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2.9.7. 델리 ▶ 다카 ▶ 콕스바자르 ▶ UNHCR 미팅
“고향 떠난 사람들을 보살피는 것은 나를 보살피는 것과 같습니다.”

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델리를 출발해 방글라데시 콕스 바자르(Cox's Bazar) 근교에 위치한 로힝야 난민캠프를 향해 이동했습니다. JTS에서 지난 2019년에 이어 두 번째로 로힝야 난민캠프에 가스버너 10만 개를 전달하기로 했기 때문입니다.

델리 공항 근처 게스트하우스에서 잠깐 눈을 붙인 후 새벽 4시에 델리 공항으로 출발했습니다. 새벽녘 델리 도심에는 한국 기업들의 간판이 곳곳에 보였습니다.


델리공항에 도착해 출국 수속을 밟은 후 오전 6시 40분에 방글라데시를 향해 비행기가 이륙했습니다.


약 2시간을 비행한 후 현지 시간으로 9시 20분에 다카(Dakka)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다카 공항에는 UNHCR에서 한국인 직원 두 명이 나와서 스님과 JTS 일행을 마중해 주었습니다.

반갑게 인사를 나눈 후 국내선으로 갈아타기 위해 공항에서 3시간을 대기했습니다. 기다리는 동안 스님은 UNHCR 직원들과 로힝야 난민캠프의 상황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2017년 8월 25일, 방글라데시와 국경을 맞댄 미얀마의 라카인주에서 로힝야 주민을 표적으로 하는 미얀마군의 거대하고 조직적인 탄압 작전이 시작됐습니다. 로힝야 구원군(Arakan Rohingya Salvation Army)으로 알려진 무장단체가 30여 곳의 미얀마 경찰 초소를 공격한 직후 약 1개월 동안 이어진 이 사태로, 수많은 로힝야 마을이 불타고 6700여 명이 숨졌습니다. 이 중 약 730명은 5살 이하 어린이였습니다. 그 1개월 동안 외신이 보도하는 피란민 수는 수천 명에서 수만 명으로 하루하루 급격하게 늘어났습니다. 결국 유엔난민기구(UNHCR)에서 추산하는 숫자로 70만 명이 넘는 로힝야 사람들이 살해와 성폭행 등의 폭력을 피해, 충격과 공포 속에 국경을 넘어 방글라데시 콕스 바자르로 탈출했습니다.

미얀마에서 이슬람 및 벵골계 소수민족인 로힝야 사람들이 공식적인 박해를 받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콕스 바자르에는 이미 2017년 이전에 피난을 나온 로힝야 난민 20여만 명이 있었고, 2017년에 대규모로 입국한 인구와 더불어 총 90여만 명이 난민 생활을 하게 됐습니다. 2019년 기준 UNHCR은 약 94만 명의 로힝야 난민이 총 33개의 하위 구역으로 나뉜 거대한 난민캠프 지역에서 생활하고 있다고 추산하고 있습니다.

먼저 스님은 지난 2019년에 JTS가 가스버너를 지원한 것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2019년에 JTS가 가스버너를 이미 10만 개를 지원했었습니다. 이번에 다시 10만 개를 지원하는 거예요. 가스버너를 지원하기 전만 해도 난민캠프 주위가 완전히 황무지였어요. 난민들이 나무를 때서 밥을 했으니까요. 가스버너를 지원한 후 2년 정도 지나니까 주위가 다시 녹색으로 뒤덮였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거든요.”

“가스버너 10만 개면 저희 UNHCR 입장에서도 정말 어마어마한 규모입니다.”

“원래는 20만 개를 지원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는데, JTS처럼 민간단체에서 모두 부담하기가 어려워서 JTS에서 10만 개를 지원할 테니 나머지 10만 개는 한국 외무부에서 지원해 달라고 제가 요청을 했었어요. 그런데 안 되었어요. 요청한 20만 개를 다 지원하지 못해서 미안해요.”

“네, 외무부에서 작년에 UNHCR에 지원해 주겠다는 대답을 들었습니다. 스님께서 보이지 않게 애를 써주셨군요. 감사합니다.”

대화를 나누다 보니 비행기에 탑승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12시 30분에 다카 공항을 출발해 약 1시간을 비행한 후 1시 35분에 콕스 바자르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공항에 내리자마자 UNHCR 방글라데시 부대표 이수진 님과 콕스바자르 대표 이타 씨가 스님 일행을 반갑게 환영해 주었습니다.

“JTS에서 로힝야 난민캠프에 가스버너를 지원해 주신 것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렇게 환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부터 내일까지 1박 2일 동안의 일정에 대해 설명을 들은 후 곧바로 로힝야 난민캠프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은 전시회를 보러 갔습니다. 이동하는 중에 UNHCR 책임자 두 분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스님은 왜 민간 NGO인 JTS가 로힝야 난민캠프에 가스버너를 지원하게 되었는지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2019년에 처음으로 가스버너를 지원할 때는 WFP로부터 제안을 받았어요. 첫째, 난민들이 밥을 해 먹기 위해 벌목을 하니까 주변 산림 파괴가 심하고, 둘째, 여성들과 아이들이 나무를 구하러 다니다가 성폭행과 인신매매에 노출되는 문제가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가스버너를 지원하게 된 거예요. 하지만 가스버너 10만 개는 규모가 너무 크니까 NGO가 부담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일은 WFP에서 하면 되지 왜 NGO에 지원 요청을 하느냐고 했더니, ‘WFP에서 이 프로젝트를 올리면 승인이 안 난다’라고 하더라고요. 왜냐하면 식량이나 생필품도 지원할 게 많은데 난민에게 무슨 가스버너까지 지원하느냐며 반대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JTS가 가스버너를 지원하고 WFP에서 가스 공급을 하면 좋겠다고 제안하면 승인이 나기 쉽다는 겁니다. 일리가 있는 제안이라고 판단해서 JTS가 가스버너 지원 사업을 처음 시작하게 된 겁니다.”

대화를 나누다 보니 사진전이 열리고 있는 장소에 도착했습니다. 사진전을 기획한 분이 사진 한 장 한 장에 대해 자세히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로힝야 난민들은 사진에 찍히는 것을 대부분 거부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진 전시회를 여는 것에 대해 모두가 동의를 해주셨습니다. 왜냐하면 저희는 사진을 통해 로힝야 난민들이 자신들의 문화를 보존하는 것을 도와주자는 취지를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아이는 말을 하지 못하는 농아인데요. 5년 전에 자신의 모습이 찍힌 사진을 들고 서 있습니다. 5년 전보다 훨씬 건강해졌죠. 이 사진들을 통해 무엇보다 우리도 누구나 난민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사진 한 장 한 장에 담긴 난민들의 상황에 대해 설명을 들은 후 마지막으로 스님이 방명록에 한 줄을 남겼습니다.

“고향 떠난 사람들을 보살피는 것은 나를 보살피는 것과 같습니다.”

2022.9.7. 법륜

전시회를 보고 나와 다음은 방글라데시 난민 구호 및 송환위원회(RRRC) 사무실로 이동했습니다.

“저희 UNHCR은 모든 사업을 방글라데시 RRRC와 협의 하에 진행하고 있습니다. 마침 RRRC 장관님과 차관님이 스님을 뵙고 싶다고 해서 잠깐 그쪽으로 이동하겠습니다.”

RRRC는 로힝야 난민캠프에서 모든 사업을 총괄하는 방글라데시의 관청입니다. 스님은 RRRC의 장관님과 차관님을 만나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로힝야 난민을 수용하기가 굉장히 어려울 텐데도 기꺼이 수용하고 여기에 살 수 있도록 베풀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4년 전도 그렇고 이번에도 그렇고, JTS에서 기증해 주신 가스스토브 10만 개가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소식을 들었습니다. 다만 제안하고 싶은 것은 지원한 가스스토브가 고장이 났을 때 수리하는 시스템이 마련되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네, 좋은 제안입니다. 가스스토브의 수리 문제도 저희가 방법을 찾아보겠습니다. JTS가 할 수 있는 건 아주 작은 일이고, 역시 방글라데시 정부가 하는 일이 가장 큰 역할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미얀마 불교 지도자들과 이 문제를 얘기해 봤지만, 제가 느끼기에 난민들이 빠른 시일 내에 돌아가기는 쉬울 것 같지가 않네요. 그래서 우선 난민들이 이곳에 있을 동안은 여러분께서 잘 보살펴주시기 바랍니다. 이런 공덕을 지으면 신의 가호가 있어서 방글라데시가 앞으로 빠르게 발전할 겁니다.”

기념사진을 찍은 후 RRRC를 나와 UNHCR로 향했습니다.

UNHCR로 이동하는 중에 차 안에서 UNHCR 책임자 분이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스님에게 물었습니다.

“스님, 스케줄이 너무 빡빡해서 어떡해요. 식사를 계속 못하시고 일정을 이어가고 있으신데 괜찮으실까요? 저녁에는 저희 사무실에서 식사를 드실 수 있도록 준비했으니 걱정 마셔요.”

“괜찮습니다. 저는 이곳에 난민들을 도우러 왔지 밥 먹으러 온 게 아니잖아요.” (웃음)

UNHCR 사무실에 도착한 후 현재 로힝야 난민캠프에서 어떤 사업을 주로 하고 있는지 각 파트별로 자세한 설명을 들었습니다.

먼저 난민 보호 파트를 책임지고 있는 하르노씨가 현재 로힝야 난민들의 상황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2017년 8월부터 76만 명 이상의 로힝야 난민들이 미얀마 국경을 넘었습니다. 아시아에서 가장 큰 난민 규모로 알고 있습니다. 지금 로힝야 난민캠프에 오신 분들은 무국적자이기 때문에 이중고를 치르고 있는 실정입니다. 난민들이 여기서 보호를 받고는 있지만 이들에게 정당한 권리가 없고, 이런 와중에 출산을 하고 삶을 살아가다가 경우에 따라서는 여기서 죽기도 하기 때문에 여러 가지 권리가 지금 결여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방글라데시는 아시다시피 굉장히 인구가 집약돼 있고, 그런 와중에 난민 캠프도 굉장히 인구가 밀집된 지역에 있기 때문에 밀집도가 높습니다. 밀집도가 얼마나 높으냐 하면 방글라데시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인 쿨나(Khulna)와 맞먹을 정도입니다. 아시다시피 난민촌은 굉장히 협소한 장소에 많은 사람이 밀집해서 사는 환경이다 보니 그로 인해 여러 가지 사회적인 문제가 발생합니다. 이는 정신건강에도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80퍼센트 이상이 아동과 여성인데, 공공 교육을 받을 수 없어서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습니다. 또 국경 변에 있다 보니 마약밀매, 인신매매 문제도 발생하고 있습니다. 미래가 불확실하다 보니 젊은이들이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범죄에 계속 연루가 되고 있습니다. 이런 여러 가지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UNHCR에서는 많은 연구와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이어서 여성, 공공보건, 생계지원, 교육 등 각 파트별 책임자들의 발표가 이어졌습니다. 스님은 발표가 끝나면 분야별로 궁금한 점에 대해 질문을 했습니다.

먼저 교육과 여성 문제에 대해 스님이 질문을 했습니다.

“아이들을 교육할 때 교과는 미얀마 교과 과정을 채택하고 있나요, 방글라데시 교과 과정을 채택하고 있나요?”

“미얀마 교과 과정입니다. 방글라데시 교과 과정이 아닙니다. 방글라데시 정부는 방글라데시 언어가 허용될 경우 로힝야 난민들이 여기에 오랫동안 장기적으로 안주해서 돌아가지 않을까 봐 우려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미얀마 언어를 가르칩니다. 방글라데시 정부에서 주장하는 것은 로힝야 난민의 문화적인 정체성은 결국은 미얀마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문화적인 정체성을 확보하고 유지하려면 미얀마 언어로 교육받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4년 전이나 지금이나 입장 변화가 하나도 없네요. 그렇지만 이건 현실적 대책은 아니지 않습니까? 로힝야 난민들은 지금 미얀마로 돌아갈 수 없는 상황이잖아요. 특히 미얀마에 군부가 집권했기 때문에 더더욱 해결책을 찾기가 어려워져요. 어른들은 그런 조치를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아이들에게는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야 하지 않을까요? 여기서 태어나는 아이들도 방글라데시 국적을 못 얻습니까?”

“네, 못 얻습니다.”

“알겠습니다. 1997년부터 2003년 사이에 북한 난민들이 중국으로 많이 넘어왔고, 제가 그들을 보호하는 일을 하면서 지금 여기에서와 같은 젠더 문제, 특히 성폭행 문제가 많이 노출되는 걸 봤습니다. 그리고 인신매매도 생겨났어요. 인신매매가 처음부터 생긴 건 아니었습니다. 중국으로 넘어온 난민을 보호하는 차원에서 배우자로 남성을 소개해 주는 방식으로 처음에는 좋은 취지로 시작이 됐어요. 그런데 이것이 점점 발전하자 돈을 받고 알선을 하게 되고 나중에는 완전히 인신매매로 발전해 나갔습니다. 중국에서 불법 체류자 신분으로 있어야 하기 때문에 남성들은 주로 일을 하고도 월급을 못 받는 피해를 당했고, 여성들은 보호라는 명분으로 성폭행을 당했습니다. 또 결혼을 못한 중국 남성들이 돈을 지불하고 북한 여성을 소개받아 결혼을 했는데, 우리가 난민을 구한다는 이름으로 그 여성을 데려옴으로 해서 그 결혼생활에서 낳은 자식과 헤어지는 가족의 이산, 중국 주민의 피해, 이런 문제가 굉장히 복잡하게 발생했습니다.

그처럼 미얀마에서 방글라데시로 오면 방글라데시에서는 불법 체류잖아요. 이런 난민이 발생한 경우 성폭행이나 인신매매 같은 문제가 어느 정도 발생하나요?”

“로힝야 난민이 처음 유입된 2017년 당시에는 인신매매에 대한 위기감이 없었고 실제로도 상황이 괜찮았습니다. 그러나 햇수가 지날수록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습니다. 로힝야 여성들에게 보다 나은 경제적 대우를 미끼로 접근해서 인신매매를 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합니다. 그렇게 간 곳에서 여성들이 아주 싼 노동력으로 착취당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렇지만 이는 방글라데시 사회에서도 비일비재한 상황입니다.

또 특이한 것 한 가지는 로힝야 여성들이 배를 타고 말레이시아에 가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입니다. 그곳에서는 같은 로힝야인과 결혼하기 위해 위험을 감수하면서 배를 타고 말레이시아나 인도네시아로 가는 경우인데, 이게 하나의 생존 수단으로 이용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배를 타고 가는 과정에서 또 생존에 위협을 받는 경우가 발생합니다.”

“북한 난민들도 그 두 가지 문제가 동시에 발생하는 경우가 아주 많았어요. JTS가 가스버너를 지원한 이유 중 하나는 산림 파괴를 막기 위해서였고, 또 하나는 나무를 하러 가는 과정에서 여성과 어린아이들이 성폭행과 인신매매를 당할 위험을 막기 위해서였습니다.”

여성 문제에 대해 충분히 대화를 나눈 후 다음은 정신적인 상처를 치유하는 일에 대해 질문하고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신체 진료는 말이 좀 안 통해도 그냥 전문 기술만 있으면 되겠지만,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고 정신건강을 돌보려면 충분한 언어 소통이 돼야 하거든요. 로힝야 언어로 소통이 이루어져야 할 텐데 로힝야 난민 중에 그만한 전문 상담을 할 수 있는 사람이 훈련되어 있습니까? 굉장히 어려운 일일 텐데 어떻게 하고 있어요?”

“저희가 로힝야 난민 지원 사업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로힝야 난민들의 자원봉사입니다. 스님께서 말씀하셨듯이 정신건강 측면에서는 그런 언어적 문제가 있기 때문에 우선은 저희가 로힝야 자원봉사자들을 모아서 교육을 시키고, 그 사람들이 나가서 상담을 하게 됩니다. 2차 진료를 받기 위해 방글라데시 의사들한테 또 진료를 받는 경우도 있는데, 그런 경우에도 로힝야 난민들이 통역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방글라데시에도 정신건강을 전문적으로 다룰 수 있는 상담사는 많지가 않잖아요?”

“물론 그런 전문적 인력이 충분한 건 아니지만, 저희가 300명의 자원봉사자들을 집중적으로 훈련시켜 정신건강 상담 업무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방글라데시 인근 지역에서는 이렇게 정신건강 전문 상담을 할 사람들이 별로 없는 것 또한 현실입니다. 그래서 난민 캠프의 구역마다 보건소가 있는데 거기에 별도로 정신건강을 담당하는 방을 따로 배정해서 사람들이 입원할 수 있게끔 합니다.”

“제가 볼 때는 이것이 제일 중요한 사업이자 제일 어려운 사업 같아요. 북한에서 한국에 온 사람들의 경우, 한국 정부가 물질적인 지원만 하지 정신건강 면에서는 지원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북한에 있을 때 인권 침해를 당했고, 가족이 죽었고, 또 중국에 오는 과정에서도 성폭행을 당하는 등 엄청난 정신적 충격을 받았어요. 이런 트라우마를 방치한 결과, 한국에 와서도 30퍼센트 정도가 사회 적응을 제대로 못 합니다. 사실은 물질적인 문제가 아니라 정신적인 상처 때문에 적응을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여러분들이 정말 어려운 일을 하고 계신다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다음은 생계 지원 파트에 대해 발표한 후 질의응답이 이어졌습니다. 스님은 로힝야 난민들이 수입을 얻을 수 있는 길이 있는지 확인했습니다.

“지금 로힝야 난민들은 UN에서 하는 사업에 보조적인 역할을 하는 것 외에는 수입을 얻을 길이 없는 것 같네요.”

“맞습니다.”

“결국 생산물이 난민캠프 밖으로는 못 나가는 상황이네요. 그렇다면 NGO가 이 난민 캠프 안에 조그마한 사업을 열어 여기에서 물건을 생산해서 내보내는 것은 허용됩니까?”

“생산과 소비를 모두 캠프 안에서 한다면 자체적인 생산은 가능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생산물이 난민캠프 밖으로 나가는 것은 방글라데시 정부에서 허용하지 않습니다.”

“왜 그런가요?”

“아무래도 방글라데시가 가난한 나라다 보니 ‘왜 로힝야 난민이 방글라데시 사람들의 일자리와 생산성을 빼앗느냐’라는 반발이 강합니다.”

“방글라데시 정부가 로힝야 난민을 먹여 살리는 것도 큰 부담이잖아요. 그 노동력을 방글라데시의 발전을 위한 생산 노동력으로 활용할 생각은 왜 안 할까요?”

“그렇지 않아도 그 부분에 대해서는 저희가 방글라데시 정부에 계속해서 요청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래도 방글라데시 정부의 정책 기조 자체가 난민들이 여기 정착하는 것을 반대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 말씀하신 부분이 당장 현실로 이루어지기는 어려운 상황입니다.”

“지금은 방글라데시에 노동력이 남아도니까 충분히 이해는 됩니다. 그러나 앞으로 방글라데시 경제가 부흥하고 생산시설이 계속 들어오면 노동력이 부족해질 수도 있을 텐데, 로힝야 난민들을 난민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외국에서 들어오는 노동자라고 생각하면 어떨까요? 한국도 다 외국인 노동자를 받잖아요. 그러면 그 노동력이 방글라데시의 발전에 많은 도움이 될 수 있는 길이 있지 않겠냐는 겁니다.

예컨대 UN이 로힝야 난민 지원 사업을 10년간 유지한다면 적어도 수십억 달러가 들 겁니다. 그 금액을 아예 방글라데시에 한꺼번에 지원하고 난민을 방글라데시 사회로 받아들이도록 제안하는 것은 불가능할까요? 금액이 너무 큰가요?” (웃음)

“아시다시피 방글라데시가 이미 노동력을 수출하는 국가이기 때문에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일례로 현재 10만 명 정도의 방글라데시 사람들이 중동 국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이기 때문에 지금은 그런 얘기를 하기는 적합하지 않아 보입니다. 또 다른 이유도 있습니다. 이런 부분에 대해서 논의를 하려는 것 자체를 정부에서 그리 좋아하지 않습니다.”

궁금한 점에 대해 충분히 대화를 나눈 후 마지막으로 스님이 UNHCR 직원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지원한 가스스토브의 수리 문제도 추후 방법을 찾아볼 것을 약속했습니다.

“일단 전체적인 상황 파악은 되었습니다. 해결책이 없는 갑갑한 얘기를 많이 했네요. (웃음) 그러나 RRRC 책임자가 말씀해 주신 가스스토브의 수리 문제는 JTS에서도 더 연구를 해보겠습니다. 애초에 방글라데시 정부가 제안한 것이니 크게 반대는 없을 거예요. 부품 교체뿐만 아니라 그걸 다 분해 조작해서 새로운 물품을 만들고, 그런 과정을 기술 습득으로 연결을 해서 물품의 재활용으로 나아가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렇게까지 자세히 브리핑을 해주시느라 직원 분들 시간 낭비가 많았을 텐데 정말 감사합니다.” (웃음)

로힝야 난민캠프의 현재 상황에 대해 자세히 들을 수 있었습니다. 이어서 UNHCR 관계자들과 저녁 식사를 함께 하며 대화를 더 나누었습니다. 식사를 하면서도 방글라데시 사회로 진출하지 못하고 난민캠프 안에 갇혀서 살아야 하는 로힝야 난민들의 상황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을 계속 나눌 수 있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나서 두 명의 종업원이 스님을 찾아와 스님의 발에 손을 올려 예를 갖추며 인사를 했습니다. 치타공 구릉지대에 사는 차크마 불교인들이었습니다. 스님은 같이 기념사진을 찍어 주었습니다.


숙소로 들어가는 길에는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습니다. 밤 9시가 넘어서 짐을 풀고 하루 일정을 마쳤습니다.

내일은 오전에 로힝야 난민캠프로 이동해 IOM 보관창고에서 가스버너 10만 개 전달식을 한 후 난민들에게 직접 가스버너를 나눠주고 대화하는 시간을 가진 후 오후에는 다카로 이동해 한국 대사관에서 저녁식사를 하며 대화를 나눌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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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미

세상어두운곳을 밝게 비추어주고 희망을 선물
하고 자비를 실천하는 JTS 회원분들과 후원해주시는분들께 감사드리고
법륜스님께 감사드립니다
자랑스럽습니다

2022-09-20 03:30:10

김경리


“고향 떠난 사람들을 보살피는 것은 나를 보살피는 것과 같습니다."
방명록에 쓰신 스님 말씀에 눈물이 납니다.
지금 이대로 넘치도록 가졌음을 뉘우치고 알아차립니다.
스님 .. 감사합니다.

2022-09-15 15:02:31

선주행

감사합니다.
대한민국 만세
스님 정토회 만세
지금여기 살아있음에 만세

2022-09-15 09: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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