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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두북수련원의 아침이 밝았습니다.
스님은 새벽 수행과 명상을 마치고 아침 6시부터 울력을 시작했습니다. 묘당, 향존, 법등법사님과 실무자들도 새벽 수행을 마치자마자 작업복을 입고 나와 함께 울력을 했습니다.
마을로 이어지는 대로 양쪽에 풀이 무성히 자라 있었습니다. 철쭉나무 아래로, 위로 풀이 가득했습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지난 5년 동안 시골에서 지낼 때는 여름마다 내 집 마당을 가꾸듯 이 길의 풀을 베었는데, 올해는 해외 일정이 많아서 신경을 쓰지 못했습니다. 이제 동네 어르신들도 연세가 많으셔서 풀을 베기가 쉽지 않습니다. 스님은 무성한 풀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울력을 하기로 했습니다.
먼저 마을 입구에서부터 풀을 베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되돌아가 반대편에 자란 풀도 벴습니다.
한창 풀을 베고 있는데 마을에서 한 분이 나와 참을 주고 가시며 인사를 했습니다.
“절에서 풀을 베주나 보네요. 고맙습니다. 이것 좀 드시고 하세요.”
인사를 드리고 계속 풀을 벴습니다. 구름이 걷히고 해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스님은 한 번도 쉬지 않고 길가에 풀을 다 벴습니다. 날이 뜨거워지기 전에 풀을 다 베야 하기 때문입니다.
풀을 다 베고 나서는 철쭉나무의 옆면을 다듬고, 위로 자란 풀도 깎아주었습니다. 예초기로 벨 수 없는 풀은 낫으로 직접 걷어냈습니다.
풀 조각이 몸 곳곳에 튀어 있었습니다. 길가에 떨어진 풀 조각들은 묘당법사님이 송풍기로 불어 치웠습니다.
송풍기로 풀 조각을 싹 치우고 나자 마을 진입로가 깨끗하게 정돈되었습니다.
스님은 장화를 털고 예초기를 내려놓고 물을 한 모금 마셨습니다. 온 몸이 땀으로 흠뻑 젖었습니다.
“오랜 만에 예초기를 돌렸더니 손이 덜덜 떨리네요. 모두 수고 많았어요.”(웃음)
스님은 땀과 풀조각을 씻어낸 후 오전 10시부터는 정토회 회원들이 모두 화상회의 방에 입장한 가운데 수행법회 생방송을 시작했습니다. 삼귀의와 반야심경을 한 후 지난주 일주일 동안 정토행자들이 어떤 활동을 했는지 주간 정토행자의 소식 영상을 시청했습니다.
이어서 대중이 삼배의 예로 법문을 청했습니다. 스님은 동북아 역사기행을 다녀온 소식, 광복80주년 기념행사 소식 등 최근의 근황과 앞으로 정토회 행사 일정을 공유하며 법문을 시작했습니다.
“무더운 여름 잘 지내셨나요? 저는 지금 두북 수련원에서 여러분을 만나고 있습니다. 모처럼 내려와 보니, 요즘 시골이 다 그렇듯 동네에는 노인들만 계시고, 지난겨울에 몇 분이 돌아가신 뒤로는 마을을 관리할 사람이 거의 없었습니다. 우리 농장이 있는 마을 앞길에도 풀이 무성하게 자라 있었습니다. 마을에서 공동으로 하는 풀베기 울력에 제가 거의 참여하지 못해 늘 미안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새벽 6시부터 한 시간 넘게 예초기를 돌렸더니 팔이 덜덜 떨릴 정도였습니다. 덕분에 아침 운동을 제대로 했습니다. (웃음)
올해는 우리 민족이 광복을 맞은 지 80주년 되는 해입니다. 일제로부터 해방된 지 벌써 80년이 지났지만, 일본은 아직도 과거의 잘못에 대해 진솔한 사과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일 관계도 여전히 잘 풀리지 않고 있습니다.
며칠 전에 동북아 역사 기행을 다녀왔는데요. 중국 정부가 독립운동 유적지 답사를 막는 것을 보며 ‘잘못된 정책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들었습니다. 중국은 ‘하나의 중국’이라는 가치를 내세워 소수 민족의 이탈을 막으려 하고 있습니다. 조선족 자치구의 조선 학교나 조선족 대학교가 거의 사라지고, 모든 학교에서 중국어 수업만 진행하고 있습니다.
미래의 국가 불안 요소인 분리주의 조짐을 막으려는 중국 정부의 노력은 이해됩니다. 그러나 한중 관계가 악화될수록 양국 국민의 마음을 얻기 위해 더욱 노력해야 합니다. 올해처럼 항일전쟁 승리 80주년이 되는 해에는 오히려 한중 국민이 함께 항일투쟁을 했던 역사를 탐방하는 편이 양국 유대를 강화하는 길일 텐데, 중국이 항일유적지에 대해 폐쇄적인 방향으로만 가는 것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는 중국 정부가 9월 3일 항일전쟁 승리 80주년 기념행사에 한국 대통령을 초대하고, 한국인이 항일 유적지를 함께 참배하도록 장려했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현실은 그 반대였습니다. 항일 유적지 방문까지 막아버리니 한중 국민 간에 서로 마음을 나눌 여지가 줄어드는 것이 아쉬웠습니다.
정토회는 광복 80주년을 맞아 기념식을 할 예정입니다. 지난 80년간 우리가 이룬 성과와 남은 과제에 대해 설문 조사한 내용을 발표하고, 최근 북한이 제기한 ‘두 개의 국가론’을 어떻게 바라볼지 전문가와 함께 심도 있는 토론도 진행할 계획입니다. 사실 ‘두 개의 국가론’을 처음 제기한 쪽은 북한이 아니라 남한이었습니다. 북한은 한 개의 국가론을 내세우며 무력 통일을 시도했습니다. 그러다 힘으로는 안 된다고 판단한 북한은 서로의 체제를 인정하며 평화적으로 통일하자는 취지로 고려 연방제를 내세웠습니다. 그러나 남한에서는 통일을 북한의 대남정책이라고 여기며, 통일을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친북 인사로 몰아가는 분위기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북한이 두 개의 국가론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겉으로 보면 남한이 과거 취했던 입장과 같아진 셈이니 잘된 것 아니냐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오히려 남한이 통일을 강조하며 북한의 두 개의 국가론을 비판하는 상황으로 바뀌었습니다. 전쟁을 막기 위해서는 두 국가 체제를 인정하는 관점이 유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민족의 미래를 생각하면 통일의 꿈을 결코 놓아서는 안 됩니다. 이런 점에서 북한의 변화는 남북 관계를 평화적으로 풀기에 유리한 측면이 있는 동시에, 앞으로의 미래를 우려하게 만드는 측면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광복 80주년 기념포럼을 통해 전문가들의 의견을 경청하는 시간을 가져보고자 합니다.”
이어서 궁금한 점에 대해 질문을 받았습니다. 오늘은 세 명이 스님에게 질문하고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중 한 명은 바닷가로 가족 여행을 갔다가 남편이 물에 빠진 아이들을 구하고 돌아오지 못했다며, 죄책감을 어떡하면 좋을지 스님에게 조언을 구했습니다. 질문자는 슬픈 마음을 가누지 못하고 힘겹게 말을 이어갔습니다.
“약 3주 전에 저희 가족은 제주도로 휴가를 갔습니다. 아이 셋이 바다에서 미역을 따며 놀고 있었고, 그 모습을 남편이 혼자 보고 있었습니다. 제가 잠시 배달 음식을 가지러 간 사이 바닷물이 갑자기 깊어지고 파도가 쳐서 아이들이 물에 빠졌습니다. 남편은 아이들을 구했지만, 본인은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남편은 제주도 대신 강원도로 가자고 했지만, 제가 고집해서 떠난 제주도 여행이었습니다. 또 남편은 식당에서 점심을 먹자고 했는데 저는 꼭 배달 음식을 시키겠다며 고집했고, 그 결과 이렇게 된 것 같아 남편에게 너무 미안합니다.
큰아이가 5학년인데, 아빠의 주의를 듣지 않아 이런 일이 일어난 것 같다고 자책을 많이 합니다. 아이들이 계속 울 때마다 저는 그저 안아주고 토닥여 줄 뿐입니다. 남편이 정말 착하고 좋은 사람이었는데 너무 못 해주고 받기만 한 것 같아 죄책감이 큽니다. 워낙 착한 사람이니 좋은 곳에 갔으리라 믿지만, 제가 어떻게 해야 남편이 극락왕생할 수 있을까요? 아이들을 어떻게 하면 잘 키울 수 있을지 여쭙고 싶습니다.”
“먼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질문자의 마음이 얼마나 아플지 짐작됩니다. 오늘 수행법회가 끝나면 백중 기도가 있으니, 그때 고인을 위해 정성을 다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무엇보다 사고는 사람이 착하거나 악하다고 해서 생기고 안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산사태가 나면 착한 집은 피해 가고, 나쁜 집만 쓸려가지는 않지요. 비행기가 추락할 때 착한 사람은 살고, 악한 사람만 죽는 일도 없고요. 세월호 같은 침몰 사고에서도 특정 종교인만 살고, 다른 종교인은 죽는 법도 없습니다. 법륜스님이 탄 비행기가 추락하거나 차가 전복되면 법륜스님도 똑같이 죽습니다. ‘착하다’, ‘악하다’ 하는 것은 사고와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누가 해친 것이 아니라 그냥 사고가 난 겁니다. 이런 사고를 두고 자책하는 것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방 안에서 가족이 심장마비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고 해보세요. 옆에 있던 사람이라면 ‘내가 문을 한 번만 열어봤더라면’ 하고 자책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그런 일을 누가 예측할 수가 있겠어요? 사고가 날 것을 알았다면 제주도에도 가지 않았을 테고, 바닷가에도 가지 않았을 겁니다. 그러나 사고는 예측할 수 없는 법입니다.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려면 위험도가 있는 곳은 피해야 합니다. 해수욕장에도 부표를 띄워 수심이 깊은 곳에는 접근하지 못하도록 해 놓습니다. 그런데 이런 안전장치가 없는 바닷가에서 놀다가 사고가 일어났다면 안전불감증으로 볼 수 있습니다. 안전에 대한 충분한 인식이 부족했다고 볼 수 있어요. 물론 안전 구역 안에 있었다 해도, 사고가 발생할 확률이 줄어들 뿐이지 절대로 사고가 안 난다는 것은 아닙니다. ‘접시 물에 코 박고 죽는다.’ 하는 말처럼, 사고는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거예요. 사고는 착하고 악한 것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또한 자신이 의도해서 한 일이 아니므로 자책할 필요가 없어요. 설사 자책한다고 해도 아무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만약 남편이 원하는 대로 강원도로 가든, 어디를 가든, 사고는 어디에서든 일어날 수가 있는 겁니다. 질문자가 제주도로 가자고 했다는 사실만으로 자책할 필요는 없습니다.
아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이들이 다소 안전에 둔감했다고 해도, 이번 일을 아이들의 책임으로 돌릴 수는 없습니다. 바닷가에서는 어린아이뿐 아니라 누구나 위험에 처할 수 있고, 아이가 위험에 빠졌을 때 어른은 당연히 최선을 다해 구하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생명을 잃을 수도 있지만, 그것은 자식을 향한 아버지의 사랑이자 어른으로서의 책임감입니다. 일본 여행 중에 일본인을 살리다 희생된 청년도 있지 않습니까.
이번 일이 불행은 맞습니다. 예기치 못했고 원치 않은 일입니다. 그러나 이런 사고를 두고 자책해도 아무 해결이 되지 않습니다. 자책하면 심리가 위축되고 스스로 죄의식을 갖게 됩니다. 특히 질문자가 정신적으로 흔들리면 아이들의 심리에도 큰 상처를 남길 수 있어요. 물에 빠졌던 아이는 엄마인 질문자를 볼 때마다 미안함을 느끼고, 스스로를 더 자책하게 됩니다. 그러니 질문자가 먼저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물론 아이가 자책하는 마음을 갖는 것은 자연스러운 반응입니다. 자신이 일으킨 일이 아니더라도, 아빠가 돌아가셨다는 사실 때문에 그런 감정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아이에게는 이 일이 사고였음을 분명히 알려주어야 합니다.
‘이 일은 네 잘못이 아니야. 하지만 앞으로는 안전에 더 신경 써야 해. 아빠는 네가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서 목숨까지 걸고 널 구했단다. 아빠는 네가 계속 울고 힘들어하기를 원하지 않을 거야. 그러니 네가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이 아빠를 위하는 길이야.’
이렇게 아이를 격려해 주어야 합니다. 아이의 상처를 보듬고 놀란 마음을 진정시켜 주어야 합니다.
또한 아이를 데리고 아동 심리 전문의를 찾아가 심리 치료를 받도록 해야 합니다. 필요시 약물 치료를 병행하며 마음을 안정시키는 것이 필요합니다. 겉으로는 이상이 없어 보여도 상처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조기 치료를 통해 정신적 충격을 완화하고 죄책감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야 합니다. 방치하면 상처가 굳어 성인이 되어서도 늘 마음에 슬픔을 안고 살아가게 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우선 아이가 심리 치료를 받도록 하고, 질문자도 필요하다면 당분간 정신과 치료를 받고 약을 복용하세요. 사고의 순간적인 충격으로 일정 수준의 우울 증상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에 약을 통해 마음을 안정시키는 것이 필요합니다. 약을 복용하며 심리를 안정시키는 동시에, 마음속으로 이렇게 다짐해 보세요.
‘우리에 대한 당신의 사랑을 잊지 않고, 우리가 당신 몫까지 힘을 내어 행복하게 살아가겠습니다.’
항상 이렇게 생각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남편이 목숨을 걸고 구해 놓았는데, 구해놓은 사람들이 계속 울고 슬퍼하며 제대로 살지 못한다면, 남편 입장에서는 자신의 희생이 무의미하게 됩니다. 그러니 가족이 웃고 행복하게 살 때, 오히려 남편의 희생이 빛을 발하게 된다는 사실을 꼭 기억하기 바랍니다.
그리고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느냐와는 관계없이 우리의 문화적 전통에 따라 49재를 지내고 백중 기도를 한번 해보세요. 기도를 하는 과정에서 심리가 안정되어 갈 겁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가족이 함께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잘 알았습니다.”
계속해서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충분히 대화를 나누고 11시가 넘어서 생방송을 마쳤습니다. 방송실을 나온 스님은 곧바로 점심 식사를 하였고, 생방송에 접속한 대중들은 백중 3재 기도를 함께 했습니다.
12시 30분에 백중 3재 기도를 마친 후 12시 40분에 두북 수련원을 출발해 서울로 향했습니다.
고속도로 위를 4시간 동안 달려 오후 4시 40분에 서울 정토사회문화회관에 도착했습니다.
대각회 명예이사장인 봉안(鳳眼)당 효경(曉經) 대종사님이 원적에 들었다고 해서 유수 스님과 함께 곧바로 분향소가 마련된 법안정사로 향했습니다.
오후 5시 20분에 법안정사 분향소에 도착하자 여러 사찰에서 온 스님들의 조문 행렬이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효경 대종사님은 1974년부터 1989년까지 서울 대각사 주지를 역임했습니다. 무엇보다 스님은 용성조사님이 창건한 대각사를 현재의 면모로 중창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신 분입니다. 법안정사와 대각정사의 회주를 맡아 후학을 양성해 오시다가 지난 10일 원적에 드셨습니다.
분향소에 들어선 스님은 먼저 효경 대종사의 영전에 삼배를 올렸습니다.
분향을 한 후 제자 스님들에게 위로를 건넸습니다.
“상심이 크시지요. 그래도 자연의 섭리이니 너무 섭섭해하지 마세요.”
“예, 이렇게 와주셔서 고맙습니다.”
분향소를 나가며 방명록을 작성했습니다.
‘큰스님의 뜻을 이어 나가겠습니다.’
대각회 이사장 장산스님, 구례 화엄사 회주 종열스님, 해인사 방장 대원 스님과 인사를 나눈 후 저녁 공양을 하고 분향소를 나왔습니다.
다시 차를 타고 이동하여 정토사회문화회관으로 향했습니다. 저녁 7시 25분에 도착해 곧바로 7시 30분부터는 정토사회문화회관 10층 회의실에서 JTS 활동가들과 부탄에 파견할 인력 문제를 주제로 회의를 했습니다.
하반기부터 부탄 지속가능한 개발의 본 프로젝트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되는데, 그에 따라 많은 인력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현재 정토회 실무자 중에서 누구를 추가로 파견하면 좋은지 추천을 받고 함께 의논을 했습니다. 한 시간 반 동안 논의를 한 후 회의를 마쳤습니다.
이어서 곧바로 JTS 박지나 대표님, 국제협력팀 활동가들과 9월에 예정된 동남아 답사 일정에 대해 회의를 한 후 밤 9시 30분에 일과를 마쳤습니다.
내일은 광복 80주년을 맞아 사회 각계각층의 인사들을 모시고 한반도 평화와 국민대통합을 염원하는 기념식과 기념포럼을 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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