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3.5.4. 부탄 파로(Paro) 방문, BNF센터 넌들과 대화
“출가를 했다면 이 정도 자부심은 있어야죠.”

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팀푸 근처에 있는 파로(Paro) 지역을 둘러보고 넌(남방 불교 여성 출가자)들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숙소에서 넌들이 아침 공양을 준비해 주었습니다. 식사를 하고 8시 30분에 파로로 출발했습니다. 먼저 부탄을 대표하는 건물이라고 하는 파로 탁상사원에 가 보았습니다. 깎아지른 절벽 끝에 세워진 사원이 있었습니다. 스님은 사원을 향해 절을 올렸습니다.

“못 올라가 봐서 미안합니다.”(웃음)

탁상사원 아래 잔디밭에 자리를 깔고 스님은 일행들과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탁상사원까지 올라갔다 오면 얼마나 걸릴까요?”

“5시간은 걸립니다.”

다녀오면 오후 일정에 차질이 있을 것 같았습니다. 아쉽지만 드룩겔종(Drukgyel Dzong)으로 이동했습니다.

드룩겔종은 1649년 티베트의 침략을 막기 위해 쌓은 성벽이자 불교 수도원입니다. 1950년대 초에 화재로 거의 소실되었다가 현재 복원 공사를 한참 진행하고 있습니다. 곳곳에서 보수 작업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보였습니다. 스님은 성을 둘러보며 이야기했습니다.

“엊그제 봤던 푸나카종(Punakha Dzong)도 성벽이 견고했는데 드룩겔종은 산 위에 지어진 데다가 사방이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요새 같네요.”

스님은 천천히 성을 둘러보고 다시 팀푸로 출발했습니다. 오는 길에 점심 식사를 하고 BNF센터(Butan Nun Foundation)에 도착해 먼저 도서관에 모셔진 부처님을 참배했습니다.

도서관에는 7명의 넌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작년에 처음으로 부탄에서 비구니계를 수계해서 지금은 모두 비구니 스님들이지만 오랫동안 넌이라고 불려서 아직 넌이라고 부르고 있었습니다. 스님은 부탄에 있는 동안 숙소와 식사에 신경을 써준 넌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하며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부탄에 온 지 어느덧 열흘이 되었습니다. 여기 머무르는 동안 잠자리와 식사를 잘 마련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모든 일정이 다 좋았습니다. 국경을 넘어 푼출링(Phuentsholing)에서 버스를 타고 이동한 것, 동부 지역을 일주일간 다녀온 것, 마을을 답사했던 것, 마지막에 여러 인사들과 대화를 나눈 것까지 전부 좋았습니다.

제가 부탄에 온 목적은 자본주의와 소비주의를 따르지 않으면서도 GNH(국민총행복지수)를 높일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함이었습니다. ‘부유하지 않더라도 행복한 삶의 모델을 부탄에서 만들어 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어요.

여러분도 알다시피 현대 문명은 자본주의, 소비주의에 젖어 있습니다. 많이 생산해서 많이 쓰는 것이 잘 사는 길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나 전 인류가 다 그렇게 살 수는 없잖아요. 지금처럼 소비량이 계속해서 증가하면 자원이 고갈되겠죠. 자원이 부족해지면 물가가 오르고 전쟁의 위험이 높아질 거예요. 중국과 인도가 개발되면서 이미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인류는 부족한 자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공 자원을 개발하는 등 과학 기술을 더욱 발달시켰습니다. 그러나 자원 부족 문제보다 더 큰 과제가 등장했습니다. 바로 기후 위기입니다.

기후 위기는 우리가 상상하지도 못했던 위험을 가져올 가능성이 높습니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는 작년에 겨울이 지나고 벌이 많이 죽었습니다. 꿀도 문제지만 그보다 과일이나 채소의 열매가 수정되지 않아서 농산물 수확량이 줄었어요. 그래서 농산물 가격이 많이 올랐습니다. 일부 과학자들은 벌이 모두 죽는다면 인류는 곧 식량 위기에 처할 것이라고까지 예측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핵무기보다 기후변화로 인한 작은 생물의 멸종이 백배 천배 더 무서운 일이 될 것입니다. 이런 작은 생물의 멸종이 인류를 멸망으로 이끌어 갈지도 몰라요. 벌의 사례처럼 기후 변화가 어떤 결과를 낳을지는 아직은 아무도 예측할 수가 없습니다.

왜 인류는 자기 스스로를 파괴하는 길을 걸어왔을까요? 바로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이 세상 모든 존재는 개별적, 독립적으로 존재한다’는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가 고통을 겪어도 자신과는 관계가 없다고 생각하고, 나만 겪지 않으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생각해봐야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무엇을 깨달으셨나요? 바로 ‘이 세상의 모든 존재는 서로 연관되어 있다’는 연기법입니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다. 이것이 없으면 저것도 없다.’

벌이 있어서 사람이 있고, 벌이 없으면 사람도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연기법입니다. 모든 존재는 서로 연기되어 있습니다.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건 없어요. 이러한 존재의 실상을 모르면 인생이 괴로울 수밖에 없습니다. 사실을 사실대로 알면 괴로움도 사라집니다.

기후 위기 역시 ‘자연을 파괴하는 것이 곧 나를 파괴하는 것’이라는 연기법을 몰라서 생긴 일입니다. 기후 위기를 극복하려면 소비를 적게 해야 합니다. 사람들에게 무조건 소비를 줄이라고 하면 욕구를 억눌러야 하기 때문에 지속 가능하지 않습니다. 지속 가능한 대안을 찾기 위해서는 붓다의 가르침으로 돌아가야 해요. 연기법으로 세상을 보면 자연을 살리는 것이 곧 나를 살리는 길이라는 것을 저절로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붓다의 가르침을 통해서 기후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부처님의 제자로써 당당해질 수 있어요. 출가를 했다면 이 정도 자부심은 있어야죠. 이러한 관점이 없다면 머리를 깎고 절에 있어도 중생의 공양을 받을 자격이 없습니다. 출가자가 이러한 자부심이 없이 어떻게 인류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며, 중생의 스승이 될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은 절에서 개인에게 복을 빌어주는 의식만 하고 살 거예요? 아니면 기후 위기, 전쟁, 기아 등 세상의 문제를 해결하는 지도자, 스승의 길을 갈 것입니까?

우리는 붓다의 근본 가르침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붓다를 삶의 모델로 받아들이고, 그 가르침을 따라 살아가야 해요. 붓다는 걸식을 하고, 옷은 주워 입고, 잠은 나무 밑에 자더라도 항상 당당했습니다. 오히려 왕의 고통을 덜어주고 중생의 고통을 보살피셨어요. 붓다는 검소한 삶을 통해 물질적인 풍요 없이도 만족할 수 있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을 보여주셨습니다.

붓다의 가르침을 정확하게 알면 자본주의, 소비주의로 인한 현대 문명의 위기를 극복할 대안을 마련할 수 있습니다.”

스님은 넌들에게 한 마디 한 마디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 통역하는 사람들에게도 의미를 설명해 가며 이야기했습니다. 스님을 보는 넌들의 눈빛도 또렷했습니다.

법문이 끝나자 한 넌이 스님께 감사 인사를 했습니다.

“스님 여기까지 와주시고, 이렇게 좋은 법문 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스님을 뵐 수 있어서 정말 복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해 주신 말씀은 누구에게도 듣지 못한 내용입니다. 그 말씀 마음속에 잘 새겨서 수행 정진하겠습니다. 언젠가 다시 한번 더 센터에 와주시길 바랍니다. 스님께서 부탄에 오신 목적이 잘 성취되기를 바랍니다.”

스님은 BNF센터에 있는 넌들에게 며칠간 재워주고 먹여주어 고맙다고 인사를 한 후 간단한 선물과 보시금을 전달했습니다.

대화를 마치고 BNF센터 실무자들을 한국 식당으로 초대해서 저녁을 대접했습니다. 식당 주인은 스님의 방문을 반기며 정성스럽게 식사를 준비해 주었습니다. 식사 후 스님은 실무자들에게 어린 넌들을 위한 기본 교육에 특별히 신경을 써 줄 것을 당부하며 그에 대한 지원을 약속했습니다.

이제 한국으로 돌아가는 일정입니다. 내일은 부탄 파로에서 인도 델리로 갑니다.

전체댓글 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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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하이

같은 실수가 반복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2023-08-15 16:58:55

정미애

5월31일 수요일 4박8일 깨달음의장에서 출가하고
현 위치로 복귀했습니다 우리 모두가 사는 길을 향해 나아가시 스님께 감사합니다
붓다의 길 스님의 길이 같습니다
저도 동참하여 한사람이라도 더 같이 갈수 있도록
정도회에 멈을겠습니다

2023-06-05 10:35:29

진달래

오늘도 감사합니다.()

2023-05-15 13:4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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