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4.12.1 INEB 국제 컨퍼런스 3일째, 법륜 스님 기조 강연 
"스님이 활동을 꾸준히 해나가는 힘은 어디에서 나오나요?"

안녕하세요. 오늘은 인도 첸나이에서 열리는 INEB(참여불교국제네트워크) 국제 컨퍼런스 3일째 날입니다. 스님의 기조 강연을 끝으로 컨퍼런스를 마무리한 후 로힝야 난민캠프에 비누 636만 개를 전달하기 위해 방글라데시로 이동했습니다.

새벽 수행과 명상을 마친 후 스님은 아침 7시 40분에 숙소에서 아침 식사를 하고, INEB 국제 컨퍼런스의 공개 심포지엄 기조 강연을 하기 위해 행사장인 첸나이 성 토마스 국제 센터(St.Thomas international pilgrimage centre)로 향했습니다.  


9시가 넘자 공개 심포지엄을 시작했습니다. 피리 연주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심포지엄을 여는 의식을 했습니다.  

INEB의 고문인 법륜스님, INEB 이사장인 하르샤 님, 인도INEB 이사인 고탐 님이 무대 앞으로 나와 촛불을 밝혔습니다.  

이어서 인도INEB 이사인 고탐 님이 환영사를 했습니다. 이번 컨퍼런스의 주제가 불교 유산과 포괄성이라는 점에서 고탐 님의 아이디어가 행사 기획에 많이 반영되었다고 합니다.  

“이번 컨퍼런스의 주제는 불교 유산과 포괄성입니다. 불교는 모든 사람을 포함하는 가치를 통해 무지를 깨우치고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길을 보여줍니다. 남인도는 불교의 부흥과 포괄적 가치를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해 왔습니다. 이번 행사는 고고학, 공동체, 기후 문제를 아우르는 포괄적인 논의의 장이 되었습니다. 

또한 법륜 스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스님의 존재는 저에게 큰 힘이 됩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아바야다나'(무외시)는 가장 큰 공덕 중 하나로, 우리에게 앞으로 나아갈 용기를 주셨기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다음은 INEB를 대표하여 하르샤 의장님이 인사말을 했습니다.  

“스리랑카는 2,500년 이상의 세월 동안 인도와 종교 및 문화적으로 깊이 연결되어 왔습니다. 포괄적 사회란 인종, 성별, 계급, 전통의 차이를 존중하며, 사회 구성원 모두의 재능과 잠재력을 극대화하는 것입니다. 저는 평화와 화해를 통해 포괄적 사회를 만들기 위해 헌신하고 있습니다. 이번 컨퍼런스에서 많은 젊은이들이 활발히 참여하는 모습을 보며 희망을 느꼈습니다.” 

이어서 INEB 집행부를 대표해서 하르샤 의장님은 행사 주최측인 고탐 님에게 불상을 선물했습니다.  

선물 전달식을 마치고 스님이 공개 심포지엄 주제에 대한 기조 강연을 했습니다. 주제는 “포용적 사회 참여를 통해 연민과 형평성의 뿌리를 추적하다(Tracing the Roots of Compassion and Equity through Inclusive Social Engagement)”입니다.  

원래는 대만의 지나이 비구니 스님(Ven.Zinai)과 태국의 슐락 시바락사 박사님(Ajahn Sulak Sivaraksa)이 참석할 예정이었는데 사이클론 때문에 비행기가 결항이 되어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스님이 한 시간 동안 기조 강연을 하게 되었습니다. 먼저 스님이 참석자들에게 인사말을 했습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께 이곳 인도에서 저에게 전해준 불교 유산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첫째, 이곳 인도에서 저는 불자로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유산으로 물려받았습니다. 둘째, 대승불교인으로서 이곳 남인도에서 태어나 대승불교를 집대성한 나가르주나(Nagarjuna, 용수 보살)의 유산을 이어받았습니다. 세 번째, 이곳 남인도 출신의 보디달마(Bodhidharma)는 선종의 창시자입니다. 저는 젠부디스트로서 보디달마의 가르침을 유산으로 물려받았습니다. 이러한 세 가지 유산을 물려받았기 때문에 오늘의 제가 있었고, 오늘 이렇게 첸나이를 방문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초대해 주신 INEB 관계자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이어서 본격적으로 강연을 시작했습니다. 강연은 INEB 실행위원인 안챌리 님이 묻고, 스님이 답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먼저 안챌리 님이 스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왜 참여불교가 현대 사회에서 중요한가요? 

“법륜 스님은 현대인의 고통을 불법으로 해결하고자 정토회를 창립하셨습니다. 정토회의 구성원들은 스스로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서원하고, 모든 인간의 이익과 복지를 활동의 핵심으로 삼는 헌신적인 분들입니다. 정토회는 빈곤, 불평등, 기후 변화, 전쟁과 갈등, 개인 및 집단적 고통과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불교의 가르침을 지침으로 삼아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정토회는 전 세계적으로 1만 명 이상의 회원들이 활동하고 있으며, 법륜 스님의 유튜브 채널은 200만 명 이상의 구독자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스님의 가르침은 현대 사회에 깊은 영향을 끼쳤으며, 2020년에는 니와노 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스님께 질문드리고 싶습니다. 참여불교가 정말 중요한가요? 우리는 어떻게 참여불교를 실천할 수 있나요?” 

“우리가 불교를 공부할 때는 세 가지 접근법이 있습니다. 첫째, 불교를 믿는다고 하는 종교적인 접근이 있습니다. 우리가 부처님을 믿을 때 그때의 부처님은 신과 같은 매우 절대적이고 추상적인 존재입니다. 부처님을 믿는다고 할 때는 역사적인 그리고 사회적인 존재로서의 붓다의 의미는 없습니다. 둘째, 붓다 담마를 학습한다고 하는 철학적인 접근이 있습니다. 이때는 주로 불교 사상을 공부하게 됩니다.  

셋째, 부처님의 일생을 공부하는 방식으로 접근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실제로 부처님은 사회와 역사 속에서 살았기 때문에 사회적 존재, 역사적 존재로서의 부처님에 대해 이해하게 됩니다. 부처님은 깨달음을 얻고 열반에 드실 때까지 45년 동안 세상 속에서 가르침을 전하며 한 인간으로 살아갔습니다. 괴로움이 없는 니르바나를 증득한 붓다라 하더라도 밥을 먹어야 하고, 옷을 입어야 하고, 잠을 자야 했습니다. 그를 존경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그를 비난하는 사람도 만났습니다. 붓다가 사는 당시 사회는 오늘날처럼 많은 전쟁이 있었습니다. 또한 차별이 아주 심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차별이 인간을 신분에 의해서 차별하는 카스트 제도와 성별에 의해서 차별하는 남녀 차별이었습니다. 또 아기가 죽어서 슬픈 엄마가 죽은 아기를 안고 부처님을 찾아와서 하소연한 적도 있습니다. 심지어는 붓다 생전에 붓다가 태어난 나라인 카필라바스투가 코살라국의 공격을 받아 대부분의 샤카족이 전멸하는 사건도 일어났습니다. 붓다가 이런 사건들에 대해 어떻게 임했는지를 우리가 제대로 알게 되면 불교는 저절로 사회성과 역사성을 회복하게 됩니다.  

불교의 사회성과 역사성을 회복하는 방법 

예를 들어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인도는 영국의 식민지 지배를 받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영국의 지배에서 벗어나 독립하기 위해서 싸웠습니다. 그러면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인도는 어떤 사회가 됩니까? 지배 계층이 볼 때는 독립된 사회입니다. 그러나 피지배층의 처지에서 볼 때는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새로운 인도도 역시 그들을 지배하는 상위 카스트가 존재하고, 그들로부터 지배를 받습니다. 달리트(Dalit) 계층에서 볼 때 독립을 한 것과 안 한 것이 어떤 차이가 있겠습니까? 아무런 차이도 없습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진정한 독립은 영국으로부터의 독립뿐만 아니라 카스트로부터도 해방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문제에 직면한 것이 당시 인도 사회의 현실이었습니다. 마하트마 간디가 위대하지만, 이것이 바로 마하트마 간디와 암베드카르가 갖는 문제의식의 차이입니다.  

붓다 당시에는 어땠을까요? 붓다가 왕궁 안에서 살 때는 사회의식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러나 왕궁 밖에 나갔을 때 붓다는 삶의 현실을 보게 됐습니다. 새가 벌레를 쪼아먹고, 농부가 소를 때리면서 일을 하고, 농부의 극심한 빈곤이 주인의 지나친 착취에 의해서 발생하고 있음을 보게 되었습니다. 붓다가 그 당시에 가진 문제의식은 ‘왜 하나가 살기 위해서 하나가 죽어야 하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함께 행복해지는 길은 없을까?’ 이렇게 문제의식을 느끼기 시작했기 때문에 고타마 싯다르타가 진리의 세계로 접근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출가를 할 때는 본인이 결정을 내려서 가족도 버리고 지위도 버리고 재물도 버립니다. 그런데 이러한 자기 결정을 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주인이 있는 노예들입니다. 노예는 그들 마음대로 자기 인생을 결정할 수 없습니다. 또 당시 사회에서는 남성이 여성의 주인 역할을 했기 때문에 여성도 자기 인생에 관해 스스로 결정할 수가 없었습니다. 부처님 당시에 부처님께서 노예들의 출가를 허용했다는 것은 그들을 주인으로 인정했다는 것입니다. 여성 출가를 인정했다는 것은 여성이 남성 없이도 스스로 존립할 수 있는 존재로 인정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바로 붓다는 이렇게 삶 속에서 그 당시에 가장 견고했던 신분 차별과 성차별을 뛰어넘었습니다.  

불교가 사회적 실천을 하지 않게 된 이유  

저는 오늘날 부디스트들에게서 사회적 실천이 나오지 않는 가장 큰 원인이 붓다가 45년간 어떤 삶을 살았는지에 관한 공부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부디스트들이 부처님을 믿는 종교 행위나 부처님의 가르침을 학습하는 학문적인 연구만 하고 있기 때문에 실천적인 불교가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저는 정토회 회원들에게 한 인간으로서 붓다가 45년간 각각의 사회 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대응하며 살아갔는지를 가장 중요하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한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부처님의 아버지는 샤카족이고, 부처님의 어머니는 꼴리족입니다. 두 나라 사이에는 로히니강이 흐르고 있습니다. 어느 해 가뭄이 심해서 로히니강물을 가지고 두 종족이 싸웠습니다. 처음에는 주민들의 싸움이었지만 싸움이 커져 군대가 전쟁을 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이것은 수행자라 하더라도 외면할 수 없는 자기 친족의 문제이기 때문에 붓다는 그 분쟁의 현장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물었습니다.  

‘물이 중요합니까, 피가 중요합니까?’  

그러자 그들은 ‘어떻게 하찮은 물을 소중한 피에 비교합니까? 당연히 피가 귀합니다’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붓다가 말했습니다.  

‘그런데 왜 당신들은 그 하찮은 물을 위해서 소중한 피를 물 같이 흘리려고 합니까?’  

이렇게 붓다는 분쟁을 구체적으로 해결해 나갔습니다. 제가 사는 한반도에도 현재 남북 간에 같은 민족끼리 전쟁을 일으키려고 합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제자라면 어떻게 하면 남북 갈등을 평화적으로 풀 것인가 하는 것이 과제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질문에 대한 저의 대답은 이렇습니다. 첫째, 여러분들이 부처님의 일생을 좀 더 깊이 공부했으면 좋겠습니다. 왜냐하면 그 속에 불교의 사회실천이 모두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둘째, 오늘날 우리는 많은 사회적인 문제에 직면해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관점에서 오늘의 현실에 대해 접근할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붓다께서 다시 이 세상에 오신다면 환경 문제와 평화 문제에 대해 어떻게 접근할까요? 저는 참여불교가 그냥 새로운 불교나 불교의 한 부분이 아니라 참여불교가 바로 불교의 본질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불교 신자가 어떻게 사회 문제의 해결에 참여할 것인가?’ 하고 질문할 게 아니라 불교 신자는 당연히 사회 문제의 해결에 참여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저에게 ‘스님이 왜 환경운동을 합니까?’ 하고 묻습니다. 그때 저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저는 숨을 쉬고 있고, 물을 마시고 있고, 음식을 먹고 있습니다. 그런데 나의 생존을 위한 것들이 오염되고 파괴되고 있는데, 어떻게 환경운동을 하지 않을 수가 있습니까?’  

또 어떤 사람은 ‘스님이 왜 평화 운동을 합니까?’ 이렇게 묻습니다. 그러면 저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전쟁이 나면 저도 폭탄을 맞을 수 있고, 제가 사는 절도 파괴될 수 있습니다.’  

실제로 한국 전쟁 때 많은 사찰이 파괴됐습니다. 그래서 평화 문제는 우리가 외면할 수 없는 바로 나의 문제입니다. 저는 불교 따로 있고, 수행 따로 있고, 사회참여 따로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냥 우리의 삶 자체가 수행이고, 사회적 실천이라고 생각합니다.” 

스님의 답변이 끝나자 큰 박수가 쏟아졌습니다.  

이어서 안챌리 님이 두 번째 질문했습니다.  

스님이 활동을 꾸준히 해나가는 힘은 어디에서 나오나요? 

“스님께서는 오랜 세월 동안 다른 사람들을 위해 끊임없이 헌신해 오셨습니다. 스님의 노력이 존경받는 만큼 비난받는 경우도 많았을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스님이 활동을 꾸준히 해나가는 힘은 어디에서 나오나요? 세상이 점점 더 어두워지고 있다는 느낌 속에서도 희망을 유지하는 방법은 무엇인가요?”  

“저는 시골에서 자랐습니다. 그래서 어릴 때 농사를 지었습니다. 또 차가 없어 먼 길을 걸어 다녔습니다. 제가 어릴 때는 식량도 매우 부족했습니다. 명절 때 부모님이 신발을 사주면 그 신발을 아끼려고 맨발로 학교까지 걸어가 학교 입구에서 신발을 신고 들어갔습니다. 이런 경험 덕분에 저는 전 세계를 돌아다녀도 아무런 어려움을 느끼지 못합니다.  

비행기를 타는 것은 기차나 버스를 타는 것보다 편합니다. 버스를 타는 것은 트럭을 타는 것보다 편합니다. 트럭을 타는 것은 걷는 것보다 편합니다. 제가 어릴 때는 트럭이 지나가면 그 트럭의 짐칸에 올라타서 가보는 것이 소원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어떤 차를 타든 걷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합니다. 또 시골에 사는 사람들은 걷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무거운 짐을 지고 걷습니다. 그런데 아무 짐도 지지 않고 걷는 것이 뭐 그리 어렵겠습니까?  

사람들은 제가 비행기를 탈 때 직항이 아니라 여러 번을 갈아타서 힘들지 않느냐고 물어보는데, 전혀 힘들지 않습니다. 공항에 가보면 화장실이 아주 잘 되어있고, 에어컨과 히터도 나오고, 샤워도 할 수 있어요. 이렇게 시설이 다 갖춰져 있는데 공항에 머무르는 것이 뭐가 힘들겠습니까?  

제가 아무리 일을 많이 해도 시골에서 농사를 짓고 사는 사람들보다는 훨씬 수월한 편입니다. 노동자들이 일하는 것보다는 수월합니다. 넓게 보면 세계 인구의 절반 이상이 저보다 훨씬 더 어렵게 사는데 제가 하는 일이 뭐가 어렵겠습니까? 

부처님은 항상 남이 주는 음식을 얻어서 드셨는데, 저는 그보다도 잘 먹고 있습니다. 제가 어떤 옷을 입든 부처님이 주워 입으신 분소의보다는 좋은 옷을 입고 있습니다. 제가 이 강당에서 잔다고 하더라도 부처님이 주무신 나무 밑보다는 훨씬 낫습니다. 부처님보다는 훨씬 좋은 조건에 있는 제가 불평하며 살아서는 안 되지 않을까요? 

경전을 읽어 보면 부처님도 많은 비난을 받았습니다. 훌륭하신 부처님도 비난을 받았는데, 저 같은 부족한 인격을 가진 사람이 비난을 받는 것은 너무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특별한 수행을 해서 이런 삶을 사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농부가 농사짓듯이, 노동자가 매일 노동하듯이, 회사원들이 출근하듯이, 그냥 일상을 살아가고 있을 뿐입니다. 게다가 저는 자식도 없고, 부인도 없기 때문에 사회적 실천을 하기가 일반 사람들보다 훨씬 수월한 조건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특별한 수행을 해서 이렇게 사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일상을 놀이 삼아 살아가고 있을 뿐입니다.” 

이제부터는 청중석에서 자유롭게 질문을 받았습니다. 누구든지 손을 들고 스님에게 궁금한 점을 질문했습니다. 세 명이 손을 들고 스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첫 번째 질문자는 소외된 사람들의 외침과 그것을 비난하는 사람들에 대해 질문을 했습니다. 

소외된 사람들의 외침을 비난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봐야 할까요?  

“고통받고 소외된 공동체들이 자신들의 문제를 이야기하며 목소리를 낼 때, 예를 들어, 트랜스젠더 또는 억압받는 여성들이 목소리를 내면, 사람들은 종종 ‘관심을 끌려고 하는 거 아니냐?’, ‘기존 질서를 불편하게 만든다’ 하고 비난합니다. 이런 비난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요? 비난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이해하고 자비롭게 대화할 수 있을까요?” 

“그들이 그렇게 비난하면 ‘그렇습니다’ 하고 대답하면 됩니다. 기존 질서가 잘못되었다면 기존 질서를 개선해야 할 거 아니에요? 기존 질서를 개선하려면 기존 질서에 저항을 해야죠. 그게 왜 문제예요? 소수자가 소리를 질러야 사람들이 우리가 여기 있다는 것을 알아줄 것 아니에요? 그래서 자신들을 알아달라고 소리를 지르는 겁니다. 다리를 다쳤을 때 통증을 느끼잖아요. 통증을 느껴야 다리가 다쳤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서 치료를 할 수가 있습니다.

그들이 비난하면 ‘이 세상에 우리도 존재한다는 것을 알리고 싶다’, ‘우리는 잘못된 질서를 바꾸고 싶다’ 이렇게 얘기하면 되잖아요. 개를 한번 보십시오. 개들이 노는 모습을 보면, 털 색깔이 흰 것도 있고, 노란 것도 있고, 검은 것도 있습니다. 암캐도 있고, 수캐도 있습니다. 그런데 개들끼리 놀 때 털의 색깔이나 암수를 갖고 차별을 합니까? 그런데 왜 사람만 피부색과 성별을 가지고 차별을 합니까? 이것은 자연의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사람이 동물보다 나아야 할 것 아니에요? 차별하는 것은 동물도 하지 않는 행위입니다. 차별하는 것은 짐승 같은 행동이 아니고, 짐승보다 못한 행동인 것입니다. 그런 행동을 지적하는 것은 망설일 이유가 없습니다.” 

계속해서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마지막 질문자는 전쟁을 막고 평화를 지키는 일은 강대국의 권력자들이 좌우하는데, 풀뿌리 시민들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조언을 구했습니다. 

전쟁을 막고 평화를 지키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전 세계 수많은 풀뿌리 평화 활동가들이 열정적으로 노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평화와 전쟁은 주로 강대국의 권력자들에 의해 결정됩니다. 그렇다면 풀뿌리 NGO나 평화 활동가들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으며, 실제로 어떤 기여를 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단순히 목소리를 내는 것에 만족해야 할까요? 아니면 그 외에 무엇을 더 할 수 있을까요?” 

“평화 문제는 국가와 국가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문제이기 때문에 사실은 민간에서 어떤 역할을 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그래서 제가 평화재단을 설립하여 하고 있는 활동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째, 미국의 대통령실인 백악관을 방문하거나 미국 의회를 방문해서 한국 정부의 의견이 아닌 한국 국민들의 의견을 전달하는 것입니다. 또 한국 정부나 북한 정부에도 제안을 합니다. 민간의 신분으로 말하는 것이기 때문에 큰 효과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지난 2005년에 남한, 북한, 주변 4강이 6자회담을 할 때 제가 제안한 타협안으로 극적 타결을 이뤄내는 성과도 있었습니다. 

둘째, 대중이 많이 모이는 집회를 여는 것입니다. 2017년에 한반도에 전쟁의 위기가 고조됐을 때 만 오천 명이 광장에 모여서 전쟁 반대와 평화를 호소했습니다. 지난 6월 13일에는 만 명이 모여서 한반도의 평화를 호소했습니다. 이렇게 군중집회를 통해서 평화를 호소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셋째, 한국 정부의 주요 요인들을 찾아서 설득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이런 방법은 한국 안에서 일정한 정치적인 영향을 가져야 효과가 있으므로 다른 종교의 지도자들이나 사회지도층과 같이 행동을 합니다. 그러나 이런 활동의 효과가 매우 제한적이라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것밖에 할 수가 없다면 이것이라도 해야 합니다.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 

스님의 지혜로운 답변에 모두 큰 박수를 보냈습니다.  

공개 심포지엄을 마치고 참가자 전체가 기념사진을 촬영했습니다.  

스님은 참가자들과 작별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고탐 님과 하르샤 님은 내년 1월에 스님과 함께 인도 정치 지도자들과 미팅을 하고 싶다고 요청했습니다. 스님은 긍정적으로 검토해 보기로 하고 행사장을 나왔습니다.  

11시에 행사장을 출발하여 첸나이 공항으로 향했습니다. 차로 20분을 달려 공항에 도착한 후 수하물을 부치고 출국 수속을 했습니다.  

출국 수속을 마친 후 공항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오후 2시 50분에 인도 첸나이 공항을 출발했습니다. 사이클론으로 출발 시간이 많이 연기가 될까봐 걱정을 했는데 다행히 1시간만 연기되고 무사히 이륙했습니다.  


비행기는 2시간 40분을 이동하여 현지 시각으로 저녁 6시에 방글라데시 다카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입국 수속을 한 후 수하물을 찾고 공항을 나오니 UNHCR(유엔난민기구) 다카 사무소 유영훈 님과 UNHCR 한국 대표 김새려 님, 민간파트너십 팀장 유혜정 님이 반갑게 스님을 환영해 주었습니다.  

곧바로 식당으로 이동하여 UNHCR 직원들과 저녁 식사를 하며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난민 문제 해결을 위한 글로벌 협력, 한국 내 난민 정책 등 JTS와 UNHCR이 함께 협력할 수 있는 일들에 대해 많은 대화가 오갔습니다.  

UNHCR 직원들은 JTS가 알뜰하게 절약하면서 구호 사업을 하고 있는 것에 대해 높이 평가했습니다. 스님은 JTS의 지원 원칙에 대해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JTS가 구호 활동을 하는 원칙  

“JTS는 물건을 대량으로 구입할 때 시중 가격보다 훨씬 저렴하게 구입하기 위해 발품을 많이 팝니다. 지난번에 로힝야 난민캠프에 가스버너를 지원할 때도 1차로 10만 개를 지원할 때는 중국에서 공장을 찾아 시중 가격의 절반 이하로 구매하는 것을 교섭했고, 2차로 10만 개를 지원할 때는 방글라데시에서 생산된 것만 가능하다고 해서 다카 지역을 물색해서 저렴한 가격에 구입하는 것을 교섭했죠. 이번에 비누를 구입할 때도 좋은 제품을 저렴하게 구입하느라 JTS 대표 박지나 님이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다음 주에도 필리핀 민다나오에서 10개의 학교를 준공하는데, 현지에서 군청, 교육청, 주민들, JTS, 이렇게 4자가 MOU(업무협약)를 체결해서 학교를 지었습니다. 주민들은 노동력을 제공하고, 군청은 기술자를 제공하고, 교육청은 교사 파견과 학교 운영을 책임지고, JTS는 그에 필요한 모든 자재와 학용품을 지원합니다. 대략 돈을 얼마나 부담하느냐를 기준으로 비율을 계산하면 JTS와 현지 단체가 부담하는 비율이 70 대 30 정도 됩니다. 현지에서는 인건비가 워낙 낮은 편이니까요. 이렇게 반드시 현지 주민들이 참여하는 방식으로 사업을 진행하지 JTS가 일방적으로 지원하지는 않습니다.  

부탄에서도 마을 개발을 하고 있는데, 얼마 전에는 산속 수원지에서 마을까지 7km 거리를 식수 파이프로 연결하는 일을 했습니다. 노동력을 전부 주민들이 제공하겠다고 하면, 그 일에 필요한 재료는 JTS가 제공합니다. 그러려면 사전에 주민들과 미팅을 해서 이 방식에 동의하는지 의논을 해야 합니다. 미팅을 할 때 제가 주민들에게 물어봅니다.  

‘지금 당장 개선하고 싶으면 당신들이 공사를 해야 하고, 정부가 해주기를 바라면 5년이든 10년이든 기다리면 됩니다. 어떻게 할래요?’  

이렇게 물어보면 대부분 우리 동네의 일은 우리가 하겠다고 대답합니다. 물론 시리아에 지은 학교는 규모가 워낙 커서 주민들이 지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 경우는 현지 단체인 화이트헬멧이 중장비를 갖고 있다고 해서 무너진 건물을 철거하고, 새로 건축하는 일을 그들이 도맡아 주었습니다. 그래서 건축 경비를 많이 절약할 수 있었죠.” 

UNHCR 직원들은 스님이 하고 있는 지속 가능한 개발에 대해 높은 관심을 보였습니다. 스님은 JTS가 부탄에서 하고 있는 지속 가능한 개발의 방법, 지원 원칙, 평가 기준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주었습니다. 

로힝야 난민 문제는 우리 모두의 과제입니다 

이어서 미얀마 내전으로 인한 기근 문제, 로힝야 난민 문제를 해결할 방법, 로힝야 난민캠프 내에 어린이 교육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UNHCR 한국 대표님은 스님이 로힝야 난민 문제 해결을 위해 각국 정부와 민간 단체가 참여하는 글로벌 난민 포럼에 참여하여 중요한 메시지들을 이야기해 주면 좋겠다는 제안을 했습니다.  

“저희 UNHCR에서는 국가 및 여러 이해 관계자들이 난민에 대한 책임을 공유하기 위해 4년마다 한 번씩 글로벌 난민 포럼을 개최합니다. 법륜 스님이 이런 자리에서 목소리를 내어 주신다면, 로힝야 난민 문제 해결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스님은 로힝야 난민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지 이야기했습니다. 

“방글라데시 경제가 점점 성장하면, 이제 곧 노동력이 부족해질 시기가 올 겁니다. 그래서 로힝야 난민들이 부담만 되는 것이 아니라 노동력이라는 측면에서는 엄청난 자산이 될 수 있다고 설득해야 합니다. 저도 인도의 불가촉천민 마을에 학교를 지어서 30년째 아이들을 교육하고 있는데, 인도에서 가장 가난한 마을인 그 마을조차도 이제 출산율이 줄어들기 시작했어요. 벌써 초등학교 입학생 수가 줄어드는 국면으로 바뀌었습니다. 학교 교육을 받은 청년들이 많아지고 있는데, 그들은 아이들을 많이 낳지 않습니다. 그래서 학교를 더 지을 필요가 없어졌어요. 특히 방글라데시는 경제 성장률이 높은 편이어서 곧 노동력 부족 현상이 나타날 겁니다.”  

“스님 말씀이 맞습니다. 방글라데시 경제가 성장하게 되면 국민들이 난민들에 대해 갖는 반감이 줄어들 것입니다. 그러나 콕스바자르 지역에 살고 있는 주민들은 아직 많이 가난합니다. 그래서 로힝야 난민들에 대한 반감이 큰 편입니다.” 

“그래서 지금 제 생각은 인도 정부가 방글라데시에 경제적 지원을 좀 해주면서 방글라데시가 로힝야 난민들을 일부 수용하도록 설득해 보면 어떨까 합니다. 요즘 인도 경제가 많이 성장해서 부탄을 비롯하여 주변국에 대한 지원을 많이 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제가 생각하는 해결책은 누군가가 방글라데시 정부를 설득해서 로힝야 난민들에게 임시 거주권이라도 주어서 스스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해주는 겁니다. 방글라데시 정부가 자꾸 난민들을 부담으로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생각을 확 바꾸어서 아주 중요한 노동 자원이라고 바라보면 해결책이 나올 수가 있습니다. 그래야 로힝야 난민캠프에 사는 아이들에게도 기본적인 교육을 시킬 수가 있게 됩니다. 아이들이 노동 자원이 되도록 하려면 교육을 시켜야 하니까요. 지금처럼 난민캠프 안에 사람들을 계속 가두어 두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100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짐승처럼 울타리 안에 갇혀 산다는 것은 인류의 비극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가 가장 안타까운 것은 아이들이 아무런 교육을 받고 있지 못하다는 겁니다.” 

스님은 시리아 난민들의 문맹 퇴치 문제, 파키스탄 홍수 피해 지원 문제 등 다양한 문제들에 대해 JTS가 지원하고 있는 내용들을 소개하고 두루두루 의견을 나누었습니다. 대화를 마치며 UNHCR 한국 대표님은 스님이 한국 국민들의 난민에 대한 인식 개선에도 관심을 가져줄 것을 부탁했습니다.  

“그건 쉽지 않아요. 직접 보고 들은 경험이 있어야 하는데, 한국 국민들이 난민들을 직접 만날 수가 없잖아요.”  

“스님께서는 난민들을 만나고 경험하신 게 정말 많으시잖아요. 그래서 스님께서 한국 국민들에게 난민들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해주시면 좋겠어요. 그 파장이 나중에 큰 변화를 일으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대화를 나누다 보니 어느덧 두 시간이 금방 지나갔습니다. 밤 9시가 넘어서 대화를 마치고, 숙소로 이동했습니다.  

밤 11시에는 내일 로힝야 난민캠프 비누 전달식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에서 출발한 박지나 JTS 대표님과 사무국장이 숙소에 도착하여 서로 인사를 나눈 후 하루 일정을 마무리하였습니다.  

내일은 다카 공항을 출발하여 콕스바자르 공항에 도착한 후 로힝야 난민캠프로 이동하여 비누 636만 개 전달식을 할 예정입니다.  


2025 3월 정토불교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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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하이

저는 특별한 수행을 해서 이런 삶을 사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농부가 농사짓듯이, 노동자가 매일 노동하듯이, 회사원들이 출근하듯이, 그냥 일상을 살아가고 있을 뿐입니다. 게다가 저는 자식도 없고, 부인도 없기 때문에 사회적 실천을 하기가 일반 사람들보다 훨씬 수월한 조건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특별한 수행을 해서 이렇게 사는 것이 아닙니다. "

2025-01-07 20:56:19

김종근

감사합니다

2024-12-18 07:11:48

범해

참여불교에 대한 스님의 강연, 잘 들었습니다. 어느 종교나 본인의 행복과 타인들의 행복을 위하는 기본 교리는 있다고 하지만 현실적으로 많은 괴리가 있는건 사실이겠습니다. 불교. 참여불교, 감사합니다.

2024-12-06 11:4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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