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2.6.19 농사, 나비 장터 2일째, 영어 즉문즉설, 청춘 톡톡
“비난을 받으면 수치스러운 마음이 들어요”

안녕하세요. 두북 수련원의 아침이 밝았습니다. 오늘은 나비 장터 2일째 날입니다.

운동장 곳곳에서 아침 일찍부터 나비 장터 준비를 위해 봉사자들이 분주하게 움직였습니다. 스님은 새벽 기도와 명상을 마친 후 나비 장터에 낼 쌈채소를 수확했습니다.

“장터를 열었는데 사람들이 사갈 게 없다고 하네요. 쌈채소를 더 수확해서 대중들이 좀 가져갈 수 있게 해야겠어요.”

어제 나비 장터에서 농산물 코너에 나온 감자와 쌀이 물량이 부족해 일찍 동이 나버렸습니다. 대중들은 농산물을 구입하러 왔다가 아쉬움을 갖고 돌아가야 했습니다.

“물건들을 푸짐하게 마련해서 장터를 열었어야 했는데, 대중들에게 미안하네요.”



스님은 부지런히 상추를 정성껏 뜯었습니다. 공동체 대중과 나눠먹으려고 스님이 키운 상추인데 잎을 뜯고 나니 앙상한 뼈대만 남았습니다.

“내일 서울 가면 서울 공동체 대중들에게 나눠줄 상추도 같이 뜯읍시다.”

상추를 뜯다 보니 어느덧 햇살이 강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몇 시예요? 강의할 시간이 안 되었나요?”

“아직 7시도 안 되었습니다.”

“5시부터 일했더니 아직 시간이 남았네요. 그러면 꽃모종 화분을 더 만듭시다.”

상추가 자라고 있는 사이사이로 맨드라미가 자라고 있었습니다. 꽃모종 화분을 더 만들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흙을 붓고 채로 돌을 걸러낸 후 고운 흙만 대야에 모았습니다. 화분 공장이 다시 팡팡 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모종을 화분에 담고, 고운 흙을 꽃삽으로 붓고, 단정하게 모양새를 갖춘 후 화분을 옆에 하나씩 놓았습니다. 순식간에 100개 가량의 화분을 만들었습니다.



“처음부터 햇빛에 두면 다 말라죽어요. 사람할 때까지 며칠은 그늘에 보관하고 물을 듬뿍 주어야 합니다.”

모종마다 물을 빨아들이는 소리가 ‘쏴’ 하고 났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합시다. 법문 하러 어서 가야죠.”

서둘러 샤워를 하고 오전 8시 정각에 스님은 방송실 카메라 앞에 자리했습니다. 오늘은 격주에 한 번 외국인을 위한 영어 즉문즉설을 하는 날입니다.

전 세계에서 300여 명의 외국인들이 생방송에 접속했습니다. 먼저 지난 한 주 동안 스님이 농사일을 하는 모습을 영어 자막이 들어간 영상으로 함께 보았습니다.

“재미있어 보이죠. 그런데 힘이 들고 냄새가 많이 났어요.(웃음) 그럼 여러분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이어서 곧바로 질문을 받았습니다. 두 명이 사전에 질문을 신청했습니다. 그중 한 명은 비난을 들었을 때 수치스러운 감정을 느끼게 되는데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질문했습니다.

비난을 받으면 너무 수치스러워요, 어떡하죠?

“My question is how do we deal with feelings of shame like feeling bad or unwanted because sometimes you might get like hypersensitive to criticism or feel anxious?”
(수치스러운 감정을 느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요? 비난을 받으면 너무 과민해지거나 불안해져요.)

“자기가 잘났다고 생각하면 비난을 받는 게 힘듭니다. 누구나 잘못할 수 있고, 실수할 수 있고, 모를 수 있습니다. 또 내가 잘못한 게 없는데도 남이 나를 오해해서 비난할 수도 있습니다. 부처님 같은 훌륭하신 분도 당시 사회에서 비난받고 모함을 받았습니다. 예수님도 비난받고 심지어 모함으로 죽음을 당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질문자가 비난을 받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비난을 받지 않겠다는 것은 자기가 예수님이나 부처님보다 더 훌륭하다는 얘기예요. 그러니 이렇게 생각해야 합니다.

‘나는 부족한 점도 많고 모르는 것도 많고 잘못한 것도 있으니까 비난받을 만하다.’

그렇다고 내가 다른 사람보다 특별히 못한 것도 아니에요. 세상 사람이 다 그렇습니다. 부끄러워하고 숨는다는 것은 현실을 회피하는 겁니다. 어떻게 하시겠어요?”

“I think I need to be humble. As you said, it happens because I think too highly of myself, and anyone can be blamed and that's normal.” (겸손해야 할 것 같아요. 말씀하셨듯이 제가 스스로를 너무 높이 평가해서 생기는 일이고 누구나 비난받을 수 있고 그게 정상이니까요.)

“앞으로 사는 동안 오해도 받고, 비난도 받고, 피해도 입고, 사기도 당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일은 많이 일어나냐, 적게 일어나냐 차이만 있지 누구에게나 다 일어나요.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괴로워할 거냐, 괴로워하지 않을 거냐는 내가 선택할 수 있습니다.

나쁜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고 해서 반드시 이루어지는 건 아닙니다. 일어날 확률이 일어나지 않을 확률보다 훨씬 더 높아요. 부처님에게 ‘나쁜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해 주세요’ 이렇게 빌어야 자유로워질까요, 아니면 ‘살다 보면 어떤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 이렇게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자유로워질까요?”

“I’m just accepting that these things will happen but also praying to buddha.”
(저는 그런 일들이 일어날 수 있는 것으로 받아들이겠지만 부처님께 기도도 할 것 같아요.)

“누구에게나 다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그것을 피하는 사람이 있고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습니다. 부끄러워하고 숨고 싶은 마음은 회피하는 거예요. 그렇다고 그런 일이 안 일어나는 건 아니잖아요. 이런 인간 세상에 기꺼이 적응하는 게 필요합니다.

비난을 피하려는 마음의 바탕에는 ‘나는 비난받을 사람이 아니다’라는 결벽성이 있는 거예요. 비난받으면 누구나 기분이 안 좋습니다. 비난을 기꺼이 받아들이면 금방 해소가 됩니다. 비난을 피하려고 하면 괴로움이 오래 지속됩니다. 그리고 살다 보면 내가 잘못을 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오해를 해서 비난을 받는 경우도 있어요.

부처님의 사례를 살펴보겠습니다. 어느 날 부처님이 어느 브라만 집에 음식을 얻으러 갔어요. 그 브라만은 음식은 주지 않고 비난을 했습니다. 우리 같으면 ‘음식을 안 주면 됐지 왜 비난하느냐?’라고 맞받아쳤겠죠. 그러면 상대는 ‘왜 아침부터 남의 집에 밥을 얻으러 오느냐?’고 따지면서 논쟁이 오가겠죠.

지나가는 사람이 이 상황을 보면 어떻게 생각할까요? ‘저 두 사람 오늘 처음 만났는데 왜 싸우지? 전생에 원수였나 보다’ 이렇게 생각할 수 있어요. 그리고 지금 저렇게 둘이 싸우니까 다음 생에도 만나서 또 싸울 거라고 봅니다.

부처님은 비난의 소리를 들으면서 빙긋이 웃었습니다. 그러자 바라문이 왜 웃냐고 또 시비를 걸었습니다.

‘내 말이 같잖냐? 나를 무시하는 거냐?’

그러자 부처님이 화제를 바꾸어서 ‘당신 집에 가끔 손님이 옵니까?’라고 물었어요.

‘손님들이 오지.’
‘선물도 가져옵니까?’
‘가져오지.’
‘선물이 마음에 안 들어서 안 받으면 어떻게 됩니까?’
‘가져온 사람 거지. 그런데 그걸 왜 나한테 묻느냐?’
‘당신이 오늘 아침에 나한테 욕을 선물을 했는데 내가 웃으면서 안 받으면 그 욕이 누구 것이겠소?’

그때 브라민이 크게 깨닫고는 ‘제가 잘못했습니다. 안으로 들어오십시오.’ 이렇게 말했어요. 그리고 공양을 대접했습니다. 공양을 마친 뒤에 부처님은 그를 위해서 설법을 해주었습니다. 법문을 듣고 브라만은 깨달음을 얻었고, 재가 수행자가 되었습니다.

지나가던 사람이 이 상황을 보면 어떻게 평가할까요? ‘저 두 사람은 처음 만났는데 저렇게 사이가 좋다. 과거 생에 둘은 아주 절친했겠다. 미래 생에도 저 사람들은 만나면 아주 사이가 좋겠다.’라고 보겠죠. 왜 이렇게 평가할까요? 이것은 과거의 일도 아니고 미래의 일도 아니고 지금의 일입니다. 상대가 비난한다고 나도 같이 비난하면 지금 원수가 됩니다. 동시에 과거 생애도 원수, 미래 생애도 원수가 됩니다. 상대가 비난할 때 붓다가 한 번 빙긋이 웃음으로 해서 현재 생의 관계가 좋아졌습니다. 동시에 과거 생도 좋았고, 미래 생도 좋아지는 거예요. 그래서 한 번 웃으면 삼생의 업이 녹는다고 말하는 겁니다.

과거와 미래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에요. 지금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상대가 나를 비난할 때 같이 비난할 거냐, 아니면 웃을 거냐는 내가 선택할 수 있어요. 앞으로 어떻게 하시겠어요? 비난을 받으면 웃으시겠어요, 같이 비난하시겠어요, 부끄러워 하면서 도망가겠어요?”

“I’ll try to smile at the criticism.”
(비판에 그냥 미소 지어 보겠습니다.)

“네, 그렇게 한 번 웃으면 바로 붓다가 됩니다. 근데 그게 쉽지 않아요. 그러니깐 어떻게 보면 너무 쉽고 어떻게 보면 너무 어려워요. 비난을 들으면 울지 말고 ‘비난은 별 거 아니다’ 이렇게 생각해야 합니다. 물론 누구나 다 순간적으로 기분이 좀 안 좋을 수는 있어요. 그게 현실이에요. 그러나 그것을 계속 움켜쥐고 있을 필요는 없습니다. 누가 버린 쓰레기를 내가 계속 쥐고 있는 것과 같아요. 왜 내가 남이 버린 쓰레기를 쥐고 살아야 합니까? 받지 않거나, 모르고 받았다면 갖다 버려야죠.”

“I just thought it was really insightful what you said and I’ll try to take criticism with a smile now.”
(스님이 해주신 말씀들이 정말 통찰력 있다고 느꼈습니다. 앞으로는 비판을 받는 순간, 미소 지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외에도 다음과 같은 질문이 있었습니다. 사전에 신청한 질문 외에도 줌과 유튜브를 통해 질문을 받았습니다.

  • 현재 기후 변화와 전 세계적인 재앙을 막기까지 몇 년이 남지 않았습니다. 수행자로서 저희가 어떻게 하면 모든 존재들을 임박한 기후 재앙으로부터 해방시켜줄 수 있을까요?
  • 불교대학 수업에서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행복은 불행으로 변할 수 있는 것이라고 배웠습니다. 어떤 종류의 행복이 그 예인지요?
  • 보살의 서원을 어떻게 이행해서 이 세상의 고통을 덜어줘야 할까요?

마지막으로 스님은 어릴 적 이야기를 들려주며 지금 깨어있고, 지금 지혜로운 삶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바른 길이라면 그냥 꾸준히 가면 됩니다. 안 되면 다시 하면 됩니다. 그래도 안 되면 연구해서 또 하면 됩니다. 안 되고 안 되는 과정 속에서 계속 연구를 하니까 결국 능력이 커집니다. 결과적으로 수많은 실패가 성공의 기반이 되는 거예요. 여러분은 노력을 해서 결과를 얻으려고 하지 않고 그냥 공짜로 얻으려고 합니다. 조금 해보고 안 되면 좌절해요. 좌절은 욕심에서 옵니다. 실패했기 때문에 오는 게 아니에요.

이 세상에서 꼭 해야 할 일이라는 건 없습니다. 아무리 해도 안 되면 그만둬도 돼요. 결과만 좋은 것이 아니라 그 결과를 이루는 과정도 좋아야 합니다.

제가 초등학교 다닐 때 구슬치기를 잘했습니다. 친구들과 구슬치기를 하면 제가 제일 많이 땄어요. 단지에 구슬을 한가득 채워놓을 정도였습니다. 50년이 지난 지금 돌아보면, 그 구슬이 다 어디로 갔는지 모릅니다. 지금 그 구슬은 제게 전혀 중요하지 않은 물건이죠. 여러분이 제 친구한테 가서 법륜스님이 어릴 때 어땠냐고 물어보면 뭐라고 하겠어요? ‘법륜스님, 구슬치기 잘해서 내 구슬 다 따갔다’ 이렇게 말할 겁니다.

이것이 자랑스러운 일입니까? 만약에 그때 제가 지혜로웠다면 구슬치기를 해서 설령 이겼다 하더라도 집에 돌아갈 때 친구들에게 나눠줬겠죠. 어차피 없어질 거잖아요. 그렇게 했더라면 친구들이 ‘법륜스님은 어릴 때부터 우리하고 달랐다. 구슬치기를 다 이겨도 집에 갈 때는 다 돌려줬다’라고 얘기했겠죠.

지금 돌아보면 어떤 것이 더 자랑스러울까요? 어릴 때 그 중요했던 구슬이 지금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나요? 그런데 지금 또 구슬처럼 무언가를 소중하게 생각해서 모으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숨이 넘어갈 때 이 시점을 돌아보면서 ‘어릴 때 구슬 같은 것을 그때도 잔뜩 모으고 있었구나’ 하게 될 수 있어요. 그러니 늘 깨어 있어야 합니다. 어릴 때는 어려서 어리석었다 치더라도 성인이 돼서 계속 어리석다면 문제잖아요. 지금 깨어있고, 지금 지혜롭기를 바랍니다. 그러려면 즐거움과 괴로움이 동일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근본 뿌리는 다 욕망에 있습니다. 본질을 꿰뚫어야 자유로워지지 드러난 현상만 쫓는다면 늘 경계에 휘둘립니다. 괴로움이 없는 자유로운 하루하루가 되기를 바랍니다.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대화를 마치고 나니 약속한 한 시간 반이 훌쩍 지나갔습니다. 다음 시간을 기약하며 생방송을 마쳤습니다.

이어서 오전 10시부터는 평화재단 통일의병 대회에 온라인으로 참석했습니다. 먼저 평화재단 통일의병들은 지난 사업에 대해 공유하고 향후 사업 운영을 어떻게 해나갈지 발표했습니다. 그리고 향후 사업 방향에 대해 궁금한 점과 관련하여 자유롭게 손들기 버튼을 누르고 스님에게 질문했습니다. 통일의병들은 최근에 여러 가지 일로 어려움을 많이 겪고 있었습니다. 스님은 통일의병이라면 어떤 관점을 갖고 이 어려움을 헤쳐 나가야 하는지 관점을 잡아주고 격려도 해주었습니다.

12시 30분에 방송실에 나와 나비 장터가 열리고 있는 운동장 구석구석을 한 바퀴 둘러보았습니다.


농산물 코너에는 어제에 이어서 수확물이 오전에 모두 동이 나고, 일부 쌈채소만 조금 남아 있었습니다.

“스님, 감자가 양이 부족해서 구입하지 못하고 돌아간 분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니까요. 물량이 부족하면 손가락이라도 내놓지 그랬어요?” (웃음)

스님은 경상도식 농담으로 미안한 마음을 표현했습니다. 스님이 며칠 동안 정성을 기울여 만든 꽃모종 화분 500개도 JTS 후원을 해준 분들 모두에게 전량 나눠주고 모금을 마무리하고 있었습니다.

화분을 안고 집으로 돌아가는 분들에게 꽃모종을 어떻게 키울 것이냐고 물어보았습니다.

“스님이 만들어주신 화분인데 정성껏 키워야죠. 굶주리는 아이들을 살린다는 마음으로 꽃모종을 키우겠습니다.”

스님이 만든 꽃모종으로 인해 식물을 살리는 마음이 사람을 살리는 마음으로 확대되어 JTS 후원자들에게 전해졌습니다. JTS 모금 부스 담당자는 인도 둥게스와리 마을 사람들에게 잔치를 열어줄 만큼 충분한 모금액이 모였다며 기뻐했습니다.

운동장을 한 바퀴 돌고 봉사자들을 일일이 격려한 후 스님은 다시 방송실로 들어왔습니다. 오후 2시부터는 청년들을 위한 ‘청춘 톡톡’ 강연을 시작했습니다. 1300여 명의 청년들이 생방송에 접속한 가운데 약 두 시간 동안 네 명의 청년이 손들기 버튼을 누르고 스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오후 3시에는 나비 장터를 마쳤습니다. 봉사자들은 소임 별로 삼삼오오 모여 마음 나누기를 하고 간단한 평가 시간을 가졌습니다.

해가 저물고 원고 교정과 여러 가지 업무들을 보다가 저녁 8시 30분이 되자 다시 방송실 카메라 앞에 앉았습니다. 오늘은 한 주를 마무리하는 일요 명상을 하는 날입니다. 코로나 이후 115번째로 진행되는 온라인 명상 시간입니다.

먼저 스님이 오늘 두북 수련원에 열린 나비 장터 소식을 전해주었습니다.

“제가 있는 이곳 한국은 오늘 매우 더웠습니다. 섭씨 33도까지 올라가서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를 정도였습니다. 오늘 저희들은 학교 운동장에서 ‘나눔과 비움의 장터’라는 이름으로 재활용품을 유통하는 장터를 열었습니다. 자기가 사용하지 않는 물건을 가지고 와서 다른 사람이 사용할 수 있도록 제공하고, 또 필요한 물건을 가져가는 사람은 기부를 했습니다. 그렇게 모금된 돈은 가난한 사람을 돕는 데에 사용합니다. 저는 틈틈이 꽃모종을 작은 화분으로 만들어서 인도 어린이를 돕는데 기부한 분들에게 선물을 드렸습니다. 많은 분들이 기부에 참여해 주셨습니다.

인도의 가난한 마을에는 아직도 음식이 충분하지 못한 곳이 있습니다. 오늘 모금된 돈으로 마을 사람 2000명의 한 끼 식사를 대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조금만 성의를 가지고 작은 돈이라도 모으면 어려운 곳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큰 도움이 됩니다. 세계 곳곳에는 홍수나 가뭄 같은 자연적인 재난으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국경, 인종, 종교를 넘어서서 그들을 돕는 마음을 우리 모두가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어려운 상황에 처한 사람이 도움을 받을 때도 기쁘지만,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는 것도 보람이라는 큰 기쁨이 있습니다.”

오늘은 특별한 질문이 없어서 바로 명상에 들어갔습니다.

“자세를 바로 합니다. 긴장을 풀고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갖습니다. 아무런 할 일이 없는 한가한 마음을 갖습니다. 동작도 멈추고, 생각도 멈춥니다. 멈추려고 애쓰는 것이 아니라 아무런 할 일이 없기 때문에 저절로 멈춰집니다. 이때 모든 것을 멈춰도 멈추지 않고 계속 움직이는 것이 한 가지 있습니다. 바로 호흡입니다. 코끝에 집중하면 숨이 들어오고 숨이 나가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마음을 콧구멍 끝에 집중해서 들숨과 날숨을 알아차립니다.

이 호흡을 알아차리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에도 의미를 부여하지 않습니다. 이런저런 생각이 일어날 수 있지만 의미를 부여하지 않기 때문에 일어났다가 사라집니다. 자기도 모르게 거기에 의미를 부여하게 되면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일어나게 되는데, 그렇게 되면 숨이 들어오고 나가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알아차리려고 애쓰지 말고 모든 것을 멈춰 버리면 호흡이 저절로 알아차려집니다. 숨이 들어오고 숨이 나가는 것을 알아차릴 뿐입니다. 놓치면 다시 합니다.”

탁! 탁! 탁!

죽비 소리와 함께 명상을 시작했습니다. 40분 간 명상을 한 후 스님이 실시간 채팅창에 올라 온 질문들을 직접 읽어주었습니다.

“여러분들 얘기 잘 들었습니다. 오늘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

생방송을 마치고 나니 밤 10시가 다 되었습니다. 오늘도 긴 하루였습니다.

내일은 아침에 농사일을 한 후 오후 내내 기획위원회 회의, 만일준비위원회 회의에 연이어 참석할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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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근

감사합니다

2022-07-01 06:33:17

홍자원

구슬처럼 잡고 있는게 많습니다. 깨어있겠습니다.
합장.

2022-06-27 16:57:20

혼자있는 시간이 생기니 저를 돌아보게 됩니다.
주신 말씀하나하나가 저를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너무 감사합니다.
구슬치기처럼 현명하고 따뜻한 어른이 되어야겠습니다

2022-06-27 08:5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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