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4.5.22 종교인 모임, 수행법회, 평화연구 세미나
“정신없이 허둥지둥 삽니다, 어떻게 중심을 잡아야 할까요?”

안녕하세요. 서울 정토회관의 아침이 밝았습니다.

스님은 새벽 기도와 명상을 마친 후 민족의 화해와 평화를 위한 종교인 모임을 하기 위해 아침 일찍 평화재단으로 향했습니다. 목사님, 신부님, 주교님, 교령님이 모두 도착하자 다 함께 식사하며 모임을 시작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회의실로 자리를 이동하여 본격적으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먼저 스님이 얼마 전 부탄을 답사하고 부탄 정부와 MOU를 체결하고 온 모습과 워싱턴 D.C.를 방문하여 미국 의회, 정부, 싱크탱크 관계자들을 만나고 온 모습을 영상으로 함께 보았습니다.

▲ 영상 보기

영상이 끝나자 종교인 분들은 큰 박수로 스님의 활동에 감사의 마음을 표했습니다. 그러자 스님이 웃으며 말했습니다.

“미국에 다닐 때마다 마음이 상쾌하지만은 않았습니다. 우리나라 문제는 우리나라 정부 관계자를 만나 해결할 수 있어야 하는데, 지금 우리나라 안에서 해결을 하지 못하고 남의 나라에 가서 요청하고 설득을 해야 하니까 썩 기분 좋은 일은 아니었습니다. 대신 제 직분이 스님이어서 장점도 있습니다. 정치인이나 공무원들은 문제의 본질을 직설적으로 이야기하기 어려운 점들이 있는데, 저는 그런 것에 크게 구애받지 않고 필요한 말을 할 수 있으니 그런 점은 좋았습니다.”

천도교 박남수 전 교령님은 스님의 공적을 정부가 좀 알았으면 하는 바람을 이야기했습니다.

“스님께서 발로 뛰며 미국 의회, 정부, 싱크탱크 관계자들을 만나고 설득하는 것은 대한민국의 발전에 여러모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인데, 이걸 대한민국 정부에서도 좀 알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스님이 대답했습니다.

“제가 하는 일을 대한민국 정부가 알아서 뭐 하겠어요. 더군다나 현재 대한민국 정부는 대북 정책을 바꿀 생각이 전혀 없어 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현 정부를 비판하지 않는 이유는, 설령 정부의 정책이 바뀐다고 해도 현재 남북한 문제 해결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북한 정부가 현재 남한과 소통할 수 있는 부서를 모두 없애버린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남한과는 대화를 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입니다.”

이어서 스님이 미국 의회, 정부, 싱크탱크 관계자들을 만나 무엇을 호소하고 설득했는지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북러 간의 군사협력이 강화되고, 북한의 대량살상무기가 급속도로 확산이 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미국 의회, 정부, 싱크탱크 관계자들에게 항상 이 부분에 대해 먼저 이야기를 하고, 이대로 내버려두는 것과 관여를 하는 것 중에서 어느 쪽이 미국의 국익에 더 유리한지 이야기했습니다. 저는 늘 ‘어느 쪽이 미국한테 더 유리한가?’ 하는 질문을 하면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확산을 중지시키는 방법

예를 들어 현재 북한이 핵을 5개 보유하고 있다고 합시다. 미국이 북한을 이대로 내버려두면 앞으로는 핵무기가 50개로 늘어날 수 있습니다. 반면 미국이 적극 관여하면 지금 가지고 있는 5개에서 더 이상 확산되는 것을 막을 수가 있습니다. 이미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그걸 없애는 것은 지금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그런데도 자꾸 미국은 북한이 가진 핵을 없애야 한다는 주장만 하고 있으니까 대화에 진전이 없는 겁니다. 불가능한 걸 가지고 계속 이야기할 게 아니라 이제는 5개냐 50개냐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그러니 현재 북한이 가지고 있는 핵무기는 우선 인정하는 바탕 위에 더 이상의 핵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핵 동결을 향한 대화가 진행되어야 합니다.

미국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핵 동결이 핵 보유를 인정하는 것으로 비춰질 가능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자칫 핵 동결을 주제로 대화를 하게 되면 당초 목표로 했던 핵 폐기를 포기하게 될까 봐 그게 두렵다는 거예요. 그런데 핵을 폐기하는 것은 이제 나중에나 할 수 있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우선 핵 동결이라도 해놓아야 합니다. 그런 후에 북한이 가지고 있는 핵이 너무 많다고 생각되면 경제적 지원이나 보상을 해주면서 점차 핵을 폐기해 나가는 쪽으로 문제를 풀어나가야 합니다. 핵 폐기를 고집하면서 계속 내버려두면 동결은커녕 북한의 핵무기는 계속 증가하게 될 겁니다.

한미일 군사협력은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확산에 대한 안보적 방어 수단은 되지만,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확산 자체를 막는 역할은 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대량살상무기 확산을 부추기고 있습니다. 한미일 군사협력은 북한이 가진 무기를 방어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핵무기의 확산을 멈추는 근본적인 문제 해결은 되지 못합니다. 그래서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확산을 중지시키고 위험을 낮추는 것입니다. 이것은 한미일 군사협력만으로는 안 되고, 빨리 북한의 상황에 개입을 해서 그 위험도를 낮춰야 합니다.

여기에는 세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첫째, 군사적 공격입니다. 그런데 미국이 북한을 군사적으로 공격하는 것은 한반도에 전쟁을 불러오기 때문에 현실성이 떨어집니다. 둘째, 북한을 봉쇄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미국이 지난 20년 동안 북한을 봉쇄해 왔는데 비핵화에 이렇다 할 효과가 나타나지 않고 있습니다. 셋째, 이제 남은 방법은 대화를 통한 관여밖에 없습니다.

대화를 하려면 북한도 관심을 가질만한 무언가를 제안해야 합니다. 북한에서 오랫동안 요구해 온 것이 미국의 북한에 대한 적대시 정책을 폐기해 달라는 것입니다. 즉, 북한을 하나의 나라로 인정해 달라는 것입니다. 북한과 미국의 관계를 정상화하자는 것입니다. 지금 미국이 할 수 있는 일은 북한이 원하는 관계 정상화 카드를 제안해서 핵 동결을 시키는 수밖에 없습니다. 과거에는 북미 관계 정상화가 핵 폐기와 맞바꾸는 카드로 제안이 되었지만 이제는 상황이 바뀌었습니다. 핵 폐기를 붙들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곧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확산을 방치하는 것밖에 되지 못합니다.

과거에는 협상을 마무리하는 출구 단계에서 북미 관계 정상화와 핵 폐기를 맞바꾸려 했지만, 이제는 상황이 바뀌었기 때문에 전략도 바뀌어야 합니다. 출구 단계로 생각하던 북미 관계 정상화를 협상의 입구로 가져와야 합니다. 핵 동결과 북미 관계 정상화로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것이 저의 제안입니다.

북미 관계 정상화를 하기 위해서 돈이 드는 것도 아닙니다. 원래 북미 관계 정상화는 1992년에 했어야 되는 일입니다. 당시 남북이 유엔에 동시 가입을 할 때 남한은 중국, 러시아와 관계 정상화를 했지만, 미국은 북한과의 관계 정상화를 해주지 않았습니다. 그때 안 한 걸 지금 하는 것이기 때문에 따지고 보면 북미 관계 정상화는 미국이 북한에게 주는 혜택이 아닙니다. 오히려 비정상적이었던 상황을 정상화시키는 것에 불과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작은 변화가 생기기 시작한 이유

이런 내용을 골자로 미국 의회, 정부, 싱크탱크 관계자들을 만나 수차례 대화를 했습니다. 8개월 전에도 미국을 방문하여 똑같은 이야기를 했지만, 그때와 지금을 비교하면 조금 변화가 있었습니다. 물론 미국의 대북 정책이 바뀐 건 하나도 없지만 사람들이 제 이야기에 경청하는 태도는 조금 달라지는 것 같아요. 지난번 방문 때는 이렇게 설득을 하면 반론이 있었습니다. 특히 핵 동결을 하자는 것이 곧 핵 보유를 인정하는 것 아니냐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번 방문 때는 특별한 반론이 없었고, 오히려 일부 동의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생겼습니다. 또, 지난번 방문 때보다 대화 상대로 나온 사람들의 직급이 높아진 것도 하나의 변화입니다. 지난번에는 담당자를 미팅에 보냈다면 이번에는 부서의 책임자가 나왔습니다. 북미 간에 대화가 진전되지 않으니까 관계자들도 지금까지 진행한 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인식을 하게 된 것 같아요.

미국 정부의 입장에 이렇게 작은 변화가 생기기 시작한 이유는 무엇보다 북한과 러시아 사이의 관계가 눈에 보이게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지난번 방문 때도 북한과 러시아의 군사 협력이 점점 강화되고 있고, 이것은 미국한테도 위협이 될 것이라고 이야기했었습니다. 하지만 그때는 북러 군사협력이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후 8개월 동안 제가 우려했던 것이 거의 다 현실이 되었기 때문에 설득력이 많이 생겼어요. 미국이 보기에도 북한이 갖는 위상이 예전과 많이 달라졌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번에 만난 사람 중에는 ‘미국이 핵 동결과 북미 관계 정상화 카드를 꺼낸다고 해서 북한이 대화에 응하겠느냐’ 하고 오히려 북한이 대화에 응할 것인지를 묻는 사람도 있을 정도였습니다.

그만큼 북한의 위상이 달라졌기 때문에 옛날에 생각하던 카드로는 더 이상 협상 타결이 안 됩니다. 북한은 안보를 지키기 위해서 핵을 가져야 되고, 국민을 먹여 살리기 위해 경제를 발전시켜야 합니다. 둘 다 포기할 수 없지만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아직 북한은 경제보다는 안보를 선택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이 핵은 절대로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길게 보면 경제도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러시아와 협력을 한다고 해도 그건 굶어 죽는 걸 면하는 정도이지 국민을 잘 먹여 살릴 수 있는 정도는 되지 못합니다. 결국 북한도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를 하지 않고는 경제 개발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북한에게 핵을 폐기하라고 요구할 게 아니라, 핵 동결과 관계 정상화를 먼저 하고 난 다음에 북한의 경제 발전을 논하면서 점진적인 비핵화를 설득하면 북한도 충분히 응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스님의 제안에 종교인 분들도 모두 공감을 표했습니다. 하지만 스님의 제안을 미국이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는 측면도 이야기했습니다.

“미국의 입장도 이해가 갑니다. 핵 동결은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해 주는 것처럼 비춰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 입장에서도 큰 산을 하나 넘어야 할 것 같네요. 벌써 남한과 일본에서는 핵 개발 주장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기에 덧붙여서 늘 추가로 제기되는 문제가 있습니다. 북한에게 핵 폐기가 아닌 핵 동결을 허용하면 한국과 일본에서도 핵을 개발하려고 하지 않겠느냐는 우려입니다. 그러나 북한의 핵 동결을 허용한다고 해도 한국과 일본이 핵 개발을 하려고 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이 제 생각이에요. 한국 국민에게 핵을 가지는 것이 좋으냐는 여론조사를 하면 대략 70퍼센트 정도가 그렇다고 답합니다. 그런데 경제 제재로 굶어 죽는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핵을 가질 의향이 있냐고 물어보면 그렇다고 답하는 사람이 10퍼센트도 안 됩니다. 북한은 굶어 죽으면서도 핵 개발을 하겠다고 하니까 여기까지 올 수 있었지만, 한국이나 일본 사람들에게 지금보다 훨씬 못 살면서도 핵을 갖겠냐고 하면 거의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 부분은 전혀 걱정을 안 해도 됩니다.”

스님의 미국 방문 소식을 충분히 공유한 후 다음은 종교인 모임이 지금 해야 할 일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우선 종교인 분들 모두가 가자 지구에서 행해지는 민간인 학살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명했습니다. 다음 달 모임에서는 이에 대해 종교인 모임에서 성명서라도 발표할 수 있게 준비해 보자고 뜻을 모았습니다.

두 시간 동안 대화를 나눈 후 스님은 6월 13일에 한반도 평화, 국민통합, 국가의 지속적 발전을 염원하는 만인대법회에 종교인 분들을 모두 초대했습니다.

“6월 13일에 꼭 시간을 내셔서 함께 마음을 모아 주세요.”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스님은 종교인 분들을 배웅한 후 수행법회 생방송을 하기 위해 정토회관으로 이동했습니다.

오전 10시부터는 정토회 회원들이 모두 화상회의 방에 입장한 가운데 수행법회 생방송을 시작했습니다. 대중이 삼배의 예로 법문을 청하자 스님이 인사말을 했습니다.

“지난주 수요일에는 부처님 오신 날을 맞이해서 많은 분들이 수고를 해주셨습니다. 초파일 맞이 연등 만들기와 연등 달기, 그리고 초파일 행사일에는 손님 접대와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진행하시느라 모두 수고 많으셨습니다.”

이어서 6.13만인대법회 준비에 온 힘을 기울여 줄 것을 당부한 후 즉문즉설 시간을 가졌습니다. 사전에 질문을 신청한 네 명이 스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중 한 명은 육아와 직장 일로 허둥지둥 정신없이 살고 있는데 어떻게 중심을 잡아야 할지 스님의 조언을 구했습니다.

정신없이 허둥지둥 삽니다, 어떻게 중심을 잡아야 할까요?

“저는 전법회원 신청자 교육을 받고 있습니다. 과제를 하던 중에 ‘남이 볼 때 바빠 보여도 정신없이 허둥대지 말고 내면에서는 중심을 잡고 살아야 한다’하는 내용에 의문이 생겼습니다. 저의 생활을 돌아보면 저는 자주 정신없이 허둥지둥 지내는 것 같습니다. 저는 대부분의 시간을 40개월 된 아이의 육아에 보내고 있고, 일주일 내내 외부 일정이 있어 잠이 부족한 경우가 많습니다. 가족들은 늘 피곤해하는 저를 보기 어려워합니다. 가족들의 원성이 클 때는 그 말이 듣기 싫다가도 한편으로는 내가 중심을 잡고 있는 것인지 의문도 듭니다. 내면의 중심을 잡는 것은 어떤 것인가요? 내면의 중심이 잡히면 어떤 조건에서도 편안하게 지낼 수 있나요?”

“사람은 누구나 다 외부 환경에 영향을 받는 존재입니다. 법당에 가서 절을 할 때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그냥 집에서 법당이라고 생각하고 절할 때의 마음과 실제로 법당에 가서 절할 때의 마음을 비교해 보면 후자가 자기도 모르게 마음이 더 경건해집니다. 경계에 구애받지 말고 한결같은 마음을 갖자는 것이 우리의 목표이지만 현실은 우리 모두가 환경의 영향을 받게 되는 존재라는 겁니다. 견물생심이라는 말도 있잖아요. 안 보이면 괜찮은데, 보이면 욕심을 내게 됩니다. 안 들리면 괜찮은데, 욕하는 소리가 들리면 화가 납니다. 냄새를 못 맡았으면 괜찮은데, 맡으면 먹고 싶습니다. 먹어보고 맛있으면 더 먹고 싶고, 피부에 부드러운 옷을 더 좋아하고, 좋은 기억을 하면 얼굴에 웃음기가 돌고, 나쁜 생각을 하면 얼굴이 경직됩니다. 이렇듯 우리는 외부 영향을 받습니다. 그래서 거짓말하는 사람과 같이 있으면 따라서 거짓말을 하게 되고, 욕하는 사람과 같이 있으면 욕을 배우게 되고, 불안한 사람과 같이 있으면 같이 불안해지게 됩니다. 이게 우리 존재라는 거예요. 그래서 아이들을 키울 때도 ‘아이들에게 불안한 환경을 만들지 마라’, ‘아이들에게 욕을 하지 마라’ 하고 얘기하는 거예요. 욕을 하게 되면 아이가 욕을 배우게 되고, 환경이 어수선하면 아이의 심리가 불안해지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산길이 있는데, 이 길로 쭉 가면 낭떠러지가 있습니다. 아이는 그것을 모릅니다. 그래서 계속 가다가 낭떠러지에서 떨어집니다. 이 길로 쭉 가면 낭떠러지로 떨어진다는 걸 알게 되면 방향을 바꾸게 됩니다. 모르면 독약이 든 음식을 먹고 죽게 되는데, 알면 아무리 모양이 좋고 냄새가 좋아도 안 먹을 수 있습니다. 그것처럼 내가 눈에 보이는 것에 너무 끌려다니고, 들리는 소리에 너무 끌려다니고, 냄새에 너무 끌려다니고, 맛에 너무 끌려다니고, 피부 감각에 너무 끌려다니고, 생각에 너무 끌려다닌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보는 것에 덜 끌려다니게 됩니다. 듣는 것에 덜 끌려다니게 됩니다.

외부 환경에 끌려다니며 사는 것은 노예의 삶과 같습니다. 외부 환경의 조정을 받고 사는 것과 다름없으니까요. 즉 누군가가 나를 조정할 수가 있게 됩니다. 그런데 내가 조정받는다는 걸 내가 알면 조정을 안 당할 수가 있습니다. 내가 정신이 없는 줄을 모르면 정신없이 살게 되는데 ‘어! 내가 요즘 여기저기 끌려다니면서 정신없이 사는구나!’ 하고 자각하게 되면 거기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됩니다. 내가 들떠서 산다는 것을 모를 때는 계속 들떠서 삽니다. 그런데 내가 들떠서 살고 있다는 것을 알면, 들떠서 살 수도 있고, 차분하게 살 수도 있습니다.

첫째, 자기 상태를 알아차려야 합니다. ‘들뜨지 말아야 한다’, ‘정신을 차려야 한다’ 이렇게 결심할 게 아니라 지금 정신이 없으면 정신이 없는 줄 알아차리는 겁니다. 들떠 있으면 들떠 있는 줄 알고, 화가 나 있으면 화가 나 있는 줄 알고, 이렇게 자기 상태를 먼저 알아차려야 해요. 둘째, 계속 그렇게 살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낭떠러지를 향해 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면, 계속 가서 떨어져 죽을 것인지, 멈출 것인지 내가 결정해야 합니다. 안 죽으려면 멈춰야 합니다.

들떠서 사는 게 좋으면 그렇게 살면 됩니다. 그런데 이렇게 사는 게 나한테도 안 좋고, 아이 키우는 엄마로서 아이에게도 나쁜 영향을 준다는 것을 알아차린다면 멈출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을 필요가 없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묻는 것은 그냥 지금처럼 살고 싶다는 얘기입니다. ‘내가 들뜨는데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는 질문은 그냥 계속 그대로 살고 싶다는 말입니다. 마음이 들뜨는 게 좋지 않다는 것을 안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어볼 것도 없어요. ‘내가 들뜨고 있구나!’ 하고 알아차리고 차분해져야지요. 내가 이대로 걸어가면 낭떠러지에서 떨어져 죽는다는 걸 안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렇게 물을 필요가 없습니다. 죽기 싫으면 멈추면 되고, 죽고 싶으면 가서 떨어져 죽으면 됩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렇게 묻는 것 자체가 내가 지금 어떤 상태에 있다는 걸 모른다는 의미입니다. 안다고 해도 피상적으로 알 뿐입니다. 독약이 묻어있는 걸 알면서 ‘이거 먹으면 안 돼요?’ 하고 묻는다면 바보 아닌가요? ‘어떻게 하면 안 먹을 수 있어요?’ 하고 묻는 것도 바보 같은 질문입니다. 그냥 안 먹으면 됩니다. 먹으면 죽는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면 아무도 그렇게 묻지 않습니다. 아는 즉시 먹지 않습니다. ‘좀 먹으면 안 될까요?’, ‘안 먹는 방법이 있어요?’ 이렇게 묻는 이유는 먹고 싶은 욕망이 너무 크기 때문입니다. ‘설마 먹어도 괜찮겠지!’ 하면서 독약이 들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겁니다.

질문자는 지금 들떠서 살고 있습니다. 이렇게 들떠서 불안하게 살면 아이한테도 나쁜 영향을 줍니다. 정신없이 허둥지둥 사는 것도 아이한테 나쁜 영향을 줍니다. 우선 엄마로서 아이한테 좋은 영향을 주지는 못하더라도 나쁜 영향을 주지는 말아야 합니다. 아이에게 좋게 대하지는 못해도 학대는 하지 말아야 합니다. 고함치고 때리는 것은 학대에 해당합니다. 좋은 일은 못 해도 되고 안 해도 됩니다. 그러나 나쁜 일은 멈춰야 합니다. 아이에게 나쁜 영향을 준다면 엄마는 멈춰야 합니다. ‘어떻게 멈춥니까?’ 이런 말은 그냥 나쁜 영향을 주겠다는 말입니다. 아니면 이렇게 하는 것이 아이에게 나쁜 영향을 준다는 걸 모른다는 뜻입니다. ‘내가 이렇게 한다고 조그마한 애가 뭘 알겠어?’ 이렇게 생각하는 겁니다. 아무리 스님 법문을 많이 들어도 자기가 하는 행동이 괜찮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 행동을 계속하게 되는 거예요.

나의 행동이 나쁜 영향을 준다면 그 행동을 멈춰야 합니다. 물잔이 뜨거우면 탁 놔야죠. ‘어떻게 놓습니까?’ 하는 말은 놓기 싫다는 뜻입니다. ‘앗, 뜨거워!’하는 순간 물잔을 그냥 놓게 됩니다. ‘거기에 독이 들었다’ 하면 그냥 딱 멈추면 됩니다. 음식의 양이 많든 적든, 고기인지 채소인지는 중요한 게 아닙니다. 두 번 고민할 필요가 없습니다. 악몽을 꾸다가 눈을 딱 떴다면 ‘꿈이네’ 하고 끝나야 합니다. ‘왜 이런 꿈을 꿨을까?’ 하고 있는 것은 아직 꿈속을 헤매고 있는 거예요. 꿈에서 깨어났으면 끝입니다. ‘어, 헛거네!’ 하고 끝내야 합니다.

허둥대고 사는 게 괜찮다면 계속 그렇게 살면 됩니다. 허둥대고 사는 건 나에게도 안 좋고 아이에게도 안 좋다면 허둥대고 살면 안 됩니다. 그럴 때 ‘어떻게 해요?’ 이런 질문은 의미가 없습니다. ‘어떻게 하면 독약 든 음식을 안 먹을 수 있습니까?’라는 질문과 같습니다. ‘어, 독이 들었다!’ 하고 멈추면 됩니다.

먼저 자기 점검을 해야 합니다. 이렇게 사는 게 좋으면 그냥 이대로 살면 됩니다. 결과가 안 좋을 것이라고 예상이 되면 멈춰야 합니다. 나도 모르게 행했다면, 후회도 하지 말고 다음에는 안 하면 됩니다. 모르고 했다면 어쩔 수 없습니다. 이미 해 버린 걸 어떡하겠어요? 다음에는 안 하면 됩니다. 그렇게 하다 보면 하는 횟수가 줄어들든지 멈추든지 길이 생깁니다. 중요한 것은 각오하고 결심하는 것이 아니라 내 상태를 정확하게 아는 것입니다. 내가 내 상태를 정확하게 아는 자각이 필요합니다. 자각이 되면 당연히 나한테 나쁜 행위를 하지 않게 됩니다. 나쁜 행동은 멈춰야 한다는 관점을 가지면 좋겠습니다.”

“잘 알았습니다. 감사합니다.”

한 시간 동안 즉문즉설을 한 후 11시가 넘어서 생방송을 마쳤습니다.

방송실을 나온 스님은 점심식사를 하고 다시 평화재단으로 이동했습니다.

오후 1시부터는 평화재단 연구 세미나에 참석했습니다. 이번 달 세미나 주제는 '22대 총선과 대한민국의 미래 정치'입니다.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국회의원님이 주제 발표를 해주었습니다.

“의회를 장악한 사람과 행정부를 장악한 사람이 서로 조금이라도 합의해서 1cm라도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상황이 아니라 ‘모 아니면 도’라는 식으로 전개되고 있는 것이 현재 한국 정치의 현실이라고 평가할 수밖에 없습니다. 태극기 부대, 개딸 등 사나워진 강성 지지층을 누구도 제어하지 못하고 오히려 악용하는 정치인들이 권력을 잡는 것이 또한 한국 정치의 지금 현실입니다. 다음 22대 국회는 현재의 구조를 변경시키거나 대타협을 이뤄내거나 둘 중 하나를 해내지 못하면 걷잡을 수 없는 국론 분열 상황으로 나아가게 될 것입니다.

구조의 변경이란 87년 헌법 체재를 변경하는 개헌을 말합니다. 분권형 대통령제까지는 못 가더라도 총리 추천 권한을 국회가 갖는 것까지만 이뤄져도 좋겠습니다. 그러려면 2년 뒤 지방 선거 때 국민투표를 시행해서 헌법 개정을 하고 그것을 물꼬로 권력 구조의 변화를 만들어 나가는 방법이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윤석열 대통령이 자신의 임기를 1년 단축하는 것에 대해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 제가 보기에도 그렇게 가기가 쉽지는 않아 보입니다. 결국 여당과 야당의 리더십이 개과천선을 해서 거국 내각을 구성해야 희망이 생긴다고 볼 수 있는데요.

이제 한 사람의 리더십으로 대한민국을 끌고 갈 수 있는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지금은 여야가 합의하고, 국민을 설득하고, 국회와 대화하는 노력을 끊임없이 해야 나라가 제대로 굴러갈 수가 있는 시대입니다. 지금 한국 정치는 사나워진 지지층을 설득할 수 있는 리더십을 갖고 있는가 생각해 보게 됩니다.”

이어서 박 의원님은 박정희, 조지 워싱턴, 만델라 등 어려운 환경 속에서 국민을 설득해 냈던 리더십에 대해 소개했습니다. 특히 한국 정치의 구조적인 문제, 강성 지지층의 영향력, 그리고 개헌의 필요성에 대해 강조했습니다. 무엇보다 정치적 타협과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의 중요성을 이야기했습니다.

다양한 의견을 교환하며 한국 정치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심도 있는 토론을 할 수 있었습니다. 세 시간 동안 토론을 한 후 스님이 마무리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스님은 정치인은 어떤 마음을 갖고 정쟁에 임해야 하는지 조언을 해주었습니다.

“어떤 정치인이 늘 하소연하는 이야기가 ‘칼싸움만 하기로 해놓고 총을 쏘아서 억울하다’ 하는 겁니다. 정치인은 그런 말을 해서는 안 돼요. 왜냐하면 정치의 속성이 그렇기 때문입니다. ‘상대방이 규칙을 안 지켰다’, ‘룰이 공정하지 못하다’,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이런 얘기는 사실 다 맞는 말이에요. 그러나 권력을 잡은 사람은 당원을 동원하는 것이 자신에게 유리하면 ‘당의 주인은 당원이다’ 하는 것을 내세워서 규칙을 합법화시키고, 대의원을 동원하는 것이 자신에게 유리하면 ‘민주주의는 대의정치다’ 하는 것을 내세워서 규칙을 합법화시킵니다. 이런 규칙들은 권력을 쟁취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에요. 나는 그렇게 하지 말아야 하지만, 그렇게 하는 상대에 대해서 분노하면 내가 스트레스를 받아서 정치를 오래 하지 못합니다.

정쟁에는 온갖 수단이 동원된다는 것을 고려하고 정치를 해야 합니다. 나도 그 모습을 따라가면 나도 속물이 되는 겁니다. 그런 정치는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나는 그렇게 하지 않을 테니까 너도 그렇게 하지 마라’ 이렇게 요구하는 것도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권력 투쟁이 이렇게 야비하구나’ 하고 깨닫는 것도 소중한 경험이에요. 내가 권력투쟁의 희생타가 된 것을 국민들이 알아주는 것도 결코 나쁜 게 아니에요. 실패가 곧 성공의 기회가 되기 때문입니다. 마음속에 상처를 갖고 있으면 나만 손해예요. 실패의 경험을 승화시켜서 권력투쟁의 속성을 정확하게 보는 눈을 가져야 합니다. 올바른 정치를 꾸준히 해나가려면 야비한 짓을 따라가서도 안 되지만, 그보다 더 야비한 짓도 감내할 수 있는 내면의 힘을 키워야 합니다.”

토론을 마치며 박용진 의원님도 감사의 마음을 표했습니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열어나가기 위해 위대한 국민들이 그 역량을 더욱 발휘할 수 있도록 저도 많이 연구하겠습니다. 좋은 말씀 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오후 4시부터는 평화재단 기획위원들과 회의를 이어 나갔습니다. 기획위원회 회의에서는 6.13만인대법회 준비 상황을 공유하고, 앞으로 국민대통합을 위해 평화재단이 어떤 역할을 해나가야 할지 논의했습니다. 회의를 마치고 나니 해가 저물었습니다.

저녁 7시 30분부터는 정토회관 방송실에서 저녁반 회원들을 위한 수행법회 생방송을 했습니다. 스님은 워싱턴 D.C.를 방문하고 온 소식을 공유하고 6.13만인대법회에 모두가 마음을 모아줄 것을 당부한 후 질문을 신청한 분들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세 명이 사전에 질문을 신청하고 스님과 대화를 나눈 후 즉석에서 두 명의 질문을 더 받았습니다. 그중 한 명은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을 학습한 인공지능을 개발해 보면 많은 사람들에게 유익할 것 같은데 스님의 생각은 어떠한지 질문을 했습니다.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을 학습한 인공지능(AI)을 개발해 보면 어떨까요?

“며칠 전에 남편이 이런 제안을 했습니다. 법륜 스님의 수많은 즉문즉설을 AI를 통해서 ChatGPT처럼 질문하고 답을 구하면 어떻겠냐는 말이었습니다. 내 상황에 맞는 즉문즉설 내용을 인터넷에서 찾아내기도 힘든데 인공지능이 딱 맞는 답을 알려주면 좋을 것 같습니다. 또 수익이 나면 구호 활동에 쓸 수도 있으니 좋은 아이디어 같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질문자가 인천 사는 사람인지 강릉 사는 사람인지 모르는데 부처님처럼 서울 가는 길을 정확히 알려줄 수가 있을까?’ 하는 염려가 되었습니다. 남편은 시스템적으로 정교한 보완을 하면 될 것이라고 하는데 스님의 생각은 어떠한지 궁금합니다.”

“질문자의 남편과 같은 생각으로 사업 제안을 해 온 사람들이 이미 많이 있었습니다. 공개된 즉문즉설과 비공개된 즉문즉설까지 합하면 그 수가 적어도 수만 개는 될 거예요. 수만 개의 즉문즉설을 기반으로 AI(인공지능) 법륜스님을 만들어 보자는 제안이었습니다. 앱을 다운받아서 고민이 생길 때마다 AI 법륜스님한테 물어보고 답을 구하는 서비스를 개발해 보자는 거죠. AI 법륜스님을 만들어서 보급하면 많은 사람들이 편리하게 자신의 고민을 해결할 수 있고, 무엇보다 요즘 사람들은 사생활 문제에 대해 공개적으로 말하는 것을 꺼리는데 그런 사람들이 정신적인 어려움을 해결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런데 인공지능이 수만 개의 즉문즉설을 학습한다고 해도 인간의 마음이 작용하는 경우의 수는 그 수를 훨씬 넘어섭니다. 인간과 원숭이가 큰 차이가 있어 보이지만 유전자 구조로 따지면 큰 차이가 없습니다. 1% 정도 다를 뿐인데 인간이 되거나 원숭이가 되는 것처럼 큰 차이가 생겨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인간의 제각각인 삶의 경우의 수가 정교하게 들어맞지 않을 때 AI 법륜스님은 두루뭉술한 답을 내놓을 수 있습니다. 인공지능 기술은 아직 이런 한계가 있다고 볼 수 있어요.

이런 한계 때문에 정답 찾기가 자꾸 나오게 될 겁니다. 그러나 인생에는 정답이 따로 없습니다. 수많은 경우의 수가 존재하는 불확정성으로 인해 인생에는 정답이라는 게 없습니다. 그래서 AI 법륜스님이 처음에는 도움이 되더라도 나중에는 부작용이 발생할 겁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정한 법이 있음이 없다는 것인데, 정한 법이 있는 게 되는 거예요. ‘이런 상황에서는 이렇게 한다’하는 정한 법이 생겨버리는 겁니다. 그래서 부처님 가르침에 안 맞는 일이 발생할 위험이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AI 법륜스님을 만들자는 제안에 대해 아직 수용을 못 하고 있습니다.

일부에서는 우리가 안 하더라도 이미 공개된 자료가 많아서 누군가 이 자료를 바탕으로 AI 법륜스님을 만들어 악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합니다. 아직 좀 부족하지만 정토회가 AI 법륜스님을 먼저 만들어야 오히려 부작용을 예방할 수 있다는 겁니다.

불교는 중도의 가르침입니다. 똑같은 상황에 처한 듯 해도 사실 시간과 공간의 찰나에 따라서 적정한 길이 조금씩 다 다릅니다. 인공지능이 아무리 많은 즉문즉설을 학습해도 비슷하게 흉내 낼 수 있을지는 몰라도 디테일 한 측면에서는 부족한 점이 있습니다. 그런 이유로 이 문제를 아직 고려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인공지능이 더 발달하면 누군가는 도용할 위험이 있으니 이에 대해 정토회가 미리 대비해야 한다고 보는 입장도 있습니다.

삶의 길에는 수많은 경우의 수가 있는데, AI(인공지능)가 이것을 몇 가지 경우의 수로 정해버릴 위험이 있습니다. 자칫 잘못하면 부처님 가르침을 정한 법이 있는 길로 오해할 소지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없는 것보다는 많은 사람에게 이익이 되는 장점이 크기 때문에 추후에 고려해 볼 여지가 있다는 정도로 이해하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잘 알았습니다.”

계속해서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대화를 마치고 나니 밤 9시가 넘었습니다. 오늘도 긴 하루였습니다.

내일은 오전에 북한 전문가들과 조찬 모임을 하고, 오후에는 충남대학교에서 ‘급변하는 안보 환경과 한반도 평화 2.0의 모색’이라는 주제로 전문가 포럼을 할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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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근

감사합니다

2024-06-04 06:09:46

일심행

부처님의 가르침은 정한 법이 있음이 없다는 것인데, 정한 법이 있는 게 되는 거예요. ‘이런 상황에서는 이렇게 한다’하는 정한 법이 생겨버려서 부처님 가르침에 안 맞는 일이 발생할 위험이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AI 법륜스님을 만들자는 제안에 대해 아직 수용을 못 함. 있음이 없다. 어려운 게 불법입니다. 어떤게 있음이 없음을 인지하는 삶을 사는 걸까요?

2024-06-02 12:19:01

오늘도행복

감사합니다.

2024-05-28 15:3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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