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4.3.27 부탄 답사 3일째 (납지, 님숑)
“5년째 은둔하고 있는 아들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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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부탄 답사 3일째 날입니다. 납지 치옥의 수원지와 농수로를 답사하고, 님숑 치옥의 가난한 집들을 방문하여 현황 조사를 하였습니다.

스님은 새벽 기도와 명상을 마친 후 아침 6시에 숙소에서 JTS 답사단과 함께 아침 식사를 하며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가져온 밥솥으로 직접 밥을 해서 아침을 먹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한국에 있는 정토회 회원들을 위해 수행법회 생방송을 하기 위해 콜푸 게옥 사무소로 향했습니다. 우리나라의 면사무소에 해당하는 곳입니다.

아침 6시 10분에 법회 장소를 세팅하고 7시에 생방송을 시작했습니다. 한국 시간으로는 오전 10시에 정토회 회원들이 모두 화상회의 방에 입장하자 스님이 인사말을 했습니다.

“저는 지금 부탄의 아주 깊은 산속 시골 마을에 와있습니다. 부탄 파로 공항에서 여기까지 차로 10시간 이상 걸려 도착했습니다. 부탄의 중부 지역에 있는 트롱사 주의 콜푸 게옥에 위치한 납지 마을이라는 곳인데, 깊은 시골이라 오늘 방송을 하지 못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마침 면사무소에 인터넷이 가능하다고 해서 지금 면사무소에 와서 여러분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과학기술 문명이 발달한 것이 이렇게 유용할 때가 있네요. 무엇보다 부탄이라는 가난한 나라가 시골까지 이런 설비를 갖췄다는 것 또한 놀랍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부탄에 온 이유는 이곳 주민들의 열악한 삶을 개선하는 것이 첫 번째 목표입니다. 두 번째 목표는 가난한 사람을 돕되 계속 도와야 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립해서 살아갈 수 있도록 지속 가능한 개발을 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 목표는 지구환경을 파괴하는 소비적인 삶의 방식이 아니고 최소한의 소비로도 만족할 수 있는 삶의 방식을 한 지역에 구현해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먼 곳까지 와있습니다.

이곳에 오는 과정이 좀 어렵습니다. 비행깃값을 절약하고자 JTS 실무자들은 상해를 거쳐서 방콕을 경유하여 오느라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저도 방콕을 경유하여 방글라데시 다카를 거쳐서 부탄에 도착했습니다. 공항에서 차를 대절하여 오다가 중간에 하룻밤을 자고 다시 출발하여 이곳에 도착했습니다. 여기까지 오는 과정을 영상으로 함께 보고 여러분들의 얘기를 듣겠습니다.”

이어서 한국을 출발하여 부탄의 중부지역 트롱사 종각까지 이동하는 과정을 영상으로 함께 보았습니다. 산을 넘고 강을 건너 정말 먼 길을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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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이 끝나고 어제까지 답사한 결과를 스님이 간단하게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어제부터 본격적으로 답사를 시작했습니다. 산사태로 인해 농수로가 무너져서 올해 농사를 짓기 어려운 지역을 방문하여 현장 상황을 점검했습니다. 그래서 농사가 시작되는 5월 전에 수리를 해주기로 했고요. 그리고 마을을 방문하여 주민들이 어떻게 사는지 세세하게 살펴보았습니다. 모든 주민들이 못 사는 것은 아니었어요. 잘 사는 집은 세탁기도 있고, 냉장고도 있어서 가난한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극빈자들의 수가 비교적 적은 편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을 지을 돈이 없어서 판잣집에 사는 사람도 있고, 부엌 시설이 없어 집안에서 불을 피우니까 집안에 연기가 가득한 집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극빈자들의 집을 세세하게 살펴보기로 했습니다.”

이렇게 현장 소식을 전한 후 사전에 질문을 신청한 분들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네 명이 스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그중 한 명은 아들이 사회공포증과 우울증으로 은둔한 지 5년째가 되어간다며 엄마로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스님의 조언을 구했습니다.

5년째 은둔하고 있는 아들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에게는 고1 때 자퇴하고 사회공포증과 우울증으로 은둔한 지 5년째 되어가는 22살 아들이 있습니다. 아들은 중1 때 저와 남편에게 그동안 억압당한 분노를 폭발하였고, 저는 즉문즉설을 듣고 불법을 공부하며 아들이 살아있어서 감사하다는 마음으로 힘든 상황을 극복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평소 아들은 제가 만든 음식은 맛이 없다고 거부하며 배달 음식과 과자, 음료 등의 인스턴트로 끼니를 해결해서 영양 상태가 매우 좋지 않고 심각한 저체중 상태입니다. 건강 관리가 되지 않아 치통으로 죽과 음료수 이외에는 음식 섭취가 어려운데도 치과 치료를 거부하고 있습니다. 저러다 아들이 잘못될 수도 있겠다는 불안감이 종종 올라오지만 저의 어리석음으로 인해 빚어진 인연과보를 기꺼이 받겠다는 마음으로 엄마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또한 제 마음 편해지고자 하는 이기적인 태도라는 생각이 들고, 아들에게 미안한 마음도 듭니다. 제가 지금 놓치고 있는 부분은 무엇일까요? 저의 행동이 또 다른 인연과보를 짓고 있는 건 아닐까요?”

“이 세상에는 내가 원하는 일이 다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내가 원하는 일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집착을 하기 때문에 원하는 일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괴로워하게 되는 겁니다. 원하는 일은 이루어질 수도 있고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루어지면 다행이고 안 이루어지면 그만이에요. 그래도 이루고 싶으면 다시 도전하면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괴로워합니다. 어떤 것을 원한다고 해서 괴로움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원하는 것을 이루어야 한다고 집착하기 때문에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괴로움이 생기는 거예요. 불교를 잘못 공부하면 내가 원하는 것을 하지 말라는 뜻으로 오해하게 됩니다.

반대로 상대가 나한테 원하는 것을 내가 다 해줄 수도 없어요. 그런데 우리는 상대가 원하는 것을 내가 못 해주면 때때로 죄책감을 느끼며 괴로워합니다. 인간의 능력은 무한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해줄 수 있는 건 해주고, 못 해주는 건 그냥 ‘죄송합니다’ 하고 말하면 됩니다. 지금 질문자는 아들이 내가 원하는 대로 안 된다는 것에 대한 답답함과 아들에게 내가 뭔가 도움이 안 된다고 하는 미안함, 두 가지 심리가 겹쳐 있습니다. 그래서 우왕좌왕하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아들에 대해서 질문자가 원하는 바가 없어야 합니다. 설사 내가 원하는 바가 있다 하더라도 내 뜻대로 안 된다고 답답해하면 안 돼요. ‘방에서 나와서 외출했으면 좋겠다’, ‘학교에 다녔으면 좋겠다’, ‘밥을 먹었으면 좋겠다’ 이런 기대심을 버려야 합니다.

아들이 싫다고 하는데 질문자가 바라는 걸 강제할 수 있을까요? 옛날에는 강제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현재는 아무리 자식이라 하더라도 법적으로 당사자의 의사에 반해서 어떤 것도 강제를 못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꾸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강제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부모가 자식이 저러고 있는데 그냥 놔둬서 되나! 강제로라도 병원에 데려가서 고쳐야지’ 자꾸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거예요. 권유는 할 수 있지만, 아들이 안 해도 내가 강제할 수는 없습니다. 내가 하라는 대로 안 한다고 자식이 죽든지 말든지 알아서 하라고 내버려두라는 뜻도 아니에요. 외면하지 말고 ‘엄마 생각에는 이렇게 하는 게 더 좋아 보인다’ 이렇게 권유는 하되 아들이 뭘 먹든 어떻게 하든 남을 해치지만 않으면 내버려두라는 의미입니다. 왜냐하면 강제할 수가 없으니까요. 아들의 건강 상태가 안 좋은 것이 어머니로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겠지만 방법이 없습니다.

그러니 ‘저러다 죽으면 어쩌나?’ 하면서 너무 안타까워할 필요가 없어요. 만약에 부모가 억지로 조치를 취해서 죽지 않고 살도록 한다 해도 나이가 들어 성인이 되면 결혼도 시키고 싶어질 것이고, 직장도 다니도록 해주고 싶어질 겁니다. 그러다가 시간이 흘러 계속해서 아이가 자생력을 가지지 못하게 되면, 그때 가서는 어떻게 할래요?

자생력이 없는 사람들은 사회가 요양원에서 보호하게 되어 있습니다. 부모가 보호할 수 있으면 계속 보호를 하겠지만, 스무 살이 넘었는데도 부모가 더 이상 보호할 의향이 없거나 능력이 안 된다면 국가에서 보호를 해줍니다. 자생력도 없고 스스로 의지도 없어서 밥도 먹지 않고 지내다가 병약해져서 죽는다면, 그것을 꼭 나쁘다고 볼 수 없습니다. 억지로 보호받아서 60살까지 사는 것이나 지금 죽는 것이나 무슨 차이가 있어요? 부모로서는 마음이 안타깝지만 자연 생태계의 관점에서는 자생력이 없어서 저절로 죽는 것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고 죄악도 아니에요.

그러니 아들을 그냥 지켜보면서 본인이 요청하는 것만 해주어야 합니다. 아들이 요청하더라도 사회적으로나 법적으로 어긋나는 것은 해주면 안 됩니다. 지금은 부모가 ‘아이가 건강했으면 좋겠다’, ‘결혼했으면 좋겠다’, ‘공부했으면 좋겠다’ 같은 과도한 요구를 할 때가 아닙니다. 지금은 본인의 생존도 어려운 상태이기 때문에 부모가 정성을 다해 도와주지만 강제해서는 안 됩니다. 결과가 어떻게 되든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나중에 아무런 후회가 없습니다. ‘혹시 잘못되면 어떡하나!’ 하는 생각을 자꾸 하기 때문에 ‘너를 위해서’라는 이름으로 자꾸 강제하려는 마음이 드는 겁니다. 본인의 생명을 어떻게 하는가는 본인의 권리이고 자유입니다.

스님은 자식이 없으니까 그런 소리를 한다고 할지 모르지만, 이런 관점을 가져야 질문자도 괴롭지 않고 아이에게도 도움이 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런 자식을 둔 부모도 행복하게 살아야 해요. 이런 자식을 둔 부모가 행복하게 산다고 죄의식을 가질 이유가 없어요. 이런 자식을 둔 부모라고 해서 죽을 때까지 괴롭게 산다면 그건 어리석은 행위입니다.

그렇다고 자식을 내치거나 외면하라는 얘기가 아니에요. 도울 수 있는 건 도와야 합니다. 그러나 내가 할 수 없는 일로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습니다. 웃으면서 즐겁게 살아도 부모로서 전혀 자격 미달이 아닙니다. 질문자가 걱정하는 일이 설령 일어난다고 해도 꼭 나쁜 일이 아닙니다. 그런 일이 일어나면 그것대로 마무리를 하면 됩니다. 이런 관점을 가지면 조금 더 마음의 여유가 생길 겁니다.”

“감사합니다. 잘 알겠습니다.”

계속해서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네 명과 즉문즉설을 한 후 스님이 정리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질문하신 여러분 한 분 한 분의 소감까지 들어보면 좋겠는데 지금 제가 답사를 하는 중이고 어제 약속한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어서 여기에서 법문을 마쳐야 할 것 같습니다. 다음 주에 한국에서 뵙겠습니다.”

대화를 마치고 이후 프로그램은 사회자가 진행을 하고, 스님은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방송 장비를 철수하고 7시 50분에 면사무소를 나와 숙소로 가서 운동화만 갈아신고 어제 방문했던 납지 치옥으로 갔습니다.

부탄 내각 공무원들과 게옥의 리더(촉바)와 부리더(멍)도 마을에 도착해 있었습니다. 반갑게 인사를 하고 곧바로 답사를 시작했습니다.

어제 답사를 다녀보니 길이 험해서 오늘은 한국에서 가져온 낫과 톱도 챙겨갔습니다. 스님은 본격적으로 답사를 시작하기 전에 길가에 버려진 나무를 주워 지팡이를 만들었습니다.

“산책하기 딱 좋은 날씨네요.”

스님은 지팡이를 짚고 경쾌하게 걷기 시작했습니다. 치옥 리더의 안내로 마을을 벗어나 산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외발로 걸어야 하는 좁고 미끄러운 수로를 따라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중간중간에 수로가 터진 부분이 보였습니다. 돌이 무너져 수로를 가로막은 곳도 있었습니다. 모두 보수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수로에 금이 간 곳도 있었습니다. 스님은 치옥의 리더에게 금이 간 곳을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이런 곳을 다 보수해야 해요. 이렇게 금이 간 곳도 미리 고쳐놓지 않으면 물이 새서 산사태가 나게 되어 일이 커지게 됩니다.”

20분을 더 걷자 첫 번째 수원지가 나왔습니다. 돌이 무너져서 수원지를 가로막고 있었고, 추가로 바위가 떨어질 위험이 있어서 보수가 필요해 보였습니다.


“무너질 위험이 있는 바위는 미리 떨어뜨려야 하고, 개울에 무너진 돌들은 치워서 물길을 터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새로 둑을 쌓고 수문을 설치하면 좋겠어요.”

내각 공무원이 말했습니다.

“예, 저희들은 미리 대비하는 방안을 생각하지 못했어요. 지금 무너진 곳만 고쳤다가 또 바위가 무너지면 다시 고쳤을 거예요. 스님께 배웠습니다.”

미끄러운 수로를 걸어 나와 다음 수원지로 갔습니다.


가파른 길을 오르고 내리고 정글을 헤쳐가며 50분을 더 걷자 두 번째 수원지가 나왔습니다.


“여기는 수원지에서 물이 수로로 흐를 수 있도록 추가로 수로를 만들어서 연결을 해야 하고, 가운데에는 수문을 만들어서 물길을 조절할 수 있도록 하면 좋겠어요.”

다시 산길을 걷다가 세 번째 수원지에서 연결되어 나온 수로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수원지까지는 시간이 부족해 가보지 못하고 수로만 확인하고 다시 가던 길을 갔습니다.

“콜푸 치옥 사람들과 약속을 했기 때문에 콜푸 치옥 수원지도 한번 봐야겠어요.”

한 시간을 산행하여 마지막으로 콜푸 치옥이 사용하고 있는 네 번째 수원지에 도착했습니다.

이곳은 수원지에서 3개의 수로를 연결하여 물을 사용하면 물이 부족할 때가 있어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다른 수원지에서 물을 가져와 2개의 수로를 연결해야 해서 수로를 어떻게 연결할지 아이디어가 필요했습니다. 스님이 가장 간단한 방법을 생각해 내어 제안했습니다.

“수로를 낮게 만들어서 건기에는 수로 쪽으로만 물이 자연적으로 갈 수 있도록 유도하고, 우기에는 물이 넘쳐서 다른 쪽으로도 흐르도록 하면 좋겠어요. 수문을 만드는 것도 필요하고요.”

부탄 공무원들이 잘 이해를 하지 못하자 스님이 수첩에 직접 그림을 그려가며 어떻게 수원지와 수로를 개선하면 좋을지 설명해 주었습니다.


“네, 이제 이해했습니다.”

수원지를 모두 둘러본 후 납지 치옥 주민들이 논농사를 짓는 들판으로 가보았습니다. 가는 길에 여러 군데에 농사를 짓지 않고 비어 있는 땅을 볼 수 있었습니다.

“저런 땅은 왜 농사를 안 짓고 있어요?”

“외지 사람들이 땅을 구매한 것이어서 경작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농사짓지 않고 내버려두는 것을 막기 위한 부탄 정부의 정책이 없어요?”

“토지세를 두 배로 내도록 하는 정책이 있습니다.”

마을에 거의 도착할 무렵이 되자 시멘트로 만들어진 수로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스님이 이유를 물었습니다. 치옥의 리더가 대답했습니다.

“마을 초입에는 예산 부족으로 수로를 만들지 못했습니다.”

오전 11시에 납지 치옥에 도착했습니다. 가장 먼저 절을 참배했습니다.


절 옆에는 신, 구, 의를 뜻하는 큰 돌 세 개가 있었습니다. 타시 박사님이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저 돌에 글이 새겨져 있는데, 누군가 와서 그 뜻을 해석해 줄 것이라고 하는 전설이 있어요. 혹시 스님이 아닐까요?” (웃음)

절에서 나온 스님은 납지 치옥의 리더에게 부탁했습니다.


“가장 시급한 것이 논으로 연결된 수로입니다. 수로부터 보여주세요.”

“네.”

논까지 연결된 수로가 어떻게 되어 있는지 살펴보았습니다.

촉바가 알려주지 않았다면 수로인지 길인지 모를 뻔했습니다. 군데군데 돌이 놓여있긴 했지만 수로가 아닌 논과 논 사이에 난 길로만 보였습니다.

“수로를 만들고, 앞으로 기계를 사용하려면 경운기가 다녀야 하는데, 길과 수로가 겹쳐서 어떡하나요? 수로 옆에 논을 가진 주인들이 땅을 약간씩 양보하여 길을 넓혀야 하는데 괜찮을까요?”

물이 흐른다고 하더라도 유실이 많을 것 같았습니다.


“물이 흘러도 유실이 너무 많네요. 이건 수로가 아니라 그냥 길이에요. 시멘트로 농업용 수로를 만드는 것이 필요합니다. 어려운 공사가 아니니까 JTS에서 재료를 제공하면 주민들이 공사를 하는 쪽으로 해보면 좋겠어요. 그러면 콜푸 치옥과 납지 치옥, 두 마을의 물 부족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가 있습니다.”

농업용 수로를 모두 체크한 후 점심 식사를 하기 위해 11시 30분에 다시 숙소로 이동했습니다.

점심 식사를 하고 오후 1시에는 님숑 치옥으로 향했습니다. 이 마을에서는 가장 가난한 집들을 세밀하게 둘러보았습니다.

지난 2월 답사 때 집이 없어 집을 지어달라는 가구가 여덟 가구였습니다. 부탄 정부에서도 자체 조사 결과 여덟 가구가 가장 가난한 집이라고 알려주었습니다. 마을에 도착하여 여덟 가구를 모두 방문해 보았습니다. 치옥의 가장 높은 곳에서부터 아래로 내려가며 한 집씩 방문해 보았습니다.

스님은 집집마다 어느 정도의 지원이 필요한지 꼼꼼하게 확인했습니다. 집이 없는 사람들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나무로 지어진 집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부탄에서는 돌과 흙으로 지은 집이 아닌 나무로 지은 집을 임시 집이라고 생각해서 집이 없는 사람들이라고 표현한 것이었습니다.

첫 번째로 방문한 집은 벽채가 나무라는 것 외에는 집의 상태가 괜찮았습니다.


다음은 두 번째 집으로 찾아갔습니다. 스님이 아주머니에게 몇 가지 질문을 했습니다.


“가족이 몇 명인가요?”

“여섯 명이에요.”

“남편은 무슨 일을 하고 있나요?”

“심장이 아파서 인도에 치료받으러 갔어요.”

부엌, 안방, 거실 등 꼼꼼하게 살펴보고 집을 나왔습니다. 다음은 세 번째 집으로 향했습니다. 집 안에 화덕이 있어서 그을음이 잔뜩 끼어 있었습니다.



특별히 열악해 보이는 것은 없었으나 다만 자기 소유의 땅에 지은 것이 아닌 불법 건축물이라는 점이 문제였습니다. 자신의 땅에 새로 집을 짓는 것이 필요한 상황이었습니다.

이동하는 중에 님숑 마을의 학교가 나타났습니다. 수업하는 교실을 방문하여 아이들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스님은 아이들에게 수학 문제를 칠판에 적고 풀어보도록 했습니다. 아이들은 스님이 낸 문제를 제대로 풀지 못했습니다. 스님이 계산하는 방법을 알려 주었습니다.



스님은 아이들에게 몇 가지 질문을 했습니다.

“무엇이 가장 필요해요?”

아이들은 선뜻 대답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교장 선생님이 부탄 말로 대답하라고 독려를 하자 그제서야 아이들이 대답을 했습니다.

“노트북과 스마트TV가 필요합니다.”

교장 선생님도 노트북과 스마트TV가 필요하다고 다시 한번 강조했습니다.

“코로나 이후 교육의 내용이 전부 디지털화 되는 것이 많아서 노트북과 스마트TV가 꼭 필요합니다.”

교장 선생님과 대화를 나눈 후 컴퓨터실을 둘러보았습니다. 가장 학생 수가 많은 학년은 12명인데, 컴퓨터실에는 노트북이 6개가 있었습니다. 6개를 추가로 지원해 주면 한 대씩 사용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나름대로 도서관도 갖추고 있고, 빔프로젝트도 구비하고 있었습니다. 교실 외벽에는 GNH(국민총행복지수)를 도식화한 그림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학교를 나와 보건소로 이동했습니다. 보건소에는 마을 사람들이 축복을 받기 위해 줄지어 서 있었습니다. 스님은 한 분씩 조심스럽게 머리 위에 손을 얹어 주었습니다.

보건소에는 마을 사람들이 스님을 환대하는 의미로 직접 짠 우유와 천연으로 염색한 삶은 계란을 준비해 두었습니다. JTS 답사단이 자리에 앉자 마을 사람들은 따뜻한 차를 한 잔씩 내주었습니다.


잠시 휴식한 후 다시 보건소를 나와 가구 방문을 이어갔습니다.

다음은 네 번째 집으로 향했습니다. 지난 2월 답사 때 스님이 방문했던 집이었습니다. 이 집은 다시 집을 지어주어야 할 정도로 매우 열악했습니다.


다음은 다섯 번째 집으로 향했습니다. 70대 노인이 혼자서 살고 있었습니다. 집안 내부를 둘러본 후 다음 집으로 이동했습니다.


여섯 번째 집에 도착하여 내부와 외부를 살펴보았습니다. 처마가 낮다는 것 외에는 집에 보유한 나무가 많아 리모델링을 조금 더 하면 보완이 될 것 같았습니다. 집 주인은 전기함이 근처에 있으나 전선을 살 돈이 없어서 전기 연결을 못 하고 있다고 호소했습니다. 손바닥 만한 태양열판 두 개로 핸드폰을 충전한다고 했습니다.



다음은 일곱 번째 집을 방문했습니다. 집은 괜찮았지만 정부 소유의 땅이라 집을 새로 짓기보다는 땅 소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필요해 보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여덟 번째 집으로 향했습니다. 집을 짓다가 중단이 된 상태였습니다. 자초지종을 물어보니 아주머니가 대답했습니다.

“남편이 집을 짓다가 병에 걸려서 지금은 여동생의 집에 가서 살고 있습니다. 저 혼자서 어머니와 아이 네 명을 데리고 생활하고 있어요.”

곧 있으면 우기가 닥칠 텐데 덜 지은 집에서 어떻게 살아갈지 우려가 많이 되었습니다.

실제로 여덟 가구를 모두 확인을 해보니 여섯 곳은 나무로 지어진 집을 돌과 흙으로 다시 지어달라는 것이었고, 한 곳은 땅 문제를 해결해 달라는 것이었고, 한 곳은 집을 짓다가 중단이 되어서 마저 지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여덟 번째 집을 보고 나오는데 한 가족이 다가와 스님에게 귀한 선물을 건넸습니다. 손수 말린 고추 한 바구니와 기침에 좋은 꽃 한 바구니에 계란이 올려져 있었습니다. 스님은 정중하게 선물을 받은 후 축원을 하며 다시 돌려주었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런데 제가 지금 답사 중이라 이 선물을 가져갈 수가 없어요. 다시 돌려드리겠습니다. 건강하시고 하시는 일마다 잘 되시길 바랍니다.”

알고 보니 할아버지도 가난한데 지원을 못 받고 있다고 호소했습니다. 스님은 촉바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지난 답사 때 이 할아버지는 옆에 자식이 살고 있어서 새로 지어줄 필요가 없다고 했던 것 같은데, 새로 집을 지어주는 것이 필요합니까? 이런 경우 하나의 가구로 보면 집을 안 지어줘도 되고, 두 개의 가구로 보면 집을 새로 지어주어야 하는 문제가 있어요.”

“다시 확인을 해보겠습니다.”

스님은 공무원들과 다시 의논해 보겠다고 할아버지에게 말씀을 드렸습니다.

여덟 가구를 모두 둘러보고 나자 오후 5시가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템플 주변에 리모델링이 필요해 보이는 집을 더 살펴보았습니다.

“하위 10퍼센트에 해당하는 집을 두 군데 더 보여주세요.”


집을 두 곳을 더 살펴보고 나서 오늘 답사를 마쳤습니다. 가장 가난한 집들을 꼼꼼하게 살펴보았지만 어느 집을 샘플로 정해서 리모델링을 해야 할지 정하지 못했습니다. 내일 랑덜비 치옥을 가본 후에 어느 집을 샘플로 정할지 결정하기로 했습니다.

오늘은 오전에는 수원지를 둘러보고 오후에는 각 집을 방문하느라 하루 종일 걸었습니다. 스님은 차에 오르며 말했습니다.

“아이고, 정말 피곤하네요.”

차를 타고 돌아오며 스님은 실무자에게 저녁 회의 때 어떤 점을 중점적으로 다룰지 의견을 나누었습니다.

숙소에 도착하니 어느덧 해가 지고 저녁 6시 40분이 되었습니다. 어제처럼 곧바로 부탄 정부 관계자들과 회의를 했습니다.

먼저 스님이 오늘 답사를 하고 온 소감과 향후 계획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오늘 가장 가난한 집 여덟 곳을 살펴보았습니다. 돌과 흙으로 지은 것이 아니라는 측면에서는 임시 가옥에 해당하는데, 그게 아니라면 세 곳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집이 괜찮은 편에 속했습니다. 나무로 지었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겠죠. 그러나 돌과 흙으로 지어야 한다면 전부 새로 집을 지어주어야 할 것 같습니다.

다만 여섯 번째 집은 전기만 연결해 주면 되지 새로 지어주어야 할 정도는 아닌 것 같았어요. 그 집은 나무도 많이 갖고 있어서 조금만 보완을 해주면 될 것 같습니다. 마지막에 마을을 나오다가 판잣집을 하나 봤는데, 소를 키우는 임시 가옥인지, 사람이 사는 집인지 확인이 필요해 보였습니다.”

이어서 어제 콜푸 치옥에서 화재가 났을 때 어떻게 방화수를 확보할 것인지에 대해 스님이 아이디어를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마을에서 가장 높은 곳에 물탱크를 설치해서 아래로 큰 파이프를 한 줄로 연결하고, 중간중간에 연결 부위를 마련하여 화재가 났을 때 긴 호스를 연결해서 방화수로 사용할 수 있게 하면 될 것 같습니다.”

실무자들이 이해를 하지 못하자 스님이 직접 수첩에 그림을 그려가며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다른 마을은 집이 떨어져 있는데, 콜푸 치옥은 집이 다닥다닥 붙어 있어서 화재의 위험이 많아 보였습니다. 맨 위에 물탱크를 설치하면 방화수를 확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물탱크를 2개 만들어서 하나는 일상적인 식수로 사용하도록 집집마다 연결하고, 하나는 방화수로만 사용하도록 하면 됩니다.”

“정부에서 재난 관리 시스템이 마련되어 있기 때문에 확인해 보고, 스님의 제안대로 방안을 마련해 보겠습니다.”

스님의 이야기를 듣고 부탄 정부 관계자들이 각자 의견을 이야기했습니다. 가장 쟁점은 어느 집을 샘플로 정해서 리모델링을 해볼지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토론이 오가는 가운데 마지막으로 스님이 의견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아직 최종적으로 어느 집을 샘플로 수리할지 결정을 못 했습니다. 왜냐하면 적당한 집을 찾지 못했어요. 오히려 내일 랑덜비 치옥까지 답사를 해보고 랑덜비 치옥에 샘플을 하나 정하는 것도 고려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JTS가 이번 답사에서 해보고자 하는 것은 하위 10퍼센트 가구들의 내부를 어떻게 리모델링할 것인지에 대한 샘플을 만드는 것입니다. 올해 안에 시범 사업으로 해보고자 하는 것은 하나의 치옥 전체를 리모델링해 보겠다는 것이고요. 그리고 5년 계획으로는 종각 안에 있는 모든 집을 리모델링해 보겠다는 것입니다.”

한 시간 동안 토론을 한 후 스님은 함께 동행하고 있는 22살이 된 신참 공무원에게 소감을 물었습니다.

“스님과 함께 마을을 다녀본 소감이 어때요?”

“저에게 새로운 경험이었습니다. 주민들이 어떻게 돈을 벌고 생계를 유지하는지 처음 배웠습니다. 사무실에 돌아가면 저의 경험을 이야기하고, 열심히 일하라고 말할 겁니다.” (웃음)

스님은 어려운 사람을 지원할 때 어떤 점을 유의해야 하는지 자상하게 알려주었습니다.

“이 프로젝트가 시작되면 부탄의 많은 청년들을 자원봉사자로 모집해야 합니다. 스님이 생각할 때는 부탄 청년들이 자꾸 호주에 돈 벌러 가려고 하지 말고 이 프로젝트를 함께 하면 좋겠어요.

어려운 사람을 도울 때 가져야 할 마음가짐

앞으로 정부 관리가 되면 주민들의 어려움을 해결해 주기 위해 노력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어려움을 다 해결해 줄 수는 없습니다. 주민들 사이에 균형을 항상 맞춰 주어야 해요. 이 집이 어렵다고 도와주면, 저 집에서 불만이 생깁니다. 집이 없는 사람에게 새로 집을 지어 줄 때도 집이 있는 사람들보다 더 좋은 집을 지어주면 집이 있는 사람들이 불만을 가집니다. 그래서 집을 잘 짓는다고 해서 좋은 것이 아닙니다. 마을 전체의 균형을 고려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가난한 사람에게 집을 지어주었을 때 마을 사람들이 함께 기뻐할 수 있는 정도의 집을 지어주어야 합니다. 집을 가진 사람들이 ‘차라리 집이 없는 게 더 좋았겠다’ 하면서 기분 나빠하면 안 됩니다. 자칫 잘못하면 ‘집이 없어야 정부가 새로 집을 지어준다’ 이렇게 생각하게 될 소지가 있습니다.

첫째, 어려운 사람을 돕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둘째, 어려운 사람을 돕더라도 항상 전체를 보고 균형을 잡아야 합니다. 셋째, 그 효과를 항상 고려해야 합니다. 어떤 투자를 할 때는 그것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이익이 되는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한두 사람에게 너무 많은 혜택이 돌아가는 것은 올바른 지원 방식이 아닙니다. 넷째, 도와주고 싶은데 여력이 부족해서 못 도와줄 때는 너무 죄책감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모든 일을 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항상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균형을 잡는 것에 집중하면 어려운 사람을 돕는 따뜻한 마음이 없어질 수 있고, 따뜻한 마음에 집중하면 균형 잡는 것을 놓칠 수가 있습니다. 말은 쉽지만 실제로는 굉장히 어렵습니다. 이 사이에서 다시 균형을 잡아 나가야 합니다.”

“네, 명심하겠습니다.”

회의를 마치고 나니 저녁 8시가 다 되었습니다. 오늘도 길고 긴 하루였습니다. 내각 공무원인 린첸 님이 웃으며 말했습니다.

“아주 긴 하루였네요.”

신참 공무원은 웃으며 한국어로 인사를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내일은 오전에 님숑 치옥에 다시 가서 야생동물 퇴치 문제와 농업용수 문제를 더 살펴보고, 오후에는 랑덜비 치옥으로 이동하여 답사를 계속 이어갈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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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달래

오늘도 감사합니다. ()

2024-04-22 15:41:49

드림하이

첫째, 어려운 사람을 돕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둘째, 어려운 사람을 돕더라도 항상 전체를 보고 균형을 잡아야 합니다. 셋째, 그 효과를 항상 고려해야 합니다. 어떤 투자를 할 때는 그것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이익이 되는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한두 사람에게 너무 많은 혜택이 돌아가는 것은 올바른 지원 방식이 아닙니다. "

2024-04-04 17:17:50

성민제

감사합니다

2024-04-03 03:5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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