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5.5.16. 백일법문 89일째, 금요 즉문즉설
“이혼 신청 후 제 삶은 무너진 것 같아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안녕하세요. 법륜스님의 백일법문 89일째 날입니다. 오늘은 일반 시민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금요 즉문즉설 강연이 열리는 날입니다. 서울에는 하루 종일 장대비가 쏟아졌습니다.

스님은 새벽 수행과 명상을 마친 후 금요 즉문즉설 강연을 하기 위해 정토사회문화회관으로 향했습니다. 아침 일찍부터 봉사자들이 즉문즉설을 들으러 온 시민들을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오전 10시 15분이 되자 유튜브 생방송을 시작하고, 삼귀의와 수행문을 함께 낭독했습니다. 대중 220여 명이 자리하고, 유튜브 생중계에는 3500여 명이 접속한 가운데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한 시간 반 동안 세 명이 스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그중 한 명은 아내와 이혼 조정 기간에 들어갔는데, 삶이 무너지는 듯한 무력감을 느낀다며 어떻게 이 마음을 회복할 수 있을지 스님에게 조언을 구했습니다.

이혼 신청 후 제 삶이 무너진 것 같아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저는 3일 전에 합의 이혼 신청서를 제출했고, 현재 생후 6개월 된 아들이 하나 있습니다. 이제 조정 기간이 시작되었는데, 마치 제가 살아온 삶 자체가 부정 당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듭니다. 제가 중요하게 여겨왔던 가치관들이 지금에 와서는 별 의미가 없었던 것 같고, 그저 아침에 일어나 밥 잘 챙겨 먹고, 운동도 하고, 맡은 일도 잘하고, 잠도 잘 자는 삶을 살려고 노력하지만, 그래도 하루하루 살아갈 용기가 잘 나지 않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 상황을 잘 극복할 수 있을까요?”

질문자는 울먹이며 말을 더듬고 힘겹게 스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질문자가 말하는 걸 들어 보니, 마치 큰일이라도 난 듯 울먹이는데 제가 보기엔 별일 아니에요. 처음엔 누가 돌아가신 줄 알았는데 들어 보니 그냥 이혼한다는 거잖아요. 세상에는 매일 사람들이 만나고 또 헤어집니다. 가을이 되면 낙엽이 떨어지듯이, 인연도 흘러가는 겁니다. 자꾸만 그 생각에 사로잡혀 있으니까 괴롭게 느껴지는 거예요. 오히려 질문자는 저보다 낫습니다. 결혼도 한번 해 봤고, 아이도 낳았잖아요. 그런 경험을 한 번도 못 해 본 사람도 많습니다. 해 봤으면 된 거지, 뭘 그렇게 괴로워하나요?”

“안 그래도 어머니께서 ‘자식이라도 있어서 다행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혼을 먼저 이야기한 쪽은 아내였나요, 아니면 질문자였나요?”

“제가 먼저 이혼하자고 했습니다. 서로가 기대했던 것을 충족하지 못한 게 가장 컸습니다. 저는 ‘내가 이만큼 했으면 이 정도는 챙겨 주어야 하지 않느냐!’ 하는 생각을 했고, 아내도 ‘내가 이렇게 밥 잘 챙기고 돌봐 줬는데 뭐가 부족하냐!’ 하는 입장이었습니다. 생활면에서는 서로가 성실히 역할을 했지만, 정작 원하는 건 그런 게 아니었던 거죠. 아내는 더 자상하게 챙겨 주는 걸 원했고, 저는 반대로 가끔은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싶고, 친구도 만나고, 바람도 쐬고 싶었어요. 그런데 아내는 외출 전 미리 말해 달라고 했고, 저는 그게 속박처럼 느껴졌습니다. 결국 그런 갈등이 반복되면서 타협점을 찾지 못했습니다.”

“질문자는 결혼 생활을 할 준비가 안 되어 있는 사람입니다.”

“맞습니다. 사실 저는 원래 결혼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아내가 저를 진심으로 좋아해 주었고, 그 덕분에 저도 심적으로 많이 의지하게 됐습니다. ‘이 사람이면 결혼해도 되겠다.’라는 생각이 들어서 결혼을 결심했던 거였습니다.”

“결혼은 단순히 같이 사는 것이 아니라 서로에게 어느 정도 의지하겠다는 약속입니다. 그 마음이 전혀 없다면, 애초에 결혼을 해서는 안 되지요. ‘오늘은 좀 늦을 것 같아. 친구 좀 만나고 올게.’라고 하면, 상대가 ‘무슨 일인데? 누구를 만나는데?’라고 묻는 건 당연한 반응입니다. 그것조차 간섭처럼 느껴진다면 결혼 생활을 유지하기 어렵습니다. 그럴 바엔 애초에 혼자 사는 게 낫죠. 그래서 이혼에 이르게 된 건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그런데 그 일이 질문자가 울먹일 일은 아니에요.

여성 분들은 제 말을 잘 들으세요. 남자가 허우대 멀쩡하다고 좋아하면 저렇게 큰일 나요. 인물도 괜찮고 키도 크니까 부인이 좋아했던 모양인데,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돈을 많이 벌었다고 해서 행복한 결혼 생활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두 사람이 함께 살아가기 위한 준비가 되었을 때 결혼 생활이 행복할 수 있습니다. 혼자 살 때는 자기 마음대로 하면 되지만 같이 살 때는 서로에게 맞춰야 해요. 맞출 준비가 되어 있으면 결혼할 준비가 된 것이고, 그 준비가 안 돼 있으면 아직 때가 아닌 거예요. 옛날에는 결혼하면 서로 맞추는 건 너무 당연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결혼 적령기를 단순히 나이로만 판단했습니다. 하지만 요즘 결혼의 기준은 나이가 아니라 ‘서로 맞출 준비가 되었는가?’ 예요. 스무 살이어도 준비가 되었다면 결혼할 수 있고, 예순이 되어도 준비가 안 되었으면 아직 아닌 거예요.

질문자는 혼자 살던 습관 그대로 결혼 생활을 이어가려 했어요. 혼자 살 때는 어디를 가든 어떻게 시간을 보내든 자유롭습니다. 하지만 결혼은 둘이 약속하고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예요. 그래서 상대는 궁금할 수밖에 없습니다. 어디 가는지, 언제 들어오는지, 누구를 만나는지 정도는 알려 주는 것이 기본입니다. 그 정도를 간섭으로 받아들이고 귀찮게 여긴다면, 결혼 생활을 할 준비가 안 된 것입니다. 그런 태도 자체가 결혼에 대한 관점이 잘못되어 있었다는 걸 보여 주는 거예요.

이건 물질의 원리로도 설명할 수 있습니다. 산소와 수소가 각각 따로일 때는 물이라는 성질이 전혀 없습니다. 하지만 산소 하나와 수소 두 개가 만나 결합하면 물이라는 완전히 새로운 성질이 생겨납니다. 이전에는 없던 성질이 결합을 통해 새로 생겨나는 거예요. 자동차도 마찬가지입니다. 부품 2만 개가 흩어져 있으면 그 자체로는 아무 기능이 없어요. 하지만 설계도에 따라 조립해 놓으면, 그 순간부터 움직이고, 불이 켜지고, 소리를 내는 새로운 성질이 생깁니다. 그 성질은 부품 어디에도 들어 있지 않았던 것이에요. 전혀 없던 게 결합을 통해 생긴 겁니다.

두 사람이 결혼해서 함께 살면, 그 결합을 통해 이전에는 없던 새로운 성질이 생겨납니다. 마치 수소와 산소가 각각 따로 있을 땐 물이 아니지만, 둘이 결합하면 물이라는 전혀 다른 성질이 생기는 것처럼요. 남자 혼자, 여자 혼자일 때는 없던 성질이, 결혼을 통해 결합해서 하나의 새로운 공동체가 생겨나는 겁니다. 헤어지면 다시 수소와 산소로 돌아가듯, 이혼을 하면 ‘나’와 ‘너’로 다시 분리됩니다. 하지만 함께 살 때는 단순히 나와 네가 아닌 새로운 성질을 가진 ‘가정’이 만들어지는 거예요. 거기에 자녀까지 태어나면 비로소 ‘가족’이라는 하나의 공동체가 형성됩니다. 이처럼 결혼은 단순한 동거가 아니라 전혀 새로운 하나의 세계를 함께 만들어 가는 일입니다.

그런데 질문자는 결혼을 이런 새로운 관계로 이해하지 못한 겁니다. 돈을 벌어 오면, 그에 상응하는 서비스를 받아야 한다는 생각은 가정의 개념이 아니에요. 그건 상거래입니다. 마치 안마 시술소에 가서 돈을 주고 서비스를 제공받는 관계 정도로 생각하는 겁니다. 결혼은 그런 거래가 아닙니다. 부부 관계란 계산해서 주고받는 게 아니라 함께 누리는 거예요. 내가 돈을 많이 벌어 왔으니, 네가 나를 더 챙겨야 하고, 나는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어야 한다는 식의 태도는 가정이 아니라 개인과 개인의 관계에서나 가능한 이야기예요. 결혼은 공동체이기 때문에 부인이 질문자에게 그런 요구를 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를 인정해야 합니다.

정토회에서도 공동체 생활을 하다 보면 ‘오늘 어디 다녀오겠습니다.’ 하고 말하는 건 기본입니다. 예를 들어, 스님이 목이 아파서 부산에 있는 병원에 다녀온다고 합시다. 아무 말 없이 훌쩍 다녀오는 게 아니라 아침에 발우 공양을 하는 시간에 ‘오늘 오전 법회 끝나고 부산에 가서 치료받고 밤 10시까지 돌아오겠습니다.’ 하고 공유를 해야 합니다. 혹시 늦게 돌아오게 되면 ‘상황이 생겨서 좀 늦었습니다.’ 하고 다시 알려야 됩니다. 이것은 의무가 아니라 함께 사는 이들 간의 기본 예의이고 질서입니다. 요즘 젊은 세대는 이걸 간섭이라고 여기고 말을 안 하고 훌쩍 나가버리니까, 주변에서 어디 갔냐고 찾게 됩니다. 결혼을 하지 않아도 공동체에서 함께 살면 반드시 알려야 해요. 이것은 회사에서 감시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자발적으로 알리고 서로 배려하는 생활이에요. 인생이라는 건 다 이렇게 서로 알리고 조정하면서 사는 겁니다. 그런데 아무 말 없이 자기 마음대로 한다면 그건 독선이에요. 질문자가 왕이고, 부인은 시녀입니까?”

“그건 아닙니다.”

“결혼은 대등한 관계입니다. 누가 돈을 더 많이 벌었는가, 누가 능력이 더 뛰어난가, 이런 걸로 부부 관계를 따지는 건 옳지 않아요. 내가 좀 더 크고, 상대가 좀 작더라도, 둘이 합치면 그냥 하나가 되는 겁니다. 결혼하고 나서 형성된 재산은 아무리 한쪽이 거의 다 벌었다고 해도 이혼할 때는 반반 나눠요. 많이 번 사람이 많이 가져가는 게 아닙니다. 물론 결혼 전에 가지고 있던 재산은 제외하지만, 결혼 이후에 함께 만든 재산은 기여도가 어떻든 상관없이 동등하게 나누는 게 원칙입니다. 이혼을 하든 안 하든 그건 질문자의 자유지만, 질문자가 뭘 잘했다고 울먹거리냐는 거예요.” (웃음)

“아이도 보고 싶고, 제가 잘못한 것 같아서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잘못을 반성하면 되지, 울먹거릴 일이 아니에요. 지금처럼 감정에 빠져서 흐느끼고 있을 일이 아닙니다. 만약 정말 자기가 잘못했다는 걸 깨달았다면, 이혼 신청서를 냈다 하더라도 그다음 날 다시 찾아가서 ‘내가 잘못했어.’하고 말한 후 다시 시작하면 되는 거예요. 아이만 보고 싶고, 부인은 보기 싫다는 마음이라면 그건 좋은 것만 먹고 껍데기는 버리겠다는 태도입니다. 그런 식의 태도는 옳지 않습니다.

같이 살아도 좋고, 헤어져도 좋습니다. 다만, 결혼을 바라보는 자세가 잘못됐다는 겁니다. 만약 그렇게 이혼했다면, 이후로는 ‘다시는 결혼 안 하겠다.’ 하는 입장이 분명해야 해요. 이 사람보다 더 괜찮은 사람이 나타나면 다시 결혼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어떤 여자가 나타나도 결혼은 안 한다는 방침이 딱 정해져 있어야 해요. 그러지 않을 거라면, 지금부터라도 결혼에 대한 관점을 바꾸어야 합니다. 혼자 살 때처럼 살아서는 안 됩니다. 결혼은 둘이 만나서 새로운 공동체를 만드는 일이에요. 이것이 바로 부처님이 말씀하신 연기법입니다.”

“사실 너무 부끄럽습니다. 제가 드린 질문이 너무 얕았던 것 같아요. 오늘 스님 말씀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가족이 생기면 완전히 새로운 공동체가 된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저는 그걸 전혀 인식하지 못한 채 살아왔던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깨달음의 장에 한번 가 보세요. 깨달음의 장에 다녀오시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질 겁니다. 계속 같이 살 것인지, 이혼을 할 것인지는 그렇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어떻게 살든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불법의 핵심입니다.”

계속해서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 같은 부서에 있는 한 사람이 너무 미워서 같이 일하기가 너무 힘듭니다. 그 사람을 보면 편해질 수 있는 방법이 궁금합니다.

  • 한글을 배우고 싶다는 다문화 외국인이 88개국에 12만 명 정도 있다고 들었는데, 한글을 쉽게 배울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 부유한 학부모들 사이에서 위축이 됩니다. 돈 쓰는 것에 불편함을 느끼는 제 마음을 어떻게 바라보고 다스려야 할까요?

  • 큰아들과 같은 집에서 살고 있는데, 불교 책을 많이 읽고 저를 가르치려고 해서 아들의 앞날이 많이 걱정됩니다.

오늘은 다섯 명의 질문을 받고 나니 마칠 시간이 되었습니다. 아쉽지만 12시가 되어 강연을 마쳤습니다.

스님은 대중과 함께 지하 1층 공양간에서 점심 식사를 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오후 1시 30분에는 평화재단 연대 사업 담당자와 회의를 했습니다. 7월에 열리는 국제화해학회 행사에 스리랑카 종교인 모임을 초대하는 일과 관련하여 의논한 후 회의를 마쳤습니다.

오후 2시에는 평화재단 관계자들과 12년 전 청춘콘서트를 통해 대한민국 청년들에게 희망을 전했던 것처럼, 요즘 침체된 청년들에게 다시 희망을 줄 수 있는 방안에 대해 논의했습니다.

오후 3시 30분에는 공동체 법사단과 온라인으로 회의를 했습니다. 정토회 운영과 관련하여 여러 가지 주제로 의논을 한 후 회의를 마쳤습니다.

해가 저물고 저녁 7시 30분에는 직장인들을 위한 금요 즉문즉설 강연을 시작했습니다. 많은 시민들이 직장에서 퇴근해서 즉문즉설을 듣기 위해 정토사회문화회관을 찾았습니다. 유튜브에 5200여 명이 접속하고 현장에 160여 명이 자리했습니다.

오늘은 즉문즉설을 시작하기에 앞서 특별한 무대가 마련되었습니다. 방송, 영화, 연극인들의 사회 봉사 활동 모임인 길벗의 회원인 가수 마야 님이 축하 공연을 해 주었습니다. 마야 특유의 강렬한 에너지와 폭발적인 가창력으로 가요 ‘붉은 노을’을 선보이며 관객들로부터 열렬한 호응을 이끌어냈습니다.

마야 님은 노래를 마치고 간단히 자기소개를 했습니다.

“저는 정토회 회원 마야입니다. 뜨거운 함성을 보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법륜스님의 가르침을 가슴에 새기고 세상에 잘 쓰이겠습니다.”

이어서 ‘나를 외치다’를 불러 관객들의 뜨거운 환호와 박수를 받은 후 무대 아래로 내려왔습니다.

삼귀의와 수행문을 낭독하고 나서 스님이 무대에 올랐습니다. 한 시간 동안 일곱 명이 손을 들고 스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중 한 명은 평생 성실하게 살아온 아버지가 최근에 유흥을 자주 즐기게 되었다며 자식으로서 어떻게 봐야 할지 고민을 이야기했습니다.

은퇴 후 일탈에 빠진 아버지, 자식으로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일탈 때문에 고민입니다. 아버지는 평생 일에만 몰두하셨고, 유일한 취미라고는 TV조선 시청뿐이었습니다. 근검절약하며 살아오신 덕분에 지금은 경제적으로도 넉넉하신 편입니다. 하지만 연세가 드시고 제가 결혼한 뒤부터는, 삶의 의미를 잃으신 듯해요. 또래 분들은 등산이나 골프도 다니시는데, 아버지는 친구도 거의 없고 집에서 TV만 보며 시간을 보내셨습니다. 그런데 최근 들어 회사에 새로 들어온 직원과 함께 노래방에 다니기 시작하셨습니다. 한 번 가시면 30만 원에서 60만 원까지 쓰시고, 일주일에 세 번이나 가시는 경우도 있습니다. 잠깐의 일탈이라면 괜찮겠지만, 이 상황이 계속되면 문제가 되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어머니도 번뇌가 많아지셨습니다. 자식으로서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좋을까요?”

“그냥 놔 두세요. 그동안 성실하게 살아오셨다면서요? 이제 좀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며 살아도 됩니다. 그동안 마음속에 억눌려 있던 게 이제야 풀리는 거예요. 죽기 전에 한 번쯤은 마음껏 놀아 보는 것도 괜찮습니다. 자식도 다 컸으니 걱정하지 말고, 오히려 ‘잘 놀고 오세요.’하고 격려해 주세요. 자기 돈 자기가 쓰는 건데, 아무 문제없어요. 어머니가 걱정하신다면 따라가 함께 노는 것도 방법입니다. 아버지께 ‘어머니도 데려가세요.’ 하지 말고, 어머니께 ‘걱정되시면 같이 가 보세요.’ 이렇게 말하세요.”

“그렇게 말씀 드려 보겠습니다.”

“어머니가 걱정하시는 마음은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하지만 결혼했다고 해서 모든 걸 얽매어 놓고 살 수는 없습니다. 윤리와 도덕도 내가 자발적으로 지킬 때는 자유롭지만, 남의 평가를 의식해 억지로 지키면 마음이 억눌려요. 그 억압이 누적되면, 결국 어느 순간 터져버립니다. 요즘 어르신들이 태극기를 들고 거리에서 시위하는 것도 심리 치료 관점에서 보면 자연스러운 현상이에요. 예전에는 대가족 안에서 자식들과 소통하며 살았지만, 요즘은 자식이 결혼해도 부모를 돌보지 않고, 소통의 기회도 거의 없습니다. 퇴직하고 자식들이 독립하면, 노부부만 집에 남게 됩니다. 사회에서는 퇴물처럼 대하고, 본인 스스로도 가치를 잃었다고 느끼게 됩니다.

젊은이들이 하던 시위를 어르신들이 하게 되는 것도, 그 안에서 자신이 여전히 사회적 존재로 인정받는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곳에서는 동료도 생기고, 서로 격려도 주고받아요. ‘내가 나라를 지킨다.’ 하는 사명감이 생기기도 합니다. 옳고 그름의 문제를 떠나 그 공간에서 보람을 느끼고, 살아 있다는 감각이 되살아나는 겁니다. 국가 전체로 보면 문제일 수도 있지만, 심하지 않다면 그대로 두는 것이 나을 수도 있습니다. 법원에 들어가 시설물을 부순 것은 젊은 사람들이었는데, 그들은 의도적이고 이념적으로 편향된 경우가 많습니다. 반면에 노인들은 고작해야 소리를 지르거나 책상을 뒤엎는 정도예요. 제가 아사 위기에 놓인 북한 주민들을 돕기 위해 거리에서 서명 운동을 할 때 어르신들이 우산으로 위협하거나 책상을 치거나 물건을 던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사람을 때리지는 않아요. 그럴 때는 ‘스트레스를 푸시는구나.’ 하고 너그럽게 받아들이면 됩니다.

질문자가 JTBC를 보듯이 아버지는 TV조선을 보시는 거예요. 그 자체가 문제시될 이유는 없습니다. 기독교인이 하느님을 믿고, 불교 신자가 절에 가듯, 자신이 좋아서 하는 행동이라면 존중해 줄 필요가 있습니다. 불교에서는 다음과 같은 행위만을 삼가라고 말합니다. 남을 해치거나 죽이는 행위, 남의 것을 훔치거나 빼앗는 행위, 성적으로 해를 끼치는 행위, 거짓말과 욕설을 하는 행위, 술에 취해 행패를 부리는 행위, 이 다섯 가지만 아니면 가능한 한 자유롭게 살도록 두는 게 좋습니다. 자식이나 아내의 입장에서는 탐탁지 않을 수 있지만, 본인이 원해서 하는 일이라면 간섭하지 않는 것이 맞아요. 자식에게 돈을 요구하는 것도 아니고, 자기 돈을 자기가 쓰는 것인데 문제 삼을 이유가 없습니다.

혼자 사는 아버지가 젊은 여성과 만나면 ‘그 여자가 돈을 노리는 거다.’라며 가족들이 난리를 칩니다. 실제로 돈 때문일 수도 있어요. 하지만 자식에게 돈을 줘도 잘해 주지 않잖아요? 그 여성이 돈 받고 잘해 주면 그 값어치를 하는 거죠. 그게 싫으면 자식이 직접 가서 더 잘해 드리면 됩니다. 자기 권리가 아닌 것을 가족이라는 이유로 통제하려 해서는 안 됩니다. 부부라고 해도 상대가 다른 이성에게 관심을 보이면 내가 더 잘해 주면 되는 거예요. 결혼이라는 계약서 한 장으로 상대를 얽매려고 하는 건 건강한 관계가 아닙니다. 문제가 있다면 대화로 풀어 보세요. 그래도 해결되지 않으면, 집에 노래방 기계를 들여 놓고 술도 차려 드리면서 ‘아버지, 우리 집에서 놉시다!’ 하고 제안을 하세요. 그것도 어렵다면 같이 따라가 보든지요. 그게 싫다면 그냥 놔 두는 것도 방법입니다.”

“아버지가 하시는 일이 원래도 힘든데, 놀고 오신 다음 날 피곤하셔서 차 사고가 난 적이 있어요. 다행히 크게 다치시진 않았지만, 어머니가 많이 걱정하십니다.”

“어머니께 ‘걱정 마세요. 그러다 돌아가시면 그 돈은 다 어머니 겁니다.’라고 하세요. 좋아하는 일을 하다 돌아가시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무조건 오래 사는 게 잘 사는 건 아니잖아요? 자기 하고 싶은 거 하다가 죽는 삶도 괜찮습니다. 걱정되는 마음은 이해하지만, 본인이 그렇게 살겠다고 한다면 그 선택을 존중해 주는 게 맞아요. 부모가 농사지어 자식에게 용돈을 주면, 그 돈으로 자식은 애인에게 커피 사 주고 술도 사 주잖아요. 그건 괜찮다고 하면서, 부모가 자기 돈 쓰는 건 왜 간섭합니까? 우리는 인간을 좀 더 열린 시선으로 바라봐야 합니다. 너무 울타리 안에서만 보지 마세요. 물론 그 행동이 남에게 해를 끼치거나 법에 어긋나는 것이라면 조절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 외의 것들은 부모든 부부든 조금은 놓아 주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안 그래도 다음에 아버지와 같이 노래방에 가 보려고 합니다. 즉문즉설을 많이 들었기에 ‘이런 식으로 답변해 주시겠지!’ 하고 왔는데, 그 이상을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계속해서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 일하는 곳에서 남자 직원이 제 가슴을 살짝 만졌다고 느껴졌습니다. 그 후 제 기분이 안 좋아서 신경이 자꾸 쓰입니다. 어떻게 대응을 해야 할까요?

  • 몇 년 전에 첫 아이를 키우는 것과 학위 논문을 같이 하는 게 무리가 돼서 몸이 아팠는데, 그 증세가 아직 지속되어 둘째를 낳을지 고민이 됩니다.

  • 93세인 어머니를 고향에서 동생이 모시고 살았는데, 목돈 든 통장을 저에게 준 일을 계기로 동생이 마음이 상하여 결국 제가 어머니를 모시기로 했습니다.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할까요?

  • 새로 일자리를 구했지만 충동적으로 하루 만에 그만두었습니다. 심리적으로 불안감이 높은 것에 대해 자책감이 듭니다.

대화를 마치고 나니 밤 9시가 되었습니다. 다음 주 이 시간을 기약하며 사홍서원으로 강연을 마쳤습니다.

강연장을 나온 스님은 곧바로 서울을 출발하여 두북수련원으로 향했습니다.

3시간 30분 동안 고속도로를 달려 밤 12시 30분에 두북수련원에 도착한 후 하루 일과를 마쳤습니다.

내일은 오전에 농사일을 한 후 오후에는 정토불교대학 학생들과 온라인으로 즉문즉설 시간을 가질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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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관

고맙습니다...

2025-05-19 07:52:00

김대영

감사합니다 지금 이대로 충분합니다.

2025-05-19 07:27:47

고원향

고맙습니다.
느슨하게 바라보겠습니다. 존중하는 마음으로

2025-05-19 07: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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