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4.3.17 영어 즉문즉설, 출가재일 기념법문, 경전대학 입학식
“아픈 부모님을 저 혼자 돌보니 오빠들에게 화가 납니다”

▲ 오디오로 듣고 싶은 분은 영상을 클릭하세요

안녕하세요. 오늘은 음력 2월 8일로 부처님이 출가한 날입니다. 7일 후인 음력 2월 15일은 부처님이 열반하신 날입니다. 정토회에서는 출가일과 열반일을 맞아 8일간 매일 법회를 열고 300배 정진을 합니다. 오늘은 정진 첫째 날입니다.

새벽 기도와 명상을 마친 후 스님은 오전 8시에 외국인을 위한 영어 즉문즉설 생방송을 하며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전 세계에서 2백여 명의 외국인들이 생방송에 접속한 가운데 사회자가 활기차게 인사를 했습니다.

“Hello everyone! It’s good to have you join us.”

먼저 스님이 지난 12월에 필리핀 민다나오에 가서 장애인 학교와 원주민 학교를 짓고 준공식을 하고 온 모습을 영상으로 보았습니다.

▲ 영상 보기

이어서 스님이 인사말을 했습니다.

“영상 잘 보셨어요? JTS에서는 지난 한 해 동안 필리핀 민다나오에서 학교 네 곳을 준공했습니다. 우리가 조금만 절약해서 생활하고 작은 돈이지만 그것을 모으면 가난한 나라의 아이들이 공부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할 수 있습니다. JTS가 지금 활동하고 있는 필리핀 부키드논 주의 경우 3,500개 정도의 교실이 부족한데, 일 년에 학교를 지을 수 있는 정부 예산은 30개 교실 정도밖에 안 된다고 합니다. 그러니 일반 학생을 위한 학교를 먼저 지을 수밖에 없고, 아이들의 수가 적은 장애인 학교나 원주민을 위한 학교는 지을 여력이 없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함께 힘을 기울이면 장애 아동을 위한 특수 교실도 만들 수 있고, 적은 수의 원주민 지역 아이들에게도 교육의 기회를 줄 수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제가 필리핀 민다나오에 가서 올해 지을 학교를 답사해서 장애인 학교 4개와 원주민 학교 6개, 총 10개의 학교를 짓기로 합의하고 돌아왔습니다. 여러분들도 많은 관심을 가져 주시기 바랍니다. 전 세계에는 아직도 많은 아이들이 교육의 기회를 얻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조금만 노력하면 많은 아이들이 기본적인 교육이라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다음은 사전에 질문을 신청한 분의 질문을 받았습니다. 네 명이 손들기 버튼을 누르고 스님과 대화를 나누었는데요. 그중 한 명은 몸이 편찮으신 부모님을 혼자서 돌보고 있는데, 오빠들에 대해 미워하는 마음이 든다며 어떻게 수행을 해야 할지 조언을 구했습니다.

아픈 부모님을 저 혼자 돌보는데 오빠들에게 화가 납니다

“My question is about my relationship with my older brothers, who I got along with pretty well until about a year and a half ago when my parents got sick and I started doing most of the work taking care of my parents. About 6 months ago my father died and soon after I found myself angry with my brothers. I'm trying to let that go and I've had some success in letting the anger go, but then it comes back. I would like a little bit of peace around this issue. I understand that they are different people than I am, but it's just very hard for me to feel at peace with them right now.”
(제 질문은 오빠들과의 관계에 대한 것입니다. 부모님이 아프셔서 제가 부모님을 돌보는 일을 하기 시작한 약 1년 반 전까지만 해도 오빠들과 사이가 좋았습니다. 6개월 전에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오빠들에게 화가 많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화를 내려놓으려고 노력했고 어느 정도 성공했지만 다시 화를 내게 됩니다. 이 문제에 대해 조금이라도 편안해지면 좋겠어요. 그들이 저와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이해하지만 지금은 그들과 관계에서 편안한 기분을 갖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자식이 부모를 돌보는 일은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자식이 부모를 돌보는 것은 자연 생태계의 관점에서 볼 때 의무 사항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식이 부모를 돌보는 것을 의무 사항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는 의무를 다하는데 오빠는 의무를 다하지 않는다’ 하고 화가 나는 거예요. 다른 사람을 해치는 일은 하면 안 되는 금기사항에 속합니다. 그러나 남을 돕는 일은 하면 좋은 일이지만 반드시 하지 않아도 되는 선택사항에 들어갑니다.

부모가 어린 자식을 돌보는 것은 자연생태계를 봐도 의무 사항에 해당합니다. 개와 고양이도 자기 새끼를 돌봅니다. 그러나 자연 생태계에서는 새끼가 자라서 성체가 되면 어미든 자식이든 별개의 존재가 됩니다. 부모가 늙었다고 해서 자식이 부모를 돌보는 것은 자연현상에서는 없습니다. 성인은 자기 인생을 자기가 책임져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은 부모를 돌보거나 어려움에 처한 다른 사람을 돌볼 때가 있습니다. 이렇게 다른 동물들이 하지 않는 일을 인간은 하기 때문에 이것을 선한 일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선한 일은 권유를 할 수는 있지만 의무사항은 아닙니다. 어려운 이웃을 돌보거나 부모를 돌보는 것은 ‘하면 좋은 일’ 또는 ‘선한 일’이라고 칭찬하지만, 하지 않는다고 해서 나쁘다고 비난해서는 안 됩니다.

지금 질문자는 늙고 병든 부모를 돌보는 좋은 일을 하고 있지만, 오빠는 그런 일을 별로 하고 싶지 않은 거예요. 그래서 질문자는 좋은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오빠는 나쁜 사람이 아니라 좋은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좋은 일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나쁜 사람은 아니에요. 내가 부모를 돌보고 싶으면 돌보고, 돌보고 싶지 않으면 돌보지 않으면 되지, 다른 사람에게 그것을 대신하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물론 권유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하고 안 하고는 그의 자유입니다. 그러나 질문자는 지금 오빠들에 대해 ‘너는 왜 좋은 일을 안 하니? 너는 나쁜 사람이야!’ 하는 생각을 갖고 있어요. 그래서 화가 나는 겁니다.

‘좋은 일은 하면 좋고, 남에게 권유할 수도 있지만, 그것을 하지 않는다고 나쁜 사람은 아니다!’

이렇게 생각해야 합니다. 앞에서 본 영상처럼 JTS가 원주민들과 장애 아동을 위해 학교를 지었는데, 그 일을 위해 기부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기부하지 않았다고 해서 나쁜 사람은 아니잖아요. 그것처럼 오빠들도 나쁜 사람이 아니에요. 이렇게 관점을 바꾸어서 오빠들을 미워하지 않으면 화날 일도 없습니다. 오빠에게도 선택의 자유가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어요.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식이 부모를 돌보는 것을 좋게 생각하는 문화를 갖고 있으니 그렇게 하지 않는 사람을 자꾸 나쁘게 생각하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나쁜 사람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주위에 대다수의 사람이 교회를 다니면, 교회를 안 다니는 사람은 믿음이 없다고 나쁘게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교회를 안 다닌다고 나쁜 사람은 아닙니다.

화가 나는 이유는 ‘내가 옳다’ 하는 생각을 붙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옳고 그른 것이 아니라 관점이 서로 다를 뿐이다’ 이렇게 이해하시면 괜찮을 것 같아요. 더 질문하실 게 있나요?”

“Yes, I have a question about one of the ways that I'm trying to let the resentment die down, which is just not communicating with them very much. I feel a little guilty about that, but I was just wondering what you think about the strategy of not engaging with them so much right now.”
(네, 제가 분노를 가라앉히기 위한 방법 중 하나가 그들과 대화를 많이 하지 않는 것인데, 이에 대해 약간 죄책감이 들기도 하는데요. 지금 그들과 소통을 많이 하지 않는 것에 대해 스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대화하든 안 하든 그것은 내 자유입니다. 내가 미워하는 마음이 있어서 대화를 안 한다면 내 마음에 찌꺼기가 남아서 내가 불편합니다. 한편으로는 대화하고 싶은 마음이 있지만, 한편으로는 오빠가 부모님을 돌보지 않으니까 대화하기가 싫은 거죠. ‘대화해야 한다’, ‘대화하기 싫다’ 이 두 가지 마음이 갈등을 하니까 질문자의 마음이 불편한 겁니다. 이것은 오빠의 문제가 아니에요. 질문자에게 두 가지 마음이 있어서 지금 갈등을 일으키고 있는 겁니다.

오빠와 대화하든 안 하든 그것은 질문자의 자유이기 때문에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여기에서도 ‘형제간에는 대화해야 한다’ 하는 전제가 깔려있는데, 현실은 오빠가 얄미우니까 대화하기가 싫은 겁니다. 이런 모순 때문에 마음이 불편한 거예요. 우선 오빠가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서 오빠를 미워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다음에 오빠와 대화하고 안 하고는 질문자의 자유입니다.”

“Thank you. I appreciate it.”
(감사합니다.)

대화를 마치고 나니 오전 10시가 다 되었습니다.

다음 시간을 기약하며 생방송을 마치고, 곧이어 출가재일 기념법회 생방송을 시작했습니다. 정토회 회원들이 모두 화상회의 방에 입장하여 스님에게 삼배의 예로 법문을 청했습니다.

스님은 출가재일을 맞이하여 진정한 출가란 무엇인지 알려주었습니다.

“출가란 무엇일까요? 왜 집을 나설까요? 가출과 출가, 글자만 바뀌었을 뿐이지 같은 의미일까요?

출가와 가출의 차이

먼저 가출의 의미를 보겠습니다. 집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 집을 나갔지만, 외롭고 두려운 가운데 다시 더 좋은 집을 찾아들어가는 것을 가출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더 좋은 집이 있을까요? 보호도 되고 속박은 없는 집, 그런 집이 있을까요? 집이 좋으면 좋을수록 속박이 더 큽니다. 만약 여러분이 부잣집에 시집을 간다면 많은 걸 얻을 수 있겠죠. 그러나 그곳에는 더 많은 굴레가 있습니다. 여러분이 돈도 많고 인물도 좋은 남자를 결혼 상대로 선택한다면 더 많은 속박이 뒤따릅니다. 눈치도 더 많이 보고 살아야 합니다. 집의 굴레에서 벗어났지만, 또 새로운 집을 찾아 들어가고, 그곳에서 더 큰 굴레를 느껴 또 집을 나와 좀 더 좋은 집을 찾아가고, 막상 가서 살아 보면 더 큰 굴레가 있는 일이 반복됩니다. 이런 방식으로 집을 나가는 것을 가출이라고 합니다.

출가는 무엇일까요? 집은 안온함을 주는 보호처인 동시에 나의 자유를 속박하는 굴레입니다. 이렇게 집은 두 가지 성질이 동시에 있다는 것을 자각하면, 굴레를 짊어지면서도 안온한 삶을 살 것인가, 아니면 비록 여러 가지 어려움은 있지만 자유롭게 살아가는 야생동물의 길을 갈 것인가, 둘 중에 선택을 하게 됩니다.

여러분은 속박은 적고 자유는 많은 그런 집을 찾지만, 집은 안온함이 커질수록 속박이 커지는 속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진정으로 자유를 원하는 사람은 집이 주는 안온함을 포기해야 합니다. 집을 불살라 버려야 합니다. 더 좋은 집을 찾아 나가는 것이 아니고 집 자체가 갖는 모순을 알고 집을 불살라 버려야 합니다. 집을 불살라 버린다는 것은 다시는 이런 굴레의 집으로 들어가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나무 밑이나 동굴에서 잔다.’ ‘가족을 떠난다.’ ‘사회적인 지위를 떠난다.’ 이런 말들은 모두 집을 불살라 버린다는 의미입니다. 그렇게 되면 안온함이 없어지면서 굴레도 사라집니다. 그런데 중생은 그 안온함의 달콤함에 빠져 그걸 버리지 못하고 속박과 굴레를 스스로 짊어지고 살아갑니다. 속박으로부터 자유롭기를 끊임없이 원하면서도 사실은 그 안온함에 빠져서 벗어날 수가 없는 겁니다. 이게 중생입니다. 자유를 향해 나아가는 수행자는 집이 주는 그런 달콤한 안온함을 뛰어넘어 진정으로 자유로운 길로 나아갑니다.

더 좋은 집을 찾고 있나요?

여러분은 세속의 집이 있고, 가족이라는 집이 있고, 사회의 집인 직장 생활을 하고, 국가라는 집이 있어 군대도 갔다 오고 세금도 냅니다. 이렇게 외형의 집이 있어도 우리는 마음으로부터 출가를 할 수가 있습니다. 나는 집에 살지만 집이 좋고 나쁜 것에 구애받지 않는 겁니다. 집에서는 잠만 자면 됩니다. 나는 가족이 있지만 가족에 애착하지 않는 겁니다. 나는 직장에 다니지만 직장에 목을 매달고 집착하지 않는 겁니다. 나는 사회와 나라에 속해 있지만 세속적인 지위에 집착하지 않는 겁니다. 이처럼 외형은 집에 살고 있지만 마음에서는 출가를 한 사람을 재가수행자라고 부릅니다. 인도 말로는 남자 재가수행자를 우바새, 여자 재가수행자를 우바이라고 합니다.

반면에 집과 사회를 떠나 가족관계에도 집착하지 않고, 홀로 있어도 외롭지 않으며 사회적으로도 아무런 지위가 없고, 가진 것이 없어도 두렵지 않은 자유의 삶으로 살아가는 사람을 출가수행자라고 합니다. 출가수행자와 재가수행자의 공통점은 집에 집착하지 않는 마음의 자유입니다. 차이점은 출가수행자는 집을 떠난 것이고, 재가수행자는 집에서 생활하지만 집에 집착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신자는 좋은 집을 구하고, 좋은 사람을 구하고, 좋은 직장을 구하고, 승진하기를 원하는 사람입니다. 이러한 삶은 수행하고는 거리가 멉니다. 몸은 집에 있지만 집에 집착이 없는 사람이 수행자라면, 집에 집착이 많아서 더 좋은 집을 구하는 사람이 신자입니다.

정토회의 회원은 수행자이지 신자가 아닙니다. 재가수행자의 길도 괜찮고, 출가수행자의 길도 괜찮습니다. 그런데 재가에 있다 보면 견물생심(見物生心)으로 자꾸 더 좋은 집을 찾고, 더 좋은 사람을 찾고, 더 높은 지위를 찾게 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재가에 있으면서 집착을 놓는 수행을 하기가 어렵다는 사람은 출가수행을 하면 됩니다. 그런데 ‘나는 가정을 이루고 직장에 다니고 사업을 하고 살아도 전혀 거기에 대한 집착이 없다. 이래도 괜찮고 저래도 괜찮다’ 이런 마음이라면 재가 수행을 하면 됩니다.

진정한 자유와 진정한 행복을 향해 나아가는 데에 있어서 재가와 출가는 선택사항이라면, 공통점은 일단 출가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음에서 모든 애착을 놓아야 해요. 애착에 빠져서 ‘이게 낫다’, ‘저게 낫다’ 하며 비교하고 있다면 이것은 집착된 상태입니다. 여러분이 만약 이렇게 살고 있다면 그것은 이름만 수행자이지 실제로는 범부중생입니다. 우리는 출가를 해야 합니다. 수행자가 되려면 일단 먼저 출가를 해야 해요. 정토회는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우쳐서 자유와 행복으로 나아가는 수행공동체입니다. 이것을 자신의 정체성으로 삼으며 살아가야 정토회의 회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8일간의 용맹 정진을 시작하며

그런데 우리가 재가에 있다 보면 말이 쉽지, 현실적으로는 가족과 있다 보면 가족에 집착하게 됩니다. 옷을 입으면 옷에 집착하게 됩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애착의 먼지가 묻을 가능성이 있어요. 매일 아침 일어나서 정진하며 내가 수행자임을 자각하지만, 세상에 있다 보면 어느덧 물들기 쉽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적어도 부처님의 출가일부터 열반일까지 8일만큼은 출가의 그 정신을 다시 새기며 재발심하자는 취지에서 8일 출가·열반 정진을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 아무리 바쁘더라도 이 뜻을 생각하며 정성을 기울여 정진하시기를 바랍니다.”

법회를 마치고 이어서 바로 300배 정진을 시작했습니다. 정토회 회원들 모두가 온라인 방송을 켜놓고 유수 스님의 목탁 소리에 맞춰 한 배 한 배 절을 했습니다.


300배 정진을 하며 출가자의 초심을 다시 새기고 명상을 한 후 모둠별로 나누기를 했습니다.

방송실을 나온 스님은 텃밭으로 가서 농사일을 했습니다. 먼저 텃밭에 물을 주기 위해 우물과 연결한 호스를 고치는 일을 했습니다. 겨울 동안 수도관이 얼어터져서 모터를 고치고 수도관을 갈았습니다. 각종 도구를 갖고 전동모터와 연결된 수도관을 수리하니 마침내 호스로 물이 뿜어져 나왔습니다.




울력을 마치고 오후 2시부터는 정토경전대학 입학식을 시작했습니다. 3월 경전대학에 입학한 1,190여 명이 생방송에 접속했습니다.

먼저 입학생들의 소감을 들어본 후 경전대학 진행자들의 축하 공연을 영상으로 함께 보았습니다. 이어서 정토회 대표님의 환영사를 듣고, 선배 졸업생들의 소감을 들어본 후 다 함께 스님에게 입학 기념 법문을 청했습니다.

스님은 경전을 배운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지, 경전 공부를 하면서 일상에서는 어떻게 수행의 관점을 잡을 것인지에 대해 법문을 해주었습니다.

“불교는 긴 역사를 흘러오면서 사회성과 역사성을 점점 잃어가고 개인의 수행에만 집중이 되어 갔습니다. 부처님의 인격으로 볼 때 불교가 개인의 수행에만 집중이 된 가르침은 아닙니다. 이런 기존 불교를 비판하면서 일어난 것이 대승불교이기 때문에 대승불교는 사회성이 굉장히 높다고 할 수 있습니다. 수행의 목표가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 下化衆生)입니다. 즉 내가 깨달음을 얻어 괴로움이 없는 경지에 이르는 것과 고통받는 일체중생을 구제하는 것이 수행의 목표입니다. 이렇게 사회적 실천을 하는 것을 수행자의 자기 해탈과 동등한 위치로 올려두었습니다. 다른 말로는 ‘자리이타’라고 합니다. 나를 이롭게 하는 것이 곧 남을 이롭게 하는 것이라는 가르침을 강조했습니다.

경전대학에서는 무엇을 공부하는가

대승불교는 약간만 어긋나 버리면 개인 수행을 놓치기 쉽고, 소승불교는 자칫 잘못하면 사회성을 잃어버릴 위험이 있습니다. 소승불교가 사회성을 잃어버린 것에 대해서 비판하며 나온 것이 대승불교이기 때문에 대승불교는 중생을 애민 하는 사상이 조금 더 강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대승불교는 수행자를 ‘보디사트바’ 또는 ‘보살’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나 법화경이나 화엄경이 나오게 되면서 그 내용이 굉장히 현란해집니다. 실사구시적이라기보다는 너무 아름답지만 복잡하게 묘사되거나 너무 관념적으로 묘사되는 부작용이 나타나게 된 거죠.

중국으로 넘어가서는 대승불교가 지나치게 관념적이고 학파 중심적으로 나아갔기 때문에 삶의 현실을 직시하자고 하는 선불교가 일어났습니다. 선불교는 자기 수행 중심적으로 심플하게 변했습니다. ‘사람의 마음이 곧 부처다’ 이렇게 단순한 논리로 접근하는 새로운 종파가 선불교입니다.

만약 여러분들이 태국에 산다면 소승불교만 공부하면 되고, 일본에 산다면 대승불교만 공부하면 됩니다. 그러나 한국 불교는 주류가 선불교입니다. 선불교는 그냥 선불교만 공부할 수 없어요. 왜냐하면 선불교는 대승불교의 관념적인 문제를 극복하려고 나온 가르침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대승불교는 소승불교의 권위적이고 사회성이 없는 부분을 극복하려고 나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불교를 공부하기 위해서는 저절로 소승, 대승, 선 등 세계 불교를 다 공부할 수밖에 없습니다.

소승불교, 대승불교, 선불교의 가르침은 그 표현에 상반되는 것이 있지만 서로 일맥상통해야 함을 발견해야 합니다. 그래야 같은 부처님의 가르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경전을 공부할 때는 흥망성쇠를 거듭했던 역사에 대해서 공부를 안 할 수가 없습니다. 불교대학에서는 내 마음을 어떻게 다스리고, 이런 가르침을 준 부처님은 누구인가에 대해서 공부했습니다. 그러나 경전대학에서는 2600년간 불교가 흘러오면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를 요약적으로 공부하면서 내 마음공부를 점점 더 깊이 해나가야 합니다. 동시에 한국 불교는 어떤 역사를 가지고 있는지, 전 세계의 불교는 어떻게 분포하고 있는지까지 공부함으로 해서 여러분들의 인식의 폭을 넓혀나가는 것이 경전대학입니다.

제가 쉽게 설명하긴 하지만 요즘 사람들에게는 용어가 조금 생소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견문을 넓힌다는 차원에서 쉽게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공부해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다시 한번 경전대학에 입학한 것을 환영하고 축하드립니다. 꾸준히 정진해서 졸업할 때는 보다 더 성숙한 수행자, 보다 더 성숙한 세계시민이 되어 있길 바랍니다.”

사홍서원으로 입학식을 마친 후 참가자들은 교실별로 화상회의 방에 입장하여 첫인사와 자기소개 시간을 가졌습니다.

방송실을 나와 스님은 다시 텃밭으로 가서 농사일을 했습니다. 텃밭에 원추리가 파랗게 돋아나 있었습니다. 칼을 들고 원추리를 캐기 시작하자 금방 대야에 가득 담겼습니다.


그리고 상추 모종을 옮겨 심었습니다. 빈자리마다 상추를 빼곡하게 심은 후 파를 심어놓은 곳에 물을 흠뻑 준 후 농사일을 마무리했습니다.



해가 저물고 저녁 7시에 두북 수련원을 출발하여 서울로 향했습니다. 고속도로 위를 네 시간 달려 밤 11시에 서울 정토회관에 도착하여 하루 일과를 마무리했습니다.

내일은 오전에 8일 출가열반재일 2일째 법문을 한 후, 오후에는 중앙승가대학교에서 초청 강연을 하고, 저녁에는 인천광역시에서 시민들과 행복한 대화 즉문즉설 강연을 할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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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달래

오늘도 감사합니다. ()

2024-04-09 16:53:08

드림하이

오빠와 대화하든 안 하든 그것은 질문자의 자유이기 때문에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여기에서도 ‘형제간에는 대화해야 한다’ 하는 전제가 깔려있는데, 현실은 오빠가 얄미우니까 대화하기가 싫은 겁니다. 이런 모순 때문에 마음이 불편한 거예요. 우선 오빠가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서 오빠를 미워하지 않아야 합니다. "

2024-04-03 19:12:45

보각

감사합니다

2024-03-25 19: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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