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5.5.25. 농사일, 최제우 유허지 방문, 모내기
“과잉 진료에 화가 났습니다. 왜 이런 일이 반복될까요?”

안녕하세요. 두북수련원의 아침이 밝았습니다.

스님은 새벽 수행과 명상을 마치고 텃밭에 가서 서울 대중에게 줄 상추와 고수, 배추를 수확했습니다. 아침 식사 후에는 양산 부산대학교 병원으로 향했습니다. 미국에서 오래 사셨던 속가 형님이 병환이 깊어져 귀국하여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스님은 곧 해외 일정이 시작되면 따로 시간을 내기 어려워 오늘 연로하신 누님을 모시고 함께 병문안을 다녀오기로 했습니다.

윤영주 교수의 도움으로 병실에 들러 안부를 묻고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거의 대화를 나눌 수 없을 정도로 병세가 깊었습니다.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건강 상태를 살피고 조용히 마음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병문안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울산 중구 유곡동에 위치한 '여시바윗골'에 잠시 들렀습니다. 이곳은 수운 최제우 대신사가 초가를 짓고 수도 생활을 했던 터입니다. 최제우 대신사는 1855년 이곳에서 이승(異僧)으로부터 천서(天書)를 받아 사흘 만에 그 뜻을 깨치고 그때부터 본격적인 구도 정진을 시작하였다고 합니다.

먼저 동학관에 들러 최제우 대신사의 일생을 기록한 전시실을 둘러보고 밖으로 나와 언덕 위로 올라갔습니다.

언덕 위에 초당 두 채가 세워져 있고, 그 아래 잔디밭에 비각이 건립되어 있었습니다. 비각에는 여시바윗골에서 수련 중에 을묘천서(乙卯天書)를 받게 된 경위가 적힌 '천도교 교조 대신사 수운 최제우 유허비‘가 세워져 있었습니다. 스님은 조용히 참배를 했습니다.

점심 무렵에 다시 두북수련원으로 돌아왔습니다.

오늘은 두북수련원에서 모내기를 하는 날입니다. 스님은 점심 식사를 한 후 오후 2시에 모내기를 하고 있는 논으로 나가 보았습니다.

농사팀에서는 아침 일찍부터 이앙기로 논에 모를 심고 있었습니다. 이앙기를 운전하는 사람, 이앙기에 벼 모판을 얹어 주는 사람, 논 뒤에서 이앙기 지나간 자리를 공글리는 사람, 서너 명이 역할을 나누어 쉼 없이 움직였습니다.

이앙기 움직이는 소리가 논 사이로 퍼지고, 물을 머금은 흙 위로는 질서 있게 심긴 모가 줄을 맞춰 자리를 잡았습니다.

모가 일직선으로 잘 심기고 있었는데, 스님이 도착하자 갑자기 이앙기가 멈춰서 버렸습니다. 고장이 난 것입니다. 봉사자가 아쉬운 표정을 하며 말했습니다.

“반듯하게 잘 심어지고 있어서 스님께 자랑하려고 했는데, 하필 스님께서 오시니까 고장이 났네요.”

“솜씨가 들통나는 게 싫어서 일부러 고장 낸 거 아니에요?” (웃음)

농사팀은 이앙기를 수리한 후 다시 모내기를 계속했습니다.

“다들 수고하세요. 내일도 모내기를 계속해야죠? 저도 같이 해야 하는데 백일법문을 해야 해서 서울로 올라가야 합니다. 모내기 마치면 맛있는 걸 함께 드세요.”

“감사합니다.”

스님은 땀 흘리며 하루 종일 모내기를 하고 있는 묘당 법사님과 농사팀 봉사자들을 격려한 후 농장을 한 바퀴 둘러보았습니다.

어제 양파를 수확했던 비닐하우스에 가서 마늘에 물을 듬뿍 주고, 모내기를 앞둔 다른 논들도 둘러보며 물이 잘 잡혀 있는지 살폈습니다. 그리고 비닐하우스에 심어둔 감자와 고추 등 작물이 잘 자라고 있는지 확인한 뒤 저녁 식사를 했습니다.

그사이 농사팀은 논 2400평에 모심기를 모두 마쳤습니다. 빼곡히 심긴 모 사이로 지는 해가 고요히 번졌고, 논 물 위로 잔잔한 황금빛 물결이 일렁였습니다.

해가 저물고 저녁 7시에 스님은 두북수련원을 출발해 서울로 향했습니다. 차로 4시간을 달려 밤 11시에 서울 정토회관에 도착한 후 하루 일과를 마쳤습니다.

내일은 백일법문 99일째 날입니다. 오전에는 정토사회문화회관 3층 설법전에서 경전 강의 질의응답 시간을 갖고, 저녁에는 지하 대강당에서 불교사회대학 22강 강의를 할 예정입니다.

오늘은 법문이 없었기 때문에 지난 23일 금요 즉문즉설 강연에서 질문자와 스님이 나눈 대화 내용을 소개하며 글을 마칩니다.

과잉 진료에 화가 났습니다. 왜 이런 일이 반복될까요?

“10여 년 전 치과 치료를 받았던 부위에 문제가 생기면서, 10년 동안 병원 다섯 곳을 전전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관련 서적을 읽으며 당시 진단에 오류가 있었고, 하지 않아도 될 치료를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너무 화가 나서 다른 병원을 찾아가 보았습니다. 만약 한 병원에서만 그런 일이 벌어졌다면 문제를 제기하고 그냥 넘겼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여러 병원을 오가며 서로 다른 경험을 하다 보니, 이건 단지 한 곳의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 이런 일이 반복되는지 의문이 들었고, 그 과정을 통해 의료수가(醫療酬價) 체계, 특히 원가 이하의 낮은 의료수가(醫療酬價) 구조가 원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병원 입장에서는 낮은 진료비에 보험 적용까지 감당해야 하니 운영이 어려워지고, 결국 불필요한 진료가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는 점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의료 기관이 불필요한 진료를 줄이고 꼭 필요한 진료에 집중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사람이 사는 세상에 완벽한 제도는 없습니다. 하지만 미국에서 치료를 받은 뒤 한국에서 진료를 받아본 사람들 가운데 상당수는 한국 의료 기관이 더 낫다고 말합니다. 한국 의료 체계에도 분명히 문제점이 있지만, 중국이나 다른 나라들과 비교해 보면 상대적으로 더 나은 편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만약 질문자가 외국에서 치료를 받아본 경험이 있었다면, 지금의 상황을 조금 더 상대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을지 모릅니다. 세상은 원래 완전하지 않습니다. 그 불완전한 현실 속에서 내가 선택해야 한다면, 그래도 한국 의료 체계가 나은 편이라는 점을 우선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한국 의료 체계에도 분명히 문제가 많습니다. 그렇다면 이 문제를 어떻게 개선해 나갈 수 있을까요? 우선 정치를 통해 제도를 바꾸거나 행정 명령을 통해 고쳐야 할 부분이 있다면 마땅히 그 방향으로 개선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다음 시민운동을 통해 해결해야 할 부분이 있다면 시민들이 직접 나서야 합니다. 예를 들어, 유사한 피해자들이 함께 모여 여론을 형성할 수도 있습니다. 또 의료 시스템의 불합리한 사례들을 꾸준히 수집해 발표하는 NGO 활동을 통해 사회적 관심을 이끌어낼 수도 있습니다. 이 문제는 하느님이 내려와서 해결해 줄 수도 없고, 정치인들이 알아서 나서 주길 기대하기도 어렵습니다. 정치인들이 국민의 삶을 살펴야 하는 게 마땅하지만, 지금은 오히려 국민이 정치를 걱정해야 하는 형국이잖아요. 이런 현실 속에서 정치권에 지나치게 기대를 거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변화는 끊임없이 요구하고, 요청하며 직접 실천할 때 비로소 가능합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이 이만큼 발전할 수 있었던 것도 어느 성군이 백성을 위해 나라를 잘 이끌어서가 아닙니다. 동학 농민 운동으로부터 이어진 수많은 이들의 희생으로 끊임없는 요구와 저항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질문자의 문제의식은 아주 순수하고 좋아요. 그런데 질문자에게도 조금 아쉬운 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질문자가 심리적으로 너무 여리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사안에 대해 너무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내가 다섯 사람과 함께 지낸다고 할 때, 그중 한 사람과 유독 자주 부딪힌다고 합시다. 그럴 때 그 사람이 문제인지, 내가 문제인지 객관적으로 판단하기는 어려워요. 이럴 때는 오히려 그 사람을 내 수행 과제로 삼아 보는 거예요. 그 사람 한 명만 내가 받아들일 수 있다면 나머지 네 사람과는 별문제 없이 지낼 수 있는 거니까요. 그래서 옳고 그름을 따지기보다 ‘이런 유형의 사람도 품을 수 있는 힘을 길러야겠다.’ 하는 마음을 내 보는 겁니다. 만약 다섯 명 중에 두 사람과 갈등이 있다면, 그때는 상대보다 나 자신을 먼저 돌아봐야 합니다. ‘나한테도 어떤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하고 살펴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만약 세 명 이상과 반복해서 문제가 생긴다면 그때는 무조건 병원에 가서 정신 건강 검진을 받아 보는 것이 좋습니다.

질문자는 치과를 다섯 군데나 갔는데 그 다섯 군데 모두 문제가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런 경우라면 치과보다 먼저 정신과에 가 보는 것이 좋습니다. 병원 한 곳이 잘못했을 수는 있습니다. 그래서 다른 병원으로 옮겼더니 또 만족스럽지 않은 일이 생길 수 있어요. 정말 운이 나쁘면 다섯 군데 모두 실수가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 일은 꼭 질문자에게만 일어나는 것도 아니에요. 저라도 그런 일을 겪을 수 있어요. 이 병원에서 안 되면 다른 병원으로 가 보면 되는 일입니다. 누가 일부러 나쁘게 하려는 것도 아니고 인연을 따라 그렇게 되었을 뿐입니다. 백 군데 중에 한 군데쯤 실수할 수 있듯이 그런 일은 늘 일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섯 군데 모두 문제가 있었다면 그건 단순히 한두 병원의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 의료 전체를 의심해야 할 정도의 일입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볼 때 다섯 명의 의사가 모두 돌팔이일 가능성은 극히 낮아요. 만약 질문자가 유독 그런 다섯 군데를 연달아 찾아다녔다면, 정말 운이 없었다는 말밖에는 할 말이 없습니다. 그래서 질문자의 심리가 지나치게 예민하다고 말씀드리는 거예요. 보통 사람들은 그런 정도의 일은 ‘운이 나빴다.’ 하고 넘기곤 합니다.

물론 의료 현장에서도 판단이 다를 수 있습니다. 어떤 의사는 ‘이를 꼭 뺄 필요는 없습니다. 신경 치료를 좀 해 봅시다.’ 이렇게 권하는 반면, 또 다른 의사는 ‘이걸 아직도 안 뺐어요? 큰일 납니다.’라며 보자마자 이를 뽑으려 하기도 해요. 이렇게 의사마다 견해가 다를 수 있습니다. 질문자 얘기를 들어 보면 의사도 참 곤란할 것 같아요. 질문자처럼 민감한 환자가 반복해서 문제 제기를 한다면, 의사 입장에서는 치료에 부담을 느끼거나 꺼려지는 상황이 생길 수 있습니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의료 소송 위험 때문에 의사라는 직업 자체를 기피하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거든요.

물론 환자의 처지에서 보면 억울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에요. 가끔 뉴스를 보면 수술하고 뱃속에 가위를 넣은 채 꿰맸다든지, 거즈나 장갑을 넣은 채로 꿰맨 경우도 있었다고 하거든요. 저 역시 지인 중에 치료받다가 잘못돼서 목숨을 잃은 분도 계십니다. 그러나 그걸 어떻게 다 막겠어요. 세상에 모든 사고를 막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사람은 교통사고로도 죽기도 하고, 산에 갔다가 떨어져서 죽기도 합니다. 우리가 살다 보면 언제나 위험에 처할 확률이 있습니다. 꼭 그 의사가 돌팔이라서 그런 일이 생긴 것만은 아닙니다. 의사도 사람이기에 실수할 수 있습니다. 우리도 정신 바짝 차리고 산다고 하지만 휴대 전화를 잃어버리기도 하고 가방을 놓치기도 하잖아요. 살다 보면 그럴 확률이 있는 법이에요. 옛말로 하면 ‘재수 없었다.’, ‘액땜했다.’ 하고 넘어가는 게 오히려 마음이 편할 수 있어요.

질문자가 의료계 문제를 제기한 점은 긍정적으로 봐야 합니다. 실제로 요즘 일부 병원에서는 환자를 치료의 대상으로 보기보다 돈벌이 수단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로 인해 과잉 진료가 빈번하게 일어나죠. 병원에 가 보면 여기가 병원인지 영업하는 곳인지 헷갈릴 정도입니다. 이런 문제는 공적인 조사를 통해 제도를 바로잡을 필요가 있습니다. 명백한 과실이 있을 경우에는 법적 절차를 밟아 해결을 해야 합니다. 질문자가 얘기한 것처럼 지금 의료수가(醫療酬價) 문제 등 제도적 문제가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제가 결론적으로 말씀드리고 싶은 점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째, 여러 문제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의료 체계는 여전히 외국에 비해 나은 편이라는 점입니다. 실제로 미국이나 중국에 사는 교포들도 그렇게 말해요. 한국 의료계에는 분명 여러 문제가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전체 시스템이 무너질 만큼 엉망은 아니에요. 지난 코로나19 사태만 봐도 의료진이 정말 헌신적으로 애써 주었잖아요. 물론 일부 병원에서는 수익을 앞세우며 불필요한 수술이나 과도한 투약을 권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다른 나라에 비해서는 여전히 나은 편이라 할 수 있습니다.

둘째, 질문자의 심리가 다소 민감하다는 점입니다. 작은 문제에도 크게 반응하고 의심이 깊어지다 보면 정작 더 큰 스트레스를 받게 됩니다. 그러니 이럴 경우에는 정신과 상담을 한번 받아 보는 것도 좋습니다.

셋째, 이런 의료계의 구조적 문제는 사회적으로 함께 해결해 나가야 할 과제입니다. 최근처럼 의대 정원을 2,000명 늘리겠다는 단순한 접근만으로는 부족하고, 합리적인 토론을 통해 해결해 나가야 합니다. 의사들도 의료 행위를 단순히 돈 버는 수단으로만 볼 게 아니라, 환자의 입장과 나라 사정도 함께 고려해서 의료 제도를 좀 더 현실적이고 균형 있게 바꿔 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잘 알았습니다.”

전체댓글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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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CTUS

벌써 모내기 철이네요. 농사하곤 전혀 관계 없었는데 스님 덕분에 자그마한 텃밭을 하게 되네요.
감사합니다.

2025-05-28 23:01:47

김숙경

_()_

2025-05-28 20:18:33

행복한

소아과도 의료수가가 너무 낮아 의사들이 기피해서 오픈런 소리 나오지요..
내 아프고 내가족 아픈건 꼭 의사가 헌신 봉사 해서 고쳐 놓아야만 하고 내돈은 무조건 적게 내야 한다는 이기심... .
제대로 댓가치르고 치료받아야 합니다.
합리적인 나라 미국처럼.

2025-05-28 19:0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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