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검색
원하시는 검색어를 입력해 주세요
안녕하세요. 오늘은 오세아니아 순회강연 중 네 번째 순서로 멜버른(Melbourne)에서 한국 교민들을 위해 즉문즉설 강연을 하는 날입니다.
스님은 새벽 기도와 명상을 마친 후 6시에 숙소에서 아침 식사를 한 후 7시에 브리즈번 공항으로 향했습니다. 공항으로 이동하는 동안 차창 밖으로 아침 해가 떴습니다.
브리즈번 공항에 도착하여 배웅을 나온 브리즈번 정토회 회원들과 작별 인사를 했습니다.
"잘 머물다 갑니다. “
감사 인사를 하고 다 함께 기념사진을 찍은 후 스님은 비행기를 타기 위해 탑승구로 향했습니다.
오전 10시 5분에 브리즈번 공항을 출발하여 현지 시각으로 12시 35분에 멜버른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수화물을 찾고 공항 밖으로 나오니 멜버른 정토회 회원들이 꽃다발을 전하며 환영을 해주었습니다.
"멜버른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기념사진을 찍은 후 곧바로 숙소로 향했습니다.
오후 2시에 숙소에 도착해 점심식사를 하고 휴식을 취한 후 저녁 6시 30분에 강연장으로 이동했습니다.
오늘 강연은 호주 멜버른에 있는 디킨대학교 멜버른 버우드 캠퍼스(Deakin University Melbourne Burwood Campus) 내에 있는 강의실에서 열렸습니다. 이곳은 버우드 하이웨이(Burwood Highway)에 자리한 디킨대학교의 주요 강의 공간인데, 오늘은 법륜스님의 즉문즉설 강연이 열렸습니다.
강연장에 도착하니 곳곳에서 자원봉사자들이 청중들을 반갑게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어느덧 저녁 7시가 되었습니다. 300여 명이 자리한 가운데 스님이 무대에 올랐습니다. 박수 소리가 길게 이어졌습니다.
스님이 웃으며 인사말을 했습니다.
“뉴스에서 보셨겠지만, 올해 한국은 꽤 더웠습니다. 여러분은 시원한 곳에 계셔서 다행이네요. 저도 호주가 겨울이라고 들었지만, 겨울옷을 제대로 준비하지 않고 여름옷만 입고 와서 조금 쌀쌀했습니다. 여기는 한국만큼 덥지 않고, 추위도 그렇게 심하지 않아서 다행입니다. 최근 한국에서는 기후 변화를 체감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지난겨울에 발생한 경상북도 대형 산불은 제가 살아오면서 이렇게 큰 피해를 동반한 경우는 처음 보았어요. 홍수 피해도 국지적으로 갑자기 쏟아졌고, 강릉 지역은 가뭄으로 식수가 부족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국가재난 선포가 있을 만큼 심각합니다. 옛날에도 가뭄이나 홍수는 있었지만, 요즘은 점점 더 자주, 더 큰 규모로 발생하는 것 같습니다.
이런 기후 위기를 막으려면 앞으로 소비를 줄이고 에너지를 적게 쓰는 삶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하지만 사람의 습관은 편리함을 추구하면서 불편함으로 돌아가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위험을 알면서도 해결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죠. 마치 마약 중독자들이 경고를 무시하고 점점 깊이 빠지는 것과 같습니다. 이런 시기에 좋은 환경에 사는 여러분들이 기후 위기에 더 관심을 가지고 책임 있는 삶을 실천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어서 사전에 질문을 신청한 분들부터 차례대로 대화를 나눈 후 마지막에는 현장에서 질문을 받았습니다. 오늘은 두 시간 동안 여덟 명이 스님에게 질문했습니다. 그중 한 명은 일터에서 겪는 폭언과 스트레스 때문에 마음이 무너지고 출근조차 싫어질 만큼 힘들다며, 이런 상황에서도 어떻게 마음을 다잡고 흔들리지 않을 수 있을지 스님에게 조언을 구했습니다.
“저는 호주 멜버른에서 간호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언제나 사명감을 가지고 환자를 대하고 싶지만, 때로는 환자나 보호자에게서 신체적, 언어적 폭행을 당하면 마음이 너무 힘듭니다. 부정적인 생각이 쌓이고 화가 치밀어 올라 출근조차 싫어집니다. 출근길에는 ‘경미한 교통사고라도 나서 병원에 안 나가고 싶다.’ 하는 생각까지 듭니다. 이런 마음을 다잡고 흔들리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다리까지 부러뜨려 가며 직장에 안 가려고 했다니, 참 어리석은 생각이네요. 이런 고민을 해결하는 방법은 휴직하고 다른 일을 한번 해보는 겁니다. 가령 오늘 당장 시작할 수 있는 일들이 많습니다. 식당 서빙이나 청소, 호텔 객실 정리, 건설 현장 보조 같은 일은 바로 구할 수 있어요. 간호사나 교사처럼 심적으로 힘든 직업은 쉬면서 단순히 여행만 다녀온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복귀하면 몇 달 못 가 다시 그만두고 싶어질 거예요. 대신 다른 직업을 경험하면, ‘간호사가 낫다.’ 혹은 ‘차라리 청소가 낫다.’라는 결론이 분명해집니다. 이렇게 하면 직업을 바꿀 이유를 찾거나, 오히려 원래 직업에 대한 마음이 더 단단해집니다.
어느 직장이든 불합리한 상사나 까다로운 사람은 있습니다. 학교도 마찬가지입니다. 학생이나 학부모가 교사를 힘들게 할 때가 있죠. 병원도 환자나 보호자가 폭언을 할 때가 있습니다. 환자는 아프므로 예민하고 말이 거칠 수밖에 없습니다. ‘왜 저럴까?’가 아니라 ‘얼마나 아프면 저럴까?’라고 바라보는 관점이 필요합니다.
건설 공사 현장에도 여성이 할 수 있는 일이 있습니다. 무거운 짐을 나르는 것이 아니라 안내 봉을 들고 차량을 유도하는 간단한 작업이에요. 한국에서 일하는 중국 여성에게 물어보니 일당이 15만 원이라고 해요. 최저임금이 다른 일보다 높은 편이죠. 간호사를 잠시 떠나 건설 노동이나 청소를 해보면, 어떤 일이 자신에게 맞는지 알 수 있습니다. 환자와 지내는 것이 힘들고, 차라리 안내 봉을 흔드는 일이 낫다고 느낀다면 직업을 바꾸면 돼요. 반대로 다른 일을 겪어 보니 간호사가 훨씬 존중받는 직업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수도 있어요. 그러면 ‘내가 호강을 발로 찼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다시 직장으로 돌아가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대부분은 이렇게 문제를 풀지 않고, 직장을 쉬면서 여행만 다닙니다. 그러나 여행은 어떤 직장 일보다 쉽기 때문에 똑같은 문제가 반복됩니다. 일이 힘들면 휴직 후 다른 일을 해보세요. 6개월쯤 지나면 ‘아무 일이나 하며 살 수 있는데 굳이 전공에 매여 살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언제든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니, 하다가 힘들면 쉬고 자유롭게 살 수 있어요. 한 직장에 얽매여 살 이유가 없습니다. 여러분은 보통 정규직을 더 좋아하는 것 같은데, 저는 오히려 임시직이 더 좋다고 생각해요. 한 직장만 고집하지 말고 이것저것 경험해 봐도 됩니다. 인생을 얼마나 산다고 그래요?
결혼도 마찬가지입니다. 배우자가 떠난다고 울 필요가 없습니다. 떠나면 다른 사람을 만날 기회가 생기니까요. 상대가 떠난 건 내 책임이 아니에요. 그러니 ‘아이고,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세요.’ 하면 그만입니다. 같이 살아보니 귀찮으면 혼자 살아도 되고요. 이렇게 선택권이 늘어나는 것이 바로 자유입니다. 결국, 관점을 어떻게 가지느냐의 문제예요.
어디를 가든 부당한 상사나 까다로운 사람은 있습니다. 폭언하거나 간섭하는 사람도 어디에나 있어요. 특히 환자를 다루는 일은 더 그렇습니다. 몸이 아픈 사람은 짜증이 많고, 말이 거칠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간호사를 하면서 ‘환자가 말을 심하게 한다.’라고 생각한다면 간호사를 하지 말아야죠. 그 사람들은 아프니까 스트레스가 많은 거예요. 나는 주사만 놓지만, 환자는 아파서 신경질을 낼 수 있습니다. 하다 보면 주삿바늘을 잘못 찌를 수도 있는데, 환자 입장에서는 매일 맞는 주사가 고통스러우니 한 번 더 찌르면 화를 낼 수밖에 없죠. 그럴 땐 웃으며 ‘죄송합니다. 살다 보면 이렇게 실수할 때도 있습니다. 양해 부탁드려요.’ 또는 ‘많이 편찮으신가 봐요.’ 이렇게 말하고 넘기면 됩니다.
환자가 짜증을 내는 이유는 단순히 아프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환자가 짜증을 내면 ‘얼마나 아프면 저럴까?’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어떻게 할래요? 휴가를 내고 청소부를 좀 할래요, 아니면 그냥 다닐래요?”
“안 그래도 한국으로 여행 겸 휴가를 가긴 하거든요.”
“휴가 내고 여행 갈 생각이었어요? 그러면 해결이 안 됩니다. 식당 서빙이나 청소처럼 오늘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해봐야 내 직업이 맞는지, 아니면 다른 일이 맞는지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간호사처럼 환자를 다루는 일을 하는 사람은 상대방의 짜증에 대해 웃어넘길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필요합니다. 짜증 내는 환자에게는 화를 내기보다 ‘많이 편찮으신가 봐요.’하고 등을 두드려 줄 수 있으려면 마음의 여유를 가져야 합니다.”
“감사합니다.”
“예전에는 교사나 간호사가 사람들이 선호하는 직업이었는데, 요즘은 기피 업종에 들어간다고 해요. 미국은 이미 오래전에 교사가 기피 업종이 되었고, 한국에서도 교사가 점점 어려운 직업이 되고 있어요. 학부모의 간섭이 점점 심해져서 학생 지도에 대한 부담도 커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가 교육청에서 교사들에게 강의할 때, 교사들이 간호사처럼 ‘직업적 사명’을 이야기하면 저는 ‘사명 같은 소리 하지 마세요. 페스탈로치, 히포크라테스, 그런 것 생각하지 말라.’라고 해요. 월급 받은 만큼만 일하면 됩니다. 남의 돈을 공짜로 받을 수는 없으니, 월급 값은 해야죠. 또 남의 아이를 맡았으면 학대만 안 하면 됩니다. 그냥 잘 놀게 두고, 대강 가르치라는 거예요. 엄마도 못 하는 걸 선생님이 어떻게 다 하겠어요. 아이 하나도 못 키워 학교에 맡겼는데, 그런 아이 스무 명을 선생님이 어떻게 다 챙깁니까? 꿈도 야무지다는 말이에요. 대충 놔두고 스트레스 없이 임해야 오히려 아이들에게 도움이 돼요. 잘하려고 애쓰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오히려 나쁜 선생님이 됩니다.
초·중학교 시절을 떠올리면, 기억에 남는 선생님은 공부를 잘 가르치는 사람이에요? 아니면 따뜻하게 대해 준 사람이에요? 매를 들며 공부를 시키던 선생님이 얼마나 잘 가르쳤겠어요? 오히려 아이들과 같이 놀아주고 따뜻하게 돌봐주는 선생님이 더 기억에 남습니다. 그러니 질문자도 ‘사명감, 사명감’ 하지 말고 ‘아픈 사람들을 조금 도와주며 밥벌이한다.’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임해 보세요.”
“잘 알았습니다.”
계속해서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즉석에서 질문하고 싶은 사람이 더 있는지 묻자 여러 명이 손을 들었습니다.
제가 조급한 성격인데 아이들이 저를 닮아가는 것 같아 죄책감과 미안함이 듭니다. 고치려고 연습해도 안 되는데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할까요?
11개월 된 아기를 보면서 커서 고생하지 말고 내 품에서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이 듭니다. 아이를 독립된 존재로 보지 않고 나 자신처럼 여겨서 이런 마음이 드는 걸까요?
오랜 외국 생활로 인해 혼자가 편하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정서적으로 외로운 느낌이 들 때도 있습니다. 외로움과 독립성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잡아야 할까요?
유치원을 운영하고 있는데,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어떻게 하면 아동 성폭력자를 미리 알아보고 그를 고용하는 것을 피할 수 있을까요?
저는 많은 생각과 감정이 허리케인처럼 지나갑니다. 인간은 지혜와 수행을 통해 자신을 컨트롤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를 수 있나요?
우울증으로 자살을 시도하신 아버지에게 제가 어떤 위로와 힘을 줄 수 있을까요?
대화가 끝나갈 무렵 마지막 질문자는 자신의 절박한 마음을 이용한 사기꾼에게 분노가 일어난다며 앞으로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가야 할지 스님에게 조언을 구했습니다.
“지난 5월에 사기를 당했습니다. 사기꾼은 처음에는 저를 위하는 척하며 직장을 구하는 데 도움을 주었고, 차와 집까지 마련해 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대학생이던 저는 학업과 일을 병행하며 살고 있었습니다.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고 건강도 좋지 않았습니다. 열정적으로 공부를 시작했지만, 비싼 학비에 비해 학교 교육 수준은 만족스럽지 않았고, 운영도 원활하지 않아 공부에 대한 회의감이 들든 시기였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그 사람이 건넨 달콤한 제안에 결국 마음이 흔들리고 말았습니다. 그가 사라진 뒤, 모든 것이 거짓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문제는 그가 집을 마련해 주겠다며 계약서에 제 이름으로 서명하게 만들었다는 점입니다. 이로 인해 집을 판매한 사람이 저를 상대로 계약금과 법정 비용 배상을 청구할 위험에 처했습니다. 현재 저는 변호사와 상담하며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사기꾼은 최근까지도 연락을 해와, 그때는 미안했다며 염치없는 말을 건넵니다. 그때의 저 자신을 떠올릴 때마다 치욕스러운 기분이 듭니다. 절박했던 제 마음을 악용한 그 사람을 생각하면 분노가 치밀어 오릅니다. 어떻게 마음을 다잡고 이 사태를 헤쳐 나가야 할까요?”
“학습비라고 생각하세요. 나를 속이는 그 사람의 기술이 대단했잖아요. 질문자처럼 똑똑한 사람을 속일 수 있다면, 그 정도 비용은 지불할 만하다고 받아들이세요.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호기심이 있는 부분에서 쉽게 넘어갑니다. 돈이 필요하면 돈에, 지위가 필요하면 지위에 마음이 움직이죠. 이런 경험은 자기 내면에 그런 성향이 있었음을 깨닫는 계기가 됩니다. 지남철(地南鐵)을 가까이 가져가면 못은 달라붙지만, 나무토막은 안 달라붙잖아요. 그것처럼 내 안에도 마음이 달라붙는 못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낚싯밥을 던진다고 해서 모든 물고기가 다 무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도 마찬가지로, 상황이 맞아야 속게 되는 것이지요. 이런 과정을 겪으며 우리는 자신이 어떤 조건에서 쉽게 속는지 깨닫게 됩니다.
특히 사람이 어려운 상황에 처할수록, 욕구가 많을수록 속기 쉽습니다. 궁한 사람에게는 돈이, 욕망이 있는 사람에게는 미인계 같은 것이 통하는 법이에요. 상대의 취향을 알아야 접근할 수 있듯, 이번 큰 손실은 결국 나 또한 언제든 속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 준 계기가 되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학습비라고 표현한 거예요. 그렇게 학습비를 치렀다면, 앞으로는 죽을 때까지 비슷한 일에 속지 않으면 됩니다. 시간이 지나 돌아보면, 그 비용이 오히려 큰 공부였음을 알게 될 겁니다. 처음에는 빚처럼 느껴지지만 결국 자산이 될 수 있죠. 하지만 여기에 계속 집착하면 상처로 남습니다. 사람을 불신하거나 미워하고, 자신을 자책하면 과거의 사건이 미래의 삶까지 방해합니다. 처음 나를 괴롭힌 것은 그 사람이지만, 지금 나를 괴롭히는 것은 그 사람이 아니에요. 내가 나를 계속 해치고 있는 겁니다. 어리석은 일이죠.
만약 어떤 여성이 납치를 당해 강제로 마약을 맞았다고 합시다. 1년 동안 맞다 보면 중독이 되겠죠. 경찰이 구해낸다 해도 이미 몸은 중독 상태입니다. 이후 그 여성이 마약을 맞으면 처벌을 받게 됩니다. 비록 자유의지로 시작한 일이 아니더라도, 결과적으로 처벌은 그 사람에게 돌아오는 거예요. 마찬가지로 그 사람이 준 상처가 지금은 자기 것이 되어버렸기 때문에, 원망할수록 상처만 커집니다. 전화가 오면 ‘당신 덕분에 큰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당신의 미소가 독약이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라고 웃으며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번 일로 인해 분노 조절이 안 되고 세상을 불신한다면, 과거의 상처가 미래의 인생을 통째로 해치게 됩니다. 이 상처는 그 사람이 만든 것이 아니라 이제는 자신이 스스로 만들고 있는 겁니다. ‘내가 바보 같았다.’라고 자책하지 말고 이렇게 생각해 보세요.
‘학습비를 톡톡히 냈다. 그 사람의 속임수가 참 교묘했다. 앞으로 이런 사람에게 속지 않도록 사람들을 상담하며 도와야겠다.’
여러분이 저와 대화를 나누는 이유 중 하나는 어려움을 극복하고 싶은 마음일 겁니다. 그런데 마음속 허전함이 해소되지 않으면, 사기나 마약 같은 일에 쉽게 빠져듭니다. 마음이 허전하면 사치품을 사고,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고, 심지어 마약까지 하게 됩니다. 사람은 스스로 온전하지 못하다고 느낄 때 지위를 높이려 하거나, 더 많은 돈을 벌 거나, 화려한 옷차림이나 지식으로 자신을 드러내려 합니다. 때로는 아는 이의 지위나 권위를 빌려 자신을 스스로 내세우기도 합니다. 이런 행동은 모두 내면의 허전함에서 비롯됩니다.
지금 한국에서 경제적 사기를 치기 가장 쉬운 사람은 누굴까요? 고위직에서 퇴직하는 사람입니다. 나이 예순에 퇴직하고 지위도 사라진 상태에서, 허전함을 달래줄 직위와 수입을 보장하는 제안을 받으면 퇴직금을 통째로 맡기곤 합니다. 사기꾼 입장에서는 이런 사람이 제일 속이기가 쉬운 겁니다. 조금만 접근해도 금방 낚인다는 거죠. 어려움에 처한 사람일수록 허전함 때문에 속기 쉽습니다. 그러니 돈을 많이 잃기는 했지만 ‘학습비를 냈다.’라고 여기는 것이 좋아요.”
“감사합니다. 잘 알았습니다.”
강연을 시작한 지 2시간이 넘어서 대화를 마쳤습니다. 큰 박수와 함께 강연을 마쳤습니다.
곧바로 책 사인회를 했습니다. 많은 청중들이 길게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렸습니다. 힘들 때 스님의 즉문즉설을 보면서 도움을 많이 받았다며 인사를 하는 분이 많았습니다.
"스님 감사합니다. 오래도록 건강하세요. “
책 사인회를 마치고 무대 위에서 강연을 준비한 봉사자들과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리고 강연 총괄을 맡은 송은경, 엄윤희 님에게는 스님의 책을 선물했습니다.
스님은 봉사자들에게 인사를 하고 강연장을 나왔습니다.
"저는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법사님과 함께 마음 나누기를 해주세요. “
스님은 숙소로 향하고, 봉사자들은 묘덕법사님과 마음 나누기를 했습니다.
“원래 제가 나서는 걸 정말 싫어하는 사람인데, 이번에 총괄을 맡게 됐어요. 제가 부족한 부분을 도반들이 다 채워주셔서 너무 고마웠어요. 이끌어주신 선배 도반들 덕분에 용기를 낼 수 있었습니다.”
“2019년 스님 오셨을 때 시내에 포스터를 붙였던 기억이 나요. 그땐 ‘여기 포스터 붙여도 되나요?’ 이런 말도 제대로 못 했는데, 이번엔 거리 홍보를 하면서 내가 많이 바뀌었다는 걸 느꼈어요. 봉사는 남을 위한 줄 알았는데, 결국 나를 위한 일이더라고요. 그래서 이번에도 참여하게 됐어요.”
“저는 작년 이맘때 강연에 왔다가 불교대학을 시작했어요. 경전대학까지 마치고 오늘은 봉사자로 함께하게 됐습니다. 온라인으로만 만나던 엄마 같은 도반들을 실제로 만나서 너무 반가웠어요.”
스님은 밤 10시에 숙소에 도착하여 하루 일과를 마무리했습니다.
내일은 멜버른 공항에서 퍼스 공항으로 이동한 후 오세아니아 순회강연 중 다섯 번째 강연을 이어갈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29
전체 댓글 보기스님의하루 최신글
다음 글이 없습니다.
이전글“부모의 작은 결정이 아이 인생을 망치지 않을까 걱정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