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5.8.24. 북미 서부 순회강연(2) 밴쿠버(Vancouver)
“한국이 너무 그리워 우울해질 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안녕하세요. 오늘은 법륜스님의 북미 서부 지역 순회강연 중 두 번째 강연이 캐나다의 서남부 끝단에 위치한 대도시인 밴쿠버(Vancouver)에서 열리는 날입니다.

새벽 5시에 시애틀 법당에서 예불과 명상으로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수행을 마치고 어제 현지인 간담회를 총괄했던 국제지부 북미‧유럽지회 지회장 김혜진 님이 이른 아침 비행기를 타고 떠난다며 인사를 드리러 왔습니다. 스님은 고생 많았다는 격려와 함께 이번에 영어로 출간한 ‘혁명가 붓다’를 선물하며 고마운 마음을 전했습니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스님은 외국인 간담회에 참석하기 위해 LA에서 온 효명 법사님과 리처드 님, 시애틀수련원의 묘명 법사님, 운전 봉사를 맡아 주신 김학로 님에게도 한국에서 가져온 스님의 책을 선물했습니다. 책 한 권이 전해질 때마다 밝은 웃음이 꽃처럼 피어올랐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분들과 작별 인사를 나누고 오전 7시 30분에 캐나다 밴쿠버를 향해 출발했습니다. 스님은 보통 9월에 북미 서부를 방문하여 강연을 해왔는데, 올해는 일정이 조금 앞당겨져 8월 말에 오게 되었습니다. 날씨가 예년보다 무척 더웠습니다.

가는 길에 잠시 화장실에 들를 겸, 대형 슈퍼마켓에 들렀습니다. 운전자들이 커피를 마시는 동안 스님은 매장을 둘러보다 도시락 코너에서 김밥(캘리포니아 롤)이 10달러나 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김학로 님이 워싱턴주에서 시간당 최저임금이 20달러로 인상되면서 물가도 따라 올랐다는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오전 10시 10분이 되어 국경 근처에 도착했습니다. 캐나다 입국 심사는 대기 줄도 짧고, 10분 만에 수월하게 통과할 수 있었습니다. 다시 30분 정도를 달려서 10시 50분에 김현미 님 댁에 도착했습니다.

스님은 코로나 팬데믹 이후 2023년부터 해외 강연을 재개했는데, 캐나다를 찾을 때마다 김현미 님이 숙소와 식사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올해로 벌써 3년째입니다. 집이 호숫가에 자리해 조용하고 평화로웠습니다. 뒤뜰에 코요테 한 마리가 나타나 모두의 눈길을 사로잡았습니다.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캐나다에서의 일상을 잠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점심 식사 후에는 시차로 인해 쌓인 피로를 풀기 위해 잠시 휴식했습니다.

강연장으로 출발하기 전에 김현미 님에게 보드가야에서 가져온 부처님 액자를 선물했습니다. 김현미 님의 가족들과 함께 기념사진도 찍고, 활동가 김상희 님과도 함께 사진을 찍었습니다.

오후 1시에 강연 장소로 출발했습니다. 오늘 강연이 열리는 곳은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주 버나비에 위치한 마이클 J. 폭스 극장(Michael J. Fox Theatre)입니다. 다양한 콘서트와 문화 행사가 열리는 지역의 대표적인 공연장이라고 합니다. 강연장에 도착하니, 봉사자들이 분주하게 참가자를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스님은 ‘강연 마치고 인사할 시간이 부족할 것 같아 미리 왔다.’며 봉사자들에게 인사를 건넸습니다. 현장에는 50여 명의 봉사자가 모여 있었습니다. 빈 극장에 둘러앉아 잠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봉사자들만 모아도 강연을 할 수 있겠네요.”(웃음)

작년 밴쿠버 강연에는 440명이 강연장을 찾았지만, 좌석이 부족해 입장하지 못한 분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올해는 600석 규모의 극장을 빌렸습니다.

“스님, 휴가철이라 좌석을 다 채우지 못할 것 같아 걱정입니다.”

“괜찮아요. 극장이 아주 좋네요. 수고하셨어요.”

이어서 스님은 봉사자들에게 정토불교대학을 졸업했는지, 인도 성지 순례에 다녀왔는지, 이번 강연이 첫 봉사인지, 또 어디에서 왔는지 등을 물으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봉사자 중에는 일흔넷의 나이에도 기쁘게 봉사에 참여한 분도 있었습니다. 30여 분 동안 대화를 나눈 후 함께 기념사진을 촬영했습니다.

이후에는 밴쿠버와 샌프란시스코 현지인 간담회 통역을 맡은 김길 님, 에린 레거 님 부부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에린 레거 님은 간호사로 20년 근무한 뒤, 인도 지바카 병원에서 봉사하겠다는 뜻을 세워 다시 의과 대학에 입학해 지난 6월 전공의 과정을 마쳤습니다. 스님과 대화하며 인도에서 의료 활동을 할 수 있는 여러 방법을 논의했고, 우선 한두 달씩 시간을 내어 인도를 방문해 보기로 했습니다. 나아가 부탄, 미얀마 등 주변 나라에도 어떻게 의료 지원을 확장할 수 있을지 의견을 나누었습니다. 레거 님 부부는 스님에게 봉사할 기회를 주신 데 대해 깊이 감사드렸습니다. 스님은 두 분에게 영문판 ‘혁명가 붓다’를 선물로 전했습니다.

오후 2시 30분부터는 밴쿠버에서 정토불교대학을 졸업한 외국인 학생들과 간담회를 가졌습니다. 졸업생 6명과 국제지부 봉사자 10여 명이 함께했습니다. 참석자들은 둥글게 둘러앉아 차례로 자기소개를 했습니다.

“저는 캐나다 몬트리올 출신 키스턴입니다. 정토회와 함께한 지 4년 정도 되었습니다. 한국의 여러 곳에서 스님을 뵌 적이 있는데, 캐나다에서 다시 뵙게 되어 정말 기쁩니다.”

“스님, 캐나다에 다시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아내와 함께 정토불교대학 1·2단계를 수료했습니다. 정토회 활동을 시작한 이후 가정이 훨씬 평화로워졌습니다. 생각은 예전과 비슷하지만, 감정과 의식이 많이 안정되었습니다. 지금은 콘텐츠팀에서 구글 AI가 불교 용어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영어 불교대학을 만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주 빅토리아에서 왔습니다. 저는 19살이라 여기서 가장 어린 사람 중 하나일 것 같습니다. 어머니가 한국인 불교 신자인데, 어머니 권유로 처음 입문 과정을 들었습니다. 사실 저는 무신론자나 불가지론자로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불교의 철학적 측면과 포용성, 역사적 깊이에 끌렸습니다. 무엇보다 과거의 심한 분노를 가라앉히는 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 자리에 있게 되어 매우 감사합니다.”

스님은 참가자들의 소개를 경청한 후 불교의 본래 가르침과 문화적 요소의 차이를 알기 쉽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간담회는 자연스럽게 질문과 답변으로 이어졌습니다.

‘스님께서 최근에 새롭게 깨달은 점이 있으신가요?’

‘저는 지금 대학생인데, 의사가 될지 엔지니어가 될지 진로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부부 관계에서 갈등이 있는데, 어떻게 풀어가야 할까요?’

스님은 간결하게, 그러나 깊이 있게 한 사람 한 사람의 질문에 답했습니다. 때로는 웃음이 터지기도 하고, 때로는 고개를 끄덕이며 숙연해지는 순간도 있었습니다. 비록 한 시간 남짓한 짧은 만남이었지만,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고 공감하는 가운데 영어권 수행 공동체의 씨앗이 싹트는 듯했습니다.

대화를 마치며 스님은 참가자들에게 ‘영어 희망편지’를 한 권씩 선물했습니다. 책을 손에 든 이들의 얼굴에 기쁨이 묻어났습니다.

간담회를 마친 뒤, 시애틀과 밴쿠버 간담회를 총괄한 북미서부 현지인 그룹장 한정희 님에게 영문판 ‘혁명가 붓다’를 선물했습니다. 밴쿠버 간담회 실무 총괄을 맡은 김선희 님, 국제지부 현지인 회원 채턴 님, 운전 봉사를 한 주상휴 님께도 책을 전하며 감사 인사를 하고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오후 4시 정각이 되자 400여 명이 자리한 가운데 스님이 무대 위로 올라왔습니다. 큰 박수가 쏟아졌습니다. 스님이 웃으며 인사말을 했습니다.

“올여름에 밴쿠버도 무더웠어요?”

“네.”

“여기는 원래 시원한 데잖아요. 여러분들은 덥다고 하지만 한국 더위에 비하면 가을 날씨 같습니다. 오늘이 일요일인데 아침에 교회나 절에 다녀오셨어요?”

“네.”

“여러분들이 교회나 절에 다녀오라고 이렇게 오후에 강의를 하게 되었습니다. 예전에 오전 강의를 했더니 절에서 항의가 들어왔어요. 사람들이 일주일에 겨우 한 번 절에 와서 법회도 하고 보시도 하는데 법륜스님이 오전에 강연을 잡아 버리니 다 거기 가버렸다고 하소연을 하더라고요. 절에 사람이 안 와서 임대료도 못 냈다고 했어요. 제가 미처 생각을 못 한 거예요. 그 후로 일요일에 즉문즉설을 할 때는 반드시 오후 3시 이후로 잡기로 했습니다. 이렇게 오늘은 오후 4시에 강연을 할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이어서 누구든지 손을 들고 자신의 고민을 질문했습니다. 두 시간 동안 13명이 스님과 대화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그중 한 명은 캐나다에서 원치 않는 삶을 살고 있는데 한국이 너무 그리워서 괴롭다며 스님에게 답답한 마음을 이야기했습니다.

한국이 너무 그리워 우울해질 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는 약간 기구한 사연이 있어서 캐나다에 억지로 와서 살고 있습니다. 한국을 너무 사랑하고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저를 포함해 다른 한인 분들도 한국이 그립지만 어쩔 수 없이 캐나다에 사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당장이라도 광어회에 소주 한잔하고 싶은데 여기는 광어를 다 튀겨버려서 먹지도 못합니다. 부모님도 그립고 고향 땅도 그립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리움이 우울함이 되어 한국만 생각하면 가슴이 땅에 떨어지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캐나다에 살아야 한다면 이런 감정을 떨쳐내고 싶습니다. 어떻게 해야 이 번뇌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어떤 사람이 5년 형을 받아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고 생각해 보세요. 감옥에 있으니 엄청나게 밖에 나가고 싶겠죠. 나가서 소주도 마시고, 연애도 하고, 노래도 부르고 싶을 겁니다. 나갈 수 있다면 좋겠지만 나갈 수가 없는 상황이라면 감옥 안에서 어떻게 해야 할까요?”

“글쎄요.”

“계속 밖을 그리워하면서 사는 게 좋을까요?”

“아직 감옥을 못 가봐서요.”

“질문자는 지금 캐나다라는 감옥에 갇혀 있는 것 같은데요. 사람은 ‘지금, 여기’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질문자가 한국에 가고 싶으면 가면 돼요. 그런데 추방이 되었다든지 어떤 이유가 있어 못 간다면 여기 있을 수밖에 없는 기간 동안은 여기서 최선을 다하는 게 좋습니다. 감옥 안에 있다면 책을 많이 읽거나 운동을 많이 할 수 있습니다. 만약 군대에 갔다면 군대의 장점을 살려 운동을 하면 됩니다. 운동장을 한 바퀴 돌라고 하면 나는 두 바퀴 도는 거예요. 산에 한 번 올라갔다 오라고 하면 두 번 올라갔다 내려오는 거죠. 이렇게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면, 그 안에서 있었던 시간이 낭비가 아니라 오히려 경험이 됩니다. 이처럼 질문자가 어차피 이곳 밴쿠버에 있을 수밖에 없다면 그동안 영어를 충분히 배울 수도 있겠죠.

한국에 있었다면 바쁘게 살아야 했을 텐데 캐나다까지 이민 와서 죽기 살기로 주말도 없이 살 필요가 있을까요? 그렇게 살 바에야 한국에서 살지, 뭐 때문에 여기에 와서 삽니까? 한국에서는 그렇게 죽기 살기로 애써야 먹고살지만, 여기서는 가족과 같이 주말에는 놀아가면서 살아도 됩니다. 월급을 받으면 세금도 많이 내고, 돈을 모을 필요도 없어요. 노후에 국가에서 다 보장해 주니까요. 그러니 지금 세금을 내도 나중에 다 돌려받을 수 있어요. 캐나다에 사는 노인들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 보면 저에게 ‘아무리 좋은 효자라 해도 정부보다 더 좋은 효자는 없다.’라고 말합니다. 월급을 100달러 받아서 40달러를 세금으로 내도 괜찮아요. 나중에 늙어서 다 내가 쓰게 되는 돈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이렇게 느긋하고 여유 있게 살고 싶다면 캐나다에서 살고, 총알같이 바쁘게 살려면 한국에 가서 사는 게 나아요. 다른 사람들은 느긋하게 사는데 자기 혼자 바쁘게 살려면 힘들어요. 한국은 끼리끼리 문화라서 남자들은 남자들끼리, 여자들은 여자들끼리, 아이는 아이대로, 부모는 부모대로 노는데, 캐나다는 가족 중심이잖아요. 가족 중심이 좋다면 여기 살고, 끼리끼리 문화가 좋다면 한국으로 이사 가는 게 낫습니다. 여기에서는 이곳의 장점을 살려서 살아야 합니다. 사과 농사는 추운 곳에서 잘 되니까 추운 데로 가야 하고, 배 농사는 따뜻한 곳에서 잘 되니까 따뜻한 데로 가야 합니다. 추운 데 가서 온실 만들어서 배 키우고, 더운 데 가서 냉방 켜서 사과 키울 필요가 없어요. 그것은 에너지를 낭비하는 방식입니다. 이 사회의 특징을 살펴보고 여기에 적응하는 게 가장 좋습니다. 어쩔 수 없이 왔더라도 여기 있는 동안 이 사회의 장점을 마음껏 누려본다는 관점을 가지면 살 만해 질 겁니다.

저는 옛날에 감옥에 들어간 적이 있었는데, 그 안에서 불교를 배우고 싶다는 분을 만나 커리큘럼을 짜서 열심히 가르쳐 주고 있었습니다. 제 나름대로 할 일을 열심히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석방을 시켜주는 거예요. 할 일이 덜 끝났는데 말이죠. 그래서 제가 한 달만 더 있다 가면 안 되느냐 물어보니 안 된다는 겁니다. 들어올 때는 안 들어오고 싶었는데 억지로 들어오고, 나갈 때는 안 나가고 싶었는데 또 억지로 나가라고 하고, 이게 세상입니다. 감옥 안에서도 나가고 싶지 않고 할 일이 있다면 그곳은 감옥이 아닙니다. 벽이 있다고 감옥이 아니라 나가려고 할 때 못 나가면 감옥이에요. 안 나가고 싶으면 감옥이 아닙니다.

저는 감옥에 있으면서 깨달은 게 많습니다. 손을 딱 묶어 놓고 벌을 주면 처음에는 굉장히 답답했어요. 그런데 절에 있으면 그 넓은 법당에 누가 가둬 놓은 것도 아닌데 기도할 때 딱 서서 하죠. 손을 묶어 놓지 않아도 스스로 움직이지 않고 손을 모으고 있잖아요. 그렇게 기도를 한 시간 두 시간 넘게 합니다. 나의 손발을 묶어 놓고 앉지도 못하게 세워 놓았을 때 그 상황에서 욕을 하고 답답해하면 누구의 손해일까요? 나를 묶은 사람은 내가 괴로워하라고 묶어 놓은 것입니다. 내가 괴로워하면 그 사람 놀음에 놀아나는 거예요. 그럴 때는 내가 항복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왕 묶인 김에 기도를 하자고 마음을 바꾸면 어떨까요? 손이 묶여서 딱 서 있으면 기도하기 좋잖아요. 밥을 안 주면 단식을 하면 됩니다. 있는 밥을 안 먹고 단식하는 것보다는 없는 밥을 안 먹는 게 훨씬 쉬워요. 이렇게 생각을 바꾸면서 나의 자유를 찾아야 합니다.

주어진 환경에서 내가 자유를 찾으면 그들이 나를 괴롭힐 방법이 없습니다. 제가 처음에는 독방에 있었는데 말을 안 듣는다고 잡범이 여러 명 있는 방에 집어 넣어 버렸어요. 어떻게 보면 고통이잖아요. 그러나 거기 가서 그 사람들과 사귀어 버리면 상황이 달라집니다. 어차피 나는 승려이니까 불교를 전파해야 되잖아요. 혼자 있느니 거기에 가서 대화를 하면 전법할 기회가 생기는 겁니다. 반대로 혼자 있게 되면 명상을 하면 돼요. 일부러 혼자 산속에 들어가서 명상하고 사는 사람도 있잖아요. 굳이 사람들을 만나려고 할 이유가 없어요.

나의 자유는 남으로부터 얻는 것이 아닙니다. 나에게 주어진 조건에서 내가 생각을 바꿔 버리면 언제든지 자유를 가질 수 있습니다. 이런 사실을 저는 감옥에 가서 깨달았습니다. 밖에 있을 때는 그걸 잘 몰랐어요.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 어디서든지 자유롭게 살 수가 있습니다. 주어진 지금의 상황을 만끽하는 관점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이것을 ‘지금, 여기, 깨어있기’라고 해요. 한번 따라 해 보세요.”

“지금, 여기, 깨어있기. 감사합니다. 큰 힘이 되었습니다.”

계속해서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 AI 자동화로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서 자녀 교육을 어떻게 해야 할지 방법을 모르겠습니다.

  • 한국 문화에 관심이 없는 자녀들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아이들에게 정체성을 갖게 하고 싶습니다.

  • 한국에 돌아가서 부모님을 모시고 살고 싶은데 동시에 영주권도 유지하고 싶어서 고민입니다.

  • 나를 찾고자 퇴사를 하고 여행과 유튜브를 시작했는데, 갈수록 열정과 꿈이 사라지고 조회수에 집착하게 됩니다.

  • 꿈을 갖고 캐나다에 왔지만 갈수록 나태해지고 있습니다. 스님의 쓴소리가 필요합니다.

  • 하기 싫은 일을 회피하고 싶은데,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할까요?

  • 타인에게 싫다는 거절을 하기가 힘들어요. 타인의 시선과 말에 지나치게 신경을 많이 씁니다.

  • 성 정체성에 대한 혼란이 옵니다. 사랑의 정의는 무엇인가요?

  • 성취의 기쁨을 추구하는 것이 수행에 방해가 될까요?

  • 너무 많은 자아가 충돌해서 ‘나’라는 사람을 규정하기가 힘듭니다.

대화가 깊어질 무렵 한 분은 인간관계에서 생긴 상처와 분노를 어떻게 내려놓고 받아들일 수 있는지 질문했습니다.

연애에서 받은 상처가 증오가 될 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

“최근 연애를 하다가 결국 인간관계에서 오는 상처만 남았습니다. 이것이 증오와 분노가 되어서 저 스스로를 옭아매어 괴롭히고 있습니다. 저의 욕망으로 멋대로 사람들한테 기대하고 그에 따라 실망을 한 탓인데, 어떻게 하면 그런 기대를 버리고 이 모든 고통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여자 친구를 사귀다가 헤어졌다는 겁니까?”

“네, 맞습니다.”

“성인과 성인의 만남이었다는 거잖아요. 성인과 성인이 인간관계를 형성한다는 것을 우리가 좀 유식한 용어로 ‘사회적 계약’이라고 합니다. 사회적 계약은 해약할 수 있습니까? 해약할 수 없습니까?”

“해약할 수 있습니다.”

“좋아하다가 헤어질 수 있어요? 좋아하면 헤어지면 안 되나요?”

“헤어질 수 있습니다.”

“내가 상대를 좋아한다고 해도 상대가 싫다면 헤어져야 하나요? 헤어지면 안 됩니까?”

“헤어져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그런 논리로 보면 연애하다가 헤어졌다고 상대를 미워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겁니다. 내가 원하는 대로 안 된다고 미워한다면 그건 너무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인 거예요. 그러다 자칫 잘못하면 데이트 폭력 같은 것도 일어날 수 있어요.”

“저는 그렇게는 하지 않았습니다.”

“질문자가 그렇다는 게 아니라 그런 위험이 있다는 말입니다. 남녀가 한 방에서 자다가도 상대가 싫다고 하면 그 순간 '알았다!' 하고 쿨하게 물러나야 한다는 거예요. 인간관계는 서로 좋아해서 만나는 것입니다. 상대가 싫다고 하면 내가 아무리 좋아해도 헤어져야 합니다. 그런 기본적인 인간 존중도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욕망입니다. 내가 너를 좋아한다는 이유로 상대가 싫다는데도 무조건 껴안으면 성추행이잖아요. 서로 껴안는 그 자체가 추행이 되거나 사랑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상대가 싫어하는데도 껴안으면 추행이고, 서로 좋아서 껴안으면 사랑인 것입니다.

질문자도 조금 쿨해지면 좋겠어요. 10년을 사귀었더라도 상대가 싫다고 하면 바로 알았다고 해야 합니다. 그렇게 말했다고 해서 바로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다.’ 하라는 것이 아니라, 사랑한다면 조금 기다려 보라는 겁니다. 상대는 지금 싫은 마음에 저렇게 하는 것이니 억지로 하려고 하지 말고 상대의 마음을 존중하고 기다려 보라는 거예요. 하지만 죽을 때까지 기다리라는 건 아니에요.”

“네, 맞습니다.”

“죽을 때까지 기다리는 게 더 낫다 싶으면 그래도 됩니다. 이런 문제를 가지고 요즘 시대의 젊은이들이 징징 짜는 건 끈적끈적한 껌딱지 같은 행동이에요. 그런 마음은 싹 접고, 마치 비누에 손을 씻으면 깔끔해지듯이 상대가 싫다고 하면 ‘오케이!’ 하고 그 사람의 뜻을 존중해 줘야 합니다. 그래도 미련이 남으면 조금 기다렸다가 다시 연락해서 ‘나는 아직도 마음에 네가 남아 있는데, 너는 재고해 볼 여지가 없니?’ 이렇게 물어보고, 없다고 하면 알았다고 정리하면 됩니다.”

“강해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모든 질문에 답변을 한 후 큰 박수와 함께 강연을 마쳤습니다. 곧바로 무대 위에서 책 사인회가 이어졌습니다. 많은 분들이 길게 줄을 섰습니다.


사인회까지 마치니 저녁 6시 30분이 되었습니다. 봉사자들과 함께 ‘밴쿠버!’를 외치며 단체 사진을 찍었습니다.

이어서 봉사자들은 묘덕, 법해 두 법사님과 함께 마음 나누기 시간을 가졌습니다.

“주위에 한인 한 분 없는 곳에서 20여 년을 살았습니다. 오늘 봉사를 계기로 이렇게 많은 한국인들과 함께 북적이는 시간을 보내니 정말 즐거웠습니다.”

“즉문즉설에 여러 번 참석했지만, 봉사자로 참여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무엇보다 강연에 앞서 스님과 봉사자들이 함께한 간담회가 가장 좋았습니다. 존경하는 스님을 가까이에서 뵙고 직접 대화할 수 있어 정말 행복했습니다. 다음에도 또 봉사하고 싶습니다.”

빅토리아 섬에서 배를 타고 온 분, 한국에서 캐나다 여행을 왔다가 봉사에 참여한 분, 깨달음의 장 이후 처음 봉사하는 분까지 각양각색이었습니다.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봉사자들이었지만, 모두가 ‘모자이크 붓다의 한 조각으로 이 자리를 함께 만들었다.’는 뿌듯함을 나누었습니다. 6년 만에 다시 봉사에 참여한 분은 ‘이제는 젊은 봉사자들이 많아졌고, 참가자 중에서도 MZ세대가 눈에 띄게 늘었다.’며 놀라워했습니다.

봉사자들이 나누기를 이어가는 동안, 스님은 시애틀에서 온 분들과 대기실에서 도시락으로 간단히 저녁 식사를 했습니다. 나누기를 마치고 봉사자들과 작별 인사를 나눈 뒤 저녁 7시 20분에 다시 시애틀로 출발했습니다.

30분 만에 국경에 도착했지만, 미국 입국 심사 줄이 길게 늘어서 있어 차가 좀처럼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오전에 캐나다로 입국할 때와 달리 미국으로 돌아가는 길은 쉽지 않았습니다. 한 시간 넘게 기다린 끝에 입국 심사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이후 쉬지 않고 달려 자정 무렵에 시애틀 법당에 도착했습니다.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운전을 해 준 김학로, 주상휴 님에게 감사 인사를 드리고, 내일 샌프란시스코로 떠나기 위해 짐을 꾸렸습니다.

내일은 오전 6시 30분에 시애틀 공항으로 이동하여 비행기를 타고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도착한 후 오후에는 해외국제지부 정토회 회원들과 간담회를 하고, 저녁에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즉문즉설 강연을 할 예정입니다.


2025 9월 정토불교대학

전체댓글 27

0/200

도종

스님 감사합니다 ㅎㅎ

2025-08-28 17:39:47

최연주

스님 법문 너무 고맙습니다

2025-08-28 14:22:28

감로화

인연에 수순합니다.
지금도 좋고 나중도 좋은 일을 합니다.

2025-08-28 14: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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