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4.4.27 부탄 3차 답사 6일째(파로 탁상 사원), 방콕 경유
“아이가 자퇴하고 검정고시를 치겠다고 해요, 어떡하죠?”

안녕하세요. 오늘은 한국에서 온 전문가들과 4박 5일 동안의 부탄 3차 답사 일정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입니다.

스님은 새벽 기도와 명상을 마친 후 새벽 3시 30분에 파로(Paro)로 향했습니다.

부탄 비구니 재단(BNF)을 출발하여 산길을 내려오자 타시 장모 박사님이 마중을 나와 스님에게 인사를 했습니다.

“스님, 조금이라도 주무셨습니까?”

“네, 잘 잤습니다.”

캄캄한 새벽에 출발하는 스님 일행을 위해 BNF 사무총장 타시 장모 박사님도 동행했습니다.

오늘은 부탄을 떠나기 전에 부탄의 가장 대표적인 사원이자 히말라야 불교 성지 중에 가장 유명한 곳 중에 하나인 파로 탁상 사원을 한국에서 온 전문가들에게 안내해 주기로 했습니다. 지난주에 답사해 본 결과 조금 더 넉넉한 시간이 필요해서 등산하고 하산하는 시간을 각각 30분 씩 늘렸습니다. 그래서 지난주 보다 30분 일찍 출발했습니다.

부탄의 국제공항이 위치한 파로 시내에서 10km 북쪽으로 올라가자 호랑이가 나올 법한 웅장한 계곡이 나타났습니다. 차에서 내리자 파로의 주지사님이 스님과 동행하기 위해 마중을 나왔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이곳 파로 지역을 책임지고 있는 주지사입니다.”

“이 새벽에 어떻게 나오셨어요?”

“스님께 배우고 싶어서 나왔습니다.”

파로 주지사님과 함께 깜깜한 새벽 4시 30분부터 산을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산을 오르며 스님은 파로 주지사 님에게 탁상 사원을 어떻게 친환경적으로 개발하면 좋을지 가는 곳마다 아이디어를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먼저 등산을 시작하는 입구에서 이곳을 어떻게 개발하면 좋겠는지 이야기했습니다.

“여기 산 입구에는 공원을 만드는 게 필요해요. 첫째, 말이 다니는 길과 사람이 다니는 길을 분리해야 합니다. 등산로에 사람들이 많으니까 말이 놀라는 모습을 봤습니다. 그리고 말이 길에 똥을 많이 누어 놓았어요.

둘째, 같이 온 관광객 중에 등산을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입구에 공원을 만들어서 등산을 못하는 사람들도 충분히 아름다운 풍광을 볼 수 있게 하면 좋겠어요. 저 멀리 보이는 탁상 사원을 향해 참배를 할 수 있는 공간도 마련하면 좋겠고요. 주차장도 더 넓혀야 합니다.”

“네, 그렇게 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30분 정도 산을 오르고 나니 점점 어둠이 가시고 날이 밝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스님과 일행은 저 멀리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탁상 사원을 향해 가볍게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고도가 해발 3000미터 가까이 되기 때문에 조금만 걸어도 숨이 찼습니다. 휴식 공간이 나올 때마다 스님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휴식을 했습니다. 쉴 때마다 파로 주지사님과 계속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파로 공항 근교에 들판이 많은데 겨울에 보리나 밀을 심나요? 그냥 비워 놓나요?”

“겨울에도 농작물을 심으면 좋겠다고 독려는 하지만, 주민들이 기존의 습관을 바꾸는 게 쉽지는 않습니다.”

“겨울에 농작물을 심지 않는다면, 논에 비료가 부족하기 때문에 질소를 공급해 주는 녹비 작물을 심으면 좋겠어요. 어떤 녹비 작물은 꽃이 많이 핍니다. 그러면 관광객이 파로 공항에 내릴 때 꽃밭에 내리는 것 같은 기분을 느낄 수가 있을 겁니다.

파로 공항 주변을 꽃밭으로 만들면 어떨까요?

부탄은 자연의 보존 상태가 굉장히 좋기 때문에 자연을 잘 살리면서 개발을 해야 됩니다. 전문가들이 전체적인 설계를 먼저 한 다음에 조금씩 개발을 해야 해요. 자연은 한 번 파괴하면 되돌리기가 어렵기 때문에 난개발을 하면 안 됩니다. 만약 부탄에 전문가들이 없다면 제가 한국에서 전문가들을 모셔와서 도움을 드리겠습니다.”

“네, 맞습니다. 자연 보존과 개발이 둘 다 필요하기는 한데 그동안 부탄은 자연 보존만 강조해 왔습니다. 자연을 아름답게 가꾼다는 개념은 부탄에서 새로운 콘셉트이고, 그동안 자연 그대로 보존해야 한다는 생각만 가졌습니다. 현재는 상인들이 가게를 여는 것도 못하게 하고 있습니다. 스님 말씀대로 센터를 만들어서 연구를 해보려고 방향을 잡고 있습니다. 스님 말씀처럼 설계가 먼저이고 그다음에 실행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오르막길이 계속 이어졌습니다. 스님은 천천히, 그러나 꾸준히 계속 올랐습니다.

“등산로에는 쉴 수 있는 의자를 500미터 간격으로 두어서 급하게 산을 오르고 내리게 하지 말고, 천천히 오르면서 여유를 즐길 수 있게 하면 좋겠어요.”

스님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계속해서 파로 주지사 님에게 아이디어를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앞으로 5년 후가 염려됩니다. 지금 인도 경제가 빠른 속도로 좋아지기 때문에 관광객의 90퍼센트가 인도 사람들이 될 겁니다. 등산로마다 사람들이 꽉 차서 여기를 방문하는 사람들마다 복잡함에 질려서 부탄의 매력이 떨어질 것입니다. 탁상 사원 밑으로 내려가는 계단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려야 합니다. 매우 시끄럽고, 쓰레기도 아무 곳에나 버릴 거예요. 수용할 수 있는 인원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미리 대책을 세워야 합니다.”

이번에는 바위에 앉아 잠시 쉬었습니다. 곳곳에 꽃이 활짝 피어 있었습니다.

“지금 해발 몇 미터예요?”

“2970미터입니다.”

“3100미터까지 올라가야 해요. 부지런히 갑시다.”

저 멀리 탁상 사원이 보이는 곳에서 다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탁상 템플!”

손톱만 하던 탁상 사원이 점점 가까워졌습니다.

이제 마지막 고비가 남았습니다. 건너편 절벽에 위치한 탁상사원을 가기 위해서 절벽 아래로 내려갔다가 다시 오르막길을 올라야 했습니다.

“지난번에 답사를 왔을 때는 오르막길은 여기가 끝인 줄 알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는데, 여기에서부터 다시 내리막길이 시작되었습니다. 가는 건 문제가 아닌데 다시 돌아올 걸 생각하니 눈앞이 깜깜해지더라고요.” (웃음)

아래로 내려가자 절벽 아래로 폭포가 떨어지는 모습이 장관이었습니다. 자연의 웅장함 앞에서 인간은 자연의 일부에 불과하다는 느낌이 절로 들었습니다.

하지만 스님은 매우 힘들어 보였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한 걸음씩 다시 계단을 올랐습니다. 오르기도 힘든 길에 이렇게 사원을 지어놓은 사람의 힘에 놀라며 한 걸음 한 걸음 올랐습니다.

2시간 30분 동안 산을 오른 끝에 탁상 사원에 도착했습니다. 주지 스님은 연락을 받고 기다리고 있다가 스님을 환영해 주었습니다.

“탁상 사원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탁상 사원 내부는 촬영이 금지되어 있었습니다. 주지 스님의 안내를 받아 조용히 사원을 둘러보았습니다. 부탄 국왕의 어머님이 스님이 사원을 방문한다는 소식을 듣고 사원의 주지 스님에게 차를 준비해 달라고 부탁해 놓았습니다. 차를 마시며 주지 스님과 잠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제가 오늘 탁상 사원에 처음 방문한 겁니다.”

“지난주에도 한 번 오셨잖아요.”

“그때는 비행기 시간 때문에 부처님을 참배하지 못하고 갔어요. 뛰어갔다 오느라 몸도 아팠어요. 그래서 무효입니다. 오늘이 탁상 사원을 처음 방문한 거예요.” (웃음)

“스님께서 부탄 국민들을 위해서 많은 일을 하려고 하신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부탄 국민들을 대신해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주지 스님과 대화를 나눈 후 다시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절벽 아래로 내려갔다가 다시 절벽 위로 올라갔다가 산을 내려가야 합니다.

스님은 폭포에 손을 담그고 세수를 한 후 땀을 식혔습니다. 물이 매우 차가웠습니다.


다시 절벽을 따라 계단을 오르려니 숨을 내쉬기가 힘들었습니다. 결국 JTS 활동가가 뒤에서 스님의 등을 밀어가며 겨우 계단을 올랐습니다.

이제 내리막길만 남았습니다. 지난 방문 때는 2시간에 가야 하는 거리를 1시간 만에 가느라 무척 힘이 들었는데, 오늘은 천천히 여유 있게 산을 내려왔습니다.

내려가는 길에 이제 막 산을 오르는 참배객들을 계속 만났습니다.

“꾸주장포 라”

“굿모닝!”

서로 인사를 나누며 여유 있게 산 입구까지 내려왔습니다. 내려가는 데에는 1시간 30분이 걸렸습니다.

산 입구에 도착해서 스님이 다시 한번 이곳에 어떻게 공원을 조성하면 좋을지 이야기했습니다.

“여기에서는 산에 못 올라가는 사람들을 위해 공원을 만들어야 해요. 건물을 짓더라도 앞을 유리로 만들어서 탁상 사원을 향해 절을 할 수 있게 하는 게 필요합니다. 등산을 못 하더라도 여기서 참배를 하고 갈 수 있게 해줘야 해요.”

파로 주지사님이 대답했습니다.

“네, 그러면 정말 좋을 것 같습니다.”

산 입구 접견실에 차가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차를 마시며 파로 주지사님은 이곳을 아름답게 보존하기 위해 많은 조언을 해달라고 스님에게 부탁했습니다.

“부탄 국왕의 어머니가 이 지역을 무척 사랑하십니다. 특히 자연 보존에 관심이 많으시고, 스님의 생각에 대해서도 이미 몇 차례의 만남을 통해 잘 아시기 때문에 스님께서 많은 조언을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만약 전문가들의 조언이 필요하다면 제가 한국에서 전문가들을 데려와 전체적인 설계를 할 수 있게 도와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오전 10시에 파로 공항을 향해 출발했습니다. 공항으로 가는 길에 이번 답사를 함께 한 전문가들이 가볍게 소감을 이야기했습니다.

"한국에 저희 농장이 야산에 있어서 불평을 많이 했는데, 부탄에 와서 보니까 저희 농장은 평지에 있는 것이었다는 사실을 크게 느꼈습니다. 좋은 경험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웃음)

공항에서 파로 주지사님에게 스님의 영어 번역 책을 선물한 후 작별 인사를 나누고 다음 만남을 기약했습니다.

JTS 활동가들은 지난 한 달 동안 세 차례의 답사를 진행하고, 샘플 하우스를 만드는 등 업무협약(MOU)을 체결하기까지 고생이 많았습니다. 스님은 JTS 활동가들을 격려한 후 타시 박사님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공항으로 들어왔습니다.

“수고 많았어요. 젬강으로 돌아가면 좀 쉬세요.”

출국 수속을 마친 후 11시 50분에 비행기에 탑승했습니다. 20분 연기가 되어 12시 10분에 파로 공항을 출발했습니다.

3시간을 비행한 후 현지 시간으로 오후 4시에 방콕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정토회 회원인 황소연 님이 반갑게 스님 일행을 맞이해 주었습니다.


“다들 무사히 살아서 돌아와 반갑습니다.”

방콕은 기온이 38도였습니다. 공항을 나오자 후끈한 열기가 느껴졌습니다. 산 뿐이었던 부탄과 다르게 방콕에는 평지가 넓게 펼쳐져 있었습니다.

차를 타고 공항 근처에 있는 식당으로 이동하여 저녁 식사를 함께 했습니다. 농업, 임업, 상하수도 등 각 분야의 전문가들 모두 지난 4박 5일 동안 답사를 하느라 고생이 많았습니다. 스님은 식사를 하며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다들 한국에서는 지위가 있는 분들인데, 제가 고생을 많이 시켜서 죄송합니다.”

부탄의 국민총행복지수(GNH) 개념에 대해 많은 연구를 해오신 박진도 교수님이 대답했습니다.

“아닙니다. 저희들이 배우는 게 더 많았습니다. 스님은 답사도 정말 잘하시네요. 답사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번에 제대로 배우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스님은 전문가 분들에게 다시 한번 감사의 마음을 전한 후 다시 방콕 공항으로 향했습니다.

“지속가능한 개발 프로젝트가 이제 시작이 되었으니 여러분께서 앞으로 많은 조언을 해주세요.”

방콕 공항에 도착하여 출국 수속을 한 후 탑승구 앞에서 스님은 휴식을 했습니다. 일주일 동안 답사를 다니며 쉴 틈이 없었는데 드디어 쉴 수 있는 시간이 생겼습니다.

한 시간 정도 눈을 붙인 후 다시 일어나 원고 교정과 업무들을 본 후 비행기에 탑승했습니다. 밤 10시 20분에 방콕 공항을 출발하여 인천 공항으로 향했습니다.

오늘은 법문이 없었기 때문에 지난달 21일 인천시에서 열린 행복한 대화 즉문즉설 강연에서 스님과 질문자가 나눈 대화 내용을 소개하며 글을 마칩니다.

아이가 자퇴하고 검정고시를 치겠다고 해요, 어떡하죠?

“아이가 고2 여름방학을 시작할 무렵에 진지하게 상의할 게 있다고 하더니 자퇴를 시켜달라고 했습니다. 1년에 두 번 있는 검정고시를 거쳐 정시로 대학을 가겠다며 야무지게 계획을 짜서 논리적으로 들이밀더라고요. 아이 말을 들어보니, 아이는 기숙사라는 감옥에 갇혀서 수없이 주어지는 수행평가, 원서들을 감당하려고 주말도 없이 쪽잠을 자며 최선을 다해도 원하는 성적이 나오지 않아 번 아웃이 온 상태였습니다. 아이가 죽을 것 같다는 말을 듣고 일반고로 전학을 시켰어요. 그런데 일반고에서 3주 정도는 잘 다니는 것 같더니 어차피 정시로 대학을 갈 것이고, 수업 시간 중에 다른 공부를 할 수도 없는데, 학교를 다니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며 또다시 자퇴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아이는 지금 고3이고 수능까지 8개월이 남은 상황입니다. 아이의 행복을 위해 아이의 속도에 맞춰가는 게 맞는 걸까요?”

질문자는 눈물을 글썽이며 어려움을 호소했습니다.

“아이가 죽은 것도 아닌데 왜 눈물을 글썽거리고 그래요. 우선 아이를 병원에 데리고 가서 정신과 검진을 먼저 받아보세요.”

“정신과 상담은 이미 하고 있습니다.”

“의사는 아이에게 정신적인 질환이 있다고 합니까?”

“우울증이 조금 심하다고 들었어요.”

“그러면 질문자는 아이의 건강이 더 중요해요, 공부가 더 중요해요?”

“요즘 들어 아이의 건강과 행복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질문자의 말은 아이의 건강도 중요하지만 공부가 더 중요하다는 것같이 들리는데요. 그래서 만약에 아이가 옥상에서 몸을 던지거나, 수면제를 먹고 죽어버리거나 한다면, 질문자는 엄청난 후회를 하게 될 거예요. 지금은 아이가 환자이기 때문에 일단 요양이 필요하다는 관점을 가져야 합니다. 아이가 원한다고 아이의 말을 다 들어줄 수는 없잖아요. 질문자처럼 ‘아이가 원하는데 그것을 들어줘야 하느냐, 안 들어줘야 하느냐’ 하는 관점으로 생각할 일이 아닙니다. 아이가 원하는 일이 정상적인 정신 상태에서 원하는 것인지, 아니면 심리적인 불안 상태에서 비롯된 문제인지, 이것이 먼저 점검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병원에서 검진 결과 아이가 심리 불안이나 우울증이라고 하면 먼저 치료를 받게 해야 합니다. 아이는 환자니까요. 다리가 부러진 아이에게 ‘정신 차리고 학교 가라’고 하면 안 되잖아요. 깁스를 하고 치료를 받게 해야지요.

그런데 아이가 정신적으로 아무 이상이 없는데 자기 나름의 생각을 가지고 ‘학교생활이 싫다’, ‘자유롭게 공부하고 싶다’고 한다면 저는 수용을 해야 한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지금은 근대적인 학교 교육의 말기에 속하기 때문이에요. 마치 조선시대 말엽에 서당이 폐지되던 것과 비슷하지요. 한 시대가 바뀌어 가고 있습니다. 지금의 시대 변화를 보면 마치 우리나라의 19세기 중엽과 같아 보입니다. 1800년대 중반을 돌아보면, 그로부터 20~30년이 지나면 과거가 폐지되고 서당이 거의 다 없어지는 일이 생겼습니다. 이제까지 학교 교육은 산업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인력, 노동력을 양성하는 시스템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후기 산업 사회, 즉 정보화 사회로 빠르게 전환해가고 있습니다. 인공지능의 발달로 20년 내지 30년이 지나지 않아 대부분의 전문직들이 로봇으로 대체될 가능성이 있어요. 변호사나 의사들도 인공지능으로 대체될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입니다. 지금 시점에서 의사나 변호사는 수입이 높고 사회적 지위가 보장된 직업입니다. 부모 세대는 자신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자녀에게 그런 직업을 갖기를 요구합니다. 선생님도, 교육 공무원들의 경험도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 아이들이 주인공으로 살아갈 세상은 지금의 세상이 아니라 적어도 20년 후의 세상입니다. 조선 말기에도 일찍 머리가 트인 사람은 선교사들이 세운 학교에 갔습니다. 만약 양반 자제가 그런 학교에 간다고 하면 집에서는 난리가 났어요. ‘언문을 배워 어디에 쓰겠느냐’, ‘상놈들이나 하는 기술을 배워서 뭐 하느냐’ 하며 반대했습니다. 지금 상황도 그와 유사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저는 만약 아이가 정상적인 상태에서 남들과 다른 길을 선택한다면 아이의 이야기를 귀담아듣고 한 번 해보게 놔두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학교를 그만두고 어디에 가서 취업을 한다든지, 다시 학교를 가겠다든지, 자기 필요에 의해서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라면 괜찮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학년이 다르거나 나이 차이가 발생하는 데에 너무 구애를 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처럼 검진을 받아보니 아이가 육체적 질환이나 정신적 질환이 있다면 치료하는데 초점을 둬야 합니다. 검정고시를 준비한다든지, 외국어고를 보낸다든지, 이런 걸 엄마가 결정해선 안 됩니다. 의사 선생님과 의논을 해서 약간 쉬는 게 좋을지, 약을 복용하면서 학교에 다닐 수가 있는지 확인을 해보고 결정해야 합니다. 의사 소견으로 지금 우울증이 많이 심한 상태라고 하니까 지금은 아이가 학습에 대한 부담을 갖지 않는 게 좋습니다. 이런 상태라면 1년간 휴학을 시킨다고 마음을 먹고 아이가 원하는 것을 지원해 주어야 합니다. 아이가 검정고시를 준비한다고 했는데 공부 안 하고 놀고 있어도 그 모습을 보고 ‘너 검정고시 열심히 공부하기로 해놓고 왜 약속을 안 지키니’ 이렇게 얘기하면 안 됩니다. 반대로 의사가 학업을 잠시 쉬는 게 좋다고 해서 아이에게 ‘너 몸 아프니까 학업은 잠시 내려놓아라’ 이렇게 극단적으로 말해도 아이가 낙담하게 됩니다.

항상 객관적으로 아이의 상태를 확인해서 아이의 건강이 허용되는 범위 안에서 아이가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도록 지원해 주는 게 좋습니다. 일반고를 가겠다고 하면 한번 다녀보라고 하고, 한 달 지나서 검정고시를 치겠다고 하면 그때도 해보라고 말하고, 다시 한 달 있다가 다시 학교를 다닌다고 해도 그렇게 해보라고 얘기하면 됩니다. 행동이 계속 바뀐다고 해서 ‘너 한 달 전에는 학교 다닌다고 하지 않았냐’ 이렇게 말하는 것은 정상적인 아이를 상대로 할 때 하는 얘기이지 환자에게 그렇게 요구하거나 말하면 안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의 현재 상태가 어떤지 계속 확인해야 합니다. 이 상태로 학업을 계속할 수 있는지, 학업이 아이에게 압박감을 줘서 질병을 더 악화시킬지, 진단을 받아 건강상태를 먼저 검토해 봐야 해요. 아이의 치료를 우선으로 한 다음, 의사가 허용해 주는 범위 안에서 검정고시를 준비하든지, 학원을 다니든지, 아이와 대화해 보면 됩니다. 엄마는 아이가 원하는 대로 다 해주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자신의 욕심으로 접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객관적으로 아이의 상태를 파악해서 아이의 상태에 따라 의논해서 진로를 결정해야 합니다.

선생님이나 사회인이라면 사회적 역할을 더 중요하게 여기지만, 엄마라면 아이의 사회적 역할보다 건강을 가장 중요시해야 합니다. ‘몇 개월만 더 공부하면 대학에 가는데 그때까지만 참고 공부하면 안 될까?’ 이렇게 아이에게 말하는 것은 올바른 부모의 관점이 아닙니다.”

"지금 고3 학생들에게 격려의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그런 말은 없습니다. 수험생들에게 격려의 말을 해달라고 부탁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 말은 결국 부모님과 선생님의 말을 잘 듣도록 스님이 얘기해 달라는 뜻이잖아요.”

"그러면 아이에게 힘이 되어 주거나 격려가 될 수 있는 대화법이 있을까요?"

"그런 것도 없어요. 목표가 잘못됐습니다. 공부를 잘하도록, 힘이 되도록, 건강하도록 끊임없이 부모는 자신이 원하는 성공을 아이에게 반영시킵니다. 이건 잘못된 관점입니다. 아이의 현재 상태가 어떤가를 가장 먼저 점검하고, 아이의 상태에 맞게끔 한발 두발 차근차근 나아가도록 해야 합니다. 계단을 오르지 않고 바로 높은 위치에 갈 수 있도록 아이를 격려하려는 것은 잘못된 관점입니다.

지금 질문자가 갖고 있는 관점을 봤을 때 아이의 병을 고치기가 어렵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자기 생각을 내려놓고 아이의 건강에 맞춰서 도움을 줘야 되는데 질문자가 목표로 하고 있는 것을 갖고 얘기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질문자부터 자기 생각과 목표를 버려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이는 늘 '엄마는 자기 마음대로 하는 사람이다' 이렇게 생각하기가 쉽습니다. 그러면 결국 엄마와는 대화가 안 된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내일은 새벽 6시에 인천 공항에 도착하여 오전에는 정토사회문화회관에서 부처님 오신 날 맞이 불심도문 큰스님 초청법회를 하고, 점심에는 큰스님의 90세 생신 행사를 하고, 오후에는 평화재단을 찾아온 손님들과 미팅을 연달아하고, 저녁에는 6.13만인대법회를 준비하는 모둠장 간담회에 온라인으로 참석할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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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주

스님 말씀 감사합니다.
고2 중3 두아이를 키우고 있습니다.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부지런히 공부하며 수행 정진하고,
아이들을 잘 보필하며 서로 성장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2024-05-04 10:03:27

지혜승

고맙습니다. :)

2024-05-02 16:54:07

김종근

감사합니다

2024-05-02 14:3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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