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검색
원하시는 검색어를 입력해 주세요
안녕하세요. 오늘은 계룡대에서 해군본부가 주최한 초청 강연에 참석하여 즉문즉설을 하고, 카이스트 대강당에서 대전 시민들을 위한 행복한 대화 즉문즉설 강연을 하기로 한 날입니다.
스님은 새벽 수행과 명상을 마친 후 평화재단으로 향했습니다. 오전 9시부터 외교 안보 전문가들과의 미팅으로 일과를 시작했습니다.
한반도 평화를 위한 해법으로 북미 관계를 어떻게 풀어나갈지, 그리고 새롭게 출범한 한국 정부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에 대해 심도 깊은 논의가 이어졌습니다. 전문가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향후 대북 접근 방식에 대해 다양한 전망을 제시하며, 이번 기회를 한반도 평화 정착의 전기로 삼기 위한 한국의 외교·안보 전략에 대해 의견을 나누었습니다. 약 두 시간 동안 활발한 대화가 오간 뒤, 다음 모임 일정을 조율한 후 회의를 마무리했습니다.
지하 공양간에서 점심 식사를 한 후 부탄에서 니마 님이 한국을 방문하여 스님께 인사를 드리러 왔습니다. 니마 님은 스님이 부탄을 방문할 때마다 통역 봉사를 하고 숙소를 제공해 준 린첸다와 님의 동생입니다.
“언제 한국에 왔어요?”
“일주일 전에 왔고, 내일 다시 부탄으로 돌아갑니다.”
“그래요. 용돈을 줄 테니까 오늘 맛있는 거 먹고 부탄으로 잘 돌아가세요.”
반갑게 인사를 나눈 후 12시에 서울 정토사회문화회관을 출발하여 계룡대로 향했습니다.
대한민국 육군, 해군, 공군의 본부가 있는 계룡대에서 해군본부 초청으로 즉문즉설 강연을 하게 되었습니다. 해군 참모총장님 이하 군 장성분들이 사전에 스님의 책도 미리 읽는 등 강연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아주 열정적이었다고 합니다.
오후 2시 50분에 해군본부가 있는 계룡대 본청에 도착했습니다. 해군본부가 주최했지만 삼군 본부가 한 곳에 있다 보니 삼군이 다 참가하기로 했다고 합니다. 강연을 하기 전에 육·해·공군 삼군 지도부와 환담을 나누기 위해 접견실로 이동했습니다.
양용모 해군 참모총장님을 비롯해 삼군의 지도자들이 함께 자리했습니다.
군 장성분들과 환담을 마치자, 해군 참모총장님이 스님에게 기념패를 선물해 주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 인사를 한 후 강연을 하기 위해 대강당으로 함께 이동했습니다.
육·해·공군에서 680여 명의 장교들이 자리를 가득 메웠습니다. 스님이 모습을 보이자, 우레와 같은 함성과 박수가 쏟아졌습니다.
사회자가 스님을 소개하자 스님이 무대로 걸어 나와 자리에 앉았습니다. 스님은 즉문즉설이 어떤 강연인지 먼저 소개했습니다.
“날씨도 더운데 나라를 지키느라 다들 수고가 많으십니다. 오늘은 직업적 역할이나 책임을 잠시 내려놓고, 친구끼리 카페에서 만나 얘기하듯이 편하게 이야기를 나누면 좋겠습니다. ‘나 이런 어려움이 있어요.’ 하고 속마음을 털어놓듯이요. 직장 생활의 어려움은 꼭 그 직장의 문제라고만 보기는 어렵습니다. 결국 그 환경 안에서 내가 느끼는 괴로움이니까요. 그래서 저는 ‘그 환경에서 어떤 마음을 가질 때 좀 더 자유롭고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관점에서 여러분과 이야기를 나누어 보고자 합니다. 그러니 별다른 준비 없이 편하게 말씀해 주기 바랍니다.
누가 저에게 ‘인생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라고 묻는다면, 저는 ‘네 좋을 대로 살아라.’라고 말합니다. 무책임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다람쥐나 토끼가 물어도 똑같이 말할 겁니다. 인생은 어떻게 살아야 한다고 정해진 법이 없습니다. 그냥 자기가 좋을 대로 살면 됩니다. 그런데 자기가 좋을 대로 살고 있는데도 괴롭다면, 어딘가 모순이 있는 겁니다.
왜 내가 좋을 대로 사는데 괴로울까요? 그건 어리석은 짓이기 때문에 그 이유를 한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괴로웠구나.’ 하고 알게 되면, 더는 괴롭지 않게 살 수 있습니다. 어떤 일이 생겼을 때 괴로워하기보다는, 왜 그런지 조금만 살펴보면 생각보다 가볍게 해결책을 찾아나갈 수 있습니다. 그럼, 대화를 시작해 보겠습니다. 질문이 있으신 분은 누구든지 손을 드세요.”
이어서 인생을 살아가면서 겪는 어려움에 대해 누구든지 손을 들고 질문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군 장교들은 군이라는 특수한 환경 속에서 겪는 삶의 갈등과 고민을 진솔하게 이야기했습니다. 두 시간 동안 아홉 명이 스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첫 번째 질문자는 부임지 이동이 잦은 군 생활 속에서 연애하기가 어렵다며 좋은 인연을 언제쯤 만날 수 있을지 스님에게 질문했습니다. 청중석 곳곳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습니다. 스님이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가족과 떨어져 지내고, 부임지도 자주 옮기다 보니 외로움을 느낍니다. 좋은 사람을 언제쯤 만날 수 있을까요?”
“질문자가 좋은 사람을 찾는 것 보니까 결혼을 하기가 조금 어려울 것 같습니다. 결혼을 하려면 너무 좋은 사람을 찾지 말고 선택의 폭을 넓혀야 합니다. 예를 들어 ‘남자면 된다, 여자면 된다.’, ‘나이 차이는 아래위로 스무 살까지 괜찮다.’ 이 정도는 돼야 마음에 맞는 사람을 찾을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나는 조건 같은 건 안 따진다.’ 이렇게 말하지만, 막상 물어보면 온갖 조건들이 다 나옵니다. 나이는 한두 살 많아야 하고, 키는 얼마여야 하고, 인물은 어떻고, 성격은 어떠해야 한다는 식으로 여러 가지 조건을 따지기 때문에 결혼을 못 하는 겁니다. 거기에 더해 내가 좋아해야 하고, 그 사람도 나를 좋아해야 합니다. 이 조건들을 컴퓨터에 입력하고 ‘이런 사람이 몇이나 됩니까?’ 하고 물으면, 아마 그런 사람은 없다고 나올 겁니다.
이미 결혼한 사람들도 사실 대부분은 속아서 결혼한 겁니다. 화장한 얼굴에 속았거나, 높은 구두 굽에 속았거나, 중매쟁이가 학벌을 속여서 결혼이 성사된 경우도 있겠고요. 연애하고 결혼한 사람도 결혼 후에는 ‘속은 것 같다.’라고 문제 제기하는 사람이 많이 있어요. 그런데 사실은 그렇게 속았기 때문에 결혼이 성립된 거예요. 사람은 누구나 자기보다 약간 위를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데 상대도 위를 보기 때문에 나는 그 사람 눈에 잘 안 보이죠. 그 사람 눈에 들려면 나도 키를 살짝 높여야 합니다. 그런데 질문자처럼 안 속으려고 좋은 사람만 찾으면 결혼은 어렵습니다. ‘좋은 사람’이라는 객관적인 존재는 없습니다. 내가 좋으면 그 사람이 좋은 사람이 됩니다. 하지만 그런 사람을 만날 확률은 열 명 중 한두 명도 안 됩니다. 내가 그 사람을 좋아하고, 그 사람도 나를 좋아해야 하니까, 백 명 중 하나 만나기도 쉽지 않아요.
연애는 두 사람만 좋아하면 됩니다. 나이 차이도 괜찮고, 외국인도 상관없어요. 하지만 결혼은 다릅니다. 당사자만 좋다고 되는 게 아니에요. 부모도 좋아해야 하고, 가족들도 한 마디씩 거듭니다. 상대 집안도 마찬가지고요. 연애는 두 사람의 문제지만, 결혼은 가족 전체의 문제예요. 그래서 우리 가족의 일부로 받아들일지 말지 주변 사람들의 간섭이 많이 있는 거예요. 이렇게 복잡하니까 결혼이 어렵게 느껴지지만, 실제로는 다들 조금씩 속아서 했습니다. 그 결과 살다 보면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조금 속았기 때문에 결혼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알면 별문제가 없습니다.
그래도 예전보다 위험 부담은 좀 줄었습니다. 과거에는 결혼을 딱 한 번만 할 수 있었고, 얼굴도 모른 채 결혼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생년월일을 가지고 궁합도 보고, 집안도 따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많이 달라졌어요. 상대를 만나 보기도 하고, 같이 살아 보기도 한 다음에 괜찮다 싶으면 결혼을 결정할 수 있습니다. 그만큼 위험 부담이 줄어든 거예요. 살다 보니 안 맞으면 그만둘 수도 있고, 다시 시작해도 됩니다. 그래서 너무 망설일 필요는 없습니다.
예전에는 한 번밖에 결혼을 못 하니까 엄청나게 조심했지만, 지금은 조건을 확인해 보고 괜찮으면 결혼을 한번 해 보고, 아니면 그만둬도 괜찮습니다. 요즘은 오히려 너무 따지고 재다가 결혼을 하니까 상대에 대한 기대가 너무 큰 거예요. 막상 함께 살아 보면 잘 안 맞아서 깨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열 명 중 한 명을 고르고 골라서 결혼했다가 깨지나, 길 가는 사람 손잡고 살아 보다가 깨지나, 결국엔 마찬가지입니다.”
“저도 눈이 많이 낮아져서 위아래 열 살까지는 괜찮고, 그저 다정한 사람이면 좋겠습니다.”
“다정한 사람은 같이 지내기는 좋지만, 줏대가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걸 알아야 해요. 솜처럼 부드러운 사람은 막상 살아 보면 강단이 없고, 반대로 쇠처럼 단단한 사람은 자꾸 부딪힙니다. 모든 성향은 장점이 있으면 단점도 있는 법입니다. 부드러운 게 좋으면, 그 부드러움과 함께 오는 부족함도 감수해야 하고, 나이 차이가 많은 게 좋게 느껴졌다면 그 차이에서 오는 어려움도 함께 감내해야 합니다. 모든 조건에는 양면이 있는 거예요. 이걸 선택하면 저걸 포기해야 하고, 저걸 원하면 이걸 받아들여야 합니다. 선택이란 늘 책임이 따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언가를 선택할 때는, 반대되는 면도 함께 수용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런 포용성을 갖게 되면, 남이 3년 살다 그만둘 때 나는 5년 살다 그만둘 수 있고, 남이 10년 살다 그만둘 때 나는 20년을 같이 살 수가 있습니다. ‘절대 헤어지지 않겠다!’ 이렇게 단호한 목표를 세우기보다는, 평균보다 조금 더 좋은 관계를 유지하겠다는 정도로 가벼운 마음을 갖는 것이 좋습니다.
그런데 질문자가 오늘 이렇게 마이크를 잡고 얘기한 이유는 저한테 묻고 싶어서가 아닌 것 같아요. 사실은 ‘제가 사람을 좀 사귀고 싶은데, 주위에 누구 없어요?’ 하고 공개적으로 공지를 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웃음)
다음 질문자는 은퇴 후 부모님을 직접 돌보고 싶지만, 아내와의 갈등이 있을 때 어떻게 균형 있게 효도를 실천할 수 있는지 스님에게 조언을 구했습니다.
“3년 전 아버지가 뇌졸중으로 쓰러져 병원에 입원하셨습니다, 중환자실에 계시다 보니 가족이 돌아가며 간병해야 했습니다. 저는 근무 중이라 갈 수 없었고, 며느리 입장에서 아버님 곁을 지키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결국 남동생과 여동생이 각각 열흘씩 숙식을 하며 간병을 맡았습니다. 저는 그동안 입신양명을 위해 정말 열심히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정작 아버지가 가장 필요로 하실 때 곁에 있지 못했다는 게 늘 마음에 걸립니다. 지금은 다행히 살아 계시고, 주간보호센터에 다니고 계십니다. 어머니께서 옆에서 하루 종일 돌보시느라 많이 힘들어하시고요. 저는 30년 군 복무를 하고 이제 곧 제대를 앞두고 있습니다. 아들로서, 장남으로서 그동안 다 하지 못한 마음이 늘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제대 후에는 부모님 곁에서 살며 봉양하고 싶습니다. 아내는 현실적인 문제라며 거세게 반대합니다. 장인, 장모님은 이미 돌아가셨지만, 저는 단 몇 년이라도 부모님 곁에서 지내고 싶습니다.”
“그냥 아내가 하자는 대로 하세요. 편찮으신 부모님을 모시고 싶다는 마음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하지만 그 마음은 실제로 부모를 위하는 게 아니라, 질문자의 마음속에 쌓인 빚을 갚고 싶은 욕구일 뿐이에요. 내가 부모 곁에 간다고 해서, 그게 정말 부모님께 도움이 될지는 모르는 일입니다.
부모님과 함께 산다는 것도 깊이 생각해 봐야 할 문제입니다. 한번 생각해 보세요. 아내는 앞으로 30년 이상을 함께 살아야 하는 사람입니다. 반면 부모님은 앞으로 10년 정도밖에 함께 하지 못할 수 있어요. 그런데 10년 함께할 부모를 위해 30년 살아야 할 아내와 등을 져서 어떻게 살려고 그래요? 아내의 의견을 듣되, 그 안에서 가능한 두 가지 대안을 제시해 보세요. 첫째, ‘책임지겠다.’라는 식으로 약속하기보다는 잠깐씩 시간을 내어 부모님을 돌보는 겁니다. 실제로 간호해 보면 생각처럼 잘 안 되는 걸 금방 알게 됩니다. 그러니 1주일에 한 번씩 방문하거나, 시간이 되면 자주 들러보세요. 둘째, 동생이나 다른 가족이 돌본다면, 질문자가 경제적으로 지원해 주는 방식이 있습니다. 그렇게 아내와 조금씩 조율해 가는 거예요.
만약 억지로 아내와 합의해서 부모님과 1년쯤 같이 살게 되면, 그건 결혼의 원칙에도 안 맞습니다. 결혼이란 부모의 품을 떠나 새로운 가정을 꾸리는 일입니다. 그런데 자꾸 옛 가정에 연연해서 현재의 가정에 갈등을 일으킨다면 현명하지 않아요. 마음은 충분히 이해되지만, 현명한 태도는 아니에요. 아내가 받아들일 수 있는 선에서 자주 부모님을 찾아뵙고, 전화로 안부를 챙기는 편이 더 현명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계속해서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남편을 따라 10번 이상 이사를 다니며 커리어를 포기해 왔지만, 최근 어렵게 얻은 해외 근무 기회에 대해 남편이 비협조적인 태도를 보입니다. 어떤 마음으로 선택을 이어가야 할까요?
나약하고 어리석게 느껴지는 자신을 믿고 수행과 정진을 계속하는 것이 맞는 길일까요?
아이의 교육과 정착을 위해 주말부부를 선택한 결정이 과연 옳은 선택일까요?
군인이라는 특수한 상황 속에서 여자 친구와 자주 만나지 못하고, 여자 친구는 자신의 스케줄에 더 맞춰달라고 요구해 갈등이 생깁니다. 어떡하면 좋을까요?
결혼을 앞두고 있는데 아내가 내향적이고 가정 중심적인 성향이 강해 취미 활동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이 차이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조율해야 할까요?
부모의 기대와 다른 진로를 선택하여 전문직 시험을 몰래 준비 중입니다. 낙방하거나 계속 도전할 때, 어떻게 갈등 없이 부모님을 설득할 수 있을까요?
직장과 사회생활에서 선한 영향력을 끼치며 살고 싶습니다. 바쁜 업무 속에서 주변에 좋은 영향을 주려면 어떤 태도와 실천이 필요할까요?
질문하고 싶은 분들이 계속 생겼지만, 이제 마쳐야 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스님은 최근에 비상계엄 사태로 마음속 상처를 받은 군 장교들을 위로하며 격려의 말을 해주었습니다.
“군인 여러분, 지난겨울 동안 많이 힘드셨지요? 구체적인 말씀은 드리지 않겠습니다. 지난겨울에 일어난 사태는 군인으로서의 자부심에 상처를 입을 만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불미스러운 사건이 있었다 하더라도, 지금 우리가 정말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문제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일입니다. 물론 기후 위기나 무역 관세와 같은 이슈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보다 훨씬 더 중대한 과제는 바로 ‘전쟁을 막는 일’입니다.
경제가 얼마나 성장했는지, 한류가 세계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 민주주의가 얼마나 성숙했는지도 중요하지만, 만약 이 땅에서 전쟁이 일어난다면 지난 70여 년 동안 우리가 일궈온 모든 성과는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습니다. 일본은 전쟁이 갑작스럽게 발발할 가능성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다릅니다. 우리는 여전히 언제든 전쟁이 일어날 수 있는 조건 속에 살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전쟁이 끝난 게 아니라 휴전 중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이 땅에 다시는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라는 관점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까짓 거 한 번쯤은 전쟁을 해 볼 수도 있지.’, ‘전쟁해서 이기면 되는 것 아닌가?’ 이런 생각은 정말 위험합니다. 전쟁은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전쟁을 막는 일은 우리가 원하지 않는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가 원하지 않아도, 상대가 공격해 올 수도 있기 때문에 굳건한 방어력은 반드시 갖추어야 합니다. 상대의 도발을 억제하려면 강한 방어력이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동시에 상대가 전쟁을 일으키고 싶지 않도록 서로 간의 갈등을 줄이고 긴장을 완화해야 합니다. 그래서 남북 간의 대화를 이어가는 일과 강력한 방어력을 갖추는 일은 결코 모순되는 것이 아닙니다. 평화를 지켜내기 위해서 이 두 가지는 반드시 함께 가야 할 길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여러분은 지금 대한민국의 안보를 지키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세상이 알아주든 그렇지 않든, 그 책임은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상처받은 마음이 하루빨리 회복되시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요즘 명예퇴직을 고민하시는 분들도 많이 계신다고 들었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그러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나라를 지키고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킨다는 자부심을 가지십시오. 앞으로 대한민국이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발전해 나가려면, 바로 여러분들의 헌신과 수고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제가 오늘 이 자리에 특별히 온 이유도, 바로 여러분의 심리적 안정을 돕기 위해서입니다. 내면의 갈등이 깊어지면 우리의 방어 태세에도 균열이 생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부디 여러분 모두가 좀 더 평온한 마음으로 사명감을 지니고 각자의 역할에 충실하시기를 바랍니다.”
큰 박수와 함께 육·해·공군 합동 법륜스님 초청 강연을 마쳤습니다.
스님의 책을 가져오신 분들은 무대 위에서 스님에게 사인을 받았습니다.
해군 참모총장님이 직접 스님이 차를 탈 때까지 배웅을 해주었습니다.
“스님, 오늘 좋은 말씀을 해주셔서 너무 감사했습니다.”
“1년에 한두 번 이런 자리를 마련해 주시면 기꺼이 오겠습니다.”
오후 5시 10분에 계룡대 본부를 출발하여 대전 카이스트(KAIST)로 향했습니다.
지난달 27일에 서울 정토사회문화회관에서 2025년 행복한 대화 첫 번째 강연이 열린 이후 오늘은 두 번째 강연이 대전 시민들을 위해 카이스트(KAIST) 대강당에서 열리는 날입니다.
스님이 카이스트 대강당에 도착하자 봉사자들과 대전 시민들이 열렬히 환호하며 스님을 맞이했습니다.
오늘 강연은 대전·충청 지역의 행복시민들과 카이스트 기술경영혁신센터에서 공동으로 주최했습니다. 정토회 회원이기도 한 카이스트 조항정 교수님과 권오준 교수님, 충남대 김세정 교수님이 스님께 인사를 드리기 위해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잠시 환담을 나눈 후 함께 강연장으로 이동했습니다.
카이스트 대강당 1층과 2층에는 900여 명의 시민들이 객석을 가득 메운 가운데, 배우 임세미 님의 사회로 강연이 활기차게 시작되었습니다.
대전에서 잘 알려진 노래 강사 한명환 님이 ‘딜라일라’와 ‘별빛 같은 나의 사랑아’를 신나게 부르자, 청중석은 금세 열기로 가득 차고 박수와 환호로 들썩였습니다.
이어서 스님을 소개하는 영상을 함께 본 후 스님이 무대로 걸어 나왔습니다. 스님은 다리가 불편하여 앉아서 강연을 하겠다고 청중들에게 양해를 구한 후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두 시간 동안 열 명이 손을 들고 스님에게 질문하고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중 한 명은 어렸을 때부터 남을 배려하는 것이 습관이 되었는데, 요즘은 내가 상대의 감정 쓰레기통이 된 것 같고, 손해를 본다는 생각이 들어서 고민이라며 스님에게 조언을 구했습니다.
“저는 사람들과 잘 지내는 편이고, 대화하거나 고민을 들어주는 일을 좋아합니다. 멀리 있는 사람도 시간이나 비용 상관없이 제가 먼저 찾아가곤 합니다. 그러다 보니 상대방은 저를 그냥 알아서 와주는 사람쯤으로 여기는 것 같고, 가끔은 제가 손해를 본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상대방의 기분을 먼저 살피고 계속 배려하게 되는데, 이제는 습관이 된 것 같습니다. 상대방의 고민을 들어주다 보면, 어느 순간 ‘이 사람이 나를 감정 쓰레기통으로 생각하나?’ 싶은 생각에, 저 혼자 관계를 끊은 적도 있습니다. 직장에서도 비슷한 이유로 마음이 힘들 때가 많습니다. 어릴 때부터 ‘착하다.’라는 말을 자주 들었는데, 이제는 그 말이 ‘바보 같다.’라는 말처럼 들립니다. 실제로 제가 손해만 보는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 듭니다. 어떻게 하면 저를 지키면서도 인간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까요?”
“질문자는 ‘내가 남을 배려한다.’라고 생각하겠지만, 제가 보기에는 칭찬받고 싶어서 그런 거예요. 칭찬을 아무한테나 해주지는 않잖아요. 밥도 사주고, 청소도 해주고, 가방도 들어줘야 칭찬받죠. 질문자가 남의 고민을 들어주고, 먼저 찾아가고, 배려하는 이유는 결국 칭찬받고 싶어서예요. 이제는 더 이상 칭찬받고 싶지 않다면, 지금부터는 굳이 그렇게까지 안 해도 됩니다.”
“스님 말씀이 맞는 것 같아요.”
“그게 다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잖아요. 그런데 ‘좋아서’라는 말이 결국 ‘칭찬받고 싶어서’라는 뜻이에요. 반대로 말하면 ‘비난받기 싫어서’이고요. 그러니 비난받을 각오를 하면 그렇게까지 상대를 배려하거나 맞추지 않아도 됩니다. 욕 좀 먹을 각오를 하면 훨씬 자유로워져요.”
“사실 저는 비난받는 것에 예민한 편입니다.”
“그래서 지나치게 남을 배려하거나 맞추는 거예요. 그런데 그것도 하나의 삶의 방식일 뿐입니다. 특별한 건 아니에요. 내가 착한 사람이라서 남을 배려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비난받기 싫고 칭찬받고 싶어서 그런 겁니다. 그러니 지금처럼 손해 보더라고 계속 그렇게 살든지, 아니면 욕 좀 먹더라도 다르게 살든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하면 됩니다.
사람들이 나를 좋아하게 만들려면 내가 뭔가를 해줘야 하는 게 세상의 이치예요. 밥도 사고, 차도 태워주고, 뭔가를 해줘야 사람들이 나를 좋아하죠. 남들은 이기적인데 나만 손해 본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내가 좋아서, 내가 칭찬받고 싶어서 하는 거니까요. 방금 제가 강연장에 들어올 때 사람들이 박수를 쳤잖아요. 왜 그랬을까요? 만약 제가 즉문즉설을 하면서 돈을 많이 받는다면 지금처럼 박수를 쳐주었을까요? 아무도 박수를 안 쳤을 거예요. 여러분은 대부분 제 법문을 듣고 마음이 좀 편안해졌고, 돈 드는 일도 아니니까 좋아하는 거예요. 만약 저도 질문자처럼 생각하면 오늘 제가 열 명의 질문을 받았는데 저도 결국 그 열 명의 감정 쓰레기통이 된 셈이잖아요. (웃음)
내가 배려하면 상대방이 나를 좋아하고 칭찬하지만, 내가 이기적으로 굴면 상대가 나를 싫어하고 비난합니다. 어떤 선택을 할지는 본인 몫이에요. 그러니 ‘내가 착한 사람이어서 배려한다.’라는 착각은 버려야 합니다. 어릴 때부터 칭찬받고 싶어서 그런 행동을 해왔던 거예요. 특별할 게 아닙니다. 지금이라도 칭찬받을 생각을 내려놓으면, 굳이 먼저 배려할 필요는 없습니다. 어느 쪽이 더 쉬울까요? 몸이 좀 힘들고 돈이 들더라도 칭찬받는 게 좋은가요? 아니면 욕 좀 먹고 비난을 감수하며 사는 게 나을까요? 그건 본인이 선택하세요.”
“…”
“왜 대답을 못 해요? 질문자는 몸이 좀 힘들더라도 칭찬받으며 사는 게 이미 습관으로 굳어졌어요. 그러니 그냥 살던 대로 사세요. (웃음) 괜히 다른 궁리 하지 말고요. 지금까지 잘 살아왔잖아요. 다만 남들을 보고 ‘이기적이다.’라며 억울해할 필요는 없어요. 그건 내가 좋아서, 내가 칭찬받고 싶어서 한 일이니까요.”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일 하고 칭찬받는 게 쉬워요? 나쁜 일 하고 비난받는 게 쉬워요? 저는 좋은 일 하고 칭찬받는 게 훨씬 쉬워요. 예전에 나쁜 일 하고 비난을 받아보려고 여러 번 시도해 봤는데, 정말 어렵더라고요. 그런 점에서 어떤 사람은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바보 같은 행동을 해서 많은 사람에게 ‘저렇게 살면 안 되겠다.’라는 걸 깨우쳐 주잖아요. 나쁜 짓을 해서 온갖 비난을 한 몸에 받으면서도, 결국은 세상 사람들에게 큰 깨달음을 주고 있는 셈이에요. 불교에서는 그런 사람을 역행보살(逆行菩薩)이라고 부릅니다. 인생을 저렇게 살면 안 되겠다고 반면교사로 삼을 수 있게 해주는 존재인 거죠. 그러니 그 사람을 미워할 필요는 없어요. 오히려 대단한 사람이라고 봐야 합니다. (웃음)
그런데 질문자는 그런 사람은 못 됩니다. 그냥 순행 보살(順行菩薩)로 좋은 일 하고 칭찬받는 삶을 사는 정도가 질문자의 수준이에요. 저도 수준이 낮아서 이런 일밖에 못 해요. 저는 그냥 좋은 일 하고 칭찬받는 쉬운 길을 가기로 했습니다. 사람들은 제가 하는 일을 보고 ‘힘들겠다.’라고 하지만, 사실은 이게 제일 쉬운 길이에요. 나쁜 일 하고 비난받는 삶은 정말 어렵고 아무나 못 합니다. 그러니 질문자도 남 따라 하지 말고, 좋은 일 하고 칭찬받는 쉬운 길로 가시기를 바랍니다.”
“네, 잘 알았습니다.”
계속해서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카이스트 재학생들도 많이 참석하여 질문을 했습니다.
박사 과정 중 지도교수님과의 갈등으로 어려움을 많이 겪었습니다. 어떤 기준으로 사람을 보고 신뢰를 쌓아나가야 할까요?
최근 AI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취업이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내가 쓸모가 없어지는 것 같아 두려운데, 미래를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요?
생명과학을 연구하면서 쥐 실험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생명을 죽이는 업보를 쌓고 있다는 죄책감이 드는데, 제가 하는 일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중학생 때부터 사람을 살리겠다는 마음을 가졌고, 대학에 와서도 생명 공학을 전공하여 치매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외적 동기는 충분한데 내적 동기는 어떻게 가질 수 있을까요?
저는 속마음을 잘 드러내서 마음이 유리 같다는 말을 많이 듣고 살았습니다. 속마음을 남에게 쉽게 들키지 않고 단단한 사람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정신과 진료를 3년 동안 받고 많이 좋아졌습니다. 지금은 취업도 하고 결혼도 하고 상황이 좋아졌는데, 여전히 힘듭니다. 회사를 그만두고 싶은 생각이 들 때 어떡해야죠?
어떤 절에 가서 물어보면 제사를 지내라고 하고, 다른 절에 가서 물어보면 제사 비용으로 나눔을 하라고 합니다. 제사는 꼭 지내야 합니까?
아들이 중3 때부터 방황을 해서 대안학교를 갔는데, 요즘은 오토바이를 계속 사달라고 조릅니다. 3개월 어학연수를 보냈더니 매일 힘들다고 아우성입니다. 어떡해야 할까요?
강연을 마칠 무렵 젊은 청년이 손을 번쩍 들고 질문을 했습니다. 사람을 미워하는 감정 때문에 힘들다며 어떻게 마음을 다스려야 하는지 스님에게 조언을 구했습니다.
“저는 20대 후반의 4년 차 직장인입니다. 평소 사람을 미워하는 감정 때문에 힘들 때가 많습니다. 학창 시절에도 처음에는 좋은 친구라고 생각해 잘 지내다가, 어느 순간 그 친구의 단점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점점 멀어지곤 했습니다. 그렇게 인간관계가 점점 좁아졌고요. 그런데 직장 생활도 다르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좋은 동료라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이 사람은 왜 이럴까?’ 싶을 정도로 단점이 눈에 들어오고, 자꾸 거슬립니다. 물론 그런 감정을 업무에 드러내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함께 근무하는 상황에서 미워하는 마음이 자꾸 올라오니 스스로 힘이 듭니다. 이런 제 마음을 어떻게 다스려야 할까요?”
“상대가 마음에 안 들고 미운 감정이 들 때마다, 자기 자신에게 이렇게 말해보세요. ‘그래, 너 잘났다.’ 이 말을 계속 되뇌는 겁니다. 한번 따라 해 보세요. 그래, 너 잘났다.”
“그래, 너 잘났다.” (웃음)
“남의 단점이 보이고 미워하는 마음이 들 때마다 스스로 ‘그래, 너 잘났다.’하고 말해보세요. 성경에 보면 ‘남의 눈 속 티끌은 보면서 자기 눈 속 들보는 보지 못한다.’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남의 작은 허물은 잘 보면서 정작 자기의 큰 허물은 잘 못 본다는 뜻이에요. 그러니 사람을 너무 자세히 보지 마세요. 남을 너무 자세히 보면 눈 속 티끌까지 다 보여요. 그냥 대강 보세요. 누군가가 밉고 거슬릴 때마다, 자기 자신에게 ‘너 또 잘난 척한다.’ 이렇게 경고해 보는 겁니다. 그렇게 연습하다 보면 점점 나아질 거예요.”
“네, 감사합니다.”
대화를 마치고 나니 밤 9시가 훌쩍 넘었습니다.
곧바로 강연장 밖 로비에서 책 사인회가 열렸습니다. 많은 사람이 스님의 책을 한 권씩 들고 사인을 받았습니다.
“스님 덕분에 제 고민이 많이 해결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다들 스님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스님은 한 사람 한 사람과 눈을 맞추며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사람이 많아서 시간이 한참 걸렸습니다.
마지막으로 오늘 강연을 준비해 준 행복운동특별본부 대전충청지부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촬영한 후 강연장을 나왔습니다.
“대전 파이팅!”
밤 9시 40분에 대전을 출발하여 서울로 향했습니다. 고속도로를 1시간 30분 동안 달려 밤 11시가 넘어 서울 정토회관에 도착한 후 하루 일과를 마쳤습니다.
내일은 오전에 정토사회문화회관 3층 설법전에서 백중기도 입재 법회를 생방송한 후 오후에는 최한실 선생님을 모시고 ‘우리 겨레의 삶과 우리말’을 주제로 열리는 세미나에 참석하고, 저녁에는 평화재단 기획위원들과 회의를 할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22
전체 댓글 보기스님의하루 최신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