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4.3.18 8일 출가열반 정진 2일째, 행복한 대화(1) 인천광역시
“과소비하는 남편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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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부처님의 8일 출가열반 정진 중 2일째 날이고, 코로나 팬데믹 이후 국내에서 처음으로 지역에서 오프라인 즉문즉설 강연을 하는 날입니다.

스님은 새벽 기도와 명상을 마친 후 예약해 놓은 건강 검진을 하기 위해 병원으로 향했습니다. 병원에 거의 도착할 무렵 전문의 교수님의 부재로 오늘 휴진을 한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곧바로 정토회관으로 돌아왔습니다.

“병원 검진 때문에 정진을 먼저 하고 법문을 뒤에 하려고 했는데, 법문을 먼저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가능한가요?”

“네, 가능합니다.”

다행히 이미 법당에 촬영 장비가 세팅이 되어 있어서 곧바로 법당으로 향했습니다.

오전 10시 정각에 정토사회문화회관 3층 설법전에서 8일 출가열반 정진 중 2일째 법회를 했습니다. 정토회 회원들이 모두 유튜브 생방송에 접속하자 스님이 법문을 시작했습니다. 어제는 부처님의 출가에 대한 법문을 했고, 오늘은 출가 이후 수도 과정에 대한 법문이 이어졌습니다.

“어제 부처님의 출가일을 맞아서 출가의 의미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출가란 집을 떠나는 것입니다. 집이라는 것은 안온함, 즉 보호처를 뜻합니다. 안온함과 보호처라는 말은 단순히 주거지를 뜻하는 집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가족, 이웃, 고향, 사회, 조국, 이런 의미들도 동시에 가지고 있습니다. 집은 나를 보호해 주고 나의 안전을 보장해 주는 것들을 통칭하는 상징적인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집을 떠난다는 것은 안온함과 보호처를 버리는 것을 뜻합니다. 광야에 홀로 나간 나그네와 같은 것입니다. 왜 안온함을 버려야 할까요? 그 안온함이 속박이 되고 굴레가 되고 고통의 원인이 되기 때문입니다.

깨달음을 얻기까지 부처님의 수행 과정

부처님은 나와 남이 함께 행복해지는 길을 찾기 위해 단호하게 안온한 집을 버리고 떠났습니다. 그 길을 찾기 전에는 죽는 한이 있더라도 다시는 성으로 돌아오지 않겠다는 굳은 결심을 하고 길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그 새로운 길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모르는 막연함에서 오는 불안감이 그를 엄습했습니다.

출가만 하면 새로운 길이 단박에 얻어질 것 같았는데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긴 시간이 흘러도 새로운 길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수행에 전념했기 때문에 옷은 낡아 없어져서 알몸이 드러나고, 음식을 먹지 않아서 몸은 오이가 말라비틀어지듯이 야위어 갔습니다. 그는 추위도 피하지 않고, 더위도 피하지 않고, 벌레도 피하지 않고, 야수의 울음소리에도 두려움을 느끼지 않고, 오직 선정에 집중을 했습니다. 그의 이러한 수행 모습은 친구들 다섯 명도 감동하여 존경심이 우러날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길은 잡힐 듯 잡힐 듯하지만 잡히지 않았습니다. 때로는 자신이 존재하지 않는 열반의 길을 무모하게 찾는 것은 아닌가 하는 회의가 들 때도 있었습니다. 경전에는 이러한 고타마의 회의를 마왕의 유혹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 유혹의 표현이 경전에는 ‘열반이란 없소. 다만 열반이라는 말이 존재할 뿐이오’ 하고 나와 있습니다. 이 말은 수행자에게 엄청나게 절망감을 주는 말입니다. 내가 찾고자 하는 길이 실재하지 않는다는 말이니까요. 이런 번뇌가 끊임없이 일어났지만 그는 번뇌에 사로잡히지 않고 그 번뇌를 벗어나서 정진에 대한 본래 관점으로 돌아옵니다.

붓다가 새로 발견한 제3의 길

욕망을 따르는 것과 욕망을 억제하는 것이 세상의 이치로 보면 서로 다른 정반대의 길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그 뿌리는 같다는 사실을 그는 발견했습니다. 욕망을 따르는 것만 욕망에 설복당하는 것이 아니고, 욕망을 억제하는 것도 욕망에 대해 반응하는 것이기 때문에 둘 다 그 뿌리는 욕망입니다. 누군가 내 팔을 잡아당길 때 끌려가는 것과 끌려가지 않으려고 버티는 것은 둘 다 잡아당기는 외부의 자극에 대한 반응이라는 측면에서는 마찬가지입니다. 자극에 대한 반응이 달랐을 뿐이지 반응을 한다는 면에서는 똑같은 반응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는 욕망을 따르는 쾌락과 욕망을 억제하는 고행이 해탈의 길이 아님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욕망을 따라가지도 않고, 욕망을 거부하지도 않고, 다만 욕망을 욕망인 줄 알아차렸습니다. 즉, 알아차림이라고 하는 새로운 길을 발견하게 됩니다.

욕망을 따르게 되면 마음이 들뜨게 되고, 욕망을 억제하게 되면 마음이 긴장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는 욕망을 따르지 않기에 들뜨지 않았고, 욕망을 억제하지 않기에 긴장하지도 않았습니다. 편안한 가운데 욕망이 욕망인 줄 알아차렸습니다. 즉 욕망에 대해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았습니다. 겉으로 드러난 행위를 보면 욕망을 억제하는 것과 똑같아 보입니다. 왜냐하면 욕망을 따르지 않으니까요. 그러나 내적으로 살펴보면 욕망을 억제할 때는 긴장하고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그는 욕망을 억제한 게 아니기 때문에 긴장하지도 않고 스트레스를 받지도 않습니다.

6년 간의 고행을 마치고 그는 유미죽을 얻어먹고 건강을 회복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6년간 수행하던 처소로 돌아가서 마지막 정진을 할지 망설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곳으로 돌아가지 않고 강가의 보리수 아래에서 정진하기로 했습니다. 마침 풀을 베고 있던 목동에게 풀 한 아름을 얻어서 보리수 아래에 깔고 동편으로 자리를 잡고 앉아서 정진에 들어갔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에게 필요한 수행의 자세

이것이 출가 후 고타마 싯다르타가 한 수행의 과정입니다. 이를 통해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은, 첫째, 나태하게 욕망을 따라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출가할 때 이미 이것을 극복했습니다. 그러나 수행이란 각오하고 결심하고 긴장하고 애쓴다고 되는 것도 아닙니다. 둘째, 긴장을 풀고 편안한 가운데 그러나 꾸준히 정진을 해나가야 합니다. 부처님은 이렇게 고행의 극한까지 갔다가 고행이 깨달음을 얻는 방법이 아님을 알고 강도를 낮추어서 마침내 중도를 발견한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들은 고행의 근처에도 안 가보고 조금만 힘들면 ‘이건 고행이다. 부처님이 고행을 버리라고 하셨다’ 하면서 자기 합리화를 합니다. 이렇게 안온함을 추구하는 것을 중도라고 주장한다면 이 또한 안일함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에게는 약간 고행처럼 느껴질 정도로 안온함을 벗어던지는 단호한 수행의 자세가 필요합니다. 이렇게 안온함의 때를 벗어던지는 과정에서 너무 긴장하거나 고행에 치우칠 때는 ‘긴장을 좀 풀어’ 하는 가르침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세속적 가치에 물들어 있으면서 조금만 힘들어도 ‘이건 고행이다. 부처님은 중도를 가르쳤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자기 합리화에 불과합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중도를 가장하여 나태해지는 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법문이 끝나고 다 함께 300배 정진을 시작했습니다. 유수 스님의 염불 소리에 맞춰 각자 자신의 방에서 한 배 한 배 절을 했습니다.


정진이 끝나고 모둠별로 화상회의 방에 접속하여 마음 나누기를 한 후 8일 출가열반재일 2일째 정진을 마쳤습니다. 스님은 찾아온 손님과 점심식사를 하며 대화를 나눈 후 외부 초청 강연을 하기 위해 김포로 향했습니다.


오후 2시에 김포 중앙승가대학교 자비관에 도착했습니다. 강연을 하기 전에 승가대학교 총장 월우 스님과 차담을 나누었습니다. 중앙승가대학교 총무 스님, 금정사 주지 스님 등 교직원 스님들과 광주 남부대학교 교수님, 농협중앙회 감사위원장님 등 여러 내빈들도 함께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월우 스님이 스님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했습니다.

“스님이 안암동에서 승가대학 학인 스님들에게 수업을 하신 게 벌써 45년 전이네요. 그때도 스님께서는 일방적으로 강의를 하시는 게 아니라 궁금한 게 있으면 물으라고 하셨지요. 스님은 불교계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드셨습니다. 스님께서 시간을 내주셔서 정말 기쁩니다. 우리 학인 스님들도 굉장히 설레하고 있어요. 고맙습니다.”

“초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스님은 출가하는 인구가 줄어들고 있는 상황 속에서 승가대학교 운영에 어려움이 없는지, 어떤 대안이 있는지에 대해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2시 30분이 되어 대강당으로 이동했습니다. 오늘은 재가 불자들을 위한 즉문즉설을 하고, 다음 달에는 학인 스님들을 위한 즉문즉설을 하기로 했습니다. 강당에는 학인 스님들과 재가 불자들이 함께 자리를 빼곡하게 채우고 있었습니다.

삼귀의, 반야심경, 청법가, 청법 삼배를 하고 월우 스님의 환영사가 이어졌습니다.


“2024년 신학기를 시작하고 첫 월례 법회입니다. 저도 법륜 스님의 법문을 학창 시절부터 들어왔습니다. 오늘 이렇게 학인 스님들과 많은 내빈들이 함께 법문을 들을 수 있어 영광입니다. 40년 동안 우리에게 법을 전해주시고 포교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이끌어주신 법륜 스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럼 스님을 법상으로 모시겠습니다.”

이어서 스님이 무대 위로 올라 법문을 시작했습니다.

“총장 스님과 저는 40여 년 전 중앙승가대학이 안암동 개운사에 있을 때부터 만나서 활동을 같이 했습니다. 그때 포교연구회라는 모임을 마련해서 어떻게 하면 젊은이들이 조금 더 불교를 쉽고 바르게 알 수 있을지 많은 연구를 함께 했습니다. 그런 인연이 쌓이고 쌓여서 40여 년이 지났고, 지금 총장님으로 부임해 오셔서 오늘 이렇게 여러분과 만나게 됐습니다. 이런 자리를 마련해 주신 총장 스님께 다시 한번 감사 말씀을 드립니다.

풍요의 시대에도 왜 우리는 행복하지 못할까요?

지금 우리 사회는 물질적으로 어느 시대보다 풍요롭다고 할 만큼 생활이 편리해졌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정신이나 마음은 과연 편안해졌는가요? 편안 해졌다기보다는 오히려 번뇌가 더 많아졌고 정신질환도 더 많아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현상을 지난 몇십 년 동안 겪어오면서 ‘어떻게 살아야 할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누구나 조금 더 자유롭고 행복해지고 싶다고 말합니다. 이렇게 부지런히 몇십 년을 살았는데도 왜 우리는 행복하지 못할까요? 이런 의문을 가질 만한 때가 이제는 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저에게 ‘어떻게 하면 절이나 교회에 사람들을 많이 오게 할 수 있습니까?’ 하고 질문을 합니다. 그럼 저는 ‘왜 사람들이 절과 교회에 와야 합니까?’ 하고 되묻습니다. 절이나 교회에 사람들이 많이 오면 좋겠지만, 반대로 사람들이 무엇 때문에 절이나 교회에 와야 합니까? 교회와 절을 위해서 사람들이 필요한 게 아니고, 사람들을 위해서 교회와 절이 필요해야 하지 않습니까?

괴로워하는 사람들이 괴로움이 없는 세계로 가도록 도와주는 것이 불교의 목표입니다. 불교의 원래 목표는 죽어서 천당이나 극락 가는 것도 아니고, 부자가 되는 것도 아닙니다. 괴로움과 속박이 없는 상태, 바로 열반과 해탈이 불교의 주된 목적입니다.

물론 불교가 중간에 이 목표를 상실하고 복을 빌며 살았던 것을 나쁘다거나 잘못됐다고 평가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그 시대에는 그럴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시대에는 오히려 사람들이 고뇌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것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필요로 하는 일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원래 부처님 가르침의 주된 목표입니다.

붓다가 출가한 이유도 왕자의 지위에 있으면서 온갖 것을 누렸는데도 고뇌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세상 사람들은 고타마 싯다르타를 보고 ‘저런 사람을 남편으로 둔 아내는 얼마나 행복할까? 저런 사람을 아버지로 둔 딸은 얼마나 행복할까? 저런 사람을 아들로 둔 여인은 얼마나 행복할까?’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이것은 제가 지어낸 이야기가 아닙니다. 고타마가 말을 타고 지나가면 여인들이 창밖을 내다보면서 이렇게 말했다는 이야기가 실제로 경전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그런 얘기를 듣고 있던 고타마 싯다르타 본인은 번뇌가 가득했습니다. 만약 본인도 빈곤하고 어려웠다면 당시의 어느 종교에 귀의해서 복을 구하는 행위를 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세상 사람이 얻고자 하는 것을 다 얻었는데도 고뇌가 안 없어졌기 때문에 ‘그렇다면 이 고뇌는 왜 생길까?’ 하고 탐구를 하게 된 겁니다.

불교가 현대인들에게 꼭 필요한 이유

오늘날 현대인들의 처지는 부처님의 출가 당시와 가장 유사하기 때문에 저는 붓다의 가르침이야말로 이 세상에 가장 양약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날 우리들이 왕자나 공주는 아니지만, 그 당시와 비교해 보면 우리가 사는 모습은 당시 왕궁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생활 수준을 능가하고 있잖아요? 그들보다 더 좋은 옷을 입고, 더 좋은 음식을 먹고, 마차보다 더 좋은 차를 타고 다니면서 온갖 편리를 누리고 있잖아요? 그런데도 우리는 고뇌하고 있다는 겁니다. 단순히 부처님의 원래 가르침으로 돌아가자고 하는 원리주의적 입장에서 근본불교로 돌아가자는 얘기가 아닙니다. 현대인들이 겪고 있는 문제가 고타마 싯타르트가 겪었던 문제와 매우 유사하기 때문에 그의 고뇌, 그의 수행, 그의 교화를 제대로 연구하고 경험해 나갈 때 우리는 현대인들에게 가장 도움이 되는 길을 제시할 수 있다는 겁니다.


사람들의 고뇌 해결에 조그마한 도움이라도 될 때 그들이 절에 오는 것이지, 사람들의 고뇌 해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은데도 그들을 자꾸 절에 오라고 하는 것은 모순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절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오느냐’, ‘얼마나 절이 크냐’ 이런 것이 더 이상 관심사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사람들의 고뇌를 벗어나게 하는데 얼마나 도움이 되느냐’ 이런 관점에 서서 여러분들이 불교 공부를 해나갔으면 좋겠습니다.”

사람들이 손을 들고 질문을 했습니다. 다음과 같은 질문이 있었습니다.

-영어교육센터를 개업했는데 조급해요. 어떻게 행복하게 일을 할 수 있을까요?

-업장과 윤회가 존재합니까?

-어떻게 인욕 정진을 지혜롭게 할 수 있나요?

-육십 평생 고민 없이 살았는데, 현 대통령만 보면 화가 납니다.

두 시간이 지나 큰 박수로 법회를 마쳤습니다. 법회를 마치고 자비관 앞에서 학인 스님들과 한 번, 재가 불자들과 한 번 기념사진을 촬영했습니다.

월우 스님은 차를 권했습니다.

“스님, 차 한 잔 하시고 가시지요.”

“이미 나왔으니 바로 강연장으로 가겠습니다. 다음 달에 뵙겠습니다.”

스님은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 인천으로 출발했습니다.

오늘은 코로나 팬데믹 이후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지역에서 오프라인 즉문즉설 강연이 열리는 날입니다. 강연이 열리는 인천광역시 평생학습관에 도착하니 두꺼운 옷을 입은 시민들이 삼삼오오 입장하고 있었습니다. 봄이 성큼 다가왔지만 꽃샘추위가 찾아와서 날씨가 쌀쌀했습니다.


스님은 봉사자들에게 반갑게 인사를 건넨 후 대기실로 향했습니다. 인천불교 총연합회에서 스님을 찾아와 인사를 했습니다. 그동안의 근황을 이야기하며 차담을 나누다가 강연 시간이 되어 다 함께 미추홀 공연장으로 이동했습니다.

스님이 강연장에 모습을 드러내자 600석을 가득 채운 청중들이 큰 박수로 환영했습니다.

오늘 사회는 길벗에서 오랫동안 봉사해 온 배우 임세미 님이 맡아 주었습니다. 임세미 님은 올해 진행되는 모든 행복한 대화 강연에 사회를 맡아 주기로 했습니다.

“2024년 3월은 어느 때보다 특별합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4년 넘게 중단되었던 법륜 스님과 함께 하는 행복한 대화가 다시 재개되었기 때문입니다. 오늘을 축하하기 위해 특별한 공연을 준비했습니다. 함께 보시죠.”

강연을 시작하기에 앞서 보컬리스트 난아진 님이 재능 기부로 여는 공연을 해주었습니다. 난아진 님이 두 곡을 연달아 열창하자 청중석은 열기가 후끈 달아올랐습니다.

소개 영상이 끝나고 스님이 무대 위로 올라와 인사말을 했습니다.

“코로나 이전에는 제가 늘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면서 이런 공공장소에서 여러분과 만나서 인생살이와 세상에 대해서 많은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러나 코로나 이후로 대인 접촉을 하면 안 된다는 사회적인 분위기 때문에 4년간 온라인상으로만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온라인으로 대화를 나누니까 좋은 점도 많았어요. 여러분들이 강연장까지 오지 않아도 되고, 또 강연장에 좌석이 부족해서 청중이 못 들어오는 문제도 없고, 홍보도 크게 신경을 안 써도 되고요. 왜냐하면 온라인에서는 많이 접속하면 많이 접속하는 대로 강연을 하면 되고, 적게 접속하면 적게 접속하는 대로 강연을 하면 되니까요. 그런데 현장에서 서로 공감하는 분위기는 느낄 수가 없었습니다. 웃고 박수 치는 소리 등 온라인상에서는 여러분들이 내는 소리를 들을 수가 없었어요. 역시 사람은 서로 접촉해서 따뜻한 온기를 느끼고 눈을 맞추는 게 필요하다고 해서 올해부터는 전국 15개 대도시를 중심으로 시민들과 직접 만나서 대화를 나누어 보기로 했습니다. 그 첫 번째 시간이 인천이 됐네요. (박수)

그래서 오늘 여러분과 대화를 나눠보고 이렇게 현장에서 만나는 것이 시간이 들고 경비가 좀 들더라도 훨씬 좋다고 평가가 되면 이런 기회를 점점 늘리겠습니다. 별로 큰 차이도 없는데 공연히 시간만 낭비한다고 평가가 되면 앞으로도 온라인상의 만남을 계속 유지해 나가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이 오늘 적극적으로 질문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곧이어 여기저기서 손을 들고 스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오늘은 열 명이 스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다양한 연령대의 가지각색의 사연이 담긴 질문이 있었습니다. 그중 한 명은 남편이 꾸미는 걸 좋아하고, 자동차도 자주 바꾸고, 온라인 쇼핑을 너무 많이 해서 스트레스를 받는다며 어떡하면 좋을지 스님의 조언을 구했습니다.

과소비하는 남편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저는 남편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습니다. 일단 저의 남편은 꾸미는 것을 좋아하고, 자동차 마니아입니다. 온라인 쇼핑을 자주 해서 택배가 한 달 내내 온 적도 있습니다. 궁금해서 무엇을 샀는지 물어봤더니 저렴한 것을 구입했다고 하길래 그 금액을 확인해 보니 30만 원이었습니다. 저는 그 금액이 크게 느껴지는데 남편은 돈에 대해서 아주 우습게 보는 경향이 있어요. 결혼한 지 11년이 되었는데, 자동차만 해도 세 번이나 바꾸었고, 구입한 지 2년 된 자동차를 최근에 또 바꾸겠다고 합니다. 저랑 상의도 없이 수입차를 사고 나중에 통보만 해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남편이 돈깨나 좀 있는 사람인가 보죠?”

“아뇨, 돈은 그렇게 많지 않은 것 같아요. 월급을 물어봐도 대답을 안 해 줘요.”

“그래도 돈이 있으니까 수입차를 사지, 돈이 없는데 어떻게 사겠어요?”

“확인해 보니까 마이너스 통장도 갖고 있어요. 지금 쓰는 마이너스 통장도 저랑 상의도 없이 2년 전에 만들었더라고요.”

“한 가지만 물어볼게요. 남편이 질문자의 돈을 뺏어가서 물건을 삽니까?”

“아뇨,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생활비를 적게 줍니다.”

“같이 살면서 남편이 자기 돈을 가져가요?”

“아뇨, 제 돈은 건드리지 않습니다.”

“자기가 번 돈을 자기가 쓰는데 그게 왜 문제예요?”

“지금 아들이 초등학생인데 교육비도 많이 들고, 병원도 다녀야 하고, 지출이 무척 많아요. 그런데 생활비는 한 달에 150만 원 밖에 안 줍니다. 저도 월급이 그리 많지 않아서 제 월급에 150만 원으로 생활하기는 벅차거든요.”

“그게 마음에 안 들면 이혼하는 수밖에 없잖아요.”

“이혼 얘기도 꺼내본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혼하면 질문자에게 한 달에 150만 원씩 주는 사람이 있어요?”

“없습니다.”

“이혼하면 아들을 자기가 키울 거예요, 남편한테 맡길 거예요?”

“제가 키울 거예요.”

“그러면 어차피 아들 키우는 비용을 본인이 지출해야 될 것 아닙니까.”

“그런데 남편만 보면 밉고 너무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쉬는 날에는 소파에 앉아서 TV만 보면서 저한테 밥 차려라, 청소해라, 자꾸 지시만 합니다.”

“돈 꽤나 있는 남자이기 때문에 돈값을 하는 거예요. 돈이 없는데 어떻게 외제차를 사고, 차를 2년마다 바꿉니까. 마이너스 통장에도 한계가 있잖아요.”

“마이너스 통장에 있는 빚이 2천만 원입니다.”

“2천만 원 정도면 큰 빚이 아니에요.”

“얼마 전에 다니던 직장을 퇴사하고 이직을 했어요. 그러면 퇴직금이 있어야 할 텐데 퇴직금에 대한 이야기가 전혀 없습니다.”

“남편이 퇴직금을 나한테 갖다주고, 매달 생활비도 많이 주고, 마이너스 통장도 안 만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걸 몰라서 제가 이런 질문을 하는 게 아니에요. 남편의 인물은 괜찮아요?”

“괜찮습니다.”

“인물도 괜찮은 남자가 좋은 차를 타고, 밥 먹으러 갈 때 씀씀이도 괜찮으니까 그게 좋아 보여서 결혼을 했겠죠. 그래서 지금 남편이 얼굴값을 하고 있는 겁니다.”

“결혼하고 나서 제가 소형차를 하나 사주었는데 마음에 안 들었는지 3개월 만에 튜닝을 했습니다. 비용이 7백만 원 들었더라고요.”

“처음부터 좋은 차를 사주지 왜 그렇게 조그마한 차를 사주었어요?” (웃음)


“결국 튜닝을 하고도 싫증이 나서 다시 수입차를 샀어요. 그것도 1년 타다가 지금은 카니발을 타고 있는데, 지금은 전기차로 다시 바꾸겠대요.”

“차를 2년마다 바꾸면 안전상으로 좋아요. 전기차로 바꾸면 유지비가 적게 들어서 좋습니다. 나날이 발전해 가고 있네요.” (웃음)

“핸드폰도 1년마다 새 걸로 바꿔요.”

“핸드폰을 자주 바꾸면 동남아 사람들이 중고 휴대폰을 저렴하게 살 수 있어서 좋아요.”

“그런데 얘기를 들어보니까 질문자는 지금 자신의 남편을 계속 자랑하고 있는 것 같아요. 우리 남편은 이렇게 차도 좋은 것만 사고, 핸드폰도 좋은 것만 쓰는 멋쟁이라고 청중들 앞에서 자랑을 하고 있네요. 다만 질문자의 말을 잘 안 듣는다는 것이 문제라는 거죠?”

“네. 맞습니다.”

“남편이 멋쟁이라는 건 인정하네요. 그런데 멋쟁이 남자를 데리고 살려면 비용이 좀 듭니다. 제비 한 마리를 키우려면 비용을 지불해야 해요.”

“아들도 아직 어리고, 저도 이제 나이 오십을 바라보고 있거든요. 아들이 스무 살이 되면 저희가 환갑이에요. 지금 돈이 많이 들어갈 시기이기도 하고, 이제 노후 대책도 세워야 하는데…”

“고민은 충분히 알겠어요. 그런데 질문자가 남편에게 아무리 얘기를 한들 남편이 고쳐지겠어요?”

“남편을 고칠 수는 없습니다.”


“남편을 고칠 수 없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면, 남편과 이혼하고 혼자 살 것인지, 이대로 인정하고 같이 살 것인지, 이것밖에 현재로서는 선택의 길이 없어요. 남편을 고치는 것이 제일 좋아요. 그런데 남편은 누구도 못 고쳐요. 법륜 스님도 남편을 못 고칩니다. 스님이 남을 고칠 능력이 있다면 질문자의 남편을 고치느니 푸틴을 고치는 게 낫지 않겠어요? 그런데 푸틴도 지금 못 고치고 있는데, 질문자의 남편이 외제차 좀 샀다고 그걸 고치려고 신경을 쓰겠어요? 설령 스님이 남편을 고칠 능력이 있다고 하더라도 말입니다.

남편을 이대로 데리고 살겠는지, 이혼을 하는 게 낫겠는지, 이제는 내가 주인의 입장에서 이 상황을 받아들이고 선택해야 합니다. 첫째, 이혼을 하면 이만한 멋있는 남자를 다시 만나기가 쉽지 않아요, 둘째, 지금 나이 오십에 아들 하나 데리고 사는 여자와 결혼할 남자는 내 돈 뜯어먹을 남자밖에 없어요. 더군다나 한 달에 150만 원 주겠다는 사람은 더욱더 드물어요. 그리고 아들한테도 문제가 있든 말든 아빠하고 같이 사는 게 낫습니다. 아들한테 새로운 남자를 아빠라고 부르면서 살라고 하는 것도 많은 문제를 야기합니다. 이것저것 따져보면 결론을 내릴 수가 있어요.

쉽게 말해서 새 차인 줄 알고 좋아 보여서 샀는데 며칠 타고 보니 흠이 난 중고인 겁니다. 그래서 이 차를 팔고 다시 차를 사려는데 같은 가격에 이만한 차가 없는 거예요. 그럴 때는 지금 타는 차를 계속 타는 것이 그래도 낫다는 겁니다. 그것처럼 처음에는 남편이 괜찮은 사람인 줄 알았는데 같이 살아보니까 흠이 난 사람인 거예요. 그러니 흠이 났지만 같이 사는 게 낫겠어요? 버리고 다른 사람으로 바꾸는 게 더 낫겠어요?

남편이 내 돈을 가져간 것은 아니잖아요. 뿐만 아니라 150만 원을 매달 주잖아요. 아들에게는 아빠라는 존재가 필요하잖아요. 그러니 ‘나는 오늘 이혼했다. 너는 너의 인생을 살고, 나는 나의 인생을 산다’ 이렇게 속으로 마음만 먹고, 겉으로는 지금 이대로 사는 겁니다. 남편은 아무 문제가 없는 사람이에요. 어차피 이혼하고 혼자 살아도 질문자가 밥도 하고 청소도 해야 하잖아요. 그냥 내가 먹는 밥에서 숟가락 하나만 남자한테 더 얹어주면 되잖아요. 남편이 없다고 밥을 안 해 먹을 거예요? 청소도 안 할 거예요? 어차피 세탁기를 돌려야 하는데, 남편 옷까지 집어넣으면 되잖아요. 밥 할 때 쌀 한 주먹만 더 넣으면 되고, 상 차릴 때 숟가락 하나만 더 놓으면 되잖아요. 남편이 매달 150만 원씩 주는 값어치는 내가 하겠다고 생각하면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남편을 내가 원하는 대로 자꾸 바꾸려고 하기 때문에 싸우게 되는 거예요. 질문자가 남편을 포기해 버리면 아무 문제가 없어요.”

“남편과 더 이상 대화를 하고 싶지 않은데 자꾸 말을 시켜요. 대답을 안 하면 대답을 안 한다고 화를 내고, 대답을 하면 대답을 왜 그렇게 하냐고 짜증을 냅니다.”

“질문자가 기대를 자꾸 가져서 생긴 문제입니다. 남편이 대화하자고 하면 ‘네’ 하면 되고, 물으면 대답하면 되고, 안 물으면 대답하지 않으면 됩니다. 남편이 안 묻는데 뭐라고 말을 하니까 화를 내는 겁니다. 남편이 묻는데 대답을 안 하니까 짜증을 내는 거예요. 물으면 대답하고, 묻지 않으면 대답을 안 하면 됩니다. ‘월급이 얼마냐?’, ‘퇴직금 받았는데 어디에 썼느냐?’, ‘차를 왜 바꾸었냐?’, ‘택배가 왜 이렇게 많이 오느냐?’ 이렇게 묻지를 마세요. 요즘 MZ세대는 부부사이라도 그런 내용들을 절대 안 묻습니다. 월급이 얼마인지도 서로 안 묻고 각자 자기 통장을 갖고 삽니다. 질문자가 오늘부터 MZ세대가 되세요. (웃음)


그래서 제가 질문을 듣고 나서 가장 먼저 ‘질문자의 돈을 가져다 쓰느냐?’ 하고 질문을 한 겁니다. 질문자의 돈을 뺏어가는 게 아니라면 걱정할 필요가 없어요. 질문자가 그런 남자를 골랐을 때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돈이 없는 남자라면 인물이 좋아 보여서 결혼을 했다는 사실을 금방 알 수 있어요. 질문자처럼 똑똑한 사람이 바보 같은 짓을 하겠어요? 뭐라도 하나 있길래 그 남자를 골랐겠죠. 그러나 한 가지는 내 예상과 맞았는데 다른 것들은 기대치에 못 미치는 겁니다. 인물도 좋고 사람도 상냥하고 나만 쳐다보고 돈도 아낄 것이라고 온갖 기대를 했는데, 막상 같이 살아보니 인물 빼고는 아무것도 내 예상과 안 맞은 겁니다. 그래서 지금 실망을 하고 있는데 남편은 괜찮은 사람이에요. 내가 원하는 만큼이 아닐 뿐입니다. 남편은 괜찮은 사람이니까 그냥 같이 사세요. 그만한 남자를 다시 구하기는 어려워요. 그래도 이혼을 할래요?”

“이혼은 안 하겠습니다.”

“어디 가서 그런 멋있는 남자를 다시 구할 수 있겠어요? 새 차 타고 와서 ‘여보, 타!’ 이렇게 말하면서 드라이브를 시켜주는 남자를 어디 가서 만날래요? 그러니 아무 소리 하지 말고 같이 사는 게 제일 낫습니다. 절대 말대꾸도 하지 말고, 아무런 요구도 하지 마세요. 가만히 놔두면 괜찮은 사람이에요. 대화하는 중에 마음속으로 이혼을 했습니까?”

“네.”

“마음속으로만 이혼을 했다고 생각하고 살면 저절로 잔소리를 안 하게 돼요. 외간 남자한테 잔소리할 일이 없잖아요. 외간 남자가 생활비 150만 원을 주니 얼마나 고맙습니까. 고마우니까 밥 한 끼도 해주고, 빨래도 좀 해주세요. 가끔 연애도 같이 해주니 얼마나 좋습니까. 제비 한 마리 키우려면 비용도 많이 들고 위험 부담도 큽니다. 남편은 괜찮은 사람이니까 적당하게 데리고 그냥 사세요.”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스님과 대화를 나누며 질문자의 얼굴이 금세 밝아져 있었습니다. 계속해서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고등학생 3학년 아이가 자퇴를 시켜달라고 합니다. 부모로서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감정을 알아차리고 난 다음 단계가 궁금합니다. 부모님과 대화할 때 불편한 마음이 올라옵니다. 알아차려도 계속 불편한 마음이 올라오는데 그다음 단계가 있나요?

-출산율이 점점 저조해지는 것을 보면 대한민국이 점점 쇠락해지는 것 같아요. 자연스러운 역사의 흐름인가요?

-가족에게 너무 에너지가 많이 쓰여요. 늘 가족들 걱정을 하는데 언제쯤 가족들로부터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을까요?

-회사에서 임금도 체불하고 4대 보험료도 미납한 상태입니다. 화가 나서 잠도 안 옵니다. 어떻게 평정심을 찾을 수 있을까요?

-요즘 사람들이 주식과 가상화폐 투자를 많이 하는데요. 이런 현상을 어떻게 보시나요?

-어머니가 뇌경색으로 돌아가셨습니다. 돌아가신 어머니가 그립고 허망합니다. 어머니가 하늘나라에서 행복하게 사셨으면 좋겠는데 그 방법이 있을까요?

-2년 5개월 전 아내가 췌장암으로 두 달 만에 죽었습니다. 아내에게 미안해서 맛있는 것도 못 먹겠고 난방도 못 틀겠어요. 어떡하면 좋을까요?

-젊은 시절에 좋은 학교를 그만두고 공무원 시험에 낙방했습니다. 아직도 인생에 실패했다는 사실에 괴롭습니다. 현실이 받아들이기 어렵고 자신감이 없습니다.

각양각색의 질문에 대한 스님의 지혜로운 답변을 듣다 보니 어느새 마칠 시간이 되었습니다.

“직접 만나서 대화하니까 괜찮았어요? 온라인으로 듣는 것보다 나아요?”

“네, 훨씬 좋습니다.”

“그러면 강연 횟수를 조금 늘려보겠습니다. 다음 강연은 3월 22일에 수원에서 열립니다. 여기서 가까운 곳에서 하니까 그때 또 만납시다.”

오늘은 책 사인회를 열지 않기로 해서 대신에 스님이 입구에서 모든 참석자들과 한 명 한 명 악수를 나누어 주었습니다.

“조심히 가세요.”

“스님, 건강하세요.”

참석자들이 모두 강연장을 빠져나가고 스님은 오늘 강연을 준비해 준 인천 지역 행복시민들과 기념사진을 함께 찍었습니다. 모두 뿌듯한 얼굴로 ‘행복시민 파이팅’을 우렁차게 외쳤습니다.

스님은 수고했다며 봉사자들에게 악수를 건네고 강연장을 나왔습니다. 인천을 출발하여 차로 한 시간을 달려 10시 30분에 서울 정토회관에 도착한 후 하루 일과를 마무리했습니다.

내일은 오전에 하나금융그룹 임원들의 초청으로 조찬 강연회를 하고, 정토사회문화회관으로 돌아와 8일 출가열반재일 3일째 법회를 한 후, 오후에는 부탄 답사 준비 회의를 하고, 사단법인 세상과 함께 활동가들과 미팅을 할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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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달래

오늘도 감사합니다.()

2024-04-09 17:33:40

드림하이

“마음속으로만 이혼을 했다고 생각하고 살면 저절로 잔소리를 안 하게 돼요. 외간 남자한테 잔소리할 일이 없잖아요. 외간 남자가 생활비 150만 원을 주니 얼마나 고맙습니까. 고마우니까 밥 한 끼도 해주고, 빨래도 좀 해주세요. 가끔 연애도 같이 해주니 얼마나 좋습니까. 제비 한 마리 키우려면 비용도 많이 들고 위험 부담도 큽니다."

2024-04-03 22:59:49

보각

감사합니다

2024-03-25 18:5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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