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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법륜스님의 북미 서부 순회강연 중 네 번째 강연이 미국 서부에서 가장 큰 도시인 로스앤젤레스(Los Angeles)에서 열리는 날입니다.
새벽 4시에 일어나 4시 30분에 샌프란시스코 국제공항으로 출발했습니다. 이른 새벽, 숙소에서 15분 거리에 사는 박일환 님이 운전 봉사를 위해 미리 도착해 있었습니다. 공항으로 떠나기 전, 숙소를 제공하고 정성껏 식사를 준비해 주신 김준자 님에게 감사 인사를 드렸습니다.
오전 5시 30분에 공항에 도착하니 어제 시애틀 공항보다 다소 한산한 분위기였습니다. 수속을 마치고 탑승구에서 잠시 대기한 후, 오전 7시 비행기를 타고 샌프란시스코를 출발했습니다.
두 시간 뒤인 오전 9시, 오렌지카운티에 위치한 존 웨인 공항에 도착하자 이경택 님이 마중을 나와 있었습니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이경택 님 댁으로 출발했습니다. 숙소에 도착해 아침 식사를 하고 잠시 휴식했습니다.
오후 12시 45분에는 로스앤젤레스 한인 타운 중심부에 위치한 '라디오코리아' 방송국으로 출발했습니다. 오후 2시부터 생방송 인터뷰가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오후 1시 40분에 '라디오코리아' 방송국에 도착하니 주차장에서 방송국 관계자들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스님, 라디오코리아에 직접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 직원들과 청취자들이 이번 방송을 많이 기대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진행을 맡은 아나운서 신아람 님은 현재 굿데이 LA를 진행하고 있으며, 과거 불교방송에서도 활동한 경력이 있다고 소개했습니다. 잠시 대기한 뒤, 스튜디오로 들어가 약 30분간 생방송으로 인터뷰를 하고, 청취자와 즉문즉설을 진행했습니다.
방송을 마치고 스님은 신아람 님에게 한국에서 가져온 책을 선물로 전했습니다.
방송국을 나와 인근에 거주하는 박명귀 보살님 댁을 찾았습니다. 박 보살님은 LA 정토회 초창기부터 초대 총무를 맡아, 배우자였던 고(故) 이강준 법사님과 함께 LA 정토회의 기반을 다진 분입니다. 보살님은 스님에게 삼배로 인사를 드렸습니다. 스님은 '이제 매년 어떻게 변해 가는지 보자.'라며 함께 사진을 찍었습니다.
따뜻한 차 한 잔을 나누며, 옛 시절을 되짚는 대화가 이어졌습니다.
“제가 처음 LA에 온 게 1992년이었어요. 그때는 잠시 들르기만 하고, 본격적으로 법회를 시작한 건 1993년부터였으니, 벌써 30년도 넘었네요.”
박 보살님도 기억을 떠올리며 덧붙였습니다.
“저는 미국 온 지가 41년 됐어요. 처음 법륜스님을 뵌 건 이강준 법사님이 스님을 댁으로 모시고 왔을 때입니다."
스님과 박 보살님은 LA 불교계의 변화, 한인 사회의 세대 교체, 그리고 정토회의 지난 30여 년을 함께 돌아보았습니다. 오랜 도반들의 이름도 하나둘 오르내렸고, 그중에는 이미 세상을 떠난 분들도 있어 아쉬움이 묻어났습니다.
대화를 마치고 저녁 식사를 한 후에 6시에 강연장으로 이동했습니다.
오늘 강연은 로스앤젤레스 한인 타운 중심에 위치한 아로마 5층 더 원 연회장(Aroma 5F, The One Banquet Hall))에서 열렸습니다. 강연장 입구에는 많은 봉사자들이 참석자들을 정성껏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스님의 책을 구입하는 사람, 질문을 신청하는 사람 등 많은 교민들이 봉사자들의 안내를 받고 강연장으로 향했습니다.
저녁 7시가 되자 해가 저물고, 무대에는 스님을 소개하는 영상이 상영되었습니다. 스님이 무대에 오르자 모두 큰 박수로 스님을 환영했습니다.
200여 명이 자리한 가운데 스님이 웃으며 인사말을 했습니다.
“요즘 미국에서 살기 어떻습니까? 미국 사람들은 잘 모르겠지만, 미국을 제외한 전 세계가 힘들다고 아우성칩니다. 자기들만 잘 살겠다고 남을 힘들게 해서 되겠습니까? 그런 면에서 여러분도 연대 책임이 있습니다. (웃음)
어제 우리나라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했는데, ‘혹시 망신을 사면 어쩌나’ 했더니 다행히 망신은 면했습니다. 잘했는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적어도 다른 나라 대통령 사례처럼 곤욕은 치르지 않았어요. 저도 사전에 정부 관계자들을 만나서 이재명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세계 평화를 위해 당신의 역할이 중요하다’, ‘남북 관계를 잘 풀면 우리가 적극 지원하겠다.’ 하는 취지로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조언을 했는데, 실제로 그렇게 정상회담이 이루어졌습니다. 그걸 영어로 ‘피스 메이커’, ‘페이스 메이커’라고 표현한 것 같아요.
우리나라는 역사적으로 강대국에 예의를 다하며 살아온 경험이 많아 이런 장면을 크게 모욕적으로 여기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유럽에서는 최근 불쾌하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습니다. 얼마 전 보도된 장면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의자에 앉아 있고, 영국과 독일 총리가 서 있는 모습이 마치 기합을 받는 듯하게 연출되었기 때문입니다. 국제사회에서 여러 해석과 반응이 엇갈리는 것을 보니, 참 흥미로운 시대입니다.
하지만 세상이 어떻든 그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하루하루 괴롭지 않게 살아야 합니다. 세상이나 남을 탓하기 시작하면 편할 날이 없어요. 비가 오면 우산을 쓰고, 날이 추우면 옷을 껴입고, 더우면 벗으면 됩니다. 이게 바로 수행입니다.
세상을 바꿀 힘이 있으면 바꾸면 되고, 기후 변화처럼 도저히 바꿀 수 없는 것은 그 변화에 적응해야 합니다. 화를 낸다고 세상이 변하지는 않아요. 그러니 세상에 맞춰 살든지, 아니면 세상을 바꾸려 힘을 모으든지 해야지, 화내거나 이사를 한다고 해결될 일은 아닙니다.”
이어서 사전에 질문을 신청한 분들부터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중반부터는 현장에서 즉석 질문을 받았습니다. 두 시간 동안 여덟 명이 스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그중 한 명은 집안의 이혼 경험 때문에 결혼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을 느낀다며 좋은 배우자를 만나는 방법에 대해 스님에게 조언을 구했습니다.
“저는 올해 서른셋이고 결혼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런데 저희 집안은 거의 모두가 이혼했습니다. 고모, 외숙모, 부모님, 할머니, 할아버지, 외할머니까지 전부 이혼하셨어요. 그러다 보니 저도 결혼에 회의감이 생기고, 남자에 대한 의심과 두려움이 큽니다. 혹시 나도 대물림되지 않을까 걱정되고, ‘그냥 안 하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까지 듭니다. 집안 사람들이 왜 이혼했는지 분석해 보니, 남자들이 대부분 무능력해서 여자가 밖에서 일하고, 남녀의 역할이 뒤바뀌면서 존중과 보호가 무너졌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저도 남자의 조건을 지나치게 따지게 됩니다. 머리로는 ‘이렇게 조건을 따지면 행복한 결혼이 어렵다.’라는 걸 알면서도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게 되어 고민입니다. 결혼에 실패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좋은 배우자를 만날 수 있을까요? 또 제가 진정으로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을지도 고민입니다.”
“어떤 여성이 저에게 ‘스님, 제가 세 번이나 결혼했는데, 전생에 무슨 죄를 지어서 이렇게 불행한 건가요?’라고 물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나는 한 번도 못 해 본 결혼을 당신은 세 번이나 했습니다. 전생에 무슨 복을 그리 많이 지어 세 번이나 결혼했습니까?’라고 대답했어요. 결혼을 세 번 한 게 남자 복이 많아서인가요, 아니면 복이 없어서인가요? 그럼 제가 결혼을 한 번도 안 한 건 여자 복이 없어서인가요? 어떻게 생각해요?”
“생각하기 나름인 것 같습니다.”
“그럼 질문자도 한 번 생각을 바꿔 보세요. 부모님, 할머니, 외할머니, 고모까지 다 이혼했으니, 질문자가 이혼해도 부담이 전혀 없잖아요. 남자 친구를 사귈 때도 자유롭고, 괜찮다 싶으면 결혼해 보고, 살다 마음에 안 들면 이혼해도 누가 뭐라 할 사람이 없어요. 만약 집안에 이혼한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는데 질문자가 이혼하면, 큰 죄를 지은 것처럼 온 가족이 비난하겠지만, 집안에 다 이혼한 사람뿐이라면 아무도 뭐라 할 사람이 없습니다. 오히려 질문자는 굉장히 편한 상태에 있는 거예요. 두려워할 일이 아니라는 거죠. 그러니 좋은 사람이 있으면 먼저 한 번 결혼해 보세요. 3년쯤 살다가 안 맞으면 이혼해도 된다고 생각하면, 이런 고민은 필요 없습니다.”
“그런데 이런 고민 없이 결혼하면 자연스럽게 이혼할 것 같아서요.”
“요즘 같은 시대에 한 남자와 평생 사는 게 좋기만 할까요? 세 번쯤 바꿔 보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젊은 사람이 왜 그렇게 고지식해요?” (웃음)
“자식들이 상처받지 않을까요?”
“예전에는 이혼 가정이 드물어 상처가 됐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학교만 가도 이혼 가정의 아이들이 흔합니다. 이미 이혼 가정에서 자라 대통령이 된 사람도 있잖아요. 아무 문제 없습니다. 괜한 걱정이에요. 오히려 ‘내가 이런 집안에 태어난 건 정말 다행이다.’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질문자는 이혼에 대한 부담을 전혀 가질 필요가 없어요.
옛날에는 결혼이 평생 한 번뿐이었고, 서로 얼굴도 못 보고 혼인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결혼이 큰 위험 부담이었죠. 그래서 사주를 봐서라도 위험을 줄이려 했던 거예요. 하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결혼 전에 연애도 하고, 심지어 함께 살아본 뒤에 결정할 수도 있습니다. 결혼 후에도 마음에 안 들면 이혼하면 되고요. 이렇게 자유로운데 왜 망설입니까? 물론 함부로 결혼하라는 건 아니지만, 그렇게까지 겁낼 필요는 없다는 겁니다.
능력 있는 남자와 살아 보고 싶다면 그래도 돼요. 그런 사람이 없다면 일단 좋아하는 사람과 살아 보세요. 살다 보니 경제력이 문제라면 그때 능력 있는 사람을 찾으면 됩니다. 그런데 잘생기고 능력 있는 남자와 결혼하면 평생 남편의 여자 문제로 마음을 졸여야 할지도 모릅니다. 나보다 잘난 사람과 살면 내가 을(乙)이 되니까요. 옛날에는 여자가 남자에게 경제적으로 의지해야 했으니 그런 선택을 했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왜 굳이 남자에게 기대려 하나요? 차라리 나보다 돈을 덜 벌고 어린 남자를 만나 함께 성장하며 사는 것도 재밌지 않을까요? 너무 옛날 사고방식에 머물러 있는 건 아닌지 한번 생각해 보세요.
그러니 이런 문제로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결혼해야 한다.’라거나 ‘결혼하지 말아야 한다.’라고 미리 정해 놓을 필요가 없어요. 이혼 여부도 마찬가지입니다. 살다 보면 혼자 살 수도 있고, 좋은 사람을 만나 결혼할 수도 있고, 결혼했다가 안 맞으면 이혼할 수도 있는 거예요. 그러니 별일 아닙니다. 그런데 세 번쯤 결혼하고 싶다고 해서 정말 그렇게 될까요? 잘 안 됩니다. 운 나쁘게 좋은 남자를 만나면 이혼할 수 없지 않겠어요?” (웃음)
“그래도 여러 번 결혼하면 상처가 되지 않을까요?”
“한 남자와만 살아야 한다고 고집하면 상처가 되겠죠. 하지만 여러 명과 살아보겠다고 생각하면 상처가 되지 않습니다. 상처란 본래 있는 게 아니라 스스로 기준을 정해 놓고 거기에 어긋날 때 생기는 겁니다. 예를 들어 스님이 ‘평생 혼자 살겠다.’라고 마음먹으면 결혼 못 해도 상처가 없지만, 평범한 남자가 일흔까지 결혼을 못 하면 상처로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상처란 본래 없는 것입니다.”
“결혼할 때는 평생을 약속하잖아요?”
“스님도 출가할 때 평생 하겠다고 원을 세웁니다. 그런데도 중간에 그만두는 경우가 많아요. 결혼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구나 평생 함께 살겠다고 결혼하지, 잠깐 살겠다고 결혼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살다 보면 마음이 바뀔 수도 있습니다. 그게 인생이에요.
‘결혼을 꼭 해야 한다.’라고 정해 놓으면 결혼을 못 했을 때 괴롭고, ‘결혼을 절대 안 한다.’라고 정해 놓으면 좋은 사람이 나타날 때 괴롭습니다. 저도 ‘나는 평생 혼자 산다.’라고 정해 놓지 않았어요. 그냥 ‘아직 좋은 사람이 안 나타났구나.’ 이렇게 생각하고 삽니다. (웃음) 너무 각오하거나 결심하는 건 좋지 않습니다. 그냥 살아 보세요. 그렇다고 너무 가볍게 함부로 하라는 건 아닙니다. 다만 이런 문제로 괴로워할 필요는 없다는 거예요.
남편이 살아 있을 때 다른 남자를 만나면 바람이지만, 남편이 세상을 떠난 뒤 다른 사람을 만나는 건 죄가 아닙니다. 혼자 살아도 되고, 외로우면 다른 사람을 만나도 됩니다. 마치 호미가 부러지면 새 호미를 쓰는 것과 같아요. 스스로 떠나준 남편에게는 오히려 고맙게 생각하세요. 내가 다른 사람을 만날 기회를 준 거잖아요.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하고 보내면 됩니다. 그러니 질문자의 집안이 얼마나 좋은 집안입니까. 그런 집안을 만나기가 어렵습니다.” (웃음)
“스님, 감사합니다.”
계속해서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마지막 질문자는 스님처럼 스스로에게도 즉문즉설을 할 수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스님에게 조언을 구했습니다.
“스님은 정말 많은 사람을 만나 다양한 질문을 받으시는데, 그 자리에서 곧바로 답을 주시잖아요. 그게 참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살면서 고민이 있거나 화나는 일이 생겼을 때 스님처럼 스스로에게 즉문즉설을 할 수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 속담에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라는 말이 있어요. 저도 다른 사람의 고민에 대해서는 이렇게 저렇게 조언할 수 있지만 막상 제 일은 잘 안돼요.”
“혹시 불도를 깊이 깨우치면 스님처럼 스스로 답을 잘 낼 수 있을까요?”
“그렇게 접근하면 어렵습니다. 남들보다 조금 더 고생을 많이 해봐야 합니다. 어릴 적 부모 없이 살아 보고, 남에게 학대도 당해 보고, 두들겨 맞아도 보고, 감옥에 갇히거나 고문을 당하거나, 왕따를 당하는 등 세상 사람들이 겪는 다양한 고통을 몸소 겪어 보는 겁니다. 또는 그런 고통에 가까운 삶을 살아 보면 굳이 참선이나 명상을 하지 않더라도 사람의 마음을 저절로 터득하게 됩니다. 우리말에 ‘문리가 터진다.’라는 표현이 있듯이 말이에요.
자동차를 오래 수리해 본 사람은 시동 소리만 들어도 어디가 고장 났는지 알고, 환자를 많이 진료해 본 의사는 얼굴만 봐도 어디가 아픈지 짐작합니다. 이것처럼 많은 고통을 겪어 본 사람은 그 고통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는지를 자연스럽게 알게 됩니다. 기독교적으로 표현하면, 깊은 고통 속에서 비로소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는 것입니다. 단순히 기독교를 믿는다고 해서 고통에서 벗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니 질문자도 고통을 많이 겪으면 됩니다. 하지만 대부분은 고통을 피하고 싶어들 하죠.”
“네, 저도 고통을 피하고 싶습니다. 그냥 살던 대로 살겠습니다.”
“옛말에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라는 말이 있잖아요. 굳이 고통을 일부러 만들 필요는 없지만, 주어진 고통을 피할 이유도 없습니다. 그 고통이 바로 나에게 주어진 인생을 깊이 성찰해 볼 수 있는 기회입니다.
어려움을 겪은 것이 상처로 남으면 그것은 인생의 큰 빚이 됩니다. 그러나 그것을 경험화 시킨다면 그 일은 오히려 큰 자산이 됩니다. 예를 들어, 성추행 피해 여성을 상담할 때 같은 경험이 있는 사람은 그 고통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경험이 아직 상처로 남아 있다면 상담자는 분노에 휩쓸려 오히려 상담을 제대로 할 수 없습니다. 자신이 겪은 상처를 극복한 사람은, 첫째, 타인의 고통을 깊이 이해할 수 있고, 둘째, ‘나도 극복했으니, 당신도 해낼 수 있다.’ 하는 희망을 전할 수 있습니다. 어려움을 극복한 사람은 세상을 위해 일할 수 있는 힘도 커집니다. 남경필 전 경기도지사가 마약으로 수감 중인 아들을 면회하며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정치를 할 때 가장 힘든 게 뭔지 아니? 바로 인지도를 올리는 거야. 그런데 대한민국에서 남경필 도지사 아들이 마약 중독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잖아. 너는 인지도로 보면 거의 1등이야. 만약 네가 마약을 완전히 끊고 사회를 위해 의미 있는 일을 한다면 누구보다 강력한 메신저가 될 수 있어.’
이런 말을 하며 곧 출소를 앞둔 아들을 격려했다고 합니다. 이렇듯 우리가 겪은 경험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됩니다. 20년 동안 이민 생활을 해 본 사람은 이민자를 상담할 때 유리하고, 사업 실패를 겪어 본 사람은 실패한 사람의 마음을 더 잘 압니다. 이혼을 경험한 사람은 이혼한 사람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모든 일을 직접 겪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에요. 제가 여러분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이유는 집착이 적어서이기도 하지만, 말하지 않았을 뿐 저 역시 여러분이 겪었거나 앞으로 겪을 수 있는 많은 인생의 과정을 지나왔기 때문입니다. 수행이란 그 상처를 치유하고 승화시켜 경험으로 남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첫째, 상처의 찌꺼기가 남지 않으면 타인의 이야기에 더 쉽게 공감할 수 있습니다. 둘째, 어떤 상황이든 극복하고 나서 돌아보면 ‘별일 아니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도 ‘별일 아니다.’ 하는 희망을 줄 수 있습니다.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이 있듯이 굴러오는 고생이라면 기꺼이 받아들이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고생을 원하는 관점을 가지면 내게 일어나는 모든 일이 좋은 일이 됩니다. 재앙도 복인 줄 알면 세상에 복 아닌 것이 없습니다.
영주권 문제로 애타는 사람도 그 과정을 잘 극복하면 훗날 영주권 문제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상담해 줄 수 있는 만큼 값진 경험을 얻게 됩니다. 우리 삶의 모든 일은 기독교적으로 보면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힌 일도 결국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불교적으로 말하면, 우리가 겪는 모든 일은 지은 인연의 과보입니다. 그러니 어떤 일이든 기꺼이 받아들이는 자세를 가지길 바랍니다. 이런 관점을 가지면 삶이 한결 가벼워질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잘 알았습니다.”
대화를 마치고 나니 밤 9시가 넘었습니다. 청중은 먼 곳까지 와서 소중한 가르침을 준 스님에게 뜨거운 함성과 박수로 감사한 마음을 전했습니다.
이어서 책 사인회를 시작했습니다. 참석한 대부분의 교민들이 길게 줄을 서서 스님에게 사인을 받고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청중이 모두 강연장을 빠져 나가고, 스님은 강연을 준비한 봉사자들과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강연을 총괄한 강보란 님에게 책을 선물했습니다.
봉사자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 후 스님은 숙소로 향했습니다. 봉사자들은 묘덕 법사님, 법해 법사님과 함께 마음 나누기를 했습니다.
“수행법회에 자주 참석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오늘 봉사를 하며 회원들과의 끈끈한 결속을 다시 느꼈습니다. ‘아, 이런 게 정토회였지.’ 싶었어요. 가늘게나마 인연을 이어갈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지난해보다 더 많이 봉사를 했어요. 자연스럽게 주인의식도 생기고, 마음도 한결 더 가까워졌습니다.”
“정토회와는 인연이 없었지만, 봉사를 처음 해보았습니다. 새로운 분들을 만나서 좋았고, 뿌듯합니다.”
숙소에 도착하니 밤 10시가 넘었습니다. 스님은 원고 교정을 본 후 일과를 마쳤습니다.
내일은 로스엔젤레스를 출발하여 440km를 차로 달려 라스베이거스에서 북미 서부 순회강연 다섯 번째 강연을 이어갈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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