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5.9.9. 유럽 순회강연(2) 파리(Paris), 불어 통역 즉문즉설 강연
“사소한 말에도 눈물이 쏟아집니다, 트라우마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요?”

안녕하세요. 오늘은 법륜스님의 유럽 순회강연 중 두 번째 강연이 프랑스 파리(Paris)에서 열리는 날입니다.

스님은 새벽 3시에 기상하여 수행과 명상을 했습니다. 숙소와 식사를 제공해 준 정토회 회원 김누리 님 부부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 후 새벽 4시에 숙소를 나와 기차역으로 이동했습니다.

제일 먼저 온 줄 알았더니 벌써 많은 사람이 줄을 서 있었습니다. 4시 40분이 되자 영국 출국 수속과 프랑스 입국 수속, 수하물 검사를 시작했습니다. 공항과 시스템이 똑같았습니다.

오전 6시, 런던 세인트 판크라스 국제역(St. Pancras International)을 출발한 유로스타(Eurostar) 열차는 영국 해협 아래를 지나 프랑스로 향했습니다. 스님은 기차 안에서 부족한 잠을 보충했습니다. 약 2시간 30분을 달려 현지 시각 9시 30분에 파리 북역(Gare du Nord)에 도착했습니다.

기차역을 나오니 파리 정토회 회원인 최선영, 이정미 님이 마중을 나와 스님을 환영해 주었습니다.

곧바로 숙소로 이동했습니다. 도로가 막혀서 11시에 숙소에 도착했습니다. 점심 식사를 마치자, 이번 강연을 준비한 파리 정토회 회원들이 스님을 찾아와 삼배로 인사를 하고,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잠시 휴식을 하고 강연장으로 향했습니다.

오늘은 현지인을 위한 불어 통역 강연과 한국 교민들을 위한 즉문즉설 강연, 두 개의 강연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스님이 강연장에 도착하자 강연을 준비한 봉사자들이 반갑게 스님을 환영해 주었습니다. 오늘 강연이 열리는 곳은 파리 국제대학촌(Cité Internationale Universitaire de Paris, CIUP) 내에 자리한 한국관(Maison de la Corée)입니다. 한국과 프랑스 간 학문적·문화적 교류의 상징으로서 2018년에 문을 연 곳인데, 오늘은 법륜스님의 즉문즉설 강연이 열렸습니다.

다양한 홍보물을 보고 프랑스인 30여 명이 참석했습니다. 정토회 역사상 처음으로 진행되는 불어 통역 강연입니다.

오후 2시 30분이 되어 스님을 소개하는 영상을 함께 본 후 강연을 시작했습니다. 불어 통역은 백혜리 님이 해주었습니다. 먼저 스님이 인사말을 했습니다.

“여러분, 만나서 반갑습니다. 불어 통역을 통해 즉문즉설을 하는 건 이번이 처음인 것 같습니다. (웃음)

즉문즉설이란 인생을 살아가면서 겪는 여러 문제에 대해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대화입니다. 우리는 보통 결혼할 때 많은 축하를 받지만, 결혼생활이 힘들어지면 괴로워합니다. 아이를 낳았다고 축하를 받지만, 아이를 키우는 과정이 힘들어 어려움을 겪습니다. 직장에 취직했다고 기뻐하고 축하받지만, 직장생활을 힘들어합니다. 가게를 열면 사람들로부터 축하받지만, 가게 운영은 또 어렵습니다. 이렇듯 바라던 일이 이루어져 축하받을 만한 일인데도 왜 시간이 지나면 괴로움이 따를까요? 이런 점을 생각하다 보면 의문이 들고, 스트레스를 받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누구에게 쉽게 묻기도 어렵습니다. 백과사전이나 구글 검색은 지식이나 기술은 알려 주지만, 인생살이의 괴로움에는 뚜렷한 답을 주지 못합니다. 요즘은 챗 지피티(ChatGPT)나 제미나이(Gemini) 같은 인공 지능에게 묻기도 하지만, 거기서도 인생의 괴로움에서 벗어날 명쾌한 해답을 얻기는 어렵습니다.

축하받은 일도 왜 시간이 지나면 괴로움이 될까요?

그럴 때 우리는 친구와 차 한잔하며 하소연하곤 합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나누는 대화도 같은 방식이에요. 인생 문제를 두고, 친구와 차 한잔 나누듯 편안하게 이야기하면 됩니다. 주제에는 제한이 없습니다. 이렇게 대화를 나누다 보면 ‘아, 별일 아니네.’ 또는 ‘아, 이렇게 하면 되겠네.’ 하고 스스로 깨닫게 되기도 합니다. 특정한 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대화 속에서 고뇌가 사라지는 것입니다. 불교에서는 이것을 ‘담마 토크 (Dharma Talk)'라고 부릅니다.

부처님 당시에도 많은 사람이 인생 문제를 가지고 부처님과 대화를 나눴습니다. 그 대화를 통해 의문을 풀고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었어요. 그 목적은 괴로움이 사라진 상태, 즉 니르바나(Nirvana)를 증득하는 데에 있습니다. 불교 경전은 바로 이런 대화를 모아 놓은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하려는 일은 2600년 전 인도 사람들이 나눈 대화를 그대로 되풀이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우리의 문제를 가지고 대화를 나누자는 것입니다. 먼저 대화를 신청한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이후에는 청중 가운데 손을 드신 분들과도 대화를 이어 가겠습니다. 친구와 이야기하듯 편안하게 말씀해 주시면 됩니다.”

이어서 누구든지 손을 들고 스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두 시간 동안 일곱 명이 스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중 한 명은 당뇨로 고통받는 어머니가 치료 조언을 따르지 않아 병이 악화되면서, 관계마저 멀어진 상황에 대해 스님에게 조언을 구했습니다.

치료 조언을 거부한 어머니, 결국 병은 더 심해졌습니다.

"Ma question concerne notamment la relation avec ma mère qui est un petit peu compliquée. J'aurais voulu votre avis sur la question. Il y a quelques années elle a été diagnostiquée du diabète. Ce n'est pas très très grave. Mais personnellement en tant que professionnel de santé, en tant que pharmacien, j'ai essayé de lui apporter de l'aide, des conseils pour qu'elle aille mieux dans sa vie. Malgré tous mes efforts de l'aider, elle se ferme complètement à mes conseils, elle ne souhaite pas les écouter, et finalement elle ne me dise pas jusqu'à ce qu'elle se remette dans une situation dangereuse pour sa santé, donc à la fin j'ai fini par avoir un sentiment de lassitude avec le fait de l'aider et j'ai pris un petit peu de recul avec elle. J'ai la sensation au fur à mesure du travail personnel que c'est une situation que je voudrais essayer d'améliorer. Il me manque peut-être quelques éléments pour progresser sur cette relation avec ma mère."
(저는 어머니와의 관계로 고민이 있습니다. 몇 년 전 어머니가 당뇨 진단을 받으셨는데, 약사인 저는 어머니께 생활 관리와 치료 방법을 여러 차례 조언해 드리며 도와드리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제 말을 전혀 들으려 하지 않으셨고, 결국 건강이 위험해질 때까지 거부하셨습니다. 그런 상황이 반복되면서 저도 지쳐서 자연스럽게 거리를 두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저 자신을 돌아보니, 이제는 어머니와의 관계를 더 좋은 방향으로 회복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제가 어떻게 하면 이 관계를 개선할 수 있을지, 스님의 조언을 듣고 싶습니다.)

“그건 결국 어머니를 내 뜻대로 하려다 생긴 문제입니다.”

“J’y ai pensé aussi.”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아이도 엄마 뜻대로 안 되는데, 엄마가 자식 뜻대로 되겠어요? 어머니의 병에 좋다는 이유를 들어 결국 내 방식대로 하려고 했던 거죠. 관계가 나빠진 근본 원인은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어머니와 자식 사이라 해도 성인과 성인의 관계입니다. 좋은 제안을 할 수는 있지만, 내가 결정할 수는 없는 거예요. 어머니도 자기 결정권이 있기 때문에 존중해야 합니다.”

"Merci beaucoup. Et du coup maintenant que la relation s'est un petit peu justement dégradée entre elle et moi, comment faire pour revenir à elle et ne plus essayer de la manipuler et juste revenir à elle pour retrouver une relation plus saine."
(정말 감사합니다. 그런데 저와 어머니 사이가 조금 멀어졌는데요, 이제 어떻게 하면 억지로 바꾸려 하거나 ‘조종’하려는 마음은 내려놓고, 그냥 자연스럽게 다시 가까워져서 건강한 관계를 회복할 수 있을까요?)

“지금은 ‘어머니 병을 낫게 하겠다.’ 하는 집착이 있으니 힘든 겁니다. 어머니가 원하시는 대로 해드리면 관계는 금방 좋아져요.”

“C’est assez difficile pour moi en tant que professionnel de santéde laisser quelqu’un objectivement dégrader sa santé et se mettre en danger.”
(보건 전문가인 저로서는 누군가가 객관적으로 자신의 건강을 해치고 위험에 빠지는 것을 그냥 두고 보는 것이 꽤 어렵습니다.)

“객관적이라는 건 없습니다. 그것 또한 주관일 뿐이에요. 저도 여기 계신 분들께 ‘이렇게 하면 괴로움이 줄어듭니다.’라고 아무리 말씀드려도, 제 말대로 다 하는 분은 없어요. 그렇다고 제가 ‘내 말을 안 듣는구나. 그럼 대화할 필요 없네.’ 하고 포기한다면, 그것도 결국 내 뜻대로 하려는 마음이죠. 저는 그저 제안할 뿐이에요. 하고 안 하고는 그 사람의 선택입니다. 강제할 수는 없어요. 만약 누군가 제 이야기를 듣고 도움을 얻었다고 고마워해도, 저는 그것을 ‘내가 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결국에는 그 사람이 선택한 것이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만약 내가 했다고 생각한다면, 내 말을 안 들은 사람에 대해서도 내가 책임져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감사를 받으려다 오히려 비난을 받게 되는 거예요. 저는 다만 할 뿐이고, 그 결과는 그들의 몫입니다.

우리는 내 뜻대로 되지 않으면 포기하거나, ‘나도 모르겠다. 네가 알아서 해라!’ 하고 외면하기 쉽습니다. 그러면 관계가 나빠집니다. 하지만 어머니를 위해 조언을 하는 것이라면, 그저 꾸준히 조언을 하면 됩니다. ‘하고 안 하고는 어머니의 자유다.’ 이렇게 인정하면서, 앞으로도 계속 조언을 하면 됩니다. 어머니가 안 한다고 해서 스트레스를 받을 필요도 없습니다. 그저 어머니를 위해 제안하는 것이니, 어떤 경우에도 어머니를 위하는 길이 되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분이 경제적으로 어렵다고 해서 제가 1,000유로를 드리려는데, 그분이 안 받는다면 좋은 거죠. 제가 그분을 미워할 이유는 없잖아요? ‘당신을 위해 주는 건데, 어떻게 내 돈을 안 받아?’ 하고 원망한다면 돈도 잃고 관계도 잃는 겁니다. 그저 최선을 다하되, 받고 안 받는 것은 그 사람의 자유라는 걸 인정해야 합니다. 그러면 관계가 나빠질 이유가 없습니다.”

“Marci, j’ai bien compris.”
(감사합니다. 잘 알았습니다.)

계속해서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두 시간이 넘도록 청중 모두가 스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집중했습니다.

  • 번아웃을 겪은 다음 어떻게 회복할 수 있나요? 직장에서 너무 많은 업무를 아무런 도움 없이 4년 동안 일했습니다. 지금은 다른 일을 하기가 겁이 납니다.

  • 직장인으로 살고 싶지 않아서 ‘코칭’이라는 개인 사업을 하여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도와주고 싶은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 티베트 불교를 만나 배우는 과정에서 믿음이 점점 사라지고 속았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와 동시에 죄책감도 듭니다. 어떻게 이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 삶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왜 삶을 사는지 모든 것에 대해 의문이 듭니다.

  • 왜 우리가 괴롭지 않아야 하나요? 그냥 삶을 살면서 괴로움을 받아들이면 안 되나요?

  •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했습니다. 어떻게 그를 용서할 수 있을까요?

대화를 나누다 보니 어느덧 마쳐야 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아쉽지만 다음을 기약하며 즉문즉설 강연을 마쳤습니다.

강연을 마치고 책 사인회를 했습니다. 참석한 프랑스 사람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곧이어 정토담마스쿨을 졸업한 프랑스 사람들이 강연에 참석해서 서로 소개하는 시간을 갖고, 그동안 공부하면서 느낀 소감도 진지하게 나누었습니다.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앞으로도 꾸준히 수행을 이어나갈 것을 다짐한 후 모임을 마쳤습니다.

불어 통역 강연을 준비한 국제지부 봉사자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 후 스님은 다시 숙소로 이동하여 저녁 식사를 했습니다.

저녁 6시가 넘어서 스님은 다시 강연장으로 향했습니다. 저녁에는 프랑스에 살고 있는 한국 교민들이 강연장을 찾아왔습니다.

110여 명이 자리를 가득 메운 가운데 저녁 7시 정각에 강연을 시작했습니다. 스님의 소개 영상이 끝나고 무대 뒤쪽에서 스님이 걸어 나오자, 우레와 같은 박수와 함성이 쏟아졌습니다.

스님이 웃으며 인사말을 했습니다.

“즉문즉설은 특정한 주제를 정해 강의하는 방식이 아닙니다. 우리가 살아가며 겪는 다양한 문제를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자리입니다. 주제에는 어떤 제한도 없어요. 마음에 품은 의문을 꺼내도 좋고, 당면한 과제나 어려움, 혹은 스트레스를 나누어도 됩니다.”

이어서 누구든지 손을 들고 스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두 시간 동안 여덟 명이 스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중 한 명은 인종차별로 인한 깊은 상처와 트라우마 때문에 작은 일에도 감정이 요동치고 괴로움을 겪는다며, 이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지 스님께 조언을 구했습니다.

사소한 말에도 눈물이 쏟아집니다, 트라우마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요?

“트라우마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요? 무시하는 말을 듣거나 인종차별을 지속해서 겪게 되면서 조그만 일에도 큰 반응이 나오곤 합니다. 그나마 지난달부터는 명상과 절을 하면서 조금 마음의 평화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전혀 차별 의도가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인종과 관련된 무언가가 보이면 심장이 떨리고 눈물이 나며 호흡이 거칠어집니다. 이전 경험들이 재생되는 듯 감정이 요동치며, 마치 트라우마 같은 반응이 나타납니다. 이런 반응이 맞지 않다는 것을 머리로는 아는데, 도무지 주체할 수가 없습니다. 심지어 이 마음이 커져서 이제는 프랑스라는 나라 자체가 싫어질 정도입니다. 별일 아닌 상황에서도 프랑스가 싫다고 한국에 가겠다며 울음이 터집니다. 저도 이런 반응이 정상은 아니라는 걸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큰일을 당한 것 같은 감정이 자동으로 올라오니, 주체할 수 없어 너무 괴롭습니다. 이것을 극복할 방법이 있을까요?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천하고 수행하면 좋을지 궁금합니다.”

“질문자처럼 주변 사람들의 말에 그렇게 민감하게 반응하면 치료가 필요한 환자 수준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단순히 마음에 상처가 있는 수준이 아니라 과거의 상처가 현재와 미래의 내 생활에 큰 장애가 될 때는 치유가 필요해요. 먼저 신경이 긴장되고 흥분이 치솟을 때 진정시키는 방법으로 정신과에서 약물 치료를 받는 것이 좋습니다. 이것은 응급치료입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근본 원인을 찾아, 과거의 어떤 경험이 민감한 반응을 불러일으키는지 확인하고 마음의 상처를 치료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병원에는 가보셨어요?”

“네, 담당 의사와 얘기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그분은 약을 따로 처방해 주진 않았고, 갈 때마다 상담자처럼 간단히 묻고 제가 대답하는 정도만 했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어릴 때 성폭행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합시다. 누군가는 그 사건이 단순한 고통으로 끝나기도 하지만, 누군가는 상처로 남아 이후에 관련 뉴스만 들어도 숨이 막히고 당시 상황이 떠오르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것은 병적인 반응이라 치유가 필요합니다. 성폭행 자체는 손가락 베어 다치는 것과 같은 육체적 상처이지만, 정신적으로 엄청난 충격을 받게 되면 마음의 상처가 되는 거예요. 주로 여성들이 정신적인 충격을 크게 받는 이유는, 성에 대한 편견과도 관계가 있어요. 어려서부터 ‘여성은 성(性)을 지켜야 한다.’하는 사회적 편견 속에서 교육받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성적인 피해가 더 큰 상처로 남습니다. 이런 경우 치유가 되지 않으면 결혼생활도 어려워집니다. 이것은 모두 트라우마 치료가 필요한 사례입니다. 그런데 질문자의 경우, 어릴 때 인종차별로 충격을 받은 경험이 있었습니까?”

“이곳에서 인종차별을 받았어요.”

“엄청나게 큰 충격을 받았다면 모를까, 성인이 된 후의 경험은 보통 그렇게까지 깊은 트라우마로 남지 않습니다. 어릴 때는 작은 일도 크게 다가와 상처가 되지만, 성인이 된 뒤에는 웬만한 일은 충격이 덜합니다. 질문자가 이곳에서 인종차별에 대해 어느 정도로 충격을 받았기에 트라우마가 될 정도예요?”

“엄청나게 큰일이 있다기보다는 제가 사는 곳은 소도시라 아시아인이 거의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작은 일이라도 거의 매주, 매달 반복적으로 겪다 보니 누적된 게 아닌가 하고 의사 선생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 해도 지금 말씀하신 증상이 나타날 정도는 아니지 않나 싶어요. 아마 트라우마 자체보다는 우울증 같은 다른 증상이 겹치면서 증폭된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제가 여러분과 대화하고 즐거울 때는 다들 ‘스님, 스님’하고 부르죠. 그런데 만약 여기서 남성이든 여성이든, 두 사람이 의견 충돌이나 갈등으로 싸우면서 마음속에 적대감이 생긴다면, 그때 우리는 예의를 지킬까요? 여러분이 직접 테스트해 보면 알 수 있어요. 싸움으로 감정이 격해지면 자연스럽게 ‘무슨 중놈이 이럴 수가 있나!’ 하는 말이 튀어나오게 됩니다. 사람들은 모양이나 형식을 가지고, 키가 작으면 ‘요 조그만 놈이!’라고 말하고, 얼굴이 검으면 ‘얼굴도 새까만 놈이!’라고 말해요. 즉 불리한 상황에 부닥치면 평소에는 드러나지 않는 특징을 잡아 상대를 모욕하게 되는 거예요. 초등학생들이 학교에서 싸우다가 불리해지면 상대의 부모가 베트남이나 태국 출신이면 국적을 가지고 지적하고, 북한에서 왔다면 ‘북한 놈이!’하고 말합니다. 부부 싸움에서도 마찬가지예요. 감정이 격해지면 인종적, 성차별적, 신체적 특징을 지적하며 상대를 공격하게 됩니다. 사람은 흥분하면 상대에게 심하게 상처 주는 말을 서슴지 않아요. 상대의 부모나 조상, 심지어 민족까지 욕하는 경우가 생깁니다.

‘너는 한국 사람이니 이 식당에 들어올 수 없다.’라고 하거나 ‘유색 인종이니 시험 응시를 못 한다.’라고 하는 경우는 법적으로 인종차별이라는 것이 명확합니다. 이런 경우는 사회적으로 금지되어 있고, 불이익을 당하면 고소해서 시정을 요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같은 동네에서 서로 싸우다가 감정이 격해져 ‘조그만 놈’, ‘키 큰 꺽다리’, ‘남자 같지도 않고 여자 같은 놈’, ‘중놈’ 같은 식으로 부르는 것은 문화적인 측면이 남아 있는 것이어서 법적으로 처벌하기가 어렵습니다. 사람의 감정과 문화적 맥락이 개입된 것이기 때문이에요.

백인만 사는 동네에 아시아인이 살면 백인들끼리 쑥덕거릴 수가 있습니다. 시골 농촌에서 백인이 혼자 살면 동네 아줌마들이 ‘코쟁이’라고 수군거리는 것과 마찬가지죠. 그 사람에게는 상처가 되지만 그들에게는 일상인 겁니다. 인간은 누구나 이렇게 됩니다. 외국인이 우리 동네에 살아도, 내가 외국인 동네에 살아도 마찬가지예요.

서울 같은 도시는 대부분 한국 사람이 살고 있지만 다들 떠돌이잖아요. 경상도에서 올라온 사람, 전라도에서 올라온 사람,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살지만, 각자 자기 살기 바빠서 타인에게 별로 관심이 없어요. 반면 농촌사회는 남의 집 사정을 훤히 아는 분위기예요. 그런 곳에 외국인이 들어가 살게 되면, 어느 정도의 차별을 각오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시집을 가든, 직장을 가든, 학교에 다니든, 백인만 있는 학교에 간다면, 어느 정도 차별을 받을 각오를 해야 한다는 거예요. 하지만 그 정도는 엄격히 말해 차별은 아니에요. 진짜 차별은 학교에 못 들어오게 한다든지, 입학이나 시험 응시를 막는 것처럼 명백한 불이익을 주는 경우입니다. 그래서 법적 차별은 바로 시정해야 하고, 문화적 차별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어느 정도 용인하며 살아야 합니다.

또 실력이 비슷하다면 누구나 자기와 가까운 사람을 추천하기 마련입니다. 한 명의 교수 밑에 학생 네 명이 있는데 두 명은 프랑스인, 한 명은 중국인, 한 명은 한국인일 경우, 교수도 프랑스 사람이라면 실력이 비슷할 때 누구를 추천할까요? 당연히 프랑스 사람을 추천하겠죠.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로, 경상도 사람이라면 경상도 사람, 전라도 사람이라면 전라도 사람을 추천합니다. 실력이 비슷하면 동문끼리 추천하기 마련이에요. 이런 차별을 문제 삼을 수는 없습니다. 인간의 본성이 그런 거예요.

약간의 차별을 경험하는 것은 자기 발전에 도움이 되기도 합니다. 차별을 극복하려면 실력을 더 쌓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실력이 동등한데도 ‘왜 너는 되고, 나는 안 되나?’ 하고 불평만 한다면, 외국에서 살아남기 어렵습니다. 어느 정도 차별을 감수하고 실력을 높여 극복해야 합니다.

첫째, 트라우마 치료를 받는 것이 필요합니다. 둘째, 문화적 차별은 살아가면서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임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저는 길을 가다가도 느닷없이 소리 지르거나 욕을 먹는 일이 잦아 깜짝 놀랍니다.”

“그런 일은 어쩌다 있는 겁니다. 러시아 사람을 싫어하는 사람이 길을 가다가 러시아인에게 욕을 할 수도 있고, 중국 사람을 싫어하는 사람이 아시아인에게 욕을 할 수도 있어요. 정신이 조금 이상한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거예요, 그럴 때 놀라는 것은 자연스럽지만, 병들 정도로 심하게 반응하면 그 환경에서 살아갈 준비가 안 된 거예요.”

“가장 충격적이었던 사례는 버스표를 끊는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원하는 대답을 하지 않는다고, 상대방이 저에게 소리를 지르며 대응했어요. 많이 놀랐지만, 마음을 추스르고 다음 날 ‘어제 왜 그랬냐?’라고 물었더니, 그 사람은 ‘자기는 원래 이렇다.’라고 했습니다.”

“질문자는 지금 약간의 정신과 치료가 필요합니다. 이런 사건에 이 정도로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것은, 현재 자신이 이런 환경에서 살 형편이 안 된다는 뜻이에요.”

“한국으로 돌아가는 게 나을까요?”

“한국에 돌아가도 또 다른 문제를 만나면 같은 반응이 나타날 겁니다. 핵심은 환경이 아니라 치료예요. 질문자의 경우는 정확히 말하면 트라우마라기보다 우울증 증상이 겹쳐 증폭된 것 같습니다. 병원 치료를 받아보는 것이 좋고, 필요하다면 다른 병원으로 옮기는 것도 괜찮습니다.”

“감사합니다. 잘 알았습니다.”

계속해서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 저는 남편과 성격이 반대여서 스트레스가 쌓이다 보니 사소한 일에도 화를 내게 됩니다. 어떻게 하면 화를 덜 낼 수 있을까요?

  • 해외에서 결혼도 하고 직장생활도 하고 있습니다. 타지에서 죽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요?

  • 파리에 온 지 8년 되었는데, 한국에 가서 부모님을 뵐 때마다 노쇠한 모습에 죄책감이 듭니다.

  • 프랑스인 남편과 결혼한 지 2개월이 되었습니다. 다 좋지만, 식습관이 너무 달라서 힘듭니다.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까요?

  • 미안하지 않을 때도 미안하다고 하는 것은 위선인가요?

  • 영어 발음이 안 좋은 상사가 욕을 할 때마다 스트레스를 받아서 몸이 아픕니다. 어떻게 하면 마음의 평화를 찾을 수 있을까요?

  • 프랑스에 잘 정착하여 이제는 남을 도우며 살고 싶은데, 때로는 상대가 훈계로 받아들입니다. 어떻게 남을 도와야 할까요?

모든 질문에 대해 답변을 한 후 마지막으로 스님이 한국 교민들을 위해 격려의 말을 해주었습니다.

“프랑스로 올 때는 한국보다 프랑스가 좋아 보여서 온 건가요, 아니면 일부러 나쁜 곳을 찾아온 건가요?”

“좋아 보여서 왔습니다.”

“저는 아프가니스탄이나 부탄에 갈 때 나쁜 곳을 좋게 만들려고 갑니다. 여러분은 좋은 곳에 덕 보려고 온 거잖아요. 그러니 불평불만은 하지 마세요. 불만이 있으면 한국으로 돌아가면 됩니다. 그래봤자 본전이에요. 결혼할 때도 좀 더 나은 삶을 바라며 결혼하지만, 막상 살아보니 아니라고 느껴지면 이혼하면 됩니다. 역시 본전이잖아요. 어떤 분은 건물이 안 팔려서 걱정이라며 저에게 묻기도 해요. 그 사람에게는 큰일이겠지만, 건물 없는 사람보다는 낫잖아요. 여러분도 사실 다 괜찮은 겁니다.

저는 원해서 스님이 된 게 아니에요. 저의 은사 스님 때문에 억지로 됐습니다. 그런데 스님도 오래 해보니 괜찮아요. 불만이 없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스스로 선택해 놓고는 못 살겠다고 합니다. 괜히 불평해 봐야 아무 소득이 없어요.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보고, 안 되면 그만두면 됩니다. 한국으로 돌아가든, 이혼을 하든 선택하면 됩니다. 다만 너무 성급하게 결정하지는 마세요. ‘이왕 시작했으니 한 번 더 노력해 보자. 해보고 안 되면 그만두면 된다.’ 이런 관점에 선다면 인생살이 별것 아닙니다.”

큰 박수와 함께 강연을 마쳤습니다.

곧바로 책 사인회를 시작했습니다. 참석자 대부분이 길게 줄을 서서 스님에게 사인을 받았습니다. 스님은 한 명 한 명과 눈을 맞추며 인사를 했습니다.

"스님, 건강하세요. “

대부분이 스님의 법문을 듣고 인생이 행복해졌다며 감사의 마음을 표현했습니다.

참석자들이 모두 강연장을 빠져나가고, 스님은 강연을 준비해 준 봉사자들과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모두 수고했어요.”

봉사자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 후 스님은 숙소로 이동했습니다. 봉사자들은 묘덕 법사님과 함께 마음 나누기 시간을 가졌습니다.

“강연 당일 사회를 맡으며 큰 혼란을 겪었는데, 제가 분별했던 분들이 오히려 잘 해내는 모습을 보며 제 고집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온라인에서만 뵙던 도반들을 직접 만나 기뻤고, 함께여서 무사히 잘 마칠 수 있어 감사했습니다.”

“이번에는 칭찬받고 싶은 마음 대신 즐겁게 하자는 마음으로 임하니, 봉사가 훨씬 가볍고 행복했습니다.”

강연을 마친 뒤 봉사자들은 차분히 정리를 이어가며 함께한 시간을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밤 10시에 숙소에 도착한 후 일과를 마쳤습니다.

내일은 새벽 2시에 기상하여 한국에 있는 정토회 회원들을 위해 주간반 수행법회 생방송을 하고, 곧바로 기차역으로 이동하여 암스테르담으로 이동한 후 유럽 순회 세 번째 즉문즉설 강연을 이어나갈 예정입니다.


2025 9월 정토불교대학

전체댓글 9

0/200

감로화

스님 법문 들으며 인생을 가볍게 살겠습니다.
긴 일정 내내 무탈하십시요🙏

2025-09-12 07:25:47

정태식

“관계가 나빠진 근본 원인은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어머니와 자식 사이라 해도 성인과 성인의 관계입니다. 좋은 제안을 할 수는 있지만, 내가 결정할 수는 없는 거예요.”
------------
가족간에도 내 마음대로 고치려고 하면 당연히 관계가 나빠집니다.
矯角殺牛의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고자 수행을 합니다.

2025-09-12 07:23:11

운정

스님의 귀한 법문을 스님의 하루팀 노고덕분에 집에서 편히 듣습니다. 스님의 빡쎈 일정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집니다. 교민들의 어려움을 직접 어루만져주시니 감동입니다. 고맙습니다.

2025-09-12 07:07:07

전체 댓글 보기

스님의하루 최신글

목록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