했습니다. 불교, 기독교, 이슬람, 힌두교, 유대교 등 각 종교의 명상 전문가들을 초청하여 서로의 전통을 나누고, 공통점을 찾아가자는 취지입니다. 주최는 세계 명상 협회와 정토회가 공동으로 맡고, 기획은 세계 명상 협회가, 행사 운영은 정토회가 담당하기로 뜻을 모으고 미팅을 마쳤습니다.
이후 스님은 숙소로 이동해 묘하이 스님, 정토회 국제협력팀, 그리고 국제지부 담당 법사님과 화상회의를 했습니다. 방금 전 논의된 명상 심포지움에 대한 내용을 공유하고, 정토회 내부 논의 단위에서 의논하고 결정하기로 했습니다.
오후 5시에 저녁 식사를 한 후 6시 15분에 강연장으로 출발했습니다.
오늘 강연이 열리는 곳은 암스텔베인(Amstelveen)에 위치한 노르담 센터(Noorddam Center)입니다. 이곳은 다양한 국제회의와 문화 행사가 열리는 다목적 공간으로 오늘은 법륜스님의 즉문즉설 강연이 열렸습니다.
스님이 강연장에 도착하자 곳곳에서 봉사자들이 환영해 주었습니다. 네덜란드 각지에서 온 한국 교민들도 속속 강연장에 도착하고 있었습니다.
한국 교민 180여 명이 자리를 가득 메운 가운데, 저녁 7시가 되자 스님을 소개하는 영상이 상영되었습니다. 영상이 끝나자 스님이 큰 박수를 받으며 무대로 걸어 나왔습니다.
스님은 환하게 웃는 얼굴로 인사말을 했습니다.
“제가 독일 뒤셀도르프에서 강의하면 늘 암스테르담에서 두세 명씩 오곤 했습니다. ‘왜 암스테르담에는 안 오십니까?’ 하는 이야기가 있어서, 올해는 이렇게 암스테르담에 오게 되었습니다. 제가 처음 암스테르담에 온 건 2014년이었습니다. 그때는 ‘세계 100강’이라 하여 교민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빠짐없이 찾아갔던 해였습니다. 유럽의 30여 개 도시를 돌았는데, 그중 가장 청중이 적었던 곳이 포르투갈 리스본이었습니다. 11명인가 왔어요. 당시 포르투갈에 사는 전체 교민 수가 100명 남짓이었으니 비율로 따지면 가장 많이 온 셈이에요.
그때 암스테르담에 왔다가 헤이그에 있는 이준 열사 기념관에도 들렀습니다. 기념관이 개관할 때는 김수환 추기경님, 강원룡 목사님과 함께 개관식에 참석한 적도 있습니다. 2014년에 방문했을 때는 암스테르담 시내도 잠시 둘러봤는데 지금은 그 기억이 희미하네요. 오늘 이렇게 다시 와서 여러분을 만나니 참 반갑습니다.
이곳은 주변이 들판이라 암스테르담에 온 것 같지 않고, 마치 시골에 온 듯한 느낌이 듭니다. 그런데도 다들 잘 찾아오셨네요. 오시는 길이 불편하지는 않았어요?”
“네.”
“즉문즉설은 특정 주제를 정해 놓고 강연하는 방식이 아닙니다. 우리가 살아가며 겪는 다양한 인생사와 세상사를 자유롭게 나누는 자리예요. 주제에는 어떤 제한도 없습니다. 부부 갈등이나 자녀 문제처럼 개인적인 고민을 질문하면 인생 상담이 되고, 우주나 생명에 대해 질문하면 과학 교실이 되고, 역사에 대해 질문하면 역사 교실이 됩니다. 또 한반도의 평화에 대해 질문하면 정치•사회•외교 문제로 대화가 이어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즉문즉설 강연은 연사인 제가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청중인 여러분이 주도하는 대화의 장입니다. 그래서 ‘나는 한국의 사회 문제에 관심이 많은데 왜 인생 문제만 다루느냐.’ 하고 불평해서는 안 됩니다. 자신이 관심 있는 주제를 직접 질문하면 됩니다. 질문을 꼭 해야 하는 것도 아니에요. 의견을 나누거나 대화를 이어 가도 됩니다.
이런 자리를 불교 용어로는 ‘야단법석(野壇法席)’이라고 합니다. 서양식 용어로는 ‘타운홀 미팅’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중요한 것은 주제를 제가 정하는 게 아니라 여러분이 함께 만들어 간다는 점입니다. 그러니 강연을 마치고 돌아가면서 불평하지 마시고, 원하는 주제에 대해 무엇이든 질문하고 함께 대화를 만들어 가면 됩니다.
가끔 어떤 분이 ‘별별 질문이 다 나오는데, 스님이 모르는 내용에 대해 질문하면 어떻게 합니까?’ 하고 물어요. 제가 모르는 질문이 나오면 대답하기가 제일 간단합니다. ‘모릅니다.’하고 대답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즉문즉설은 대화이기 때문에 사실은 모르는 질문이라는 게 성립하지 않습니다. 즉문즉답일 때는 모를 수 있지만, 즉문즉설에서는 모르는 질문이란 게 없습니다. 지식적인 내용에 대해 질문하면 ‘모릅니다.’라고 대답하거나 ‘인터넷에서 검색해 보세요.’라고 대답하면 됩니다. 이 자리에서는 답을 찾기보다 대화를 이어가는 게 중요합니다.
스님이 많이 알아야만 즉문즉설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친구끼리 대화할 때도 꼭 많이 알아야 하는 건 아니잖아요. 때로는 그냥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예컨대 누군가 ‘남편이 바람을 피워서 힘듭니다.’라고 하거나 ‘내가 남편을 두고 다른 남자를 만나게 되어 괴롭습니다.’ 하고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습니다. 이런 얘기를 듣고 ‘저 여자가 두 남자를 동시에 만난다더라.’ 하고 밖에 나가 떠벌리면 안 됩니다. 이 자리는 인간의 고뇌를 나누는 자리이지, 윤리나 도덕을 평가하는 자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두 남자를 동시에 만나는 여성은 마음이 괴로울까요, 안 괴로울까요? 당연히 괴롭습니다. 그런 관계에 놓이면 번뇌가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윤리적 잣대로 접근하지 않고, ‘어떻게 하면 그 고뇌를 덜어줄 수 있을까?’ 하는 관점에서만 바라봅니다. 여러분도 그 점을 염두에 두고 대화에 임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이어서 누구든지 손을 들고 스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두 시간 동안 아홉 명이 다양한 인생 고민에 대해 스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첫 번째로 손을 든 질문자는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가고 있어 불안하다며, 미래에 대해 의심이 들 때 어떻게 마음을 다잡아야 하는지 스님에게 조언을 구했습니다.
“저는 네덜란드에서 문화 예술 분야를 공부하는 학생입니다. 그런데 이 분야에는 한국인이나 동양인이 많지 않습니다. 또 네덜란드 자체도 다른 유럽 국가에 비해 교민 수가 적은 편입니다. 그래서 제가 마치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걷는 듯한 느낌을 받을 때가 많습니다. 과연 내가 잘하고 있는지 의심이 들고, 앞으로 괜찮을지 불안하기도 합니다. 어떻게 하면 담대하게 이 길을 갈 수 있을까요?”
“혼자 가는 길은 잘할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잘한다’, ‘못한다’라는 말은 비교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비교할 대상이 없다면 잘하고 못하고는 성립하지 않습니다. 둘이 산길을 함께 가면 누가 먼저 갔는지, 누가 더 높이 올랐는지 비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혼자 산길을 간다면, 올라가든 돌아오든 옆길로 빠지든 비교할 대상이 없으니 평가 기준 자체가 없어요. 그러니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간다면 무조건 잘하는 겁니다. 아무렇게나 해도 잘하는 거예요. (웃음)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간다는 것은 곧 개척입니다. 개척에는 어려움이 따르기 마련이죠. 산에 처음 길을 낼 때 힘든 것처럼요. 그러나 길을 처음 낼 때는 ‘길을 잘못 들었다.’ 하는 말이 성립하지 않습니다. 얼마만큼 길을 내느냐만 있을 뿐이에요. 나중에 누군가 그 길을 고친다고 해도 ‘앞서 낸 길이 잘못됐다.’라고 하지 않아요. 단지 ‘더 짧은 길을 발견했다.’라고 할 뿐입니다.
그러니 마음 놓고 그냥 가면 됩니다. 아무도 질문자를 평가할 수 없으니까요. 사실 제가 걷는 길도 그렇습니다. 제가 하는 일은 스님들이 아직 가 보지 않은 길이기에 불교 내부에서는 평가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사회에서는 유사한 활동과 비교가 가능하니, 평가가 조금 있을 뿐이에요. 그것처럼 질문자는 누구도 평가할 수 없는 자신만의 길을 가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한 겁니다. 그러니 담대하게 그냥 걸어가면 됩니다.”
“네, 감사합니다. 말씀을 듣고 많은 위안이 되었습니다.”
계속해서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질문자 중에는 17살 학생도 있었습니다. 손을 번쩍 들고 용기 있게 자신의 고민을 이야기했습니다.
“저는 올해 나이가 17세인 학생입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가족과 함께 네덜란드로 이민을 왔습니다. 부모님은 저와 동생이 한국에서 치열한 경쟁과 학업 스트레스를 겪기보다는 네덜란드에서 조금 더 평화롭고 자유롭게 자라기를 바라셨습니다. 이민 결정에는 부모님의 희생과 깊은 고민이 담겨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네덜란드 생활에 적응했다고 생각하면서도, 여전히 마음 한쪽에는 한국을 떠나지 못한 것 같습니다. 힘들 때마다 한국의 익숙한 거리와 친구들을 떠올리며 버티곤 합니다. 부모님을 실망시키고 싶지는 않고, 그렇다고 제 행복을 포기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그 사이에서 고민이 많습니다.”
“부모님은 같이 안 살아요?”
“옆에 계신 분이 어머니이십니다.” (웃음)
“부모님은 네덜란드에서 잘 정착해서 살기를 원하고, 질문자는 한국에 돌아가기를 원하는 거네요. 그런데 한국에 가서 입시 경쟁에 휘말리고 시험에 떨어지고 하면, 또 반대로 네덜란드에 오고 싶어지겠죠?” (웃음)
“그래서 학교는 여기서 마치려고 합니다.”
“지금 17세면 한국 나이로 고등학교 1학년인가요?”
“고등학교 3학년입니다”
“그럼 대학은 한국에서 다니려는 거예요, 아니면 네덜란드에서 다니려는 거예요?”
“대학까지는 네덜란드에서 다니려고 합니다.”
“그렇다면 전혀 고민할 것이 없습니다. 대학 졸업까지 앞으로 4년도 더 남았잖아요. 그런데 왜 벌써 4년 뒤를 걱정해요? 그건 4년 뒤에 저한테 다시 물어보세요. 지금 질문자가 만 17세면 아직 미성년자입니다. 미성년자는 의견은 낼 수 있지만, 최종 결정은 보호자인 부모가 하죠. 네덜란드 법으로 성년이 되는 나이가 만 18세인가요, 19세인가요?”
“만 18세요.”
“그러면 내년이면 성년이 되네요. 성년이 되면 부모님과 대화하고 합의를 할 수가 있습니다. 합의가 안 되면 최종 결정권은 질문자에게 있습니다. 법적으로 보장된 권리예요. 한국은 만 19세, 네덜란드는 만 18세부터 성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성인이 된 이후에는 질문자가 한국에 가고 싶을 경우 한국에 가면 됩니다. 그게 불효는 아니에요. ‘부모가 원하는 것을 다 들어 주는 것이 효(孝)다.’ 이렇게 생각할 필요는 없어요. 무조건 거부해서는 안 되지만, 부모의 의견을 충분히 듣고 대화를 나누었다면 최종 결정은 성인이 된 질문자가 내리는 겁니다. 그것은 불효가 아니라 나의 권리에 속하는 거예요.
효를 이유로 권리를 계속 부모에게 맡겨 버린다면, 부모의 눈에는 착한 아들일지 몰라도 사회적으로는 부모의 노예입니다. 왜냐하면 내 권리를 부모가 쥐고 있기 때문이에요. 대부분의 부모가 자식이 주인이 되길 원할까요? 노예가 되길 원할까요? 여러분은 자식이 노예가 되길 원하나요?”
“아니요.”
“그런데 대부분의 부모는 자기 자식이 자신의 노예이길 바랍니다. 밖에서는 주인으로 살더라도 집에 돌아오면 부모의 뜻대로 따라주길 바라는 거죠. 부모와 자식 사이는 서로에게 좋은 인연이지만 인간으로서의 최종 권리는 각자에게 있습니다. 우리 각자가 자기 삶의 주인이기 때문이에요. 물론 이 권리를 종교적으로 하나님께 넘겨 버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스스로 ‘나는 하나님의 종이다.’ 하고 자임하는 것이죠. 이렇게 스스로 반납하는 건 괜찮아요. 또 부모나 배우자에게 내 권리를 넘겨줄 수도 있죠. 그런데 자연 생태계를 보면, 자기 생명은 스스로 책임지는 ‘개체 보존의 법칙’을 따르고 있습니다. 어미 닭은 새끼가 병아리일 때는 새끼를 보호하지만, 다 자라면 누가 잡아가든 상관하지 않아요. 각자 자기 생명은 자기가 지켜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질문자가 지금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부모님과 대화는 충분히 해야 합니다. 대화를 하면서도 ‘내년이면 권리가 내게로 온다.’ 이렇게 생각하면 돼요. 1년만 더 고개 숙이고 지내면 됩니다. (웃음)
그때가 되면 어떤 결정을 하든 그것은 질문자의 자유예요. 부모를 너무 의식할 필요는 없어요. 내년쯤 제가 이 근처에 또 강연을 하러 오게 된다면, 그때는 ‘내 권리를 어떻게 행사할 것인가? 네덜란드에 남을 것인가? 한국으로 돌아갈 것인가?’ 하는 주제로 다시 질문해도 됩니다. 1년만 지나면 부모님은 최종 결정자가 아니라 토론의 상대가 됩니다. 최종 결정권은 질문자 자신에게 있다는 점을 꼭 기억하세요. 그러니 너무 염려하지 않아도 됩니다.”
“감사합니다.”
“그러나 권리에는 반드시 뭐가 따르나요?”
“책임이 따릅니다.”
“권리에는 반드시 책임이 따릅니다. 그런데 한국의 청년들을 보면, 권리는 누리고 싶어하지만 책임은 안 지려고 해요. 부모가 준 돈으로 유학은 가고 싶어하면서, 생활은 자기 마음대로 하고 싶어합니다. 그러면 안 돼요. 만약에 여러분이 학비가 부족해서 법륜스님에게 장학금을 받았다고 해 봅시다. 법륜스님은 장학금을 주는 대신에 ‘성적을 B 학점 이상 받아야 한다.’ 하고 규칙을 제시할 것이고, 그 조건을 지키지 않으면 장학금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것처럼 부모로부터 경제적 지원을 받는다면 부모의 요구도 어느 정도 수용해야 합니다.
만약 여러분이 부모의 도움 없이 결혼할 수 있다면, 원하는 상대와 언제든 결혼해도 됩니다. 부모의 의견은 들어보되 반대하더라도 크게 신경 쓸 필요가 없어요. 스무 살이 넘으면 스스로 결혼할 권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전세금이나 혼수, 축의금 등 부모의 지원을 받으려면 그만큼 부모의 뜻도 어느 정도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것은 효의 문제가 아니라 이해관계의 문제예요. 그래서 현명하게 대처할 필요가 있습니다.
만약 부모의 지원을 받을 생각이라면 둘이 잘 협력해서 부모에게 고개를 좀 숙이고 살아야 합니다. 하지만 부모의 반대가 완강한데도 둘이 꼭 결혼하겠다고 마음을 먹었다면 ‘부모가 반대해서 결혼을 못 한다.’라는 말은 성립하지 않습니다. 사실은 ‘부모의 재산을 포기하고서라도 이 사람과 결혼할 만한가?’라는 문제로 고민하는 겁니다. 즉, 이해관계로 고민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여성이 아버지의 강한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을 밀어붙였다고 해봐요. 쉽지 않은 결정이지만, 그렇게 결단하면 이번에는 또 남자 쪽에서 고민이 생깁니다. 왜냐하면 남자가 여성을 좋아한 이유 중에는 겉으로 표현은 안 하지만 여성의 집안이 부유하다는 점에 대한 기대가 있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부모의 지원이 끊기면 결혼에 큰 의미가 없어지는 거죠. 여성이 결단을 내리면, 이렇게 남성은 그 즉시 마음이 바뀌는 경우도 생기는 거예요. 인간관계가 이렇게 미묘합니다.
성인이 된다는 것은 권리를 갖게 되는 것만이 아니라 책임도 지게 되는 것을 뜻합니다. 돈을 빌렸다면 이자를 더해 갚아야 하고, 갚기 싫으면 돈을 빌리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일부 종교에서 때때로 책임을 회피하는 태도를 보일 때가 있어요. 돈은 빌리되 갚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는 것과 같은 논리로 ‘기도하면 원하는 대로 다 된다.’라는 식의 가르침을 펴는 종교가 있습니다. 나쁜 짓을 해 놓고 하느님이나 부처님에게 기도하면 죽어서 좋은 데 갈 수 있다고 말하는 건 부정행위 아닐까요? 공부는 못하지만 열심히 기도하면 좋은 대학에 간다고 믿는 것도 입시 부정행위와 같아요. 그런 식이라면 하나님이나 부처님이 입시 브로커 노릇을 한다는 얘기가 되는 거예요. 그러나 사회적으로도 이런 부정행위는 못 하도록 금지되어 있습니다. 그런데도 종교는 버젓이 이런 식으로 가르치기도 해요. 저는 이것이 종교의 본질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가령 천당이 있다고 가정을 하고, 우리가 천당에 가고자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천당에 갈만한 행동을 해야 합니다. 성경을 보면 천당에 가는 기준이 잘 나와 있습니다. 최후의 심판의 날에 왕께서 오셔서 산 자와 죽은 자를 모두 일으켜 세우시고, 목자가 양 떼와 염소를 나누듯이 나누고서는 ‘너는 지옥에 가리라’, ‘너는 천당에 가리라’ 라고 하시는데, 그 내용이 마태복음 25장 31절부터 여섯 가지로 제시되어 있습니다. 목마를 때 마실 것을 주었느냐, 굶주렸을 때 먹을 것을 주었느냐, 헐벗었을 때 입을 것을 주었느냐, 아플 때 치료해 주었느냐, 나그네 되었을 때 영접했느냐, 감옥에 있을 때 찾아와 주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주여! 주가 언제 그런 적이 있습니까?’ 하고 묻자, 주님은 ‘이 세상 가장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고, 하지 않은 것이 곧 내게 하지 않은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읽고 그대로 실천하며 사는 것이 진정한 기독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단지 교회에 나가고 찬송만 한다고 기독교인이 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불교도 마찬가지입니다. 인연을 지으면 과보를 받는 것인데, 그 인연의 과보를 무시한다면 그것은 불교의 가르침이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질문자가 ‘내년이 되면 내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라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거기에는 반드시 책임이 따른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내 마음대로 살려면 우선 경제적으로 독립해야 합니다. 부모님 집에서 자고, 어머니가 해주는 밥을 먹는다면, 잔소리도 좀 들어야 해요. 부모님이 밥과 잠자리를 제공해 주는데, 잔소리는 듣지 않겠다고 하면 앞뒤가 안 맞는 이야기잖아요. 잔소리를 듣는 대신 방을 공짜로 쓰거나 밥을 공짜로 먹는다면 경제적으로 이익입니다. 그러니 ‘어머니, 알겠습니다!’ 하고 기꺼이 잔소리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건 노예하고는 성격이 달라요. 노예는 권리를 빼앗긴 것이지만, 이 경우는 내가 주인으로서 이익이 되니까 받아들이는 것일 뿐이에요. 만약 쫓겨날 것 같으면 아침 일찍 일어나 청소도 하고, 밥 차리는 것도 도우면서 지내야 합니다. 아르바이트를 해서 방세와 밥값을 마련하려면 몇 시간을 일해야 하는지 계산해 보면, 부모님의 잔소리를 듣는 게 훨씬 효율적일 겁니다. 이런 경우는 이기적인 게 아니라 현명한 거예요. 성인이 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많은 유학생이 욕망대로 살고 싶어하지만 책임은 지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부모의 지원을 받으면서 행동은 내 마음대로 하고 싶어하는 것은 올바른 마음가짐이 아니에요.
부모가 자식을 만 18세까지 돌보는 건 의무입니다. 감사해야 할 일이기는 하지만 갚아야 할 빚은 아니라는 거예요. 하지만 성인이 된 뒤 받은 지원은 빚과 같아서 반드시 갚아야 합니다. 다만 계약서를 안 썼을 뿐이에요. 그렇기에 부모님께 전화드릴 때는 항상 ‘감사합니다.’부터 말해야 합니다. 하고 싶은 말이 있더라도, 고마운 건 고맙다고 하고, 불평은 불평대로 말해야 합니다. 고마운 걸 모르면 안 돼요. 이런 관점을 가져야 부모와 자식 간에 관계가 원활해집니다.
한국에 있는 학생들은 유학을 가고 싶어도 부모님이 안 보내 줘서 못 가는 경우가 많은데, 이렇게 해외에 나온 학생들은 또 그 나름대로 문제가 있네요. (웃음) 요즘 K-pop 유행 때문에 더욱더 한국에 가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 같은데, 한국에 가더라도 네덜란드에서 대학까지 졸업하고 난 후 한국에 가는 게 좋아요. 지금 그런 마음으로는 한국에 가서도 적응하기 힘들고,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도 어렵습니다. 나중에 한국에 갈 기회를 갖더라도 우선은 여기서 최선을 다하는 게 필요합니다.”
“감사합니다. 잘 알았습니다.”
대화를 마치고 스님이 마무리 인사를 했습니다.
“오늘 암스테르담 강연에는 젊은 사람들이 많이 참석했네요. 학생들이 많이 참석해서 그런가요? 아니면 나이가 들어도 젊어 보여서 그런가요? (웃음)
매년 방문하기는 어렵더라도 다음에 또 오겠습니다. 여러분 모두 이곳 네덜란드에 온 이유는 더 잘살아 보기 위해서일 겁니다. 그러니 뜻한 대로 잘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큰 박수와 함께 강연을 마쳤습니다. 곧바로 책 사인회가 시작되었습니다. 많은 청중이 길게 줄을 서서 스님과 인사를 나누고 사인을 받았습니다.
청중이 모두 강연장을 빠져나가고 스님은 강연을 준비한 봉사자들과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모두 수고 많으셨습니다.”
봉사자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 후 스님은 숙소로 향했습니다. 봉사자들은 묘덕 법사님과 함께 마음 나누기 시간을 가졌습니다. 암스테르담에는 정토회 회원이 세 명뿐이어서 나머지 봉사자는 모두 현장에서 처음 만나 손발을 맞추었다고 합니다.
“작년에 암스테르담에 와서 1년 동안 외로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법륜스님을 직접 뵙고 도반들과 함께할 수 있어 정말 기쁩니다. 저에게는 새로운 경험이자 뜻깊은 시간이었고, 좋은 사람들과 다양한 견해를 나눌 수 있어 행복했습니다.”
“10년 전, 새언니의 카톡 프로필 사진에 법륜스님 사진이 걸려 있었습니다. 그때는 잘 이해하지 못했는데, 이번 강연을 통해 스님의 말씀을 직접 들으며 언니의 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좋은 강연을 함께할 수 있어 감사하고 기쁩니다.”
“네덜란드에 온 지 7년이 되었지만, 오늘처럼 밤에 혼자 나온 것은 처음입니다. 엄마로서, 아내로서가 아니라 제 이름으로 봉사에 참여하고 일을 할 수 있어서 특별하고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
마음 나누기 시간은 서로의 고민을 함께 나누고 공감하며 따뜻한 온기로 가득했습니다.
숙소에 도착한 스님은 늦은 저녁 식사를 한 후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내일은 오전에 차를 타고 뒤셀도르프로 이동하여 오후에는 독일어 통역으로 현지인들을 위해 즉문즉설 강연을 하고, 저녁에는 한국 교민들을 위해 즉문즉설 강연을 할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12
전체 댓글 보기스님의하루 최신글
다음 글이 없습니다.
이전글“사소한 말에도 눈물이 쏟아집니다, 트라우마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