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2.11.25 대나무 정리, 금요 즉문즉설
“저는 고통스러운 과거가 있어요, 왜 살아야 하는 거죠?”

안녕하세요. 두북 수련원의 아침이 밝았습니다.

오늘은 거사님들과 울력을 하는 날입니다. 지난봄 산윗밭 아래 대숲에 대나무가 꽃을 피우더니 모두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스님은 거사님들과 10월 초에 죽은 대나무들을 모두 베어놓았습니다. 오늘은 그 대나무를 정리하기로 했습니다.

스님은 거사님들이 오시기 전에 먼저 전기톱을 쓸 수 있도록 전선을 연결했습니다. 8시 30분이 되자 향존법사님과 9명의 거사님이 도착했습니다.

스님은 반갑게 인사를 건네고 오늘 해야 할 일을 설명했습니다.

“여기 죽은 대나무를 다 베어 놓았습니다. 대나무를 하나씩 꺼내서 잔가지를 치고 일정한 간격으로 자르면 됩니다. 나중에 건축 자재로 활용을 해보려고 해요.”

먼저 바깥쪽에 있는 대나무부터 끌어내어 꽃이 핀 잔가지를 치고 한쪽으로 모았습니다.




스님은 대숲 안쪽으로 들어가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거사님들도 몇 분 따라 대숲 안으로 들어가 대나무를 손질하고 바깥으로 보냈습니다.




쓰러져 뒤엉켜 있는 대나무를 끌어내 잔가지를 치고 바깥으로 보내야 하니 스님과 거사님들이 쉼 없이 일을 했지만 시간이 오래 걸렸습니다.

“대나무를 자를 때 보다 열 배는 더 일이 많네요.”(웃음)

“오늘 집에 못 가겠네요.”

대나무 잔가지를 낫으로 잘라내는데 날이 자꾸 상했습니다. 대나무로 막대기를 만들어 쳐보았지만 갈라졌습니다. 스님은 단단한 나무로 작대기를 만들어와 거사님에게 주었습니다. 잔가지를 팍팍 치던 거사님이 웃으며 말했습니다.

“나무가 딱 좋아요. 스트레스받는 사람은 여기 와서 잔가지 치면 싹 풀리겠어요.”

대숲 밖으로 어느 정도 대나무가 쌓이자 원형 전기톱을 사용해 일정한 길이로 대나무를 잘랐습니다.


일을 하다 보니 점심때가 지났습니다. 숲 속에 있던 거사님들도 모두 밖으로 나와 바깥에 있는 대나무를 정리하고 대나무를 날랐습니다.


다 자른 대나무를 트럭에 옮겨 실었습니다.


밧줄이 없어서 스님은 주변에 있던 칡덩굴을 끊어와 대나무를 묶었습니다.

두북 수련원에 트럭을 두고 먼저 점심을 먹었습니다.

점심을 먹은 후에 몇몇 거사님은 수련원 뒤편에 실어 온 대나무를 쌓았습니다.

스님은 나머지 거사님들과 다시 대숲으로 가서 대나무를 정리했습니다.


3시가 되어 마무리를 시작했습니다.

“자, 이제 그만 정리합시다!”


대나무를 트럭에 모두 실어 놓고 동그랗게 앉아서 마음 나누기를 했습니다. 거사님들은 이마에 맺힌 땀을 닦으며 가볍게 소감을 이야기했습니다.

“오늘 머리에 털 나고 나서 검도를 제일 많이 한 것 같아요. 투창 던지기도 엄청한 것 같은 기분입니다. 즐거웠습니다.” (웃음)

“스님 옆에서 일하니까 정신이 번쩍 차려지는 기분이 들었어요.”

“스님이 법문 하실 때는 골골 한다고 하셨는데, 옆에서 같이 일해보니까 아직 짱짱하신 것 보고 놀랐어요. 앞으로도 건강하셔서 법문 많이 해주십시오.”

“죽은 대나무를 도대체 어디에 사용하시려고 그러지? 하고 궁금했는데, 결국 재활용을 하려고 그러셨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되니까 보람이 느껴졌습니다.”

거사님들이 소감을 다 말하고 나서 마지막으로 스님도 소감을 이야기했습니다.

“저는 오늘 일을 다 못 끝낼 줄 알았어요. 그런데 거사님들이 힘을 모아 주신 덕분에 일을 끝마칠 수 있어서 정말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재활용을 하는 이유

저희들이 폐교를 빌려서 생활하는 것이 많이 불편하지만, 동남아 국가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모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많은 사람들이 어떤 활동을 하고 싶어도 ‘돈이 없어서 못한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누구나 따라 할 수 있는 모델을 만들어보는 중입니다. 시설도 폐교를 빌려서 생활하고, 자재도 버려진 물건을 재활용해서 하고, 농사도 노인들이 연세가 많아서 못 쓰는 땅을 빌려서 짓고요. 이런 방식은 확산이 굉장히 쉬운 방식입니다. 문경 수련원이나 서울 정토사회문화회관에서 활동하는 모습을 보면 ‘여기는 이런 시설 기반이 있으니까 저런 활동이 가능하지’ 이렇게 생각하기가 쉬워요. 그런데 여기 두북 수련원에 와서 보면 ‘이건 나도 할 수 있겠네’ 하는 희망이 생긴다는 거죠. 그런 취지에서 재활용하는 방식을 실험해보고 있는 겁니다. 사실 효율이 떨어지는 고단한 일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어요.

대나무도 병이 들었다고 무조건 버리기보다는 일정한 크기로 잘라서 비가 안 맞도록 보관했다가 가지런하게 세워서 담장을 만든다든가 하면 ‘이렇게 재활용이 될 수 있구나’ 하는 교훈을 줄 수 있거든요. 대나무를 막상 구입하려고 하면 돈이 많이 들잖아요. 그런 목적으로 놀기 삼아 대나무 정리하는 일을 같이 하자고 거사님들께 제안한 거예요.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웃음)

큰 박수로 수고한 거사님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 후 울력을 마쳤습니다.

스님은 사용한 전선을 정리했습니다.

거사님들은 수련원에 대나무를 차곡차곡 정리한 후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해가 저물고 저녁 7시 30분부터는 금요 즉문즉설 생방송 강연을 시작했습니다. 오늘은 4300여 명이 유튜브에 접속한 가운데 스님이 인사말을 했습니다.

“지난 월요일은 지적장애인을 보호하는 시설인 애광원과 노인들을 보호하는 요양병원에 저희들이 생산한 농산물과 선물로 들어온 과일을 트럭에 가득 싣고 전달하였습니다.

이렇게 자기가 번 돈이나 자기가 생산한 물건을 어려운 이웃과 나누는 활동을 통해 우리는 자신의 존재 가치를 스스로 느끼게 됩니다. 이 세상에 쓸모 있는 일을 하는 것이 곧 나를 존엄하게 만드는 길입니다. 쓸모가 있다는 말은 존재 가치가 있다는 뜻이고, 쓸모가 없다는 말은 수명이 다 되었다는 뜻입니다. 어떤 물건이든 수명이 다 되면 버리게 되죠. 그러니 여러분들도 남에게 도움이 되는 삶을 살아서 자신을 존엄하게 만드는 사람이 되면 좋겠어요. 이제 추운 겨울이 점점 다가오니까 주위의 어려운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관심을 가져 주시면 좋겠습니다.”

이어서 지난 주말에 길벗 모임과 함께 강남구 구룡마을에 가서 연탄 배달 봉사를 하고 온 모습을 영상으로 본 후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네 명이 손들기 버튼을 누르고 스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중 한 명은 고통스럽고 끔찍한 과거 때문에 삶을 지속해야 할 이유를 못 찾겠다며 죽고 싶은 마음을 토로했습니다.

저는 고통스러운 과거가 있어요, 왜 살아야 하는 거죠?

“저는 고통스럽고 끔찍한 과거가 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지속된 끔찍한 삶은 40년을 이어왔습니다.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그러함에도 살아야 하는 이유가 뭘까요? 왜 꼭 살아야만 하는 걸까요? 죽으면 안 되는 이유는 뭔가요? 삶을 이어나갈 이유가 없다고 판단이 되니 삶을 중단하는 것이 순서인데, 다니고 있는 정신과 의사도 말리고, 상담사도 말리고, 주변인도 말립니다. 책들을 봐도 온통 어떻게 살아라 하는 책들뿐입니다. 하지만 왜 꼭 살아야만 하는지에 대한 답은 찾지 못했습니다. 고통에 파묻힐 때 죽음의 유혹이 너무나 강렬합니다, 삶이 고통스러우니 죽어야 한다는 이 단순한 논리는 제 안에 너무나 굳건합니다. 삶을 중단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사람이 삶을 사는 데는 아무런 이유가 없습니다. 사는 데에 무슨 이유가 있겠어요. 그냥 사는 것이죠. 사는 데에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유를 찾지 못하면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겁니다.

사는 데에 아무런 이유가 없는데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막 찾아봐도 이유를 찾을 수가 없으니까 그럼 죽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본래부터 사는 데는 아무런 이유가 없어요. 살아야 될 이유만 없는 게 아니라 죽어야 할 이유도 없는 겁니다.

왜 사느냐를 계속 탐구하면 자살 유혹이 더욱 커져요. 왜냐하면 아무리 찾아봐도 사는 이유가 발견이 안 되기 때문입니다. 결국 죽어야 되겠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돼요. 그런데 사는 데는 아무런 이유가 없어요. 나무가 자라는데 이유가 있어요? 다람쥐가 사는데 이유가 있어요? 토끼가 사는데 이유가 있어요? 나비가 사는데 이유가 있어요? 그러니 ‘살아야 하는 이유가 뭐지?’, ‘왜 사는 걸까?’ 하는 질문 자체가 잘못된 것입니다. 그런 의문을 가지면 곧 자살로 귀결이 되는 거예요. 왜냐하면 답이 없는 것을 찾기 때문입니다.

질문자의 가장 큰 잘못은 ‘사는 이유가 무엇이냐?’ 하고 질문을 하는 거예요. 그렇다면 거꾸로 ‘죽어야 될 이유가 있느냐?’ 하는 것을 찾아보세요. 죽어야 될 이유도 없어요. 살아야 될 이유가 없듯이 죽어야 될 이유도 없어요. 그렇다면 ‘죽어야 될 이유가 없으니까 살아야 되겠네!’ 이렇게 생각은 왜 안 해봐요? 질문자는 왜 ‘사는 이유가 없으니 그럼 죽어야 되겠네’ 이 생각만 오직 하느냐는 겁니다. 반대로 ‘죽어야 되는 이유가 없으니 그럼 살아야 되겠네!’ 이 생각도 할 수 있잖아요.

살든 죽든 거기에는 아무런 이유가 없습니다. 태어났으니까 사는 것입니다. 또 죽을 때가 되면 죽는 것입니다. 살아 있는 것을 일부러 죽일 필요도 없고, 죽을 때 안 죽겠다고 발버둥 칠 필요도 없어요. 아무리 발버둥 쳐도 영원히 사는 사람은 없어요. 황제라도 죽습니다.

질문자가 어떤 사람을 정말 미워해서 죽여 버려야겠다고 한다면, 질문자 입장에서는 그 사람을 죽여야 될 이유가 있는 거잖아요. 그러나 다른 사람한테 물어보면 ‘그건 네 생각이지 죽이면 안 된다’라고 해요. 그것처럼 ‘나는 차라리 죽는 게 좋은 것 같은데’ 하고 생각해도 다른 사람한테 물어보면 ‘죽지 마라’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나를 죽이는 것과 남을 죽이는 것은 똑같은 거예요. 남을 죽이면 죽인 사람을 처벌할 수가 있으니까 살인죄가 성립합니다. 그러나 자기가 자기를 죽여 버리면 처벌할 대상이 없어지는 거예요. 하지만 그것도 살인이에요. 처벌할 대상이 없기 때문에 범죄가 성립이 안 되는 것일 뿐입니다. 남을 죽이고 처벌받듯이 자기를 죽인 것도 처벌을 받아야 하는데 처벌할 대상이 없어서 법적으로는 처벌이 안 되는 거예요. 그러나 살인 범죄라는 점에서는 똑같아요.”

“스님께서는 살아야 하는 이유도 없고, 죽어야 하는 이유도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선택의 문제일까요?”

“죽고 사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니까요. 안 죽겠다고 했을 때 안 죽을 수 있으면 선택의 문제인데, 안 죽겠다고 해도 죽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선택의 문제가 아니에요.

죽을 수밖에 없는 상태에 이르렀는데도 산소 호흡기로 연명 치료를 하고 있다고 할 때, 그것이 과연 생명 존중일까요? 아니에요. 존재가 죽을 때가 되었을 때는 죽도록 놔두는 것이 생명 존중이지 안 죽도록 하는 것이 생명 존중이 아니에요. 그것은 생명에 너무 집착해서 벌어지는 일입니다.

그래서 요즘은 연명 치료를 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하는 새로운 운동이 일어나잖아요. 연명치료는 오히려 생명의 존엄을 훼손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나이가 백 살이 넘었거나, 몸이 아주 안 좋거나, 통증이 너무 심할 때는 스위스처럼 몇 개의 나라에서는 안락사를 인정합니다.

그런데 자살하는 것은 살인하는 것과 똑같아요. 아무리 살인하지 말라고 해도 어떤 이유를 대고라도 살인이 일어나는 것처럼 아무리 말려도 자기가 자살해버리는 것은 어쩔 수가 없겠죠. 그러나 죽어야 하는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어떤 이유를 찾아서 죽으면 안 된다는 거예요. 죽는 데는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사는 데도 이유가 없고요.

질문자가 그런 생각이 계속 든다면 그것은 정신 질환입니다. 정신 질환은 치료를 받아야 해요. 치료를 받았는데도 치료가 안 되면 어떻게 될까요? 결국 자살을 하겠죠. 아무도 모르는 데서 자살을 해버리는데 그걸 어떻게 막을 수 있겠어요?

남을 죽이는 행위는 다른 사람들에게 해가 되니까 재발 방지를 위해서 감금을 시키거나 처벌을 해야 되지만, 자기가 자기를 죽이는 행위는 처벌할 대상이 없으니 재발이 없잖아요. 그래서 자살은 마치 범죄가 아닌 것처럼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굳이 따지면 자살도 살상 행위에 들어간다고 볼 수가 있습니다.

왜 살아야 하는지 이유를 생각하는 것 자체가 병이에요. 병이기 때문에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치료를 받아도 해결이 안 된다면 결국 질문자는 그 병으로 죽을 수도 있는 거예요.”

“알겠습니다.”

“그러니 치료를 먼저 받아보세요. 치료를 받아보고 치료가 안 되어서 질문자가 죽어버리면 그건 어쩔 수가 없어요. 그러나 이것은 죽을 이유가 있어서 죽는 것이 전혀 아니고 병이라는 것입니다. 사는 데는 이유가 없는데 질문자가 자꾸 사는 이유를 찾는 것은 병입니다. 그래서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종교나 철학에서 사는 데는 이유가 있다고 말하거나, 사명을 가지고 태어났다고 말하는 것은 다 그냥 하는 소리예요. 나비가 태어나고, 지렁이가 태어날 때 무슨 이유가 있겠어요. 그냥 태어나는 것입니다. 태어났으니 사는 거예요. 또 뙤약볕에 지렁이가 죽는데 무슨 이유가 있겠어요. 먹을 것이 없으면 죽고, 누가 밟으면 죽는 것이죠.”

“스님 말씀처럼 제가 계속 이유를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이유가 없다는 말씀을 듣고 나니 한결 마음이 가벼워집니다. 그런데 저에게 죽음의 유혹이 너무나 강렬한 이유는 과거의 고통이 너무 크기 때문입니다.”

“과거의 고통이 지금도 계속된다면 그것은 트라우마로 인한 것입니다. 외부적인 억압이 아니라는 거예요. 과거에 말 못 할 고통을 겪은 것이 지금 정신 질환이 되어서 질문자를 끊임없이 괴롭히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질문자가 지금 ‘이렇게 사느니 죽는 것이 낫겠다’ 하고 생각을 하는 거예요.

그러니 치료를 하는 데까지 해보면 좋겠습니다. 지난 40년간 고통을 받았다 하더라도 남은 기간은 1년이든 2년이든 10년이든 행복하게 살면 되잖아요. 감옥에서 30년 살다가 나와서 대통령이 된 사람도 있어요. 물론 치유가 안 되면 죽을 수도 있어요. 그건 어쩔 수가 없어요. 암으로 죽는 사람도 있는데요, 암 진단을 받자마자 완치가 안 된다고 약 먹고 죽어버리는 것은 바보 같은 행동이잖아요. 일단 진료를 받아봤지만 치료가 안 돼서 죽는 것은 어쩔 수가 없는 것입니다.

질문자도 마찬가지예요. 요즘은 치료를 꾸준히 받으면 회복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옛날에는 정신 질환에 대한 치료법이 없어서 구병시식을 한다, 안수기도를 한다, 굿을 한다, 이렇게 난리를 피웠는데 요즘은 그럴 필요가 없잖아요. 그렇지만 정신 질환에 대한 치료는 아직 육체만큼은 개발이 안 되었습니다. 우울증도 제대로 치료를 못하는 수준이잖아요. 그러나 옛날에 비하면 많이 발전이 된 상태입니다.

질문자가 정신 질환을 치료하려면 그것이 무엇이든지 트라우마를 솔직하게 내어 놓아야 돼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는 생각이 들더라도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하는데, 있을 수 없는 일이 어디에 있어요? 있을 수 없는 일이면 일어나지를 않죠. 이미 일어났다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라는 겁니다. 있을 수 있는 일을 겪었을 뿐이에요.

우선 트라우마를 드러내고 치유를 해야 합니다. 하지만 현대 의학으로도 질문자를 치유하지 못해서 어느 순간에 생을 마감할 수도 있겠죠. 지금 코로나로 죽는 사람도 있고, 암으로 죽는 사람도 있는데, 그건 어쩔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노력도 안 해보고 죽어버려야겠다고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아요. 조금 더 치유를 해보시면 좋겠다 싶습니다.”

“네, 좀 더 노력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있을 수 있는 일이 일어난 것뿐이라는 말씀이 무척 와닿았습니다.”

“네! 어떤 일도 있을 수 있는 일이기에 일어난 겁니다. 있을 수가 없는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스님이 만약 상담을 하면서 들은 얘기를 다 들려주면 여러분은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고 생각할 겁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는 있을 수 있는 일이 다 일어나는 거예요. 그런 일이 일어났다고 해서 내가 더러워지지 않아요. 괴로워할 이유도 없습니다, 우리의 몸은 불구부정이라고 하듯이 성스러움도 없고 더러움도 없습니다. 이미 지나간 일에 집착하지 마세요. 모든 사람은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고, 또 행복하게 살 수가 있습니다. 하루를 살더라도 살아있는 동안은 행복하게 살아야 합니다.

제가 내일까지 살지 모레까지 살지 아무도 몰라요. 암에 걸린 사람보다 제가 훨씬 더 먼저 죽을 수도 있어요. 오늘 밤에 서울 올라가다가 교통사고가 나서 죽을 수도 있잖아요. 언제까지 사느냐는 하등 중요한 것이 아니에요. 내일 죽든, 모레 죽든,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동안 삶을 긍정적으로 보고 사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 세상 천하 만물이 삶에 의미를 가지고 삽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냥 삽니다. 살아 있을 때는 그냥 살고, 죽을 때가 되면 그냥 죽으면 돼요.”

“감사합니다.”

이 외에도 다음과 같은 질문이 있었습니다.

  • 남편은 모든 면에서 자기를 일 순위로 하는 것 같아 서운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나중에 애가 크면 남남처럼 살게 될까 봐 걱정이 됩니다. 저는 어떤 준비를 해야 할까요?

  • 현재 만나는 사람이 있고, 막상 결혼이라는 것이 다가오니,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못하게 될까 봐 두렵습니다.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요?

  • 저는 매일 JTS에서 봉사하며 살고 있습니다. 대학을 자퇴하고 JTS에서 봉사하는 삶을 살고 싶은데, 부모님은 대학 졸업은 꼭 해야 한다고 반대합니다. 어떡하죠?

대화를 다 마치고 나니 밤 9시가 훌쩍 넘었습니다.

스님은 곧바로 방송실을 나와 차에 올랐습니다. 두북 수련원을 출발하여 3시간 30분 동안 고속도로를 달려 새벽 1시에 서울 정토회관에 도착한 후 하루 일정을 마쳤습니다.

전체댓글 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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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선

좋은 말씀 너무 감사합니다

2022-12-17 14:46:26

보각

감사합니다

2022-12-12 13:40:25

지복순

삶에 이유였던 자식이 죽고 없는데도 난 여전히 밥을먹고 있는 내 모습도
남 앞에서 아무일 없는것처럼 웃고 떠들며
일상생활을 하는 내 모습도 혐오스럽고 밉습니다.
자식따라 삶을 포기하고픈 유혹만 듭니다

2022-12-02 07: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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