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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정토회의 핵심 간부들이 참석하는 기획위원회 워크숍과 상임 천일준비위원회 간담회에 참석하기로 한 날입니다.
스님은 새벽 수행과 명상을 마친 후 오전 9시 30분부터 9층 강당에서 진행되고 있는 정토회 기획위원회 워크숍에 참석했습니다. 기획 위원들은 1박 2일 동안 그간의 기획위원회 활동을 평가하고 향후 운영 방안에 대해 심도 깊은 논의를 진행하였습니다. 오늘은 정토회 지도법사인 법륜스님을 모시고 토론 과정에서 생긴 의문점을 해소하는 시간을 갖기로 했습니다. 기획위원장 소임을 맡고 있는 법해 법사님은 미국에서 온라인으로 회의에 참석했습니다.
먼저 향상 법사님이 어제 하루 종일 기획 위원들이 논의한 내용을 요약하여 발표했습니다. 향상 법사님은 “그동안 기획위원회의 중장기 전략 수립 기능이 부족했다.”며 겸직으로 인한 집중력 저하, 위원회 내 역할 인지 부족, 그리고 인력 구성의 어려움을 원인으로 지적하였습니다. 특히 온라인 불사와 관련된 정책 방향에 대한 논의 부족도 문제로 언급되었습니다.
기획위원회는 다음 천일결사 기간에 맞춰 기획 기능을 강화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였습니다. ‘기획실’이라는 전담 조직을 신설하여 정토회의 중장기 전략, 사회 전략, 온라인 조직 모델, 통합 홍보 등 핵심 과제를 전담하도록 하자는 방안, 기획위원회 분과 기능은 결사행자회의 산하로 이전하는 방안 등 다양한 방안이 논의되었습니다. 인력 확보는 지속적인 과제로 지적되었습니다. 그래서 보다 많은 정토회 회원들의 참신한 아이디어를 수렴할 수 있는 열린 방식의 기획위원회 운영이 제안되기도 했습니다.
기획 위원들의 토론 내용을 경청한 후 스님도 몇 가지 의견을 이야기했습니다.
“사실 저는 2차 만일결사부터는 정토회 운영에서 손을 떼려고 했습니다. 첫 번째 천일결사는 백일법문을 하며 지원도 했지만, 기획위원회와 결사행자 회의에는 참여하지 않았어요. 그 이유는 제가 정보와 경험이 많다 보니, 회의에 참여하면 자연스럽게 제 의견이 중심이 되기 쉽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권한을 나누어도 결국 실질적으로 제가 주도하게 되기에 아예 회의에 참여하지 않기로 했던 겁니다. 그 결과 지난 3년 동안 별다른 진척이 없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것 또한 리더십이 교체될 때 우리가 거쳐야 할 필연적인 과정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어떤 분은 이렇게 제안하기도 했습니다.
‘스님이 안 계시면 우리가 책임지고 하겠지만, 스님이 계시니 오히려 우리가 책임지고 결정하기 어렵습니다. 차라리 지금은 스님이 중심이 되어 결정하시고, 돌아가신 뒤에 우리가 맡겠습니다.’
물론 그런 방법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제 생각은 그래도 살아 있으면서 조금 조언을 해주는 방식이 정토회의 발전에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2-2차 천일결사부터는 제가 관여하는 범위를 대폭 줄였으면 합니다.
요즘은 100세 시대라고 하지만, 저와 여러분의 나이 차이는 불과 10년 남짓입니다. 여러분이 실질적으로 일할 수 있는 시간도 앞으로 10년 정도일 거예요. 건강 상태가 이미 저물어 가잖아요. 여러분도 이제 다음 세대에게 넘겨줄 계획을 세워야 할 시점입니다. 여러분은 앞으로 10년 동안 더 일할 준비를 하고, 저는 지금 정리를 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분야에서만큼은 아직 제가 할 역할이 있다고 봅니다. 하나는 남북 관계입니다. 사회 원로로서, 또 현 시국에서는 제가 일정한 영향을 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또 하나는 해외 개척 분야입니다. 해외에서 이제 막 법륜스님의 활동이 알려지기 시작한 단계이기 때문에, 앞으로 5년 정도는 제가 관여하는 것이 사업의 확장이나 정착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 두 분야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법륜스님이 일선에서 물러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2-1차 천일결사를 돌아보면 몇 가지 아쉬운 점이 남습니다. 첫째, 정토회 활동이 보다 완결성을 가지려면, 환경 운동뿐 아니라 농업 분야의 개척도 병행되어야 합니다. 2020년부터 5년간 농업 분야에 집중해 보려 했지만, 코로나 팬데믹이 다소 일찍 종결되면서 지금은 농업 분야의 개척이 거의 중단된 상황입니다. 둘째, 노인 복지 시설의 마련과 어린이 대안 교육을 포함한 전 세대를 아우르는 교육 및 연수 시설을 구축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 사업은 30년 전부터 계획되어 있었지만, 아직 제대로 된 시스템을 갖추지 못했습니다. 셋째, 산책과 명상을 겸할 수 있는 명상 센터가 필요합니다. 문경수련원은 위치나 지형상 명상 센터를 운영하기엔 어려움이 있고, 선유동 연수원도 임시적인 역할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 장기적으로는 정토회 회원들의 정신적인 요람이 될 만한 중심 공간을 새로 마련해야 합니다. 이 부분은 앞으로 여러분이 풀어나가야 할 과제가 될 것이고, 저는 이제부터는 조금씩 활동을 정리해 나가는 게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워크숍은 단순한 평가에 그치지 않고, 기획위원회의 기능을 전면 재정비하려는 실질적 논의가 이루어진 자리였습니다. 12시까지 스님과 질의응답 시간을 가진 후 오전 세션을 마쳤습니다.
삼복더위의 시작을 알리는 초복을 맞이하여 낮 기온이 35도까지 올라 무더위가 기승을 부렸습니다. 점심 식사를 한 후 스님은 평화재단 사무실에서 업무를 보았습니다.
오후 세션에서는 기획 위원들끼리 향후 기획실의 구체적 구성과 역할 분담을 어떻게 할지 더 깊이 있는 논의를 이어 나갔습니다.
오후 3시부터는 평화재단 회의실에서 정토회 상임 천일준비위원회와 간담회를 했습니다. 천일준비위원회 위원들은 지난 상반기 동안 논의한 정토회 2-2차 천일결사 사업 방향 및 목표, 조직 개편안, 지회 운영 방안, 회원 제도 개선 방안, 행복교육원 신설안에 대해 발표하고 스님에게 조언을 구했습니다.
2시간 동안 질문하고 스님의 의견을 경청한 후 오후 5시에 간담회를 마쳤습니다.
“다들 수고가 많았으니 오늘은 저녁을 함께 먹읍시다.”
다 함께 식당으로 이동하여 식사를 했습니다. 스님은 상반기 동안 수고한 천일준비위원회 위원들과 지난 2년 동안 각 분과를 맡아서 수고한 기획 위원들을 격려해 주었습니다.
해가 저물고 저녁에는 실내에서 원고 교정을 보고 업무를 본 후 하루 일과를 마쳤습니다.
오늘은 법문이 없었기 때문에 엊그제 정토사회문화회관에서 열린 금요 즉문즉설 강연에서 스님과 질문자가 나눈 대화 내용을 소개하며 글을 마칩니다.
“3주 전, 공황 장애와 우울증 진단을 받았습니다. 어릴 적 부모님은 거의 매일 격하게 다투셨고, 저는 폭력과 공포 속에서 자랐습니다. 아버지는 집에 거의 없었고, 어머니는 저를 정서적으로도 신체적으로도 학대하셨습니다. 감자볶음을 좋아해서 종종 부탁했지만, 어머니는 늘 신경질적으로 저를 대하셨습니다. 초등학교 때 처음으로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중학교에선 기숙사 생활을 하며 왕따를 당했고, 고등학교는 자퇴했습니다. 대학에 들어갔지만 삶은 여전히 지옥 같았고, ‘왜 인간은 태어나야 하며, 살아야 하고, 결국 죽는가?’와 같은 질문에 사로잡혀 살아왔습니다. 저는 사람에 대한 불신이 깊고 화도 많습니다. 부당한 일을 당하면 며칠이고 그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이익 중심의 조직에서는 병이 날 정도로 힘듭니다. 이런 제가 어둠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살기 위해서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요?”
“몸에 병이 나듯이 마음에도 병이 납니다. 컴퓨터로 비유하자면 하드웨어가 고장 나서 작동이 멈출 수도 있고, 겉보기엔 멀쩡하지만 소프트웨어에 문제가 생겨 오류가 날 수도 있어요. 질문자의 상태는 정신적으로 고장이 난 상태라고 볼 수 있어요. 그 상태에서 계속 문제를 해결하려 애쓰는 건 헛된 일이고 시간 낭비예요. 먼저 고장 난 부분부터 고쳐야 합니다. 첫째, 먼저 병원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지금 병원 치료를 시작한 지 3주 정도 됐습니다.”
“잘하셨습니다. 그런데 약을 먹는다고 금방 좋아지진 않아요. 오히려 졸음이 심하거나 멍해질 수 있는데, 그럴 땐 의사와 상의해서 약을 조절해야 합니다. 약을 먹으면서도 여전히 화가 나거나 미움이 가라앉지 않는다면, 약을 바꾸거나 용량을 다시 조절해 봐야 합니다. 약에는 부작용이 따르기 마련이에요. 다리를 다쳐서 깁스하면 걷기 불편하듯이, 약을 먹으면 망상은 줄어들지만 졸음이나 무기력 같은 다른 증상이 생길 수 있어요. 예를 들어 피부병이 있어 약을 먹으면 피부는 좋아지지만, 간 기능이 조금 나빠질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약간의 부작용은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럴 땐 피부 회복을 우선할지, 간 기능 보호를 우선할지를 따져야 해요. 피부가 중요하면 간에 무리가 가는 것을 감수해야 하고, 간이 더 중요하면 피부 상태는 불편하더라도 약을 끊어야겠죠. 이처럼 항상 무엇을 우선할지 판단하고 불편함을 감수하며 사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약을 먹는다고 모든 게 다 나아지는 건 아닙니다.
어떤 이유에서든 ‘죽고 싶다.’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정신 질환에 속합니다. 그런 생각은 생명 본연의 정신 작용이 아니에요. 이혼이나 사업 실패, 갈등 같은 일이 자살의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생각하는 건 정신 질환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입니다. 죽고 싶다는 생각이 자주 든다면, 그 상태 자체가 병이에요.
첫째,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육체적인 질병도 병원에 간다고 해서 모두 낫는 건 아니잖아요. 어떤 병은 주사 한 방에 낫고, 어떤 병은 며칠 치료하면 좋아지지만, 어떤 병은 증상을 조금 완화하는 데에 그치기도 하죠. 정신 질환도 마찬가지입니다. 병원에 가서 의사의 치료를 받으면, 완치는 어렵더라도 증상은 개선됩니다.
둘째, ‘사람이 왜 살아야 할까?’라는 생각이 드는 자체가 정신 질환에 속합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사는 데에는 아무런 이유가 없기 때문이에요. 이유가 없는데 계속 이유를 찾다 보면 결국 ‘살 이유가 없다.’라는 결론에 도달해서 삶을 포기하게 됩니다. 우리는 그냥 살아있는 거예요. ‘사람이 왜 살지?’, ‘나는 왜 태어났지?’ 이런 생각을 하면 결국 이유를 찾지 못한 채 스스로를 벼랑 끝으로 몰게 됩니다. 태어난 데에는 사실 아무런 이유가 없습니다. 그저 생명이 생긴 것이고, 사람들은 각자 의미를 부여하며 살아갈 뿐이에요. 질문자처럼 이유를 찾기 시작하면, ‘하나님이 어쩌고’, ‘전생이 저쩌고’ 하는 식으로 종교에 빠져들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러나 삶과 태어남에는 이유가 없습니다.
‘개미는 왜 태어났지?’, ‘풀은 왜 생겼지?’라고 묻는다고 해서 우리는 그 존재에 특별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잖아요. 그런데 인간은 자신을 개미나 풀과는 다른 특별한 존재라고 여겨서 자꾸 이유를 찾으려 합니다. 그러나 인간도 결국 하나의 생명일 뿐이에요. 생명이란 어떤 이유에서든 암컷과 수컷이 교미해서 정자와 난자가 수정되면 탄생하게 됩니다. 결혼해서 아이를 낳든, 성폭행으로 생명을 잉태하든, 길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과의 하룻밤이든, 상황은 다르지만 생명이 잉태되는 것은 다 똑같아요. 아버지가 있든 없든, 결혼해서 낳았든, 원치 않게 낳았든, 그건 어른들의 이야기이지 아이 입장에서는 아무런 이유가 없는 거예요. 그저 수정되었기 때문에 태어난 겁니다.
사람과 동물이 교미해도 생명이 태어나지 않는 이유는 유전적 코드가 안 맞아서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흑인이든 백인이든, 어른과 청소년이든, 부모와 자식이라 하더라도 수정이 되면 생명은 생깁니다. 그것은 생물학적 현상일 뿐이지, 죄도 아니고 복도 아니에요. 태어났으니 자라고, 먹을 게 없으면 죽는 겁니다. 이것은 생명 현상일 뿐이에요. 내가 선택하지 않았어도 이미 태어났고, 정신 질환으로 자살하지 않는 이상 우리는 매일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어떻게 살 것인가’입니다. 괴로움 속에서 살 것인지, 아니면 괴롭지 않게 살 것인지는 본인의 선택이에요. 우리는 선택 가능한 것을 선택해야 합니다. 선택할 수 없는 것에 집착해 봤자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질문자의 고통이 전적으로 자라온 환경 탓이라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악조건에서도 정신 질환 없이 살아가는 사람도 있고, 자란 환경이 좋은데도 정신 질환을 앓는 사람도 있습니다. 환경이 좋다고 정신 질환이 안 생기는 것도 아니고, 환경이 나쁘다고 반드시 정신 질환이 생기는 것도 아니에요. 다만 나쁜 환경일수록 정신 질환이 생길 확률이 높고, 좋은 환경일수록 확률이 낮을 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가능한 한 그 확률이 낮은 쪽을 선택해 나가야 합니다.
자신이 어떤 환경에서 자랐든, 과거는 지금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지금 이 순간,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를 선택할 수 있을 뿐입니다. 정신적인 어려움이 있다면 병원에 가서 치료하면 됩니다. 몸이 아프면 병원에 가듯이 마음이 아픈 것도 마찬가지예요. 치료를 받고 나으면 다행이고, 그렇지 않으면 불편함을 감수하고 사는 거예요. 그렇게 보면 큰일도 아닙니다. 별일 아닌 것을 문제 삼으면 삶이 괴로워져요.
혹시 이 말이 좀 이상하게 들린다면 다람쥐를 떠올려 보세요. 다람쥐는 왜 살까요? 이유가 없습니다. 왜 태어났을까요? 역시 이유가 없어요. 만약 다람쥐가 ‘어떻게 살아야 하나요?’ 하고 묻는다면 저는 ‘너 좋은 대로 살아라.’라고 말할 겁니다. 그만큼 별일 아니에요. 생명이나 존재에 대해 과도하게 의미를 부여할수록 삶이 복잡해지는 겁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존재가 불필요하다는 뜻은 아니에요. 필요 없으면 애초에 태어나지 않았겠죠. 태어났다는 건 그 자체로 살아간다는 뜻입니다. 살아있을 때는 살고, 죽을 때는 죽는 게 가장 자연스럽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꾸 반대로 하려고 해요. 살아있을 때는 죽고 싶다고 하고, 막상 죽을 때가 되면 살고 싶다고 하니까 인생이 피곤해지는 거예요.
헤어질 때는 헤어지기 싫다고 하고, 만나면 또 같이 살기 싫다고 하니 괴로운 것입니다. 만날 때는 만나서 살고, 헤어질 때는 헤어져서 살면 무슨 문제가 있겠어요. 감자볶음을 해줄 때는 그냥 먹으면 됩니다. 그러나 감자볶음을 안 해줄 때도 그걸 먹고 싶어 하면 힘들어져요. 이건 감자볶음을 안 해줘서 생긴 문제가 아니에요. 감자볶음을 먹고 싶은데 못 먹게 되니까 괴로운 거예요. 그냥 주는 대로 먹는다면 아무 문제가 없어요.
세상을 자기 방식대로 바꾸려 하니까 힘든 것입니다. 세상은 내 뜻대로 다 되지 않습니다. 만나고 싶어도 헤어질 수 있고, 싫다 해도 다시 만나야 할 수도 있어요. 먹고 싶어도 음식이 없을 수 있고, 먹기 싫어도 먹어야 할 때가 있습니다. 불교적으로 말하자면, 그냥 인연 따라 살면 됩니다. 상황을 바꾸고 싶다면 내가 바꿀 수 있는 범위 안에서 바꾸면 됩니다. 비가 오면 비를 멈출 수는 없지만 비를 피할 수는 있잖아요. 자꾸 자기가 바꿀 수 없는 것을 바꾸려고 하니까 삶이 힘든 겁니다.
질문자는 어려운 환경에서 자라다 보니 정신 질환이 생길 확률이 높았던 겁니다. 그러나 육체가 병들었을 때 치료하듯이, 정신적인 어려움도 치료하면 됩니다. 아직 정신 질환은 그 원인이 완전히 규명되지 않아서 완치라는 것이 없어요. 육체적인 질환 중에도 아직 원인이 밝혀지지 않아 완치할 수 없는 병들이 있잖아요. 그래도 어느 정도 개선은 가능하기 때문에 그 개선된 범위 안에서 살아가면 됩니다. 만약 한쪽 다리를 잃었다면 의족을 차고 사는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그 상태로 등산하고 절벽을 타고 싶다면 괴로워지는 거예요. 휠체어를 타고도 잘 지낼 수 있다고 받아들이면 괜찮은데, 남들처럼 살고 싶다고 고집하면 인생이 힘들어집니다.
제가 볼 때 질문자는 아무 문제가 없어요. 다만 이런 병이 생긴 이유는 그동안 힘든 환경에서 자라왔기 때문이라고 이해는 됩니다. 그렇더라도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는 본인의 선택이에요. 계속 그렇게 괴롭게 살지, 아니면 괴롭지 않게 삶의 방향을 바꿀지는 스스로 결정해야 합니다.”
“제가 부당한 일을 당했다고 생각하면 엄청 화가 납니다.”
“부당한 일을 당했다고 생각되면 누구나 화가 납니다. 본인만 그런 게 아니에요. 제가 지금 여기 있는 사람들의 뺨을 때린다고 생각해 보세요. 화를 안 내는 사람이 있을까요? 질문자는 부당하다고 여기는 감정이 남보다 더 강하게 반응하는 것일지도 모르죠.”
“네, 그게 너무 심해요. “
”강도가 세다면 질환에 속할 수도 있어요. 반복적으로 그렇게 강한 반응을 보인다면 습관성 질환일 수 있습니다. “
“그럼 약으로 해결될 수 있을까요?”
“약으로 해결된다면 제약 회사가 떼돈을 벌었겠죠. 지금 시중에 나와 있는 약은 조금 완화해 주는 정도의 효과가 있습니다. 완전히 나았다는 말은 저도 아직 들어본 적이 없어요. 그래도 안 먹는 것보다는 먹는 게 낫겠죠. 밥은 매일 먹으면서 약은 언제까지 먹어야 하는지 고민하는 건 좀 이상하지 않나요? 약은 밥 한 숟가락보다도 작잖아요.”
“너무 재미있었습니다. 스님, 감사합니다. 최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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