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3.9.3 해외순회강연(3) 베를린(Berlin), 통일기행
“독일에 이민을 와서 학교 적응이 힘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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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2023년 법륜 스님의 해외순회강연 중 세 번째 강연이 독일 베를린(Berlin)에서 열리는 날입니다.

새벽 기도와 명상을 마친 후 5시에 콩나물 죽으로 아침 식사를 하고 뒤스부르그(Duisburg) 기차역으로 출발했습니다.

캄캄한 밤하늘에 밝은 달이 환하게 떠서 온 누리를 비춰주고 있었습니다. 뒤셀도르프에서 숙소와 식사를 도맡아 준 최순진 님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 후 기차역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6시에 출발하기로 되어 있던 기차가 1시간 연착이 되었습니다. 최근에 독일 철도 회사가 민영화되고 나서 시스템이 많이 불안정해졌다고 합니다. 날씨가 추워서 스님은 가방에 넣어 둔 옷을 꺼내서 입었습니다.

“한 여름에 이게 무슨 일일까요? 하늘이 에어컨을 너무 세게 틀어주네요.” (웃음)

스님은 추위를 이겨내기 위해 역사 끝까지 왕복으로 오가며 걷기 운동도 하면서 연착하는 기차를 기다렸습니다. 도착 시간을 알 수 없는 인도의 기차역에 온 기분이었습니다.


기차는 아침 8시 14분에 플랫폼에 도착한 후 베를린을 향해 출발했습니다.



스님은 잠깐 눈을 붙인 후 일어나서 신간 원고 교정을 보았습니다. 집중해서 원고 교정을 보아야 하는데 기차가 계속 흔들려서 원고 보기가 힘이 들었습니다.

뒤스부르그를 출발한 기차는 약 세 시간을 달려 11시 정각에 베를린 중앙역에 도착했습니다. 많은 사람들로 붐비는 기차역을 빠져나오니 성소현 님 부부가 마중을 나와 스님 일행을 반겨 주었습니다.


차에 짐을 싣고 성소현 님 댁으로 이동하여 점심 식사를 함께 했습니다. 남편인 미샤 님이 함께 정성껏 식사를 차려주었습니다.

짐을 풀고 세수를 한 후 오후 1시부터는 분단이 되어 있던 동독과 서독이 어떻게 통일을 하게 되었는지 그 역사적 현장을 가볍게 둘러보기로 했습니다. 안내는 베를린에 살고 있는 정토회 회원 한주연 님이 해주었습니다.


지하철을 타고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보른홀머 거리(Bornholmer straße)입니다. 통일 독일의 물꼬를 튼 역사적인 곳입니다.

지하철 역을 나오자 1961년부터 1989년까지 동독의 국경통과 지점이었던 뵈제다리(Bösebrücke)가 나타났습니다. 독일이 통일이 되는 순간 가장 처음으로 동독 사람들이 넘어갈 수 있었던 장소입니다.

1989년 11월 9일 국경제한이 풀린 그날을 기념하기 위해 이곳에는 아직도 그 시절의 장벽과 당시의 상황들을 담은 안내판이 세워져 있었습니다. 국경제한이 풀렸다는 것이 알려지자 많은 사람들은 베를린 장벽으로 달려갔고, 이곳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달려와 문을 어서 열라고 외쳤다고 합니다. 문이 열린 순간 얼마나 기뻐했는지를 당시 사진을 통해 느낄 수 있었습니다.


다시 지하철을 타고 찾아간 곳은 장벽 기념관입니다. 넓게 조성된 이곳에는 장벽의 설치부터 철거까지의 과정과 역사가 사진 자료와 함께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국경수비대는 경계벽을 세우기 위해 이곳에 있던 묘지 1000여 개를 없앴습니다. 묘지가 있던 자리에 교회에서 세운 기념비와 십자가가 아직도 세워져 있어 보는 이의 가슴을 아프게 했습니다. 스님은 십자가 앞에서 평화를 간절히 발원하는 기도를 했습니다.



공원의 한쪽에는 베를린 장벽으로 인해 생긴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공간이 있었습니다. 아주 어린아이부터 청년 그리고 노인들까지 차마 자세히 볼 수 없는 얼굴들이었습니다. 스님은 잠시 눈을 감고 합장하며 그들을 추모했습니다.


공원을 나와 기념관으로 향했습니다. 분단 시절 독일의 실상이 자세하게 전시가 되어 있었습니다.


1989년 11월 이후 사람들은 보고 싶은 가족과 친지를 자유롭게 만날 수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장벽이 무너지고 이제는 숨죽일 필요 없이 집집마다 꽃들이 자유롭게 피어나고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향한 곳은 브란덴부르크 문입니다. 분단 시절 동독과 서독의 경계 지점에 위치해 있었으며 독일이 통일되면서 자연스럽게 독일의 상징이 된 곳입니다. 독일의 주요 역사적 사건들이 일어난 장소이기도 하죠. 통일기행을 함께 한 분들과 브란덴부르크 문 앞에서 기념사진을 촬영한 후 안내를 해준 분에게도 감사 인사를 했습니다.


독일 연방의회를 지나 다시 지하철과 버스를 갈아타고 강연장으로 이동했습니다.


오늘 스님이 교민들을 만나 강연을 하는 장소는 ‘주겐더베르게 베를린 인터내셔널(Jugendherberge Berlin-International)’이라고 하는 호스텔 건물입니다.

오후 3시 30분에 강연장에 도착해 봉사자들과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일찌감치 강연장이 가득 차자 한국을 출발하여 오늘에 이르기까지 스님의 해외 순회강연 여정을 영상으로 함께 보았습니다. 영상이 끝나고 4시 30분에 스님이 무대 앞으로 걸어 나왔습니다.

뜨거운 환호와 박수갈채가 쏟아졌습니다. 스님은 부탄을 방문하고 온 소감을 이야기하면서 기후 위기 시대에 우리 인류가 어떤 삶을 지향해야 하는지 이야기하며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요즘 갈수록 기후 위기가 심해지고 있습니다. 전 지구 역사에서 볼 때 기후 변화는 지금보다 더 심할 때도 있었습니다. 급격한 기후변화로 인해 당시 가장 주류를 형성하던 생물들이 멸종하고 새로운 종이 출현했습니다. 그래서 지구 차원에서 볼 때 지금의 기후 변화를 위기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인간이 다 죽었다고 해서 지구가 위기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 인류가 위기에 처했다고는 말할 수 있겠죠.

기후 위기를 막기 위한 실천

지금의 기후 조건에서 급격한 변화가 일어나면 현재의 주류종인 인간이 많은 고통을 겪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인간이 그런 고통을 면하고 지속가능한 삶을 유지하려면 소비 수준을 줄여야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소비 수준을 줄이는 걸 감내하실 수 있겠습니까? 우선 화장을 안 해야 합니다. 머리카락에도 물을 안 들여야 해요. 더 이상 새 옷을 사면 안 돼요. 음식도 어지간하면 요리하지 말고 먹어야 해요. 왜냐하면 기후 변화를 막으려면 CO2를 최소로 발생시켜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곳 독일에서는 지난 5월 1일부터 자동차 에너지를 절약하기 위해 49유로에 대중교통을 무제한 이용할 수 있는 티켓 사용을 시작했다고 들었어요. 한국 돈으로 7만 원을 내면 대중교통을 마음대로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하는데, 맞습니까?”

“네, 맞습니다.”

“이런 것도 기후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국가의 정책이라고 할 수 있겠죠. 이런 것처럼 이제는 전 세계가 소비주의를 극복하는 방향으로 아이디어를 내고 대안을 만들어가야 합니다.

그런데 소비주의를 가장 잘 극복하신 분이 누굴까요? 바로 부처님입니다. 왕궁의 호화로운 생활을 버리고 밥은 얻어먹고 옷은 주워 입고 잠은 나무 밑에서 잤습니다. 검소하면서 행복하게 살뿐만 아니라 남을 돕는 모범을 우리한테 보여주셨습니다. 우리가 그렇게까지는 못한다고 하더라도 지금보다는 소비 수준을 줄여서 지속가능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요? 이제 ‘더 많이 생산해서 더 많이 소비하는 것이 잘 사는 것이다’ 하는 소비주의는 이제 폐기해야 할 날이 가까워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정토회가 부탄에서 만들어보고자 하는 것도 바로 소비를 적게 하면서 행복하게 살아가는 삶의 모델입니다. 며칠 전 부탄을 방문하고 와서 여러분께라도 이런 얘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자, 그럼 대화를 시작해 봅시다.”

이어서 질문을 받았습니다. 현장에서 질문을 받다 보니 오늘은 10명이 스님과 대화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그중 한 명은 고등학생이었는데요. 독일에 이민을 와서 학교생활에 적응하기가 힘들다며 답답한 마음을 이야기했습니다.

독일에 이민을 와서 학교 적응이 힘듭니다

“저는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중국에서 다녔고, 고등학생이 된 다음 독일로 이민을 왔습니다. 엄마에게 계속 끌려다니다 보니까 한국에 너무 가고 싶고, 학교도 다니기 싫고, 적응도 안 되고, 언어도 다시 배워야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서 맨날 쫓기는 악몽을 꿉니다. 너무 힘들어서 오늘 스님께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어떡하면 좋을까요?”

“질문자는 몇 살이에요?”

“만 열일곱 살이에요.”

“독일에서는 성년이 몇 살부터예요?”

“만 열여덟부터예요.”

“그러면 질문자가 성년이 되려면 아직 1년이 남았네요. 1년 동안은 찍소리 하지 말고 엄마가 하자는 대로 따라 하고, 1년 뒤에는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됩니다. 내년부터는 성년이 되기 때문에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해도 아무 문제가 없어요. 어떻게 생각해요? 1년도 못 견디겠어요?”

“...”

“앞으로 90살까지 산다고 생각하면 이제 남은 70년 동안은 자유롭게 내 마음대로 하고 살 수 있는데, 앞으로 1년 동안만 엄마 말을 들으면 됩니다. 만약 1년도 못 견디겠다 싶으면 지금이라도 엄마로부터의 모든 지원을 끊고 독립을 선언하면 돼요.”

“네, 감사합니다.”

“어떻게 할 거예요? 1년 있다가 독립을 선언할 거예요, 지금 당장 독립을 선언할 거예요?”

“사실 저는 엄마와의 관계 때문에 고민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학교생활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것이 고민입니다.”

“학교생활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을 일이 뭐가 있어요?”

“적응이 안 돼요.”

“왜 적응이 안 돼요? 구체적으로 어떻게 적응이 안 되는지 이야기를 해봐요.”

“일단 언어 때문에 어려워요.”

“이 나라에 처음 왔는데 어떻게 말을 잘할 수가 있습니까. 못하는 게 너무 당연하죠.”

“너무 당연한데도 불구하고 학교에서는 이런 저를 이해해주지 않아요.”

“이해를 안 해주면 어때요?”

“그래서 힘듭니다.”

“상대방이 이해를 못 하면 상대방이 힘들지 질문자가 힘들 게 뭐가 있어요? 제가 앞니가 조금 튀어나왔잖아요. 예전에 법문을 들으러 온 사람이 제 앞니가 보기 싫었는지 ‘스님, 이빨 교정을 조금 하셔야겠어요’ 하고 말하기에 제가 ‘누구 좋으라고요?’ 하고 대답했습니다. (웃음)

저한테는 저의 앞니가 안 보입니다. 그런데 왜 제가 교정을 해요? 저한테는 앞니가 어떻게 생겼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음식을 잘 씹을 수 있는지가 중요합니다. 음식을 씹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으면 저한테는 앞니가 문제가 안 돼요. 그런데 그걸 보는 상대방이 불편한 거잖아요. 그래서 제가 ‘당신이 보기 싫으면 당신이 돈을 내라’ 이랬더니 자기가 내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빨을 교정하는 데 기간이 얼마나 걸리는지 물어보니까 1년 동안은 철사로 묶어놓고 지내야 된대요. 그렇게 지내는 게 얼마나 불편한 일입니까? 그래서 제가 그 불편을 감수하는 보상비도 내라고 했더니 그건 안 준대요. 결국 교정을 안 하게 되었거든요. (웃음)

그것처럼 학교에서 누가 질문자를 이해하지 못하면 그 사람이 답답하지 질문자가 답답할 일이 없어요. 답답함을 느낄 때 어떤지 가만히 살펴보세요. ‘저 사람은 왜 저래?’, ‘어떻게 저런 사람이 다 있어?’ 이렇게 내가 상대방을 이해하지 못하면 내가 답답해요, 상대방이 답답해요?”

“내가 답답해요.”

“내가 답답합니다. 그런데 ‘아, 그 사람이 그래서 그랬구나’ 이렇게 상대방을 이해하고 나면 누구 가슴이 시원해요?”

“내 가슴이 시원해요.”

“남을 이해하지 못하면 내가 답답하고, 남을 이해하면 내가 좋은 거예요. 나에게 좋기 때문에 남을 이해하라고 하는 겁니다. 지금 제가 하는 이 말도 누구 좋으라고 하는 겁니까?”

“나 좋으라고요.”

“다 나 좋으라고 하는 얘기예요. 여기 꽃 한 송이가 있습니다. 꽃을 보면서 ‘이야! 꽃이 참 예쁘네’ 이러면 꽃이 좋아요, 내가 좋아요?”

“꽃이 좋아요.”

“정말 그렇습니까? 다시 질문해 볼게요. 바다에 가서 ‘이야! 바다가 참 예쁘네’ 이러면 바다가 좋아요, 내가 좋아요?”

“내가 좋아요.”

“산을 보고 ‘이야! 산이 진짜 예쁘다’ 이러면 산이 좋아요, 내가 좋아요?”

“내가 좋습니다.”

“꽃을 보고 ‘이야, 꽃이 참 예쁘다’ 이러면 꽃이 좋아요, 내가 좋아요?”

“그때는 꽃이 좋을 것 같아요.” (모두 웃음)

“대답하는 걸 보니 수준이 좀 모자라서 자립을 하기는 어렵겠어요. (웃음) 내가 꽃이 예쁘다고 말한다고 해서 그걸 꽃이 어떻게 알아들어요? 그러니 꽃을 좋아하는 마음을 내는 내가 좋은 거예요. ‘당신 사랑해’ 하면 상대방이 좋을까요, 내가 좋을까요?”

“내가 좋아요.”

“방금 법륜 스님이 들어올 때 박수를 치면 법륜 스님이 좋을까요, 여러분이 좋을까요?”

“저희가 좋아요.”

“여러분이 좋은 거예요. 좋아하는 마음을 내면 결국 내가 좋은 거예요. 예를 들어, ‘당신 사랑해’ 하면서 상대를 껴안았다고 합시다. 상대방을 사랑하면 내가 좋은 것이지, 상대방도 좋다는 보장이 없잖아요. 상대가 나를 안 좋아할 때, 내가 좋다고 무턱대고 상대를 껴안으면 오히려 상대방한테 고통이 됩니다. 그게 곧 성추행이에요. 내가 상대를 사랑하는 것은 나에게 좋은 일이지, 상대방도 좋을 것이라는 아무런 보장이 없습니다. 실제로 상대의 의사를 고려하지 않는 행동은 상대에게 고통으로 다가갈 때가 많아요.

예수님이 세상 사람들을 사랑하라고 말씀하신 것은 세상 사람들을 위해 살라는 뜻일까요? 나에게 좋은 삶을 살라는 뜻일까요? 나에게 좋은 삶을 살라는 뜻입니다. 나에게 좋은 삶을 살려면 내가 세상 사람들을 사랑하고 이해해야 합니다. 내가 속 편안하게 살려면 내가 세상 사람들을 이해해야지, 세상 사람들이 나를 이해해야 하는 게 아닙니다.

선생님이나 학교 친구들이 질문자를 이해하지 못하면 그들이 답답할 일이지, 질문자 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는 일이에요. 자기들이 답답해서 죽든지 말든지 그건 그들의 일이에요. 그냥 나는 내 입장에서 ‘내가 말을 잘 못하니까 저런 반응을 보이는구나’ 하고 그들을 이해하면 됩니다. 그들이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나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일입니다.

질문자가 ‘나를 이해해 주세요’ 하는 마음을 갖는 것은 노예근성이에요. 상대의 이해를 구걸하는 것과 같습니다. ‘나에게 돈 좀 주세요’ 하는 것이나 ‘나 좀 잘 봐주세요’ 하는 것이나 모두 상대방에게 구걸하는 행위예요. 뭐가 부족해서 인생을 구걸하면서 살아요? 내가 먼저 사랑하고, 내가 먼저 도와주고, 내가 먼저 베풀어주고, 내가 먼저 이해해 주는 것이 주인의 삶입니다.

독일에 온 지 1년밖에 안 됐으면 독일어를 잘 못하는 것이 너무 당연해요. 그러니 아는 만큼 말하고, 모르면 모른다고 하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다른 건 또 뭐가 문제예요?”

“그것 말고는 다 괜찮아요. 고민이 해결됐어요. 이제 내일부터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열심히 하면 안 돼요. 게임을 집중해서 하고 있을 때 옆에서 사람들이 그걸 보고 게임을 열심히 한다는 말을 할까요?”

“그런 말을 안 해요.”

“그런데 하기 싫은 공부를 앉아서 계속하고 있으면, 옆에서 사람들이 그걸 보고 ‘열심히 한다’ 이렇게 말해요. 하고 싶은 일을 할 때는 열심히 한다는 말을 안 하고 집중한다고 합니다. 그러니 열심히 하면 안 돼요. 열심히 한다는 것은 하기 싫은 걸 억지로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스트레스를 받게 됩니다.

여러분의 인생이 힘든 이유는 열심히 하기 때문입니다. 스님은 인생이 힘들지 않은 이유가 여러분처럼 열심히 안 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무슨 일을 해도 놀기 삼아 합니다. 강연도 이렇게 놀기 삼아 하기 때문에 전혀 힘들지 않습니다. 지금도 저는 여기서 여러분과 노는 거예요.

그것처럼 질문자도 학교 가서 그냥 놀아요. 학교 가서 놀라는 말은 공부를 하지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공부도 놀이 삼아서 하고, 운동도 놀이 삼아서 하고, 독일어를 배우는 것도 놀이 삼아서 하는 겁니다. 모르면 모른다고 하면 됩니다. 그것도 모르냐고 핀잔을 주면 ‘여기에 처음 왔는데 그걸 어떻게 아냐? 너는 처음부터 다 잘했냐?’ 하고 말하면 됩니다.”

“네, 감사합니다.”

“지금 독립할 거예요, 1년 후에 독립할 거예요?”

“1년 후에 독립하겠습니다.”

“그러면 1년 동안은 딴소리를 하면 안 돼요. 1년 후에는 성인이 되니까 엄마 말을 들을지 말지 내가 선택하면 됩니다. 1년 후에는 엄마와 계약 관계를 맺게 되는 거예요. 엄마로부터 지원을 받으면 지원받은 것에 대해서는 간섭을 받아야 합니다. 회사에 취직을 하면 월급을 받는 대신 회사의 지시 사항을 따라야 하는 것과 같습니다. 엄마이기 때문에 말을 듣는 게 아닙니다. 1년 후부터는 성인과 성인 사이의 계약 관계가 되는 것이기 때문에 밥을 얻어먹거나, 방을 얻어서 지내거나, 학비를 지원받게 되거나 하면, 그에 상응하는 엄마의 말을 들어야 합니다. 엄마의 말을 들어야 할 의무가 있어서 듣는 게 아니라 계약 관계이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지원을 받으려면 말을 좀 들어야 하고, 말을 안 들을 거면 지원을 받지 않고 집에서 나가면 됩니다. 만약 스님이 질문자한테 장학금을 주면 장학금을 받는 만큼 스님의 눈치를 보면서 공부를 해야 될까요, 공부를 안 해도 될까요?”

“공부를 해야 됩니다.”

“그래요. 이런 관계를 계약 관계라고 합니다. 지금은 엄마가 미성년자인 질문자를 돌봐야 할 책임이 있고, 대신 질문자는 보호자의 말을 들어야 할 의무가 있는 거예요. 그러나 1년이 지나면 그 관계는 끝이 나고, 이제는 성인과 성인 사이의 계약 관계가 됩니다.

내년에 성인이 되었다고 해서 곧바로 내 마음대로 하겠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자기 마음대로 하려면 그 대신 먹고 입고 자는 것을 스스로 해결할 수 있게 독립을 해야 합니다. 엄마로부터 후원을 받으면 후원을 받는 만큼은 간섭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내 마음대로 하고 싶으면 아무런 후원을 받지 말아야 해요. 후원해 주는 사람은 자기 나름대로 기대가 있어서 후원해 주는 겁니다. 그러니 후원을 받을 때는 그만큼 그 사람의 말을 들어야 해요.”

“네, 감사합니다.”

“질문자는 어릴 때 중국에서 지냈고, 지금은 독일에서 지내니까, 아직 잘하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한국말, 중국말, 독일말은 할 줄 알겠네요. 3개 국어를 하는 사람이 독일에서 태어나서 평생 독일어만 한 사람만큼 독일어를 할 수 있을까요, 없을까요?”

“없어요.”

“3개 국어를 하는 사람이 중국에서 평생 중국어만 한 사람만큼 중국어를 할 수 있을까요, 없을까요?”

“없어요.”

“그리고 질문자는 한국에서 평생 한국어만 한 친구들보다는 한국어가 부족할 겁니다. 한 개의 우물을 파면 조금 깊이 팔 수 있습니다. 대신 여러 개의 우물을 파면 한 개의 우물을 파는 것보다 얕게 팔 수밖에 없습니다. 이게 진실이에요. 그런 것처럼 내가 한국말도 한국 사람보다 못하고, 중국말도 중국 사람보다 못하고, 독일말도 독일 사람보다 못한다고 열등하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나는 여러 가지 언어를 하기 때문에 한 가지 언어만 하는 사람보다는 깊이가 약할 수밖에 없어요. 이걸 사실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러니 독일어를 잘 못하는 걸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건 당연한 거예요. 그러나 앞으로 독일에서 10년, 20년 지내면 독일 사람들만큼은 아니어도 비슷한 수준이 될 겁니다. 시간이 좀 필요한 겁니다. 자전거를 처음 타는 사람이 어떻게 한 번에 잘 탈 수 있겠어요. 처음에는 넘어지면서 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넘어지는 것이 곧 타지는 것입니다. 그런 것처럼 지금 서투른 것이 곧 익숙해지는 길입니다. 서투름을 거쳐서 익숙해지는 것이지 어떤 사람도 서투름을 거치지 않고 익숙해지는 경우는 없습니다.”

“정말 많은 도움이 됐어요. 감사합니다.”

질문자가 환하게 웃자 청중 모두가 박수갈채를 보냈습니다.

계속해서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얼굴이 밝아질 때마다 박수가 쏟아졌습니다.

강의는 예정된 두 시간을 훌쩍 넘어 30분을 연장했습니다. 더 질문하고 싶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다음을 기약하며 스님이 정리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특히 마지막 열 번째 질문자가 한국에서 일어나는 정치적 쟁점들을 언급하며 답답한 마음을 이야기했는데요. 이에 대해 스님의 생각을 이야기하며 강연을 마쳤습니다.

“세상은 늘 변합니다. 여러분들 중에 '요즘 세상이 너무 복잡해졌다' 하고 말하는 경우가 많은데 세상이 갑자기 복잡해졌을까요, 여러분이 이해를 잘 못 하는 걸까요?”

“이해를 못 하는 겁니다.”

“예전에는 내가 갖고 있던 인식의 틀만 갖고도 ‘이건 이래야 되고, 저건 저래야 된다’ 하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세상이 이해가 잘 됐어요. 그런데 세상이 급변하다 보니까 과거에 내가 갖고 있던 인식의 틀로는 이해가 잘 안 되는 일이 계속 생기는 겁니다. 그러면 내 인식의 틀을 바꿔야 하는데도 여러분은 세상이 복잡해졌다고 자꾸 생각하는 거예요. 내가 갖고 있던 인식의 틀로 남편이나 아내가 이해가 안 되면 '저 인간이 요새 변했다' 이렇게 인식을 하는 것과 같습니다.

급변하는 세상, 우리는 어디로 나아가야 할까요?

지금 우리가 가진 인식의 틀은 대부분 어릴 때 형성된 것입니다. 그런데 사회가 빠른 속도로 바뀌니까 내가 가진 인식의 틀로는 세상이 이해가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종말론이 나오고 말세라는 얘기가 나오는 겁니다.

법륜 스님은 지리에 대해서 엄청나게 밝습니다. 만약 제가 가진 지리에 대한 지식만큼 여러분들이 습득하려면 20년을 공부해도 어려울 거예요. 그런데 내비게이션과 구글 지도가 나오니까 저의 능력이 아무 쓸모가 없어졌어요. 누구나 다 목적지만 입력하면 가장 빠른 길을 알려주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그것처럼 오늘날 한국사회의 변화도 자꾸 과거의 틀을 기준으로 문제라고 보시면 안 됩니다. 이렇게 변하는 것은 그럴만한 요인이 있어서 변하는 거예요. 특정한 어떤 사람이 나빠서 일어나는 변화가 아닙니다.

한반도의 평화도 길이 없는 게 아니고, 저출산 문제도 길이 없는 게 아니고, 자살률을 낮추는 것도 길이 없는 게 아닙니다. 자살률을 낮추려면 어떻게 해야 될까요? 심리상담사를 모든 학교에 배치하면 됩니다. 육체의 건강을 위해서는 모든 학교에 영양사를 배치하듯이, 전국의 모든 동네마다 보건 의료 전문가를 배치하듯이, 모든 학교에 심리상담사를 배치해서 정신 건강이 안 좋은 사람을 조기에 발견해서 치료하면 자살률을 3분의 1 정도는 줄일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안 하고 있잖아요.

아이들이 조금 불안정하면 바로 정신과 검진을 해서 어릴 때부터 치료해야 합니다. 그런데 한국 사람들은 정신병 발병률은 선진국과 비슷한데 정신과 약의 소비는 선진국의 10분의 1 정도밖에 안 됩니다. 아예 병원에 안 데려가고, 검진을 해도 치료를 안 하고, 가능한 기록을 안 남기려고 해요. 기록이 남으면 우리 아이에게 나중에 문제가 생길까 봐 그런 겁니다. 이런 어리석은 생각 때문에 해결이 안 되는 것이지 해결책이 없는 게 아니에요.

아이들의 정신건강이 왜 자꾸 나빠질까요? 엄마의 심리가 불안정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여성이 아기를 낳으면 3년 동안은 남자가 군대 가는 것과 똑같이 생각해서 3년 유급휴가를 주면 어떨까요? (모두 박수)

정말 아기가 중요하다면 그렇게 해야 합니다. 직장 다니면서 사무를 보는 것보다 아이 하나 잘 키우는 게 더 중요하다면 국가가 그걸 지원해야죠. 그런데 그렇게 안 하잖아요.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연간 몇십 조원을 쓰는데 출산율은 계속 내려가고 있습니다.

악을 쓰고 저항을 한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이제는 여러분이 세상을 좀 더 넓게 보면 좋겠어요. 기후 위기, 한반도의 전쟁 위험, 인간의 정신적인 방황 등 좀 더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서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이에 비해 그 중요도가 떨어지는 정치적인 쟁점에 대해서는 너무 몰입을 안 했으면 좋겠어요. 국내의 정치적인 쟁점은 한국 안에 사는 사람들이 해결할 일입니다. 해외에 나와 있는 여러분은 한반도의 통일과 평화, 기후 위기에 대한 대응, 현대인들의 정신적인 방황 등 이런 근원적인 문제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가져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강연을 마치고 저녁 7시부터 책 사인회를 했습니다. 스님은 사인을 받기 위해 길게 줄을 선 분들과 일일이 눈을 맞추며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청중들이 모두 강연장을 빠져나가고 스님은 강연을 준비해 준 봉사자들과 만남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각자 어디에서 왔고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자기소개를 한 후 가볍게 소감을 나누었습니다.

강연장 뒷정리를 마치고 다 함께 성소현 님 댁으로 돌아와서 저녁 식사를 하며 대화를 이어갔습니다. 오랜만에 스님을 가까이에서 마주할 수 있다는 사실에 모두들 기뻐했습니다.

그러나 내일 새벽 일찍 스님이 전법회원 법회를 해야 해서 아쉽지만 기념사진을 찍고 일찍 작별을 했습니다. 봉사자들이 돌아가고, 스님은 일찍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내일은 새벽 2시에 기상하여 주간반 전법회원 법회를 생방송하고 6시에 기차를 타고 베를린을 출발하여 뮌헨으로 이동합니다. 뮌헨에 도착해 저녁반 전법회원 법회를 생방송하고, 스위스에서 온 심리학자 피셔 님과 대화한 후 저녁에는 뮌헨에서 해외순회강연 네 번째 즉문즉설을 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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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서

사랑을 하면 무엇보다 자신이 좋다는, 베푸는 사람이 받는 사람보다 행복하다는... 시선을 자신으로 돌리라는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이 진리를 왜 거꾸로 알고 있었을까요 사랑하며 베풀며 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스님

2023-09-27 06:52:55

오정숙

스님의 명쾌하신 말씀 고맙습니다.

2023-09-25 07:09:31

윤정애

감사합니다. 잘 보았습니다.

2023-09-11 17:5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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