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오랜만에 두북수련원에서 아침을 맞이했습니다. 밤새 쉼 없이 비가 내리더니 아침에도 계속 비가 세차게 내렸습니다.
스님은 새벽 수행과 명상을 마친 후 농사일을 하기 위해 비닐하우스로 향했습니다.
서울공동체 행자들도 어제 울력을 하기 위해 두북으로 내려왔습니다. 함께 비닐하우스 1동에서 감자를 캤습니다.
비가 내려 비닐하우스 안이 선선했습니다. 흙은 포슬포슬해 감자를 캐기에 딱 좋았습니다.
스님은 행자들이 감자 캐는 모습을 보고 다시 일러주었습니다.
“감자가 다치지 않게 조심히 캐주세요. 그리고 땅을 깊이 파야 합니다.”
행자들은 스님의 말에 따라 조심스럽게, 그러나 깊이 땅을 팠습니다. 숨어있던 감자가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지도법사님 말을 따르니 감자가 나오네요.” (웃음)
스님도 오랜만에 농사 솜씨를 발휘하며 능숙하게 감자를 캐 나갔습니다.
“참 시간입니다!”
모두 호미를 내려놓고 농막으로 모여 함께 참을 먹으며 잠시 숨을 돌렸습니다.
가장 큰 감자를 가져와 저울에 올려보았습니다.
“우와, 600g이네요.”
참을 다 먹고 스님은 행자들에게 양해를 구했습니다.
“저는 10시부터 온라인으로 회의가 있어서 내려가볼게요.”
스님은 회의를 하러 두북수련원으로 가고, 행자들은 다시 호미를 들고 감자를 캤습니다.
오전 10시부터는 정토회 상임 천일준비위원회와 온라인으로 회의를 했습니다. 삼귀의와 수행문을 낭독한 후 천일준비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법정 법사님이 그동안 논의한 내용을 바탕으로 정토회 2-2차 천일결사 사업방향을 발표했습니다.
“2차 만일결사 1차 천일결사는 온라인 정토회의 확대 및 성장을 목표로, 운영 구조와 회원 체계를 신속하고 유연하게 변경하여 온라인 조직으로 전환하여 운영했습니다. 온라인 전환으로 양적 확대가 될 것이라는 방향에서 시작했으나, 여러 지표에서 정체되는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이에 온라인 환경에 적합한 조직 운영구조 개발 및 꾸준한 연구 체계를 마련하고자 합니다. 학습 위주의 학사운영 방식에서 수행과 자원봉사를 삶 속에서 구현하는 실천이 실행되는 교육 방식으로 전환해 보는 것으로 사업계획을 세워 보았습니다.”
이어서 온라인시스템 개발, 체험 중심의 교육 혁신, 실천활동 강화 방안, 세계 전법과 청년 전법의 확대 방안 등 각 분야별로 마련한 사업계획 초안을 이야기했습니다.
스님은 발표 내용을 경청한 후 천준위에서 잡은 사업 계획에서 보완할 점이 무엇인지 스님의 생각을 이야기했습니다.
“만약 정토회를 처음부터 온라인으로 창립하고 운영했다면, 온라인에 맞게끔 운영 시스템이 매우 발전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전의 정토회는 오프라인에 맞춰 중앙과 지방 조직을 활발하게 운영했습니다. 그러나 현재의 정토회는 기본적으로는 오프라인에 기반을 두되 운영 시스템은 온라인으로 전환을 했습니다. 오프라인에 기반을 두었던 정토회가 신속하게 온라인으로 전환할 수 있었던 이유는 대략 두 가지가 있습니다.
정토회가 신속한 온라인 전환이 가능했던 이유
첫째, 절에 직접 오지 않고도 집에서 기도하는 천일결사 수행을 모든 정토회 회원들이 꾸준히 이어나갔기 때문입니다. 둘째, 법문을 녹화해서 듣는 방식으로 법회를 운영했기 때문입니다. 녹화된 법문을 듣는 것은 집에서 듣는 것과 법당에 나가서 듣는 것이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아 공간의 제약이 없습니다. 만약 정토회가 일반 절처럼 운영되었다면 온라인으로 전환하는 것이 어려웠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의 두 가지 요인으로 인해 정토회는 온라인으로 전환할 수 있는 기본적인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전자상거래 사이트인 아마존처럼 처음부터 온라인으로 시작한 회사가 있는 반면, 백화점처럼 오프라인 매장을 운영하다가 온라인을 겸하게 된 회사도 있습니다. 정토회는 백화점처럼 오프라인에 있다가 온라인 방식을 함께 도입한 조직 체계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온라인 정토회에 대한 평가를 할 때 오프라인의 장점을 기준으로 온라인의 부족한 점을 계속 지적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장기적으로 온라인 정토회로 계속 발전해 나가기 위해서는 오프라인을 기반으로 하지 않고, 처음부터 온라인에서 시작한 시스템을 새롭게 개발해야 합니다. 이렇게 완전히 온라인에 기반한 새로운 시스템은 국제지부에서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국제지부는 오프라인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온라인으로만 법회를 열고 모든 실천 과제도 온라인으로 진행할 수 있어야 합니다. 국제지부의 온라인 운영 시스템이 성공하면 한국의 각 지부에서도 이를 반영하거나 아니면 국제지부와 별개로 운영할지 결정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온라인 시스템은 앞으로 끊임없이 실험하고 개발해야 할 문제입니다.
도심 속에는 정토회관, 자연 속에는 으뜸절
정토회가 정체 국면을 돌파하기 위해 현재 할 수 있는 것은 기존의 온라인 시스템이 갖는 한계를 개선하기 위해 오프라인 프로그램을 보완하는 것입니다. 정토회는 원래 오프라인에서 출발했기에 이를 약간 보강한다면 온라인 시스템과 함께 훨씬 큰 상승효과를 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오프라인 프로그램을 어느 정도로 보강할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그래서 지난 백일 동안 서울 정토사회문화회관에서는 백일법문 프로그램을 실험적으로 진행하여 어느 정도 그 가능성을 가늠해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전국 각 지역에 위치한 으뜸절이 오프라인 공간으로서 일정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 으뜸절의 역할만으로 충분할지, 아니면 적어도 지부 차원에서 광역시 단위에는 지부정토회관을 새롭게 마련하는 것이 좋을지 고민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부산울산 지부에는 부산에, 대구경북 지부는 대구에, 광주전라 지부는 광주에, 대전충청 지부는 대전에, 인천경기서부 지부는 일산에, 인천경기동부 지부는 수원이나 분당에 정토회관을 만드는 것이 더 필요할지 고민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시골에 사는 사람들은 도시까지 오려면 이동 거리가 멀기 때문에 온라인 활동이 훨씬 편리합니다. 하지만 이동 거리가 짧고 인구가 집중된 대도시에서는 오히려 오프라인 공간을 보완할 필요가 있습니다. 인구 밀집 지역에는 사무, 행정, 실천 활동의 거점이 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할 수가 있지만, 으뜸절은 야외로 나가는 기분을 느낄 수 있는 역할을 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역할 분담이 정토회 으뜸절의 기능을 더욱 강화할 수 있습니다. 산간 지역에 위치한 전통사찰이 모두 잘 운영되고 있는 이유는 해당 사찰들이 대중들에게 도시에서 벗어난 탁 트인 자연 공간의 개방감을 느낄 수 있게 해 주기 때문입니다. 그것처럼 정토회의 으뜸절도 더욱 대중 친화적으로 활성화시키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으뜸절마다 대중을 위한 서비스 시설들을 확장해 나가야 합니다. 기도 공간, 교육 수련 공간, 여행 공간, 숙박 시설 등을 갖추어 웰빙 공간으로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나아가 노인들이 으뜸절에서 거주할 수 있도록 하고, 돌아가시면 장례까지 치러줄 수 있도록 하는 것이죠. 아직 시행을 못하고 있을 뿐 이 내용은 이미 정토회의 사업 계획 안에 있는 내용입니다.
으뜸절 운영과 더불어 대도시에는 정토회관이 필요한지 고민해야 합니다. 법당만 있는 곳이 아닌 회원들이 모이는 강당, 외국인 노동자를 위한 공간 등 적어도 3개 내지 4개의 공간을 종합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회관이 필요합니다. 지부 단위로는 적어도 70평 이상의 3층 내지 4층 규모의 빌딩을 층층이 달리 활용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한지에 대해 검토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와 같은 문제는 오프라인 활동을 어떻게 보완할 것인가에 대한 내용입니다. 이는 공간의 보완과 함께 프로그램의 보완을 의미합니다. 으뜸절을 활성화하고자 하는 노력도 오프라인 활동의 보완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어서 천준위 위원들이 스님에게 조언을 듣고 싶은 내용에 대해 자유롭게 질문을 했습니다. 두 시간 동안 질의응답 시간을 가진 후 회의를 마칠 무렵 마지막으로 한 분이 질문했습니다.
“저희가 현재 분석하고 진단한 현황과 원인에 대해 혹시 더 보완해 주실 부분이 있으신지, 아니면 이 정도로 하고 앞으로의 사업 방향을 저희가 연구하면 될지 궁금합니다.”
“이 정도에서 연구를 해나가면 되지 않겠나 싶습니다. 예전에는 이야기를 들으면 보완책이 바로 생각났는데, 지금은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사고 능력이 그렇게 재빠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제가 따로 시간을 내서 하나하나 봐야 ‘이건 이렇게 좀 보완하면 좋겠다’ 하는 생각이 들 텐데, 지금은 계속 해외 일정이 이어져서 언제 보완책을 이야기해 주겠다고 약속할 형편이 못 됩니다. 해외에 나갈 때 비행기 안에서 시간이 나면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스님은 천준위 위원들의 노고를 격려한 후 회의를 마쳤습니다.
방송실을 나온 스님은 곧바로 손님을 맞이하러 두북 수련원 사무실로 향했습니다.
전라도 함평에서 송묵 스님과 무진 스님, 비구니 노스님 두 분이 오래전부터 스님을 찾아뵙고 싶어 하다가 오늘 두북수련원을 찾아왔습니다. 반갑게 인사를 나눈 후 함께 점심 식사를 했습니다.
농사 울력을 하러 내려온 서울 공동체 대중들이 냉면을 준비해 주었습니다. 냉면을 먹으며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이곳 두북수련원은 제가 다녔던 초등학교입니다. 폐교된 공간을 빌려서 농사짓는 공간과 수련 공간으로 이용하고 있습니다. 코로나 팬데믹 시기에 교실 한 칸에 방송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추어 사용했고, 현재는 기후 위기 시대에 안전한 먹거리를 생산하기 위한 실험적인 장소로 이용하고 있습니다.”
송묵 스님은 먼 길을 달려온 이유를 이야기했습니다.
“백일법문을 하고 계신다고 해서 백일법문이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이제야 왔습니다. 사실은 스님께서 2002년에 막사이사이상을 수상했을 때부터 스님께 보시를 하고 싶어서 항상 찾아뵙고 싶었습니다.”
식사를 마친 후 사무실로 자리를 옮겨 차담을 나누었습니다. 송묵 스님은 왜 보시를 하러 왔는지 자세한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제가 인도 성지순례를 몇 번 갔어요. 그때 부처님께서 어머니를 제도하고 하늘에서 내려오셨다고 하는 상카시아를 갔는데, 탑 위에 힌두교도들이 자기들의 성지를 만들어 놓았더라고요. 그래서 순례자들이 그곳이 불교성지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 모습이 너무 안 좋아서 상카시아 성지를 가꾸는 일에 보시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인도에서 많은 일들을 하고 계시니까 스님께 보시를 하면 그 일을 할 수 있겠다 싶어서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스님은 현재 정토회가 상카시아에서 하고 있는 일을 소개해 주었습니다.
분쟁 대신 평화를, 상카시아 불사의 시작
“그렇습니다. 정토회에서는 현재 상카시아에서 성지 가꾸기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상카시아에 가보면 불탑 위에 힌두교 사원을 지어 놓았습니다. 그래서 그 불탑을 두고 석가족과 힌두교도 사이에 분쟁이 일어났습니다. 어느 해는 석가족 만 명이 모여서 데모를 했어요. 그래서 제가 가서 석가족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부처님은 평화를 얘기했는데 아무리 부처님의 유적지를 지키는 일이라 하더라도 이렇게 싸우는 것은 부처님의 가르침에 안 맞습니다. 이것은 역사 문화 유적지이기 때문에 아무나 손을 대지 못하니 제가 당신들을 위해 옆에 그만한 탑을 하나 세워주겠습니다. 그러니 싸우지 마세요.’
제가 이렇게 석가족과 약속을 했어요. 그래서 20년 전에 상카시아 성지 옆에 땅을 4천 평 구입했습니다. 현재는 그 땅에 부처님이 사다리를 타고 하늘에서 내려오는 모습을 재현한 탑을 세우고, 석가족이 큰 집회를 할 때 만 명이 모일 수 있는 강당도 짓고, 명상할 때 사용할 수 있는 숙소도 짓기 위해 설계도면을 그리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석가족들이 주인이 되어서 불사를 해보라고 지원을 해주었는데, 돈 문제를 갖고 자꾸 서로 싸웠습니다. 그래서 계속 불사를 안 하고 있었어요. 2년 전에는 이러다가 불사를 못 하겠다 싶어서 한국에서 활동가 두 명을 상카시아에 파견했습니다. 그래서 설계도면을 만들었고, 올해 말부터는 숙소와 명상센터를 짓는 일부터 먼저 시작을 하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상카시아 불사가 지금 추진 중입니다. 보시해 주신 돈은 상카시아 불사에 잘 사용하겠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정말 기쁘겠습니다. 법륜스님이라면 이 돈을 가장 의미 있게 잘 쓰실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스님은 송묵 스님과 무진 스님, 두 분과 함께 사진을 찍고 차를 탈 때까지 배웅도 해드렸습니다.
오후 2시에는 다시 방송실로 이동하여 정토불교대학 학생들과 함께 하는 즉문즉설 생방송을 했습니다. 축하 공연에 이어서 그동안 수업 모습을 담은 활동 영상을 함께 보았습니다.
이어서 학생 세 명이 소감문 발표를 했습니다. 3개월 남짓한 시간 동안 많은 변화를 경험한 학생들의 이야기에 모두가 큰 박수를 보냈습니다.
다음은 학생들 모두가 삼배의 예로 스님에게 법문을 청했습니다. 먼저 스님이 지금 학생들이 공부하고 있는 ‘부처님의 일생’을 왜 배워야 하는지 그 이유를 이야기했습니다.
“불교는 모든 괴로움이 다 내 마음에서 일어난다는 것을 자각함으로써 언제 어디에서나 괴로움이 없이 살아가는 ‘열반’의 삶을 추구합니다. 그러나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는 인종차별, 성차별, 종교 차별, 계급 차별 등 다양한 차별에 부딪힙니다. 이러한 문제들은 불교의 사상만을 연구해서는 해결책을 찾기 어렵습니다. 오히려 이런 현실의 문제들은 부처님의 일생을 공부해야 해결책을 찾아나갈 수 있습니다. 불교의 사회적 관점은 붓다라는 한 인간이 80년의 생애 동안 갖가지 현실의 문제에 부딪히면서 세상을 어떤 관점으로 바라보았는가에 그 핵심이 있습니다. 단순히 부처님 일생을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부처님이 현실 사회 속에서 세상 문제를 어떤 관점에서 대하고 바라보았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왜 우리는 부처님의 일생을 배워야 할까요?
부처님 당시 인도 사회는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신분이 정해지는 계급 차별, 즉 카스트 제도가 사회 질서로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부처님께서는 사람을 신분에 따라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평등의 관점에서 카스트 제도를 부정하셨습니다. 또 그 시대에는 남자만 사람이고 주인이며, 여자는 남자에게 종속된 종과 같은 존재라는 인식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부처님은 여성 출가를 허용하심으로써 여성도 남성 없이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있다는 성 평등의 입장에 서 계셨습니다. 이렇듯 불교가 어떠한 사회적 관점을 갖고 있는지는 부처님의 일생을 통해서만 알 수 있습니다. 단지 불교의 사상만 연구해서는 알 수 없는 부분입니다. 그래서 부처님의 일생을 반드시 공부해야 현실 속에서 세상 문제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기후 위기, 빈곤, 전쟁... 부처님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지금 현실에서 가장 큰 문제는 기후 위기입니다. 기후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는 불교의 관점에서 바라볼 때 해결책을 찾을 수 있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연기(緣起)의 관점에서 보면, 자연은 정복의 대상이 아니라 우리가 조화를 이루고 살아가야 할 삶의 터전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환경 실천 운동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기후 위기를 막기 위해 소비를 멈추거나 줄이려는 자세를 갖는 것입니다.
두 번째 문제는 절대빈곤입니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전 세계 인구 중 약 8억에서 10억 명이 절대빈곤 상태에 처해 있으며, 이는 전체 인구의 10%에서 13%에 해당합니다. 이들은 기본적인 생존도 유지되지 않는 열악한 조건에 처해 있습니다. 모든 인류가 생존할 권리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을 도와야 한다는 인도적 지원의 관점을 가져야 합니다.
세 번째 문제는 전쟁입니다. 사람들은 어느 정도 삶의 조건이 갖추어져 있는데도 갈등을 일으키고 전쟁을 하게 됩니다. 전쟁은 막대한 피해를 낳고 매우 큰 고통을 가져옵니다. 지금도 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과 이란 전쟁 등 여러 분쟁이 지속되고 있는데, 이는 우리 인류가 절대로 가지 말아야 할 길입니다. 우리나라도 남북 간에 전쟁이 일시적으로 멈춰 있을 뿐, 아직도 전쟁 상태에 있다는 사실을 자각해야 합니다. 한반도에서 전쟁을 완전히 종식하고 다시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 평화 체제를 구축하려는 평화 활동이 필요합니다.
정토불교대학에서 부처님의 일생을 배우는 이유는, 이를 통해 오늘날의 환경문제, 빈곤 문제, 평화 문제를 바르게 바라보는 시각을 배우고 그 가르침을 현재의 문제에 적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정토회는 지구적 차원에서는 환경 문제, 인류적 차원에서는 절대빈곤 문제, 한반도에서는 평화 문제, 개인의 마음을 행복하게 하는 수행 문제, 이렇게 네 가지를 가장 중요한 과제로 삼고 있습니다. 환경, 구호, 평화, 수행 이 네 가지는 우리가 진정으로 행복한 삶으로 가는 길입니다. ‘불교’라는 이름이 붙은 것만 불교가 아닙니다. 사실을 바르게 보는 것이 불교입니다. 사실에 깨어있으면 괴로울 일이 없고, 사실에 어두우면 괴로움이 생기는 것입니다.”
이어서 궁금한 점에 대해 질문을 받았습니다. 이번 학기 정토불교대학은 백일법문 기간에 진행되는 특성 때문에 오프라인반과 생방송반, 기본반, 3개의 반으로 나뉘어 교과가 진행되었습니다. 학생들 모두가 실천적 불교사상 과목을 모두 마치고, 현재는 인간 붓다 과목을 배우고 있었습니다. 다양한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그중 한 명은 평소에 울화가 치밀어 오를 때가 많다며 화를 다스리는 방법에 대해 질문했습니다.
어릴 적부터 억눌러온 감정, 이 화를 어떻게 풀 수 있을까요?
“제 마음을 살펴보면 항상 울화, 울분 같은 분노의 덩어리가 가득합니다. 정토불교대학을 다니면서 제가 어릴 때부터 스스로를 많이 억누르고 기죽어 살아왔고, 그런 감정이 제게 꼭꼭 숨겨져 있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일상에서 제가 만만하게 여기는 상대에게 쉽게 화를 냅니다. 그러고 나면 이명이나 두통이 생겨서 힘이 듭니다. 제 안에 뿌리 깊이 박혀 있는 이 화를 누그러뜨리거나 풀 수 있는 수련법이 있을까요? 아니면 어떤 마음가짐이나 태도가 도움이 될까요?”
“화내는 병을 쉽게 고치는 방법을 안다면 아마 큰돈을 벌 수 있을 거예요. 그만큼 쉽지 않지만 그렇다고 불가능한 건 아니에요. 화를 자주 낸다는 것은 ‘내가 옳다’ 하고 고집하는 성향이 강하다는 걸 말합니다. 어릴 때 아버지가 ‘대꾸하지 마! 그냥 시키는 대로 해’라고 소리를 지르면, 속으로는 ‘아니야. 내가 맞아’라고 생각하면서도 결국 그 힘에 굴복합니다. 그 억눌린 감정이 쌓이면서 화가 됩니다. 그래서 엄격하거나 억압적인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이 착한 면도 있지만 동시에 화도 잘 내는 편입니다. 어느 순간 울화통이 터지거나 감정을 폭발시키기도 하고, 술에 취해 주사를 부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현상은 다 억압된 심리 때문에 일어납니다.
그런데 야단맞는다고 해서 모두 심리적 억압이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누군가 야단을 쳐도 ‘제가 잘못했습니다’하고 받아들이면 심리적 억압이 생기지 않아요. 하지만 ‘내가 옳은데, 아버지니까 참는다’ 이런 식으로 억누르면 감정이 쌓였다가 나중에 폭발하게 됩니다. 질문자에게 일어나는 ‘화’도 바로 그런 감정일 수 있어요.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고집이 셀수록 화가 많습니다. 이 병을 고치려면 ‘그 무엇도 옳고 그름은 없다’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정토불교대학에서도 배웠듯이 옳고 그름이란 본래 없습니다. 그런데 이 사실을 깨닫기가 제일 어렵습니다. 사실 우리는 서로 다를 뿐, 누가 옳고 누가 그름은 본래 없습니다.
그래서 질문자는 우선 ‘내가 옳다는 생각을 내려놓겠습니다.’라는 명심문을 갖고 기도를 해보면 큰 도움이 될 겁니다. 또는 ‘내가 옳다고 할 것은 없습니다’, ‘우리는 서로 다를 뿐입니다’ 이런 명심문을 갖고 기도해도 됩니다. 이 중의 하나를 선택해서 기도를 해보세요. 화는 ‘내가 옳다’하고 고집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입니다. ‘본래 옳은 것은 없습니다. 제가 부족합니다’ 이렇게 기도하셔도 됩니다. 이렇게 계속 기도하면 화가 덜 나게 됩니다. 그런데 이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기도하는 중에 어느 순간 확 깨우쳐야 해요.
‘아버지가 나를 억압하긴 했지만, 오히려 내가 옳다고 고집한 것이 더 강했구나!’
이렇게 깨우치면 화가 누그러집니다. 아버지에게 굴복할 때 사실 속으로는 ‘당신은 인간도 아니야’ 하고 아버지를 무시했던 감정이 가득했던 거예요. 내가 옳다는 생각이 엄청나게 깊이 뿌리 박혀 있는 겁니다. 이 고집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쉽지는 않지만 ‘옳다고 할 것은 없습니다. 제가 부족합니다’라며 계속 절을 하다 보면, 어느 순간 장님이 눈을 뜨듯 ‘정말 내가 고집이 셌구나. 내가 옳다고 믿는 마음이 강했구나’ 하고 자각하는 순간이 옵니다. 그러면 화가 줄어들고, 결국 화나지 않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제가 처음에 말씀드린 것처럼, 저는 아주 어린 아기일 때부터 그런 환경에서 자랐고, 그때부터 화가 쌓여 온 것 같습니다. 이 공부를 하면서 조금씩 좋아지긴 했지만, 아직도 상처나 억압 같은 감정이 제 속에 많이 남아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그렇게 어릴 때도 ‘내가 옳다’ 하는 생각이 있었다고 이해하면 될까요?”
“네. 어릴 때도 그랬던 겁니다. 두 가지 치료 방법이 있습니다. 하나는 근본적인 치료는 아니지만 조금 쉬운 방법이고, 하나는 근본적인 치료이지만 조금 어려운 방법입니다. 조금 쉬운 방법은 내 속의 어린 나를 스스로 이해하고 보듬어 주는 겁니다. ‘그때 참 많이 억울했지? 그래, 괜찮아’라고 하면서 스스로를 위로하는 겁니다. 내 안에 있는 어린아이의 억울함을 자주 어루만져 주면서 위로해 주는 거예요. 이 방법은 위로를 통해 분노를 잠재우는 방식입니다. 그러나 근본적인 치료법은 ‘원래 옳은 것은 없는데, 내가 옳다고 꽉 쥐고 있었구나’하고 절하며 기도하는 방법입니다. 마치 갈릴레이가 재판장을 나오며 ‘그래도 지구는 돈다’하고 말했던 것처럼, 질문자도 그런 상황에서 자신이 옮음을 움켜쥐었던 겁니다. 어릴 때 억울하게 당하면 대부분 ‘당신이 아무리 그렇게 해도 옳고 그름은 바뀌지 않아. 내가 옳아’라고 마음속으로 외칩니다. 맞으면서도 절대로 잘못했다고 말하지 않아요. 그래서 부모가 아이들을 너무 몰아세우면 안 됩니다. 처음에는 잘못했다고 할지 몰라도, 과하다 싶으면 오히려 자기가 옳다며 반항합니다. 그래서 훈육 효과는 없고 상처만 남게 됩니다. 첫째, 내면의 상처받은 어린 나를 일상적으로 이해하고 위로해 주는 방법이 있고, 둘째, ‘옳고 그름은 본래 없습니다. 내가 옳다 할 것은 없습니다.’라는 명심문을 갖고 기도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계속해서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일곱 명이 스님과 대화를 나눈 후 마지막 질문자가 손들기 버튼을 누르고 스님에게 질문했습니다.
누가 봐도 잘못된 행동에 대해서도 이해하는 마음을 내어야 하나요?
“앞에서 한 분이 분노를 다스리는 방법에 대해 질문하셨는데, 스님께서는 ‘내가 옳다고 할 것은 없습니다. 제가 부족합니다.’라는 명심문으로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누가 봐도 명백히 잘못된 행동까지 그렇게 이해해야 하는지 저는 아직 어렵게 느껴집니다. 예를 들어, 폭력을 쓰거나 바람을 피우는 사람, 불법 도박을 하거나 쓰레기를 아무 데나 버리는 사람에게도 ‘내가 옳다고 할 것은 없습니다. 제가 부족합니다’ 이런 마음을 내어야 하는 건가요?”
“네. 그렇습니다. 수행자는 화나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을 목표로 하니까요. 그렇게 하면 우선 내가 화나지 않게 됩니다. 화가 나지 않는 상태에서 ‘쓰레기를 거기에 버리면 안 됩니다.’하고 얘기하면 돼요. 그러면 개선이 가능합니다. 고쳐야 할 일이라면 그렇게 차분하게 개선하면 됩니다. 그런데 화를 내면 오히려 잘 고쳐지지 않고 자신만 괴롭습니다.
누군가 바람을 피웠다고 해도 과연 무엇이 잘못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배우자의 처지에서는 당연히 고통스럽고, 상대가 잘못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상대의 입장에서는 이 사람을 좋아할 수도 있고, 저 사람을 좋아할 수도 있는 겁니다. 내 입장에서는 상대가 틀렸다고 느껴지지만 ‘내가 옳고 상대가 틀렸다’라고 말할 수 있는 기준은 본래 없습니다. 상대가 그럴 수도 있다고 이해하면 우선 내가 화가 나지 않아요. 그리고 그런 사람과 살기 싫다면 이혼을 선택하면 됩니다. 그래도 함께 사는 게 낫다고 생각하면 붙잡으면 됩니다. 이 외에 다른 길은 없습니다. 새 차를 샀는데 흠집이 났다고 합시다. 흠집이 보기 싫으면 차를 팔면 되고, 그래도 타는 게 좋다면 그냥 타면 되는 것과 같습니다. 이것 말고는 다른 길이 없는 거예요.
수행은 화나지 않도록 자기 마음을 다스리는 것입니다. 반면에 ‘어떻게 대응하는가?’라는 것은 별개의 문제예요. 개선이 필요하면 개선하고, 개선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중요한 건 화를 내지 않고 대응하는 게 훨씬 효과적이라는 겁니다. 화를 내지 않으면 내가 괴롭지 않고, 개선도 잘 이루어져요. 예를 들어, 누가 쓰레기를 함부로 버릴 때, 그냥 두어도 되고, 여기 버리면 안 된다고 얘기해 주어도 됩니다. 직접 내가 치워도 되고, 관공서에 신고하는 방법도 있어요. ‘그 사람의 처지에서는 그럴 수도 있다.’하고 이해하면 내가 화나지 않게 되고, 그 상태에서 어떤 방식으로 대응할지는 내가 선택하면 됩니다. 방법은 여러 가지입니다. 화가 나지 않으면 상황에 따라 적절히 대응할 수가 있게 됩니다.”
대화를 마치고 나니 오후 4시가 넘었습니다. 아쉽지만 다음 시간을 기약하며 즉문즉설을 마쳤습니다.
법문을 마치고 방송실을 나온 스님은 곧장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텃밭으로 향했습니다. 상추가 빽빽하게 자라 있었습니다.
꽃대가 올라오지 않은 상추는 잎을 바싹 따주었습니다.
잎을 솎아내니 촘촘했던 상추밭에 여백이 생겼습니다. 여러 종류의 상추를 여섯 바구니에 나누어 담았습니다.
한편, 꽃대가 올라온 상추는 모두 뽑았습니다. 꽃이 피면 잎이 질겨져 먹기 어려워집니다. 밭을 갈아엎고, 다시 상추 씨앗을 고루 뿌렸습니다.
비가 내려 상추잎마다 흙이 많이 튀어있었습니다. 물에 살짝 헹군 후 상자에 정갈히 담았습니다.
“서울 대중들이 맛볼 수 있게 가져갑시다.”
저녁 6시가 되어 울력을 마쳤습니다. 저녁에는 인도 상카시아 불사를 담당하고 있는 김윤태, 안상희 님이 한국에 귀국하여 스님께 인사를 드리러 찾아왔습니다. 스님은 함께 저녁 식사를 한 후 앞으로 상카시아 불사를 어떻게 해나갈지 회의를 한 후 하루 일과를 마쳤습니다.
내일은 아침 일찍 대전으로 이동하여 하루 종일 ‘행복시민 활동 큰 잔치’ 행사에 참석하여 행복시민들과 대화의 시간을 가진 후 서울로 이동할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24
길상화
감사합니다
2025-06-17 12:48:12
범해
화를 안내는 수행방법 :
[나 여기 지금, 무아 무상 열반]
감사합니다.
2025-06-17 12:42:05
유진화(자재왕)
화내지 않는 법, 그럴 수도 있다, 오직 모를 뿐.
그리고 대응은 각자의 선택.
오늘도 배웁니다.
스님 고맙습니다 도반님들 고맙습니다.
자리이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