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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두북 수련원의 아침이 밝았습니다. 오늘은 해외에서 활동하는 13명의 활동가들이 두북 수련원을 방문하는 날입니다.
스님은 새벽 기도와 명상을 마친 후 8시부터 1시간 30분 동안 기획위원회와 회의를 한 후 10시부터 해외 활동가들과 시간을 가졌습니다.
오전에는 경주 남산을 함께 순례하기로 했습니다. 경주 남산의 남쪽에 위치한 새갓골 주차장에 모두 집결하기로 했습니다. 스님은 산행 중에 간식으로 먹을 수 있게 사과, 배, 빵, 물을 비롯하여 김밥까지 도시락으로 싸서 챙겨 왔습니다.
“자, 보시고 골라서 먹고 싶은 만큼 배낭에 넣어 가세요.”
각자 먹을 만큼 배낭에 넣은 후 경주 남산 안내 표지판 앞에 모였습니다. 스님이 오늘 순례할 코스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경주 남산은 두 개의 봉우리를 중심으로 크게 두 지역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금오봉의 높이가 468미터이고, 고위봉의 높이가 494미터입니다. 오늘은 원래 가장 불상이 많은 삼릉 계곡으로 올라가서 금오봉을 지나 천룡사에 도착하는 4시간 코스를 가려고 했는데, 일기 예보를 보니까 비가 온다고 해서 갑자기 코스를 바꾸었어요. 그래서 새갓골을 출발해서 넘어진 불상을 보고, 봉화대를 지나 백운재를 넘어 천룡사에 도착하는 2시간 코스를 갈 예정입니다. 그러니까 경주 남산의 남쪽을 본다고 생각하면 돼요. 자, 출발합시다.”
스님이 선두에 서고 13명의 해외 활동가들이 뒤를 이었습니다.
“길이 가파르지 않고 완만합니다. 한국의 가을 정취를 느껴 보세요.”
낙엽을 밟자 사각사각 거리는 소리가 났습니다. 잎이 다 지고 갈색 빛깔의 산도 참 운치가 있었습니다.
이마와 등허리에 땀이 송골송골 맺힐 무렵 산 중턱에 위치한 열암곡 마애불상 앞에 도착했습니다.
“여기 보세요. 이 불상은 엎어진 상태로 발견이 되었어요. 부처님의 안면이 바닥 바위와 불과 1cm 밖에 안 떨어져 있습니다. 하마터면 코가 부서질 뻔했는데 정말 신기하죠.”
바닥에 닿을 듯 말 듯 엎어져 있는 불상을 지나 석불좌상 앞에서 잠시 휴식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 불상은 코가 깎여 나가고 없죠? 옛날부터 부처님의 코를 깎아 갈아먹으면 아들을 낳는다는 미신이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깎아 가다 보니 코가 없어졌어요.”
모두 자리에 앉아 땀을 닦고 물을 한 모금씩 마셨습니다. 휴식 시간을 틈타 잠깐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일본, 미국, 호주, 필리핀, 말레이시아 등 세계 각국에서 정토회 모임을 만들어가고 있는 분들이었습니다. 과일도 하나씩 먹은 후 다시 힘을 내어 산길을 걸었습니다.
봉화대를 지나자 넓은 바위가 나타났습니다. 바위 위에 올라서니 주변 풍경이 한눈에 들어왔습니다.
“경치 좋죠? 여기서 도시락을 먹고 가겠습니다.”
김밥으로 도시락을 먹은 기념사진을 찍고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내려가는 일만 남았어요. 천천히 오세요.”
백운재를 지나 능선을 타고 계속 걸어가니 드디어 천룡사가 보였습니다.
천룡사지에서는 지금 발굴 작업이 한창 진행 중이었습니다. 발굴을 하느라 마당 전체가 움푹 패어 있었습니다.
“이 탑은 천룡사의 옛터에 무너져 있었는데 저희 은사 스님이신 불심 도문 스님이 새롭게 복원해서 지금의 모습이 되었어요. 맨 밑이 기단이고, 그 위에 탑신이 3개 있기 때문에 삼층석탑입니다. 몇 층 석탑인지는 지붕의 개수를 세어보면 돼요. 자, 참배하고 가겠습니다.”
삼층석탑을 참배하고 가건물로 지어놓은 대웅전을 참배했습니다.
선당에 들어가서 잠시 차담을 나누었습니다. 스님은 천룡사의 역사에 대해 설명하면서 이 절이 왜 호국사찰인지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삼국유사의 기록에 따르면, 신라 시대에 악붕구라는 당나라 사신이 와서 이 절을 보고 ‘이 절이 망하면 나라가 망하고, 이 절이 흥하면 나라가 흥한다’라고 말했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실제로 이 절이 망하고 신라가 망했어요. 고려가 건국된 후 최 제안이라는 사람이 재상이 되자 고려의 발전을 위해 천룡사를 중창했습니다. 그래서 고려가 융창했는데 고려 말에 이 절이 망하자 다시 고려도 망하게 되었습니다. 새로 조선이 건국되자 유교를 숭상하는 국가임에도 무학대사가 조선왕조의 발전을 기원하며 이 절을 중창했어요. 그렇게 해서 다시 이 절이 번성하다가 영조 때 유생들이 불을 질러서 소실되었습니다.
이런 설화가 있는 곳이다 보니 용성 조사님이 돌아가실 때 대한민국의 국운 융창을 위해 ‘천룡사를 복원하라’ 하는 유훈을 남기셨습니다. 다시 말해 새로운 국가를 세우고 그 국가가 발전하려면 이 절을 복원해야 한다는 이야기지요. 그래서 천룡사는 그냥 일반 사찰이 아니라 호국 사찰이라고 해요. 이런 유서 깊은 절을 어떻게 복원해서 국운 융창을 도모할 것인가는 아직 남은 과제입니다.”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밖에서 비가 오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아이고, 비가 오네요. 서둘러 내려갑시다.”
빗방울이 조금씩 날리는 가운데 빠른 걸음으로 산을 내려왔습니다.
경주 남산 순례를 마치고 두북 수련원으로 향했습니다. 운동장에 내리자마자 스님은 JTS 창고를 보여주었습니다.
“이곳은 원래 제3세계에 가난한 나라를 돕기 위해 물품을 보관하는 창고였습니다. 특히 북한을 돕기 위해 많은 물품들을 보관하고 있었는데, 남북 관계가 단절되면서 활용을 거의 못하고 있다가 최근에 코로나 사태로 인해 170개 법당을 철거하면서 나온 물품들을 재활용하는 공간으로 지금은 잘 사용하고 있어요. 한번 보세요. 마음에 드는 물건들이 있어요?”
“책장이 정말 마음에 드는데 비행기에 실어갈 수가 없네요.” (웃음)
JTS 창고를 나오자 농사일을 하러 가던 묘당 법사님을 만났습니다.
“요즘은 묘당 법사님이 농사를 전체 책임지고 있어요. 저는 농사일을 보조하는 팀원입니다. 얼마 전에 제가 해외 다녀오느라 농사일을 많이 못해서 눈치를 많이 보고 살아요.” (웃음)
“반갑습니다.”
다음은 재활용 물품들이 체계적으로 분류가 되어 있는 살리고센터로 향했습니다.
“없는 것 빼고는 다 있어요. 보시고 마음에 드는 물건이 있으면 가져가세요.” (웃음)
방석, 양말, 속옷, 문구류, 장바구니, 이불, 목탁, 죽비 등 다양한 물건들을 구경했습니다.
살리고센터를 나와서 학교 건물 안으로 들어가 보았습니다. 가장 관심이 많았던 곳은 방송실이었습니다. 해외에서 매번 생방송을 볼 때마다 방송실이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했는데 그 현장을 직접 보고 모두 너무나 좋아했습니다.
“카메라 앞에 서서 법문도 해보세요.”
한 명씩 카메라 앞에 서서 자기 얼굴이 어떻게 화면에 나오는지 보고 아주 즐거워했습니다.
방송실을 구경하고 나서 복도를 지나 두북 공동체 대중들이 살고 있는 생활공간을 둘러보았습니다.
“스님, 옛날에 학교 다닐 때가 생각나네요. 복도에 양초칠 하던 생각도 나고, 실내화를 여기 두었던 기억도 나요.” (웃음)
두북 수련원 투어를 마치고 농장으로 향했습니다. 비닐하우스 4개 동을 살펴보고, 스님의 설명을 들었습니다.
“농사일은 많은데 일손이 부족해요. 고추도 지금 다 따야 하는데, 못 따고 이렇게 두고 있습니다.”
“아이고, 그러면 지금 저희가 30분만 고추를 따주고 가면 안 될까요?”
“괜찮아요.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그냥 가는 수밖에요.”
비닐하우스를 나와 산앞밭으로 향했습니다. 밭에는 김장을 앞두고 푸릇푸릇한 배추가 빼곡하게 자라고 있었습니다.
“다음 주에 공동체 대중이 먹을 김장을 합니다. 그래서 아직 배추를 안 뽑고 남겨 두고 있어요.”
농장을 다 둘러본 후 스님이 홍시를 하나씩 나눠주었습니다.
맛있게 홍시를 먹고 나자, 이번에는 밤을 한 움큼씩 나눠주었습니다.
“갖고 있는 주머니 크기만큼 나눠줄게요.”
“감사합니다.”
다들 조금이라도 더 큰 주머니를 갖고 와서 스님이 나누어주는 밤을 가득 담았습니다. 스님은 얼마 전 수확한 햅쌀도 한 포대씩 나눠주었습니다. 모두 기차를 타고 각자의 공간으로 흩어지기로 했기 때문에 두북 수련원에서 작별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잘 가요.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너무 주신 게 많아서 비행기 안에 다 갖고 갈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스님은 업무를 보기 위해 학교로 들어가고, 해외 활동가들은 기차를 타기 위해 울산역으로 향했습니다.
해가 저물고 저녁 8시부터는 정토경전대학 생방송 수업을 시작했습니다. 반야심경 공부를 계속하고 있는데요. 지난 시간까지 ‘색불이공 공불이색 색즉시공 공즉시색 수상행식 역부여시’에 대해 두 번에 걸쳐 설명이 있었습니다. 오늘은 제5강인데, 그다음 문장인 ‘시제법공상 불생불멸 불구부정 부증불감’에 대한 강의가 이어졌습니다.
“시제법공상(是諸法空相)이란 ‘제법이 공한 실제의 세계는 어떠한가’ 이런 뜻입니다. 반야심경에서는 실제의 세계가 불생불멸이요, 불구부정이요, 부증불감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 우리가 사는 이 세계는 생멸이 있습니다. 우주도 생겨나고 사라지고, 별들도 생겨나고 사라지고, 사람도 태어나고 죽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계는 생멸의 세계입니다. 아이가 태어나면 기뻐하고, 사람이 죽으면 슬퍼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우리가 인식하는 세계일 뿐입니다. 우리는 ‘해가 뜬다, 해가 진다’라고 말합니다. 지구에 사는 내 눈에는 해가 보였다 안 보였다 하니까 인식한 대로 말하는 거예요. 하지만 실제로 태양계를 보면 태양은 늘 그 자리에 있고 지구가 자전하는 겁니다. 실제로는 해가 뜨는 바도 없고, 지는 바도 없어요. 그것처럼 실제의 세계는 생하는 바도 없고 멸하는 바도 없고 여여합니다.
바닷가에서 파도를 보면 파도가 생겨나고 파도가 사라집니다. 파도 하나하나를 보면 생겨나고 사라지는 것이 있어요. 그러나 바다 전체를 보면, 파도는 생겨나는 것도 아니고 사라지는 것도 아니에요. 그냥 물이 출렁출렁할 뿐입니다. 파도 하나만 보면 생겨나고 사라지는 것으로 인식이 되는데, 바다 전체를 보면 생겨나는 것도 없고 사라지는 바도 없습니다. 그냥 변할 뿐이에요. 개별로 볼 때는 생겨나고 사라지는 것처럼 인식이 되지만, 전체를 보면 생겨났다고 할 것도 없고 사라졌다고 할 것도 없어요. 이것이 불생불멸입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불생불멸이라고 하면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불생불멸의 의미는 생한다고 하지만 생했다고 할 수 없고, 멸했다고 하지만 멸했다고 할 수 없다는 뜻이에요. 생한 것도 아니고 멸한 것도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다른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1차원, 2차원, 3차원, 4차원에 대해 들어본 적 있나요? 1차원은 수직선을 말해요. 수직선은 가운데가 숫자 ‘0’이고, x축만 있는 거예요. 오른쪽으로 갈수록 +1, +2, +3, +4가 되고, 왼쪽으로 갈수록 –1, –2, –3, –4 가 됩니다. 한마디로 파이프와 같은 거예요. 파이프 안에 구슬 하나가 이쪽에서 오고, 다른 하나는 저쪽에서 온다고 합시다. 그러면 구슬이 탁 하고 서로 부딪칩니다. 피할 곳이 없어요. 이것이 1차원이에요.
그러나 2차원은 평면입니다. 그래서 x축과 y축이 있어요. x축의 제로에도 y축으로는 0 콤마 1, 0 콤마 2, 0 콤마 3, 0 콤마 4, 이렇게 y축이 있습니다. 또 밑으로도 0 콤마 –1, 0 콤마 –2, 0 콤마 –3, 이런 식으로 y축이 있습니다. 평면은 표시를 어떻게 할까요? x 콤마 y, 이렇게 점의 위치를 두 숫자로 표시하죠. 우리가 서 있는 여기를 동경 몇 도, 북위 몇 도, 이렇게 표시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때 1차원의 세계에 있는 사람은 두 개의 구슬 중에 하나가 없어지지 않는 한 서로 피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2차원의 세계에 있는 사람이 볼 때는 아무 문제가 아니에요. 다른 하나의 구슬을 y축으로 옮겨 놓으면 충돌을 피할 수가 있습니다. 2차원에서는 ‘옆으로 갔네’ 하고 느끼는데, 1차원에서는 순간적으로 앞에 있던 게 금방 없어졌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보이면 ‘다시 생겼네’ 이렇게 되는 거예요. 1차원에서는 생기고 사라지는 게 2차원에서는 그냥 이동에 불과한 것입니다.
3차원은 x축, y축, z축이 있습니다. 즉, 가로, 세로, 높이가 있는 세계입니다. 2차원에서는 건물을 1층밖에 지을 수가 없지만, 3차원에서는 같은 면적에 높이로 올라가면서 1층도 짓고, 2층도 짓고, 3층도 짓고, 4층도 지을 수 있습니다. x축 y축은 같은데 z축이 점점 달라지는 것입니다. 비유를 들어서 말하면 개미는 2차원의 세계에 살기 때문에 높이라는 개념이 없습니다. 그래서 평면에 울타리를 쳐 놓으면 개미는 넘어갈 수가 없죠. 그런데 그 개미를 사람이 손으로 잡아 약간 위로 올리면, 평면의 눈을 가진 사람은 ‘없어져 버렸네’라고 생각할 겁니다. 눈앞에서 사라져 버렸다고 생각하다가 막상 다시 내려오면 ‘개미가 나타났다’라고 말하며 귀신같다고 생각할 거예요. 이처럼 2차원에서는 생기고 사라지는 것이 3차원에서는 그냥 이동에 불과한 것이 됩니다.
4차원은 어떨까요? 4차원은 가로 세로 높이인 xyz에 시간 축인 t가 추가됩니다. 방 안에 내가 갇혀 있으면 3차원에서는 방 안에 벽을 뚫어야만 나갈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4차원에서는 시간 축으로 이동을 하면 됩니다. 4차원에서 보면 그냥 단순히 시간 축의 이동에 불과한데 3차원에서 보면 그냥 연기처럼 사라져 버려요. 그러다 갑자기 연기처럼 탁 나타나는 겁니다. 3차원에서 볼 때는 ‘사람이 사라졌다가 나타났다’ 이렇게 생각하지만, 4차원에 볼 때는 사람이 시간 이동을 한 거예요.
실제의 세계는 4차원의 세계입니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은 4차원의 세계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빛의 속도만큼 빨리 가는 로켓이 있다고 가정하면, 그 로켓 안에서의 시간은 점점 제로에 가깝다는 것이 특수상대성 이론이죠. 이런 것처럼 차원에 따라서 달리 보입니다. 1차원적 사고를 가진 사람은 2차원적 사고에 대해서 이해하지 못하고, 2차원적 사고를 가진 사람은 3차원적 사고를 가진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고, 3차원적 사고를 가진 사람은 4차원적 사고를 가진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는 거예요. 장벽을 무너뜨리지 않는 한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부처님이 탁발을 나갔는데 어느 바라문이 ‘왜 육신도 멀쩡한데 일을 해서 밥을 먹지, 얻어먹느냐?’ 하며 욕을 했어요. 3차원에서는 상대가 나한테 욕을 하면 ‘쟤가 나한테 욕을 했어. 나쁜 놈이야’ 하며 화를 내는 식으로 대응을 할 수밖에 없는데, 부처님은 욕하는 바라문에 대해서 참는 게 아니라 4차원적으로 대응을 했습니다. ‘그 바라문의 수준에서는 저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고 이해를 한 거죠. 그 차원에서 그렇게 생각할 수가 있다고 이해하니까 부처님께서는 빙긋이 웃었습니다.
부처님이 빙긋이 웃으니까 바라문이 또 ‘왜 웃냐?’ 하고 화를 냈습니다. 욕을 들으면 대응을 해야 하는 게 3차원의 세계인데, 부처님은 욕을 듣고도 웃으니까 바라문은 부처님이 자신을 비웃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자 부처님이 바라문에게 물었어요.
‘당신 집에 손님이 가끔 옵니까?’
‘네’
‘선물을 가지고 옵니까?’
‘네’
‘손님이 가져온 선물을 안 받으면 그 선물은 누구 거예요?’
‘가져온 사람 거죠’
이 정도면 알아들어야 하는데 무슨 말인지 모르고 ‘그건 왜 물어?’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조금 전에 당신이 저한테 욕을 선물했는데 제가 웃으면서 안 받으면 그 욕이 누구의 것인가요?’
바라문은 이제야 말귀를 알아듣고 3차원에 갇혀 있던 자기 생각이 탁 무너지게 됩니다. 우리가 인지하는 것이 실제의 세계와 항상 일치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바로 불생불멸의 뜻입니다.
둘째, 실제의 세계에서는 더러운 것도 없고 깨끗한 것도 없습니다. 이것을 불구부정(不垢不淨)이라고 해요. 우리가 사는 세계에서는 더러운 것도 있고 깨끗한 것도 있잖아요. 푸세식 화장실에 가보면 더럽죠. 더러운 곳에서 바글바글 사는 구더기가 불쌍해서 채로 건져서 깨끗이 씻은 후 하얀 그릇에 담아놓으면 어떨까요? 우리가 보기에는 깨끗해서 보기 좋잖아요. 그런데 구더기는 다 튀어나와서 다시 똥통으로 들어갑니다. 그것이 그들의 세계예요.
마약을 하는 사람은 마약이 몸을 병들게 해도 마약에 집착되어 있죠. 여러분도 마찬가지예요. 욕망에 집착하는 것이 자신을 병들게 하고 자신을 괴롭히는데도 그 세계에서 기쁨을 느끼고 즐거움을 느끼잖아요. 엄마가 볼 때는 지금 게임에 빠진 아이들이 문제이지만, 아이들은 그 속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거예요.
불구부정(不垢不淨)이란 사실은 청결하고 불결하다고 말할 때의 위생적인 개념이 아닙니다. 정확한 의미는 신성한 것도 없고 천한 것도 없다는 뜻입니다. 부처님 당시에는 신분적으로 브라만은 신성하고, 천민은 천하다고 여겼습니다. 모든 사람이 천민 가까이 가면 부정 탄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브라만이라고 성스럽다 할 것도 없고, 불가촉천민이라고 부정하다 할 것도 없다’
참 굉장한 얘기죠. 당시에는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남자는 성스럽고 여자는 부정하다고 생각하는 문화도 있잖아요. 가게 첫 손님으로 여자가 오면 재수 없다고 한다거나, 인삼밭에 여자가 오면 재수 없다고 하거나, 배가 출항할 때 여자가 타면 재수 없다고 하거나, 이런 말들은 모두 남자는 성스럽고 여자는 부정한 존재라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부처님께서는 성스러움도 없고 부정함도 없다고 하셨습니다. 생긴 모양이 다를 뿐이지 남자라고 해서 우월하다 할 것이 없고, 여자라고 해서 열등하다고 할 것이 없다는 겁니다.
셋째, 실제의 세계는 늘어나는 것도 없고 줄어드는 것도 없습니다. 우리는 ‘재산이 늘어났다’, ‘재산이 줄어들었다’, ‘몸무게가 늘어났다’, ‘몸무게가 줄어들었다’ 이런 말들을 늘 사용하는데, 왜 늘어나는 게 없고 줄어드는 게 없다고 할까요?
저울대를 놓고 왼쪽에 2kg 저울추를 두고, 오른쪽에 큰 바구니를 뒀어요. 큰 바구니 안에는 작은 바구니 2개를 넣어 두고, 이쪽 바구니에는 사과 5개를 넣고, 저쪽 바구니에는 배 5개를 넣어 두었다고 합시다. 이쪽 바구니에 있는 배를 하나 집어서 저쪽 바구니에 집어넣으면, 배 바구니는 하나가 줄고, 사과 바구니는 하나가 늘었죠. 그런데 저울추는 안 움직입니다. 2개의 작은 바구니 사이에서는 늘었다 줄었다 하지만 큰 바구니 안에는 사과 5개와 배 5개가 그대로 있잖아요. 좁게 보느냐, 넓게 보느냐, 짧게 보느냐, 길게 보느냐,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인식이 다르게 일어납니다.
비행기에서 기내식을 먹으면 몸무게가 늘어납니다. 그때 비행기가 무거워졌을까요? 탑승객이 먹을 음식물이 가득 실린 비행기에서 그 음식물을 다 나눠줘서 싹 없어졌다고 해서 비행기가 가벼워질까요? 개개인으로 보면 늘었다 줄었다 하지만, 비행기 전체로 보면 늘어난 것도 없고 줄어든 것도 없습니다.
부모와 두 명의 자식들이 명절에 카드놀이를 하면서 돈내기를 했다고 합시다. 아빠가 좀 따고, 엄마가 좀 잃고, 큰 애가 좀 따고, 작은 애가 좀 잃었어요. 그러면 애들은 싸웁니다. 돈을 잃었다고 화내고, 돈을 땄다고 좋아해요. 자기 돈 가져간 것 좀 달라고 하고, 자기가 땄는데 왜 돌려줘야 하냐면서 막 울고 싸우면, 엄마가 이렇게 말합니다.
‘애들아, 그만 싸워라. 그 돈이 그 돈이잖니? 그게 어디 간 것도 아니고, 그 자리에 있는데 싸우기는 왜 싸워’
엄마는 집안 전체를 보기 때문에 이렇게 말할 수가 있는 거예요. 자식들은 자기만 보니까 절대로 그 돈이 그 돈이 아닌 거죠. 이런 경험은 종종 생활 속에서 느낄 수 있습니다. 그 돈이 그 돈인 줄 아는 사람은 그 일로 괴로워하지 않습니다. 너의 것과 나의 것이 따로 있는 사람은 땄느니 잃었느니 하면서 괴로워합니다.
그러나 부처님은 자신만 보거나 자기 가족만 보거나 자기 지역만 보거나 자기 나라만 보는 게 아니라 모든 사람을 하나로 봅니다. 만약에 한국과 일본이 싸웠다고 가정해봅시다. 우리는 부처님께 한국이 이기게 해달라고 빕니다. 그 말은 일본 사람들이 많이 죽게 해 달라는 거잖아요. 일본 사람들도 자기 나라가 이기게 해달라고 부처님께 빌어요. 그것은 한국 사람들이 많이 죽게 해 달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부처님이 이 사람 말 듣고 저 사람 죽이고, 저 사람 말 듣고 이 사람 죽이고, 이런 일을 하는 존재일까요? 이런 신앙이 어떻게 진리겠어요?
그러니 여러분들이 눈을 조금 크게 떠야 합니다. 작게 보면 이기고 지는 것이 있지만, 크게 보면 이기고 지는 개념이 없어집니다. 늘어나고 줄어드는 게 없는 줄 알아야 해요. 본질의 세계에서는 부증불감이 진실입니다.
오늘 강의는 불생불멸, 불구부정, 부증불감, 세 가지를 공부했습니다. 진리의 세계에는 세 가지만 있는 것이 아니에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같은 것도 아니고, 다른 것도 아니다. 이것을 ‘불일불이’라고 합니다. 이 세계는 움직이는 것도 아니고, 정지한 것도 아닙니다. 시작도 없고 끝도 없습니다. 이것을 ‘무시무종’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시작이 있고 끝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창조론이 나오고 종말론이 나오는 거예요.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줄 알면 창조도 없고 종말도 없어요. 변화만 있지요.”
여기까지 강의를 한 후 이번 주 수행 연습 과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수업을 마쳤습니다. 학생들은 교실별로 화상회의 방에 모여 마음 나누기를 이어나가고, 스님은 방송실을 나왔습니다.
곧바로 차에 올라 두북 수련원을 출발해 서울로 향했습니다. 내일부터 서울에서 여러 일정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차로 4시간을 달려 새벽 1시에 서울 정토회관에 도착한 후 하루 일정을 마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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