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3.9.1 해외순회강연(1) 프랑크푸르트(Frankfurt)
“한국에서는 절에 가야 하고, 독일에서는 교회를 가야 하고, 어떡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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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2023년 법륜 스님의 해외순회강연 중 첫 강연이 독일 프랑크푸르트(Frankfurt)에서 열리는 날입니다.

어젯밤 9시에 델리 공항을 출발한 비행기는 자정에 아부다비 공항을 경유했습니다. 오늘도 숙소는 공항과 비행기 안입니다.




다시 새벽 2시 15분에 아부다비 공항을 출발한 비행기는 밤새 하늘을 날았습니다. 스님은 비행기 안에서 새로 출간하는 책의 원고 교정을 보았습니다. 비행기 창문으로 아침 햇살이 비칠 무렵 독일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수하물을 찾고 아침 7시가 넘어서 프랑크푸르트 공항을 나왔습니다. 유럽 강연 총괄을 맡은 추희숙 님 부부와 숙소와 식사를 담당한 김미경 님이 스님을 반갑게 환영해 주었습니다.


공항을 나와 에어비앤비(airbnb)로 대여한 공항 근처 아파트로 향했습니다. 숙소에 도착하자 추희숙 님과 김미경 님이 스님에게 삼배로 인사를 했습니다.

“반갑습니다. 잘 지내셨습니까?”

짐을 풀고 김미경 님이 정성껏 준비한 야채죽으로 아침식사를 한 후 스님은 잠시 휴식을 취했습니다. 한국에서 출발하기 전 농사일을 무리하게 했더니 아직 허리의 근육통이 풀리지 않고 있습니다.

독일 현지 시간으로 12시 30분, 한국 시간으로 저녁 7시 30분에 금요 즉문즉설 생방송을 시작했습니다. 해외에서 계속 이동을 해야 하는 일정이지만 온라인으로 하는 정기 법문은 어떻게든 꼬박꼬박 챙겨서 하고 있습니다.

조명을 환하게 밝히고 유튜브 스트리밍을 시작하자 5300여 명이 생방송에 접속했습니다. 스님이 환하게 웃으며 인사말을 했습니다.

“저는 오늘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도착했습니다. 지난 8월 29일에 서울을 출발해서 하노이와 인도 캘커타를 거쳐서 부탄을 방문했습니다. 부탄 국왕과 면담을 해서 기후 위기 시대에 인류가 지속가능한 삶을 살 수 있는 새로운 모델을 부탄에서 한번 만들어보자고 제안하고, 왕실과 내각 책임자들을 만나 그에 대한 실무 논의를 했습니다.

‘기후 위기 시대에 과연 우리는 어떤 수준의 삶을 살아야 탄소 제로의 삶이 가능한가?’

이에 대해 얘기만 할 게 아니라 구체적으로 어느 지역에 그 모델을 만들어야 할지 많은 논의를 해나가고 있습니다. 물론 이 프로젝트가 성사될지 안 될지는 아직 모르지만 희망을 가지고 일을 해가고 있습니다.”

스님의 근황을 공유한 후 곧바로 즉문즉설을 시작했습니다. 사전에 네 명이 질문을 신청하고 스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대화를 마치고 나서 지난 2박 3일 동안 스님이 부탄에서 한 일을 영상으로 함께 보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질문자들이 한 줄 소감을 이야기했습니다.

“스님께서 부탄에서 하고 계시는 일을 들으니 너무 놀라웠습니다. 인류의 미래를 위해 부탄 개발 프로젝트가 잘 성사되기를 기원드립니다.”

생방송을 마치며 스님이 닫는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저는 부탄 개발 프로젝트를 성사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성사가 될지 안 될지는 모르는 일입니다. 성사가 되면 성사가 되어서 좋고, 성사가 안 되면 성사가 안 되어서 좋습니다. 성사가 되면 일이 엄청나게 많아집니다. 많은 실험을 해야 하니까요. 성사가 안 되면 바쁘지 않아 다른 일을 할 수 있어 좋습니다. 인생이란 꼭 이래야 되는 게 아닙니다.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습니다. 그 속에서 우리는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확률적으로 더 나은 결과가 나오는 쪽으로 가야 좀 더 효과적인 길을 갈 수 있겠죠.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고!

저는 오늘 프랑크푸르트를 시작으로 내일은 뒤셀도르프, 모레는 베를린, 그다음 날은 뮌헨, 그다음 날은 파리, 그다음 날은 런던으로 갑니다. 그리고 시애틀로 들어가서 밴쿠버에 갔다가 다시 또 시애틀로 왔다가 로스앤젤레스로 갔다가 샌디에이고로 갔다가 다시 샌프란시스코로 갔다가 댈러스로 갑니다. 이렇게 매일 하루에 한 도시를 이동하며 즉문즉설 강연을 이어나갈 계획입니다.

주위 사람들이 너무 힘들지 않느냐고 걱정을 많이 하는데 힘들긴 해요. 그러나 농사일보다는 덜 힘들 거예요. 가는 차 타고, 가는 비행기 타고, 주는 밥 먹고, 아프면 약 먹고, 피곤하면 쉬고, 사람들이 질문하면 대답하고, 이동할 때는 원고 쓰고, 이렇게 주어지는 인연에 수순하면 되기 때문에 크게 힘들 것이 없어요. 그러니 삶을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마시고 여유를 갖고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생방송을 마치고 저녁 6시에 강연장으로 이동했습니다. 숙소에서 차로 20분 거리를 달리는 동안 프랑크푸르트의 마천루 중 메세투름(Messeturm) 빌딩을 지났습니다.

도시 곳곳에 100년이 넘은 오래된 건물들이 많이 보였습니다.

오늘 즉문즉설 강연장은 마인 강(Main River)이 내려다 보이는 유겐트헤르베르게 프랑크푸르트(Jugendherberge Frankfurt) 컨퍼런스 센터입니다.


스님은 강연장에 일찍 도착하여 어떤 분들이 참석했는지 청중석을 한 바퀴 둘러보며 한 분 한 분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고 인사를 했습니다. 입장을 못할까 봐 아침 10시부터 와서 기다린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세미나실로 이동하여 프랑크푸르트 정토회에서 초창기 총무를 지내신 노보살님들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스님도 이제 연세가 있으신데 요즘 농사일을 너무 무리하게 하시는 것 같아요.”

“젊은 행자들이 농사를 지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제가 앞장서서 안 할 수가 없어요. 저는 농사일을 좋아해요. 제가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이에요.”

“노보살님도 이제 늙었으니까 무리하지 말고 대강대강 사세요.”

“스님은요?”

“저는 아직 젊잖아요. 우리 동네에서는 제 나이면 청년이라고 그래요. 저보다 나이 어린 사람이 서너 명밖에 없습니다.” (웃음)

노보살님들과 기념사진을 찍은 후 강연장으로 이동했습니다.

그 사이 강연장은 사람들로 가득 메워졌습니다. 좌석이 다 차고, 바닥에 앉고, 뒤에 서고, 200명 이상이 참석하여 대성황을 이루었습니다. 스님이 모습을 보이자 박수와 환호가 쏟아졌습니다. 한국인과 결혼한 독일 현지인들도 다수 보였습니다.


연단에 선 스님이 웃으며 인사를 건넸습니다.

“한국을 출발하여 비행기를 여섯 번 타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여러분들은 한국에서 올 때 직항으로 바로 오시죠? 직항 항공권이 쌀까요? 여섯 번 갈아타는 것이 쌀까요? 여섯 번이나 비행기를 탔는데도 비용이 더 저렴했습니다.” (웃음)

코로나 팬데믹 이후 4년 만에 처음 열리는 해외 순회강연입니다. 반가운 마음이 가득한 스님의 목소리에서도 활력이 느껴졌습니다.

강의를 시작하고 나서 뒤에 서서 강의를 듣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졌습니다. 스님도 허리가 아픔에도 불구하고 제일 나이가 많으신 분에게 스님의 의자를 양보했습니다.

“저도 허리가 아프지만 여러분과 눈을 마주치고 대화를 하기 위해 서서 강의를 하겠습니다.”

스님은 부탄을 방문하고 온 소감과 기후 위기에 대비한 정토회의 활동 계획에 대해 소개한 후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오늘 이 자리는 인생 상담을 하는 자리가 아닙니다. 진리에 대해 공부하는 자리입니다. 진리란 별다른 게 아닙니다. 괴로움이 있는 사람이 그 괴로움에서 벗어나면 그것을 진리라고 합니다. 진리의 기준은 있는 괴로움이 사라지거나 괴로움이 앞으로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말씀'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말씀'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그 말씀을 듣고 번민하던 사람들의 괴로움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나누는 얘기는 그런 말씀과는 달라요.

누구든지 자신의 고민, 번뇌, 의문을 질문하면 그것이 진리의 소재가 되는 것이 ‘즉문즉설’입니다. 인간관계에서 생기는 여러 번뇌에 대해 제가 일방적으로 강의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질문을 하시면 그 구체적인 사례를 소재로 해서 번뇌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길에 대해 대화하는 겁니다. 자, 그럼 시작해 볼까요?”

여덟 명이 손을 들고 자유롭게 스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중 한 명은 한국에서 살 때 25년 동안 불교를 믿어 왔는데 독일에 와서 매주 교회를 나가게 되었다며 이래도 괜찮은지 질문했습니다. 호탕한 웃음과 함께 스님이 대답했습니다.

한국에서는 절에 가야 하고, 독일에서는 교회를 가야 하고, 어떡하죠?

“저는 독일에 온 지 1년 3개월 정도 된 20대 청년입니다. 어릴 때부터 할머니 손을 잡고 절에 많이 다녔고, 군대에서도 불교 군종병을 했습니다. 제가 이곳 프랑크푸르트에 오니 절이 거의 없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교 생활을 이어가려고 중국 절에도 가보았습니다. 하지만 작년 12월부터 좋은 인연이 생겨서 교회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교인들과 계속 어울리며 잘 지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25년 가까이 불교를 믿으며 절에 다닌 사람인데 독일에 와서 어느 순간 교회에 다니기 시작하니 내적 갈등이 생깁니다. 한국에 가면 가족들을 따라 절에 가고, 독일에 오면 매주 일요일에 교회를 나갑니다. 이런 상황이 저는 굉장히 혼란스럽게 느껴집니다. 스님은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한국에서는 절에 가고, 독일에서는 교회에 가는 것이 왜 문제가 될까요? 저는 오히려 질문자의 말이 이해가 안 됩니다. 질문자의 생각대로라면 한국에서는 한국어를 하고, 독일에서는 독일어를 하는 것도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요? (모두 웃음)

한국에 가면 한국어를 하고 독일에 가면 독일어를 하듯이 질문자의 인연으로는 한국에서는 절에 가고 독일에서는 교회에 가는 겁니다. 만약 독일에 있더라도 한인 타운에서 한국 사람들끼리만 지낸다면 한국어만 해도 되겠죠. 그러면 한국에 있을 때도 한국어를 하면서 살고, 독일에 있을 때도 한국어를 하면서 살아도 됩니다. 하지만 밖에 나가서 독일 사람들을 만나면 그때는 독일어를 써야 하잖아요. 그것처럼 독일에도 절이 있으면 한국에서도 절에 다니면 되고 독일에서도 절에 다니면 됩니다. 하지만 독일에는 절이 없으니까 교회에 다니는 겁니다. 그게 문제가 될까요?

독일은 불교 인구가 적어서 혹시 절이 있더라도 질문자와 같은 청년이 절에 가면 아마 질문자가 거의 유일한 청년일 거예요. 그래서 친구를 사귀기는 어려울 겁니다. 그러나 교회에 가면 젊은 사람이 좀 있잖아요. 교회에 다니면 친구도 사귈 수 있는데 왜 절에 가려고 해요?”

“그래도 인생에서 배울 점은 불교에 더 많이 있다고 믿으며 살아왔습니다.”

“불교를 믿지 말라는 얘기가 아니에요. 불교를 믿으면서 교회에 다니는 게 무슨 문제가 되느냐는 겁니다. 혹시 질문자가 독일에 계속 살다가 나중에 독일 여자와 결혼하게 되면 독일 시민권을 얻을 가능성이 있겠죠. 만약 질문자가 독일 시민권을 얻는다면 한국계 독일인이 될 것 아니겠어요? 그것처럼 질문자는 불교를 믿다가 교회에 다니게 되었으니 ‘부디스트 크리스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웃음)

이와 반대로 교회를 다니다가 불교를 믿게 된 사람을 ‘크리스천 부디스트’라고 합니다. 미국에는 현재 대단히 많은 크리스천 부디스트가 있습니다. 기독교적인 배경을 깔고 있으면서 불교를 믿는 사람들이 매우 많습니다. 독일에도 아주 많아요.

왜 우리는 늘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까? 이 종교에서 저 종교로 옮겨갈 수도 있고, 두 종교를 다 믿어도 되고, 한 종교를 기반으로 해서 다른 종교를 믿어도 됩니다. 한국에서 태어났더라도 일본 국적을 갖기도 하고 미국 국적을 갖기도 하는 것처럼 왜 종교는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났다고 해서 꼭 기독교를 믿어야 하고, 불교 집안에 태어났다고 해서 기독교를 믿으면 안 됩니까? 시대가 바뀌었는데 젊은 사람이 아직도 중세 시대의 사고를 하고 있네요. 교회에 열심히 다니세요.” (웃음)

“감사합니다.”

“자비하신 부처님께서 여러분들이 절에 다니다가 교회에 갔다고 해서 벌을 내리실까요? 사랑의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이 교회에 다니다가 절에 갔다고 해서 벌을 주실까요? 구약성서의 소돔과 고모라처럼 유황불로 지져 버리실까요? 그것은 신약성서가 나오기 이전의 얘기입니다. 예수님 이후의 하나님은 징벌의 하나님이 아니라 사랑의 하나님입니다.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주여, 저들을 용서하소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의 사랑입니다. 교회에 다니다가 절에 가면 벌을 받는다는 생각은 종파주의에서 나온 협박이에요.

여러분들이 물건을 살 때의 예를 들어 봅시다. 어느 한 가게에서 계속 물건을 사다가 근방에 새 가게가 생겼습니다. 새 가게의 물건이 더 좋고 가격도 저렴하면 당연히 옮겨가겠죠. 그러면 기존에 이용하던 가게의 주인은 기분이 나쁠 겁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선택의 자유가 있어요. 눈치를 볼 필요가 없습니다. 각자 좋을 대로 선택하면 됩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하지만 다수의 종파주의 가게 주인들은 기분이 나쁠 수가 있습니다. 이해하셨나요?”

“네, 잘 알았습니다.”

스님의 명쾌한 답변에 박수갈채가 쏟아졌습니다.

이어지는 질문들에서도 웃음이 빵빵 터졌습니다. 박수 소리와 웃음소리가 교차하는 가운데 두 시간이 금방 지나갔습니다.

강연장 사용을 허락받은 시간이 가까워져서 서둘러 스님이 마무리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저와 대화를 하고 나면 ‘뻔한 소리 하네’ 이런 생각이 들 거예요. 그렇습니다. 저는 뻔한 소리를 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가 남의 얘기를 들을 때는 뻔한 소리로 들리는데 그것이 자기 얘기일 때는 뻔한 소리가 안 됩니다. 대학에 가려고 시험을 치는 학생이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할까요? 합격해 달라고 기도를 열심히 해야 할까요?”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합니다.”

“그런데 막상 내가 입시 수험생이 되면 기도를 열심히 해야 합격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남의 얘기일 때는 어떨까요? 학생이 공부는 안 하고 절만 하고 있으면 ‘저 사람은 참 바보 같다’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절을 많이 한 사람이 합격하게 되어 있다면 전부 절만 하면 되지 학교가 필요 없겠죠. 이게 상식이잖아요. 그것처럼 진리는 다른 게 아니라 상식입니다.

삶을 좀 더 자유롭게 살아가는 방법

여러분들이 가지고 있는 관념의 세계가 부서지면 그동안 봤던 것과는 전혀 다른 세계를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신비주의가 아니에요. 신비주의는 대부분 욕망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본인이 연 가게를 본인의 노력으로 운영해야 하는데 그것을 왜 하나님이나 부처님에게 잘 되게 해달라고 부탁하나요? 본인의 가게도 제대로 운영을 못 해서 하나님이나 부처님에게 해달라고 부탁하면 본인은 도대체 무엇을 하겠다는 건가요? 나의 배우자를 하나님이나 부처님에게 구해 달라고 하면 본인은 도대체 무엇을 하겠다는 거예요? (웃음)

‘종교’라는 단어는 한자로 으뜸 종(宗) 자를 사용합니다. 가르침 중에서 가장 으뜸 되는 가르침이라는 뜻입니다. 신이 있고 없고는 핵심이 아닙니다. 지금은 종교가 필요 없는 시대가 아니라 지금이야말로 종교가 필요한 시대입니다. 어쩌면 오늘날 물질주의 시대에는 바람직한 종교가 더욱 필요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 너무 기성의 종교에 얽매이지 마세요. 이 세상 누구보다도 자신을 사랑해야 합니다. 자신을 괴롭히는 사람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정말로 자신을 사랑한다면 어떤 이유나 핑계를 대며 ‘나는 이래서 괴롭다’ 하고 괴로움을 합리화시키지 마세요.

이 세상의 모든 현상에는 그렇게 되는 원리가 있습니다. 며칠 전에 십여 년 만에 슈퍼 블루문이 떴는데, 옛날 같았으면 이런 현상에 대해 임금이 새로 등극할 징조라는 등 온갖 얘기가 있었겠죠. 그러나 우주의 원리로 보면 만유인력에 의해서 달이 지구 가까이에 왔다가 다시 멀어지는 현상일 뿐입니다. 그런 것처럼 인생에도 다 원리가 있습니다. 그러니 신비주의에 빠지면 안 됩니다.

만약 기독교를 믿는다면 예수님의 삶과 가르침을 배우고 따라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천국에 가는 기준을 말씀하실 때 굶주린 자에게 밥을 주고, 목마른 자에게 물을 주고, 병든 자에게 약을 주고, 헐벗은 자에게 옷을 주고, 나그네 된 자를 영접하고, 감옥에 갇힌 자를 면회하고, 이렇게 여섯 가지를 말씀하셨습니다. 이들은 세상에서 가장 작은 자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가장 작은 자 한 명에게 한 것이 곧 나에게 한 것과 같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이런 가르침을 믿고 따르고 실천할 때 올바른 종교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불교에서 말하는 수행과 그 원리가 똑같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혔을 때 자기를 매단 사람에게 ‘주여, 저들을 용서하소서’라고 말할 수 있는 마음은 불교적으로 말하면 ‘무아(無我)’의 경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라고 하는 것을 내려놓았기 때문에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겁니다.

그래서 어떤 종교를 믿느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하면 내 삶을 좀 더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는가’ 하는 관점에 서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행복을 찾아 독일까지 왔는지 모르겠지만, 이곳에 온다고 행복해지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자기가 자기를 살펴보고 알아차릴 때 괴로움이 사라지고 기쁨이 커집니다. 여러분 모두 나날이 행복해지시기를 바랍니다.”

큰 박수 소리와 함께 2023년 해외순회 즉문즉설 첫 번째 강연을 무사히 마쳤습니다.

청중들이 강연장을 빠져나가기 전 스님은 서둘러 출구 앞으로 가서 강연에 참가한 모든 분들과 한 사람씩 악수를 했습니다.

“반갑습니다.”

“건강하세요.”

모든 참석자들이 강연장을 빠져나간 후 강연을 준비해 준 봉사자들과 기념사진을 함께 찍었습니다.

노보살님들, 역대 프랑크푸르트 정토회 총무님들, 봉사자들과 일일이 인사를 나눈 후 스님도 강연장을 나왔습니다. 스님은 너무 오래 서 있어서 허리가 아픈지 허리를 계속 두드리며 숙소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내일은 오전에 기차를 타고 프랑크푸르트를 출발해서 오후에는 뒤셀도르프에서 해외 순회 즉문즉설 두 번째 강연을 할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67

0/200

임형범

감사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2023-11-26 10:08:25

윤정애

감사합니다. 잘 보았습니다.

2023-09-10 16:23:02

드림하이

주위 사람들이 너무 힘들지 않느냐고 걱정을 많이 하는데 힘들긴 해요. 그러나 농사일보다는 덜 힘들 거예요. 가는 차 타고, 가는 비행기 타고, 주는 밥 먹고, 아프면 약 먹고, 피곤하면 쉬고, 사람들이 질문하면 대답하고, 이동할 때는 원고 쓰고, 이렇게 주어지는 인연에 수순하면 되기 때문에 크게 힘들 것이 없어요. 그러니 삶을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마시고

2023-09-08 15: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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